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일기삼아 매일 뭔가를 끼적이면 좋겠지만, 도무지 그런 부지런함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고 2014년을 맞아 매달 집계용 월기(? 블루고비 따라하냐? ㅋㅋ)를 남겨볼 생각이다. 그러면 민망해서라도 독서량이 좀 늘까, 아닐까. ;-p
1월엔 달랑 책 1권을 읽고 영화 4편과 전시회 둘을 보았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반권이라고 해야하나 ㅠ.ㅠ)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
변호인(2013)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종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중남미 소설 읽기의 일환으로 오래 전에 장만해놓고 계속 겉표지만 구경하다 드디어 시작했다.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가 동기로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ㅠ.ㅠ 고사 직전이라는 출판계에서 요새 그나마 움직이는 건 드라마에 인용된 책이라고 넋두리들을 한다는데, 아무 맥락없이 드라마에 PPL로 등장하는 책들은 모르겠고 확실히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책들은 효과가 큰가 보다. 어쩐지 끼워팔기나 묻어가기로만 살아가야 하는 책의 신세가 서글프지만 그래도 아예 주목 못받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쨌든 난 이번에 산 게 아니고 사둔지 몇년 된 책이라규~
조지 클루니의 영화라 다운 받아놓은지 오래 된 <인 디 에어> 빼놓고는 다 영화관에서 봤다. <그래비티>에서 아주 잠깐 나오고도 존재감이 컸던 조지 클루니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 (한때 온라인에서 '마이클루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적도 있을 만큼 ER 시리즈 속 클루니의 팬이었다 내가 ㅋㅋ) 벼르기만 했던 <인 디 에어>를 봤고, 조금 울었다.
그러고 보니 네 편의 영화 모두 한줄 감상을 쓰자면 어느 순간 조금씩 울었다는 이야기일 듯.
주변에서도 혹평과 호평이 나뉘었던 <변호인>과 <어바웃 타임>은 그 이유와 한계가 뭔지 알겠지만 대체로 뭐 괜찮았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1월 최고의 영화로 선정. 우와... 감탄했고, 집에 돌아와 나도 여행 상품을 한참 뒤졌다. ^^;
박수근 전시는 방금 포스팅했으니 됐고...
2월 23일까지 경복궁 옆 민속박물관(무료!)에서 하는 <종가>는 제사와 손님맞이를 전통적으로 이어온 종가집의 의미와 자취에 대해서 실제 여러 종가의 유물까지 아기자기하게 마련해놓은 전시였다. (어느 종가에서 종부에게 대대로 내려졌다는 '악어가죽 핸드백'도 있다. ㅋㅋ) 무료라서 유치원생들과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바글바글한다는 것만 빼면 꽤 볼만하고 일부 구간에는 신기한 신문물(일정한 지점을 밟으면 탁한 유리가 촥~ 투명하게 변하며 사당의 제사상과 제주가 나타난다든지;;)을 전시에 응용한 것도 좋았다.
그밖에 상설전시관도 함께 둘러보았는데 민속악기 전시실 앞엔 전화 수화기 모양으로 생긴 걸 귀에 대면 악기 소리가 들린다더니만 주로 지지직~ 소음만 들리거나 고장! 애들 등쌀에 쉬 고장나는 건 이해하겠지만 음질에 더 신경 좀 쓰시지... 쯧쯧...
이렇게 적고 보니 꽤나 바지런을 떨며 보낸 것 같지만 사실 1월은 내내 아직 새해가 밝지 않았어, 설날이 남았잖아.. 그러면서 미적거렸다. 이젠 정말 빼도박도 못하는 새해임을 감안하여 2월부턴 좀 더 나사를 조일 것.
동시대 화가이다보니 탄생 연도가 한해 차이였고 당연히100주년 기념전도 나란히 붙어 열렸다. 덕수궁에서 하고 있는 근현대회화 100선에도 박수근 그림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지만, 위작 논란에도 휩쓸렸고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빨래터>를 비롯해서 내가 제일 탐내는 <아기 업은 소녀> 그림까지 모조리 한꺼번에 구경할 기회를 그냥 넘길 순 없지. 스케치 포함 작품 수가 120점이나 된대고, 그 중 유화만도 90여점이라 몇년전 45주기 회고전 때보다 훨씬 대규모다.
3월 16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하고, 입장료는 만원. 월요일은 당연히 휴관인줄 알았는데 전시기간 중 무휴라고 하고, 매주 수요일엔 오후 9시까지 관람가능하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수요일엔 늦게까지 열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엔 무려 '무료' 입장이라던데!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지만 한번 노려볼만 하다고 생각;;)
가나아트센터 4층까지 전시실 네 군데를 빼곡하게 채운 박수근의 그림들은 기대대로 정겨웠고, '예쁜' 그림을 탐닉하는 나는 특히 아직 화강암의 질감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고 색채감이 살아있는 초창기의 아련한 그림들이 좋았다. 그 유명한 <빨래터>도 파스텔 톤 저고리 색깔이 예쁜 그림과 무채색 느낌만으로 처리한 작품이 2개더군.
박수근이 같은 주제로 워낙 많은 그림을 그려서 똑같은 제목이 많았다. 박수근 그림 싫어하는 한국사람은 없을 거라고들 하는데, 그 이유는 조부모나 부모의 옛 추억을 공유한 세대에 공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장 좌판에 바구니를 놓고 앉은 여인들이나 광주리를 이고 나무 아래를 걷는 모습은 어쩐지 딱 우리 할머니의 모습처럼 느껴지고, 상고머리를 한 아기 업은 소녀도 10살 차이 나는 막내 이모 업고 골목길에서 서성대는 울 엄마의 옛모습과 겹쳐지니 말이다.
[노상] 1957년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까지 여전히 쪽머리를 하고 있던 친할머니도 부산 피난시절에 아마 이 그림과 비슷한 모습으로 생선행상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아버지가 평생 등푸른 생선과 멸치 비롯해 비린 생선을 못먹게 된 것도 어쩌면 졸지에 생선장수를 나선 어머니를 마중다니며 비롯된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비린내가 죽도록 싫어서 엄마의 생선광주리를 받아들면 입으로 숨을 쉬면서도, 깜깜한 길 홀로 돌아올 어머니를 매일이다시피 마중나갔다는 열두살 장남의 기특함을 할머니는 평생 나한테 자랑하셨었다.
ㅎㅎ 그건 그렇고 박수근이 주로 그린 노점상은 과일 행상과 소금장수인듯. 아무렴... 생선장수 아줌마는 저렇게 새하얀 치마를 입고 시장에 나갈 수가 없단 말이지! 울 할머니는 몸빼바지에 거무티티한 나이롱(!) 치마를 덧입었다는 것 같다. 어쩌면 <고목과 행인>에 나오는 이런 모습? ㅋ
[고목과 행인] 1960년대
김환기 100주년전에서도 브로셔가 없어서 심술을 부렸었는데, 박수근 100주년전에도 브로셔는 없었다. 무료 브로셔는 관람객들이 휙휙 가져다가 보고 금세 버리기 때문에 안만드는 게 갤러리들의 추세인가? 쳇...
어쨌거나 브로셔 고이 모셔와서 한참동안(어쩔 땐 1년 내내) 벽에 붙여두거나 세워놓고 감상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찌나 서럽고 짜증나는지 원. 3만원씩하는 기념 화집을 대신 사라고 강권하는 것 같아서 계속 툴툴거렸다. 12장짜리 기념 엽서도 낱장으론 안팔아서 선뜻 사기 부담스러운 것도 불만. 몇 개만 골라서 살 수 있게 하면 좀 좋은가! 흥!
게다가 작품 설명에 죄다 작품 제목과 연도만 기록되어 있고 그림 재료에 대해선 설명이 없어, 아니 뭐 이렇게 불친절한 전시가 다 있나 구시렁거리다가 끝내 안내원에게 묻고 말았다. 왜 유화인지, 목탄인지 그런 설명은 안 적혀 있나요?
그랬더니만, 어차피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캔버스에 유화 아니면 종이에 연필 아니면 목탄인데, 워낙 오래된 그림들이라 작품별로 재료를 확실하게 기록해둔 것도 없어서 부러 적지 않았단다. 아... 박수근도 김환기 못지않게 아내와 금슬이 좋긴 했지만, 김환기의 아내 변동림(김향안)처럼 아내가 철저한 매니저 역할까지 한 건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박완서의 소설에도 등장하듯, 박수근은 생활고로 미군PX에서 초상화가로 돈을 벌었고 당연히 화구 구입에 들일 돈이 많지 않았으니 작품 사이즈도 그리 크지 않다. 딱 엽서만한 1호짜리 캔버스에 그린 그림도 여럿 본 것 같다.
[아기 업은 소녀] 캔버스에 유채, 1953년, 28x13cm
어쨌거나 이번 전시를 보면서도 작품을 딱 하나 가져갈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그림을 선택할지 쓸데없이 계속해서 고민을 했는데, "당연히 <빨래터>를 가져야지!"라고 하던 일행과 달리 나는 크기도 아담하고 정겨운 <아기 업은 소녀>로 정했다. ^^; 역시나 똑같은 제목으로 여럿이나 되는 작품 중에서 내가 좋아라 하는 <아기 업은 소녀>는 바로 이것.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전시장 밖 포토존에도 저 소녀가 (조악하나마;;) 제작되어 있었다. ㅎㅎㅎ 작품 사진은 못찍게 하니 아쉬운 대로 다른 층 포토존에 마련된 화가와 작품 형상도 찍어왔음.
화가 뒤편 벽에 걸린 그림은 [나무와 두 여인]이다
꽤 많은 작품 이외에도 그림을 팔고 사느라 주고받은 편지며 관련 기사 스크랩, 직접 그린 연하장도 전시장 한쪽 구석에서 소소하게나마 구경할 수 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박수근 본인 입으로도 자기 작품은 소재와 정서로 보나, 화강암의 질감으로 보나 서양화가 아니라 한국화라고 했단던데(정확한 말인지 벌써 가물가물, 암튼 뭐 이 비슷한 맥락이다;; ㅎㅎ) 그 말이 딱 맞다. 고향인 양구에 박수근 미술관이 있다니, 진품이 늘 상설 전시되고 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또 박수근의 그림이 그리워지면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고 느꼈다. 전시장 곳곳에 박수근을 회고하는 박완서의 글귀가 있기도 했지만, 박수근과의 일화를 소설로 엮은 <나목>도 한번 더 읽어봐야 하려나...
