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인 18일 화요일 아침. 6시 알람에 눈이 번쩍! 언니들(큰언니의 친구분도 한 명, 총 4명이 여행 일행이었음)은 8시까지 오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얼른 씻고 소풍 준비하듯 친구는 달걀을 삶고(남편이 주말 농장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유기농 달걀이라면서) 전날 밤 미리 구워 잘라놓은 쥐포와 문어 다리(!)를 챙기고...그러는 사이 나는 치즈케이크 한조각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친구가 차려준 첫 끼니이므로 기념촬영해야한다고 하니 민망하다고 깔깔 웃는 친구... 원래 아침 잘 안 먹지만, 여행 다닐 땐 삼시세끼 꼭 챙겨먹어야하는 의무감 같은 게 있다. 하루 24시간을 악착같이 활용하려면 체력보충부터 해야하기 때문일까?
이렇게 매일 고칼로리로 아침을 시작해 열흘 내내 삼시세끼+간식으로 충만한 삶을 산 결과는 역시나 빤한 것이어서, 나는 얼굴에 주름이 모두 펴질 정도로 빵빵하게 보름달처럼 부푼 얼굴로 귀국했었다. 체중도 3kg쯤 늘었었고...
어행에서 돌아온지 한달도 더 지난 지금 체중은 예전으로 돌아왔는데 빵빵한 얼굴은 왜 때문인지 아직 여전해서,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 좋아졌다'고들 한마디씩 한다. 여행가서 아주 좋았나보구나? 얼굴이 훤하다.. 등등..
그들의 선입견 탓인지, 진짜로 낯빛이 환해졌는지 그건 잘 모르겠고 암튼 동그란 얼굴이 심히 빵빵한 네모가 되어있는 건 사실이다. ^^;
그리하여 아침 8시 드디어 우린 첫 행선지인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 마침 SF MOMA에서 마티스 전시회를 하고 있더라면서 미술관 좋아하는 내 취향을 고려해 3시 티켓을 이미 사놓으셨다는 언니. 아싸~
중간에 들러 나름 염원이던 '인앤아웃 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햄버거 4개를 모두 세트로 시켜서 감자튀김은 다른 시뻘건 쟁반에 한가득 따로 나왔는데 으어.. 영 맛없어 보이게 사진에 나와서 삭제했다. +_+ 서부에 왔으니 인앤아웃버거는 먹어줘야한다는;; 가격대비 만족도는 역시나 최고가 아닌가 싶다. 배불러서 바삭바삭한 감자튀김 다 못먹고 나오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갈 길이 멀고 미술관 시간도 맞춰야해서 마음이 바빠, 진짜로 거의 10분만에 빨리 버거를 해치우고는 내쳐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렸다.
몇년째 계속 가물고 산불나고 난리였던 캘리포니아는 주택마다 잔디밭도 없애고 돌이나 나무칩을 까는 걸 주정부에서 보조해줄 정도였단다. 매일 잔디밭에 주는 물값도 어마어마하려니와, 도저히 그렇게 낭비할 물이 없었다나.
근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고속도로 양쪽에 늘 황량하고 누렇기만 하던 언덕에 풀이 돋고 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나왔다면서, 그 또한 우리의 여행을 위한 하늘의 선물이라고 우리끼리 키득거렸다. 캘리포니아 북쪽은 몰라도 남가주엔 절대 없던 일이라나 뭐라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Courtyard Marriott Hotel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짐가방만 방에 덜렁 집어던져놓고선...(나 메리엇 호텔에 묵었어! 감동할 새도 없이ㅋㅋ)부리나게 근처에 있는 SF MOMA로 걸어갔다.
마티스 단독 전시가 아니라, 마티스의 작품에 엄청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디벤콘'이라는 미국 화가와 합동 전시.
한국에서 대형 기획 전시 관람료가 막 만오천원씩으로 올라 불만이 많았으므로, 미쿡에선 대체 이런 특별전 티켓을 얼마 받나 슬쩍 인터넷 예약증을 살펴보니 무려 31불.. +_+
상설전시만 보는 것도 25불이었다. 흠.. 우리나라가 엄청 비싼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전세계 미술관도 요즘 추세는 상설전시는 예전처럼 자유로이 사진촬영이 가능하지만 특별전은 사진을 못찍게 하는 듯. 마티스와 디벤콘 전시관에서는 하나도 사진을 못찍었다.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마티스 그림이 많이 없고, 디벤콘이라는 화가는 내게 완전 '듣보잡'이어서 약간 실망했지만 ^^;; SF MOMA의 건물 자체도 마음에 들고 상설전시된 그림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 빡빡한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세로 사진 구색 맞추느라 막 본인사진도 방출. ㅋㅋ 내가 의식하지 않고 찍힌 뒷모습 사진 좋아한다고 했더니만 큰언니 친구가 어찌나 뒷모습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지... (물론 앞모습도;;) 평소 내 자세가 얼마나 껄렁한지 많이 알게 되었다. ^^;;
암튼 칼더의 모빌 작품 넘 좋으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앤디 워홀 작품도 많고 상설전시 작품이 알찬데 5시 폐장에 맞춰 숨가쁘게 돌아보려니 어찌나 아쉽던지... 그래도 5시를 넘긴 후에도 거의 쫓겨나다시피 기념품 가게에 들러 우산도 장만했다. 짐 줄인다고 우산도 안 챙겨갔는데 캐나다에 가면 계속 비를 맞을 거라나 뭐라나... 마침 몇년 전 선물받은 우산도 잃어버렸겠다, 가느다란 핀스트라이프 들어간 분홍색 3단 자동우산을 골랐고, 며칠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미술관을 나와선 아직 저녁 먹기도 이르겠다... 유니온 스퀘어까지 걸어갔다. 주변에 막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걸 보면 나름 관광명소인듯. 그치만 여기저기 어찌나 공사중인 곳이 많던지 소음에 귀가 멀 지경.
아니 5시 넘었는데 미쿡 사람들 왜 퇴근 안하고 아직까지 일하지? 신기했다. ^^; 엄청 오래전이긴 하지만... 뉴욕과 시카고 갔을 때 보면 건설노동자들도 5시에 칼퇴근하던데.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전차를 또 안 찍을 순 없지... 여행자들인듯 마침 전차에 매달려 가는 사람들 발견해서 가까이서도 땡겨 찍고... (요번엔 전차 안탔음. 돌이켜 보니 샌프란시스코도 세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보다, 두번째가, 두번째보다 요번 세번째가 더 좋았던 것 같다.) .
여정 첫날의 저녁은 한식파인 나의 친구를 위해 (이미 점심때 먹은 햄버거 때문에 느글느글하다고 밥 먹고 싶다고 하심;;) 일식으로 정했다.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제대로 된 캘리포니아롤도 먹고 스시도 먹자면서...
가운데 둥근 그릇에 든 2개의 메뉴는...
왼쪽은 그냥 참치회(연어회였던 것 같기도 하고 ㅠ.ㅠ..) 오른쪽은 일종의 회덮밥이다.
큰언니(앞으로 E언니라고 하겠다;;)가 미국 맛집/쇼핑 평가 앱인 YELP의 신봉자여서, 우리가 갈 모든 음식점을 이 앱으로 검색해 별점과 후기를 꼼꼼히 따져 골랐다.
