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09.03.17 화가들의 천국 15
  2. 2009.03.06 근대 엿보기 10
  3. 2009.02.27 그림책 구경 12
  4. 2009.01.06 2008년 정리 10
  5. 2008.08.29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 12
  6. 2008.08.16 고흐의 각도 11
  7. 2008.01.21 다시 찾은 고흐전 17
  8. 2007.11.28 아 고흐... 9
  9. 2007.11.13 고흐 전시회 12
  10. 2007.10.07 고흐의 아몬드 꽃 7

화가들의 천국

놀잇감 2009. 3. 17. 16:00

역시나 오래 별렀던 퐁피두센터 특별전에 다녀온지 일주일이 다 됐나보다. 감동은 벌써 많이 식었지만 늦게라도 적어두지 않으면 연말에 2009 베스트 정리할 때 멍하니 까먹을지도 몰라서 조바심이 났다.
베스트 3에 드는 전시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
<퐁피두센터 특별전-화가들의 천국>은 기대를 크게 했는데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드문 전시였다. 호앙 미로의 대작들은 비행기에 실을 수가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캔버스를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는 예행연습을 파리에서 해본 뒤에 옮겨왔다는 둥, 이미 뉴스에서도 익히 선전을 했기 때문에 혹시나 과하게 기대하며 상상력을 부풀렸다가 펑 바람터진 풍선처럼 실망할까봐 걱정스러웠는데, 전혀 기우였다는 얘기다.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아서 그림을 좀 오래 감상하려다 보면 간혹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발을 밟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쉽기는 했다. <꽃보다 남자>에서 윤지후가 시립미술관 휴관일에 금잔디만 홀로 데려가서 구경시켜주던데, 젠장 나도 그러구 싶단 말이닷~!! 언제부턴가 나 같은 문화허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아져 좀 유명하다 싶은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은 언제나 도떼기 시장이다. 으휴...

과거 경험상 시립미술관의 도슨트는 덕수궁 미술관 도슨트들보다 워낙 성의 없이 설명을 하는 데다(늘 비싼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에 관람객이 많아서 그러는 것일까?)  횟수도 몇번 없어 시간도 맞질 않아서 이번엔 거금 3천원을 들여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처음엔 매표소에 사람들이 없길래 도록을 사서 읽어보며 다닐 작정을 했는데 전시장에 들어가보니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기 때문.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도 오디오 가이드 내용은 너무 피상적인 이야기만 담겨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어폰이 귀를 아프게 하는 끼우기 형태가 아니라 다행이었고 미리 그림 공부를 많이 안하고 갔으니 없는 것보다는 나았음.

미로, 마티스, 피카소, 샤갈, 브라크, 보나르, 칸딘스키, 파울 클레... 이런 것이야 말로 <거장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싶은 멋진 작품들을 연이어 만날 수 있었으니 전시실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는데, 더욱 기뻤던 건 깜짝 선물처럼 장 뒤뷔페의 그림도 여러 작품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나 뉴욕에 가지 않는 한 다시는 뒤뷔페 그림을 보지 못할 거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가, 동행이었던 정민공주랑 나랑 거의 폴짝폴짝 뛰며 신나했다.

장 뒤뷔페 [행복한 시골풍경]

물론 이 사진의 색감은 원작보다 훨씬 흐려 속상하지만 동심의 세계를 담아낸 듯한 뒤비페의 그림들이 연상되는  시기의 작품. 미로의 대작 옆에 걸려 있던 검은 바탕의 암호같은 선들이 어지러이 그려져 있는 농-리유 연작도 인상적이었지만, 난 역시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좋다!

정말로 천국이 있는지 어쩐지, 아니 그런 건 없다고 거의 믿고 있지만, 정말로 천국이 있고 내가 거거 갈 수 있다면 나는 만날 멋진 화가들의 그림이나 휘휘 보러다니는 걸로도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안 아프게 이왕이면 훨훨 날아 다니면서 ^^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흠칫 숨을 멈추게 되는 거장들의 대작이 많았고, 올리브 잎들을 모아 향기로 방을 꾸며놓은 페노네의 <그늘을 들이마시다> 같은 작품은 참으로 기발하고 놀랍고 싱그러워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1999-2000년에 만든 작품이라는데 지금까지도 그윽한 올리브 잎 향기가 처음엔 얼마나 더 강렬하고 생명력 넘쳤을지!

좋은 작품들이 하도 많아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동선과 상관없이 2, 3층을 여러번 오가며 특히 좋았던 작품을 보고 또 보고, 마음에 담아두려고 꽤나 노력을 하며 미술관을 나서기 전에 거의 언제나 습관적으로 하는 순위 매기기를 했다. 어느 그림이 제일 좋았는지, 누가 딱 하나만 가지라고 하면 어느 그림을 갖겠는지... ^^

사실 이번엔 좋아하는 화가들과 작품들이 많아서 선뜻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으나 추리고 보니 최종으로 남은 후보작이 둘 다 마티스였다.  

