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1.12.07 12월 6
  2. 2011.01.26 눈길 11
  3. 2010.02.11 거인의 정원 20
  4. 2010.01.04 눈타령 8
  5. 2010.01.03 눈의 종류 8
  6. 2009.12.28 17
  7. 2008.12.23 밤에 내리는 눈 17
  8. 2008.01.11 눈이 쌓였다 7
  9. 2007.11.21 두 번째 눈
  10. 2007.03.07 3월에 내리는 함박눈 4

12월

투덜일기 2011. 12. 7. 20:34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눈에 들어온 크리스마스 트리.
종교와 상관없이 불 밝힌 트리 장식을 보면 반사적으로 마음이 따뜻해졌었는데 이젠 그런 감흥도 없이 12월을 실감하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병원 로비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텐데...
그러고 보니 아직 첫눈을 구경하지 못했다. 날도 추워진다는데 예고없이 돌연 눈이나 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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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투덜일기 2011. 1. 26. 11:24

설날 전에 두번 남은 주말 가운데 큰작은아버지의 일정에 맞춰 잡은 성묘일은 마침 대폭설이 내린 지난 일요일이었다. 집에서 출발할 즈음 눈길을 걱정스러워하는 전화를 받기는 했으나, 정말이지 그땐 눈발이 우스워보였고 공주보필에 힘쓰느라 나는 뉴스니 일기예보니 하는 것에도 무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강행한 파주 성묘길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여기저기 눈길에 서너대씩 차들이 뒤엉켜 있는 도로를 엉금엉금 달려, 작은 언덕도 못올라 빌빌 미끄러지는 차를 산소 입구에 세워두고 모두들 함박눈을 맞으며 버적버적 걸어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였다. 제일 먼저 출발한 나는 빌빌 기어갔어도 한시간도 안 되어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공원묘지에 당도했지만, 모두 다섯대가 다 모인 시간은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그간 쌓인 눈이 엄청나 발이 푹푹 빠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엔 접근도 못했고, 아버지 계신 납골당에 들어가 급히 이면지에 적은 조부모님 지방과 아이폰에 담긴 아버지 사진을 나란히 제단에 놓고 절을 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손을 호호 불며 (부츠는 신고 갔으되 왜 장갑을 빼먹었던고!) 한참이나 눈길을 걷고나서 돌아온 다음날까지 뒷다리와 허리가 뻐근했다. 생각해 보니 뜻밖의 눈사태로 나는 울음바람도 잊었더라. 지난 추석 성묘땐 비가 철철 오더니, 설날 성묘땐 대설이라... 다 자손들 잘 되라는 뜻이라는 큰작은아버지 말씀에 비싯 웃으며 동감했다. 눈길 운전은 솔직히 겁났지만, 1킬로 미터에 한번 꼴로 여기 저기 구석에 차가 처박혀 있던 자유로를 달렸어도 열여섯 명이나 되는 가족들 모두 별 탈없이 무사히 귀가하였으니 그냥 눈구경 한번 잘했다 싶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너무 춥고 장갑이 없어서 조카들이랑 눈싸움 한번 못한 건 두고두고 한이 되겠다.

그나마 돌아올 무렵엔 거의 눈이 그쳤다. 저런 길을 내가 다녀왔구나.... 사진으로 다시 봐도 놀랍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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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정원

