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15.06.13 6월 12일 7
  2. 2015.05.25 모란과 작약 8
  3. 2015.04.28 4월 28일 8
  4. 2015.04.04 꽃대궐 7
  5. 2014.07.02 경복궁 특별답사 5
  6. 2014.04.13 수양벚꽃 8
  7. 2014.01.06 2013년에 읽은 책 6
  8. 2013.10.07 장장 9개월 16
  9. 2013.09.11 조선의 못난 개항
  10. 2013.09.03 경회루 특별관람 5

6월 12일

하나마나 푸념 2015. 6. 13. 00:34

​경복궁이 이렇게 한산할 수가. 이것이 바로 메르스 효과.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거리던 경복궁 근정전 앞 마당이 텅 비었다. 정기 휴관일처럼 보일 정도다. ^^;

무료해설을 원하던 단체 예약은 모두 취소됐고, 그야말로 자원봉사자들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여유롭게 경회루 앞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노닥거려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상황. 그래도 궁궐에 사람 없어 좋을 것 같다며 찾아온 소수의 사람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평소 관람객의 최소 7할은 차지했던 아시아권 관람객이 전무하니 경복궁에서 이런 모습도 연출이 되더군. 작년엔 세월호 때문에 여행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던데 올해도 또... 전염병 창궐하는 후진국에 누가 오고 싶겠나. 나라도 여행계획 취소할듯.  

설마 메르스 환자가 궁궐 나들이 오겠어, 그러면서(자가격리 대상자가 울릉도 관광도 간 걸 보면 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도 같지만) 이래저래 한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딱 좋은 날이었는데, 한 가지 짜증나는 옥에 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청와대로 오가는 헬기들의 굉음. 경복궁 후원쪽에선  다다다다 두 대씩 날아와 청와대에 내려앉는 모습을 코앞에서 볼 수 있고 그럴 때면 바로 옆에서 얘기를 해도 하나도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아오 시끄러워랏.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몰랑, 미국 갈거야... 뱅기탈거야... 그러다가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깐 헬기 타고서라도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댕기면서 항공마일리지 늘리는 거라고... 뭔 일만 터지면 해외로 도망쳐야 하는데 이번엔 못 가서 어쩌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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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과 작약

놀잇감 2015. 5. 25. 02:29

나는 어린 시절 '모란'이라는 꽃을 선덕여왕 위인전에서 처음 알게 됐던 것 같다. 꽃은 화려하고 예쁜데 향기가 없다는 걸 선덕여왕이 그림만 보고도 척 맞혔다나 뭐라나... 벌과 나비 없이 꽃만 그려서 향기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건데, 요새도 선덕여왕 위인전에 그런 얘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란에 향기가 없어서 벌과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다는 건 뻥이다. 그냥 모란 그림에는 벌과 나비를 안 그리는 게 전통 그림 양식이었겠지. 그런 그림들을 익히 본 후대 사람들이 선덕여왕 일화도 지어낸 게 아닐까나? -_-;


무튼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다. 어린 시절 선덕여왕의 모란과 울 할머니가 가끔 치시는 민화투의 '목단'이 같은 꽃이란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ㅋㅋㅋ

 ㅎㅎㅎ 이제보니 화투 모란꽃도 예쁜 것 같네... 


어쨌거나 모란은 일찌기 당송시대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고 역사적으로도 그 의미가 계속 이어졌던지 조선시대 궁궐과 종묘에서도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쓰인다. 주로 병풍으로...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 '일월오봉도'라고 하지만, 모란도 역시 궁궐의 모든 주요 의전행사에 쓰이는 그림이었단다. 혼례식, 장례식, 관례식 할 것 없이 전부! 종묘에 가보면 각각의 신주를 모신 제단에 일월오봉도 말고도 모란병이 이중으로 둘러쳐져 있단다. 저렇게 기암괴석 위에서 수직으로 자라는 모습을 화려하게 그린 것이 일반적.


저런 그림을 보면 아 모란이로군, 하고 아는 척은 하겠는데 실물로는 모란과 작약을 오래도록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 '모란은 목본식물이고, 작약은 초본식물이다(뿌리만 살아있고 줄기는 겨울되면 다 시들지만 역시나 다년생 ㅠ.ㅠ)'라고 알면 뭐하냐고! 꽃을 봐도 구분이 안되는데.... +_+


작년에 내가 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용산가족공원 정원에서 찍어온 사진들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올리면서 내가 아마 모란이라고 했다가 작약으로 바꿨던가.. 암튼 작년만해도 아리까리 구분하는데 통 자신이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래 사진 석장은 죄다 작약이다. 

2014년 5월 23일에 찍어온 작약


특히나 아래 연분홍 작약이 수술 모양이 오묘해서 이런 게 다 작약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개량종은 별별 모양이 다 있으니 원.... 

보시라.... 지식백과에서 퍼온 작약사진이다..

작약도 노란 꽃술...



그렇다면 모란은???

내가 파악한 바로 구분법은 오로지 이파리!!

올해 경복궁에서 내가 찍어온 모란꽃을 다시 보자..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똑같은 구도와 색깔 꽃을 찍어오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작약 사진 비슷한 걸로 위에 퍼왔으니 일단 넘어가자. (아오... 지난주에 입궐해보니 교태전 후원에 작약도 잔뜩 피었던데 아까비;;;)

2015년 4월 28일에 찍은 모란



잎사귀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지 않는가?!

모란은 잎이 넓적하고 손바닥처럼 펼쳐져 있다면, 작약은 잎이 뾰족뾰족 작고 좁고 좀더 딱딱하게 생겼다. 개량종인지 어쩐지 몰라도 꽃도 모란이 훨씬 크고 탐스러운 느낌. (궁궐에 심은 거라 유독 그럴지도.... ^^a)


모란은 흔히 '꽃중의 왕'이라고 하여 왕실에서 특히 사랑했던 것 같은데, 시기적으로도 모란이 먼저 핀단다. 2주쯤? 게다가 모란은 기껏해야 닷새에서 일주일밖에 꽃을 못 볼 정도로 금세 지는데 작약은 이래저래 '짝퉁'스럽게도 모란보다 늦게 피어서 꽃도 좀 더 오래 버틴다고. ㅋㅋ 


근데 또 헷갈리게도 영어로는 모란도 작약도 모두 peony! 구분하는 거 좋아하는 우리나 모란/작약 차이점에 연연할 뿐, 서양애들 눈엔 그냥 다 '피오니'인 거다! 쳇... 

