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건 좋다'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0.12.22 해먹고 산 것 & 해먹을 것 7
  2. 2010.09.13 파란 사과 5
  3. 2010.07.25 간단 콩국수 8
  4. 2010.06.29 우리집 녹두전 6
  5. 2010.06.17 자두 21
  6. 2010.04.07 꿀빵 먹기 힘들다 26
  7. 2009.10.15 홍옥이 나왔다 19
  8. 2009.09.17 비빔국수 14
  9. 2009.06.11 춘천의 추억 7
  10. 2009.06.04 엄마표 김밥 21

식탐인의 입장에선 하루에 맛있는 걸 가능한 한 여러번 먹으며 사는 게 행복할 것도 같지만, 생활인의 입장에선 다 귀찮으니 하루에 한끼만, 아니 사흘에 한끼만 먹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콩닥거리는 하루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는 몸을 위한 섭생의 의미보다 짜증스러운 노동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걸 어쩌랴. 요샌 머리를 심히 한쪽으로 집중해야 하는 기간인 고로 딱히 해먹을 거리들의 메뉴도 떠오르지 않아서, 장보러 갈 때 적은 목록도 노상 똑같아 매주 새로 적을 필요조차 없었다. 영양 면에서 균형잡힌 식단 따위 잊은지 오래라서 그런지 식탐모녀의 겨울 체중은 빠직빠직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중. 푸성귀 채소의 섭취 부족이 아닐까 싶다. 해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여기다 그간 대강 해먹은 것들 중 대강 요리로 소개하지 않았던 것들을 적어두고, 생각난 김에 예전에 기록하던 신데렐라 키친 요리법 가운데 채소류를 퍼다 놓아 끼니 메뉴의 차별화를 시도함과 동시에 걸핏하면 굶고 사시는 이웃들의 요리 욕구를 충동질해 보려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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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사과

투덜일기 2010. 9. 13. 17:44

사과 중에 내가 제일로 치는 품종은 역시나 새빨간 '홍옥'이지만, 풋풋한 맛의 파란 사과도 그에 버금가게 좋아한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과 1, 2위는 '빨간 사과, 파란 사과'다.(홍옥을 제외한 다른 품종의 사과엔 '빨갛다'는 말도 붙이기 어렵지 않은가! 그저 붉은 정도지...-_-;) 아쉬운 건 내가 좋아하는 품종들이 지극히 짧은 기간에만 유통된다는 점이다. '아오리 사과'로 불리는 파란 사과도 요즘에나 먹을 수 있지 좀 지나면 -- 아마도 추석이 지나고 나면 -- 구경하기 힘들어질 거다. 그러니 요맘때 얼른 실컷 먹어주는 수밖에 없다. 과육이 부드럽고 새콤달콤한 홍옥과는 또 다르게 아삭거림이 강하면서 껍질이 얇고 약간 떫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역시나 새콤달콤한 과즙이 풍부한 파란 사과는 나름 매력이 철철 넘친다.

'파랗다'라는 우리말은 정말로 '파란색'부터 '초록색'에 이르기까지 푸른 계통의 색을 모두 아우르고 있으니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고 신호등에도 파란 불이 들어오고 사과도 파랗다고 말하는 게 어른들에겐 어색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듣기엔 아무래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에서도 신호등 파란 불은 '초록 불'이라고 고쳐 배우는 모양이니 말이다. 제일 어린 조카가 네살이었던 작년 이맘때, 집에 놀러온 녀석에게 "파란 사과 먹을래?"라고 물었더니 대뜸 세상에 파란 사과가 어디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뜨끔한 내가 "초록 사과, 아니 연두색 사과 말이야"라고 고쳐 말했더니, 녀석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아오리 사과?"라고 대꾸했다. '아오리 사과'를 아는 네 살 짜리 어린이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나는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었는데, 올해 다시 파란 사과를 통째로 들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생각하니 '파란 사과'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조카들에게도 가르쳐줘야할 것만 같다.

어른들이 초록색이든 연두색이든 푸르딩딩한 남색이든 하늘색이든 죄다 '파랗다'고 말하는 건 색깔 구분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색깔조차도 크고 넓고 풍요롭게 지칭하는 마음의 여유 때문이라고. 연두색이 예쁜 파란 사과는 역시나 '아오리 사과'라고 부를 때보다 '파란 사과'라고 부를 때 느낌이 제격이다. 백설공주가 먹고 쓰러진 반만 빨간 사과도 덜익은 반대편 절반은 '파랗게' 덜익었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지 않은가. 아무려나 바야흐로 파란 사과의 계절, 내가 원없이 먹었다고 느낄 때까지는 너무 빨리 모습을 감추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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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콩국수

