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2.04.27 치맥 열망 12
  2. 2009.12.14 타락마을 엠티 후기 19
  3. 2009.03.18 뻔한 후회 19
  4. 2008.09.24 목욕탕 주인 12
  5. 2008.08.13 홍대앞 추억 14
  6. 2008.08.02 뒤끝 6
  7. 2008.07.23 어렵다 19
  8. 2006.11.19 와인 뒤끝 1
  9. 2006.10.26 숙취 1
  10. 2006.10.17 신데렐라 귀가시간 4

치맥 열망

식탐보고서 2012. 4. 27. 23:21

오만가지에 다 적용되는 줄임말을 싫어하는 편이면서도 또 줏대없이 덩달아 따라쓰는 줄임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치맥'이다. 사실 치킨에 맥주의 궁합은 건강상 대단히 안 좋은 거라지만, 어차피 건강을 심히 챙기려면 아예 술을 마시질 말아야지! 바삭바삭한 프라이드 치킨이나 전기구이 통닭을 먹다보면 탄산음료보다는 역시 시원한 맥주가 제격.

 

치킨에 맥주를 즐겨온 역사를 따져보라고 한다면 정말 까마득하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언제부턴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엔 프라이드 치킨과 튀김엔 끄덕 없고 유난히 볶음밥만 소화를 못시키더니, 급기야 기름에 튀긴 모든 음식들이 확실히 부담스럽다. 뱃속에 넣은지 몇시간 지난 뒤에도 막 기름냄새가 계속 튀어올라오는 기분이 들고 위가 붓는 느낌까지 있다. 어흑, 내가 치킨에 맥주 마시는 걸 얼마나 좋아라 했는데!

 

그래서 자주 못먹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가끔 기회가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까짓것 위 좀 혹사시키면 어때! 웩웩 게워내고도 또 술 퍼마시던 때에 비하면야 치맥 정도는 양반이다. 어차피 치킨에 탐닉하느라 배불러서 많이도 못 마시질 않는가. ㅎㅎ

 

홍대 레게치킨이 그리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통 가볼 기회가 없었다. 갈 때마다 자리가 없어! 젠장. 근데 꿩 대신 닭이라고 얼결에 들어간 치킨집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워낙 치킨을 멀리하며 살다보니 내 입엔 그저 닭만 대충 튀겨놓아도 무조건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일행도 맛있다고 칭찬했으니 객관적인 평가도 뒷받침된 감상이다. 게다가 생맥주에 무슨 짓을 한 건지 거품이 아주 쫀쫀한 느낌으로 괜찮았다. 맥주 자체가 진한 맛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물타서 싱거운 맥주는 아니라는 데서 점수를 얻었다. 이름하여 깐부치킨. 상상마당 건너편 주차장 길 모퉁이에 있다. 

 

이젠 맥주 한 두잔에 알딸딸하는 형편없는 주량으로 전락했으면서도 성인이 된 이후로 음주를 즐긴 역사가 길기 때문인지 비가 온다거나, 금요일밤이 되면 이상스레 술이 마시고 싶어짐을 느낀다. 날씨 화창해진 요즘 금요일밤은 더더욱! 냉장고에 사다 넣어둔 캔맥주도 있지만 그건 또 일요일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한 캔씩 홀짝거리는 용도였다. 출근도 안하는 주제에 왜 일주일이 다 가고 월요일이 오는 게 서글픈지 원. 그러나 일요일밤을 헤롱헤롱 보내다 12시를 넘기면 월요일을 술기운에 시작하는 것 같아 그짓도 몇번 하다 관뒀다. 혼자 술마시는 게 알코올 중독의 시초라는데! ;-p

 

암튼... 지난주 금요일밤의 치맥이 못내 그리워 사진 쓰다듬다 마음을 달래려 시작한 포스팅이다.  

이름이 [순살 치킨]이었을 거다 이건 [마늘 치킨]

식탐녀답게 휴대폰에 종종 먹거리 사진을 모아둔다. 물론 먹는 게 급해서 사진을 못찍을 때가 더 많지만, 사진으로도 갖고 싶은 음식이 꼭 있더라고... 그러다 가끔 배경화면으로 쓰기도 한다. ㅋ

 

메뉴판을 보고 별 생각 없이 시켰는데, 나중에 둘러보니 이 두 메뉴보다는 크리스피 치킨이 더 인기인 것 같다. 발라먹기 귀찮더라도 담엔 그걸 시켜먹어봐야지. 같이 튀겨 내온 감자튀김의 양이 좀 적긴 하지만 파삭파삭 맛있었다. 전기구이 통닭에 마늘소스를 얹어 준 것도 담백하니 맛났음. 생맥주는 3천원, 치킨 가격은 16000-17000원 전후. 가격은 다른 데와 비슷한데 양이 좀 적은 것도 같다. 이 정도면 보통인가? 나로선 엄청 배고플 때 들어가서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는지 진짜로 훌륭한 맛인지 한번 더 먹어보고 판단해줄 테다. 치맥 궁합은 역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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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엠티 날이 밝았다. 보란듯이 날씨는 쾌청. 타락마을 주민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비가 오거나 날씨가 나빠진다는 징크스는 몇몇 새 주민들의 영입으로 깨진 게 틀림없다. 담날에도 춥기는커녕 하늘에 거의 구름 한점 없이 맑고 영상의 날씨라, 명색이 겨울 엠티인데 눈 쌓인 풍경 한 번 못 본 건 아쉬울 정도였다.