Best 포스팅을 빌미로 한해정리를 한하고 넘어가면 새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기분은 정말... *.*
괜스레 일감 진도 잘 안나가는 것 같다. 얼른 마무리하고 열심히 일해야지!
2013 최고의 책 3
읽고 난 직후엔 어찌나 별점 평을 후하게 주는지, 별 넷짜리중에서도 세 권 고르느라 좀 힘들었다. ㅋㅋ 주로 상반기에 읽은 책들이 많아놔서 기억이 가물가물...
<감응의 건축> 너도나도 큰돈 들여 흉측하고 에너지 낭비하는 괴상한 건물 짓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요즘이라 지은이의 건축관과 무주 프로젝트가 더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등나무 꽃이 한창 피어 꽃그늘을 드리울 때 나도 무주 공설운동장에 한번 가보고 싶다. 게으름 부리다가 과천에서 열렸던 정기용 아카이브 전을 못본 것이 천추의 한. ㅠ.ㅠ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래 전 다시 공부를 시작하며 혼자 속으로만 논문 주제로 생각했던 작가였는데 ㅋㅋㅋ 정말 완벽한 꿈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선 현대소설을 잘 읽히지도 않고, 특히 캐나다 작가는 다루지도 않는 걸 몰랐지 뭔가. 암튼 원서로 읽다가 어딘가 던져둔 책의 번역본이 나왔길래 얼른 꿍쳐놓았다가 읽었다. 잠자기 전에 읽으려다 날을 하얗게 새우곤 할 정도로 탐독했던 건 생각나는데 벌써 그 감흥은 다 지워지고 이거 원....
1843년에 벌어졌던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미스터리 소설이다. 1권은 정말 홀딱 빠져들어 읽었는데 다 읽고도 진실은 저 너머에 ㅋㅋㅋ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순전히 나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준 독서의 의미로 막판에 선택됐다. 연말은 다가오고 밀린 일에 치여 잠을 자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글자는 쳐다보기도 싫던 나날이 있었으나, 이 책 덕분에 좀 킬킬대며 그런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2013 최고의 영화 3
<레미제라블> 다들 2012년 연말에 보고 베스트로 꼽기도 했던 영화를 난 느즈막히 1월에 본 덕분에 2013 베스트에 넣을 수 있었으니 퍽 다행이다. 러셀 크로의 노래는 좀 안습이었지만 앤 해서웨이의 연기와 애절한 노래가 그의 삐끗함을 다 덮었다.
<마지막 4중주> 결국 한번 더 보러 가진 못했지만 먹먹한 감동의 여운은 잊히지 않았다. 말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영화.
<그래비티> 누군가는 산드라 블록의 허벅지에 관한 영화라고 우스개소리를 하던데, 그 말도 맞다. 역시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스토리랄 것도 없지만 온몸이 뻐근한 감동이 있었다. 대단한 영화라고 느꼈음.
그밖에 본 영화들: 베를린 / 라이프 오프 파이 / 7번방의 선물 / 파파로티 / 위대한 개츠비 / 비포 미드나잇 / 감시자들 / 알마냐 / 500일간의 썸머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내 아내의 모든 것 / 아티스트 / 그래비티
앞의 두 전시에 대해선 꼼꼼히 포스팅도 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김환기 탄생 100주년 전은 기대보다 더 좋았다. 꽁꽁 얼어붙은 혹한의 부암동 미술관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한가하게 찬찬히 그림과 건물을 다 감상할 수 있었다. 환기미술관은 건축물로도 유명해서 실내에선 그림은 물론이고 창문 하나도 사진을 못찍게 한다. ㅎ
겉에선 뭐가 그리 잘 지은 건물인가 잘 모르겠다 싶지만 전시실을 돌아다녀보면 미술관으로 딱 맞게 참 공간을 잘 만들어냈다 싶고 부암동의 언덕배기에 잘 어울리게 들어앉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크고 작은 김환기의 작품을 실컷 둘러보며, 그림 하나 가져가라면 뭘 가져갈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가 아트숍 2층에 있는 유품과 기념사진들까지 다 보고난 뒤 건물 외관을 한 바퀴 돌고는 엄청 뿌듯했다. 손가락이 곱아 사진은 죄다 흔들리고 그날의 감흥이 살지 않았지만.... 서울도성 성벽을 본떠 두른 담벼락에 매달린 담쟁이도 김환기의 작품 같았다.
왼쪽 사진 문 안쪽의 우물 같은 모양은 1층 중앙전시실에선가 올려다보이는 천창이고, 그 위로 솟은 두 개의 아치가 3층 지붕인데... ㅋ 사진 참 못찍었다. 우주를 담은 김환기의 점화 못지 않은 자연의 작품이라고 감탄했던 담쟁이는 확실히 실물이 훨씬 멋지다. 2013년 연말까지 전시로 알고 있었는데, 1월 26일까지 연장했다는 듯하다. 그치만... 입장료 만원이나 받으면서 100주년 기념 브로셔도 없는 건 좀 불만.
2월에 몰아서 본 프라하, 풍속화, 팀버튼 전은 역시나 몰아서 후기를 올렸으니 언급 생략하겠고, 정선 화첩과 헝가리 왕실 보물전은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걸, 안내 없는 시간에 후딱 둘러보고는 포스팅도 못했다. 겸재 정선화첩이 외국에 팔렸다가 한국에 되돌아오게 된 사연을 담은 방송을 얼핏 본 것 같다. 아주 작은 화첩이라 애개개 싶었지만 <금강내산전도>는 복제본으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1주일에 한번씩 화첩 그림을 달리 펴놓는다니
금강내산전도, 겸재정선화첩
틈날 때 한번 더 들여다봐야지 싶다.
헝가리 왕실 보물전은 뭐 크게 감탄할 건 없지만 옛날 유럽 복식이나 식기류를 참고하기엔 좋음. 어차피 고궁박물관엘 갈 거라면 상설전시를 보는 쪽이 더 알차다. 궁궐에 있던 진짜 보물들은 죄다 고궁박물관으로 옮겨놓았기 때문. ^^; 주문제작품이라 롤스로이스 사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순종의 어차 두 대는 언제 봐도 참 새끈하다. 그 모든 볼 거리가 다 무료라는 점!
최고고 자시고 공연이랍시고 딱 이 셋을 봤다. ㅠ.ㅠ 그나마 대비마마가 연말에 스스로 예매해 놓고 강권한 호두까기 인형 아니었으면 셋을 꼽을 수도 없었겠다. thanks to mom. ㅋㅋ 이원국 발레단은 지역 문화회관에서 해마다 공연을 하는 모양인데 나로선 첫 경험이었지만 가격대비 완전 훌륭했다.(단돈 만오천원) 전막 공연도 아니고 공연장이 구청 문화회관이다보니 무대의 제약도 많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TV에서나 보던 이원국 단장의 나이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내심 젊은 사람들한테 주인공 안맡기고 왜 본인이 주연을 하나 의아했더니 도약이며 회전이며 젊은 발레리노 못지 않더군! 정말 놀랐다. 그리고 겨우 중3이라는 여주인공도 완전 예쁘고 실력도 뛰어나고... *_*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가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 만끽하며 흐뭇했다.
2013 최고의 발견 3
1. 붙이는 핫팩 ^^
친구가 하나 써보라고 주어서 알게 된 붙이는 핫팩. 주머니에 넣는 작은 핫팩은 궁궐답사할 때도 몇번 써봤지만 효과가 몇시간 못가는데 반해, 파스처럼 붙이는 스티커형은 옷 위에 붙여놓으면 6, 7시간은 족히 뜨끈뜨끈하다. 12시간짜리도 파는 듯. 대비마마가 체기가 있다던 날 내복 위에 두개를 떡 붙여드렸더니 찜질팩 못지않은 효력을 발휘했고,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렸을 때 아랫배에 붙여놓으면 뜨뜻하니 아주 좋다. 10개들이로 사놓았는데 담엔 아주 박스째로 사댈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도 코스코에 가서 박스째로 사다놓고 쓰는 집이 꽤 되는 것 같다. 난방 부실한 학교에 맵시 때문에 절대 외투 안입고 교복만 입고 등교하는 딸들에게 억지로 붙여준다나 ㅋㅋㅋ
2. 서촌 골목길
경복궁 서쪽의 서촌이 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뭐 또 삼청동 꼴 나겠지 하고만 생각하다가 직접 가보니 삼청동이나 북촌과는 또 다른 자연미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선의 그림으로 남아있는 수성동 계곡도 볼만했고... 대표로 서촌 골목길을 적긴 했지만 성곽 둘레길 주변에 아직 꽤 볼만한 정겨운 골목들이 남아있는 것 같아 더 찾아볼 생각이다.