TACO BAR라는 이 집도 근방에서 엄청 유명한 집인지,바에서 맥주 마시며 30분쯤 기다렸다가 간신히 테이블에 안내되었는데 우리 빼곤 죄다 서양인들이었고... 우리가 2인분으로 시킨 롤을 옆에 앉은 이십대 여자앤 혼자 다 먹더라. ㅎㅎㅎ 암튼 회 싱싱하고 푸짐하고 맛있어서 좋았다!
해가 지면서 LA와는 딴판으로 쌀쌀해지는 날씨에 놀란 우리는 밤이라 어차피 커피도 못 마시는데, 다들 술도 안 즐기는 터라 부른 배를 꺼뜨리겠다고 일부러 한두 블록 돌아가긴 했어도 일찌감치 호텔로 들어갔다.
카디건을 걸치고도 으어 추워... 호들갑을 떨며 호텔에 들어갔는데 로비 한쪽 옆으로 안뜰이라고 할지, 중정이라고 해야할지 건물 중간에 저렇게 모닥불 느낌으로 불을 지펴놓았더라. 가서 불쬐자며 쪼르륵 달려나갔는데... 가스로 만든 불이라 가스냄새 나서 사진만 찍고 얼른 퇴장했다.
우리만 예민한 건지, 물론 저 주변엔 소파나 안락의자에 앉아 신문이나 책 읽는 사람들 꽤 많았다. 암튼 이렇게 여정의 첫날이 저물었다.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상설 전시중인 천경자 전시실이 어떻게 바뀌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시립미술관 건물 자체를 좋아하니깐 뭐 그냥 보러가자 결심했었는데,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 반액할인 받지 않았더라면 본전 아까워했을 것 같다. +_+
어떻게 그나마 내 눈에도 좀 익고 좋아라하는 르누아르 그림은 단 한점도 없는지 원. ㅋㅋ
물론 르누아르가 그린 어여쁜 소녀들의 아름다움과 화사함을 보는 기쁨은 더러 있었지만, 마지막에 한 방에 몰아놓은 여체 그림들도 그저 그랬고 (모델 몸매를 너무 심히 보정해놓은 광고 사진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나;;) 전체적으로 우와.. 그림 실컷 봤다.. 싶은 충족감이 덜했던 것 같다.
입장료는 13000원. 입장료만 놓고 보면 꽤나 야심찬 기획전인데 글쎄. +_+
그래도 전시 보러 갈 때마다 혼자 끙끙대는 놀이, 그림 한 점 가져간다면 뭘 가져가야하나 2, 3층 전시실을 유심히 2바퀴 돌며 괜한 고민에 빠졌고 두 작품 중 고민하다 어렵사리 하나를 골랐다. ㅋ
르누아르, 장미꽃을 꽃은 금발 여인
르누아르,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나의 선택은 왼쪽! 이유는? 오른쪽 그림도 예뻐서 좋았으나 고양이가 좀 무서워서.. ㅋ
그래도 요번 전시를 보며 르누아르와 내가 멋진 미술작품에 대한 관점이 똑같단 걸 알게 됐다. 사진 촬영이 금지여서 벽에 적혀 있던 글귀를 기억하진 못하겠는데, 암튼 예술은 무조건 아름다워야한다는 게 요지였다(고 기억한다). 역시.. 르누아르가 모공 하나 안 보이는 말간 피부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셀수없이 많이 그렸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군!
다른 때 같으면 집어온 브로셔를 책상에 세워놓고 몇달은 지켜보며 흐뭇해하는데, 색감이 하도 구려서 요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_-; 포스터에 나온 저 그림의 해맑은 소녀 얼굴을 어찌나 우중충하게 만들어놓았던지. 아트숍에 깔려있는 전시 기념품들의 색감도 하나같이 원작과는 동떨어진 게 많았다. 이왕이면 장미꽃 금발여인의 모습이 담긴 걸로 뭐든 하나 골라보고 싶었으나 어우 숭해... 해서 결국 요번 전시에 포함되지도 않은 엉뚱한 뜨개질 소녀 그림이 우울하게 담긴 저렴한 비닐파일 하나 집어오는 걸로 쇼핑을 끝냈다.
오후부터 눈발이 날려서 미술관 가는 발걸음이 괜스레 설렜는데 금방 비로 바뀌더니만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고 뭔가 공연을 한다던 것도 아무 말 없이 취소되고, 전시는 약간 성에 안 차고, 뭔가 마구 아쉬워서 뒤풀이 치맥에 괜히 욕심 부리다 속병이 도졌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 허세는 당분간 좀 참아야겠다. ㅠ.ㅠ
2017년 새해 들어 첫 전시관람은 훈데르트바서. 기대한 만큼 좋았다. 동화나라처럼 보이는 건축모형에선 가우디가 떠오르기도 했고 현란한 색감에선 얼핏 클림트 그림도 연상됐던 것 같다. 후기를 쓴다쓴다 미루다가 벌써 보고온지 한달도 훨씬 넘어 감흥이 가물가물 기억도 잘 안나지만 ㅠ.ㅠ 그나마 초기라서 사진 촬영도 허용해주었고(입소문 홍보용인지 요샌 초반에 작품 촬영 허용하다가 나중에 금지하는 전시 많은 것 같다) 마침 도록도 사온 터라 뒤적여가며 밀린 숙제를 해봐야겠다. 그날 만났던 그림들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놈의 허영심은 암튼...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나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주최측에서 '밀고 있는' 작품인듯. 사랑하는 여인에게 30일에 걸쳐 매일 fax로 보낸 그림을 이어붙인 작품이 있었다. 이름하여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 멀리 외국에 나간 연인이 매일 연서와 함께 이런 그림 보내주면 엄청 감동하지 않을까? ㅎㅎ 근데 나처럼 의심 많은 인간은... 나중에 작품 만들 욕심에 팩스 보낸 거 아니냐고 괜히 따지고 들지도 모르겠다. +_+ 그러거나 말거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여..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이렇게 천진난만한 느낌의 그림을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색감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
전시실마다 벽 색깔을 확확 달리 해놓았던데, 진회색, 진보라색, 주황색 같은 배경과 작품들이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대충 찍어도 막 화보같다고 자화자찬.. ㅋ
정식으로 건축을 공부한 적이 없다는데도 도면을 그리고, 또 그대로 건물이 지어지고 그런 사람에게 각 나라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기고...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일이겠지 싶어 더 대단하게 여겨졌음. 예로부터 건축가들은 흔히 반듯하지 못한 것을 잘 못견딘다고 하던데.. ㅋㅋ 가우디도 그렇고 훈데르트바서도 그렇고, 동대문디지털플라자를 설계했던 자하 하디드도 그렇고 이젠 곡선이 대세인 것도 같고... DDP도 우주선 같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보면 길게 경사진 잔디밭이 나오는데, 지표면과 길게 사선으로 이은 건물 지붕을 풀밭으로 정원으로 꾸민 훈데르트바서 건축물들 실제로 구경해보고 싶다. 창문권리라던가.. 나무 권리라던가.. 암튼 용적률따위 개나 주라는 듯 친환경적인 독특한 건물들을 많이도 지었단다. 실제로 열렬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고.