약속시간에 맞춰 넉넉히 집을 나서려던 계획은 현관에 놓인 고구마 봉다리를 보며 쿠킹호일에 싸가지고 갈까 말까 또 다시 고민을 하며 무너졌다. 잠자기 전엔 분명 호박고구마가 아니라서 주민들에게 쿠사리를 먹을 게 뻔하다며 안가져가기로 해놓고선 또 망설이는 건 뭔지! 정말 우유부단한 인간... 그래도 고구마 고민으로 마루에서 얼쩡거리느라 하마터면 빠뜨리고 갈 뻔 했던 달력과 증정본은 잘 챙길 수 있었다.
암튼 약속시간 15분 전에 벌써 도착했다는 부지런쟁이 미아의 문자가 날아올 무렵 내 위치는 화곡동. 신호등 운만 잘 맞으면 정각에 도착할 것이라 오만한 자신감을 품었으나 그건 오산. 김포공항에 들어가서도 이마트 찾아 헤매느라 공항을 다시 한바퀴 돌아야 했으니 일행을 만났을 땐 이미 10분 지각한 시간. 된통 키드님의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으나, 다행히 더 늦게 오고 있는 벨로 때문에 무사히 넘어간 듯.
이번 엠티를 기회로 <홀로서기>를 강요받게 된 키드님이 적어온 쇼핑 목록에 따라 각개전투를 하듯 순식간에 쇼핑을 마치고 강화도로 출발한 시간이 얼추 세시 반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강화도라고는 하지만, 약도상 강화대교 건너자 마자 나타나는 초입. 김빠지게 30분 만에 도착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으나 그래도 1시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문제는 인간 네비게이션을 자랑할 때 필수인 약도 메모지를 집에 두고 온 것. 그래도 강화도는 여러번 가봤고, 비교적 간단한 약도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는 듯 해 잘난 척 앞장을 섰다. 내 기억으론 <강화대교 지나 강화 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 계속 직진하다가 인산저수지 앞 횡단보도에서 우회전. 바로 목적지>였다. 내 기억에서 한 가지 빠진 기점이 있었으니 바로 <안양대학교>. 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한 건 좋았는데 중간에 삼거리가 나오며 여러 관광지 표지판이 적혀 있어 잠시 머뭇대느라 시뻘건 노선버스 아저씨한테 길 막았다고 빵빵 위협 구박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키드님과 파피의 문자 조언으로 그만하면 선방했다.

다락방까지 갖추어져 있는 펜션은 꽤나 흡족. 안에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러나 이 지나친 난방은 밤새도록 몇몇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으니... 으으으) 순식간에 과자 몇봉지와 귤을 까먹으며 저녁 먹을 시간을 기다린 우리는 놀랍게도 손이 빠르신 키드님의 양상추와 오이 씻기의 신공으로 <먹고 마시기> 준비를 일사천리로 끝냈다. 반드시 <강화도 호박고구마>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마트에서도 고구마를 안 사고 근처에서 조달하기로 했던 우리의 염려 또한 키드님의 수완으로 해결되어 주인 아주머니로부터 깔끔하게 제공받았으며, 홀로 고기 굽고 자르고 소금/후추 뿌리는 솜씨까지 모두를 만족시켰으니 그의 홀로서기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대는 하산하시오~.