스페인에서 찍어왔다고 뻥칠 수도 있을 듯한 서촌 골목의 어느 건물 ^^; 가우디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도 확인가능한 수성동 계곡의 돌다리
3. 동네 산책로
서울 반대편에 사는 후배가 아 글쎄 '안산'으로 가벼운 등산겸 나들이를 온다는 말에 엥? 했다. 동네 산책로를 정비했다는 얘기는 벌써부터 들었고 대비마마의 실버합창단이 봄엔가 동네 뒷산 쉼터에서 공연도 한다고 들었지만 나몰라라 했었는데 퍽 아기자기하게 가꿔놓아 다른 동네에서도 원정 올 정도란 얘기였다. 그제야 나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동했으니 참... 못말린다 ㅎㅎ 암튼 동네마다 지자체에서 공원정비는 참 잘하는 것 같다. 겉보기 생색만큼 생태보존도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해발 500미터도 안되는 뒷산 정상을 나도 언젠가는 올라갈 날 있겠지. 아래 사진은 모두 안산 오르는 산책로 초입이다. ㅋ
2013 최고의 드라마, 음반, TV 부문은 뽑지 못하겠다. 진득하니 애정을 품고 본 드라마가 거의 없다. 노희경 드라마도 실망스러웠고, <나인>이 괜찮다는데 한꺼번에 봐야지 그러고선 결국 못봤으며, <응답하라 1994>도 난 별로여서 보다말다 했다. 스팅이 10년만에 낸 앨범은 여러 장 사서 사방에 막 선물도 했지만 너무 뮤지컬 ost같아서 무조건 칭송하기 좀 뭣하고.... 애들 재롱 보는 맛에 보던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놓치는 때가 더 많고, 심지어 꼭 챙겨보던 <개그콘서트>도 깜박잊고 안보는 날이 많았다. 2013년엔 테순이 노릇을 좀 덜하고 살았던 듯...
p.s. 벨로의 댓글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보영과 이종석 나왔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꽤나 열심히 그리고 즐거이 챙겨보았다. 그러나 결국 못보고 지나친 1, 2회는 다시 찾아보지 못한 탓에 '완벽하게' 본 게 아니라고 생각했나보다. 특히나 주인공 이름 '장혜성'은 무려 우리 친할머니 이름과 똑같아서 엄청 반색도 했었는데... 이런 정신머리 하고는... 친구들의 할머니 성함이 최간난, 박점례... 같은 이름인데 반해 우리 할머니 이름은 내 이름보다도 세련된 느낌이라 어려서도 괜한 자부심을 품었던 것 같은데 그 이름을 요즘 드라마에서 딱 만나다니 이제껏 별로 연기 잘하는 줄 모르겠다 생각했던 이보영이 다시 보일만도 했는데, 암튼 여리여리한 느낌의 남녀 주인공 연기와 호흡이 엄청 좋았고, 조연들도 하나같이 제 몫을 다 했고 짜임새며 이야기며 다 훌륭했다. 특히 민준국으로 나온 정웅인 섬뜩하고 무서워서 죽는 줄...
2013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영부영하다 다 지났네
2012년에 이어 우겨댔던 안식년 타령은 어영부영 가난이 무서워서 6개월을 채 채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게다가 2주에 한번씩 꼬박 하루를 떼어 낯선 일을 시도하는 건 한편으로 삶의 자극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 의미를 잘 모르겠어서 잘하는 짓인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어쨌든 궁궐의 4계절 변화를 코앞에서 보는 건 즐거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겨울 내내 이상하게 궁궐 가는 날만 유독 한파가 몰아치는 이유는 뭘까? ㅋㅋ
암튼 궁궐공부나 하면서 탱자탱자 한가롭게 보내던 봄이 가고 여름부턴 꽤나 치열하게 다시 일에 매진했다. 돈벌이를 안하고 사는 삶은 어차피 내게 주어진 길이 아니니 어쩌겠나. 마감에 쫓기며 사는 인생을 탈피할 순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 좀 성장을 하긴 한건가. ㅎㅎ
2014년 계획
1. 여전히 마감일정에 매여 살아가겠지만 그 사이 틈틈이 긴 여행을 반드시 갈 수 있기를... 계획에 앞선 결심부터 오래 걸리는 인간인지라 여차하면 패키지 여행이라도 따라갈 참이다. 불끈!
2. 운동을 좀 하긴 해야겠다. 연말에 한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또 고혈압과 빈혈 판정. ㅠ.ㅠ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인 것으로 보아 혈압은 그냥 그 전날 불면 때문인 것으로 여기고 싶지만 아무래도 부모님의 유전자가 있는데다 150을 넘긴 건 좀 심했다. 요즘 집에서 재본 혈압도 계속 정상범위보단 좀 높으니 일주일에 세번은 좀 나가서 걷기로. ㅠ.ㅠ 방구석족을 탈피하는 것이 관건이다. 일단 오늘은 실천했음. 한집에 두 여자가 살며 똑같은 음식을 먹는데, 한 사람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늘 정상이거늘 왜 나는 빈혈일까? 연말엔 특히 고기도 많이 먹으러 다녔고 평소 커피도 많이 안마시는데 왜?! 역시나 아는 게 병. ㅋㅋ
한국근대미술은 덕수궁관에서 하도 여러번 전시해줘서 이제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지만... ^^; 그래도 또 보러가자는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근현대회화 100선엔 또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전이니 뭔가 이어서 봐주어야할 것도 같았다. 역시나 낯익은 작품들이 많아서, 오지호나 장욱진처럼 내가 애정하는 화가들 그림은 또 유심히 신나게 들여다보았지만, 대개는 설렁설렁 둘러보았다. 일요일이라서 사람들이 워낙 많아 쾌적한 관람환경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100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확실히 유명한 작품을 알현할 수 있었다. 이중섭의 <황소>라든지, 박수근의 <빨래터> 같은 작품 말이다. 박수근이나 이중섭 그림은 꽤 열심히 본 것 같은데도 아래 딱 한장 찍어온 미술관 사진에서 왼쪽 현수막 그림을 본 기억이 없다. ㅠ.ㅠ 자주 볼 수 없었던 박수근의 <골목 안> 그림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아우 젠장. 현수막 오른쪽 그림은 김기창의 <아악의 리듬>이다.
이응노의 <향원정> 그림이 좋아서 그림파일을 검색했더니만 김기창 그림과 같이 뜨네.
이응노 [향원정] 1959년, 김기창 [아악의 리듬] 1967년
그밖에 또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최영림의 <경사날>. 어째 옛날 연하장에서 많이 본 그림인 것도 같지만 아기자기한 귀여운 느낌이 좋았다.
최영림 [경사날] 1975년
천경자의 <길례언니> 그림도 반가웠고, 변관식의 산수화도 새삼 느낌이 좋았다. 김환기 작품은 조만간 환기미술관에 100주년 기념전(올해 말까지한다!)을 보러 갈 거라 상대적으로 좀 소홀하게 봤는데, 꽤 크고 유명한 작품들이 너댓개나 전시되어 있었다.
2014년 3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이고, 입장료는 6천원(덕수궁 입장료 포함). 박수근과 이인성, 이중섭 작품은 일부가 1월말이나 2월초까지만 전시되고 교체된단다. 그러니 시간이 좀 넉넉히 남긴 했어도 내년 1월 중으론 가봐야 제대로 100선 작품을 다 볼 수 있을 듯. 현대미술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근대작품이 많고, 김환기의 추상화 같은 건 나도 좀 좋아하는 편이라 현대미술이 늘 어렵고 벅차다는 느낌이 덜했다. ^^; 아직 이름 모르는 화가들도 많은 데다, 초중고 미술교과서에 들어있는 작품들을 몽땅 실물로 본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서, 한번 더 볼까 말까... 그러는 중. ㅋㅋ
공사중 불이 나질 않나, 종친부 담장 문제로 전주이씨와 싸워대질 않나, 계속 말도 많고 탓도 많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드디어 개관을 했다. 11월 개관 직후엔 사람들이 엄청 몰렸대고 인터넷 예약이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해서 (내가 바쁘기도 했고) 12월 들어 별렀다가 가봤다. 경복궁 옆 길가에서 보면 옛날 학교 건물 같기도 하고 오래 된 창고 건물 같기도 해서 볼품없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는데(있던 건물 그대로 쓰려니 어쩔 수 없었겠으나;;;) 안에 들어가보고선 일단 건물이 맘에 들었다. 사방으로 툭툭 트여 시선 가리는 거 없고, 지하층인데도 통창이 있어서 환하고, 유리창 밖으로 너른 마당 보이는 거 좋아! (그런 의미에서 종친부 담장은 원래 계획대로 안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의견. 그러나 뭐 일부만이라도 세우기로 했다지 아마?)
건물이나 공간은 그런대로 흡족했던 반면 특별 기획전시는 한 마디로 기대에 좀 못미쳤다. -_-;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물론 가장 기대가 컸던 서도호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은 좋았고, 그래서 통합관람권 7천원이 하나도 안아깝다고 여겼지만, 개막 특별전이면 앞으로도 계속 상설전시할 작품들도 엄청 유명한 대작들을 좀 턱턱 가져다 놨어야하는 게 아닐까나? 전시실이 꽤 많다고는 하지만 1층과 지하 전시실 돌다보니 다리만 아프고 금세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2층엔 굳이 미술관 공사과정 장면들과 공사소음까지 재현해놓은 공간을 마련해놓았던데, 발상 자체는 기발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 같은 사람은 싫다규~ ㅋㅋ
특별전시를 다 포함한 통합관람권은 7천원. 각각의 전시를 3천원, 5천원으로 볼 수도 있게 해놓아, 전시실 입구마다 표를 보여달라고 하는 게 좀 성가셨다. 가방과 소지품은 디지털도어락 달린 무료 사물함에 넣어두고 다녀서 홀가분했지만, 핸드폰이랑 티켓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일행 하나는 전시장 바닥에 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통합권은 팔찌 같은 걸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직원에게 툴툴거렸더니 그렇게 건의 해달라고... 티켓 떨어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한가보다.
1층에 아마도 제일 큰 제1전시실이 있고 거기에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이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도마뱀 조형물이 인상적이었고, 미래의 로봇이었던가... 새하얀 여체의 기계식 몸매가 멋졌던 이불 작가의 조각도 좋았다. 전시실 맨 안쪽 구석에 노숙자(?)를 형상화해놓은 작품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귀찮아서 이날은 도슨트 설명을 안듣고 그냥 내키는 대로 돌아다닌 탓도 있지만, 대체 뭐가 <시대정신>이라는 건지 주제가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이며 숭례문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그렇고, 뭔가 중구난방이란 느낌... 이 시대가 워낙 개판이란 의미인가? ㅋㅋ
설치미술 말고는 죄다 작품 사진을 못찍게 해서 별로 사진도 없다. 남들은 몰래몰래 다 찍는다면서 일행 하나도 어느틈에 몇 개 찍어오긴 했던데, 뭐 굳이 찍지 말라는데 싫은 소리 들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도촬까지 할 마음이 드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p 뭐니뭐니 해도 내가 기대했던 서도호 작품은 맘껏 사진 찍어도 되는 거니까 ㅎㅎㅎ
작품 내부에서 찍은 사진
작품 전체 외형은 위층에서 내려다보아야 다 보임
서도호의 작품은 지하1층 중앙에 '서울 박스'라고 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리움 미술관 전시 때도 본 적 있는 미국 유학시절의 3층짜리 서양집 안에 다시 성북동의 한옥집이 들어앉아 있는 모양새다. 둘 다 실물 크기라는 것 같다. 제목이 왜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이냐면, '한옥을 품은 양옥, 양옥을 품은 서울 박스, 서울박스를 품은 서울관, 서울관을 품은 서울'까지 공간이 확장되는 개념을 담은 거라서 그렇다고... 상설전시가 아니라서 5월 11일까지만 볼 수 있단다. 끝나기 전에 한번 더 가서 봐줘야지, 라고 마음 먹었다.