호주에서 폐 유리병으로 집을 지어 환경 친화적인 삶을 이어가기도 하고, 평생 환경운동가로 활약했기 때문에 지구를 지키자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빗물 활용하자고 호소하는 여러가지 포스터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도 <그린 시티>.
화가가 비오는 날씨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빗방울 모티프가 그림에 많이 등장했던 것 같다. 나도 비 좋은데! 그러면서 괜히 반색했음..
몇년 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가장 인기가 높았다는 <노란 집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도 많던데.. 나 역시 언제 한번 스케치로 따라 그려보고 싶은 작품이다. ㅎ
노란 집들 - 함께 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픕니다(Yellow Houses: It hurts to wait with love if love is somewhere else)
작품 부제를 읽고 보니... 저게 빗방울이 아니라 죄다 눈물방울이었어.. ㅠ.ㅠ
일본 여자를 애인으로 두었다던가.. 일본 목판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아예 백개의 물(百水)라는 호(?)를 정해 낙관도 찍은 작품이 많다. 백개의 물은 멋있으나 '백수'는 좀 웃김 ^^;
타오르는 물, 1991
브로를 위한 모자, 1994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드글드글한 가운데 색감이 예뻐서 찍어온 그림 두 점.
<타오르는 물>은 방콕 빌딩 꼭대기에서 그렸대고 물과 불을 서로 반대로 표현했단다. 오른쪽 그림의 주인공인 브로는 친구이자 스승인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ㅠ.ㅠ 사진 찍을 땐 그냥 예쁘단 생각 뿐이었는데 도록 읽은 뒤 다시 보니 파란 입술과 표정이 슬프게 느껴진다.
클림트, 에곤 쉴레, 그리고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특히 건물 ㅠ.ㅠ)을 직접 보러.. 오스트리아게 가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3월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관람료는 15000원. 도록은 3만원이다. 공식 포스터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진 도록을 사온 건 좋았지만, 저렴한덴 다 이유가 있는 건지 인쇄 질감과 색감이 대체로 좀 어둡고 푸르딩딩한 기운이 많이 느껴진다. 화려번쩍한 오리지널 엽서는 막 한장에 5천원씩 했던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 인쇄술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나? 쳇.. 실망이닷.
2016년 마지막 전시관람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이었다. 평창동 가나 아트센터에서 2월 5일까지 전시하고, 입장료는 3천원. 1, 2층 전시관이 꽉 차있고(전시 품목이 총 650점이라고;;), 건너편 구석의 작은 방까지 볼 거리가 많아서 가격대비 거의 횡재한 느낌이었다. 실은... 오후팀이었던 나와 달리 오전에 먼저 보러간 친구 하나는 심지어 주차장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티켓도 안 사고 그냥 공짜로 구경했다고. +_+
언뜻 생각하기론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수집했던 골동품들인가 했더니만, 그건 아니고 한국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공예품을 모아놓은 것 같다. 일상 생활소품 위주라서 재미난 것들도 많고, 예뻐서 갖고 싶은 것들, 신기한 물건들이 참 많았다. 옛날 사람들의 미감이란 참... 대단하다. 살림살이 넉넉한 양반들이나 아름다운 공예품을 누리고 살수 있었겠거니 싶은 마음에 괜히 심술이 난 순간도 있었는데, 사진엔 없지만 어느 일꾼이 벌통 나무 둥치에도 멋드러진 조각을 해놓은 걸 보곤 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본능은 양반이건 평민이건 다를 바 없었겠지.
엄청 추운 날이었고, 전시 보러 들어가기 전에 친구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식겁했다가 되찾은 뒤 막 온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에 찬 심경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감동하며 신나게 감상했다. 전시장을 나오기 아쉬울 만큼.
사진 촬영도 제지하지 않아서 아메바 기억력을 한탄할 필요 없이 원없이 마구 찍어왔기에.. 이 포스팅은 사적인 나의 감흥 기록보다는 사진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 또 어쩔 수가 없고.. ㅠ.ㅠ 그저 나의 기억 상기용일뿐.
희한하게도 전시장에서 제일 먼저 본 것이 '요강'이었다. ㅋㅋㅋㅋㅋ 중년의 우리들은 어린 시절 죄다 요강을 사용해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집에서 사용한 요강의 재질이 사기였다는 둥, '스뎅'이었다는 둥 킬킬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전시된 요강은 방짜유기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오른쪽 놋 요강과 함께 소음 방지를 위해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종이 요강'!
왼쪽 앞부분의 검은색 단지가 바로 종이를 꼬아 만든 '지끈'으로 엮은 종이 요강이다. 지끈으로 방수되는 요강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놀라워라 놀라워... +_+
맨 위쪽 알록달록하고 길쭉한 건 바느질용 '자'이고 그 아래는 바늘통이었던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활옷은 꽃무늬가 저게 다 빽빽한 자수다. 한벌 수놓으려면 최소 6개월쯤 걸린다는 것 같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물려 입거나, 온 고을에서 돌아가며 입었다지 아마. 어휴...
왼쪽 아래 인두도 예쁘고(손잡이 정교한 것좀 보소!), 사각형이든 아니든 실패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쓰시던 실패에도 옷칠을 하고 뭔가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기억이 아련히 나는데... 전쟁통 피란 통에 조선시대 물건이었을 리는 없겠지만 문득 그 실패가 막 아깝고 그리워졌다.
흔한 나무쟁반이려니 휙 지나칠 뻔 했던 이 물건들은 반짇고리란다. 한쪽 구석에 달린 작은 나무함에 바늘을 보관했고, 나머지 골무니, 실이니 하는 바느질 도구와 천을 여기 담아 일을 했겠지. 양갓집 규수나 마님이 자수 틀을 세워놓고 수를 놓는 광경이 막 상상되는 것 같았다. 전생에 침방 나인이 틀림없는지 바느질 도구에 특히 침을 질질 흘렸음. ㅋㅋ
둘이 나란히 있던 물건은 아니지만 가로사진이니 그냥 두개 붙여야겠다.
부채 섹션에서 '옛날 사람'인 우리가 또 반색했던 물건이다. 어린 시절 소풍 가면 꼭 이런 모양의 종이 부채를 하나씩 사오지 않았던가 말이다! 한바퀴 휙 둘러서 펼쳤다가 몇번 부치면 다 찢어지고 말았지만, 소풍 갈 때마다 괜히 사고싶어했으며, 여름이면 종이를 빽빽하게 앞뒤로 접었다가 절반 꺾어 풀로 붙여서 친구들이랑 만들기도 했던 부채가 그 옛날 조선시대부터 사용했던 휴대용 부채였다니 ㅎㅎㅎ
올 여름엔 빳빳한 종이 사다가 한번 다시 만들어봐? 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시장에서 딱 하나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면 나는 이 소반 중에 하나를 골라 갖겠다!고 생각하며 정말 심혈을 기울여 하나를 고르고 또 골랐는데 하나같이 정말 반질반질 탐이 나는 작품이었다. 막연하게 '개다리 소반'이라고만 알고 있던 이 앙증맞은 1인용 밥상, 찻상들은 원래 이름이 '호족반'이란다. 개다리가 아니고 호랑이 다리였어! '개다리 소반'도 없는 건 아니어서, 오른족 사진 중 왼쪽에서 두번째, 한쪽으로만 굽은 모양의 밥상 다리가 바로 주인공이다.