<폴리네시아-바다>와 연작이었던 이 <하늘>은 종이를 오려 붙인 단순한 콜라주 작품이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어찌나 눈이 시원해지던지...
아 참..
<꽃보다 남자>를 꾸준히 본 사람이면서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 카피가(사이즈가 훨씬 작음) 드라마 초반부에서 F4의 휴게실 벽에 걸려 있었음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
나는 전시회에 빨리 못가보는 대신 퐁피두전시회 공식 홈페이지에 하도 들락거려서 알고 있었으므로, 언뜻 뒷배경에 이 그림이 스칠 때마다 속으로 어서 그림보러 가봐야 할 텐데, 라고 부르짖곤 했다. ㅋ (구준표네 집엔 보나르의 <미모사가 피어 있는 아틀리에>와 마티스의 <목련이 있는 정물>, 페르낭 레제의 <여가> 등도  걸려있다! ㅎㅎ)

퍼온 사진으로는 역시나 원작의 생생한 감동과 느낌을 전하기에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굳이 사진을 퍼다 붙여넣는 것은 순전히 기억력 나쁜 나를 위한 배려다. 도록이 있기는 하지만, 매일 들락거리는 블로그만큼 접근성과 유용성이 뛰어난 건 아니니까...

암튼 <붉은색 실내>는 눈부신 빨간색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은 느낌...

샤갈의 <무지개>도 좋기는 했지만 나의 새공포증 때문에 그의 그림에 빠지지 않는 닭머리가 무서워서 집에 걸어두면 밤에 으스스할 것 같다. ;-p

누가 정말로 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미술관 카페에 앉아서 정말 꽤나 진지하게 어느 그림을 가질 것인가 오래 고민을 하다가 나중엔 속으로 킬킬 웃었다. 누가 준댔냐고!!
그래도... 어쨌거나... 나의 최종적인 선택은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
만약에 집이 갤러리만큼 공간 많고 벽이 넓다면 마티스의 <폴리네시아-하늘>을 갖겠지만, 지금 당장 그림을 하나 집어들고 나가라고 한다면 당장 걸어둘 곳이 마땅칠 않으니까... 라는 것이 나의 변명이었음.
남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을 보다가 만일 작품을 하나만 가질 수 있으면 어떤 걸 가져갈까 고민하는 과정은 가슴아픈 갈망이면서 동시에 대단한 행복이다.

아참..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불만은, 한장에 무려 천원씩이나 하는 공식 엽서들의 인쇄 품질이 바닥이라는 것!
차라리 하나은행에서 입장할 때 공짜로 주는 엽서의 인쇄상태가 더 나은 느낌이니 오죽할까.
원래도 미술작품의 색감을 제대로 살려내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 형편없는 색감의 엽서들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마티스의 붉은색을 완전 벽돌색으로 해놓질 않나, 보나르의 화사한 봄빛깔들을 칙칙한 갈색으로 해놓질 않나... 전시 관람 마치고 아트숍에서 엽서 몇장을 사는 것이 큰 낙이었던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한장도 살 수가 없었다. ㅠ.ㅠ 그나마 5천원짜리 소도록을 3천원에 할인판매하고 있어서 구입하고는 애써 위로를 했지만... 앞으론 부디 엽서 제작업체 선정에도 신경을 좀 써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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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엿보기

놀잇감 2009. 3. 6. 15:52

덕수궁 입장료 단돈 천원으로 한국근대미술 걸작전을 볼 수 있다는 낭보를 접한지 한달만이었나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 오후 정동으로 향했다. 궂은 날씨가 얄밉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가 오니 미술관이 한적하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좀 춥긴했어도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고궁 뜨락을 거니는 맛 또한 감격스러웠다. 드물게 석조전 동관까지 개방해 전시를 할 만큼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음에도, 전시는 입이 헤 벌어질 정도로 대규모라 운수라곤 통 없는 내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느낌이었다. 