놀잇감 2010. 7. 25. 16:50

콩국수를 좋아하지만 콩삶아 가는 건 너무도 귀찮아서 작년에는 완제품으로 파는 콩국물을 사다가 콩국수를 해먹었는에 올해는 그에 못지 않게 간편하면서 맛은 더 훌륭한 방법을 알게 됐다. 콩국수의 핵심은 고소한 콩국물의 맛인데 아무래도 파는 콩국물은 농도 면에서나 맛에서 영 흡족하질 않은 게 사실이다. 헌데 똑같은 회사 제품인데도 확실히 부족한 콩국물에 비해 '두부'의 완성도는 다들 뛰어나다는 데서 누군가 힌트를 얻은 모양이다. 두부와 우유를 갈아서 콩국물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설마, 했는데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놀라울 정도로 우유 맛은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얼렁뚱땅 20분만에 올 여름 처음 콩국수를 식탁에 내놓자 울 엄니가 물으셨다. 니가 아무리 도깨비 같이 요리를 하는 건 안다만 대체 콩은 언제 삶았느냐고. ㅋㅋㅋ 국수 삶을 때 잠깐 가스렌지를 켜야 하긴 하지만, 더운 날씨에 최대한 불 안쓰고 만들어 먹는 요리로 아주 그만이다.

재료(2인분): 국산콩 두부 한 모, 우유 400ml, 소금 약간, 통깨 약간, 소면, 채썬 오이(없어도 그만)
1. 두부를 숭덩숭덩 잘라 우유, 소금, 통깨를 모두 넣고 믹서에 간다. 1분도 안걸림.
2. 소면을 삶아(요즘엔 우리밀 국수를 사면 1인분씩 포장해서 나오기 때문에 국수 양을 몰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찬물에 헹군다.
3. 큰 그릇에 소면을 담고 콩국물을 부어 얼음을 동동 띄운 뒤 (얼음과 같이 갈아도 봤는데 국물이 싱거워져 비추천) 채썬 오이를 얹어 먹는다.

콩국물 갈을 때 견과류를 넣으라는 조언도 더러 있는데 나는 깔끔한 콩맛이 좋아서 통깨만 넣는다. 취향대로 알아서 시도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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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조미료 때문에 내가 그 옛날 울 엄마표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녹두전은 아무리 잘 하는 집 것을 사먹어 봐도 우리집표 녹두전이 제일 맛있고 생각하는데, 과거가 되어버린 김밥과는 달리 녹두전은 현재형이다. 할머니부터 울 엄마, 작은어머니들을 거쳐 나와 울 올케들에게 전수된 녹두부침개의 맛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제사음식이 지방마다 다르듯이, 녹두전도 지방마다 재료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내 입맛엔 돼지고기 넣고 투박하고 큼직하게 부쳐낸 이북식이 최고인 것 같다. 원래 이북식은 돼지고기를 큼직큼직 듬성듬성 썰어 넣는 것이라지만 우리집에선 갈아서 넣는 데다 숙주는 물론이고 대파와 김치도 썰어넣기 때문에 느끼할 이유도 없어 바삭바삭 아작아작 하니 그저 최고의 맛이다.

서울경기식 녹두전은 순 녹두만 갈아서 기껏해야 손바닥 반만하게, 더러는 예쁘장하니 한 입 크기로 부쳐 위에 실고추 같은 걸로 모양을 내는 거라고 해서 어찌나 의아하던지. 녹두 본연의 고소한 맛이야 있겠으나, 먹기 심심해서 어찌 그걸 녹두전이라 부를 수 있겠나 말이다. 게다가 차례나 제사땐 다른 전도 종류별로 장만해야 하는데 녹두전을 손바닥 반 만한 크기로 부쳐내면 그걸 언제 다 부치라고! 드넓은 전기 프라이팬 양쪽에 펼쳐놓고 한판에 여러 장씩 부쳐내도 오래 걸리는 게 녹두전인데 말이다.

종류별로 전 부치다 질력나고 꾀가 생기면 녹두전 크기가 마구 커져 가끔은 뒤집다 찢어질 지경을 만들기도 하지만, 찢어진 핑계로 뜨겁고 고소할 때 먼저 먹어볼 수 있어서 반가운 녹두전은 차례 때나 제사가 아니면 내가 평소에 감히 만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 음식이다. 드높은 나의 식탐 열망으로도 넘기 어려운 명절 음식의 지존이랄까. 어쩌면 다른 녹두전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뜨악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최고의 녹두전인 우리집 요리법은 이렇다.

재료: 깐녹두 500g, 쌀 한 줌, 돼지고기 갈은 것 300g 정도, 신김치 반 포기, 숙주나물, 대파, 다진 마늘, 소금, 후추, 참기름, 포도씨유.