서도호의 작품을 한바퀴 돌아나오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청아한 가곡이 들려왔다. 어머나, 여긴 전시장에 음악도 트나보다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고 <리밍웨이>라고 하는 대만 작가의 <소닉 블로섬>이라는 작품이었다. 병환 중인 어머니에게 슈베르트의 가곡을 틀어드리면서 느꼈던 교감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관객들과도 느낌을 교류하려했다는 것 같다.
리밍웨이, 소닉 블로섬, 가운데 서 있는 분이 성악가
전시장 통로 같은 곳에 의자 하나와 나무 틀 같은 게 덩그라니 놓여있는데, 시간대 별로 진한자주색 가운을 입은 성악가가 나타나 직접 선택한 관객 한 사람을 의자에 앉히고 혼자만을 위한 노래를 들려준다. 남녀 성악가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듯...
슈베르트의 가곡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이날 처음 알았다. 뭔가 괜히 울컥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작가의 어머니가 아팠을 때 들려드렸다는 글귀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닌듯...),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스피커로 흘러나온 아리아를 들은 죄수들이 잠시 느꼈을 자유의 희열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암튼 천장 높은 전시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저 성악가의 목소리가(앳된 얼굴로 보아 어쩐지 성악전공 학생 같다고 짐작했음) 참으로 좋아서, 다른 전시 보다가 노래소리 들리면 다시 달려가 옆에 서서 구경하곤 했다. 그치만 만약에 성악가가 나를 콕 집어 저 의자에 앉히겠다고 하면, 아마 난 얼굴 뜨겁고 민망해서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제대로 음악을 감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
암튼... 서울대 동문회 하냐는 뒷말을 들었다는 1, 2관 전시에서 시큰둥하고 애걔걔 싶었던 마음이 서도호 작품과 슈베르트 가곡 작품 딱 두 개로 무마되는 기분이었다.
리밍웨이는 이 <소닉 블로섬>(굳이 번역하자면, 소리 꽃, 음향 꽃라는 뜻인데, 또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도 있고 하니 번역해서 제목을 달아주지 그랬나 싶었다. '블로섬' 정도는 누구나 아는 영어인가? -_-;;) 보다도 <움직이는 정원>이란 작품으로 더 언론이나 블로그계의 조명을 받은 것 같다. 별것도 없는 길다랗고 시커먼 콘크리트 틈새 같은 데 진짜 꽃을 꽂아놓고 관객들이 집어가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요는 그렇게 집어간 꽃을 본인이 갖는 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주면서 또 다시 교류와 소통을 하라는 거란다. 그런 경험을 sns 같은데다 남기는 게 조건이라던가.. (작품 설명 자세히 안 봤음 ㅋㅋ)
암튼 수시로 수백 송이씩 꽃을 꽃아놓아도 워낙 관객들이 많으니, 꽃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러 봤어도 작품에 꽃이 꽂혀있는 장면은 한번도 보질 못했는데 부지런한 일행이 어느 틈엔가 한 송이 뽑아와 내게 바쳤다. ^^; 낯선 사람 아니면 뭐 어때.. 이러면서. ㅋㅋ
사실 남들 들고 다닐 땐 거베라 조화인가보다 했는데, 실제로 받고 보니 철사로 줄기를 튼튼하게 버텨놓은 생화였다. 줄기가 엄청 길어서 오래 들고다녔더니 자꾸 부러져 줄기는 점점 짧아지고, 부러진 줄기는 버릴 데도 없어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자니.... 어느 순간 꽃이 짐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사진을 기념으로 남기고는 주변 인물을 물색하다, 어쩐지 예뻐보이는 커플을 골라 아가씨한테 불쑥 건네주었다. 엄청 좋아하며 고맙다는 아가씨에게, 속으로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뭐 작가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교류가 아니겠냐며 돌아섰다.
고대 화석 같기도 하고, 심해 생물체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최우람 작가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
중앙홀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저 갈비뼈 같은 돌기들이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며 그림자도 달라져서 신기해하며 한참을 구경했다. 첨단 과학기계문명과 고고학적인 상상력의 만남이라나 뭐라나.. 그랬던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래도 내년 11월까지 전시 예정.
'타시타 딘'이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제목도 안 적어와서 까먹어 모르겠다. 7명의 큐레이터가 7명의 작가를 선정했다던가 하던 <연결-전개> 전시 중 하나였는데, 깜깜한 전시실 저 끝에서 영상물이 계속 돌아가고 바닥에 길쭉한 방석 같은 걸 놓아 앉아 쉴 수 있게 해놓은 게 좋아서 꽤 오래 다리를 쉬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 발도 같이 찍었음. ㅋㅋ
그밖에 <알레프 프로젝트>라고 해서 도무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신개념이론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었는데 전기고문이 바로 이런 거겠구나 싶게 계속 스파크가 터지는 깜깜한 방도 있고(나는 그 안에서 5분도 못 버티겠다 싶어서 그 전시실 담당 직원이 불쌍할 정도였다), 이상한 액체를 담아 특수섬유로 만들어 사람이 다가가면 촉수처럼 막 움직이는 거대한 샹들리에 같은 작품도 있었다.
새빨간 고딕체 글씨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듯한 장영혜중공업 프로젝트도 나로선 난해했고....
어우.. 난 역시 현대미술은 어려워서 잘 못보겠어, 라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
암튼 그래서 빙글빙글 전시실을 한바퀴 다 돌고 나선 체력 완전 방전. 씩씩한 일행들이 더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자꾸만 앉아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전시장 안에 벤치를 마련해놓은 곳도 있는 건 반가웠지만, 서울박스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리잡은 전시장 사이사이마다 쉴 곳이 있진 않았음.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그나마 지하 공간 안마당은 뭔가 공사중이라 출입금지.
그래도 날씨 따뜻해지면 나가서 쉴 수 있을 것 같아 사진 한방 박아왔음. 오른쪽은 어느 구석에 있던 아주 푹신한 소파. 전시장을 죄다 돌고 났을 즈음엔 다리허리가 너무 아파서 저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며 오래도록 처박혀 일행을 기다렸다. ㅎㅎ
이날 가장 큰 불만사항은 카페테리아가 로비 밖에 있다는 것! 전시장은 입구와 출구도 달라 재입장이 안되기 때문에, 전시 보다가 카페인을 충전하고 다시 관람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아닌가! 아 젠장. 3시간 가까이 가열차게 전시를 구경한 나는 어차피 볼 만큼 봤으니 퇴장을 선언했으나, 뒤늦게 합류한 일행 하나가 전시를 절반도 못본 상황이라 여차하면 싸울 태세였는데 ^^; 직원이 융통성을 발휘하여 그럼 다녀오시라고 허락해주었다. 앞으로도 전시 보다가 카페 들락거리는 문제는 좀 개선이 되어야할 듯.
암튼 아직 초창기라 도서관도 디지털아카이브도 개장을 안했다는 것 같다. 따뜻한 봄쯤 되면 죄다 이용할 수 있으려나. 그런 기대를 안고 나왔음.
정명우, [움직이는 바닥에게] 2013/12/6
인사동으로 이동하려고 마당을 뒤쪽으로 가로지르려니 마침 아트선재 앞에선 행위예술이 준비중. 트럭에 온갖 기계와 장비를 올려놓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움직이는 바닥에게>란 작품. 춤도 출 거라면서, 시간 되면 구경하고 가라기에 서서 좀 구경했는데 ㅋㅋㅋ 춤이 아니라 수줍은 율동 수준. ^^; 마지막까지 참 현대 예술은 어렵구나야....
3월 중엔 어쩔 수 없이 슬슬 일을 시작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월엔 그야말로 참 열심히 놀고먹었다. 머릿속도 좀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기대만큼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전시는 세 개나 봤잖니. ^^; 처음엔 다 따로따로 포스팅할 작정이었으나 벌써 다 기억이 가물거려 대강 기록만 해둘 요량이다. 안 그러면 몇달 지난 뒤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버릴 지도 모르니까.
1. 전시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4월 21일까지 전시중이다. 전시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흥미도 없었으나, 덕수궁 갔던 날 순전히 '프라하'에 끌려서 들어갔었다.
1905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던 체코의 근현대 미술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덕수궁미술관을 종종 가면서도 항상 내가 까먹는 사실이 있다. 덕수궁 미술관은 현대미술관의 덕수궁 분점이라 언제든 근현대 예술작품만 전시한다는 점! 그런데 나는 특히 현대미술의 초현실주의적인 추상화를 별로 안좋아한다는 점! ㅋㅋㅋ
단순한 나의 시각에 '예뻐' 보이는 그림들도 더러 있었지만 나로선 도무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제목과도 매치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대거 전시되어 있어서 그런 그림들은 설렁설렁 보는둥마는둥 지나쳐야 했다.
운명론자는 아니라고 생각하건만, 가끔 살다보면 기막힌 우연의 일치랄까 무언가 나의 삶이 예정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20세기 초 일어났던 '미래파'니 '미래주의 선언'이니 '마리네티'니 하는 이야기에 골머리를 싸매고 좀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떡하니 어느 전시실 벽에 적힌 작품설명에서 같은 이야기를 맞닥뜨렸다. +_+ 신기하기도 하여라.