찾아보니 둘다 '미나리아재비 목'에 속한대고

모란의 학명은 Paeonia suffruticosa

작약의 학명은 Paeonia lactiflora

서로 사촌이 틀림없다. 아니.. 자매인가? ^^; 


암튼... 4월에 핀 걸 봤다 싶으면 모란일 확률이 높고

5월에 본 건 작약이겠거니 , 특히 5월 중순 이후에 봤다면 무조건 작약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막연한가?

째뜬 나는 이제 이파리로 구분할 수 있다규~~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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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놀잇감 2015. 4. 28. 18:19

또 다시 1년만에 휴관일의 경복궁 특별 관람.


5월로 다가온 각종 궁궐축제를 앞두고 궁궐마당은 온갖 리허설로 분주했고, 준비 덜 된 답사 진행은 몹시 서툴렀다. 잠도 못자고 다른 급한 일까지 제끼며 달려갔던 터라 마냥 늘어지는 시간 관리엔 짜증이 버럭 났지만...


왕비의 시선으로 교태전 툇마루에서 바라본 아미산 화계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만개한 모습을 사나흘 밖에 안 보여주는 모란의 절정 모습을 몇년만에 처음 보았으니 그걸로 됐구나 싶다. 





언제나 중국인들로 바글거리는 내전 마당도 텅 비어 좋았고, 툇마루에 앉아 올려다보는 줄줄이 이어진 기와지붕들도 좋았다. 궁궐 마당을 자전거 타고 휙 가로지르는 경복궁 담당자가 어찌나 부럽던지! 줄무늬 옷까지 입으니 얼핏 <마지막 황제>의 한 장면도 떠오르고...  마침 하늘엔 금방 비행기가 날아갔나, 가늘게 흰 선이 그려져 있었다.






오랜 복원공사 끝에 드디어 문을 여는 수라간에서 발견한 우물. 옛날 돌과 요즘 돌은 확실히 색깔이 다르다. 



향원정은 이왕이면 중고딩때 사생대회에서 그린 그림 구도로 뙇~



이제야 확실히 모란이랑 작약을 구분할 줄 알겠다. 목본이니 초본이니 하는 이론적인 구분은 만날 들어봐야 헛것이고 이파리가 다르다. 넓고 평평한 잎은 모란, 좁고 반짝이는 잎은 작약. 확실히 꽃도 모란이 더 크고 탐스러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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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궐

놀잇감 2015. 4. 4. 21:21

계속 흐린 날씨가 아쉬웠던 어제 경복궁.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꽃들이 뙇~~!

매화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는 그래도 매화가 맞다고 하고, 누구는 복숭아꽃이라 하고, 누구는 살구꽃이라고 하고... ㅋㅋㅋ 암튼 예쁜 봄꽃인 것만 확실하다. ^^ 맑고 파란 하늘 배경이었더라면 금상첨화겠으나, 안개가 낀 듯 구름이 내려앉은 흐린 잿빛 하늘 배경으로도 나름 운치 있다.​

자경전 꽃담 앞 살구꽃

사진 비율이 달라진 것으로 눈치 챈 분도 있겠지만, 이 사진은 내가 찍은 게 아니다. 나도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눌러댔는데 막 다 흔들리고 흐리고 구도 엉망이고.. ㅠ.ㅠ 해서 다른 선생님이 찍으신 사진으로 대신 퍼왔음.  ​

안 그래도 예쁜 꽃담 앞에 예쁜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꽃대궐이구나 싶은 광경. 그러나 아쉽게도 경회루 수양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해서 올해는 구경 못하고 넘어갈듯. 2주에 한번으론 모든 꽃잔치를 다 만끽하기기가 어렵다. 

​역시나 딴분 사진. 할미꽃이 이렇게 집단으로 피어있다뉘.. 작년에도 봤지만 새삼 신기하고 놀랍다. 마치 튤립같지 않은가?? ^^;

이건 확실히 매화거든요..

이건 다시 내가 2주전에 찍은 태원전 앞 매화 사진.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던 터라 만개한 꽃이 몇개 없었는데도 향기가 정말 그윽했고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붕붕 거렸었다. 덕분에 벌까지 포착하는 행운을 누렸는데, 어제 2주만에 다시 찾아갔더니 전날 밤 내린 비에 꽃은 거의 다 떨어지고 시들고... ㅠ.ㅠ 

헐겁든 쫀쫀하든 확실히 조직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고 일부 사람도 싫어졌고 한옥과 역사 공부도 시들하지만... 아직은 예쁜 꽃보며 궁궐 마당에서 걷는 운동(?)하는 걸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중. 이러다 지치면 뭐 나가떨어지겠지. ㅋㅋ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건 순전 뻥이다. 어디 감히...  추한 인간보다는 꽃이 확실히 더 향기롭고 아릅답다.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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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특별답사

놀잇감 2014. 7. 2. 23:16

궁궐에서 안내 자원봉사를 하면 일반 관람객이 못들어가는 전각 내부까지 속속들이 구경할 기회가 많을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그런 혜택이 별로 많지 않다. 특히나 경복궁은 청와대가 가까워서 보안요원들도 늘 상주하고 있고, 특히 인적 뜸한 북쪽 전각들은 속속들이 구경하려고 한가한 시간에 홀로 뒷담에 가까이 다가가 사진 찍다가는 흠칫 놀랄 때도 많다. 전경인지 의경인지 암튼 곳곳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어느 틈에 나타나 주시하며 서로 막 워키토키로 '수상한 인물'이 접근중임을 보고하고 난리다. ㅋㅋ


세월호 관련 시위가 광화문과 시청앞에서 벌어지던 어느 주말 낮에는, 대학생들이 청와대 앞까지 기습적으로 진입해 시위를 벌였다는데 그때 이용한 통로가 경복궁이었단다. 대학생들(25세까지던가;;)은 입장료도 무료이고, 북쪽 출입구인 신무문 나가면 바로 청와대 입구이니, 누구 아이디언지 기발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 탓에 보안요원들의 경복궁 입구 감시가 더욱 삼엄해져, 야광조끼 입은 의경들 여럿 뿐만 아니라 선글라스 낀 사복 경찰(경호대 소속일까?) 같은 사람이 아주 까칠한 표정으로 입장권 내고 들어가는 주 출입구(흥례문) 앞에 서서 모든 이들을 주시한다. 듣자하니 언젠가는 사복입고 온 중학생들을 괜히 의심해 심문하기도 했다고...  