미술관 서관과 동관 입구에서 각각 나눠주는 무료 티켓도 어찌나 앙증맞고 예쁘던지 책갈피로 쓰거나 간직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소중히 가져와 스캔했다.
표에 인쇄된 건 아시다시피 박수근과 천경자의 그림.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를 눈앞에 마주한 순간 나도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혹 상고머리를 하고 저렇게 아이를 들쳐업은 울 엄마의 사진을 언젠가 본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전시된 2백3십 몇점들의 작품은 겨우 삼분의 일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고 나머지는 다 빌려온 것들이란다. 클림트의 작품을 대거 만나보는 건 금세기에 또 없을 거라는 광고에 힘입어 예전 미술관이 매일 문전성시라던데, 우리나라 근대화가들을 이렇게 대거 모아놓은 전시 또한 금세기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빴다. 티켓엔 본인이 몇번째 관객인지 알아볼 수 있게 숫자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본관은 12만명이 넘은 반면 동관은 인원이 그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보아 다들 시간이 빠듯했나보다 싶었다. 하기야 도슨트의 설명 1시간을 포함하여 우리도 양쪽 미술관을 관람하는데 꼬박 3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번 더 가야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이인성, 김기창, 김환기, 장욱진, 구본웅, 박래현, 천경자... 이름을 대기에도 벅찬 유명화가들이 무려 105명이나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오죽하랴!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았던 작품들도 알현 가능했고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들도 더러 있어서 더욱 반가웠는데, 월북한 화가라 최근에야 비로소 해금되었다는 이쾌대 화백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비롯한 낯선 작품들은 역시나 눈길을 끌었다. 자유연애의 열풍이 불었다는 근대의 그 시기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미래의 부인 유갑봉 여사에게 보낸 절절한 연서도 함께 공개되어 있었으니, 비오는 봄날의 정서와 어찌나 잘 어우러지던지.
해방전후의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서 당시를 상상하려니 얼마 전 읽은 책 <서울은 깊다>와 많은 부분들이 겹쳐지는 듯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변모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한 역사 속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들,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그 시절 이 나라의 면면들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모습을 엿보는 기분은 퍽 묘했다. 너무 가난해서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낸 뒤 담뱃갑 은박지 뒤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가 하면, 당시 집 한채 값도 넘는 800원이라는 외상값을 갚으려고 유학비를 타 외상값을 청산하고 유유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종우의 그림도 있었다. 내노라하는 당대 거부의 자식이었기에 서양 화구와 서양화를 접할 수 있었을 수많은 화가들의 친일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 같았다.  정치적인 향방과 상관없이 예술은 예술이니까. 그래도 아는 게 병이라고, 조각을 그림보다 덜 좋아하긴 하지만 친일 문제를 거론할 때 제일 먼저 손꼽히는 김경승의 조각품을 보는 시각은 확실히 심드렁해서 휙 지나치게 되더군. 

인상적인 그림들이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든데, 그래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기 마련이다. 동관 전시실에 아담한 화실을 옮겨다 재현해 놓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유쾌하고 귀여운 느낌의 장욱진 선생의 그림들도 좋았고,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들은 말하면 잔소리고, 이응노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어 기뻤다. 특히 <취야>는 비도 오겠다 술한잔 해야할 것 같은 흥겨운 느낌을 풀풀 풍겨 그림을 보다 말고 마구 목이 말라졌다. ^^

이응노 [취야]

장욱진 [수하樹下]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했던 그림은 박래현의 <노점A>.
중3때였던가 고1때였던가, 학교 미술시간에 판화를 할 때, 나는 하필 미술책에 있던 이 그림을 판화로 시도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박래현이 김기창화백의 부인이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큐비즘을 시도하여 이 작품으로 국전 대상을 탔다는 뒷이야기는 알지도 못할 때였고, 그냥 시장 좌판의 여인들을 단색의 판화로 모사해도 멋있을 것 같았다. 미술선생님은 굳이 어려운 걸 파겠다고 애쓰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찼지만 완성된 작품은 꽤나 뿌듯하게 나왔고, 특히 리어카에 앉아 팔을 괴고 있는 아줌마의 표정과 머리에 인 광주리에 담긴 생선이 원작보다 생동감 있다는 과장 섞인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미술책 속 사진과 소싯적 내 판화의 밑그림으로만 알던 이 그림은 실제로 보니 꽤나 크기가 큰 대작이었는데, 건너편 벽에 걸린 김기창 화백의 예쁜 여인들 그림과 함께 번갈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전시는 3월 22일까지.
평일 전시는 6시까지, 금토일엔 8시반까지 연장 운영된다. 얼마 남진 않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고, 나 역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무료 관람에다 전시작품이 많아 복권 당첨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마지막에 뜻밖의 근대 엿보기 경험을 하나 더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번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루라는데, 하필 우리가 간 날 무성영화를 상영하다니. 여러모로 공교로웠다.
제목도 익히 들어본 바 있었던 <검사와 여선생>.
현존하는 마지막 변사 신출 할아버지의 설명으로  1948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를 난생처음 덕수궁 미술관 로비에 앉아 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난생처음 영화를 접했을지도 모를 옛날 사람들의 설렘과 내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든이 넘으셨다는 신출 할아버지는 결코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귀띔으로 영화 설명을 시작했지만, 음향과 발음의 문제로 삼분의 일은 못알아들으면서 우린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조악한 초기 영화 기술도 그렇거니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표정은 정말로 요즘도 코미디에서 모사하는 상투적인 표현의 전형이었는데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혹시나 관객이 졸까봐 그러시는 것인지 중간중간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이름을 불러대시는 변사 할아버지의 말소리도 재미났고, 당시에 자막의 맞춤법까지 손볼 여유가 없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그땐 그렇게 맞춤법을 소리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썼던 것인지 가끔씩 출몰하는 자막의 <이튼ㅅ날> <며칠을 굴멋니?> <엇째서 그러니> <내>(네) 같은 글씨들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와글와글 웃어댔다. 