약간의 문제는 그래도 겨울이라고 쌀쌀한 날씨에 얼른 방으로 돌아와 시작된 2차 음주 자리부터 시작된 듯하다. 연일 이어진 야근으로 피로가 쌓인 벨로는 차안에서부터 틈틈이 눈을 붙이더니 방에 들어와서는 아예 소파에 누워 맥을 못추며 사방에 잠가루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피곤벨로가 초저녁 내내 눈을 반짝이며 깨어있던 순간은 달력 뽑기 이벤트와 타락마을 싼타 키드님의 선물공세 때 뿐이었다. 다크호스로 기대하던 지다님도 배가 아프다며 이불을 배에 두르고 누워 술마시기 보다는 아이팟과 놀기에 더 흥을 보이질 않나, 이미 이전 엠티에서 구토키드의 별명을 습득한 키드님도 초반부의 강세가 급격히 기울며 11시도 되기 전에 살짝 취해 같은 질문 또 하기 신공을 발휘하질 않나, 기대주 파피 또한 술집에서 마실 때는 강해도 엠티에선 은근히 약하다며 일찌감치 쓰러질 것을 예고했으니, 이번 엠티를 위해 집에서 간간이 캔맥주로 미리 간을 단련해온 나로서는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벨로를 엠티 내내 <잠만 처자게> 할 수는 없다며 파피가 불끈 주먹을 쥐고 달려나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커피믹스 세 통을 공수해 와 얼른 타먹인 덕분에 뒤늦게 커피파워로 버티기 시작한 벨로를 마구 독려하며, 나는 은근 다크호스 미아와 파피를 술동무 삼아 최소한 2, 3시까지는 술자리를 이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무렵 구토키드는 계속 들락날락 홀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다님은 일찌감치 방에 들어가 취침 중.
허나 이미 세력을 장악한 잠의 기운은 한 사람씩 쓰러뜨리기 시작하였으니, 벨로의 커피파워를 깨워놓은 파피가 제일 먼저 자리에 눕고 잠깐 눈을 붙이겠다던 미아도 그 옆에 드러눕고, 남은 사람은 바깥 계단에 홀로 앉아 괴로워하는 키드님과 치뻗는 커피파워를 주체 못하는 벨로와 나뿐.
"실망이야, 실망이야, 다 실망이야"를 외치고 있던 나도 어지간히 취해 있던 터라 키드님을 집안으로 들여 놓고는 자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 사이 초인적인 커피파워를 발휘한 벨로는 재빨리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해놓지를 않나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나의 잠자리는 키드님이 예고한 대로 격리실 다락방. ^^; 가파른 계단을 한발씩 올라가 누운 건 좋았는데, 아 곧이어 느껴지는 타는 목마름. 아슬아슬 다시 계단을 내려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한 컵 떠가지고 다시 위로 올라가보니 실내 기온이 무려 29도였다. 하필 내 머리맡에 있던 온도계는 계속해서 틱, 틱, 보일러 작동음을 알려주고, 온도를 내려도 여전히 방은 숨막히게 덥고, 목은 마르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생수병에 물을 잔뜩 담아갖고 올라와 자다 깨서 마시고 또 자다 깨서 마시고... 자는둥 마는둥 괴로워하며 문득 깨달은 것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작게 코고는 소리! 아... 나 말고도 누군가 살살 코를 고는구나 누워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무 더워서 다락방 창문을 좀 열어놓고 또 깜빡 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막 떠드는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났다. 아직은 깜깜한데 밖에서 일렁이는 손전등 불빛. 건너편 펜션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잔뜩 쏟아져나왔다. 시간은 겨우 5시. 미친 인간들이 새벽낚시라도 가는 듯... 다시 드러누웠지만 여전히 방은 덥고 머리는 아프고 속은 괴롭고... 아 왜 그리도 과음을 했던고. 후회막급이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또 다시 나를 깨운 건 난데없는 알람. 파피가 혼자 상경을 시도해보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피야, 가지마." 미아의 간청이 들리고 그래도 가겠다고 나서는 듯한 파피. 아직 날도 새지 않은 캄캄함 속에 어딜 가겠다는 건지! 나는 또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파란 털모자를 쓰고 굳이 먼저 가겠다고 나서는 파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 혹시 버스 못 타면 다시 와라. 분홍색 곰돌이 탈을 뒤집어 쓰고 자고 있던 키드님도 벌떡 일어나 파피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깨질 것 같은 두통 때문에 다시 눈을 떠보니 드디어 아침. 미아와 파피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고 키드님은 간간이 일어나 밖에 나갔다 와선 다시 끙끙대며 앓고... 어라.. 파피 안 갔네? 그제야 내가 손을 흔들어주었던 파피가 못보던 새파란 모자를 쓰고 있었고, 키드님의 분홍색 곰돌이탈도 떠올랐다. 그게 꿈이었구나. 키키키. 하지만 얼굴과 뱃속은 웃을 형편이 아니었다. 으으윽 머리아파~~

아침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깊은 잠을 자면 금방 나아질 것 같은데 이미 날은 밝았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소음... 부지런쟁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아침까지 챙겨먹었지만 나는 슬며시 날아드는 라면국물 냄새도 거북할 정도.. 뇌와 두개골이 따로따로 출렁이는 느낌이었다.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극심한 숙취인지. 어휴... 생각해보니 제주도는 <여행>이라 밤마다 몸을 사렸고, 이토록 음주에 매진한 타락마을 엠티 경험은 처음이었다. 키드님을 제외하고 엠티 경력이 꽤 되는 다른 분들이 왜 전날밤에 몸을 사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몸을 안 사렸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가장 극심한 숙취에 시달린 키드님과 나도 다음번엔 확실히 살살 달리겠지.

지다님의 젤리카메라에 찍힌 담날의 몰골은 아마도 십수년전 과음 후 새벽 백사장을 달린 뒤끝에 온종일 팅팅 불어 있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타락마을 엠티 담날은 다들 그렇게 빌빌대다 암것도 못하고 헤어지는 것이 전통인가요? 멀미지다님 때문에 크게는 바라지 않았지만, 12시 전에 체크아웃하면 귀가하기엔 너무 일러 외포항에 가서 석모도 가는 배라도 타고 갈매기한테 새우깡주기 같은 것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었음(물론 나는 갈매기 무서워서 새우깡 주는 거 싫어하지만!). ㅋㅋ 그런데 굳이 친절 베풀겠다며 배웅 나온 아저씨가 경치 좋은 해안도로로 잠시 돌아서 귀경하라는 데도 단박에 거절하는 타락마을 주민들! 다시 출발점에 일행들을 내려주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무려 2시. 나의 엠티 역사상 가장 빠른 귀가시간이었다. 

구구절절 쓸데없이 길게 썼지만, 타락마을의 1박2일 엠티를 한 줄로 요약하면 맛난 고기와 술먹고 수다떨다 꽥.
 ^^; 하기야 엠티가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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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후회

투덜일기 2009. 3. 18. 12:42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임을 뻔히 알면서 저지르고 난 뒤 하는 후회는 특히 스스로에게 민망하다.
가령, 과음을 하면 다음날 숙취 때문에 괴롭다든지
커피를 제 시간에 안 마시면 두통에 시달린다든지
여유로울 땐 일감을 계속 미루다 발등에 떨어진 뒤에 헐떡거린다든지
레드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빠개진다든지
라면을 밤참으로 먹고 자면 팅팅 붓는다든지...