1. 전날밤에 깐녹두를 씻어 물에 불려 놓는다. 쌀 한줌도 함께.
2. 다음날 아침에 엄청 불어 생겨난 녹두 껍질을 떠내려보내며 다시 씻는다.
3. 숙주나물을 살짝 데쳐서 길이를 칼로 적당히 잘라준 뒤에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어 밑간해 놓는다.
4. 신김치 반포기도 속만 대강 털어낸 뒤에 잘게 잘라 김칫국물을 꼭 짜낸 다음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린다.
5. 돼지고기 갈은 것도 소금, 후추, 다진 마늘로 미리 양념한다.
6. 대파는 두어뿌리 어슷썰기로 큼직큼직하게 썰어놓는다.
7. 불린 녹두를 간다. 이때 농도가 너무 묽어지지 않도록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 너무 묽으면 전이 찢어진다!
8. 갈은 녹두에 양념해놓은 위 재료를 몽땅 넣고 잘 버무린다. 다들 밑간을 했지만 이 단계에도 역시나 소금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춘다.
9. 양념과 섞어 놓으면 갈은 녹두가 삭기 시작하므로 얼른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노릇노릇 바삭하게 부쳐낸다. 적정 지름은 15센티미터쯤인 것 같은데, 엊그제 내 작품은 얼른 끝낼 요량으로 18센티미터는 되었던 듯.

우리집 녹두전의 특징은 김치를 넣어 색이 좀 붉게 나타난다는 것인데, 돼지고기와 김치, 숙주와 대파가 어우러져서 기름에 부쳤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바삭바삭 아작아작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음식이 다 그렇듯, 방금 부쳐냈을 때가 제일 맛있으므로 녹두전 부치다가 찢어뜨리면 아뿔싸 민망하다가도 나는 신이 난다. ㅋㅋ 명절 음식은 다 전날 부쳐놨다가 데워먹으니 한결 풍미가 떨어지는 듯하지만 녹두전은 냉장고에 한참 넣어놨다가 프라이팬에 데워먹어도 그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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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식탐보고서 2010. 6. 17. 17:23

올여름들어 처음 과일가게에 나온 자두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체리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크기 다섯개에 4천원이면 좀 비싸다 싶었지만 자줏빛으로 빛나는 싱그러운 자태를 본 순간 이미 입안에 군침이 도는 걸 어쩌랴. 커피 한잔 사마시려면 5천원도 훌쩍 넘는 때가 많은데도 과일값엔 매번 놀라 손끝이 망설여진다. 

날씨도 더워졌지만 요즘 내가 계절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과일가게에 드높이 쌓인 수박을 볼 때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수박이 벌써 한참 전부터 나오긴 했지만, 몇통 안되는 수박을 진열해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과일 도매상엔 엄청나게 큰 수박부터 적당한 크기까지 작은 수박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달기만 한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데다 씨 빼는 게 귀찮아서 수박은 나의 기호품이 아니다. 모름지기 과일은 자두처럼 새콤달콤해야 제맛이라는 게 나의 굳건한 믿음.

올해는 가지치기를 건너뛴 데다 해걸이를 하는지 통 수확이 신통찮은 앵두를 두어번 따먹으며 좀 싱겁긴 하지만 그래도 보들보들 새콤한 맛에 한동한 행복했고, FTA를 반대하는 의미로 수입과일은 '사다' 먹지 않겠노라고 작심했지만 '누가 줘서' 얻어먹은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는 황홀하게 맛있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참외와 사과, 토마토로 근근이 과일 열망을 잠재우고 있었는데 자두를 만난 거다.

앉은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자두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 남은 씨를 바라보노라니,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다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기야 꽃 맺히고 나서 열린 과일 열매의 생김새가 더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랫부분까지 움푹 들어간 사과나 배와 달리 앵두, 체리, 자두, 복숭아, 살구 같은 건 꼭지가 달린 윗부분만 쏘옥 들어가고 아래 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솟은 하트 모양이라는 의미다. 다들 가운데는 단단한 씨가 들어있고 말이다. +_+ 별것도 아닌데 나로선 새삼스러운 발견이라 마치 큰 성취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점점 더운 날씨는 못견딜 노릇이지만 그래도 어서 자두랑 복숭아가 과일가게에 산처럼 쌓여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봐야겠다. 과일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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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많은 사람들이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본인이 먹고 싶다고 생각한 걸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건 물론이고 나는 누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조차 그냥 허투루 듣지를 않고 담아두었다가 먹게 해주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특히나 왕비마마 및 조카들이 먹고 싶다고 말한 건 왜 그냥 넘길 수가 없는지 원. 물론 건강에 나쁜 먹거리인 경우에는 왕비마마의 지병 걱정에 우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일단 안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비슷한 대체품으로라도 사드리거나 만들어 드리고 후회를 하는 인간인지라 어쩔 땐 저질러 놓고 "내가 미친년이지..."라고 후회할 때가 많다.