계속 경복궁 제모습 찾기 복원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고, 2030년까지 흥선대원군 중건당시의 80%를 복원한다는데, 경복궁이 정말로 제 모습을 찾으려면 청와대가 이사를 가야한다고 본다. 청와대가 경복궁 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대통령 되고 나면 더더욱 지들이 '왕'이 된 거라 착각하는 게 아닐까? 정말로 스스로 왕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는 이승만은 심지어 경회루 한 귀퉁이에 정자(하향정)를 지어 전용 낚시터로 사용했고, 그 정자가 아직도 버젓이 남아있다. 없앨 것인가 말 것인가 논란이 많지만, 훼손의 역사도 역사인지라 보존하는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는 모양이다. 문화재 보존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요즘에나 높아졌지, 독재정권 시절은 물론이고 군사정권을 거쳐 김영삼 시절까지도 대통령이 되면 경복궁을 아주 제 마당처럼 써먹으며 경회루 같은 데서 파티를 벌이고 했다는 거 같다. 문화재 훼손의 제일 큰 주범은 암만해도 한국인들이 아닐지.   


암튼 참 후지게도 지은 청와대는 양옥도 아니고 한옥도 아닌 얼치기에다 내부 시설도 엉망진창이라지만, 역대 대통령 중 감히 누구도 새로 짓자거나 옮기자는 말을 못했고, 앞으로도 쉽게 할 순 없을 거다. 가뜩이나 욕먹기 십상인 대통령이 저 편하자고 대통령 관저에 막대한 예산 들인다면 얼마나 국민들이 욕을 해대겠나. 영빈관 하나 제대로 없어서 외국 대통령들 오면 죄다 호텔에서 묵는 판국이니, 이왕 지으려면 품격있게 최소한 100년은 쓸 수 있게 잘 지어야할텐데 그걸 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면.... 흠.. 뾰족한 답은 없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경복궁에 초점을 맞추어 장기적으로 제대로 문화재 복원사업을 계획한다면 청와대를 옮겨야한다고 생각한다. 궁궐 관람중에 다다다다 요란하게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면 아우 정말 시끄러워서 원! 일제시대 지은 '경무대'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은 청와대 터는 진짜로 경복궁 후원이었다니깐! 언제가 되었든, 정말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나타나서 필요성을 검증받고 온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낸 뒤에 대통령관저를 정말이지 근사하고 아름답게 짓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경복궁 뒤쪽의 후원도 제 모습을 찾기를 한옥 및 문화재 애호가로서 바라고 있다. ^^; 


아우 뭔 딴 소리가 이렇게 길어졌다냐. 경복궁 휴관일인 화요일에 자원봉사자들 특별관람 했다는 거 보고하려던 포스팅이었는데 순 딴소리만... ㅠ.ㅠ 

하여간에 내가 꼭 들어가보고 싶었던 전각은 근정전, 향원정, 집옥재였는데, 그곳은 쏘옥~ 빼고 다니긴 했어도 나름 뿌듯했던 특별답사 사진 대거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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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벚꽃

놀잇감 2014. 4. 13. 16:32

눈여겨보지 않아서 그렇지, 벚나무를 많이 심어놓아 벚꽃길로 유명한 데를 가보면 대개 가지가 축축 늘어져 꽃이 피어나는 수양벚꽃이 한두그루씩은 꼭 있다. 우리동네 벚꽃길에도 물론 있고, 제주도나 경주에서도 본 기억이 나고, 여의도 윤중로에도 있었던 것 같고, 각 궁궐에도 다 있는 듯하다. (창덕궁과 경복궁에 있는 건 내 눈으로 봤으니 확실한데 나머지 궁에도 있는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 ^^; 근데 아마 있지 않을까나 ㅋ)

 

하지만 내가 수양벚꽃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난생 처음 봤다며 반색한다. 유명한 데로 벚꽃 구경 한번 안다녀 본 사람은 없을 텐데 이유가 뭘까...  철철이 꽃구경에 심취한다는 건 나이들었다는 뜻이며, 꽃놀이 다닐 생각이 들면 그건 중년이라는 증거라는 말도 듣는다. 하기야 난 젊어서도 꽃을 좋아했다고  주장하는 바이지만, 사실 어려서 좋아했던 건 꽃집에서 파는 꽃 위주였던 것 같다. 장미, 튤립, 프리지아, 백합, 스타치스, 칼라, 소국, 수국, 카네이션, 데이지, 리시안서스... 꽃집 양동이에 담긴 싱싱한 꽃들과 향기에 행복해하다가 신중하게 골라 한 다발 집안에 들여놓고는 좋아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지긋지긋한 월요병을 극복하고자, 월요일마다 사무실 책상에 일부러 꽃을 꽂기도 했다. 지 책상에만 유난스레 꽃 꽂아놓는다고 남들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흥. 

 

물론 길가에 피어나는 민들레, 애기똥풀, 개망초, 제비꽃, 진달래 같은 애들도 예뻐했지만 굳이 꽃구경을 나설 생각은 진짜로 서른 넘어서 했던 것도 같고... 아닌데, 스무살 때도 데이트랍시고 분명 밤벚꽃놀이 갔었는데 ㅠ.ㅠ 지금도 젊은 사람들의 꽃놀이는 벚꽃구경이 유일하고, 나머지 꽃구경은 '아줌마들'의 전유물이 맞는 것도 같다.

 

암튼 잎도 나기전에 서둘러 화라락 피어나는 성급한 봄꽃들은 거의 다 졌고, 라일락이 한창이다. 벚꽃, 살구꽃, 매화, 복사꽃(이들이 바로 나를 몹시 헷갈리게 만드는 비슷한 꽃 4종 세트되시겠다 ㅋㅋ 하기야, 배꽃, 자두꽃도 비슷하게 생겼더라 ㅠ.ㅠ) , 목련, 진달래, 개나리 같은 애들을 다시 보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게 생겼다. 아쉬운 마음에 종종 핸드폰에 든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러고 보니 '수양벚꽃'이 정확한 이름인 줄도 잘 모른다. 수양버들은 수나라 양제가 운하를 건설하며 강가에 버드나무를 심게 해서 생긴 이름이라던데, 그래서 원산지가 중국이고 우리나라 자생 버드나무는 능수버들이라고 한다던데. 둘의 차이는 물론 암만 봐도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수양벚꽃도 능수벚꽃이라 불러야 하나? ㅋㅋ 아 이 겉잡을 수 없는 잡념의 꼬리물기..

 

결론은 그저 벚꽃이 져 아쉽다는 것. 

 

날이 맑긴 했어도 바람불고 엄청 쌀쌀했던 4월 4일 경회루 앞. 이날도 이미 궁궐 벚꽃은 끝물이었다.