어젯밤엔 후회할 게 뻔한 일을 무려 세 가지나 동시에 저질렀나보다.
일은 하기 싫었고 괜히 무료했고 배는 고팠고 그래서 TV를 틀어놓고는 자정 넘어 라면을 먹었는데 하필 와인 마시는 장면이 나올 게 뭐람. 여세를 몰아 라면으로 텁텁해진 입을 와인 한잔으로 헹구며 기분낼 때까지는 좋았는데, 한잔 정도로는 괜찮을 줄 알았더니 웬걸.
머리가 너무 아파 새벽에 누워서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라면국물도 안 마셨는데 잠까지 못잤으니 얼굴은 팅팅 붓고 머리는 빠개져 카페인으로 살살 두통을 달래고는 있으나 아직 진정될 기미는 보이질 않고 있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의 기쁨과 이어지는 후회의 관계는
비록 시간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긴 해도
결국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낑낑거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몽매함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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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주인

투덜일기 2008. 9. 24. 00:51

신경숙의 작품이었는지, 강석경의 작품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아주 오래 전 읽은 소설에서 <목욕탕 주인>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퍽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얼마 안되는 돈에 열쇠를 내주고는 사람들이 입던 남루하고 허름한 옷을 보관해주는 동네 목욕탕 주인 같은 존재로 주인공이 자신을 묘사했던 것 같은데, 요즘이야 목욕탕도 찜질방을 끼고 거대한 기업처럼 운영하는 추세이니 그때의 그 느낌을 지금 독자들은 아마 과거의 나처럼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려나 나는 요즘도 가끔 그 구절을 떠올리며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편하다못해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목욕탕 주인> 같은 존재가 아닌가 슬며시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나의 신변, 그러니까 아직도 속박에서 자유로운(?) 상태라는 점과 밤에도 늘 깨어있기 십상인 직업 특성이 더해져 나는 지인들이 한밤중 찾아온 난데없는 불면을 가눌 길 없어 괴로워한다거나 취중 귀가길에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술주정이 발현했을 때 종종 통화상대로 낙점되고 만다.

따지고 보면 다 내탓이다.
옛날부터 나는 쓸데없이 친구들의 고민들어주기 및 상담에 뛰어난 척 행동했고, 연애도 잘 못하는 주제에 지인들의 연애사엔 언제나 처음부터 억지 조언자가 되어야 했다.
사실 모든 문제는 본인이 풀어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귀담아 들어주다 간간이 맞장구를 쳐 용기를 북돋아주면 내 역할은 끝이 나는 셈이다. 물론 과거에는 강력하게 나의 주장과 충고를 해결책이랍시고 들이민 적도 있었지만, 파란 많은 연애로 고민하는 지인에게 <그딴 놈/년이랑 당장 헤어져!>라고 조언했는데 며칠 뒤에 도저히 못 잊겠다며 재결합하는 커플들을 몇번 겪은 뒤로는 특히 남녀문제의 경우 섣불리 내 의견은 섞지 않게 되었고 몇년 전부터 연애 상담은 골치아파서 아예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와 더불어 나이 지긋해진 주변 지인들이 차라리 결혼의 위기를 겪을망정 연애질을 하는 건 드문 상황이 한편으론 서글프면서도 어쩔 땐 오히려 반갑달까. -_-;;

물론 측근들에게 가장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상대가 된다는 건 친구로서 의미있는 일이고, 나 역시 앞뒤 잴 것 없이 고민거리를 주절거림으로써 그것만으로 속이 후련해지는 지인들이 곁에 있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친척에도 촌수가 있듯 관계에도 급수가 있으니, 모든 지인들에게 똑같은 관심과 부담의 정도를 할애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취중이든 맨정신이든, 뜬금없이 몇달만에 전화를 걸어선 다짜고짜 자기 삶의 하찮음과 짜증을 나에게 같이 짊어져주기를 바라거나, 무조건 그 때가 좋았지, 옛날이 그리워 따위의 하소연을 늘어놓는 <급수 먼> 지인들의 투정은 이제 정말이지 버겁고 짜증스럽다. 그렇다고 확 관계를 끊어버릴 만큼 하찮은 급수의 사람들은 아니니, 앞으로도  나는 고요한 한밤중에 갑작스레 울려대는 전화벨을 무시하지 못하고 휴대폰이 뜨끈뜨끈해질 때까지 반복되는 푸념을 들어주어야 하는 목욕탕 주인 같은 운명이란 말인가. 젠장.

간만에 면벽하여 도닦듯 분위기 잡고 일 좀 해보려고 앉았다가 완전 기분 잡쳤다.
한밤중에 울려도 반가운 전화도 있으니 아예 전원을 꺼놓을 수도 없고 이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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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추억

추억주머니 2008. 8. 13. 17:05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좀 샀더니 뜻밖의 부록들이 딸려왔다.
5천원짜리 국제전화카드와 홍대앞 클러빙 맵.
책 홍보를 위해 지도를 비매품으로 제작해 돌리는 출판사도 별로 마음에 안들지만(나도 두어 권 책을 내긴 했어도 다시는 거래하기 꺼려지는;;) <클러빙 맵>이라는 제목부터 눈쌀이 찌푸려진다.
clubbing map이라니. 곤봉으로 후려치는 지도라는 뜻이냐 뭐냐!  (club은 night club의 준말이기도 하지만 '곤봉', '곤봉으로 때리다'의 뜻도 있다)
그냥 '홍대앞 클럽 지도'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쓸데없이 아무데나 영어를 같다붙이는 세태는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어쨌거나 홍대앞 클럽과 카페, 음식점 따위가 깨알같이 적혀 있는 지도를 시큰둥하게 들여다보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주말마다, 때로는 주중에도 밤마다 홍대앞으로 몰려가 맥주캔 하나에 몇 시간 동안 열광하던 10년 전의 추억이.
그때도 이미 난 30대였는데 어디에서 그런 체력과 열정이 나왔는지 원.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고 신기하다.