양반집에서도 군자의 미덕을 실천하고자 평소엔 반찬 서너가지에 장, 밥과 국을 올려 먹었기에 요 작아보이는 소반으로도 충분했다는 것 같다. 하긴 궁궐 연회나 잔칫집에서도 1인용 소반으로 각자 대접받았으니 내용물이 달라졌으면 몰라도 왕족이 아니고서야 혼자 커다란 상에 앉아 밥 먹은 사람은 없었겠다.
몇년 전 H백화점에서 밥상, 소반 특별전 할 때 제일 싼 게 4-50만원하는 걸 보고 흐엑~ 놀라 뒤돌아섰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은 더 비싸졌겠구나 싶다. 일단 전통 기법으로 소반 만드는 장인 분들의 맥이나 안끊기면 다행이지 ㅠ.ㅠ
여기다 배추와 무를 다듬어 담았다가 김치를 버무리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그러다가 박박 설거지 하기 참 힘들었겠지, 무거워서 어떻게 다루었을까 온갖 쓸데없는 걱정과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루 한 구석에 놓고 겨울에 과일을 담아놓고 집어다 먹으면 좋을 것도 같고.. 에효.
이건 다식판과 떡살.
다식판은 십수년 전 별별 걸 다 집에서 장만하고 싶어했던 왕비마마 덕분에 우리집에도 하나 있기 때문에 그리 신기할 게 없었는데, 저 동그란 떡살은 엄청 탐났다. 스탬프가 따로 없어! 물고기 모양의 떡이라니... 아 먹어보고 싶다. ㅠ.ㅠ
혹시 이게 국화빵, 붕어빵의 원조가 아닐까? ㅎㅎ
등불 가운데 신가했던 건 가운데 놓인 동그란 것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쓰는 등불이여? 궁금했는데 일종의 손전등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다. 들어보면 아랫부분이 뚫려 있는 모양새. 야경꾼 같은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고 안에 등불을 붙여 옆으로 들어서 비추는 방식이다. 돌이켜보니 사극에서 저런 등불 들고 가는 장면을 본 것도 같다. 촛대도 예쁘고, 등잔 장식도 정교하고... 호롱불도 우아하고..
오른쪽 사진은 대문장식이다. 울 외할머니댁엔 최근까지도 나무대문이 있어서 빗장을 열고 닫는 걸 해봤는데, 물론 저렇게 정교한 물고기 모양 장식은 아니고 그냥 둥글둥글하고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외할머니댁을 차지한 외삼촌이 과연 그 나무대문을 어찌하고 살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그 동네도 재개발은 물 건너간 거 같던데 흥!
마지막에 하마터면 못보고 나올 뻔하다가 사람들 따라서 골목을 이리저리 건너가 본 작은 전시실엔 도자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약간 찌그러진 것도 같은 이 달 항아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뒤쪽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푸르스름한 배경을 이루고 그 앞으로 따뜻한 조명을 받고 있는 동그란 항아리를 보면서, 아 이걸 왜 달 항아리라고 불렀는지 새삼 실감이 들었달까.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오려고 이런저런 사진앱을 죄다 동원했는데 그나마 이게 가장 비슷한 느낌으로 남은 듯.
일상에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름다운 물건들을 쓰고 살았을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가, 막상 그들이 이런 사치와 우아함을 누리도록 밑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겠나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것만은 아니지 싶다가, 어차피 문화라는 것이 대체로 가진 자들이 향유하는 것이지만 못 가졌더라도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것이야 뭐 다 마찬가지려니 했다. 그래서 나 또한 허세 같아 민망하면서도 이런 거 구경다니는 게 아닐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로이터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한번 가볼까나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던 차에 띠리링~ 세계난민기구에서 문자가 왔다. 기부자들 중에서 문자 신청을 받아, 특정한 날에 난민기구가 주최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될까 의심하면서도 문자 회신을 보냈는데, 우왕~ 초대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해서... 전시 종료를 하루 앞둔 9월 24일. 아침 일찍 예술의전당으로 달려갔다. 소박하게나마 음료도 준비할 터이니 9시반부터 와서 즐기라는 친절한 안내전화도 있었다. 토요일 오전 강남으로 가는 길은 나의 예상보다 더 막혔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커피와 쿠키를 즐길 여유가 있을 만큼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 찍기 좋아하시는 왕비마마를 모셔갔는데... 으어.. 모든 사진 설명문구를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인 걸 내가 까먹었던 게 실수였지만, 암튼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흑백사진부터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순간을 포착한 장면들과 사람들, 기록 사진의 변천 같은 것도 한눈에 들어왔고, 전시 구성도 재미있었다. 거울의 방으로 꾸며놓은 포토존도 마음에 들어서 얼른 거울에 비친 왕비마마와 내 모습을 담기도 했다. 민망해서 잘 찍진 못했지만... ㅋㅋ
음료와 함께 모든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준 이 종이가방 안에는 쿠키와 난민기구 이름이 새겨진 작은 에코백, 사진 엽서, 팔찌가 들었다. 저 하얀 라벨지를 뒤집으면 황송하게도 내 이름이 적혀 있다. +_+ 소소한 데까지 신경쓴 것에 깜놀. 완전 소액 기부자 주제에 누린 게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찔리기까지 했다. 난민기구 대표도 와서 인삿말에 기념사진 촬영에... 흔히 공공기관의 장들이 늘 그러하듯 딱 거기까지만 하고 가버릴 거라 예상했는데... 1시간 가까이 도슨트 따라다니며 설명을 끝까지 다 듣고 가더라. 그 부분 또한 깜놀.
하여간에 초대받은 사람들끼리 문 닫아놓고 특별관람하는 묘미가 뭔지 드디어 실감하고 뿌듯했다. 11시 개관을 기다려 줄섰다 들어오는 일반 관객들의 바글거림을 피할 수 있었으니! 게다가 혹시나 전시장 나설 무렵에 월기부금을 좀 더 올려 내라는 청약서라도 받으면 어쩌지, 괜히 불안한 의심을 품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에고 부끄러버라... 선뜻 내가 기부액을 더 올려낼 수 있을만큼 부자가 되면 좋겠다. ㅠ.ㅠ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는 사진들도 많았지만, 직접 보면 확실히 가슴에 와 닿는 충격과 느낌의 크기가 다른 것 같다. 받아온 엽서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왕비마마도 사진 공부를 더 하셔야겠다고 하니... 모녀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음은 확실.