투덜일기 2010. 2. 11. 23:30

제일 처음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요즘 특히 신빙성에 도전을 받고 있는 나의 부실한 기억으론 <분명>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였던 것 같은데 자신은 없으니 (근데 왜 <분명>이라고 쓰고 싶은지) 찾아볼 마음도 들지 않는다. 어쨌거나 내 마음대로 구성해 놓은 내 기억속의 <거인의 정원>은 국어책에 들어 있었고, 학기초에 새책을 받아오면 달력 뒷장으로 책표지를 싸면서 먼저 교과서 들춰보는 걸 좋아했던 어린 나는 거인의 정원 이야기를 읽고 너무 슬퍼서 눈물을 조금 흘렸거나 울뻔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내쫓는 바람에 봄이 찾아오지 않아 춥고 모진 겨울만 존재하는 거인의 정원과 나중에 욕심을 버렸는데도 결국 그 정원에서 쓸쓸히 맞이하는 거인의 죽음이 어찌나 슬프던지.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그게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란 걸 알고 나서 반갑게 다시 읽어보니, 어린 시절에 읽은 내용은 꽤나 각색된 것이었고 원작은 기독교적인 결론이라 솔직히 크게 실망스러웠다. 어린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왔던 비극적인 결말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주변과 달리 드물게 눈이 쌓여 이상스레 녹지 않는 공간을 볼 때면 지금도 습관적으로 <거인의 정원>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거인의 정원을 뜻밖에도 우리집 마당에서 발견했다. 오늘 오전에 집을 나설 때쯤엔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며 쌓였던 눈이 푹한 날씨에 순식간에 녹아 오후에 귀가할 땐 눈이 언제 왔던가 싶게 말갛게 씻긴 모습이라 내심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집앞 계단을 올라와보니 손바닥만한 마당엔 하얗게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더란 얘기다. 오후엔 분명 진눈깨비가 내리다 기온이 영상이라 비로 바뀌었던데 잔디밭도 아니고 콘크리트 시멘트로 뒤덮인 그 공간에 쌓인 눈은 왜 온전한 것인지. 갑자기 높은 담벼락을 둘러싸놓고 홀로 사는 욕심쟁이 거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등허리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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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타령

추억주머니 2010. 1. 4. 15:50

여기다 눈 얘기를 자꾸 쓴 탓은 아닐 텐데 오늘 서울에 내린 눈은 40년만에 처음이라는 대폭설이다. 2시쯤 본 뉴스에서 서울 적설량이 현재 25.8cm라고 했음. @.@
언덕 중턱에 사는 나로선 이런 날 외출이 무서워 그냥 집에 콕 박혀 있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인데, 집앞 골목길은 여러 이웃들이 힘을 합쳐 거의 다 쓸고 길을 냈지만, 골목에서 모퉁이를 돌아 이어지는 큰 언덕길 눈밭은 이미 죄다 밟히고 다져져 비나 넉가래로는 치울 형편이 아니라 염화칼슘만 여기저기 뿌린 뒤 모두들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위쪽 동네에서도 사람들이 눈을 치우며 내려와 골목 어귀에서 만났는데, 비질을 하는 부모들 옆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나의 본적 주소지이자 (지금은 동네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주소에도 <산31번지>라고 되어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살던 할머니댁은 언덕 위에 있었다. 조부모님은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부산서 살다 다시 상경하셨으니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정착한 게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데, 서울 토박이인 외할머니댁도 똑같이 한강 건너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은 좀 신기하다.

아무튼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할머니댁이든 외할머니댁이든 언덕길에서 비닐포대 썰매를 타며 꽤나 즐거워했다. 물론 그 때도 겁이 많아서 다른 아이들처럼 경사가 제일 급한 곳부터 길게 타고 내려가진 못하고 완만한 부분만 즐겼는데, 우리가 그렇게 비닐포대로 반들반들하게 언덕길을 빙판으로 만드는 건 어른들에게 대단히 혼날 일이어서 조만간 동네 어른들 가운데 누군가 연탄재를 들고 나와 우리의 놀이터를 망가뜨리기 십상이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우리의 썰매장을 망가뜨리고 나면 아이들은 어른들에 대한 복수를 감행했다. 연탄재가 덜 뿌려진 곳을 골라 일부러 더욱 매끄럽게 발로 문질러 눈을 다진 뒤에는 마치 처음 눈이 내린 상태처럼 보이도록 눈을 보슬보슬 뿌려놓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재수없게 그곳을 밟은 사람은 영락없이 미끄러져 자빠지도록!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지만, 그땐 그렇게 만들어놓은 빙판 언덕길에 누군가 와장창 넘어지는 걸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ㅎㅎㅎ