 

이건 복사꽃 (개복숭아꽃이라고 누가 그랬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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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빌려준대도 그렇지, 두달만에 30권 읽겠다는 망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는 1년간 읽은 책의 권수를 보니 더욱 명확해진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읽은 책은 재독 포함 겨우 25권이었다. 1년에 30권도 못 읽는 주제에 나 원 참... (아쉬운 김에 돈벌이로 읽은 책을 올해부터 끼워넣으려다가 영업비밀상 안될 것 같아서 말았다 ㅋ)

예전에도 읽다가 말고 미뤄두는 책들이 있었지만, 읽기 괴로워도 꼭 끝내야할 것만 같아서 어쩐지 빚쟁이가 된 심정으로 그런 책들을 흘끔거렸다면 이젠 과감히 포기할 책은 포기하는 대담함(?)을 갖추게 되었다는 걸로 나름의 핑계를 삼기로 했다. 나랑 안맞는 책도 있는 거지 뭘, 굳이 억지로 읽을 것까지야 ^^;  

 

하여간 2013년 독서 경향을 보면 궁궐에 대한 책이거나 관련서적이 압도적이다. ㅋㅋ 알량한 안내 매뉴얼 만드느라고 어쩔 수가 없었다. ㅠ.ㅠ 건축 관련 책도 많이 읽은 줄 알았더니 빌려 읽다말고 돌려준 책이 대부분인지 끝낸 건 몇 권 안되네 쩝. 이런 독서경향은 아마 2014년에도 이어지지 않을까나. 뭘 좀 떠들어대려면 아직도 알아야할 게 너무 많다.  흑...

 

2013년부터는 독서노트를 쓸 때 몇줄이라도 감상을 적어놓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다 실천하진 못했다. 그래도 휴대폰에 iReaditNow라는 앱을 깔아놓았더니 나름 자극도 되고 독서 직후 별점 표시도 할 수 있어서 집계에 도움이 되었다. ^^; 그 별점을 토대로 베스트 책 3권을 뽑아야하는데 그건 여전히 좀 어렵군. ㅋ (째뜬 별 3개 이상은 파란색으로 표기해두었음)

 

 

<비소설>

1.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삼인, 2006.

안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문 옆에 또 작게 음식전용 출입구로 쓰이던 쪽문 이야기며, 다락방의 추억 등등, 옛날 내 어린시절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많아 정겨웠다.

2. 우리궁궐이야기, 홍순민 지음, 청년사, 1999.

궁궐공부의 원조 교과서 격이라 또 한번 완전 정독했다. 10년도 더 세월이 흘러, 지은이가 초판에 개탄했던 문제점들이 여러부분 개선되었으니 개정판이 나와줄만도 한데, 왜 절판도 안시키고 계속 옛날 책을 파는지 난 그게 못내 궁금하다. -_-;

3.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최순우 지음, 학고재, 2002.

역시나 필요해서 재독한 책. 종이가 벌써 누렇게 변해가는 오래된 책을 보며 한국 정원의 미학이니, 차경이니 하는 이야기를 새삼 곱씹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무량수전엘 못가봤을 뿐이고! ㅠ.ㅠ

4. 궁궐, 조선을 말하다, 조재모 지음, 아트북스, 2012.

궁궐 교육 받을 때 이 책의 지은이가 강사진 중 한명이었는데, 강사들 대부분 자기 책 홍보를 했지만 이 책 딱 한권 샀다. 전각에 신을 신고 들어가느냐, 벗고 들어가느냐가 공간 활용에 엄청난 차이를 준다는 이야기에 혹했던 것. 궁궐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아니라 의례의 공간으로 풀어나간 건축학자의 책이라 열심히 읽었음. 

5. 타블로이드 전쟁,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양철북, 2013.

옐로저널리즘의 시작과 그 '끝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책. 근거 없는 증권가 찌라시와 개인의 sns 문구들이 언론에서 자랑스레 재생산되는 이 시대와 다를 게 뭔가싶다. 따로 포스팅도 했으니 중략.

6.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 글`그림`사진, 페이퍼스토리, 2012.

길쭉하기만 해서 나로선 도무지 정말 아름답고 빼어난 건축물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종묘 정전이 표지에 들었고, 지은이는 종묘 정전이 길어서 좋단다. ㅋ. 전작들처럼 지은이의 그림체가 예뻐서 좋았고, 복닥복닥 정신사나운 서울에 대한 내 마음과도 비슷해서 '소장'에 더 의미를 뒀던 책이다. 가끔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감탄하기로. 

7. 감응의 건축,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도 나오는 무주프로젝트 10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건축가들이 다 그림도 잘 그리는 것도 사실이고 정기용 선생은 특히나 미술학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아니 뭐 이리 글도 잘 쓰나그래. 건축에 대한 선망도 있겠다 폭풍감동하며 읽었고 많이도 베겨적어놓았으되 벌써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굳이 인용문을 찾아보자면...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으로 중첩된 지역은 조물주가 이미 절반 이상을 건축해 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땅위에 건축을 한다는 것은 잠시 존재할 수 있는 건축물을 땅 위에 올려놓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땅을 기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땅이 결합하면서 자연을 더 자연답게 하고 건축을 더 건축답게 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정할 때 좋은 건축이 가능하다.  - p302

8.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것, 양택규 지음, 책과 함께, 2007.

9. 조선의 정궁, 경복궁, 신영훈 지음, 김대벽 사진, 조선일보사, 2003.

10.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 한영우 지음, 효형출판, 2007.

11.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석원, 황금희 지음, 미다스 북스, 2013.

12. 신궁궐기행, 이덕수 지음, 대원사, 2004

모두 참고용으로 읽은 책인데 요긴히 도움을 받은 책은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과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전자는 몇년 시간이 지나며 복원 사업 탓인지 수정해야할 부분이 더러 있었지만 전각별로 속속들이 짚어주어 좋았고, 후자는 경복궁 관련 가장 따끈한 책이라 의미 있었던 듯. 궁궐관련 책들은 서로서로 참고해서 쓰다보니 비슷한 면이(틀린 부분까지도!) 많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

13.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지음, 역사의 아침, 2013.

근대역사에 급관심이 생겨서 찾아본 책.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는 부제에 딱 맞게 실패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준다. 역사에는 if가 아무런 소용없는 짓이라지만, 우리로선 노상 '그랬었더라면...'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걸 어쩌겠나. 드물게 포스팅도 했으니 길게 설명 안하겠음.

14. 남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유진숙 지음, 파라북스, 2010.

이태준, 김동인, 한용운, 백석. 이상.... 서울 곳곳에 남은 문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문학산책이다. 잊고 있던 싯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 좋았으나 이미 흔한 기획이고 뻔한 글처럼 느껴졌음. ^^;

15. 1901년 서울을 걷다, 버튼 홉스 지음, 이진석 옮김, 푸른길, 2012.

역시나 근대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빌려읽은 책. 종종 부정확하지만 퍽 객관적인 외국인의 흥미로운 시각으로 본 조선의 근대라는 점에 의미가 있을 듯.