2016년에 예정된 미술 전시 목록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혔던 호안 미로 특별전. 드디어 보고 왔다. ^___^ 연일 35도를 넘기는 뜨거운 날씨에 집밖으로 한발짝도 나가기 싫었지만, 막상 나가서 시원한 데 들어가면 또 집에 들어오기가 싫어진다. 게다가 호안 미로 전시장은 '추울 정도로' 완전 시원했다. 한 여름 최고의 피서! 방학이라 숙제하러 온 애들 많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비교적 한산해서 더욱 좋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비로소 펼쳐본 브로셔 글귀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통틀어 '최대 규모로' 기획된 전시란다. 정말로 작품들이 엄청 많다! 몇년 전 시립미술관에서 봤던,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작품은 보이지 않아서 처음엔 살짝 실망스러웠는데, 마지막 창작 시기 위주로 작품 수가 264점이래고, 그림 이외에 조소 작품이며 도자기 그릇, 화가의 작업실도 고스란히 옮겨다 놓았다. 볼거리가 풍부할 밖에!
근래들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엘 가보면, 다닥다닥 비좁게 그림을 구겨넣은 듯한 전시실 배치도 그렇고, 조명도 그렇고, 심지어 그림 걸린 배경 벽의 질감과 색도 영 마음에 안들어 툴툴거릴 때가 많았는데, 우왕 요번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시장은 내 취향에 딱이었다. 미로 작품들과 딱 맞춤한 듯한 배경과 조명! 거기다 플래시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 촬영도 맘껏 하게 해준다. 아이고 좋아라...
용량부족으로 머리와 마음에 아무리 담아도 금방 휘발되는 기억을 붙잡을 수 있도록 사진도 많이 찍어왔다. 감동.. ㅠ.ㅠ 같이 간 친구는, 내가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그림이라고 미로 작품을 간단히 소개했었는데 의외로 엄청 슬퍼서 울컥울컥 했다는 촌평을 남겼다.
현대미술 무식자인 나는 호안 미로가 프랑스 출신인 줄 알았었다. 퐁피두 전시때는 분명 표기도 '호앙 미로'였었다규... 근데 알고보니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이고 전쟁 통에 프랑스로 망명했었단다. 흐잉... 가우디와도 교류가 있었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시리즈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여행가고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마요르카 미로 재단 소유의 미술관에 가고시프다.. 흑..
그림감상은 늘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현대미술은 특히나 더 구구절절 해석하고 설명하는 게 더 난감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호안 미로는 보는 사람 보고 싶은 대로 보라는 의미에서 대다수의 그림에 작품명을 붙이지 않았단다. 웬만한 건 다 '무제'다. 원래 작품명 말고 무제인데도 굳이 이름을 붙인 건 판매상들이 세일즈를 위해 편의상 만들어놓은 것들이라고. 보는 사람 마음대로 봐도 좋다는 화가의 너그러움 또한 엄청 마음에 든다. 그림들이 예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고.... 암튼 참 아름답다. 눈호강 실컷 했음.
사진도 맘껏 찍을 수 있었겠다... 시시콜콜 잡소리보다는 맛보기로라도 그림을 올리는 것이 이웃들에게 더 도움이 될 듯하야, 이만 총총.. ^^;
[무용수]라는 작품이다. 어렵사리 하나를 골라 갖는다면 난 이걸로 하겠다. ㅋㅋ
마지막에 들른 기념품 샵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2천원씩 하는 큼지막한 엽서는 인쇄의 질과 색감도 좋았는데 어쩐지 한동안 세워놓고 보다 서랍에 쟁여두고 마는 엽서보다는 오래오래 유용한 걸로 사고 싶어서... 핸드폰 케이스(12000원)와 마우스패드(5000원)를 장만했다. 대림미술관 팬톤 전시 때는 기념품 가격이 대체로 너무 사악하다 느꼈는데... ㅎㅎㅎ 미로 전시 기념품들은 가격도 합리적이라 느꼈고 품질도 괜찮은 편이다. 해서... 사고싶은 거 많았는데 참느라 애썼음. ㅎㅎ
포스터는 진열대에 안보이길래 슬며시 다가가서 한 장 주면 안되느냐고 그랬더니 2천원에 판매한다고. 우왓.. 요즘 전시 포스터 거창하게 만들어서 막 만원 넘게 팔던데 웬떡이냐 싶어서 ^^ 얼렁 달라고 했다.
방문에 붙여둔 브레송 전시 포스터 아래쪽에, 김환기 브로셔를 떼어내고 눈누난나 흥얼거리며 붙여두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값비싼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흐뭇한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 ㅎㅎ 나는야 싸구려 포스터로도 비슷한 만족도를 얻을 수 있으니 참으로 조으다.
호안 미로 특별전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9월 24일까지 휴관일 없이 계속 전시하고.. 입장료는 15,000원이다. 들어갈 땐 좀 비싼 거 아닌가 했었는데 나오면서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
올해 기대되는 전시 중에 특히 전혀 모르면서도 괜히 땡겨서 보러가야지 마음 먹었던 변월룡 회고전. ^^; 성 때문에 굳이 관심이 갔던 건 아니고, 구소련 연해주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서 소련에서 주류 미술가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북한 미술에 큰 기여를 했으나 북한으로 귀화를 거부한 뒤 입국금지 조치를 당했고 소련에서 미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만 힘썼다는 개인사가 아무래도 흥미로웠던 것 같다.
미술관 홈피에서 미리 몇작품 맛보기로 본 것도 다 마음에 들었다. 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 틀림없을 텐데도 작품이 다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아니네!
암튼.. 그러나 봄날 내내 벼르다 전시 마지막날 가까스로 달려가 후르륵 스치듯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 마지막날은 하필 연휴 마지막인 5월 8일. ㅠ.ㅠ 내수진작인지 뭔지 고궁과 미술관 입장료도 연휴내내 무료여서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원래도 전시회 마지막날 드글드글 사람 많다는 걸 감안했는데도 와.. 너무 혼잡해서 도슨트 그림설명이 다 취소됐을 정도였다.
사람들 바글거리지.... 웬일인지 사진촬영을 금지하지 않아 다들 그림 감상은 뒤로하고 너도나도 휴대폰 카메라 눌러대는 소리가 철커덕 철커덕.. 지겹게도 시끄러웠다. 물론 나도 얼른 몇장 찍어왔지만..;;; ㅎ
소련의 유명 예술가들과 일반인들의 초상화도 엄청 많고, 사회주의 선전화도 보였지만 특히 좋았던 건 세계 곳곳을 그린 풍경화였다. 유화도 있고, 동판화도 있고...
변월룡, [겨울]
아마도 저 나무는 자작나무가 아닐까 상상했던 <겨울>이란 풍경화가 좋아서 한참 들여다보다 사람들 없을 때 얼른 한장 찍어왔다.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작은 뒷모습이 엄청 정겹다.
아래는 같은 구도의 풍경을 동판화와 유화를 나란히 걸어놓아 더욱인상적이었던 <나홋카의 밤> 풍경.
좌: [나홋카의 밤] 에칭, 1962
우: [저녁의 나홋카 만] 캔버스에 유채 1968
나홋카는 연해주의 도시라는 거 같다. 원래 변월룡이 연해주 고려인 유랑촌에 살다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 사이 난데없이 가족이 강제이주를 당했단다. 그나마 고향이면서도 고향이 사라져버린 상황. 그래서 변월룡은 그곳을 그리워하며 1년에 한번씩은 연해주를 찾았다는 듯.
