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삶꾸러미 2022. 2. 10. 21:11

어느덧 주변에 아픈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제 그럴 나이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 유병장수 시대라지 자조해보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겼다는 얘기를 들으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많다. 대사증후군이나 퇴행성 질환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오갈 수도 있는 중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 때문이다. 

작년 여름과 올해 1월,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두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I는 희소난치질환을 오래 앓다가 마지막엔 재활병원에 누워 힘겹게 하루하루를 넘겨야 했고, J는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을 진단 받았지만 씩씩하게 두번이나 수술을 받고 오랜 항암기간을 잘 견뎌내 희망을 주더니 금세 상황이 나빠졌다.

늘 느끼는 거지만 죽음은 아무리 미리 예상하고 마음을 다져도 준비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친했던 친구의 부음은 타격이 클수밖에 없다. 오십을 넘기면 인류가 태고적부터 DNA로 넘겨받은 타고난 생명은 다 한 셈이고 나머지 삶은 의학의 힘과 영양, 본인의 운동 여부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이제 내 또래 친구들은 자다가 심장이 멎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라는 말도 책에서 본 적 있지만, 확실히 지나온 나의 삶 보다 남은 삶이 더 짧을 거란 것도 알지만, 그래도 황망함과 충격은 여전하다.

아직 어리기만 한 친구들의 자녀는 앞으로 엄마 없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자식을 먼저 보낸 친구의 부모님은 또 얼마나 가슴이 사무칠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친구에 불과한 남겨진 자로서 되게 하찮은 고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디지털 세상에 남은 친구들의 흔적은 또 어떻게 마무리해야할까. 잘 모르겠다.

새해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던 단톡방엔 친구의 흔적과 프로필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마도 홀로 남은 딸은 엄마의 휴대폰을 해지하지 않고 계속 간직할 모양이다. 나 역시 친구가 남긴 흔적들이 애틋해 얼마간의 애도기간은 필요할 거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 흔적을 볼 때마다 너무 슬프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이젠 그만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충동이 들기도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내 마음은 개운하지 않을 테고, 톡방에서 나오거나 SNS연결을 끊어버린다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건 마지막까지 오히려 내 걱정을 했던 친구 J의 충고다. 너는 이제 네 생각만 해, 나도 이제 딸 걱정 그만하고 내 생각만 할 거야. 니가 행복해야 주변도 챙길 여유가 생기는 거야. 네 생각만 해, 꼭. 조근조근 타이르는 친구의 목소리까지 아직 생생한 그 말대로 올해의 목표는 내려놓는 삶, 내 생각만 하기... 이런 걸로 정해야지 다짐했었는데...

역시 그래서 잘 모르겠다. 늘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할 때 거침없이 방향을 정해주던 친구 J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해주었을까. 친구의 부재를 결국 이런 고민으로 더 아쉬워하는 내가 또 좀 한심하고. 빈소에서 한참 울고 웃고 또 울다가 헤어지며 누군가 말했다. 이제 우리한테 가장 좋은 친구는 건강하게 오래 곁에 있어주는 친구라고. 이제 나는 확실히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좀 더 챙겨야겠다는 것만 일단 알겠다. 몹시 서글프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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