체코 역사와 화가들에 대해서 하나도 아는 게 없어서 팸플릿을 열심히 읽어보아도 여전히 무식이 통통 튕기는 느낌이었지만, 체코와 프라하에 대한 선망과 허영심으로 택한 전시에서 더 무엇을 바라리. 같은 시기 우리나라 화가들의 작품을 작년에 이어 전시실 한 군데에서 계속 전시하고 있었기에 비교해보는 묘미도 있었다. 특히 저 그림을 그린 쿠프카의 자화상은 구본웅이 드린 이상 초상화랑 분위기가 몹시 흡사했다. 굵은 유화붓 터치며 파이프 물고 있는 것까지도.
공연히 마음에 들었던 그림 하나 더...
[1922년의 레트나] 블라스타 보스트르제발로바피쉐르바, 1926년
뒷짐진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정겹다. 샤갈의 템페라 벽화 느낌도 나고.. +_+
<옛사람의 삶과 풍류> 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
단원 김홍도 [운우도첩] 가운데...
갤러리현대와 두가헌 갤러리에서 2월 24일까지 했던 전시라서 끝나기 전에 얼른 보러가야했다.
단원, 혜원을 비롯한 여러 화가들의 조선풍속화도 풍속화려니와 '화끈한' 19금 춘화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지 않은가. ㅎㅎㅎ
생각만큼 작품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 변변한 팸플릿도 없는 게 내심 불만이었지만, 갤러리 2층에 따로 모아둔 춘화는 노골적인 정도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라 좀 놀라웠다. 단원과 혜원의 춘화첩이 일반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라는 듯한데, 얼굴 뜨끈해질 만큼 노골적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예술성까지 잃지 않다니 역시 대가는 다르단 느낌.
입장료 5천원에 함께 가 볼 수 있었던 두가헌 갤러리에선 구한말 외국인들에게 절찬리에 공급되었다는 김준근의 풍속화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단원, 혜원의 선과 섬세한 인체묘사에 높아진 눈으로 접하니 그림의 수준이 그리 드높다 할 수 없었지만 현란한 색채며, 당시 한글 표기법, 재미난 세시풍속이 흥미로웠다.
<한옥이 돌아왔다>에도 잠시 소개된 두가헌 한옥을 구경할 기회도 반가웠다. 안에 들어가 차 한잔 하고팠으나 시간에 쫓겨 그냥 나온 것이 한이라면 한.
그래도 두가헌 마당 한 귀퉁이 의자에서 다리는 좀 쉬다 나왔다. 저렇게 나무를 심고도 마당에 나무데크를 깔면 흙먼지 풀풀나는 걸 방지할 수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한옥의 목재와 유리는 서로 참 안어울리는 재료라던데, 유리에 습기가 맺혀 나무 썪기 딱 좋다던데, 몇년째 또 이렇게 건재하고 있는 걸 보면 건축전문가들이 다 방법을 마련해놓았나보다. 쓸데없는 염려 말고 한옥에 살고프면 그저 땅과 돈만 준비하면 되겠다. ㅠ.ㅠ
<팀 버튼>전
겨울방학 내내 사람들로 바글거린다는 얘기를 듣고 최대한 일정을 늦추어 2월말에 갔는데도 인파가 대단했다.
팀 버튼 영화개봉하면 언제 시작했다 끝났는지도 알 수 없게 슬그머니 내려가는데, 왜 이런 전시는 이토록 인기가 높은걸까? ㅋㅋ
4월 14일까지 계속 전시 중이니, 요새도 사람이 그리 많으려나 궁금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입장료는 12000원.
어린애들 데리고 온 엄마들이 특히 많아보였다. 아오... 애들은 막 싫고 무서워하는데 엄마들은 참신하고 재미나지 않느냐며 막 들이대고... 참신한 발상에 목매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가엾을 지경이었다. 관람객이 많으면 난 전시를 보기도 전에 지치는 느낌이다. 이날도 신기해서 좋아라 구경을 다니긴 했지만 운동화를 신고도 왜 그리 허리 다리가 아픈지... 나중엔 머리도 어질어질.
그치만 팀 버튼은 참... 대단한 사람이 틀림없다. 선 몇 개로 어떻게 그런 그림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지! 헬레나 본 햄 카터를 배우로서도 무척 좋아하지만, 팀 버튼 영화에 또 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겠느냐고(물론 조니 뎁은 예외 ^^;)! 심지어 둘이 부부라니... 헐...
전시장 입구에 세워놓은 대형 조형물도 재미났지만 창문에 유령신부 캐릭터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꾸며놓은 거 기발하다~ 하하하.
2. 공연/영화
<오페라의 유령>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황홀한 가면무도회 장면 ^^;;
<오페라의 유령> 탄생 25주년 월드투어 내한공연이 잡혔다더니만, 예매도 전쟁이었다. 이런 공연은 그저 티켓 오픈일에 경건히 기다렸다가 광클릭을 해야지, 안 그랬다간 좋은자리에서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하는 지경이 되었다. 허 그것 참... 암튼 1월초에 알아보니 VIP석과 R석은 3월까지 전공연 모두 한두 자리만 남아있을 정도. 9만원짜리 S석도 감지덕지로 여기며 2월말 날짜로 예매를 해놓고 설레며 기다렸다.
이번 공연에선 샹들리에가 그야말로 '뚝' 떨어져줄 것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샹들리에는 그리 극적으로 떨어져주지 않았지만 (무대장치 기술도 죄다 가져올텐데 왜 한국 공연에선 매번 기함할 정도로 샹들리에가 뚝 떨어지지 못하고 살살 줄을 타는지 그게 정말 궁금하다!) 공연은 역시나 황홀했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남아 앉아 있다가 팬텀 역할 배우한테 사인도 받고 싶었는데... ㅎㅎㅎ 파트너가 귀가를 서둘러 포기했다. 삼성 블루스퀘어 공연장은 처음 가보았으나, 2층에 앉아서 그런지 음향이 그닥 흡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감동받았으면 된거지만...
25주년 기념투어이기 때문일까. 공연장 밖에 의상과 소품들이 유리상자 안에 진열되어 있어 눈요기하기에도 좋았다. 마치 뮤지컬 초반부 경매장을 살짝 엿보는 느낌도 들고... 간만에 귀호강 눈호강 잘 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베를린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로 상영해주는 데가 점점 드물어져 어렵사리 먼데까지 가서 보았는데, 평일 오전부터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모르고 예매 안하고 갔다가 맨앞줄에서 목을 꺽으며 봐야했다. ^^;
그런데 일신의 불편함을 잊을 정도로 홀딱 빠져들었으니...
보고나자마자는 무신론자로서 새삼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가 많았으나 벌써 다 까먹고말았다. 군데군데 영상이 정말 아름다워서 이안 감독이 정말 대단한사람이구나 싶었던 것과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었다는 충동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베를린>은 별 기대없이, 나 류승완 감독 영화 별로 안좋아하는데.. 궁시렁거리며 들어갔다가 뜻밖에 재미있게 보았다. 연기야 역시나 하정우가 갑이었지만, 한석규의 초라한 모습과 생활연기도 좋았다. 액션영화도 너무 힘들어가지 않게(여전히 내겐 좀 과하고 길다 싶은 액션 장면 있긴 했다만;;) 폼나게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3. 2월에 읽은책
우리궁궐 이야기, 홍순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
고양이눈 1, 마거릿 애트우드
<그레이스>는 잠을 미뤄가며 단숨에 미친듯이 읽었고 <고양이눈>은 좀 괴로워하느라 천천히 읽었다. 올해는 마거릿 애트우드를 좀더 찾아 읽기로 결심했고, 초상 시리즈(?)로 <여인의 초상>도 읽고 싶어졌다. 역시 읽는 맛은 소설이야, 라며 읽다 만 과학책들은 올스톱. ㅎㅎㅎ
4. 식탐의 흔적
밖에 나가서 조미료를 많이 넣어 만든 음식을 먹고 들어오면 어김없이 탈수현상에 시달린다. 물을 두 주전자쯤 마셔주어야 갈증이 가시는 듯한... 그래도 내가 안 만든 요리는 죄다 맛있다, 싶은 심정으로 나가먹고 살긴 한다. 그러다 담백한 음식점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동탄 <담숙>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한식당이라며 친구가 데려가주었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집에서 만든 것처럼 담백한 음식들은 종종 '맛없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바깥 음식이야 맵고 간간하고 자극적이어야만 맛집으로 소문나고 사람들의 발길을 끌지 않나 말이다.
그런데 여기는 소신있게 주인장 부부가 개발하고 만든 음식들로 정갈하게 한정식을 내오는 집이다. 아쉽게도 내가 정신없이 차에 전화기를 두고 내린 바람에, 사진은 친구한테 전달받은 이거 딱 한장이다. +_+
죽이랑 블루베리 소스를 뿌린 샐러드, 낚지볶음, 두부버섯샐러드 등등... 기억도 잘 나질 않는 음식들이 죄다 맛있었다. 사진 속 음식은 표고 탕수와 섭산적(아마도;;).
쫄깃한 표고탕수가 엄청 맛있어서, 상대적으로 파채 싸먹는 고기요리는 그저그렇게 느껴졌다. 담에 또 가게 되면 코스별로 죄다 사진 찍어다가 집에서 시도해봐야(ㅠ.ㅠ 이 투철한 밥순이 정신;;)겠다.
광화문 <어반가든>
먹기에 바빠 사진은 없다. 작년 겨울 모임때 갔다가 예약 안한 사람은 2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쫓겨나오며 언제고 한번 먹어보리 결심했었는데, 팀버튼 전시회 본 날 문득 떠올라 찾아갔다. 덕수궁 정동길에서 거의 프란치스코 수도회까지 올라가 왼편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다. 여름엔 온갖 화초로 유명하다는 얘기 들었는데, 이날은 꽃이며 화분 쳐다볼 여유도 없었던 거 같다. 런치세트가 17000원 정도라서, 싸지도 않은데 맛없으면 어쩌나 일행들 마음에 안들면 어쩌나 바짝 쫄았었다.