오늘 내다본 집앞 언덕길도 그 오래 전 할머니댁 언덕처럼 꽤나 반들반들 발자국이 찍혀 있어, 비닐포대만 있다면 한번쯤 주욱 미끄럼을 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한쪽 옆에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에 처박히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이 동네에 이상한 여자 산다고 소문 날까봐 차마 시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누군가 아이들 가운데 비닐포대를 구해 썰매를 타고 논다면 슬쩍 한번 빌려타자고 나설 자신은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썰매를 눈썰매장에서나 타는 것으로 아는지 아쉽게도 저 아까운 언덕길에서 썰매 타고 노는 아이가 한명도 없다.

아무래도 나는 언덕과 인연이 많은 운명인지, 내가 다녔던 중고등학교 모두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소로는 무려 <종로구>인 서울 중심지에 그렇게 높은 학교가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금이야 염화칼슘이 흔하지만 내가 중학생 때는 염화칼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할 시기였다. 해서 겨울방학 이전에 눈이 좀 많이 내린다 싶으면 우리 학교는 무조건 단축수업을 했다. 산꼭대기라 워낙 춥기 때문에 우리 학교는 겨울 교복으로 바지를 입어도 무방했는데, 특히 추위에 약한 나는 교복 바지를 2개나 맞춰 돌려 입으며 당연히 안에 내복까지 껴입고 다녔다. 마침 근처에 화교학교가 있기도 해서, 중학교 시절 나는 교복바지 때문에 화교학교에 다니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눈이 심상치 않게 많이 내리는 날엔 어김없이 단축수업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우리는 환호를 하며 하산준비를 했다. 경사가 3, 40도 이상인 언덕이라 그야말로 눈밭 하산길은 만만치가 않아, 기다란 동앗줄 같은 밧줄이 군데 군데 드리워졌고 체육 선생들이 중간에 서서 벌벌 기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그때도 멋내는 데 열중한 아이들은 제 아무리 추워도 반드시 치마 교복에 메리제인슈즈 같은 학생 구두를 신고다녔지만, 나처럼 바지교복을 갖춰입은 아이들은 눈이 많이 내리면 책가방을 썰매삼아 타고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2학년때였던가 그날은 정말 순식간에 폭설이 내려 책가방 썰매가 얼마나 스릴 넘치고 재미나던지, 몽둥이를 휘두르는 (길 미끄럽게 한다고;;) 체육선생을 피해 몇번이나 오르내리며 책가방 썰매를 즐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재단에 건물만 달라진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눈오는 날 단축수업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고 말았다. 그새 염화칼슘이 도입되었던 것. 아마 중고등학교만 있었다면 굳이 염화칼슘을 그렇게 미친듯이 뿌려대지 않았을 텐데 그 산꼭대기에 대학건물까지 있었으니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한 교직원들의 자동차 운행 때문에라도 염화칼슘을 무더기로 살포했던 것 같다. 눈이 많이 내려도 단축수업을 하지 않는 서글픈 현실을 개탄하며, 나는 책가방 썰매 타고 가파른 학교 언덕길을 하산했던 무용담을 신이 나서 들려주었지만 다른 중학교 출신들은 좀체 믿으려하지 않았다. 중학교 동창들 가운데서도 교복바지파가 드물어 증언도 부족한 터라, 책가방 썰매 하교길은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로 남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스키장이든 눈썰매장이든 가본지가 까마득하다. 보드는 타본 적도 없고 두발로 타는 스키도 잘 타지 못하는 터라 리프트 탈 때마다 추위에 벌벌 떨어야 하는 스키장엔 지금도 가보고픈 생각이 전혀 없지만, 썰매 운전도 운전이랍시고 방향조절을 꽤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므로 ^^ 에버랜드에서 타던 스키썰매는 약간 그립다. 다 미친듯이 내린 눈 때문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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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종류

놀잇감 2010. 1. 3. 02:33

이번 겨울 전체 예보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던가? 절대 기억할 수 없어 민망하지만 어쨌든 새해들어 또 눈이 내렸다. 이번엔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파르르 부서지는 눈은 아니다. 에스키모들에겐 눈의 이름이 수십 가지라던가 수백 가지(설마 수백 가지는 아니겠지? +_+) 나 된다고 들었는데 우리말엔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 세 종류 뿐인가 싶어 찾아보니 아니란다.
<눈의 종류>로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많은 표현이 있었다.

