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이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도 나는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다. 미세미세 앱에서 검은 바탕에 해골표시를 보여주며 "최악, 절대 나가지 마세요!"라고 뜬 걸 보면 잠시 각성해서 마스크를 써봤지만 자꾸만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에 시야가 가려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숨이 가빠졌다. 호흡기가 약한 건지, 단순히 폐소공포증의 일환으로 마스크 쓰기가 답답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숨차서 쓰러지느니 그냥 미세먼지를 마시겠다고 결심하며 살았다. 100세시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의미에서 미세먼지로 수명을 좀 단축하지 뭐, 그런 심보도 얼마간 작용했다. 

과거를 돌이켜보아도 나는 숨가쁜 걸 잘 못견디는 체질이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 ^^;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 및 중학교 시절 마당이 넓고 한옥도 양옥도 아닌 벽돌 집체에 파란색이나 주황색 기와를 얹은 집들을 전전하며 살았다. 당연히 화장실은 마당 제일 외진곳에 있는 푸세식이었고, 세수는 마당 수돗가에서 엄마가 큰솥에 미리 데워놓았거나 연탄보일러에 연결된 온수통에서 더운 물을 퍼날라다가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그랬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욕은 대중목욕탕에 가야 가능했다. 헌데 내가 덥고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찬 대중목욕탕을 잘 못견딘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주말에 엄마에게 끌려 목욕탕엘 가면 숨을 잘 못쉬겠고 어지러워서 자꾸만 밖으로 물을 마시러 나가거나 찬물을 갖고 놀다가 많이 혼나곤 했다. 체육을 워낙 못하는 몸치이지만, 그 중에서도 체력장 과목인 오래달리기를 엄청 힘들어했던 것도 뭔가 호흡과 관련이 있지 않으려나 싶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도 오래 쇼핑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두통이 찾아온다. 여러모로 예민한 심신을 가졌지만 산소 농도에 특히 민감한가? 몇년전에 거금 들여서 개인 건강검진을 했을 때, 운동 부하와 폐기능은 멀쩡하다고 했으므로 그냥 순전히 내 기분에 의한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째뜬 어려서부터 중년에 이른 지금까지 일맥상통하게 난 숨가쁜 상황을 못견디므로, 보건용 마스크가 필수인 이 전염병 시국이 특히 난감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지만 노상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다. 장보기가 귀찮아서 1년째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당일배송이나 새벽배송을 받았었는데, 다들 인터넷 장보기에 몰려드니 당일배송은 언감생심 지난 주말엔 이틀 뒤로 배송시간이 떴다. 나는 장봐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가 텅텅비도록 버틴 다음 다시 장을 보는 사람인지라... 당장 반찬거리와 쌀이 떨어졌는데 당일배송이 안되면 몸소 사러 나가야한다. ㅠ.ㅠ 해서 요샌 오히려 귀찮게 장보러 나가는 일이 많았으니 참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집순이 노모와 함께 사는 프리랜서는 마스크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3년전에 사두었다가 안쓰고 내버려둔 것부터, 2월 중순에 정말 마스크가 구하기 힘든가 동네 마트에 가서 한두개씩 사온 것까지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닐 때 쓰기엔 충분했다. 마스크가 진짜로 바이러스를 막아주는지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곧장 전염병 보균자나 개인위생을 소홀히하는 사람으로 매도당할 수 있으니 눈치 보여서 아예 안 쓸 수는 없다. 일부 종교인들이 비밀리에 암약하며 사회를 집단 감염시킨 상황을 보면 실제로 어디에서 누굴 만날지 몰라 두렵고 조심하는 게 맞다.

하지만 국내 언론을 못믿어 연일 눈빠지게 BBC와 CNN 코로나 관련 뉴스를 섭렵해 얻은 정보로 보자면 KF마스크를 써도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을 순 없을 것 같다. 고글까지 완벽하게 쓰면 모를까, 아니 고글과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했더라도 손에 바이러스를 묻혀와 집안 어딘가를 만져서 바이러스 흔적을 남겨뒀다면 말짱 꽝이다. 집에 오자마자 손 씻었는데 들어갈 때 목욕탕 문 손잡이 바이러스를 묻혀뒀더라면? 으악... 일단 손씻기가 엄청 중요하단 것만은 잘 알겠고, 핸드폰도 잘 소독해야겠고... ㅎㅎ 암튼 해외 전문가들은 오히려 보건용 마스크 썼다고 방심했다가 개인 위생에 더 소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사람 많은데 가지 말고 마스크는 그냥 환자나 의료진에게 양보하라고, 수급에 어려움 생길 수 있으니 사지도 말라고 권한다. 온 국민에게 1일1마스크 공급 안하면 정책 실패라고 난리치는 나라는 정말 전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는 것 같다. 미국 일본은 바이러스 테스트키트도 모자라다고 난리구만... 겨우 마스크 가지고 참.  

그나마 다행인 건 의료진과 환자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스크가 돌아가도록 마스크 안사기 운동도 나름 벌어지고, 천마스크 쓰기도 장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어차피 KF94를 쓰면 숨가빠져 코를 내놓아야하는 형편인데 뭐하러 그걸 고집하나 싶어 검정색 천마스크를 하나 만들어 두었다. 유튜브를 보니 행주나 키친타월을 이용한 사제마스크 만드는 영상도 꽤 보이길래 집에 있는 빨아쓰는 행주 2종류 사이에 필터 대신 정전기청소포를 잘라 빵끈과 함께 넣어 양면테이프로 붙인뒤 고무줄은 실로 꿰매어 넣는 방식으로 1회용 3겹마스크도 하나 만들어보았는데 ㅋㅋㅋ 한번 쓰고 버리기엔 들이는 품이 너무 아까워 또 만들게 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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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직포행주 마스크는 철사까지 넣어 착용감이 그럴듯하지만 역시나 숨쉬기는 좀 힘들어서 최애 마스크는 검정색 천마스크다 ㅋ

우선 마스크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자는 취지에 동감하기도 하지만, 게을러서 5부제 구입 날짜를 맞춰 공적마스크를 사러 나가기도 귀찮고, 종로와 명동 등지에서 개당 4천원씩 막 박스째 놓고 파는 마스크는 괘씸해서 사주고 싶지도 않으며, 미세먼지 마스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제대로 차단해줄 거라 할 거라 믿지도 않으므로 나는 당분간 천마스크를 쓰겠다! 보건용마스크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에게도 일부 국민들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겠으나... 어휴 그 수많은 의료폐기물과 일회용품들은 나중에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든다. 5천만명 중에 천만명이 매일 마스크를 쓰고 버린다면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쓰레기는... ㅠ.ㅠ 어쩌면 이번 전염병 창궐은 생명체인 지구에 가장 해로운 인간을 퇴치하려는 몸부림의 일환일 수도 있겠는데, 인간들은 안간힘을 쓰며 살아남으려고 또 다시 지구를 더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현실은 정말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게 맞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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