샐러드의 신선도나 수프는 마음에 들었는데, 파스타 맛은 딱히 엄청 맛있다고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또 요즘 집에서 파스타 요리에 심취하고 있어놔서;;; ㅋㅋㅋ
마지막 커피까지 주는 건 좋았는데, 종이컵에 주는 건 마이너스, 커피 맛도 그저그랬다. 커피까지 머그잔이나 찻잔에 주고 커피맛도 훌륭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쳇. 다음엔 정동극장 안에 있는 파스타집엘 가보고 비교해보리라
올림픽수제비 굴국밥 따라하기
이제는 나도 굴국밥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게 되었다! 하핫.
지난번 국물 낼 때 멸치까지 넣었더니 오히려 과잉이었던 듯.
무와 다시마로만 깔끔하게 낸 국물에 소금간을 한 뒤
파, 마늘, 생굴, 매운고추, 부추를 넣고 포르르 한소끔만 끓여 밥에 부어 먹으면 된다.
몇번 해먹어보니, 큼지막한 양식굴보다는 확실히 자잘한 자연산 굴로 끓였을 때 바다향이 더 싱그럽게 난다.
뚝배기에 담아내놓았을 땐, 정말로 올림픽수제비에서 맛본 거랑 비주얼까지 똑같았다. ^^;
노로바이러스의 기승으로 생굴 먹기는 좀 걱정스러우니 날 더 더워지기 전에 몇번 더 해먹어야지. 냠냠냠.
보름 나물
올해는 오곡밥과 나물을 볶아야 하는 대보름 전날이 하필 사촌 동생 결혼식이었다.
강남에서 무려 2시간도 넘게 걸려 운전하고 집에 오느라 녹초가 된 몸을 다시 꾸역꾸역 움직이며, 좀 서럽기도 했다.
안먹고 살면 될텐데, 왜 이렇게 식탐에 집착하느냐고!! ㅠ.ㅠ
하지만 이번엔 특히나 엄마가 애호박과 가지를 손수 말려놓으셨던 걸 물에 불려놓고 나갔기때문에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나마 지쳐서 홀수로 못만들겠으니, 네 가지 나물로 끝내자고 왕비마마와 합의를 보았다.
오곡밥이 아니라 10곡밥은 될 듯한 찰밥에다 저 나물 반찬으로 김쌈을 해먹는데, 어우... 맛있어서 또 짜증이 났다. (아니 왜?) 사먹는 게 더 맛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는 떡집에서 오곡밥이랑 나물까지 다 사왔어도 맛있게만 먹었다던데 말이다. 으휴.
만수무강 약식
설날에 오지랍넓게도 약식을 또 만들었었다.
다른 먹을거리가 많아 그날 약식이 절반도 더 남았길래 작은댁이랑 동생네, 사촌동생들까지 죄다 싸보냈더니 왕비마마가 퍽이나 섭섭해하셨다. 당신은 약식을 딱 한입밖에 못 드셨다나 뭐라나. 나 원 참...
(그러나 나중에 올케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 한입만이 아니었다 ㅋㅋㅋ)
어쨌거나 생신도 가까워오겠다, 그렇다면 원없이 약식을 한판 다 드시게 해드리겠다며 호기롭게 약식찌기에 돌입했다. 당뇨환자용으로 설탕과 찹쌀은 양을 좀 줄이고 견과류는 더욱 풍성하게 잔뜩 넣어서...
그리하여 탄생한 만수무강 약식이다. 정말로 난 한두 조각이나 먹었나, 약식 한솥을 사흘 안에 홀로 다 드시는 바람에 무서워서 당분간은 혈당 체크도 하지 못했다. -_-;
그러고 보니 정말 2월 한달은 죽어라 먹는 것에만 탐닉했던 것 같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가 우리 두 모녀의 좌우명. ㅎㅎㅎ
보너스로 요즘 점심 메뉴로 종종 등장하는 입때표 해산물 파스타의 위용을 공개한다. 두둥~ ㅋㅋㅋ
심지어 파스타 접시도 새로 장만했다는.... ;-p 매번 몸 생각하며 건더기를 하도 많이 넣어 담고 나면 면발이 잘 안보인다. ㅋㅋ 내 그릇에 대충 담느라 가장자리에 척 걸쳐진 면발을 숨기려는 시도로 찍었으나 실패. 다 보인다!
포스팅거리가 너무도 많이 밀려있다보니, 길고 긴 겨울방학 끝자락에 훌쩍훌쩍 눈물 훔쳐내며 밀린 일기와 숙제 하는 아이 같은 심정이다. 방학일기야 까짓것 대충 써가거나, 아예 안 써가면 그만이지, 하며 대범하게 넘겼던 사람도 있겠지만 어려서도 나는 지난 신문더미에서 한두달 전 날씨까지 확인해가며 꼬박꼬박 밀린 일기를 쓰곤 했다. 연필 하나로 계속 연달아 쓰면 밀렸다 한꺼번에 쓴 일기임이 탄로날까봐(대체 앙큼하게 그런 건 또 어디서 알았을까??) 연필도 뭉툭한 거 진한 거 흐린 거 바꿔가며 쓰던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벼락치기로 해간 방학숙제와 일기로도 상을 하나쯤 은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_+
아무튼... 정신없이 2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궁궐지킴이 시험을 볼지말지도 아직 결정을 안 내렸고, 1월달엔 꽤 열심히 했던 예습복습(! 답사 후 포스팅하는 게 주요 복습이었는데;;)도 완전 무시하며 지낸 터라 머리에 뭐가 남아있긴 한가 잘 모르겠다. 일단 기억을 환기하여 적어보기로...
현대미술관 덕수궁 분점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 덕수궁에 대해서는 그나마 익숙하고 꽤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ㅋ 전각 이름 좀 알고 있다고 해서 제대로 아는 건 결코 아니었다. 덕수궁 답사의 시작을 환구단 정문에서 한다고 할때부터 의아했다. 엥? 시청앞에 환구단 정문이 있다고? 답사안내문에 나눠준 사진과 그림을 보니 그렇다는데, 지난 가을 덕수궁 프로젝트 관람하고 나서 대한문을 나와 분명 시청앞 광장으로 길을 건너가 저녁을 먹으러 갔었음에도 난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다. 내심 요 몇달 새에 생긴 건가 싶었다.
최근에 복원된 건 맞지만(2005년이라던가;;), 물론 환구단 정문은 분명 작년 그날에도 시청앞 광장 건너편에 엄연히 서 있었다. 무지한 내가 못 본 것일뿐. 덕수궁 답사를 환구단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덕수궁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와 절대로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덕수궁 자리는 과거 월산대군의 사저가 있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 궁궐이 모두 타버려 피난 갔던 선조가 돌아와 석어당(석어당이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다)에 머물게 되면서 '정릉동 행궁'이라 불렸었다. 헌데 일반주택이라 해도 일단 왕이 머물고 나면 일반인이 다시 살 수가 없으며, 집에도 '궁'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운현궁이 '궁'인 이유도 훗날 왕이 된 고종이 살던 집이기 때문이다. 암튼 그래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선조가 머물렀던 정릉동 행궁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내렸다. 덕수궁을 경운궁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는 주장의 근본이다.
임란왜란으로 소실된 창덕궁과 창경궁이 중건되고 난 뒤 경운궁은 오래 별궁으로 남아 외면당했다가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다시 역사의 중심이 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전성기 때 경운궁은 현재 넓이의 3배에 달했단다. 궁역을 자꾸만 넓히며 건물을 짓다 보니 심지어 정동길 너머로도 영역을 확대하여 구름다리로 연결해 썼단다. 이론수업에서 아직도 그 때의 구름다리 흔적이 남아있으니 정동 돌담길 걸으며 한번 확인해보라는 말도 들었겠다, 공식 답사일정이 끝나고 나서 실제로 둘러보니 그 부분이 눈에 딱 들어왔다.
두툼한 구름다리 석축이 확실히 담장보다 튀어나와 있는 게 보이지 않나? 여기 말고도 경희궁 쪽으로도 구름다리로 두 궁궐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 같다. 경희궁 터야 완전 박살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해도, 이 건너편은 서울 시립미술관이니까 구름다리를 복원해도 좋겠다 싶었다. 어차피 덕수궁(경운궁)은 고종황제가 근대왕조국가를 꿈꾸며 새로 짓다시피 확장시킨 궁궐이니 현대 기술로 복원하기에도 수월하지 않을까나.
덕수궁이 다른 궁궐에 비해 이질감이 컸던 이유도, 궁궐건축의 원칙과 풍수에 따라서 산세를 등지고 터를 고른 게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남은 땅을 최대한 활용한 데다 근대건축술을 도입한 서양식 건물을 한옥전각 바로 옆에 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고종의 지시로 덕수궁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이 셋 있는데, 석조전, 정관헌, 중명전이다. 석조전을 고종황제가 생활공간으로 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본의 입김으로 생겨난 건물인 줄 알았더니 고종이 친히 의도하여 지은 공간이었다. 우리나라 궁궐은 전각별로 쓰임새가 다 나뉘지만, 서양식 궁궐은 무지막지하게 큰 건물 하나에 온갖 용도의 공간이 다 들어있지 않은가. 고종 역시 석조전을 크게 지어 침전과 편전으로 사용하려 했다.
언젠가 한국근대미술전 보느라 석조전에 들어가서 본 서양식 응접실과 다실에서 고종황제가 신하들을 접견하고 정사를 의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짠했다. 나라를 빼앗긴 무능력한 왕의 전형으로 오래도록 알려졌던 고종황제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지나친 민족주의적 시각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그 시기는 중세왕조가 사라져가고 근대국가가 생겨나는 시기였으니 조선의 패망이 고종황제의 무능력과 세계정세에 어두운 탓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고종황제가 환구단을 세워 하늘에 직접 제사를 지내러 다닌 것도 황제국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뜻이었으나 오래가지 못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전까지는 조선이 중국의 제후국이라 '감히'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가 없었기에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엄연히 내려왔던 환구단의 전통이 조선초 완전히 사라졌던 것을 고종이 되살린 것이라고. 덕수궁 답사를 환구단 문앞에서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옛날 환구단의 모습인데, 담장 주변 잡초로 보아 일제가 철거하기 얼마 전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환구단의 흔적은 시청앞 광장에 있는 줄도 모르게 서 있는 복원된 정문과 빌딩숲에 가려져 간신히 보이는 환궁우와 삼문(흑백 사진 왼쪽의 팔각정 같은 전각과 아치 세 개 부분), 돌북 세 개뿐이었다. 복원공사를 계속 하고 있긴 하던데 아는 사람이나 알지, 나도 예전엔 조선호텔 후원에 세워놓은 정자인 줄만 알았거늘... 흠.