16. 조선 궁궐의 그림, 한국학중앙연구원(박정혜, 황정연, 강민기, 윤진명) 지음, 돌베개, 2012.

그림도 내용도 실해서 소장욕을 엄청 불러일으키는 책! 33000원이라는 고가만 아니었다면 벌써 사들였을 텐데.. ㅠ.ㅠ 

아쉬움이 있다면 지은이 여러 명이 나눠 집필하다보니 챕터별로 설명이 중복되어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들고 전체적인 짜임새 면에서 헐거워졌음. 그래서 물론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17. 즉위식, 국왕의 탄생, 김지영, 김문식, 박례경, 송지원, 심승구, 이은주 지음, 돌베개, 2013.

역시나 갖고 싶은 책! 앞책과 비교할 때 서론, 본론, 결론(물론 이렇게 나눠놓은 건 아니고!)의 구성이 짜임새 있었고 깊이와 재미와 볼거리를 모두 충족시켰음.

18.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이상현 지음, 효형출판, 2013.

건축엔 당연히 그 시대와 사회의 이념과 사상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건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을 길들이기까지 한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제목에 혹해서 빌렸다가 두번이나 연장까지 해가며 다 읽은 2013년 마지막 독서. 꽤 재미있었음.

양반집에서는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를 구분함으로써, 향교나 서원에서는 계단을 통해서, 궁궐에서는 왕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에서 길들이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도시는 공간구조를 계급구조와 일치시킴으로써, 수도를 정하는 일에서는 수도에 물적, 인적, 시스템적 조건을 몰아줌으로써 길들이기를 수행한다. 이들 모두 건축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p123. 

 

 

<소설>

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예담, 2010.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엄청 길지도 않은데 읽기 시작했다가는 몇번이나 중간을 못넘기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완독의 동기는 <500일의 썸머> ㅋㅋ 사랑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에 시큰둥하던 썸머가 카페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ㅎㅎㅎ 나도 뭐 그런 기대를 품고서 카페에서 펼쳐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취침전 독서로 한 사흘 만에 끝내느라고 잠을 잘 못잤다. ;-p 째뜬 뒤표지에 스포일러를 담는 건 좀 안했으면!

2.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민음사, 2012.

실화를 소재로 어찌도 이리 손에 잡힐 듯한 현실을 상상하고 묘사했는지 감탄. 노련한 추리기법으로 끝까지 궁금증을 놓지 않게 하는데다, 진실은 끝내 알 수도 없다. 두 권을 단숨에 내처읽은 듯.

3. 고양이 눈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민음사, 2007.

원제인 cat's eye는 보석 이름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어린시절 갖고 놀던 구슬에 들어있는 고양이 눈 모양 무늬를 말하는 거였다.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잔인하고 은밀한 괴롭힘, 상처로 남은 유년의 기억들, 다름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아이들 방식의 섬뜩함이 요즘 아이들의 왕따문화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4. 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밝은 세상, 2011.

'이미 읽기 시작했다면 내려놓기 힘든 책'이라는 <더 타임스> 인용문이 뒷표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처음 몇장 읽다가 내려놓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ㅋ <빅 픽처>를 처음으로 읽었어야 할 걸 그랬나 싶었음. 어쨌거나 내 심리와 운대가 맞았는지 어느 날인가 드디어 내처읽을 수 있었고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다. 요동치는 여성심리를 '남성작가 치고는' 꽤나 공감가게 묘사한 것 같다. 특히 '불충분한 느낌'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포스팅도 했을 정도 ^^;

우리의 대화에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이 오래 지속되어온 불충분한 느낌이었다. 대학시절 내가 내내 그랬지만 성적이 B학점을 넘지 못하면 늘 하던 걱정.... 내가 모든 면에서 '괜찮은 편이지만' 그리 뛰어나지는 못한 사람 같다는 기분.... 내가 꽤 저명한 신문사에서 오래도록 일했거나 특파원이었다거나 직업 일선에서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늘 의심을 품었고, 언제 내 능력이 들통날지 염려스러웠다. - p267

5. 아름다운 나날,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민음사

모던클래식 12권. 키드님한테 양도받은 책이라 약간의 부채감이 없을 수 없었다. ㅎㅎ 성장기 소녀의 감수성을 담아낸 자전소설이랄 수 있는데, 성장기 소녀의 아픔은 마거릿 애트우드 책으로 이미 한 번 느껴본 터라 딱히 좋은 느낌이 없었다.

6. 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민음사, 2000.

쿤데라의 소설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가끔 인상적인 문장에서 한번씩 휴 한숨을 내쉬며 읽게 되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대거 빌렸다가 다 그냥 반납한 책들은 관두고 집에 있는 쿤데라 책부터 올핸 다시 좀 재독하며 그의 문장에 더 취해봐야지 결심중.

7.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3.

정말 수시로 깔깔거리며 읽었다. 어떻게 그 다양한 세계사를 한 개인의 역사로 다 엮을 수가 있는지 재주가 놀랍다고 생각. 너무 어처구니없는 우연의 연속이더라도 암튼 그 모든 사건을 하나로 관통시킨 역량과 유머는 높이 사줄만 하다. ㅋㅋ 게다가 트렌디한 번역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발랄경쾌한 번역체도 인상적이었다. <와 시발, 진짜 대박 성경책이다!> 같은 문장을 수시로 번역서에서 만날 수 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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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9개월

투덜일기 2013. 10. 7. 01:09

이만하면 나도 끈기가 있는 건가 싶은 하나의 성취.

결과적으론 1년도 못 채우고 끝나고 만 알량한 안식년을 맞아 새로운 배움으로 시작한 궁궐 공부. 1월부터 석달간 교육받고, 현장 답사 다니고, 봄부터 뜨거운 여름까지 수습활동에 힘쓴 끝에 드디어 9월말에 모든 과정을 끝냈다. 중간에 관둘까 말까 고민도 되고 나가기 싫어서, 또는 바빠서 몇번 빠지기도 하면서 일단은 마무리를 짓기로 결심해놓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도 계속 고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버텨낼 수 있을지 그 또한 미지수다. 뭐랄까, 내가 그간 생각해온 나름의 취향과는 워낙 맞지 않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숫기도 없고 낯선 사람들이 단체로 한꺼번에 쳐다보면 움츠러드는 '주목공포증'도 있는 게 분명하고, 생활한복은 '도를 아십니까' 관련자들이나 입는 '도나기 복장'이거나 머슴/몸종 같아 보여 싫다고 부르짖던 내가...

