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 특별관람

놀잇감 2013. 9. 3. 21:45

창덕궁 후원처럼 돈을 더 내고 봐야하는 줄 알았던 경회루 특별관람. 그냥 경복궁 홈페이지에 들어가 무료로 신청하면 된다. 다만 신을 벗고 올라가야하므로 발 시려운 동절기엔 관람통제, 4월부터 10월까지만 들어가 볼 수 있다. 하루 서너번, 한번에 80명으로 인원을 제한해서 며칠 전쯤엔 신청을 해야하는 듯. 80명이라지만 무료라서 대충 신청했다 안나타나는 사람이 많은 듯 실제 관람 인원은 80명이 훨씬 못 돼 보였다. 그래도 경회루로 들어가는 함홍문 입구에서 철저하게 이름 확인을 한 후 들여보냄.

 

 

근정전과 더불어 경복궁을 대표하는 건물인 경회루는 주역과 우주의 원리를 담은 건물이라나 뭐라나, 36궁이 어떻고 천지인이 어떻고, 24절기가 어떻고.. 자세히 설명하려 들면 엄청 복잡하고 어렵다. -_-;

하기야 궁궐 안 어떤 건물도 별 의미없이 그냥 대충 지은 전각은 없다. 최소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바탕으로 조화를 도모했다고.

 

경회루 1층 기둥이 모두 48개인데, 그 중 바깥 기둥 24개는 네모나고 안쪽 24개는 둥글다. 그치만 연못 건너편에서 아득하게 보이는 걸로는 구분이 안 간다규~! 얼핏 콘크리트 기둥인가 싶지만, 고종 때 중건한 그대로이니 화강암이란다.  

경회루에 대해선 다들 드넓은 2층 누각 바닥이 조금씩 높낮이를 달리하여 3단으로 되어있다는 설명을 빠뜨리질 않는데, 들어가보니 1층도 마찬가지로 사진처럼 전돌을 깐 단 높이에 층을 두었다. 그리고 멀리서 볼 때보다 누각이 엄청 높더라. 천장에 보이는 연꽃문양도 예쁘고...

 

시간을 많이 주면 누각 서쪽으로 배를 탈 수 있게 연결해놓았다는 계단 구경도 하려고 했으나 설명 이후 잠깐 자유시간 주더니 우르르 다시 밖으로 내몰았다. 쳇. 착하게 해설사 말을 잘 들으면 절대로 제대로 구경을 할 수가 없다니깐.

 

 

 

경회루는 경복궁 창건당시엔 없었다가, 태종 때 비로소 원래 있던 작은 정자를 허물고 습지를 크고 넓게 파 대규모로 확장해 세운 누각이다. 풍수 상 경복궁 서쪽에 있는 인왕산이 돌산이라 나쁜 기운이 궁궐로 스며드는 걸 막으려고 높고 큰 전각을 세운 거라나. 더불어 명당수도 확보하고, 화재예방을 위한 방화수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는데, 실록에 노상 궁궐에 불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 걸 보면 별 효험은 없었나보다. ^^; 경회루 역시 임진왜란 때 모조리 타 돌기둥만 남았었다고...

 

암튼 주 목적인 대규모 연회장으로 가장 많이 쓰였겠지만, 세종은 무과시험 활쏘기를 경회루에서 구경했대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단다. 단종이 세조에게 옥새를 넘겨준 장소도 바로 경회루라고. 문화재 해설할 때는 실록 기록을 중심으로  '야사'는 인용하지 말라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문화재청에서 비치한 경복궁 안내책자엔 중종과 단경왕후의 치마바위 이야기, 몰래 경회루 구경갔다가 경을 치는 대신 세종 눈에 들어 고속승진한 구종직 이야기 따위가 다 들어있다. 대체 어쩌란 말이냐, 흥!

 

아무려나...경치 좋은 곳에 지은 정자는 어디든 겉에서 건축물 감상할 게 아니라 정자에 올라 바깥 경치를 바라보아야 제격이라고들 한다. 경회루 역시 멀찍이서 올려다보는 것보다는 누각에 올라 동서남북 다른 풍경을 보는 맛이 일품이었다.  