나와 지인들을 한꺼번에 홍대앞 클럽으로 이끈 건 학원에서 만난 어느 후배였다.
요즘처럼 인터넷 검색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이므로, 번역하면서 가끔씩 나오는 슬랭도 물어보고
녹슨 영어실력도 닦을 겸, 그리고 어떻게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되찾아보겠다고 열심히 영어학원엘 다니던 시절이었다. 학원 사람들 가운데 몇몇과 놀랍게도 죽이 잘 맞아선 수업 끝나고도 헤어질 생각을 않고 같이 점심 먹고선 '스터디' 한답시고 온종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다 저녁에 직딩파들이 퇴근후 합류하면 맥주마시러 돌아다니느라 연일 일은 팽개치고 놀기만 했었는데, 똑같은 놀이문화에 식상해질 무렵 휴학중이던 한 아이가 홍대앞 클럽엘 가자고 했다.
술도 안 마시는 그 아이는 주말마다 스트레스 풀러 친구들이랑 홍대앞 클럽을 가는데, 우리 분위기로 봐서 다들 좋아할 것 같다나. 그 아이가 데려간 클럽은 인디밴드들이 라이브 공연을 하는 곳이 아니라, 디제이가 음반을 틀어주되 나이트클럽과는 달리 기본도 없고 입구에서 두당 5천원을 내면 무조건 캔맥주 하나를 주는데, 그걸 마셔도 되고 다른 음료수로 바꿔마셔도 되는 요상한 시스템의 별천지였다. (나중엔 입장료를 따로 내면 음료권을 주고 팔목에 도장을 찍어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내가 첫발을 디딘 홍대앞 클럽의 이름은 <황금투구>.
내 경우 워낙에도 대학시절부터 직딩시절까지 춤추러 다니는 걸  좋아했었지만, 어느 순간 나이트클럽은 춤을 추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는 짝짓기와 즉흥만남을 위한 장으로 변질되어 춤판에 발을 끊은지 오래였다. 그런데 앉을 자리도, 가방을 놓을 자리도 별로 없이 다들 제 흥에 겨워 춤을 추거나 한 구석에서 음악에 심취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유로운 그 공간이 나에겐 얼마나 파격적이고 마음에 들던지, 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꼬박 홍대앞으로 달려갔고, 대부분 맨정신에 열심히 춤을 추어대거나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에 열광하며 행복해했다. <황금투구>엔 음악을 아주 잘 틀어주는 디제이가 몇명 있었는데, <황금투구>가 자리를 옮기고 또 다시 <명월관>으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들을 따라 약간은 무서운(마약을 하는 아이들도 드나든다는 소문이 도는 아주 외진;;) 클럽에 갈 때도 있었는데 결국엔 <명월관>과 <발전소>, <조커>, <흐지부지-원래는 Hodge Podge인데 우린 흐지부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래 전 영어강사들이 마약을 하다가 대거 체포되기도 했던 이름 까먹은 클럽을 전전했던 것 같다.
홍대앞 클럽에서 춤추는 재미에 푹 빠진 나는 처음의 일행들 말고도 주변 지인들을, 심지어는 송년모임에 나를 불러낸 거래 출판사 사람들까지 홍대앞에 데려가 춤바람을 일으켜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는데, 시커멓고 거칠고 조악한 클럽 분위기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춤바람에 물드는 이들도 꽤 됐다.
그땐 정말이지 주말에 지인들과 다른 동네에서 약속을 했다가도 그들을 꼬드겨 홍대앞으로 데려가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

하지만 클럽 음악도 변하기 마련이니, 온갖 종류의 폭발적인 음악들을 전부 들을 수 있었던 클럽들은 어느틈엔가 테크노음악에 점령당했고, 나는 죄다 그 음악이 그 음악 같은 테크노 리듬에 싫증을 느껴 춤바람(?)도 차츰 수그러들었다. 더욱이 언제부턴가 홍대앞엔 버릇없고 거칠고 아는 영어라곤 욕밖에 없는 듯한 미군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는데, 그들과 보란듯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는 야시시한 옷차림의 예쁜 여자애들이 비비적비비적거 리며 추는 춤도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얼마 후 미군 범죄 사건 때문에 홍대앞 클럽에선 미군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운동도 벌어졌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전혀 모르겠다)
라이브 공연을 하던 <드럭> 같은 클럽으로 장소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한번 시든 춤바람은 좀처럼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즈음에 양현석이 대규모로 오픈한 힙합 클럽도 생겨나 가끔 연예인을 구경하는 재미라도 보자는 지인들에게 이끌려 <NB> 같은 클럽에도 가봤지만 만 2년을 정점으로 결국 나(와 지인들)의 가열찬 클럽 생활은 막을 내렸다.

그러니까 내가 제일 열심히 홍대앞을 찾아다니던 때는 98년과 99년이라는 의미인데, 그 뒤로는 가끔 클럽엘 가도 곡 하나를 끝까지 추기에 체력이 딸릴 정도였고 한때 그토록 열광했던 '춤' 자체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후 홍대앞을 가는 일은 훤한 대낮에 근처의 출판사를 방문할 때나, 약속을 만들어 엄청나게 생겨난 카페와 술집 따위를 찾을 때뿐이고 클럽에 가고싶다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약속이 있거나 볼일이 있어 홍대앞을 찾게되면 아직도 옛추억이 떠올라 비싯 웃음이 나고 마음이 설렌다. 이제는 골목골목 빈틈없이 들어찬 술집들과 카페가 약간 숨막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홍대앞엔 뭔가 다른 공기가 떠도는 것 같다. 하나의 틀로는 도저히 정돈할 수 없고 막무가내로 제 목소리를 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개성의 동네랄까. 나만의 착각이자 편견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홍대앞엘 나가는 기분은 언제나 그럴듯하여 행복에 가깝다.