 

어찌보면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생각에 종종 억울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모름지기 자원봉사란 여유있고 잘난 사람들이 벌이는 일종의 '허세놀음'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정식으로 2주에 한번씩 궁궐 안내를 시작했다. 문화재청 소속 해설사들은 1시간 안팎으로 깔끔하게 딱 끝내는 해설을 자원봉사자들은 친절하게도 1시간 반은 기본, 더 자세한 해설을 원하면 3시간까지도 정성을 들여 구석구석 안내를 한다. 각자 만든 안내 매뉴얼을 모조리 익혀서 관람객 수준에 따라 적절히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드넓은 궁궐을 쏘다니며 떠들어대려면 체력이 필수!

 

마지막 수습활동 이후 근 한달간 집에만 콕 박혀 있다가 엊그제 정식 활동을 시작한 날, 오전에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중2 여학생들과 1시간 반, 오후에는 천방지축 초딩들을 데려온 열혈 학부모들과 2시간을 꼬박 돌아다녔더니 집에 와 장렬히 전사한 건 물론이고 일어나 보니 입술과 입안이 다 부르텄다. 또 한 번 이 뭔짓인고 싶어지는 순간. 게다가 초절정마감기간에 연일 밤샘까지 ㅠ.ㅠ

 

그런데도 우스운건 그런 부담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말의 '보람' 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다. 배워도 배워도 도무지 끝이 없는 듯한 역사와 건축, 동양사상, 한옥 관련 지식들을 주워듣는 기회가 많기도 하지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졸졸 따라다니는 관람객들을 대하다 보면 왠지 궁궐과 한옥 애호가 동지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정말 귀엽다! 교생실습 나갔을 때도 편애할 수밖에 없는 예쁜 아이들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궁궐에 현장학습을 나온 아이들 중에서도 하는 짓 예쁜 아이들은 척 보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따분하다는 듯 시큰둥하게 굴던 여중생들도 "얼른 그늘로 들어오세요, 여러분 피부는 소중하니까요!"라고 한 마디 해주면 빵 터져서 잘 따라온다. 귀여운 녀석들... 

 

암튼 그래서 싫어하는 생활한복을 떨쳐입고 한달에 두번이나 내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의미다. 으뜸 궁궐에 어울리게 이왕이면 화려한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선배 해설사샘들은 철철이 수십만원, 심지어 백만원도 넘는 멋진 한복을 장만하는 모양이지만, 고1 이후 한복을 입어볼 기회가 전혀 없던 나로선 그나마 비교적 저렴한 생활한복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내 기준으론 저렴하지도 않아! 다달이 회비 내고 활동하는 자원봉사를 위해 이미 의상비에 수십만원을 지출했다는 것이 나도 놀랍다. 그치만 내 눈에 전혀 안 예쁜 옷을 입을 순 없잖나... ㅠ.ㅠ 이러다 나중엔 나도 눈 뒤집혀서 막 수공예 전통 한복 맞춰입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ㅋㅋ

 

엊그제 안내 도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자경전 앞에서 열한살짜리가 던진 질문. "어? '십장생'이래! 그거  욕 아니에요?" +_+ 요즘 애들은 '시베리아'와 더불어 '십장생'도 욕이라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줄 알았나보다. 어휴... 십장생은 말이죠, 욕이 아니라 죽지 않고 아주 오래 사는 열 가지 자연과 생물을 말하는 거예요. 해, 달, 구름, 바위(산), 물, 거북, 학, 사슴.. 등등을 가리키지요. (나도 아직 다 못외었다 ㅋ) 어쩌면 배워야 할 게 무궁무진하고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아직은 이 난데없는 시도에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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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관련해서 역사강의를 들으러 좀 다니면서, 19세기말 20세기초 조선이 처했던 국제정세와 비교할 때 현재 G2로 부각한 중국과 G3나 다름없는 일본 사이에 끼어 대미관계를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사뭇 비슷하다는 말을 꽤 들었다. 아시아로 몰려든 서양열강의 제국주의 압박 속에서 외세에 기대어 눈치를 보다 나라를 잃었던 조선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고 말이다. 정치인들도 똑같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짜증스러운 망국의 역사라 별로 관심없었던 근대에도 요즘 새삼 눈을 돌려 이 책을 읽게 됐다.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라는 이 책의 부제 그대로 그 내막이 실로 궁금했고, 과거엔 나라 빼앗긴 무능한 왕이라고만 여겼던 고종에 대한 평가가 최근들어 달라져 여기저기서 그를 '나름대로'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신문물 도입과 개화에 힘쓴 개혁군주로 그려내고 있는 점도 호기심이 일었다. 고종이 진짜 그랬다고? 이미 까마득하지만 중고등학생 때 배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잘못이었고, 대한제국을 선포해 나라의 위신을 세우려 했던 고종의 눈물겨운 근대화 시도는 단순히 일제의 횡포 때문에 실패했을까? 

 

문소영 지음, 역사의아침, 2013

제목에서도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조선의 근대화 실패가 일본과는 확연하게 달랐던 사대부들의 고리타분한 사상과 내부적인 준비부족, 세계정세에 어두운 편협한 시각, 국가재정의 궁핍 등을 원인으로 삼는다. 그리고 특히나 몇번 개화파가 시도했던 근대화 개혁의 기회 앞에서 고종은 걸림돌 노릇을 톡톡히 했다. 당시 고종과 개화파들의 의식수준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뛰어난' 동양 사상은 고수하며 서양의 앞선 기술만 도입하자는 '동도서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도 한계였다.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과 다이묘들도 구한말 한학자들과 양반 못지않게 처음엔 개항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무력봉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메이지 유신을 성공리에 이끌 수 있었던건 주요 반대인사들이 직접 유럽과 미국을 유람하며 앞선 산업기술과 '대세'를 실감한 뒤 방향을 전환했고 거국적으로 서양문명과 합리적인 서구 사상까지 받아들여 부국강병에 힘썼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조선은 서양으로 유학을 떠났던 인물의 경험과 깨우침이 제도개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적인 에피소드로 남았을 뿐, 근대화와 관련하여 변덕이 죽끓듯 했던 고종의 정책과 입맛에 따라 일부 개화파는 일본으로 망명을 해야할 정도였다. 부국강병에 힘쓰는 대신에 자꾸만 외세나 끌어들이고 말이지...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같은 위로부터의 개혁 가능성은 물론이고,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같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가능했던 순간에도 고종과 관료들은 항상 청나라와 일본에 기대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대가 한반도에 상주하는 빌미만 제공하고 말았다. 물론 호시탐탐 외세가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해도 왕권약화는 고종의 자업자득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6세기 이후로 조선이 모든 분야에서 진취성을 잃고 자만하여 퇴행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말이지 구한말의 역사는 읽고 있다보면 혀를 끌끌 차게 되거나 부아가 치밀만큼 안타깝다. 나 역시도 그렇기 때문에 굳이 들여다보려하지 않거나,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빌미로 최대한 그 때를 미화해 생각하려는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가령,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환궁우를 지어 조선왕조 500년간 중국 눈치보며 알아서 기느라 못했던 천신제를 올렸다든지(제후국의 왕은 감히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것이 중화의 질서;;),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지 불과 8년만에 아시아 최초로 경복궁 건청궁 일대에 전깃불을 설치할 만큼 고종이 신문물 도입에 관심이 많았다든지(경복궁 향원정 옆에 가면 '전기발상지' 표석도 있다), 헤이그밀사 파견으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려 했다든지, 왕실 사유재산인 내탕금을 털어 워싱턴에 주미공사관 건물을 매입해 자주외교의 노력을 했다든지, 고종이 순순히 양위를 거부하다 순종의 즉위식에 참석을 안했다나 뭐라나(그러나 관련자료 사진을 보면 고종과 순종 모두 즉위식에 참석했을 확률이 높다;;; ㅋ).....