잠깐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인데, 들고 돌아온 팸플릿과 티켓을 보면 확실히 현실이라 오늘까지도 느낌이 더욱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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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구경

놀잇감 2009. 2. 27. 16:43

그간 보고싶은 전시가 무척 많았는데 바쁨과 게으름을 핑계로 통 움직이질 못했다.
그나마도 봄방학 끝나기 전에 조카와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조바심이 게으른 몸을 재촉해 간신히 보러 갔던 게 성곡미술관에서 하는 CJ 그림책 축제.
같은 기간에 볼로냐 그림책 전시회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조선일보에 박힌 미운털에 더하여 이쪽엔 그림책과 원화 말고도 설치미술 작품도 있으니 어린 조카들이 보기에 더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의 열성은 참 대단하여, 그림책과 친해지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까지 죄다 데려온 바람에 동화작가의 낭독시간에 빽빽 울어대질 않나, 설치미술 작품을 마구 흔들어대질 않나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약간 인상이 찌푸려질 때도 있긴 했다. 하기야 그래도 엄마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을 책과 친하게 만들어주고 싶겠지.
나의 조카들은 제 엄마한테 미리 하도 교육을 받고 온 탓인지 네살짜리 녀석도 조곤조곤 속삭이며 전시장을 돌아다녀 꽤나 뿌듯했다. 다만, 가끔 광화문에 볼 일 있을 때 부러 성곡미술관에 가서 조각공원 내다보며 마시는 차 한잔이 참 좋았었는데 치사하게도 입구 물확에 개구리밥풀을 심어놓았던 원래 찻집은 아예 문을 닫았고, 작은 건물에 있는 현재 찻집에선 이제 호두 들어간 수제 쿠키도 팔지 않더군. ㅠ.ㅠ 그나마 그 찻집을 이용하려면 전시 매표소에서 찻집 이용권까지 미리 사야했다. 그거야 원래 알고 가긴 했지만, 옛날엔 유자차 같은 전통차도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파는 것도 커피 아니면 병에 든 주스와 물 뿐이라 조금 빈정상했다.
전시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예쁘고 맛있는 찻집도 그냥 계속 유지해주었으면!
 
그래도 좋았던 건, 전시장에서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마음대로 사진을 찍게 해주더라는 것. 사실 우리나라처럼 그림전시장에서 사진찍기를 금지하는 데는 없는 것 같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제아무리 유명한 명화도 다 사진찍게 해주던데, 대체 왜 우리나라만 카메라에 인색한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국내외 그림책과 CJ에서 개최했다는 그림책상 원화들, 데이비드 위즈너의 특별초대전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신났다. 내가 어렸을 때의 뻔한 그림책과 달리,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이야기가 돋보이는 요즘 그림책들은 정말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도 재미나고 신기하다. 어른인 나도 그러니 아이들은 얼마나 더 행복할까. 출판계가 아무리 불황이라도 우리나라 엄마들의 교육열 때문에 거의 끄덕없는 분야가 아동서적이라는 건 그나마 고무적이다. 그렇게 책을 열심히 사주고 읽히다가 아이들이 학교에만 들어가면 죄다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열에 하나, 스물에 하나쯤 커가면서 계속해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겠지.

일찍 보러 갔으면 조카나 아이들 데리고 한번 가보시라고 다른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전시였지만 3월 1일에 끝나는 전시에 거의 막차를 탄 셈이니 이런 글을 쓰는 건 순전히 기록과 자랑의 목적 외엔 쓸모가 없어졌다.
올해의 첫 전시회를 느즈막히 끊었으니 어서 퐁피두 전시회도, 클림트도 보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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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리

놀잇감 2009. 1. 6. 21:38

토룡마을 주민들이 대거 보이코트할 양상을 보여 2008 베스트 포스팅 릴레이가 존폐위기에 놓였다니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나라도 동참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을 이런 식으로나마 정리해두는 건 나 같은 비기록형 인간에게 퍽 훌륭한 갈무리방법이므로, 옆구리 찔려서라도 적어두면 십년쯤 후에 차곡차곡 돌아볼 때 굉장히 흥미로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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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나 박물관엘 가려면 미리 공부를 좀 하고 가야 더욱 폭 넓은 감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을러터진 내가 미리미리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작가와 작품을 미리 알아보고 책이라도 한 권 찾아보는 때는 지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그냥 준비 없이 불쑥 가서 예상 밖의 감동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고 변명은 하지만, 그림은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옳다.

째뜬 아무 준비 없이 프리다 칼로 그림이 하나쯤은 왔겠지 싶은 마음으로 찾아간 전시회는 대체로 좋았다.
덕수궁 뜰엔 범불교도 대회를 마친 사람들이(아무래도 지방에서 상경하신 듯) 삼삼오오 한가롭게 거닐었고
미술관 앞 계단에 앉아 쉬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지만 그에 비해서 전시장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오디오 가이드 이어폰이 국립박물관에서 본 것과 똑같기에 귀 아플 것 같아 아예 빌릴 생각도 안하고
반갑게 매시간 정각마다 있는 도슨트의 설명에 기대를 했는데, 매시간 설명이 있다는 건 그만큼 설명이 간단하고 빨리 끝난다는 사실을 왜 짐작 못했을까. -_-;;

과거 덕수궁 미술관의 도슨트 설명은 대체로 꼼꼼하고 정성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하루에 두세번 밖에 설명이 없긴 했다) 찬찬히 중남미 현대미술사를 조망해준 건 좋았지만, 이번엔 그림 설명이 너무 부실했다. 나중에 보니 우리 다음 시간대의 도슨트는 그림 위주로 훨씬 더 설명을 자세히 해주는 바람에 1층 전시실은 다시 따라다니기도 했다. 어딜 가나 복불복, 운이 좋아야한다는 걸 실감했음. -_-; 오디오 가이드도 전체 그림을 설명해주는 게 아니니, 그저 제대로 감상을 원하면 미리 공부해두는 수밖에 없다.
오늘 덕수궁 미술관 홈페이지에 가보니, 궁금했던 작품들 설명을 그래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전시회에 가실 분이 있거든 참고하시길.

