산후 우울증

아픈 손가락 2019. 5. 24. 00:33

울 엄만 어쩌다 조울증 환자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딸로서 나의 최대 의문이다. 엄마 본인의 말로도, 외가 친척들의 이야기로도 가족력은 없다는데 엄만 대체 왜?

이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얻게 된다면, 나 역시 조울증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 잠재적 환자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공포도 얼마간은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는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에게 슬며시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가신지 벌써 십수년이 된 외할머니는 엄마가 마음의 병을 얻은 이유를 '너무 착해서'라고 믿으셨다. 울 엄마가 바보같이 너무 착해서 할 말 못하고 참다가 병이 났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외할머니에겐 못되 처먹은 시누이였고 울 엄마에게도 아동학대에 가까운 가사노동을 시켰던 고모할머니는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 탓을 했다. 친정 살땐 그래도 웬만히 살았는데 시집가서 보니 시아버지는 엄하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 맏며느리로서 남편과 함께 12식구를 먹여살리느라 고생한 탓이라나. 그래서 울 엄마가 아프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고모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늬 아버지가 착해 빠져가지고 능력이 없어!) 친가 식구들을 욕했다.

그럴법한 이야기지만 나로선 또 의문이 생겼다. 나의 부모님은 고3때 동네 친구로 처음 만나 햇수로 8년이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1960년대 당시로선 꽤 드문 연애결혼파다. 애인이 대학 입시를 거쳐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는 동안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가 결혼을 결심했을 땐 예비 남편감의 가난과 8남매의 장남이라는 무게도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어려서 내가 아빠의 어떤 점에 반해서 가난한 집 8남매 장남에게 시집을 왔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면, 엄만 장녀라서 그런지 맏며느리란 존재가 좋아보였다고 했다. 물론 막연한 상상과 실체는 엄청 달랐겠지.

하여간 예상 밖에 고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너무도 힘겨웠다면 결혼 직후 발병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검찰청 공무원이었던 엄마는 나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만에 첫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다시 복직했고,  연년생인 남동생을 낳은 뒤에도 곧바로 복직해 별일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문제는 나와 4살 터울인 막내동생을 낳고나서부터였다.

나이 많은 우리 할머니 대신 엄마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쫓아다니며 학부형 노릇을 해주었다는 넷째 고모와 막내 고모의 최근 증언에 따르면 ^^;  울 엄마가 처음 조울증 증상을 보인 건 막내동생을 출산한 다음이었다고 한다. 검찰청 소속 첫번째 타이피스트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엄마는 당시 여직원의 정년이 31살쯤(헉! 겨우 만 30세?)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또한 공교롭게도 최근 정신과 주치의를 만난 자리에서 엄마가 직업병으로 끝이 구부러진 손가락들을 보이며 하신 이야기다.)  그래서 셋째를 낳은 뒤엔 복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출산 이후 엄마의 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온 집안에 난리가 났었다는 고모들의 증언을 듣고 보니 시기가 얼추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전후 관계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엄마는 과연 산후 우울증 때문에 제대로 복직이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강제로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아야하는 인생의 변화를 함께 겪으며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심한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으로 갖고 있는 요란한 굿 장면이 바로 막내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느 즈음의 일인 것 같다. 

요번에 고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또 하나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 정확하게 내가 몇살 때인지 좀 더 역사를 추적해보아야 하겠지만, 부모님은 첫딸인 나만 친가에 맡겨놓고 아들 둘만 데리고 분가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글쎄! 외할머니가 어디 가서 점을 본 결과 '동쪽으로 이사를 가야 병이 낫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장 근처인 광진구로 이사를 했다는 것! 물론 매주말마다 엄마아빠가 할머니댁에 와서 자고가는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분가로 할머니댁에서 한참 살다가 3학년때 비로소 부모님댁으로 합류했다. 

무속인의 점괘가 맞았을리 만무하므로, 물론 엄마는 광진구로 분가를 한 이후에도 계속 심하게 아팠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디 어린 삼십대 부부는 참 많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넷째 고모가 걱정스러워 분가한 집에 가보면 엄마는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자책하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하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늘 애처가였던 아버지는 병든 아내 수발이 괴로워 연일 소주를 마셔댔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엄마의 조울증 발병에 관한 실마리 하나를 푼 셈이다. 가끔 뉴스에도 보도되지만 산후 우울증은 사람에 따라 정말 무서운 병이다. 느즈막히 결혼을 해 마흔살인가 마흔 한 살에 첫 아이를 낳은 나의 친구 역시 출산 후 무서운 우울증을 앓았다. 저절로 모성애가 뿜어 나오기는커녕, 너무도 무기력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는 갓난아기 돌보기가 힘들고 괴로워 나쁜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기의 안전을 위해 친구는 시댁에 아기를 보내 백일까지 떼어놓고 치료를 받았다.  울 엄마가 평생 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그 친구 역시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몇년에 한번씩은 다시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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