3월 24일이었을 거다. 왕비마마의 CT촬영 때문에 꼭두새벽 7시부터 병원엘 가야했고 순차로 이어지는 각종 검사와 진료 때문에 오전 내내 병원에서 살아야했던 날, 아침방송에 문제의 <통영 꿀빵>이 나왔다. 원래 유명한 꿀빵집은 아니었고 최근에 고구마 꿀빵이니 빼때기죽이니 신제품 개발을 해서 차별화를 시켜 월 매출이 2천만원이라는 어느 젊은 아줌마네 꿀빵집 소개였다.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튀긴 것, 단 것, 밀가루 음식을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하는 왕비마마는 병원 의자에 앉아 당연히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그 꿀빵을 탐냈다. 오래 전 키드 님과 벨로의 통영 여행 덕분에 한 덩어리 맛을 본 적 있는 나 역시 화면을 보니 새삼 군침이 돌았다. 당시엔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니 한번 시켜먹어봐야겠다 생각했으면서 그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TV에 한번 나오면 난리가 난다는 걸 알기에 머리 좀 쓴답시고 TV에 나온 꿀빵집 대신 원조 꿀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름도 까먹어서 키드님 블로그에 다시 가서 검색해 알아본 <오미사 꿀빵>을 이번엔 기필코 시켜먹기로 마음 먹은 거다. 헌데 그렇게 맘먹은 인간이 나뿐이 아니더라. 그로부터 열흘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오미사 꿀빵은 구경도 못하고 있다. 처음 며칠간은 트래픽 초과로 아예 홈피 접속도 되질 않더니 닷새쯤 지나니깐 접속은 가능하되, 늘 일시품절 상태다. 주문이 밀려들어 어쩔 수가 없단다. 방송의 주인공이었던 <꿀단지> 꿀빵집도 당연히 마찬가지라 나는 공연히 몸이 달았다. 사실 이 정도쯤 되면 왕비마마는 꿀빵을 벌써 잊고 계실 확률이 높다. 그간 꿀빵 대신 꿀떡을 계속 간식으로 먹어서 단것에 대한 열망이 잠재워졌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젠 내가 오기가 났다!

거의 매일 오미사 분점 홈피에 들락거리며 <재고: 일시품절> 글씨가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으려니, 드디어 어제 수요일 9시에 다시 홈피를 열어두겠다는 공고가 보였다. 으으.. 9시면 내가 잠자고 있을 시간인데, 2주 이상 지났으니 요번엔 오후에 접속해도 성공할 수 있으려나 어쩌려나... 꿀빵 열망이 나를 9시 접속으로 이끌 것인지, 혹시라도 또 기회를 놓치면 다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슬글슬금 꿀빵을 탐냈던 사실까지 잊어버릴 것인지 스스로 궁금하다. 2주 가까이 들인 공을 생각하면 꿀빵 먹으러 조만간 통영 놀러갈 계획이라도 세울 기세다. 왕비마마 다이어트 시키려면 내가 쓸데없는 오기를 버리는 게 옳은데. ㅋㅋ 이렇게 열심히 일이나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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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이 나왔다

투덜일기 2009. 10. 15. 16:42

일주일 만에 장을 보러 갔더니 그새 홍옥이 나왔다! 빨리 홍옥을 사다먹을 욕심에 장을 보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나의 식탐은 성격이 좀 오묘해서 고기와 생선류를 비롯한 음식에는 그저 뭉뚱그려 막연하게 <먹고 싶다>는 열망을 품는 반면에 과일류는 종류를 <콕 찝어서> 먹어야한다는 열망이 타오른다.
며칠 전부터는 그렇게 귤이 먹고 싶었다. 거의 매일 사과를 먹고 있던 터라 특히 비타민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옛날처럼 한 박스 집에 쟁여놓고 손바닥 노래지도록 마냥 귤을 까먹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 요즘에 나오는 귤은 조생귤이라고 해서 껍질도 말랑말랑 좀 잘 까지겠나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장보러 가서 귤을 사와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과일가게에 홍옥이 쌓여있는 걸 본 나는 광분해서 홍옥부터 잔뜩 담으라고 하고는 그래도 못내 아쉬워 귤도 한 보따리 사왔다. 모녀가 둘다 식탐도 많고 영양따져 골고루 먹어야하는 왕비마마 덕분에 우리집 엥겔계수가 좀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대충 일주일치 과일값이 일주일치 식료품 금액의 4분의 1이다. 어휴...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더라>며 먹는 것에는 절대 아끼는 법이 없는 나도, 카드로 결제하는 마트 비용은 그러려니 하는데 과일값을 현금으로 내려면 약간 손이 떨린다. 좀 전에 산 생선이며 채소 같은 반찬 가격과 대비하면 확실히 과일 값이 비싼 것 같아서...
하지만 집에 돌아와 얼른 홍옥을 씻어 와그작 깨물어 먹으니, 바로 이맛이다!
바야흐로 홍옥의 계절. 얼른 다 먹고 담주에 장보러 가면 또 사올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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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