저 멀리 빛나는 항구도시의 불빛과 하늘에 지나간 두 줄기 비행기 자국, 그리고 언덕 앞에 크게 구불구불 자란 소나무가 이국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낯익다. 소나무 탓인가? 금강산 그림도 있고 북한의 소나무 그림도 많은데, 구불구불한 소나무는 화가가 북한을 다녀온 뒤로 많이 그렸다는 모양이다. 소나무에 향수를 담았다나 뭐라나... 하여간에 그 소나무 풍경과 모내기 풍경 중에 "평안북도 정주"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었다. 우와 우리 할아버지 고향인데.. 그러면서.
4개의 전시실 중 마지막 주제가 <디아스포라의 풍경>이었고, 그가 그린 세계 곳곳과 소련의 풍경들이 모여 있었다. <북한 기행> 전시실에 걸려있던 을밀대와 평양 대동문을 그린 그림들도 좋았지만 딱히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고, 그외 내가 재미있어 한 그림은 바로 이것!
변월룡 [블라디보스토크 해변] 에칭, 1972
동판화가를 고모로 둔 나로서는 에칭이 얼마나 더 섬세하게 회화적인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잘 알기에 에칭 작품의 완성도는 아쉬울 수 있지만, 단순한 삽화 느낌으로도 바람 부는 순간을 포착해낸 것이 어찌나 유쾌하던지. 우산 날아가는 장면까지 ㅎㅎㅎㅎ 재미 있어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빗줄기며 휘청이는 나뭇가지며 그림 구석구석에 다 바람이 몰아친다. 거짓말 좀 보태면 바닷바람의 소금기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음. ㅎㅎㅎ
변월룡을 두고, 잃어버린 천재화가라고 하던가. 아무튼...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도 보길 잘했다 싶었다.
미술관 말고도 궁중문화축전 기간+연휴가 겹쳐 덕수궁 곳곳에 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바삐 전각들을 지나다보니 안에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 보았던 덕수궁 프로젝트만 못한 느낌... ㅠ.ㅠ 내 편견인지 궁궐이랑 하나도 안 어울리는 듯! 현대미술이 워낙 어려워서 내가 무식한 탓이겠으나.... 째뜬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설치미술 구경하는 사람은 하나도 못봤음. ^^;
이런 공이 덩그러니 대청마루에 놓여있는다든지...
하얀 카펫같은 건 축구경기장의 라인으로 쓰이는 하얀 잔디라고. 근데 이게 뭐? 밤에 조명 비추고 보면 더 그럴듯하려나? +_+
함녕전 돌아나오다가 떡 아래 사진 속 문을 봤을땐 우와 진짜 성의 없다, 하얀 커튼 달아놓고 끝이네? 그랬었는데....
그나마 반전이었던 건, 저게 천이 아니고 에폭시. ^^; 고체로 하늘하늘 천 커튼을 형상화해놓은 거였다. 뭐 그래도 궁궐 전각에 병원 칸막이 같은 흰 커튼이 웬말... 이란 생각은 안변했지만.
덕수궁엔 현대미술관 분관이 있고 전시도 늘 근현대미술만 한다는 건 알지만, 내가 늘 들어가보고싶어서 안달을 내는 궁궐 전각 안에다가 설치미술을 전시할 작정이라면 좀 더 작품선정에 신중했으면 좋겠다. 지난번 덕수궁프로젝트 아주 좋았다니깐요! ㅎㅎ
후배가 대림미술관 전시 초대권이 있다고 해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가자 가자 날을 잡았다. 봄맞이도 할 겸, 전시를 보고나선 서촌을 거닐다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 둘레길도 걷자고 했다. 문제는 여럿이 시간을 조율한 날짜가 '일요일'이었다는 것.
유명한 대규모 기획전시도 아니고 뭐 어떻겠어 막연히 짐작했으나 그건 우리의 오산. ㅠ.ㅠ 일요일 오후 대림미술관은 초대권교환부터 입장까지 구비구비 줄을 서서 3, 40분 기다렸다 들어가야했다. 전시장 내부도 당연히 사람들로 바글바글... 앞사람과 간격 유지하며 관람해달라고 진행요원들이 간간이 막 채근하는 분위기였다. 아이고...
째뜬 공짜란 말에 무슨 전시인줄도 모르고 무작정 보러간 거 치고는 몹시 뿌듯한 관람이었다. 5천원 내고(회원할인 받으면 3천원) 보라고 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았다.
올해의 '컬러'가 '로즈쿼츠'(Rose Quartz)와 '세레니티'(Serenity)라는 요상한 이름의 분홍색과 하늘색이란 걸 혹시들 아시는지? 해마다 패션계와 디자인계에서 유행할(?) 색깔을 미리 지정하는 건지 어쩐지 암튼 매년 연초가 되면 그해의 색깔이 발표되고, 여러 브랜드와 디자인 업체들은 또 색깔로 열심히 상품을 만들어 선을 보인다. 과연 얼마나 팔리는지는 내 알바가 아니고... ^^
위 사진 맨 위에 적힌 '팬톤'이라는 회사가 바로 해마다 색을 정하는 곳인데, 색과 관련된 디자인과 패션계에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색상을 관장(?? 맞는 말인가 모르겠다;;)한다. 미묘한 톤과 채도와 명도가 다른 색깔에 대해서 서로 설명하고 전달할 때 기준이 되는 셈.
소싯적 나의 첫 회사가 미국 의류회사였던 관계로 사무실에 팬톤 컬러북이 있었고, 뉴욕에서도 디자이너가 샘플을 의뢰한다든지 나염, 염색 색깔을 지시할 때 '페덱스 상자'에 고이고이 담아 '오리지널 컬러'라며 보내오던 우표만한 컬러칩이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또 색깔 이름은 얼마나 영롱하고 기발한지 ㅋㅋ 심심할 땐 컬러북 넘겨보며 괜히 시간을 때우기도 했었다.
암튼... 그 추억의 팬톤 컬러북 선망은 아직도 종종 수십만원, 백수십만원에 이르는 팬톤 컬러북 시리즈를 '쓸데없이'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키는 바.... 가끔 팬톤 코리아 홈페이지에 가서 괜히 이것저것 펼쳐보는 신세다 내가.
아 근데!
대림 미술관에 갔더니만 뙇~~!! 마침 팬톤 컬러와 연계된 색채와 디자인 전시가 아닌가! 하하하하...
팬톤 컬러칩과 어울리는 일상의 물건들 사진과
미묘하게 다른 사람들의 피부색...
알록달록 무지개처럼 물들인 펠트지와 가죽들(캠퍼 제품에 사용되는!)
그리고 그밖에 영롱한 색감을 자랑하는 인테리어 소품, 의자, 장식품들이 주르륵 전시되어 있었다.
대림미술관의 좋은 점은 사진촬영을 막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티켓이나 인증샷이 있으면 전시를 얼마든지 또 보러가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겠지...
파스텔톤으로 물들인 유리 촛대 작품들은 '이딸라'의 공방에서 나온 거란다.
