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내리는 눈

삶꾸러미 2008. 12. 23. 02:04


밤참 챙기러 부스럭대며 집안을 오가다 문득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소리없이 눈이 내리고 있다.
올 겨울 들어 벌써 몇번째 내리는 눈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데
원래부터 멀쩡히 존재하던 신대륙을 새삼 <발견>했노라며 억지스럽게 자기 이름을 붙여댄 식민주의자들처럼 멍청하게 나 역시 한밤중에 저 눈을 발견한 것은 오롯이 나라는 착각에 빠져 한참이나 좋아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제일 먼저 발자국을 찍고 싶은 충동 역시 식민주의자의 못된 심보 같아서 참기로 했다.
혹시 귀찮음을 감추느라 아는 게 병인 양 쓸데없는 핑계를 같다 붙이는 것일지도.
아무려나 온종일 TV도 뉴스도 보질 않아 날씨예보 역시 모르고 있던 터라
공연히 선물처럼 느껴지는 한밤에 몰래 내리는 눈.

달리 불켜진 창 없는 우리 동네에선 내가 유일하게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따뜻한 찻잔 하나 감싸쥐고 오래도록 바라보련다.
늘 그러듯 내일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모두 사라져버릴 지도 몰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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