투덜일기 2009. 9. 17. 06:13
고추장 선전이야 그렇다 치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이 화가 나거나 내숭떠느라 배를 곯고 집에 들어와 커다란 양푼에 밥을 잔뜩 넣고 온갖 나물반찬과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빈다음 아귀처럼 입에 떠넣는 장면을 보면 나는 너무도 상투적이고 진부한 느낌에 막 화가 난다. 드라마를 많이 안보는 편이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얼마 전 황정민이랑 김아중 나오는 드라마에서도 양푼비빔밥 장면이 나왔던 걸로 기억나는 걸 보면(아니면 어쩌지...) 시뻘겋게 비빈 양푼비빔밥은 사람들 머릿속에 너무도 뿌리깊이 자리잡은 편견의 전형이 분명하다. 아직도 그런 장면을 포기 못하는 작가들이 게으른 건지, 아니면 그만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흔한 일인지 따져보자고 나선다면 나는 분명 전자에 한표.
양푼에 비비는 건 싫지만 어쨌든 나도 가끔 비빔밥이 먹고 싶어지지만 그렇게 수시로 아무때나 오밤중에라도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환경은 절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비빔밥을 먹으려면 일단 나물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명절이나 차례 때처럼 삼색, 오색 나물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두 종류는 있어야지, 아니 최소한 맛있는 깍두기나 열무김치라도 있어야 밥을 비벼먹지! 암튼 내 경우 비빔밥은 내가 각별히 신경써서 고사리 나물을 볶았거나 가지나물과 호박나물을 동시에 만들고 거기다 고구마순 나물까지 갖추어 놓았다든지 해서 벼르고 해먹는 별식이다. 아무때나 양푼 꺼내들고 화풀이 하듯 숟가락을 휘둘러대는 오밤중의 해프닝 같은 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자꾸 딴소리가 길어지고 있는데 암튼 그런 <어려운> 비빔밥 대신 비빔숙수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김치만 넣고 밥을 비벼먹는 일은 나에게 있을 수 없으되, 소면 삶아서 김치만 송송 잘라 넣고 양념해 먹으면 되는 게 비빔국수니까. 매운 걸 잘 못먹는 편이면서도 가끔씩 매콤한 게 땡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생각나는 건 제일 먼저 떡볶이, 라면, 그리고 비빔국수다. 최근 들어 떡볶이 열망이 가장 크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 각인된 맛있는 떡볶이에 버금가는 맛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다행히 사다가 먹겠다거나 만들어 먹겠다는 부지런함은 자행되지 않았다. 라면은 또 딱 한 젓가락 먹고 나면 이 맛이 아니야 싶은 후회가 들기 십상이므로, 며칠 전부터 깨나 비빔국수가 먹고 싶었던 모양으로 꿈에서도 비빔국수 만들어 먹는 꿈을 꿀 정도였다. 물론 걸림돌은 언제나 귀차니즘. 막상 시작하면 별것도 아니지만 식탐이 요란하게 동하기 전엔 다 귀찮게만 여겨지는 게 먹자고 요리하는 짓이 아닐까.

그럼에도 오늘은 조금 전 밤참으로 혼자 부시럭부시럭 국수를 한줌 삶고 김치를 넣고(귀찮아서 송송썰기도 양념하기도 건너뛰었다) 대신 샐러드용으로 썰어놓은 오이와 파프리카를 좀 얹은 다음 고추장 양념에 썩썩 비벼 후루룩 쩝쩝 먹어주었다. 요즘들어 사람들이 미친듯이 매운 맛을 찾는 이유가 스트레스 해소 때문이라는데, 가학증 환자처럼 통증에 가까운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나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매운 걸 먹고 나서 화끈거리는 입안을 달래는 기분이 미묘하게 좋다는 건 나도 인정해야겠다. 언짢은 일이 있어서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밤새 작업하며 계속 기분이 가라앉았는데 부산 떨며 비빔국수를 먹은 걸 기점으로 슬슬 쪼그라들었던 두뇌가 펴지는 느낌이다. 단순히 뭘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빔국수> 때문인지, 아니면 <매운맛> 때문인지 가늠할 순 없어도 슬슬 식곤증까지 선물로 달고온 오늘의 새벽참 메뉴는 퍽 성공적이다. 남들에겐 오밤중 양푼 비빔밥이나 비빔국수나 생뚱맞고 우스운 건 똑같겠지만서도. 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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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추억