 새 들어오지 말라고 여기도 막아놓은 그물은 이미 중종실록에도 보이는 것이라니 뭐 시야를 가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3단으로 층이 조금씩 다른 마룻바닥 한 가운데 제일 높은 세 칸의 공간은 왕의 자리이고, 신하들은 지위고하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니 나중에 자유시간때 사람들은 대부분 냉큼 왕의 공간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나 역시 마찬가지... ㅋ

드러누워 올려다보이는 천장에 아련하게 보이는 무늬는 청룡한쌍이라는 것 같다. (아래 왼쪽 사진) 저런 모양의 천장을 우물반자라고 하지 아마;;

 

층층이 다른 경회루의 3단 마룻바닥을 내 재주로는 사진 한 장에 담을 수가 없었다. 암튼 뭐 이런 느낌...

 

목조건물의 취약점은 뭐니뭐니해도 화재에 약하다는 것과 벌레가 잘 파먹는다는 점. 그래서 단청을 하지만 바닥까지 단청을 바를 순 없으니 엄청 굵은 나무를 썼겠구나 싶은 마룻바닥에 사진처럼 죄다 얼기설기 좀먹은 자국이 있다.

특히 제일 높은 가운데 세칸 바닥에 좀벌레 흔적이 심해서 주변보다도 엄청 까끌까끌한데, 그 이유가 오래도록 카펫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란다.

70년대 대통령이 고이 카펫 깔아두고 워낙 애용하셔서 그렇다고. 그러고 보니 정말로 정부든 국민이든 문화재를 아끼고 제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는 식의 역사는 불과 몇십년 안됐다. 그러니깐 그 전에는 버젓이 목조 문화재를 '콘크리트'로 뚝딱뚝딱 복원해놓고 자랑스러워했겠지. (경복궁의 서쪽 대문인 영추문도 개발논리 시대의 콘크리트 복원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이날은 경회루를 바깥에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다. ㅋㅋㅋ 역시 숲속에선 숲을 바라볼 수 없는 법.

 

경회루로 들어가는 다리는 셋이나 되는데, 궁궐 내 박석이 깔린 세 갈래 길 중에서 어도가 언제나 한가운데인 것과 달리 경회루 다리는 맨 앞 남쪽다리가 왕이 지나다니는 다리다.

이유는 왕의 처소인 강녕전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고.

가운데 다리로는 왕실 종친이 건너다녔고, 북쪽 다리로는 신하들이 건너다녔단다.

요새 관람객이 드나드는 다리는 중간문에 연결된 다리.

 

그 옛날에도 저렇게 경회루 주변에 새파란 잔디가 깔렸을 리는 없을 것 같아서 해설사한테 물어봤더니 기록이 없어 모른단다. 전통적으로 뗏장은 무덤에만 입히는 거라며?! 쳇...

 

 

창덕궁에선 봄가을 보름날 야간에 '달빛기행'이라고 해서 고가의 특별 관람(다과와 공연 포함 3만원)을 실시하는데, 인기가 하도 많아서 티켓오픈일 기다렸다 광클릭을 해야 예매가 가능하다. 달력에 적어놓고 기다렸건만 올해도 상하반기 모두 예약 실패 ㅠ.ㅠ

 

경회루에서도 '연향'이라고 해서 똑같이 3만원 내고 공연보는 프로그램이 8. 9월에 있는데 창덕궁에 비해 좀 부실하다는 것 같다. 그래도 저렇게 분합문 들어올려놓고 은은한 조명 속에 뚱땅뚱땅 국악 공연하는 거 밤중에 구경하면 기분 근사할 것도 같다. 그치만 창덕궁 달빛기행은 연경당에서 다과 대접도 한다는데 경회루에선 같은 가격에 왜 먹을 걸 안주냐고! (그래서 안감 ㅋㅋ)

 

봄에 시행했던 경복궁 야간개장때는 수십만명이 몰려서 고수부지 놀러오듯 사람들이 술과 먹을 거리 사들고 잔디밭에 드러누워 고성방가했다지. 그래서 가을 야간개장땐 엄격히 인원제한을 한다는 것 같다. 그런 막된 사람들 욕하면서 ㅋㅋ 난 또 궁궐 전각에서 비싼 다과대접 받고 싶어하고... 이 무슨 묘한 심리인지. 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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