북유럽풍 인테리어와 식기들이 몇년전부터 대유행이고, 나 역시 '이딸라' 접시들을 갖고 싶어서 호시탐탐 노리기만 할 뿐 차마 비싸서 사지 못하고 있었는데 핀란드 이딸라가 처음 시작은 유리공방이었다는 듯. 내가 무셔워하는 새 모양유리공예품들이 많아서 그쪽은 대충 휙 보고 이 영롱한 파스텔톤의 유리 촛대 구경만 실컷 했다. 하나에 45000원이던가.. 아트샵에서 살수도 있음. 근데 예쁜 색은 없었어!(라고 믿음 ㅋ)
의자들을 벽면에 색깔별로 높이놓이 쌓아놓았던 전시실에서... 그 유명한 임스체어부터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여러 브랜드의 의자들을 바라보며 침 깨나 흘리기도 하고...
3, 4층에 마련된 다채로운 인테리어 중에 하나 갖는다면 어떤 걸로 할까 괜한 고민도 하고...
하여간에 알록달록 눈이 즐거운 전시였다.
마지막 사진은 소파도 너무 귀엽지만... 왼쪽 도자기 소품을 눈여겨 봐야한다는 것. 베르메르의 하녀그림과 어울리는 위치에 도자기 주전자를 놓았다. 건물 창문과도 절묘하게 이어놓은 창틀 디자인도 예쁨.
2015년을 깔끔하게 끝낼 생각으로 best 목록 뽑기를 시작했는데 에효... 난데없는 감기기운으로 계속 빌빌대느라 새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도록 마무리를 못했다. 나름 건강관리를 한 덕분인지 이놈의 감기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진 못하고 묵직한 두통과 약간의 콧물로 깔짝깔짝 괴롭히고 있는데, 그게 아주 성가시다. 가을에 일찌감치 독감예방주사를 맞고도 감기몸살로 2주 넘게 끙끙 앓고 계신 왕비마마와 한 공간에 사는 사람치곤 그래도 이만한게 장하다 싶지만... 빌빌대려니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째뜬 2015년 정리와 함께 감기도 말끔히 떨어지기를!!
2015 책 best 3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 1,2>는 읽으면서도 이건 무조건 올해의 베스트야.. 라고 생각했었다. 아서 코난 도일 경과 사무변호사 조지 에들지의 실화를 재구성했다는데 그야말로 치밀하고 흥미진진하다. 추리소설이면서 회고록 같기도 하고, 전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 깊은 주제의식과 반전이 있었다. 소설은 통 못 읽고 빌빌대다가 두권짜리 소설을 홀라당 밤새가며 읽게 만든 점 또한 수훈 갑.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책을 사놓고도 차마 용기가 안나서 반년 가까이 못읽고 밀어두고 있다가... 기막힌 청문회 뉴스에 다시 분개하며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들었다. 당연히 많이 울었고, 다시 반성했다. 잊지 않겠다고 다들 다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무심함과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고 관계자들,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라도 올해의 책으로 여기저기 투표하고 다녔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유말고도 절절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폭삭 속았수다>는 11월에 다녀온 제주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선망으로 별점을 좀 과하게 준 면이 없지 않다. ^^; 제주 올레길 소개 이외에도 제주 지역 구석구석에 깃든 주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나도 몇 코스는 꼭 가봐야지 적어두긴 했는데.. 3쇄나 찍은 책치고는 만듦새가 부실한 느낌이 있었다. 오탈자가 꽤 눈에 띄었음. 그래도 제주는 무조건 옳으니까.. ㅠ.ㅠ
2015 영화 best 3
다 개봉작이 아니라 뒷북으로 본 게 많아서 2015년 베스트 영화 셋으로 꼽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고민고민하다 엄선했다. ^^;
<스파이>는 이토록 유쾌 통쾌한 여성 원탑 스파이영화가 또 있을까 싶어서 미련없이 골랐고
<월플라워>는 너무 좋아서 눈물 흘리며 연달아 두번이나 봤으므로,
<아메리칸 셰프>는 엄청 좋았던 건 아니지만 나의 식탐과 요리 본능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데다가 아들 퍼시 역할로 나온 아역배우가 너무 귀여워서!! ㅋㅋ 이 영화 역시 두번 봤다. (마침 케이블에서 또 해주길래...)
p.s. 으악.. 내 정신머리하고는...
본 영화 목록에서부터 <인사이드 아웃>을 홀라당 빠뜨렸다는 걸 좀 전에 컴퓨터 사진 정리하다 깨달았다. ㅠ.ㅠ
나중에 연말에 베스트 뽑을 때 쓰려고 사진도 미리 다운받아놨으면서... ㅠ.ㅠ
아효... 그래서 번외편으로 추가. ^^;
슬퍼할 일이 종종 생겨도 이젠 눈물대신 욕부터 튀어나오는 사나운 아줌마가 되어간다. 그도 아니면 무작정 참거나.. 슬픔과 눈물의 중요성을 애니메이션 한편 보고 다시 깨닫다니 참 나도 단순하지. 째뜬 디즈니와 픽사의 특징이 어우러진 작품이라 좋았음.
2015 드라마 베스트 3
올 상반기에 <풍문으로 들었소>는 거의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열심히 봤던 드라마다. 유준상 특유의 약간 과장된 연기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지는 듯 했고, 유호정, 고아성, 이준 이외에도 봄이 부모님들, 집사 부부, 비서들, 하다못해 백지연, 장호일까지 정말 허투루 연기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판타지요, 한계도 느껴졌지만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허상을 블랙코미디로 비꼰 시도 또한 좋았음.
<오 나의 귀신님>은 노상 똑같은 역할로만 나오는 것 같아 별로라 느껴졌던 조정석이 좀 쳐져서 그렇지 박보영과 김슬기의 깜찍하고 발랄한 연기랑, 뻔할 것 같은 '빙의' 소재를 미스터리 추리로 풀어나가는 전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쿡방에 아직 내가 넌덜머리 내기 전이라서 요리하며 벌어지는 로맨스라는 점도 싫진 않았던 듯. 맨날 여자 꼬시려고 남자들이 하는 응큼하고 뻔한 대사가 깜찍한 박보영 입에서 주절주절 나올 땐 어찌나 귀엽던지 ㅋㅋㅋ
나머지 한편은 <응답하라 1988>이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은 좋아라 봤고 연말에 베스트 드라마로 꼽기도 했지만 그 다음<1994> 시리즈는 통 재미가 없었다. 유연석 말고는 배우들도 마음에 안들고... 보다말다 막판엔 최종회를 안보기도 했을 걸. 쓸데없이 호흡이 질질 늘어지고 장면이며 대사며 괜히 길게 멍하니 정지된 듯한 부분이 너무 많고, 뻔한 남편찾기 놀이에 치중하는 게 싫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엔 아예 안 보리라.. 그러고 있었는데 ^^
뜻밖에도 동생네(동생이 88학번이고, 올케가 덕선이 또래니깐)와 조카들이 열혈 시청자가 되더니만. 울집에 와서 하도 드라마 이야기를 하길래 ㅋㅋ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간부터 보다가 아예 첨부터 정주행에 돌입했다.