그리고 오늘 마침 홍대앞에서 약속도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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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

투덜일기 2008. 8. 2. 23:40
여행 후유증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다는 발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예상은 했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복귀는 참으로 구차하고 남루하다.
피곤과 우중충한 날씨를 핑계로 온종일 뒹굴거리며 잠을 잤는데도 여전히 졸린 건 계속해서 일상 복귀를 거부하려는 생체시계의 반항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강행군을 한 것도 아닌데, 심정적인 친근감은 깊어도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쌓은 시간이 적은 이웃들과의 여행이 살짝 부담스러웠는지 긴장된 몸은 나흘 내내 취기와 피로에도 예민한 더듬이를 내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시체처럼 꿈쩍않고 한 열시간쯤 계속 자고 싶은데, 여전히 쏟아지는 건 토끼잠뿐이라는 게 억울할 지경.
원래부터 뒤끝 있는 인간이건만 여행 뒤끝은 한번도 예사롭게 넘기는 적이 없다.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듯 제주도를 담아온 사진조차 내려받을 엄두가 안난다.
주말을 핑계로 내일까지 버벅댈 작정.

막연하게 허전하고 서글픈 마음은 캔맥주로나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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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투덜일기 2008. 7. 23. 23:51

또 시작됐다.
나의 옮긴이의 말 울렁증.
일주일 내내 고민해도 가닥이 잡히질 않아 며칠째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옛날에 읽으며 주옥같은 문장에 반해 따로 챙겨두었던 책도 읽고 최근에 사들여 쌓아두고만 있던 책들도 읽으며, 뭔가 그럴듯한 화두가 떠오르길 빈다기보다는 글솜씨 뛰어난 작가들의 <글발>이 어떻게든 전염병처럼 내게 옮겨오길 빌었다.
그런데 별 소용이 없다.
그나마 밤이 내리면 감상의 과잉에 허덕이게 될까 싶어 일부러 연일 진한 커피를 들이키며 밤의 마법을 기대했건만 눈주변만 시커매질 뿐 그마저 효험이 없다.
오늘은 급기야 술의 힘을 빌어볼까 캔 맥주를 땄다.

번역가도 작가랍시고 꼬박꼬박 나를 선생님이라 추어올리는 이들은 내 이런 부끄러운 고통을 알까.
당연하겠지만 우리말로 옮기면서 애정이 많이 생긴 책일수록 역자후기 쓰는 게 어렵다.
번역하며 내가 즐긴 만큼 그 매력과 묘미를 독자들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몇 문단의 진솔한 글로 전할 재주가 내게는 참 멀기만 하다.

종일 마셔댄 카페인에 맥주의 알코올 기운이 더해져 알딸딸 뇌가 뜨거워지니 기분은 아삼삼 좋기만 한데,
종일 열어둔 한글 문서엔 좀처럼 글자수가 늘어나질 않고
애꿎은 블로그만 들락거리고 있다.

전에도 술기운에 옮긴이의 말을 쓴 적이 있던가 없던가.
오늘은 다행히도 밤의 마법에 촉촉한 비의 효과까지 겹쳐지니 뭔가 결실이 있으려나 어쩌려나.
으휴.
새삼 느끼는 글쓰기의 어려움.
정말이지 난 아직 멀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 재주에 불타는 질투심을 느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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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뒤끝

삶꾸러미 2006. 11. 19. 02:24
기분 좋게 마신 술은 뒤끝도 없이 몸까지 말끔하면 얼마나 좋을까.
맛있는 수다와 저녁에 곁들인 레드와인으로
행복에 대한 고민을 잠시나마 말끔히 잊을 수 있어서 좋았던 금요일밤...

그러나 와인 한 병을 둘이 비우며
알코올에 약한 친구 대신 거의 다 마셔댄 나는
약간의 취기에 영혼까지 너그러워진 걸 기뻐하며
노곤하면서도 후끈하고 편해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후
와인의 무서운 뒤끝에 시달리느라
밤새 곤욕을 치렀다.

생각해보니, 내가 와인엔 좀 약하다. ^^;;
아니 모든 과실주엔 다 약한 것도 같다.
그저 촌스럽게 배부른 맥주가 제격이란 얘긴가.

너무 억울해서
집에다 와인 몇 병 사다두고 또 다시 훈련이라도 해야할 것 같다.
나도 와인체질이고 싶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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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

삶꾸러미 2006. 10. 26. 19:59
역시 생각과 현실은 늘 괴리감을 떨쳐버릴 수 없나보다.
지인과 차나 커피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담소도 즐겁지만
모름지기 가끔씩은 술을 사이에 두고 약간 느슨하게 풀어진 신경과 감정의 너그러움 속에
희희낙락 나누는 대화야말로 삶의 낙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막상 술자리를 갖고 보니, 숙취 때문에 타격이 만만치가 않다. ㅠ.ㅠ

간만에 술친구를 청한 후배를 만나러 어제 대학로에 나가면서 가슴이 약간 설렜다.
두달간 이스라엘과 터키, 이집트를 둘러보고 돌아왔다니
신비로운 여행담을 안주삼아 최소한 술자리가 2차까진 이어지겠구나 싶었던 거다.