중남미 미술가에 대해선 프리다 칼로와 그 남편 디에고 리베라, 딱 두 사람밖에 모르는 주제에 멕시코, 베네수엘라, 페루, 콜럼비아, 도미니크 공화국 등지의 국민화가들을 난생처음 만난다고 생각하니 민망하면서도 뿌듯했다. 그들의 민중미술이 우리나라 민중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는데, 벽화운동을 위주로 꾸민 제1전시실에선 확실히 낯익은 검은 외곽선과 색감들이 느껴졌다. 4군데 전시실에서 각각 다른 주제로 작품들을 전시해놓았는데 역시 나는 초현실주의와 구성주의, 옵티컬 아트 쪽 그림들보다는 현실적인 그림들이 더 좋았다.  ^^; 달걀을 깨뜨려 세운 콜럼버스처럼, 당연한 것 같지만 최초의 발상으로 세계적인 화가로 칭송받는다는 루시오 폰타나의 '칼로 그어놓은 캔버스' 같은 그림은  무식한 내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했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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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모든 인간을 풍선처럼 부풀려 풍자한 보테로의 그림들은 유쾌하고 흥미로웠음.
아 물론, 모나리자 그림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보테로가 은근히 한국에 팬이 많은 모양으로 화집과 포스터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나 역시 색감을 탓하며 겨우 두 장밖에 고르지 못한 엽서 중 하나는 보테로의 귀여운 그림이다.

기대했던 프리다 칼로는 따로 작게 방이 마련되어 있기는 했지만 엽서만한 초기작들을 포함하여 그림이 몇개 되지 않아 실망하려는 찰나, 그나마도 규모가 작은 어느 프리다 칼로 미술관의 그림들을 통째로 빌려온 거라는 말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하기야, 그림 수가 중요한 게 아니니 소품 몇점으로도 얼마든지 미술관을 유지할 수야 있겠지. 그나마도 교체전시를 조건으로 빌려왔는데, 그쪽에서 원한 한국 미술가는 백남준 한 사람 밖에 없었다나. 우리나라는 미술후진국이어서 전시를 기획해도 늘 엄청나게 비싼 대여료를 내야한다니 참 치사스럽다.
치사스러우면서도 그림구경이 좋으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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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가들이어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이번 작품들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가 없으니 퍼다 올릴 수가 없군.
왼쪽 그림은 엽서만한 프리다 칼로의 초기작을 전시장 안 복도에 확대해서 걸개그림으로 걸어놓은 걸 폰카로 찍어온 것.

아기처럼 통통한 손에 붉은 알반지를 낀 보테로의 <시인> 그림도 걸려 있었지만 귀찮아서 찍어오진 않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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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11월 9일까지 하고, 입장료는 만원인데 '엔크린' 제휴카드는 무조건 2천원 할인된다.

이번에도 아트숍에서 도록을 팔고 있는데 자그마치 3만원.
인쇄상태와 색감이 그리 훌륭하지 않아, 라며 여우의 신포도 이론을 적용하고 옆으로 눈을 돌리니 작년에 본 장 뒤뷔페 도록이 단돈 8천원에 판매중이었다. *_* 요새 웬만한 얇은 책도 죄다 만원을 넘는데!
이미 색감이 어땠는지 기억이 아스라해진 마당에 파격적인 세일 도록을 안 살 수야 없지! 냉큼 사들고 뿌듯해하며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고흐 전시회 때는 미리 예매해서 샤갈 도록(얇긴 하지만)을 받았고
이번 라틴아메리카 전시회에선 뒤뷔페 도록을 장만했다.
다음에 또 덕수궁 미술관을 찾으면 라틴아메리카 전시회 도록도 세일하고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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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각도

놀잇감 2008. 8. 16. 16:20
이요님 블로그에서 보고선 홍대앞에서 약속이 있었던 김에 옳다구나 찾아간 류승호의 작은 전시회.
<고흐의 각도>
고흐의 익숙한 그림들을 3차원 공간에 재구성해 놓았다.
홍대앞 상상마당 1층 한구석 갤러리에서 8월 21일까지 전시한단다.