왼쪽 사진이 바로 환구단의 정문을 뒤쪽에서 찍어온 것이다. 시청앞 광장 쪽에서는 사실 찍어도 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건물인 재능교육에서 해고당한 방문교사들이 바로 저 문 앞 인도에 천막을 쳐놓고 천팔백몇십 일째 농성중이었다. 올 겨울 유독 추위가 엄혹했는데 천팔백일만 따져도 대체 몇년째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복원은 했다지만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환구단 정문의 위상이나 재능교육 해고교사들의 위상이나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고종황제는 덕수궁 대한문을 나서 환구단까지 위엄 돋는 행차를 거쳐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일제의 압박에 왕위를 물려줄 때도 고종은 순종에게 대리청정을 명했을 뿐 정식으로 양위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단다. 그런데 일제와 친일파 대신들이 얼렁뚱땅 왕위를 순종에게 넘긴 것이라고. 그러고 나서 일제는 상왕이 된 고종을 격하시켜 '덕수궁 이왕'이라는 궁호를 내렸다. 그래서 덕수궁이란 이름을 경운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에 열을 올리는 이들도 많은가본데, 대체로 덕수궁으로 그냥 쓰자는 분위기가 대세라고. 덕수궁 원래 이름이 경운궁인 걸 아 글쎄, 일반인들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지난 가을 찍어왔던 정관헌 사진 재활용^^
경운궁 내 최초의 서양 건물이라는 중명전
<무한도전>에도 나와서 꽤 유명해진 '정관헌'은 경치좋은 곳 여기저기 정자를 세워두었던 다른 궁궐과 달리 땅이 좁은 덕수궁에 정자 대신 세워놓고 고종이 커피도 즐기고 연회를 벌이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했던 장소다. 서양식 건축과 한옥 양식을 섞어 지어서 어찌보면 이도저도 아닌 요상한 양식이 되었지만, 베란다에 깔린 타일도 예쁘고 기둥과 난간에 새긴 십장생이며 용무늬도 꽤나 정교하다.
'중명전'은 덕수궁 담장 밖에 있다. 홍순민의 <우리 궁궐이야기>를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이 건물이 해방 이후 여러번 팔리다가 개인 소유가 되어 사무실 건물로 함부로 쓰이고 있다는 통탄의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얼마 전 정부가 사들여 복원해놓았다. 미 대사관저를 사이에 두고 현 덕수궁과 뚝 떨어져 골목 안에 숨어 있다는 중명전이 궁금해서 답사 끝나고 열성 뻗치게도 나중에 찾아가 보았다. ㅋ 입장료는 무료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둘러볼 수도 있게 해놓았다.
원래는 황실 도서관으로 지은 건물로 '수옥헌'이라 불렀다는데 덕수궁에 큰불이 났을 때 고종이 다른 궁궐로 옮겨가지 않고 이곳에서 지내며 연회장이나 접견장소로 이용했단다. 원래 왕이 머무는 전각엔 '-전' '-당' 수준의 이름이 붙는다. 그래서 나중에 이름이 중명전으로 바뀌었겠지. 헌데 여기서 바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대고, 헤이그 특사 파견도 이루어진 비운의 역사적 장소란다. 신발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은 뒤 안에 들어가면 여러 사진과 함께 친절하게 여러 설명문이 적혀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설명문보다 복도 바닥에 깔린 색깔 타일이 더 인상적이었지만서도...
여기도 정관헌처럼 건물 바깥쪽을 베란다로 둘러놓았다. 날씨만 안 추웠더라면 저 의자에 걸터 앉아서 높은 담장으로 가려진 미대사관저 부지까지도 궁궐터였던 때를 상상하는 놀이에 젖어볼 수 있었을 텐데... 얼른 사진만 한장 찍고 퇴장했다.
에고고...
덕수궁에 있는 서양 건물 셋 얘기만으로도 너무 사연이 길고 지친다. ㅋ 암튼 덕수궁 미술관 구경다니면서, 뜬금없이 화장실 건물과 나란히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문과 그 안에 놓인 자격루 따위의 보물이 좀 수상하다 여겼었는데 이번에 의문이 약간이나마 풀렸다. '광명문'이라는 편액이 달린 저 문은 원래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엉뚱하게 옮겨진 거란다. 제 자리도 아닌 문 안에 포와 종과 물시계를 나란히 진열해놓은 것이 누구의 생각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의 궁궐이라는 것이 어차피 죄다 과거 속의 죽은 공간이라 훼손의 역사를 빼고는 도무지 이야기 할 수가 없는 걸 안다. 그래서 궁궐을 볼 땐 상상의 나래를 많이 펼칠수록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덕수궁은 가장 최근까지 근대의 서글픈 과거가 담긴 공간이다보니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중화전만 해도 다른 궁궐처럼 처음엔 중층으로 지어졌는데 대화재 후 재정궁핍으로 조촐하게 단층으로 축소해서 지었다지 않은가. 게다가 다른 궁궐 조정 마당엔 죄다 행각을 복원해서 둘러놓았으면서, 왜 덕수궁 중화전만 휑하니 뚫리게 그냥 두었는지?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전락하면서 가장 많이 망가진 줄 알았더니만, 궁궐 훼손의 정도는 어느 게 더 심하다고 손꼽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째뜬 내가 덕수궁에서 가장 좋아하는 석어당은 퍽이나 사연이 많은 곳이었다. 선조가 피난 갔다 돌아와 임시로 거처한 역사 때문에 광해군 때부터 이미 고이 보존하라는 어명이 내려졌었대고, 인목대비가 유폐되어 살다던 공간이기도 하며, 러시아 공관에서 돌아온 고종황제 역시 경운궁을 본격적으로 넓혀 짓기 이전에 석어당을 임시 거처로 썼단다. 다만... 1904년에 큰불이 났을 때 다른 전각들과 같이 홀라당 다 타버려서, 현재 건물은 당시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지금 전각도 100년이 훨씬 넘기는 했지만, 선조 때의 모습 그대로인가 했다가 아니라니까 왜 실망스러운지 원...
가을에 찍어온 석어당 사진도 재활용 ^^
아무려나, 인조반정 때 인목대비가 옥새를 넘기면서 저 석어당 마당에 광해군을 무릎 꿇려 앉혀놓고 조모조목 죄목을 읊으며 꾸짖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으로 <광해> 2편이 마구 그려지면서 새삼 흥미진진했다. 왕위에서 쫓겨난 광해군은 아 글쎄 제주도로 유배되었지만 놀랍게도 예순살이 넘도록 살았다네그려. 나중에 인조반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나오면, 배경이 석어당인지 아닌지 꼭 확인해야지!
탑루만 남은 러시아 공관
이날 덕수궁 미술관에선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프라하'에 대한 선망 때문에 별 생각도 없이 무작정 들어가 본 그림들은 공교롭게도 상당수가 덕수궁의 근현대사와 맞물리는 시기에 그려진 거였다. 초현실주의적인 추상화가 많아서 기억에 남는 그림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오히려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한국근대미술: 꿈과 시> 작품들을 한번 더 볼 수 있어 좋았다. 아픈 다리를 끌고 굳이 내가 러시아 공관이 있던 언덕까지 정동길을 헤매고 다닌 이유도 아마, 이날 본 1907년 즈음의 정동 주변 그림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구한말, 고종황제, 을사늑약, 한일합방... 같은 말을 들으면 까마득한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바로 그 시기 이땅의 화가들은 또 서양 미술을 배우고 익혀 유화로 서울 풍경을 그려 남기고 있었다. 그 그림들을 불과 백여년 뒤의 내가 구경하러 다니는데, 그림 속에 담긴 러시아 공관의 모습이 일부나마 여전히 현재의 시공간 속에 여전히 실재한다는 것이 어쩐지 기묘했다.
게다가 지금은 저렇게 철책으로 둘러쳐 지정문화재 따위로 엄히 보호받고 있는 공간이지만, 15년전쯤만 해도 난 친구들과 김밥 몇줄 사가지고 올라가 러시아 공관 폐허 바로 옆 잔디밭에서 뒹굴거렸던 기억도 있다. 그때도 여기가 아관파천의 역사 현장이래.... 어쩌구 종알거렸던 것 같다. ㅎㅎㅎ
원래는 친구의 LA 동료들과 만난 날 밤에 같이 가려고 했었는데, 자기들끼리 바로 다음날 궁궐순례 계획을 잡아놓았다고 하여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해서 친구는 결국 덕수궁 프로젝트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친구에겐 궁궐과 설치미술 구경보다는 수세미, 행주부터 수면바지, 속옷까지 식구수대로 사가지고 갈 쇼핑품목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미술관 때문에 제일 자주 찾는 궁궐이 덕수궁이지만 '서도호'를 포함한 설치미술이 전각 안에 전시되어 있다니 더욱 흥미가 동했다. 드디어 덕수궁 전각 안에도 들어가보게 되는군!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덕홍전. 금속으로 만들어놓은 곡선형 좌식 의자가 바닥에 빼곡하게 깔려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각 밖에서 안을 흘끔흘끔 들여다보고만 있는데, 입구에 서 있는 안내인은 들어와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왜?! 내가 먼저 신발을 벗고 성큼성큼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날이 부쩍 차가워져 엉덩이와 등이 이내 시려왔으니망정이지 안그랬으면 한 30분쯤 누워 쉬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인체공학적으로 몸에 딱 들어맞는 편안한 디자인이었다. 하지훈의 <자리>라는 작품이라고. 찍어온 안내판 사진을 보니 성기완의 음악도 연주되고 있었다는데 사실 기억에 없다. ㅋ
파도의 일렁임 같기도 하고 터미네이터2가 생각나기도 하는 금속 의자와 덕홍전 천장 사진을 세트로 찍어오는 블로거들이 많던데 그럴만했다. 편히 눕다시피 앉으니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새로이 채색한 듯한 화려한 단청이었다. 예쁘기도 하지...