가랑눈 · 가루눈 · 길눈 · 도둑눈 · 마른눈 · 만년눈 · 밤눈 · 복눈 · 봄눈 · 소나기눈 ·
솜눈 · 숫눈 · 싸라기눈 · 자국눈 · 진눈 · 진눈깨비 · 찬눈 · 첫눈 · 함박눈


사실 내가 흔히 썼던 <싸락눈>이 표준말인지도 그간 자신이 없었다. 며칠 전, 얼마 안 쌓인 눈길을 달려 밥먹으러 가면서 마침 다들 출판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이라 싸락눈의 맞춤법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다들 갸우뚱했다. 함박눈은 확실히 알겠는데, 알알이 부서지는 그 가느다란 눈에 대한 이름이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싸락눈? 싸라기눈?  싸래기눈? 싸리눈?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표준어는 싸라기눈이고, 싸락눈도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니 역시 표준말인 셈이다.
싸라기눈: 빗방울이 갑자기 찬 바람을 만나 얼어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
싸락눈: 싸라기눈의 준말.                                     [출처: 국립국어원]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은 건지 원. 싸락눈. 싸라기눈. 둘 다 사투리같다. 크크.

게다가 내가 싸락눈이라고 우겼던 지난주초 폭설 때 눈은 쌀알처럼 뭉쳐지지도 않고 아예 파르르 부서지는 눈이었으니 <가루눈>이라고 했어야 옳다. 가랑비가 있듯이 가랑눈도 있고, 마른눈이 있으면 진눈도 있다는 게 재밌다. 눈만 오면 눈사람을 만들러 뛰쳐나갔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니 확실히 함박눈이라고 다 진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솜덩이 찢어 던지듯 펑펑 내렸어도 잘 뭉쳐지는 습기 많은 눈이 있었는가 하면, 싸락눈 못지않게 잘 안뭉쳐지던 마른 함박눈도 분명 있었던 게 기억난다.

올 겨울에 얼마나 더 눈이 내릴지는 모르겠는데, 새삼 눈의 종류를 찾아보았으니 이젠 눈 내릴때마다 어떤 눈인지 굳이 밖에 나가 확인하는 거나 아닌지. 마침 조카들이 놀러오는 날 또 함박눈이 온다면 나도 눈사람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이웃들은 매일 동숲에서 눈사람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 눈덩이를 굴린다는데, 나는 현실에서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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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잇감 2009. 12. 28. 12:56
나는 어제 비로소 올 겨울 들어 처음 눈을 맞아보았다. 크리스마스 날에도 눈이 왔다지만 밖에 안나가봐서 모르겠고, 어제 온종일 내린 눈은 꽤나 무서운 기세였다. 오후가 되도록 아무도 동네 눈 치우는 소리가 안들려 걱정스러운 마음에 (오늘 아침 일찍 왕비마마의 병원 나들이가 잡혀 있던 터라 언덕길이 심히 염려됐다) 공주와 둘이 눈싸움을 빌미로 비를 들고 나섰더니 기상대 예상은 2.5센티미터라는데, 내 차 지붕에 쌓인 눈은 전날 쌓인 눈을 감안하더라도 이미 5센티미터도 훨씬 넘은 상태였다.
공주는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날씨가 워낙 추워 부슬부슬 부서져 내린 싸락눈이 잘 뭉쳐질 리가 없다. 괜히 부질없는 눈싸움 하느라 둘 다 옷만 잔뜩 버리고는, 동네 쌓인 눈 비질은 아랫집 두 아저씨에게 맡겨야 했다. 어제 그렇게 먼저 눈을 치웠는데도 그 이후 내린 눈이 또 2센티미터는 넘는듯. 우리 동네만 유독 눈이 많이 내린 걸까? 오늘 아침 아슬아슬 간신히 차고를 빠져나와 병원으로 향하는 길엔 언덕에서 빌빌대다 괜스레 세워놓은 자동차들 옆구리를 치받는 봉고차들 여럿 봤다. 눈길과 언덕에서 다마스나 봉고 형 승합차는 특히 취약한듯! 다행히 베테랑 운전 덕분인지 왕비마마를 태운 우리 차는 설설 기어 무사히 다녀왔는데, 어젠 그토록 새하얗고 뽀얗게 변했던 눈세상이 온통 시커멓게 더러운 회색 구정물 세상으로 바뀌었다. 눈의 미학은 정녕 내릴 때의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싶어 새삼 아쉽다.