추억주머니 2009. 6. 11. 18:11

춘천은 나에게 아련한 추억과 동경의 장소다. 김현철의 노래 <춘천가는 기차>가 나오기도 훨씬 전인 고3 여름방학때, 두 친구와 작당하여 아침부터 이어지는 따분한 자율학습을 과감히 제끼고 난생 처음 춘천행 기차에 올랐었다. 그 전에는 땡땡이라고 해봤자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떡볶이를 사먹는다든지 조금 일찍 달아나는 정도였을 뿐, 하루를 온전히 빼먹는 땡땡이는 시도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전날부터 몹시 마음이 설렜다. 청량리역에서 만나 일단 성북역까지 가서는 거기서 춘천행 기차를 타야했는데, 두어시간 남짓한 그곳이 나에겐 마치 한반도 끝에 있는 부산만큼이나 심정적으로 먼 곳이라 생각되어 대단히 짜릿한 일탈로 여겨졌다. 이미 아는 오빠를 따라 춘천에 몇번 다녀본 전적이 있는 친구의 안내대로, 춘천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간 공지천 주변을 거닐다 호숫가에 서 있는 <이디오피아>라는 카페에서 볶음밥과 빙수를 먹은 뒤 돌아오는 기차를 탄 것이 여행의 전부였지만, 우리 셋은 너무도 행복했다. 기차를 타고 오가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남한강과 북한강 주변의 경치도 아름다웠고, 완행열차에서 사먹은 삶은달걀도 감동의 맛이었다.
그날의 추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나와 친구들은 남은 학기 내내 두고두고 춘천 기차여행 이야기를 되뇌다, 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졸업 전에 다시 춘천으로 이별여행을 떠났다. 진학을 하든 재수를 하든 단짝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서글퍼하면서. 두번째 춘천 여행에선 꽝꽝 얼어붙은 소양강댐에도 구경했고, 새하얀 눈밭으로 변해버린 공지천을 배경으로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열여덟살이던 당시 춘천은 나에게 짜릿한 일탈의 공간이었고, 어른을 동반하지 않고 내가 홀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고, 여러가지 매력 넘치는 기차여행을 누릴 수 있는 여행지이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춘천 기차여행을 큰 자랑거리로 떠벌였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경한 친구들에게 겨우 두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춘천은 일탈의 장소이긴커녕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금세 다녀오거나 매일 통학할 수도 있는 지척의 도시였다. +_+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친구 하나가 동조해주는 바람에 눈이 펑펑내리던 어느날 충동적으로 다시 춘천행 기차를 탔던 날, 우린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버스가 올라가지 못하는 소양댐을 굳이 걸어서 올라갔고 언 손을 호호 불며 맛없고 쓴 커피를 마시면서도 행복했다. 그날 처음 춘천 닭갈비라는 것을 먹어보았는데, 종일 눈에 젖어 덜덜 떨다가 들어가 먹어본 그 맛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몇년에 한번씩 춘천엘 간 적은 있지만 죄다 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춘천가는 기차>가 상징하는 춘천여행의 묘미와 추억을 더는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 완행열차 비둘기호는 사라져버렸어도 언제고 한번 꼭 기차를 타고 춘천엘 가봐야지 막연하게 마음은 먹었지만, 강원도 여행길에 일부러 들르지 않는 한 춘천 자체를 찾아갈 일도 아예 없는 편이어서 춘천은 점점 내 추억의 창고에서도 깊숙한 구석쪽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낭보가 들려왔다. 판화가인 막내고모가 춘천에서 열리는 강원아트페어에 전시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기차여행은 못하겠지만 간만에 춘천 땅도 밟아보고 고모 그림도 보고 닭갈비도 먹고 일석삼조, 일타삼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지난 7일, 왕비마마를 모시고 춘천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당연히 설레고 들떴다. 아직 철은 이르지만 가는 길에 가평 찰옥수수도 사먹을 생각을 하면, 막히는 길쯤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왕비마마와 공주 일행이 납시었는줄 온 세상이 알았는지 전날엔 미치도록 막혀 되돌아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는 춘천행 국도도 뻥 뚫려 오히려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마다 서 있는 옥수수 장수들을 만나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뜨겁고 매운 닭갈비를 먹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이번 춘천 여행에선 정말로 눈과 입과 위 모두 흐뭇하게 대접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에서도 가끔 닭갈비를 사먹긴 하지만, 역시 닭갈비는 춘천에 가서 먹어야 제맛이란 진리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또 언제 춘천엘 가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일탈의 공간이었던 춘천에 처음으로 가족들을 동반하고 간 이번 여행의 의미는 또 다른 추억의 겹으로 남아 돌이킬 때마다 흐뭇할 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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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김밥