하지만 분명한 건 제국주의 시대에서 조선말의 행보는 분명 잘못된 것이었고 개화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으니 '나름대로의 노력' 정도로는 확실히 부족하다. 남탓만 하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고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다. 이 책 이전에도 조선의 근대와 관련된 책을 썼나본데 '일개 기자' 따위가 언급할 내용이 아니라는 학계의 비판도 있었다고 서문에 적혀있다. 아니, 역사책은 꼭 역사학자만 써야하나? 쳇... 그렇다고 이 책이 흥미위주로 가벼운 것도 아니다. 1, 2차 사료들을 충분히 공부하고 기존 역사학자들의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비교분석했기 때문에(물론 그래서 인용문도 많음) 꽤나 공부삼아 읽어야 했는데 나로선 재미도 쏠쏠했다. 그나저나 근대 조선말과 고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한 백년쯤 더 흘러야 객관적으로 자격지심 없이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으려나. 역사학계에선 여차하면 서로 식민사관이라고 공격질을 해대니 참 어떤 견해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선말 고종과 양반들은 너무 무지했고 무능했다는 견해가 옳다는데 나도 동감. 그런데도 고종 승하 후 온 백성들이 덕수궁 앞에 몰려가 통곡을 했던 건 고종을 애정해서가 아니라 그냥 절대왕권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조건반사 행동이 아니었을까. 내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바에 따르면, 독재자 박통이 사망했을 때도 소복 입은 시민들이 연도에 늘어서 통곡을 했었단 말이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쌈이 새삼 자주 떠오르는 세상이다.

 

 

흥선대원군 체제에서 오히려 조선은 개혁되고, 부강하고 강력했다. (33쪽)

 

조선이 새로운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통로는 청나라와의 사신 교류와 임진왜란 이후 정례화된 일본과의 통신사 교류였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정보는 서적으로 출판돼 널리 공유되기 보다 개인문집으로 남아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중략) 성리학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이단으로 치부하는 노론식 사고방식과 국정운영이 16세기 말부터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98쪽)

 

그렇다면 1910년 8월까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있었던 순종이나, 1863년에 왕좌에 올라 1907년까지 44년간, 특히 마지막 10년은 황제로까지 불렸던 고종에게는 아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일본에게 받은 은사금이나 작위만 가지고 따져보면, 고종이 가장 많은 은사금과 가장 높은 지위를 보장받았다. (119쪽)

 

1873년-94년 사이에 민씨가문 사람들이 전보다 많이 등용됐으나 결코 조정을 손아귀에 쥐고 휘두를 정도는 아니었다. 민씨로 삼정승에 오른 사람이 1878년 잠깐 우의정이 됐다가 사망한 민규호 하나뿐이었다. 명성황후와 민씨가문은 고종이 가장 든든해할 보좌역을 했을지언정 고종을 압도하거나 대신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123쪽)

 

21세기 들어 고종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약하고 무능해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갖다바친 왕이 고종이었다. 권력욕에 날뛰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게 치이고, 아버지가 하야한 뒤에는 드센 아내 명성황후에게 휘둘리면서 민씨 외척세력에게 권력을 내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한제국을 선포해 땅에 떨어졌던 나라의 위신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13년 동안 근대화에 온몸을 불사른 왕으로 칭송되고 있다. 외교에도 남다른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가? (146쪽)

 

일본과 조선의 차이는 농민운동을 바라보는 개화 지식인들의 폐쇄적인 사고와 신분적 질서를 완고하게 강조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깨우치지 못한 동학 농민군을 탓하기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 조선의 선비들이 더 부끄러워해야할 일이었다. 구한말 조선의 양반들은 조선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만한 사상으로 재무장하지 못했다. (210쪽)

 

고종은 미국을 믿었으나 미국은 두차례나 일본과 밀약을 맺으며 조선의 뒤통수를 쳤다. (248쪽)

 

조선 근대화 성공의 유일한 방법은 개화파와 고종이 협력해 제도개혁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통해 드러나듯이 근대화를 유효하게 추진할 제도개혁이 왕권을 제약하게 되면 왕이 협력하지 않았다. 왕이 개혁의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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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특별관람

놀잇감 2013. 9. 3. 21:45

창덕궁 후원처럼 돈을 더 내고 봐야하는 줄 알았던 경회루 특별관람. 그냥 경복궁 홈페이지에 들어가 무료로 신청하면 된다. 다만 신을 벗고 올라가야하므로 발 시려운 동절기엔 관람통제, 4월부터 10월까지만 들어가 볼 수 있다. 하루 서너번, 한번에 80명으로 인원을 제한해서 며칠 전쯤엔 신청을 해야하는 듯. 80명이라지만 무료라서 대충 신청했다 안나타나는 사람이 많은 듯 실제 관람 인원은 80명이 훨씬 못 돼 보였다. 그래도 경회루로 들어가는 함홍문 입구에서 철저하게 이름 확인을 한 후 들여보냄.

 

 

근정전과 더불어 경복궁을 대표하는 건물인 경회루는 주역과 우주의 원리를 담은 건물이라나 뭐라나, 36궁이 어떻고 천지인이 어떻고, 24절기가 어떻고.. 자세히 설명하려 들면 엄청 복잡하고 어렵다. -_-;

하기야 궁궐 안 어떤 건물도 별 의미없이 그냥 대충 지은 전각은 없다. 최소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바탕으로 조화를 도모했다고.

 

경회루 1층 기둥이 모두 48개인데, 그 중 바깥 기둥 24개는 네모나고 안쪽 24개는 둥글다. 그치만 연못 건너편에서 아득하게 보이는 걸로는 구분이 안 간다규~! 얼핏 콘크리트 기둥인가 싶지만, 고종 때 중건한 그대로이니 화강암이란다.  