덕선이, 정팔이. 택이 같은 애들도 귀엽고 별 대사 없이 그냥 눈을 깜박깜박하는 얼굴이 화면에 비추기만 해도 헤벌쭉 웃음이 나는 진주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난 이 아줌마들 3인방이 너무 웃기다! 특히 치타여사 라미란 최고! ㅋㅋㅋ 신파스러운 가족 이야기인데도 또 그 묘미가 넘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그런 추억돋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물론 내가 마당에 수돗가 있는 집에서 뜨신 물 데워 머리 감고, 이웃집에 반찬이랑 밥 나르며 지내던 시절은 80년대 초였지만...)
하여간에 그닥 본 드라마도 없거니와 이만큼 열심히 등장인물에 애정하며 보는 드라마도 별로 없겠다 싶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냥 베스트 드라마 3에 넣어버렸다. 미친 스케줄로 결방까지 하고, 종영까지 겨우 4회 남았는데... 어차피 덕선이 남편감은 빤한 거고... 라미란 여사의 활약이 계속 기대될 뿐이다. ^^
링크한 대로 전시 구경 다닌 후기는 비교적 매번 소상히 포스팅했지만, 베스트 셋을 뽑는데 한참 걸렸다. 리움미술관의 세밀가귀말고는 다들 조금씩아쉬운 점들이 있어놔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점을 다시한번 느꼈다. 이젠 무조건 기대를 버리고 보러가야겠다. ㅎㅎ
2015 등산 best 3
사진 왼쪽부터...
남양주 운길산(3월)
대구 비슬산(5월)
인제 방태산(10월)
매달 둘째주 토요일마다 단체산행에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개근을 하진 못했다. 북한산 2번, 북악산, 청계산, 수락산, 대모산, 구룡산, 운길산 같은 근교 산행도 좋았지만 역시 인상적인 건 멀리 대절버스 타고 가야하는 높은 산들이었다. 언제고 눈덮인 한라산과, 아무 계절이든 지리산에 갈 날이 있으려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15 지름 best 3
아이폰6
숏커트
북해도 여행
3가지 지름이 이 한장의 사진에 다 담겼다. 삿포로 공원의 가을을 배경으로 숏커트 머리 그림자를 아이폰6로 찍다. ^^;
새로나온 아이폰6s의 성능이 몇 가지 탐나긴 하지만 4년만에 고민고민 개비한 새 휴대폰으로 뭐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아무케나 찍어도 사진도 잘 나오는 것 같고, 시리 기능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
지름에 숏커트를 넣은 이유는 아마도 수년간 또 이 머리를 고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주 미용실에 가야하는 건 좀 귀찮지만... 지루하게 단발머리를 왜 그렇게 오래 하고 다녔나 의아할 만큼 짧은 머리가 가뿐하고 아주 좋으다. ㅎㅎ
얼결에 친구따라 떠난 여행이긴 해도, 허리까지 높이로 쌓인다는 삿포로의 눈을 못보긴 했어도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11월은 여행의 달이었다. 어쩐지 만만해서 자주 가게 되는 일본은 이제 오사카랑 오키나와만 가면 저 북쪽부터 남쪽까지 얼추 다 일본을 섭렵하는 듯한 느낌. 2016년에는 또 좀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2015 Worst 3
수락산 낙오. 포스팅도 했다시피 나 혼자만의 실수는 아니지만 우길 땐 우겨야한다는 것,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때 당황해서 길 같지도 않은 길로 숲을 헤치고 걷다가 나뭇가지에 찔린 팔엔 영구히 흉터가 남았다.... ㅠ.ㅠ
신사동에서 길을 잃다. 11월에 한국 다니러 온 친구와 언니들의 서울 숙소가 강남 신사역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주로 국내외 여행을 다니느라 며칠 묵진 않았지만 암튼... 서울 관광이 좀 일찍 끝난 어느날 저녁, 부른 배도 꺼뜨릴 겸 한강 둔치로 밤산책을 나갔었다. 마음 같아선 한강변 야경을 보며 세빛둥둥섬까지 쭉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너무 멀다 그러면 올 땐 택시타지 뭐.. 그럼서) ㅋㅋ 노상 차만 타고 다니시는 LA 사모님들은 신사동에서 한강 둔치까지 걸어간 것만으로도 버거워했다. 갈 땐 누구한테 묻지도 않고 요리조리 굴다리를 지나 잘만 찾아갔는데... 돌아올 땐 방향감각 뛰어나다고 믿고 아파트 단지로 질러가려다가... 신사동 잠원동을 뺑뺑 돌며 헤매다... 주민들에게 신사역 방향이 어딘가요.. 몇번이나 물은 끝에 겨우 엉뚱한 반대 길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산속도 아니고 서울 한폭판에서... 개망신. 다시는 어디가서 방향감각 자랑하지 않겠다!
토지 소송. 어찌저찌해서 토지 분할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집에 소송이 걸렸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을 지어 팔면서 땅주인이 나중에 재건축을 예상하고 토지 일부를 분할 소유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럼 불법 알박기 아닌가?) 몇년 전 대규모 재건축 가능성이 완전 사라지자 뜬금없이 그 땅을 우리 더러 구매하라는 내용증명이 왔었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그래서 그냥 개무시하고 말았는데.. 어느날 문득 법원 소송장이 날아왔다. 젠장... 그마저도 난 이리저리 좀 알아보고 법원에 온라인으로 몇가지 서류제출하면 당연히 (상식적으로) 우리가 유리하고 가뿐하게 판사의 조정을 거쳐 승소할 거라 믿었는데... ㅋㅋ 법은 역시 어려운 것. 놀랍게도 무조건 우리가 지는 소송이란다. ㅠ.ㅠ 결국 부동산 전문 변호사 소개받고 상담받은 결과, 형식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지만 내용상으로 이기는(?) 전술을 펼쳐야한다고...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피같은 쌩돈 입금하고서도 소송끝날 때까지 몇년은(빨라야 1년?) 집 팔기 글렀다. 내 잘못도 아니고 뜻밖의 재앙이긴 하지만, 웃기는 건 변호사가 소송서류 제출한 다음주엔가 몇년 째 아무 소식 없던 부동산에서 돌연 집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오 정말 인생은 아니러니하다!
2015년은...
나의 번역인생 20주년이라는 이유로 뭔가 자꾸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미래를 계획해두어야할 것만 같은 한해였다. 그러나 그건 괜히 조바심만 쳤다는 뜻일뿐 실제로는 그냥 다른 해와 똑같이 방만하게 보냈고, 드디어 실질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정확히 첫 번역서가 나온지 만 20년만인 12월 10일 현재, 완전 허당 백수가 아니었을 기뻐해야하겠으나 2016년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에 실제론 이미 벌벌 떨고 있다.
홀로 꿈꾸던 프리랜서 근속파티(?)는 25주년에나 하기로... 5년이란 유예기간을 정했지만, 당장 올 한해도 불투명한 마당에 2020년의 내 모습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버텨보는 수밖에. 다만 부디 다시 좀 성실해져야겠다! 아쉬운 소리도 좀 하고.. ㅠ.ㅠ 그러니깐 2016년의 목표는, 한해 정리 포스팅에 반성, 한심해 따위의 태그 없이 약간이나마 희망의 서광 같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으로 정해야겠다. 일단 코앞의 일에 집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