식탐보고서 2009. 6. 4. 17:57

누구나 오랜 역사와 추억의 양념 때문에라도 자기 엄마표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김밥집이 흔하지도 않았고, 김밥 먹는 날이 일년에 몇번 학교에서나 집에서 소풍 갈때로 국한되어 김밥이 꽤나 <귀한> 음식이었던 나 같은 옛날 세대에겐 더더욱.
나 역시 김밥을 아무리 손수 <싸>먹거나 <사> 먹거나 <얻어> 먹어보아도, 옛날에 울 엄마가 싸주셨던 추억의 김밥만큼 맛있는 건 없었다고 회상하게 된다. 식성에 따라 김밥 내용물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는 하지만, 생김새부터 맛까지 거의 천편일률적인 김밥들 사이에서 울 엄마표 김밥은 정말 조금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당근을 채썰어 볶는 것이 아니라 다져서 볶은 뒤 밥에다 섞는다는 것. 그리고 달걀부침도 지단으로 얇게 부쳐 잘라넣는 대신 스크램블드에그 하듯 마구 뒤적여 잘게 부숴 역시 밥과 함께 볶거나 밥에 섞었다. 나는 우리집 삼남매가 익힌 당근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엄마가 어떻게든 당근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들으니 다른 사연이 있었다.
가난하던 그 시절 우리집은 비싼 일반미 대신 정부미를 주로 사먹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를 정부미는 값이 싼 대신 당연히 일반미보다 질이 떨어졌다. 색깔도 새하얀 일반미보다 당연히 탁하고 거무스름했던 듯. 평소엔 당시 혼식장려 캠페인 때문에 강제로라도 다들 보리를 넣어 도시락을 싸가야 했으므로 정부미밥도 다른 애들 밥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소풍날 혼식 검사를 할 리도 없고, 특별식인 김밥을 쌀때엔 당연히 쌀로만 밥을 짓는 것이 정석이었던 모양이다. 새하얀 쌀밥 한 가운데 정갈하게 속 고명이 들어간 김밥들 사이에서 거무스름한 쌀로 지은 김밥을 비교당하게 만들기 싫었던 울 엄마는 밥에 참기름 말고도 다진 당근과 달걀부침을 부숴 넣어 버무리는 묘안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어린 우리들은 그저 김밥이라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기뻐서 밥 색깔이 조금 다른 것쯤 신경도 안 썼을 것 같은데, 그 옛날부터 울 엄만 참 별 걸 다 신경쓰는 아줌마였다는 얘기다.
아무려나 볶음밥으로 다시 김밥을 싼 것처럼, 약간 노르스름한 밥에 시금치와 소시지(옛날엔 햄 대신 당연히 소시지로 김밥을 쌌다!), 어묵, 단무지를 넣은 울 엄마표 김밥은 소풍 때마다 단연 인기였다. 소풍 가서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끼리 서로 엄마 음식솜씨를 품평하듯 김밥을 하나씩 서로 바꿔먹곤 했는데, 깔끔해 보이진 않지만 전체적인 간도 딱 맞고 전혀 뻑뻑하지 않은 울 엄마표 김밥만큼 맛있는 김밥은 없었다. 부잣집 친구가 싸온, 쇠고기를 볶아넣고 자른 김밥 하나하나마다 정갈하게 한 가운데 깨소금을 얹은 최고급 김밥보다도 나는 정말이지 울 엄마가 싸준 김밥이 더 맛있었다. 단순히 팔이 안으로 굽는 것만은 아니어서, 친구들도 너도나도 내 김밥을 하나 얻어먹으려고 달려들 정도였고, 소풍에 따라오신 친구 엄마들도 울 엄마한테 김밥 만드는 비법을 묻기도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엔 우리도 일반미를 먹을 형편이 되었지만, 우리집 김밥 만드는 법은 바뀌지 않았다. 쌀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맨밥에 참기름과 소금만 버무려서는 절대로 울엄마표 김밥 맛이 나지 않는 걸 어쩌랴.
우리들이 다 자라 학교에서 소풍가는 일이 더는 없게 된 뒤에는 정말로 연중행사처럼 드물게 엄마표 김밥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조르거나, 김밥을 특히 좋아하는 막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해주셨는데, 옆에서 내가 거드느라 엄마의 코치대로 김밥을 말아보면 영낙없이 옆구리가 터지거나 내용물이 한쪽으로 쏠렸다. 요리솜씨 뛰어난 엄마의 유전인자를 어느정도 물려받아 웬만한 음식은 흉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예쁘게 김밥 마는 비법은 도무지 터득할 수가 없었다. 김밥집에서 파는 것처럼 밥을 잔뜩 많이 넣으면야 나도 내용물을 한가운데로 몰리게 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한입크기로 적당히 얇으면서 내용물이 정 가운데 들어가도록 하는 것인데 난 왜 그게 안되는지! 그걸 터득하겠다고 허구한 날 김밥을 싸먹을 순 없는 일이어서, 얼마 전부터 나는 너무도 귀찮은 김밥싸먹기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울 왕비마마는 와병 후 살림에서 손을 뗀지 수년이고, 제대로 된 엄마표 김밥을 마지막으로 먹은 건 아마도 10년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가 아무리 솜씨를 부려도 김밥만은 추억의 그 맛과 모양을 살려낼 수가 없었다. 정 집에서 싼 김밥이 먹고 싶으면, 조카들의 잦은 소풍 뒷바라지에 이젠 김밥달인이 되었다는 올케들에게 살짝 몇 줄 더 싸달라고 부탁하면 되는 일인 걸 뭐. ;-p (이러니깐 시누이 소리 듣는 거라고?? ㅋㅋ)