파는 엽서인줄 알고 얼마일까, 2천원 미만이면 사야지 마음먹었던 입체카드 같은 인쇄물은
그냥 집어가도 된다는 전시 팸플릿이었다. ^^
6개나 집어와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나도 방에 하나 세워놓았는데 기분이 아주 좋다. ㅎ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카는 없었지만 고흐와 관련된 작품들을 마구 사진으로 찍어도 좋다는데 또 어떻게 그냥 오랴 싶어서 서툴게 폰카를 들이대고 몇장 담아왔다. 아기자기하게 소품들로 재현해 놓은 고흐의 작품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붓의 터치까지 막 살아난 듯해서 괜히 신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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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아니 그냥 꼭 한번 들어가서 걸터앉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고흐의 방>은 3차원으로 보니 더욱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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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의 뒷배경엔 유리를 한 장 덧대어 그 위에 칠한 붓터치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천장쪽에 조명을 비췄다. 입체감이 더욱 살아나니 마치 산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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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의 대문 사진이자, 현재 들고다니는 지갑의 문양이기도 한 <아몬드 꽃>은 앞쪽에 모빌처럼 매달린 액자엔 아몬드나무와 꽃만 들어있고 뒷벽에 청록색 바탕이 붙어있는 구조였다.  상상마당 1층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제일 크게 걸려 있는 바람에, 사진을 찍으니 입구밖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들까지 반사되어 찍히고야 말았다. ㅎㅎ


그밖에도 귀가 잘린 고흐의 초상화, 까마귀가 나는 밀밭, 해바라기꽃 등 꽤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일이 기다렸다가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째뜬 이렇게라도 고흐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몹시 행복했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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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고흐전

놀잇감 2008. 1. 21. 21:42
벌써 한참 된 일인데 새삼 포스팅을 결심한 건 어제 오늘 너무 우울하고 짜증이 나
생각만 해도 미소를 머금게 되는 일을 떠올릴 필요가 있어서다.
그리고 방학중 전시장을 찾을 계획을 하고 있을 블로거들을 위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

내가 두번째로 고흐 전시회장을 찾아간 건 1월 10일 목요일 오전.
매주 수요일 오전엔 유치원생들의 무료 단체관람이 있다는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평일 오전엔 설마 무료 단체관람객이야 없겠지 나름 짐작했고,
방학중 가장 아이들로 붐비는 시간은 오전 학원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엄마들이 이끌고 모여드는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아.뿔.싸.
조카들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했던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티켓박스 앞엔 비닐 천막 안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마당 한 가득 여기저기 수십명씩 떼지어 몰려온 유치원생 및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구름처럼
우글거렸다. ㅠ.ㅠ

나 역시 어린 조카들과 함게 하려는 관람이긴 했지만
한둘씩 아이들을 동반하고 다니는 관람객과 수십명씩 떼지어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내는 소음(논두렁에서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울어대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리지 않다)은 천양지차임을
과거 샤갈 전시회때 경험했기 때문에 너무도 난감했다.
게다가 노구를 이끌고 실로 수십년만에 광화문 정동길에 납시신 우리 왕비마마를 대동한 터라
그림을 보기도 전에 아이들에 치여 지쳐선 안된다는 불타는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해서..
우리는 일단 와글와글 시끄러운 어린이 단체관람객을 일단 앞세워 들여보낸 뒤
투터운 옷가지와 가방들은 사물함에 넣어두고 가뿐한 차림으로(사물함 비용 100원은 나중에 도로 나오므로 결과적으로 무료다^^) 전시실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시끄러운 아이들은 '단순히' 숙제를 위해 온 것인듯 그림 자체는 감상을 하는둥 마는둥
저마다 수첩을 꺼내들고 뭔가를 신나게 베껴적고는 메뚜기떼 사라지듯 물러났고
우리가 2층 전시실을 둘러본 뒤 일단 카페로 철수해 카페인과 당분으로 피로를 풀고 돌아와
3층 전시실을 돌 무렵인 오후 12시 반쯤엔 전체적으로 한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초기 스케치 작품과 함께 고흐의 생애를 조망한 짧은 필름 상영을 하는 곳 역시
붐빌 때는 볼 엄두도 못내는데, 한 타임 기다렸다가는 이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을 정도.
또한 가장 큰 전시실인 생레미 시기와 오베르 시기 그림이 걸린 곳에선
중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멀리서 사람들 어깨와 머리 너머로 보이는 고흐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났다.

이번 고흐 전시를 최대한 실망하지 않고 보려면 3층에 있는 초기 스케치화와 고흐 생애 영상물을
먼저 보라는 조언도 있다는데 계단 오르내리기와 걷기를 몹시도 싫어하는 내 관점에서 보자면 ^^
그냥 2층 전시실을 순서대로 돌고
3층에 올라와 생레미 시기를 보기 전에 구석에 있는 초기 스케치화와 영상물을 본 뒤
생레미 시기와 오베르 시기로 대미를 장식하고 아트샵에서 진짜 작품 대신 복제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든지
성에 안차는 대로 기념 소품을 장만하면 나름대로 뿌듯한 관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번 관람에서 유독 짜증스러웠던 것은
평일 오전에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어린이 단체관람객과 맞닥뜨렸다는 것 이외에도
입장료 할인혜택이 있는 GS 칼텍스 보너스카드의 사용이 원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째뜬... 할인 얘기 하면서 또 짜증이 떠오르긴 했지만
두번째로 고흐 그림들로 가득찬 전시실을 작품 순서와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감상하고, 그림에 낯선 엄마와 조카들에게 아는 만큼만 알량하게 설명을 하고
또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림을 쳐다보며 오디오 가이드에 귀를 기울이는 정민공주를 지켜보는
마음은 참으로 흐뭇했다.