삼겹살묵은지찜에 산사춘 한병을 비우다
그녀석은 술이 안 오른다며 소주를 한병 더 마셨는데
맨날 맥주만 들이키던 나는 산사춘 반병에도 좀 알딸딸했다.
수다에 수다가 이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우린 다시 조용한 바로 자리를 옮겼다.
몇년 전까지 대학로에 직장이 있었던 터라 근처 맛집멋집을 죄다 꿰뚫고 있다더니
역시나 후배가 이끄는 대로 처음 가본 그 술집은 다른 데와 달리 조용하기도 하려니와
높고 기다란 잔에 레몬 한조각을 '깔고' 담아주는 생맥주도 맛있었고
음악도 완전 옛날 노래만 틀어주는 바람에 진짜로 예전 학창시절이나 직딩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서 나는 더욱 유쾌해졌다.
그러느라 분위기에 약한 나는 당연히 과음을 피하지 못했고...


신데렐라 귀가시간에 맞춰 멀쩡히 집에 잘 돌아오긴 했는데
한밤중부터 오히려 취기가 마구 올라와 정신은 몽롱하고
그렇다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해 새벽녘에 계속 깨서 뒤척이며
처음으로 과음이 숙면에 방해가 된다는 게 맞는 말이란 걸 실감했다.

속이 메슥거릴 정도의 숙취도 아니건만
결국 난 다음날인 오늘 온종일 병든 닭마냥 비실비실
틈만 나면 피식 쓰러져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느라
일은 커녕 간간이 온 문자메시지도 다 씹고 헤매고야 말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제 좀 머리가 맑아진 듯 한데
오늘 하루 고스란히 '공친' 걸 생각하니 새삼 몹시 속이 쓰리다.

좋은 사람들이랑 즐거운 대화를 안주 삼아 마셔대는 술자리는 정말 좋은데
별로 많이 마시지도 않고 이리도 후유증에 시달려서야 어디 무서워서 또 술자리에 달려나가겠나... 그 옛날 이틀이 멀다하고 술자리를 즐겼던 나는 어디로 간 건가. ㅜ.ㅜ;;
그렇다고 나란 인간이 금주를 선언할 리는 절대 없다.
대신 그간 엄청 줄어든 알콜분해효소를 차근차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거나 찾아봐야겠다.

그래야 또 비오면 비온다고, 바람 불면 바람분다고, 계절 바뀌면 계절 바뀐다고
온갖 핑계를 대가며 여기저기 사람들 불러내는 걸 취미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까지 취미가 무어냐고 물으면 '음/주/가/무'라고 대답했던 게
부끄럽지 않게 슬슬 다시'수련' 좀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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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의 글엔가.. 해리님이 덧붙인 댓글에서 본 신데렐라 귀가시간 얘기에
문득 자극 받아 하소연이나 해볼까..

나이 40에 아직도 부모님이 정한 통근시간에 구애를 받는다고 하면
다들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부모는 말이야, 길들이기 나름이야. 니가 길을 잘못 들인 거지!"라고 나무라기 일쑤다.

하지만 비딱투덜이의 삶을 추구하는 내가 그런 길들이기 과정의 몸부림을 시도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시국이 하수상하여 걸핏하면 시위물결과 최루탄이 온 캠퍼스를 뒤덮던 시절에 들어간 대학 신입생 초창기 땐 심지어 '해지는 시간'이 통금이었다. ㅜ.ㅜ
여름엔 얼추 8시까지도 해가 길어지지만
겨울엔 5시반만 돼도 어둑어둑해지는데 그 시간 전에 집에 오라니!

엄마 몰래 나랑 단둘이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하고 (그럴 땐 당연히 통금 시간 해제!), 다 큰 딸이 다리 아프다 그러면 다리도 선뜻 주물러주시고, 집안 청소는 걸레질까지 온통 도맡아 하시는 등, 겉으로는 제법 자유진보주의자의 탈(!)을 쓰신 우리 아버지는 정치를 포함한 일부 분야에선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보수주의 가부장으로 돌변하시는데...

그게 가장 표면적으로 두드러진 것이 큰딸의 통금시간이었다.
물론 외박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 (대신 남의 집 딸들은 우리 집에 와서 외박을 해도 무방했다.)
통금시간을 어긴다고 해서 내가 물리적인 체벌을 받는다거나 감금을 당한다거나 하는 건 물론 아니었지만, 우리집안 사람들 특유의 '화나면 말 안하기'의 효과는 물리적인 체벌보다 그 파장이 훨씬 컸고, 당장 주급으로 받던 용돈을 달라는 말도 걸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나는 야금야금 반항을 시작함과 동시에
일단 대학 친구들을 아부지한테 데려가 얼굴을 익혀드림으로써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의 교직원이셨던 아부지는 학교에 시위라도 벌어지면, 혹시 당신 딸도 그 '뻘건' 물결에 휩쓸리지 않았는지 일부러 순시에 나섰으므로, 그걸 잘 알고 있는 나는 우연을 가장하여 수시로 친구들과 나의 '안전함'을 아부지한테 보여준 뒤, 뒤늦게 물결에 동참했다. 물론 뭐 주로 수업거부, 시험거부 뭐 이딴 이슈에 더 팔려서 ㅡ.ㅡ;;)  
하 수상한 바깥 세상에도 금지옥엽 고명딸을 믿고 맡겨도 좋을 이들이 있다는 걸 강조했다.
(다행히 우리 과엔 남들보다 늦게 입학해 나보다 6살이나 많은 언니가 동급생이었는데, 그 언니에 대한 울 아부지의 신뢰가 대단하여, 1학년 2학기 때는 단식투쟁 따위의 극단적인 반발 없이 엠티도 갈 수 있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통금시간은 점점 연장되어 나도 남들처럼 음주가무를 즐길 수도 있게 됐고
4학년 후반부터 이미 사회인이 된 뒤로는 까짓거 용돈 때문에 반항의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필요도 없어졌지만, 아무리 반항을 해도 자정으로 확정된 통금시간 자체를 없앨 순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게 된 뒤로는 '회식'이라는 아주 훌륭한 빌미가 있어 거나하게 술에 취해서도 당당하게 집에 들어갈 수 있었고, 화목한 조직생활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시는 아부지도 '회식'이라는 핑계 앞에선 딱히 트집을 잡아 금주를 명하거나 회사를 관두라거나 하진 않으셨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나는 남들이 얘기하는 "부모님 길들이기 체제"에 돌입해
어울리지도 않는 신데렐라 딱지를 떼어보겠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장에서 굳이 강요하지도 않는 회식자리의 2차, 3차 자리까지 죄다 쫓아다녔고
너무 늦어지겠다 싶으면 슬쩍 집에 전화를 넣어 도무지 자리를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 먼저 주무시라고 부탁을 했다.
물론 아부지는 마구 역정을 내시며 그냥 도망쳐오라고, 택시비 없으면 큰길에 나가 기다릴 터이니 당장 오라고 난리를 치셨지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새벽까지 버텼다.
(어린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당시엔 휴대폰 따위 없었다! ㅋㅋ 삐삐도 상당히 나중에야 생겼던 것으로 생각됨.. 헐... 이래서 측근들과 마구 세대차이 나주시고;;; )