하지만 또 내가 누구인가. 식탐 앞에선 웬만한 결심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의지력을 바닥내는 단세포 동물.
얼마 전 집에서 싼 김밥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다른 요리는 후다닥 뚝딱 잘도 하겠는데 김밥은 정말로 귀찮아서 다시는 만들어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걸 뒤집을 만큼 욕망이 컸다. 얼른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준비하고 있으려니 아차 싶었다. 집에 흰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다. 엄마의 건강을 위해 매번 항아리에 백미, 현미, 흑미, 서리태, 보리, 율무, 기장쌀까지 모두 적당한 비율로 섞어 넣어놓고 밥을 해먹고 있으니, 흰쌀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영양가야 더 많겠지만 김밥을 시커먼 밥으로 싸야하다니... 속상한 일이었다. 밥도 어지러운데 다진 당근과 달걀을 섞어 넣는 건 곤란할 것 같아 당근은 아예 넣지 않기로 했다. 익힌 당근 싫어!

사진은 그렇게 해서, 아마도 수년만에 내가 싼 깁밥의 몰골이다. 심혈을 기울여 치즈까지 넣었지만 밥이 너무 뜨거워 금세 녹아 더욱 볼품없어졌고, 내용물은 역시나 한쪽으로 밀린데다 크기도 들쭉날쭉 가관이었다.
내용물에 다 따로따로 간을 했어도, 원래 방식대로 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싱거워 30% 이상 부족한 깁밥을 꾸역꾸역 집어 먹으며 나는 또 중얼거렸다.
"내 다시는 집에서 김밥 싸먹나 봐라..."

엄마는 좀 싱겁긴 해도 먹을만하다고(맛있다고는 절대 하지 않으셨다!) 했지만, 들인 품과 기대에 비하면 결과물은 실망스럽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랏간 무수리의 삶을 이어오면서 느끼는 건, 아무렇게나 쉽게 대충 해서 먹을 때 결과물이 더 흡족하다는 사실이다. 괜히 공들여 절차가 복잡한 요리를 하면, 가사노동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 과정에 이미 지치고 화가 나는데다 식탐과 식욕 기대치 또한 높아 웬만해선 만족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왜 또 그렇게 먹고 싶은 건 많은지 원...
벨로와 키드님이 통영 여행에서 먹은 충무김밥 자랑하는 거 보고 식탐이 동해 해먹은 짝퉁 충무김밥도 그랬었다. 역시나 잡곡밥으로 싼 김밥은 보기에도 먹음직하지 않았고, 모나브님의 요리법대로 애써본 오징어무침도 어딘가 심히 부족한 맛이었다.
ㅠ.ㅠ
채썬 무를 미리 절였다가 손아프게 짜서 무쳤는데도, 왕비마마의 촌철살인.
"무가 좀 더 아작아작했어야지."
당연히 나는 그때도 투덜거렸다.
"다시는 해먹나 봐라..."

오늘은 또 무얼 해먹나 오후 내내 무수리의 고민을 잇다보니 문득 엄마표 김밥 생각이 나서 3월과 5월에 찍어둔 사진을 찾아 주절거리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없다. 김밥 싸는 엄마 옆에 앉았다가 김밥 꽁지 낼름낼름 집어먹으며 행복하던 그 때가 그저 그리워질 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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