수많은 그림 가운데서 어느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드냐는 나의 질문에
정민공주는 뜻밖에도 <비탄에 젖은 노인>을, 지환왕자는 '파란꽃', 즉 <아이리스>를 골랐는데
공주는 슬퍼하는 노인 그림이 제일 잘 그린 것 같기 때문이고, 왕자는 파란 꽃이 제일 예뻐서라고
대답했다. ^^
아 참, 울 엄마는 제일 인상적인 그림으로 <자화상>을 꼽으셨고, 올케는 샤갈 전시회 때만큼 가슴 설레는 감동이 없긴 해도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애틋했다는 총평을 했다.
가족을 대동하고 전시회를 찾는 일, 조용한 관람을 원했던 과거의 나 같은 까탈 관객에겐 괴로운 일이겠지만
색다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다.

암튼...
제 아무리 방학이라 해도 한가한 오전 미술관을 상상하며 11시 도슨트 설명을 기대했건만
이번에도 도슨트 설명은 듣지 못했다. 오디오 가이드와 내용이 똑같은지 어떤지 한번 꼭 들어보고 싶은데...
다음엔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기필코 한가한 때를 노려보리라.
그 전에 "고흐 전시회를 꼭 구경가야겠다"는 준우왕자를 대동하고 전시장을 또 한 번 시끄럽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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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흐...

놀잇감 2007. 11. 28. 00:47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조금씩 설레기는 하지만
이번 고흐 전시회는 거의 봄부터 기다렸던 까닭에 마치 헤어진지 오래 된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 들 만큼
가슴이 콩닥콩닥 설렜다.

쌀쌀하긴 해도 발밑에 뒹구는 낙엽만은 여전히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정동길을 걸어 시립미술관 언덕을 오르니
어찌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미즈키님이 귀띔해준 덕분에 천원 할인도 받고 예매 선착순 만명에게 준다는 샤갈 소도록을 두 권이나
받았으니 또한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으나 ^^;
현장에 가보니 GS칼텍스 보너스 카드가 있으면 4명까지는 천원 할인이 되고 포인트가 있으면 2천원까지도
할인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리 확인했던 대로 전시관은
네덜란드 시기와 파리 시기, 아를 시기, 생레미 시기, 오베르 시기로 나뉘어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27세에서 불운한 생을 마감한 37세까지의 인생을 조망해 놓았는데
맨 마지막 전시관엔 초기작인 드로잉 작품으로 마무리 되어
어쩐지 끝이 밋밋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만일 다음 관람 계획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인상주의 화풍이 극대화된 아를 시기와 생레미 시기의 작품들을
몇 번 더 둘러보아 눈과 마음의 호사를 좀 더 마음껏 누렸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감동은 역시나 고흐의 작품과 삶을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일 텐데
고흐의 새파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한 느낌이었던 자화상을 접하고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약간 뜨거워져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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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887년 파리.종이에 유채. 네덜란드 반 고흐 박물관 소장

무척 나이들어 보이는 이 자화상은 고흐가 '겨우' 서른네 살 일 때 그린 것이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화구와 캔버스로 그림을 그린 탓에 고흐의 작품들은 대작이 거의 없다.
옆 작품들에 비해 몹시 크게 느껴지는 <아이리스> 그림의 높이가 1미터도 안될 정도이고
이 자화상이나 <밀 이삭> 같은 그림은 정말 아담하다.
그럼에도 작고 소박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화폭이 점점 커져 나를 압도하며 빨아들이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고흐에 대한 나의 편애 이유에는 아름다운 색채와 꿈틀거리는 유화의 질감 외에도
분명 그의 지난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게 작용한 것이 틀림 없다.
작품 설명에도 나와 있었지만 화가를 괴롭혔던 극심한 조울증과 광기는 그림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하물며 생레미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린 그림들도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그의 삶에 구원이었듯이, 여전히 그의 그림들이 여러 사람들의 고달픈 삶에 구원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게 아닐까.
아무튼 나는 오늘도 고흐의 노란색과 연두색과 다채로운 파란색의 향연 속에서 막연한 슬픔과 함께
훨씬 더 큰 감동과 행복을 맛보았다.
고흐의 작품들은 단순히 미술관에 대한 문화적 허영심을 채우는 것 이외에도 분명 내 영혼을 푸근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지녔다. 물론 나 혼자만의 편애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려나
제 아무리 뛰어난 인쇄술로 찍어낸 화집이나 도록이라 해도
역시 원작의 아름다움과 생동감은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음을 미술관에 갈 때마다 깨닫는다.
<아이리스>의 노란 바탕은 그야말로 내가 고흐와 함께 제일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노랑색이었고
<프로방스 시골 야경>의 아련한 별빛과 달빛은 쓰다듬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으며
<생레미 정신병원의 정원>에 피어난 5월의 꽃과 신록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화사해졌다.