해서 해묵은 휴대폰 사진을 애써 찾아봤다. 올초 내린 눈으로 조카들이 우리 마당에 만들어 놓았던 귀여운 눈사람 두개. 눈사람 생김새도 주인과 좀 닮은 것 같아 웃음난다. ㅋㅋ

2009. 1. 24. 지환&정민 작품: 나뭇잎 꾸미기는 모두 정민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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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내리는 눈

삶꾸러미 2008. 12. 23. 02:04


밤참 챙기러 부스럭대며 집안을 오가다 문득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소리없이 눈이 내리고 있다.
올 겨울 들어 벌써 몇번째 내리는 눈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데
원래부터 멀쩡히 존재하던 신대륙을 새삼 <발견>했노라며 억지스럽게 자기 이름을 붙여댄 식민주의자들처럼 멍청하게 나 역시 한밤중에 저 눈을 발견한 것은 오롯이 나라는 착각에 빠져 한참이나 좋아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제일 먼저 발자국을 찍고 싶은 충동 역시 식민주의자의 못된 심보 같아서 참기로 했다.
혹시 귀찮음을 감추느라 아는 게 병인 양 쓸데없는 핑계를 같다 붙이는 것일지도.
아무려나 온종일 TV도 뉴스도 보질 않아 날씨예보 역시 모르고 있던 터라
공연히 선물처럼 느껴지는 한밤에 몰래 내리는 눈.

달리 불켜진 창 없는 우리 동네에선 내가 유일하게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따뜻한 찻잔 하나 감싸쥐고 오래도록 바라보련다.
늘 그러듯 내일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모두 사라져버릴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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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였다

삶꾸러미 2008. 1. 11. 15:39
세상모르게 쿨쿨 자고 있다가
꽤 많은 눈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벌떡 일어나게 되는 계기는 늘
집앞을 쓰는 빗자루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부지런히 집앞에 쌓인 눈을 쓰는 사람은 십중팔구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저 멀리 골목 어귀까지 눈을 치우고 있자면, 비질하는 소리를 듣고서 이웃 아저씨들도 나와서 거들곤 하셨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사방이 고요하다.
사람들이 힘겨운 비질보다 염화칼슘 내다 뿌리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이리라.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눈을 내다보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는
동네 친구 아줌마 등쌀에 반강제로 마실간 엄마가 돌아오는 길에 혹시 계단에서 미끄러질까봐
모자달린 파카 입고 나가서 기다란 빗자루로 알량하게나마 집앞에 길을 냈다.
꽤 많이 쌓인 눈은 원래 무거워서 잘 쓸어지지도 않는데
오늘은 푹한 날씨 탓에 젖어 늘어붙은 눈이라 비질이 더욱 어려웠다.  