경회루에 대해선 다들 드넓은 2층 누각 바닥이 조금씩 높낮이를 달리하여 3단으로 되어있다는 설명을 빠뜨리질 않는데, 들어가보니 1층도 마찬가지로 사진처럼 전돌을 깐 단 높이에 층을 두었다. 그리고 멀리서 볼 때보다 누각이 엄청 높더라. 천장에 보이는 연꽃문양도 예쁘고...

 

시간을 많이 주면 누각 서쪽으로 배를 탈 수 있게 연결해놓았다는 계단 구경도 하려고 했으나 설명 이후 잠깐 자유시간 주더니 우르르 다시 밖으로 내몰았다. 쳇. 착하게 해설사 말을 잘 들으면 절대로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다니깐.

 

 

 

경회루는 경복궁 창건당시엔 없었다가, 태종 때 비로소 원래 있던 작은 정자를 허물고 습지를 크고 넓게 파 대규모로 확장해 세운 누각이다. 풍수 상 경복궁 서쪽에 있는 인왕산이 돌산이라 나쁜 기운이 궁궐로 스며드는 걸 막으려고 높고 큰 전각을 세운 거라나. 더불어 명당수도 확보하고, 화재예방을 위한 방화수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는데, 실록에 노상 궁궐에 불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 걸 보면 별 효험은 없었나보다. ^^; 경회루 역시 임진왜란 때 모조리 타 돌기둥만 남았었다고...

 

암튼 주 목적인 대규모 연회장으로 가장 많이 쓰였겠지만, 세종은 무과시험 활쏘기를 경회루에서 구경했대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단다. 단종이 세조에게 옥새를 넘겨준 장소도 바로 경회루라고. 문화재 해설할 때는 실록 기록을 중심으로  '야사'는 인용하지 말라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문화재청에서 비치한 경복궁 안내책자엔 중종과 단경왕후의 치마바위 이야기, 몰래 경회루 구경갔다가 경을 치는 대신 세종 눈에 들어 고속승진한 구종직 이야기 따위가 다 들어있다. 대체 어쩌란 말이냐, 흥!

 

아무려나...경치 좋은 곳에 지은 정자는 어디든 겉에서 건축물 감상할 게 아니라 정자에 올라 바깥 경치를 바라보아야 제격이라고들 한다. 경회루 역시 멀찍이서 올려다보는 것보다는 누각에 올라 동서남북 다른 풍경을 보는 맛이 일품이었다.  

 새 들어오지 말라고 여기도 막아놓은 그물은 이미 중종실록에도 보이는 것이라니 뭐 시야를 가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3단으로 층이 조금씩 다른 마룻바닥 한 가운데 제일 높은 세 칸의 공간은 왕의 자리이고, 신하들은 지위고하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니 나중에 자유시간때 사람들은 대부분 냉큼 왕의 공간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나 역시 마찬가지... ㅋ

드러누워 올려다보이는 천장에 아련하게 보이는 무늬는 청룡한쌍이라는 것 같다. (아래 왼쪽 사진) 저런 모양의 천장을 우물반자라고 하지 아마;;

 

층층이 다른 경회루의 3단 마룻바닥을 내 재주로는 사진 한 장에 담을 수가 없었다. 암튼 뭐 이런 느낌...

 

목조건물의 취약점은 뭐니뭐니해도 화재에 약하다는 것과 벌레가 잘 파먹는다는 점. 그래서 단청을 하지만 바닥까지 단청을 바를 순 없으니 엄청 굵은 나무를 썼겠구나 싶은 마룻바닥에 사진처럼 죄다 얼기설기 좀먹은 자국이 있다.

특히 제일 높은 가운데 세칸 바닥에 좀벌레 흔적이 심해서 주변보다도 엄청 까끌까끌한데, 그 이유가 오래도록 카펫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란다.

70년대 대통령이 고이 카펫 깔아두고 워낙 애용하셔서 그렇다고. 그러고 보니 정말로 정부든 국민이든 문화재를 아끼고 제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식의 역사는 불과 몇십년 안됐다. 그러니깐 그 전에는 버젓이 목조 문화재를 '콘크리트'로 뚝딱뚝딱 복원해놓고 자랑스러워했겠지. (경복궁의 서쪽 대문인 영추문도 개발논리 시대의 콘크리트 복원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이날은 경회루를 바깥에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다. ㅋㅋㅋ 역시 숲속에선 숲을 바라볼 수 없는 법.

 

경회루로 들어가는 다리는 셋이나 되는데, 궁궐 내 박석이 깔린 세 갈래 길 중에서 어도가 언제나 한가운데인 것과 달리 경회루 다리는 맨 앞 남쪽다리가 왕이 지나다니는 다리다.

이유는 왕의 처소인 강녕전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고.

가운데 다리로는 왕실 종친이 건너다녔고, 북쪽 다리로는 신하들이 건너다녔단다.

요새 관람객이 드나드는 다리는 중간문에 연결된 다리.

 

그 옛날에도 저렇게 경회루 주변에 새파란 잔디가 깔렸을 리는 없을 것 같아서 해설사한테 물어봤더니 기록이 없어 모른단다. 전통적으로 뗏장은 무덤에만 입히는 거라며?! 쳇...

 

 

창덕궁에선 봄가을 보름날 야간에 '달빛기행'이라고 해서 고가의 특별 관람(다과와 공연 포함 3만원)을 실시하는데, 인기가 하도 많아서 티켓오픈일 기다렸다 광클릭을 해야 예매가 가능하다. 달력에 적어놓고 기다렸건만 올해도 상하반기 모두 예약 실패 ㅠ.ㅠ

 

경회루에서도 '연향'이라고 해서 똑같이 3만원 내고 공연보는 프로그램이 8. 9월에 있는데 창덕궁에 비해 좀 부실하다는 것 같다. 그래도 저렇게 분합문 들어올려놓고 은은한 조명 속에 뚱땅뚱땅 국악 공연하는 거 밤중에 구경하면 기분 근사할 것도 같다. 그치만 창덕궁 달빛기행은 연경당에서 다과 대접도 한다는데 경회루에선 같은 가격에 왜 먹을 걸 안주냐고! (그래서 안감 ㅋㅋ)

 

봄에 시행했던 경복궁 야간개장때는 수십만명이 몰려서 고수부지 놀러오듯 사람들이 술과 먹을 거리 사들고 잔디밭에 드러누워 고성방가했다지. 그래서 가을 야간개장땐 엄격히 인원제한을 한다는 것 같다. 그런 막된 사람들 욕하면서 ㅋㅋ 난 또 궁궐 전각에서 비싼 다과대접 받고 싶어하고... 이 무슨 묘한 심리인지. 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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