그.러.나...
얼큰하게 취해 열쇠를 쩔그럭거리고 현관문을 들어선 순간 나는 자지러지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 입구에 떡 하니 서 있는 검은 그림자.
별로 크지도 않은 우리 아버지의 키가 그땐 장승만큼이나 커보였고, 얼핏 보면 저승사자 같기도 했다. ㅠ.ㅠ 물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싸늘하게 나를 노려보며, 현관에서 미처 신발도 벗지 못하고 망연자실 서 있는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울 아부지의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몇분간 그런 대치상황을 벌이고 있거나, 약간 혀 꼬인 소리로 내가 말이라도 붙일라 치면 아부지는 차갑게 "실망이다" 따위의 촌철살인으로  나를 넉다운 시켰다. ㅠ.ㅠ

새벽 3시건, 4시건 시간을 불문하고 자식이 귀가할 때까지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는 우리 아부지의 무서운 집념은 때론 큰길까지 뻗치기도 했고
살짝 취해 공연히 기분 좋아 흥얼거리며 생새벽에 택시에서 내린 내 앞에 문득 나타나는 우리 아버지의 모습은 취기를 순식간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왜 그렇게 딸을 못 믿느냐고 항변하면 (여러가지 면에서 나는 그간 믿음직한 큰딸이었고 그건 부모님 포함 친척들까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울 아부진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못 믿는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말을 반증하듯, 주기적으로 아녀자 피습사건이나 납치, 강간 따위의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젠장!

그렇게 통금시간을 둘러싼 부녀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던 와중에 결정적으로 나의 패배를 선언하게 된 계기는, 그간 심정적으로 무던히 딸을 지원해주던 우리 엄마의 와병이었다.
몇년에 한번씩 아주 잠깐씩만 찾아오던 엄마의 우울증은 언제부턴가
거의 해를 거르지 않았고, 우울증의 첫 증세는 무엇보다 불면이었는데
내 귀가시간이 좀 늦어질라치면, 예전엔 아부지가 제 아무리 안달을 하셔도 염려없이 먼저 주무시던 엄마까지 동참해 나란히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부모님을 못본 체 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렇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우리 엄마의 불면과 우울증이라는 효과적인, 참으로 서글픈 족쇄 때문에 나의 신데렐라 생활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가끔 반항기가 동하면 지금도 통금시간 12시를 살짝 넘기는 일탈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엄마 걱정에 내 마음 역시 조마조마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처럼 금기를 저지른다는 짜릿함이나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ㅡ.ㅡ;;

그리고 늙어가는 딸에 대한 귀가시간 제한을 여전히 고수하시는 이유가
정말로 딸에 대한 불신보다는 무서운 이 세상에 대한 불신이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가끔 음주 모임 때문에 귀가가 늦어지는 아부지를 기다리며, 시간이 많이 늦어지면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울 아부지가 술김에 잠들었다가 혹시 아리랑치기 따위를 당하시는 건 아닌지 별별 망측한 상상을 다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하니 말이다.

늘 투덜거리면서도 사실 부모님 품안에서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며 온간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인데, 혹시라도 능력을 키워 독립하는 그날이 오면 드디어 통금시간 따위 없어졌다고 통쾌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그땐 또 딱히 통금시간을 넘겨 곤드레만드레 음주를 즐기거나
시간 가는줄 모르고 밤새 정담을 이어갈 지인들이 곁에 없어서 일찍일찍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면 요즘엔 정말 술친구 청하는 이들이 줄었다.
술 안마시는 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얘긴데...
쓸데없이 감정이 넘쳐나고 마음의 빗장이 스스르 풀리긴 하지만, 나는 알콜의 힘을 빌어서라도 가끔 관대해지고 온 세상이 잠깐이나마 근사해보이고 술자리 건너편에 앉은 이가 몹시 예뻐 보이는 순간을 참 좋아하는 인간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대단한 술꾼 같군.. 예전엔 정말로 제법 대단한 술꾼이었는데.. 이젠 맥주 한두 병에 알딸딸해지고 만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ㅜ.ㅡ;;

하여간 이젠 나도 익숙해져버린 신데렐라 귀가시간...
굳은살처럼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도 잘 안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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