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 욕심

놀잇감 2012. 9. 4. 17:50

귀걸이, 팔찌, 반지. 이 셋은 큰 돈 안 들이고 소소한 소비욕과 흡족함이 필요할 때 내가 주로 선택하는 품목인 것 같다. 반면에 목걸이는 잘 안사게 된다. 한번 목에 걸면 몇달씩 안빼고 하는 스타일이라 살갗과 땀에 닿아도 괜찮은,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야하니 그런듯. 하지만 워낙 '버리지 못하는 지병' 때문에 고가의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까마득한 옛날 길거리 좌판에서 겨우 몇천원 주고 사들인 것까지도 생김새만 멀쩡하면 죄다 껴안고 사는 탓에 새 액세서리를 사려면 우선은 죄책감부터 든다. 이거랑 비슷한 거 집에 있지 않나? 고만고만한 취향이 또 어딜 가는 것도 아니고...

 

귀걸이는 귓불 구멍이 걸핏하면 말썽을 부리는 통에 그나마 묵직한 디자인을 제외하다보니 그나마 좀 덜 사는 편이고, 반지도 막상 사들여봤자 끼고 나가려면 귀찮을 때가 많아서(손 씻을 때는 빼야 하는 요란한 디자인일수록 꼭 그렇다;) 최근 액세서리 구매는 팔찌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구슬팔찌 좀 주렁주렁 해줘야 시원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내 나름의 패션 철학(?).

 

여름마다 생일선물로는 꼭 한두개씩 팔찌를 골라 주변에 사달라고 종용하는 편인데, 막상 하고 다니는 팔찌는 거의 정해져 있고 최근에 산 것보다는 꼭 옛날 옛적에 선물 받아 오래 추억이 서린 물건을 애용하게 된다. 헌데 문제는 팔찌의 고무줄이 세월과 함께 녹아버린다는 것. ㅠ.ㅠ  20여년 전에 선물받은 호박 팔찌도 고무줄이 녹았으나 그건 구멍이 워낙 커 집에 있는 마끈으로 나름의 아이디어를 짜내 수선을 해서 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만 고무줄이 아니라 빡빡한 마끈을 저 마지막 구슬에 끼우는 걸 한 손으로 하려니 더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라했던 옥돌 팔찌마저 고무줄이 늘어나자, 몇년째 여름마다 나는 수제 액세서리 파는 곳에 가면 팔찌를 사면서 슬쩍 팔찌용 고무줄을 좀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매몰차게도 다들 없다고! ㅠ.ㅠ

 

진기한 보석도 아니고, 구슬팔찌 정도야 고무줄 늘어지고 망가지면 휙 버리고 새것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죄다 못버리고 고쳐 쓰려고 모아두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에 가면 액세서리 재료 파는 곳이 있을 거야... 라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또 몇년... 물건 잘 못 버리는 것도 병이지만, 뭐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건 잘해도 막상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이 몹시 떨어지는 건 정말이지 나의 고질병이다. 오죽하면 컴퓨터도 바꾼다 바꾼다 1년도 넘게 고민만 하다 겨우겨우 샀을라고.

 

암튼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고민만 거듭하다 요번에 팔찌재료를 인터넷으로 파는 곳에서 쉽사리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전 실고무줄처럼 잘 늘어나지도 않고 잘 풀리지도 않는 우레탄 고무줄! 그런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야 없는 일, 어느 틈엔가 나는 이런저런 색깔의 구슬들을 마구 카트에 담고 있었고...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 정말로 엄선한 것들만 가뿐하게 결제를 했다. 하루만에 날아온 투명 고무줄과 구슬로 나는 또 구슬꿰기 놀이에 심취;;; 

외할머니가 생전에 중국 여행갔다 사다주셨기에 진짜 옥돌일 거라 굳게 믿고 있는(실제로 착용감이 완전 서늘하고 시원하다!), 제일 좋아하는 구슬팔찌도 고쳤고...

 

마끈으로 엮어놓고 나름 에스닉하다고 자평했으나 실용성은 떨어졌던 호박 팔찌도 다시 꿰고... 요번에 사들인 구슬도 죄다 팔찌로 만들었다! ^^;

 

요번에 내가 구입한 8~12mm 사이 각종 구슬은 50개 안팎 한 줄에 5천원~만원 정도. 더 비싼 구슬과 천연석도 많았지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색깔 위주로 사느라 애써 자제했다. 팔 굵은 울 엄니를 위해 터키석과 침수정(맨 위 갈색)은 각각 하나씩 특별히 좀 길게 만들어 드렸기에 남은 구슬이 좀 모자라지 않을까 했는데 남은 것만 엮어도 내 팔찌 만드는 덴 문제가 없었다. ㅎㅎ 재료비 3만원 정도 들여서 팔찌가 8개나 생긴 셈! 하지만 인건비랑 중간에 보석장식 같은 거까지 넣었을 재료비 따져보니 내가 그간 비싼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사곤 했던 몇만원짜리 팔찌값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장사꾼이라도 팔찌 하나에 최소한 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 ㅋ 아무래도 파는 팔찌는 고무줄 묶은 부분 안보이게 교묘하게 장식도 하나 정도 더 넣었던데 말이지...

 

암튼 망가진 엄니 염주 팔찌까지 죄다 고쳐드려야 해서 한밤중에 투명 고무줄에 일일이 구슬 꿰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_+ 그러고는 엄니랑 세트 팔찌라며 희희낙락 하고 나갔다 들어와, 팔찌통에 다시 넣으며 보니 아.. 진짜 팔찌 많은데 왜 계속 욕심을 내나 싶다. 이런 자랑 겸 반성 포스팅 하고 나면 내년 여름부턴 팔찌 욕심 좀 덜 부리려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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