촤륵촤륵... 눈 쓰는 소리가 정겨운 만큼 슬퍼져서 얼른 들어와
눈 핑계대고 술 한잔 청해볼까 지인들을 떠올리다가
그냥 차나 한 잔 더 마시려고 찻물을 올려놓았다.

마실간 엄마는 수다가 길어지는지 아직도 안 오시고
부슬부슬 힘없는 눈발은 그칠줄을 모르고...
고양이 세수하듯 쓸어놓은 집앞 길엔 또 다시 눈이 쌓여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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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눈

삶꾸러미 2007. 11. 21. 23:09
첫눈에 이어 그 다음날에도 또 눈이 오다니
올해는 눈이 흔하려는 징조인가?

동네마다 휘리릭 날리다 마는 것으로 그치는 예년의 첫눈과 달리
올 첫눈은 그래도 눈발이 꽤나 굵었다.
눈이 올 가능성을 알리는 기상예보엔 둔감했었는데, 첫눈 온다고 창밖을 내다보라는
정민공주의 전화를 받고서 후다닥 밖을 내다보니 옛날과는 달라도 조금은 가슴이 설렜다.
첫눈 온다고 호들갑 떠는 메시지를 몇개나 날렸을 정도로... ^^
물론 곧이어 내린 비에 첫눈의 흔적은 죄다 씻겨 내려갔지만
두 번째 눈은 오늘 오후까지 응달에 쌓여있을 정도니 꽤나 내린 모양이다.

그런데 첫눈과 두 번째 눈에 대한 대우는 사뭇 다르다.
첫눈이 다 녹아 흔적도 없는 건 그리도 아쉽더니만
두 번째 눈이 고스란히 쌓여 하얗게 뒤덮인 차를 보니 제일 먼저 눈 치우는 게  귀찮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인간이 참 어찌나 간사스러운지...

드륵드륵 앞창과 뒷창의 눈만 간신히 긁어낸 뒤 짧은 외출을 하며
그리 춥지도 않은데 히터를 세게 틀고 툴툴거렸다.
작년엔 그래도 12월 들어서 공식 겨울을 인정했는데
올해는 12월을 열흘이나 앞두고서 겨울을 받아들여야하는 것인가, 하는 쓰잘데기 없는 푸념과 함께.

그나마 한 데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제라늄이랑 화분 몇개는 며칠 전에 뒷베란다로 들여놓아 다행이다.
지들이 안 얼어죽으면 내년에 다시 살아나든지 하겠지.

어쨌거나 세번째 눈이 내리는 날엔
찻집에서 마음 편한 지인들과 수다라도 떨 수 있으면 좋겠다.
주책없이 너무 늦게 내리거나 너무 일찍 내리지 말고, 웬만하면 시간 맞춰서 눈이 오면 좋을텐데
하늘한테 너무 욕심 부리면 안되는 건가?

겨울이 온 건지 어쩐 건지는 몰라도
암튼 나의 가을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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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도 눈발이 휘날리더니만...
3월 7일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다니!!!

다른 동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작업실이 있는 응암동엔 지금 굵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구름은 잔뜩 끼었지만 먹구름이 아니라 흰구름이고 얼핏 햇빛도 느껴지는 환한 하늘이어서 좀 내리다 말겠지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낮기온은 영하 날씨가 아니어서 쌓일 것 같지는 않지만
암튼 하도 신기하고 난감해서 어쩐기 기록해둬야 할 것 같았다.

이젠 정말 봄이 왔나보다고 마음 놓았더니
겨울은 내 뒤통수를 때리듯 며칠째 마지막 심술을 부리고 있다.
생명력이 가장 질긴 잡풀과 함께 화단에서 벌써 파랗게 돋아났던 민들레 새순은 그제 어제 혹한에 얼어버린 것 같던데, 경칩까지 다 지나고서 눈이 내리다니...
내 아무리 눈을 좋아한다지만 이럴 때 내리는 눈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데 눈치 없이 떠나야 할 순간을 모르고 자꾸만 엉겨대는 주책바가지 같아 밉살스럽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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