문제는 고흐 그림의 경우 보면 볼수록 더 욕심이 생긴다는 점이다.
고흐의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을 유럽 미술관 순례는 물론이고(게다가 몇몇 주요 작품들은 미국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 오호 통재라) 그가 생애 마지막의 70일을 보냈다는 오베르의 소박한 골목길과 밀밭,
그리고 밤의 카페 테라스가 있는 아를에 가고싶어서 몸살이 날 것만 같은 마음으로
휘적휘적 돌아왔다.

너무 원대한 욕심은 일단 접어두고
조만간 다시 전시회 보러갈 날짜를 고민하며 어렵사리 고른 엽서 3장이나 또 쓰다듬어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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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전시회

놀잇감 2007. 11. 13. 15:01

드디어 고흐 전시회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지난 주말 인사동엘 나갔더니 가로등마다 고흐 전시회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어서
더욱 가슴이 설렜다.
과연 이번에 온 67점의 작품들의 면면이 어떤 것인지 살피러 슬쩍 서울 시립미술관 공식 사이트(사이버 미술관도 있다 http://vangoghseoul.com/cyber01.htm)엘 가보고선 약간 실망.

실물 알현의 염원을 품고 있던 <아몬드꽃>은 오지 않았다. -_-;;
해바라기 시리즈는 하나도 안 온 모양이고, 미국 미술관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나 <별이 빛나는 밤>도 당연히 없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밀러 미술관 두 군데서만 작품을 공수한 모양이다.
아이리스 연작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리스 꽃밭 그림 작품 대신 꽃병에 꽂힌 아이리스가 선을 보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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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아이리스를 보고싶었는데 ㅠ.ㅠ 대체 어디 있는 작품인가 새삼 찾아보니 역시 미국 게티 박물관에 있단다 1889년작.


확실히 내 안목이 전문가들과는 다른 듯, 나는 이 아이리스 그림이 더 좋은데
꽃병에 꽂힌 아이리스 그림이 원래 더 유명한 거란다 ^^;; 제일 비싼 작품에 속한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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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1890)



그래도 달빛과 별빛이 교교하게 동심원으로 표현된 프로방스의 시골야경은 볼 수 있게 됐다.
개인적으로 사이프러스나무들이 여럿 서 있는 고흐 그림들을 좋아한다. ㅎㅎ
좀 아쉽지만 이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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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시골 야경 (1890)


고흐의 작품을 초기작부터 시기별로 전시실을 나눈 듯한데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역시 현란한 색감과 꿈틀거리는 붓터치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아를 시기와 생레미 시기다. ㅋㅋ 여기 올린 그림 세장이 모두 생레미 시기로군.
아마도 아를 시기에 속한다는 것 같은(벌써 까먹었다 젠장) <우체부 조셉 룰랭>그림도 두근두근 기대중.

물론 사이버 미술관에 일부 소개된 작품만으로 아직 크게 실망하기는 이르지 않겠냐고
애써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작품 가격만 1조 4천억원이라는데;; 감지덕지해야지.

2007년 11월 24일부터 2008년 3월 16일까지 전시라 기간도 꽤나 넉넉하다.
입장료는 만2천원.
코엑스멤버십 카드, GS칼텍스 보너스카드를 제시하면 천원 할인된단다.
개관 첫날 달려가는 성의를 부리고 싶기도 하지만
주말이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까봐 두려워서 안 갈 작정이다.
이번 전시와의 첫 만남은 한가로운 평일 오전으로 계획해 봐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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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아몬드 꽃

놀잇감 2007. 10. 7. 20:31

스킨을 바꾸고 나서 색깔과 느낌이 어울리는 고흐 그림을 떠올려보니
단번에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이 아몬드 꽃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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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꽃이 핀 아몬드 나무> 캔버스에 유화.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렸다고



처음 이 그림의 '사진'을 보고는 "어머나, 혹시 벛꽃 종류 아냐?"라고 탄성을 질렀는데
그림 설명을 보니, 아몬드 꽃이라고 했다.
아몬드 꽃도 성급하게 잎이 나기 전에 피나보다. ^^;
어쩐지 동양화 느낌이 난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고흐의 화집을 보면
아예 노골적으로 일본 화풍의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 꽤 된다.
아마 이 그림도 그럴 거라 '나름' 짐작했다.

이 그림에 관한 사연은
고흐의 그림인생을 무던히도 후원해주었던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아 빈센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소식에 고흐가 몹시 기뻐하며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렸단다.
바탕의 파란 배경은 조카 빈센트의 파란 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들은 듯...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톤의 '파랑색'을 참 좋아하는데, 인쇄술에 따라 화집 그림 색깔도 몹시 달라지지만
약간 옥색 기운이 들어간 이 파랑색도 아련해서 참 마음에 든다.
내 기억이 맞다면.. 비슷한 그림을 여러 번 그린 고흐 특유의 작품경향에 따라 아몬드 나무 그림도
두어 개는 됐던 것 같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지 아마.

파리 오르세 미술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시카고 현대미술관 등등...
고흐의 작품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한 작품 있단다!!)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소장한 곳은 역시나 반 고흐 미술관이다.
언제고 내 꼭 반 고흐 미술관엘 가보리라!! ^^
(생각해보니 어쩌면 11월부터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흐 미술전에 이 그림도 올지 모르겠다! 캭~)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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