석조전도 그렇고 중화전 뒤쪽으로도 그날따라 공사중인 곳이 꽤 많아 길을 돌아돌아 가다보니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이 나왔다.
아니 이것도 작품인가 싶게 거울을 사이에 두고 회의 탁자가 놓여있었다. 설치미술은 뭔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다시 되살려준 정서영의 작품. ^^
전시 시작할 때는 미술관에서 설치미술 제작 과정을 죄다 보여주는 특별전시도 함께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미술관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쩐지, 입장료로 달랑 천원만 받더라니... 좀 아쉬웠다.
단풍으로 아름다운 나무들을 바라보며 궁을 가로지르다 보니 바닥에서 뭔가 반짝거렸다.
최승훈+박선민의 <결정>이라는 작품. 전시 안내책자에 어찌나 인색한지 브로셔도 없이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다 작품과 함께 설명 표지판을 찍어온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서 작품 제목까지 기억하는 게 가상타. -_-;
아래 사진은 덕수궁에서 제일 잘생긴 건물이 아닌가 싶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석어당의 옆모습.
이상하게도 단청 화려한 궁궐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전각을 꼽다보면 꼭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다.
창덕궁에선 연경당.
덕수궁에선 석어당.
경복궁에선 건청궁.
경희궁과 창경궁은 아직 복원이후 구경가보지 못했다. 어서 거길 다 가보아야 남아있는 5대궁궐 탐사가 다 끝날 텐데... ^^;
예술가들도 각별히 애정을 품었는지, 이곳에선 두가지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김영석의 <better days>와
이수경의 눈물.
덕혜옹주를 특히나 어여삐 여겼다는 고종이 석어당에 유치원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복과 보료, 영사기로 투사된 덕헤옹주의 사진들로 방을 재현해놓은 작품이 왼쪽의 모습이다.
흑백사진을 투명한 망사에 저렇게 비춰놓으니 더욱 처연하면서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죄다 어디에서 난 사진인고 했더니, 그 사진 액자들이은 분합문 위 문틀에 나란히 올라가 있다.
중화전 행각에 있던 이 작품은 이름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겠다. 궁중소설을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들려오던데 우린 철사에 묶여 있는 소설책을 대충 넘겨보다 잠시 앉아 다리만 쉬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중화전에도 뭔가 조명과 음향을 설치해놓은 것 같던데 하나도 안보이고 안들렸었다. 밤에만 보이는 건가?
기대했던 서도호의 함녕전 작품 <동온돌>은 약간 의외였다.
고종이 명성황후와 엄비를 그리워하여 항상 이불 세채를 깔고 주무셨다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래고, 대청 한가운데에선 한복 입은 남자가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고 궁녀들이 이불 개고 펴며 잠자리 준비하는 동영상이 계속 돌아갔다. 이불 세채의 사연이 좀 안쓰럽긴 하지만 서도호의 리움 전시를 본 사람으로선 애개개 싶었음.
덕홍전 천장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함녕전의 천장.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쌍학이 날고 있는 똑같은 그림이다. 천장마저도 서글픈 느낌.
궁궐 전각과 예술품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의 의의도 좋았고 뿌듯했지만, 역시나 이날 가장 감동을 주었던 건 가을 풍경이었던 것 같다. 아직 만추가 되기 전이었던 저 나무들도 지금은 다 완전히 색이 달라졌거나 헐벗었겠지. 게으름 부리다 밀린 일기 쓰는 것의 장점 하나는 떠난 계절까지도 오래도록 질질 붙들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벌써 2년 전인 것 같다. 덕수궁에서 한국근대미술 전시회가 열렸을 때, 유독 설명이 소상하고 정성스러웠던 도슨트가 이인성 화백의 그림 앞에서 말했다. 2012년이 탄생 100주년이니 아마도 조만간 대규모 회고전이 기획될 것이라고. 그 말대로 올해 5월부터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고, 나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맙소사, 석달 내내 벼르다 또 다시 끝나기 며칠 전에 겨우 다녀왔다. 입장료도 안받는 이런 무료 전시회는 미리미리 다녀와서 사방에 광고 하고 그래야하는데 쩝... 그나마 이인성 회고전 말고도, 2층에선 <꿈과 시>라는 주제로 근대미술 기획전시도 하고 있는데 그건 12월 2일까지라는 데서 위안을 삼아야겠다. 역시나 무료. 덕수궁 입장료 천원만 내고 들어가면 된다.
<계산동 성당>, <해당화>, <카이유>, <소녀> 같이 전에 본 적 있어 반가운 그림도 있었고 난생 처음 보는 그림과 소장품들도 많았다. 유화와 수채화만 그린줄 알았더니만 특히나 수묵담채화도 그렸더군! 그간 나는 이인성의 그림을 예뻐서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요번에 모아놓은 그림들을 돌아보니 어쩌면 뭔가 많이 익숙한 느낌이라 좋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속적인 인물화에서는 고갱의 화풍이 느껴지고, 해바라기 정물화에선 당연히 고흐가 떠올랐으며, 풍경화 몇점에선 언뜻 샤갈이나 마티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미술상에서 도안과 수채화를 배워 전시회에 출품해 척척 입선을 했다니 천재가 틀림없다.
이인성, [가을 어느날] 1934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鄕. 3, 40년대 문화예술계에서 워낙 조선의 향토성이 활발히 다루어졌대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선 아예 향토색을 심사기준의 하나로 강조했다지만 대구 출신의 이인성은 꾸준히 조선의 향토색과 한국적인 정서를 서양의 화풍과 기법에 접목했던 듯하다.
왼쪽은 타히티 여인들을 그린 고갱의 그림과 종종 비교되는 <가을 어느날>. 이 작품도 조선미술전람회 수상작이란다. 일제시대 관제미술의 수혜자였으므로 당연히 친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듯한데, 식민지 백성으로서 별다른 부와 배경 없이 남다른 재능을 펼치려면 일단 널리 인정받는 수밖에 더 있었겠냐고 설명했던 2년전 도슨트의 이야기에 나도 수긍했었다. 다만 그림 구석구석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놓여 있는 갖가지 소재들의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시장엔 이인성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각종 자료와 그림엽서,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도 나처럼 참 열심히도 명화 엽서를 사모았다는 사실에 괜스레 흐뭇했다. 물론 나야 한동안 구경하다 서랍속에 넣어두고 끝이지만, 이인성은 엽서 그림으로 서양의 화풍을 배우고 참고해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반영했다고. 그래서 작품의 화풍이 다양하게 느껴진 것 같다. 모르긴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지 않았을까?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언뜻보고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여름 실내에서>.
이인성 [여름 실내에서] 1934
단순히 붉은 빛깔의 인테리어와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 때문일텐데, 나만 비슷하고 느끼는지 다른 사람들도 뭔가 관련성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두 사람의 활동시기가 얼핏 겹치니까 혹시라도 일본 체류시절 교류의 가능성이 있을까나? 하지만 <붉은 실내>는 1948년 작품이라, 이인성이 이 그림을 훨씬 먼저 그렸다. 괜히 나 혼자 소설 쓰고 앉았는 것일지도... 어쨌거나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 화백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아오... ㅎㅎ
마티스 [붉은색 실내] 1948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카이유>나 <계산동 성당>은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그림인데도 정겹고 참 좋다. 저 성당 앞 감나무가 아직도 있어 여전히 '이인성 감나무'라 칭한다는데, 진짜로 어떤 모습일지 대구에 가게 되면 꼭 한번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은지 수년째, 대구는 기차타고 지나가보기만 했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때문인지 요번에 처음 본 <이화 교정>이나 <아리랑 고개> 그림은 나도 좀 지나다녀 본 언덕이라 슬며시 반가워 유심히 더 오래 구경했다.
대체로 작은 크기의 그림들 사이에서 <가을 어느날>과 <해당화>는 꽤 큰 작품이라 이번에도 두드러져 보였는데 나의 착각인지 예전에 뭔가 오류가 있었는지 <해당화>가 '개인소장'이라고 되어있어서 살짝 의아했다. 지난번 기획전시때 본 <해당화>에는 분명 '삼성 리움 미술관 소장'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미술품 가운데 대작은 다 삼성이 갖고 있군, 하며 코웃음을 쳤었는데... 어찌된 것일까나. ㅋㅋ 어쨌거나 언제 또 만날지 알 수 없는 개인소장품들을 더 열심히 오래오래 감상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전시실을 나섰다.
덕수궁 미술관 2층 전시실에선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을 비롯해 유명한 한국 근대서양화가의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오지호의 <남향집>도! ^^; 사실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면 늘 상설로 순회전시를 하고 있으니 만나기 어렵지 않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볼 때마다 흐뭇한 걸 어쩌라고...
오지호 [남향집] 1939
화가의 딸이라는 빨간옷 소녀와 햇살 받으며 졸고 있는 하얀 강아지, 청보라색으로 표현된 나무그림자까지 정겹고 사랑스럽다. 이른바 '한국적 인상주의의 완성작'이라고 소싯적부터 교과서를 달달 외던 시절부터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인상파 편향적인 나의 그림 취향은 참 오래도록 변할줄을 모른다. ㅋ
<남향집>외에도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던 화가와 작품들이 꽤 눈에 띄며, 작품 사이사이에 이상과 윤동주 등의 싯구절을 적어놓았다. 생각해보면 이 나라의 근대는 암울한 일제강점기지만 그 시절에도 예술은 꽃피고 사람들은 꿈을 꾸며 살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분명 이 땅에선 황금시절이 아니었겠지만 우리나라 근대의 모습도 퍽이나 매력적인 것 같다. (엇, 이런 발언 위험한가?) 이런 상상은 아마도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영향인듯.
궁궐 안 마당에 군데군데 서 있는 이인성 전시회 배너 가운데서 <카이유>를 찍어가지고 나오려니, 대한문 바로 옆에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에서는 쉰 목소리로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가롭게 전시회나 보러다니는 게 조금 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