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어머니

투덜일기 2016. 2. 12. 01:28

가끔 궁금하다.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빤하고 악독한 시어머니들 에피소드는 작가가 어디선가 듣거나 경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걸까, 순전히 상상의 결과일까, 아니면 작가들 끼리끼리 눈감아주는 양심없는 베끼기(비슷한 내용이 하도 많아서;;)일까? 혹시나 아침드라마부터 시작해서 노상 그 나물에 그밥인 일일극과 주말극을 보는 시어머니들이 막장 드라마를 보고 배워서 맘에 안드는 며느리에게 드라마처럼 못된 시집살이를 따라하는 건 아닐까? 주시청자가 노년층인 드라마에서 며느리 잡는 무서운 시어머니가 반드시 나오는 이유는 거의 평생 숨죽이고 살아온 그들의 스트레스를 대리 해소해주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리던데..


아무튼 현실의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한 건 없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도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는 상황도 어디선가는 벌어지고 있을 것도 같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굶기고 심지어 때려죽이는 세상이니 뭐...


하여간에 내 주변에서 가장 놀라운 부류로 꼽을 수 있는 시어머니가 한분 계신데, 이분은 세월이 갈수록 기력이 쇠하는 게 아니라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핍박받는 며느리 위로를 한답시고 노친네 욕을 한바가지 하다가도 그 노친네의 패악이 문득 두려워진다.  


벌써 10년 넘게 끊임없이 구박받는 며느리 입장을 전해듣고 위로하고 함께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괜스레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이젠 폭발할 지경이다. 내 막판 조언은 거의 매번 "차라리 옛날처럼 인연 끊고 맘 편히 살아!"인데... ㅠ.ㅠ 다들 알다시피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기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라는 존재가 중간에 끼어 있으니, 사실 내 조언은 조언이 아니라 그냥 막말이다. 그런데도 그냥 답답해서 내지르는 것.


J는 초등학교 동창생과 결혼했다. J는 초혼인데 반해 남자는 이혼남이었다. 아이는 없었지만 그런데도 오히려 남자네 집에서 결혼을 결사반대했다. 특히 시어머니가 문제였다. J랑 남자의 궁합을 봤는데, J의 팔자가 사나워 남편과 집안을 말아먹을 재수 없는 여자라고 했다나. +_+ 생긴 것도 불여시 같이 못나게 생긴 게 멀쩡한 자기 아들 홀렸다며 J에게 온갖 욕과 험담을 퍼붓고 헤어짐을 강요했다. 


결국 남자는 부모와 의절하고 집을 나와 J와 혼인신고 후 결혼식은 생략했다. 알콩달콩 둘이 행복하게 잘 살다가 3년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으면 며느리로 인정해줄 것이라 기대를 한 건지 J네 부부는 본가에 손자가 생겼음을 알렸다. 아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알려주고 싶다면서. 그러자 손자 귀한 건 알아가지고... 시어머니는 손자와 아들만 보겠다고 했었다. 며느리 노릇은 꿈도 꾸지 말라고.


그래도 착해빠진 J는 성심성의껏 도리를 다했고(주말마다 시댁에 남편과 아들을 들여보내고, 지는 집앞 카페에서 죽치고 온종일 기다렸단다, 차라리 따라가지를 말지!) 결국엔 돌잔치 무렵 며느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폭언과 간섭과 무시는 변함없었다. 내 손자의 어미이니 할 수 없이 그냥 얼굴만 봐준다는 정도였다. 명절에 J가 해간 음식들은 맛이 이상하다며 몽땅 다 쏟아버렸다고 했다. 상을 차리면, 보고 배운 게 없어서 티가 난다고 타박하는 건 부지기수. (몰상식하게 끔찍한 말만 쏟아내는 사람은 바로 그 시어머니인데!!)


암튼 매일매일 전화를 걸어서 손자 아침, 점심, 저녁 메뉴와 반찬 점검하고 영양가 없는 거 먹였다고 잔소리하고... 자기 아들 건강 안챙긴다고 혼내고, 머리를 묶고 가면 볼품없게 묶었다고 타박, 길게 풀고 가면 귀신바가지 같다고 타박... 암튼 그냥 이유없는 꼬투리 잡기가 취미인 양반이었다.


나 같으면 벌써 이혼을 하든, 시댁과 의절하든 시부모를 안보고 살것 같은데 놀랍게도 J는 온갖 핍박을 다 받아내느라 남편과도 수시로 싸우고 피가 마르면서도 계속 감내하자는 주의였다. 아 대체 왜???


암튼 두어달에 한번씩은 J가 전화로 통곡하며 내게 하소연할만한 푸닥거리를 한판씩 해주시는 J의 시어머니가 나도 정말 밉다. 그런데 작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칫하면 그 막가파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쳐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왔다는 거다. J에게 너 피말라 죽는다고,  절대 안된다고 거부하라고 조언을 해주었으나, 대세는 이미 기운 듯...


그런데 여기서 더 기막힌 사실이 하나 있다. 시어머니가 같이 사는 조건으로 J에게 성형수술을 강요했다는 것! 어디 가서 며느리라고 소개하기에 볼품없고 창피한 외모라면서, 자기가 수술비용을 댈 터이니 눈과 코를 고치라고 했다나 ㅠ.ㅠ 와.. 기가 막혀서 정말.


나같으면 잘 됐다, 성형수술도 싫고 살림 합치기도 싫으니 계속 따로 살면 되겠네.. 그럴 것 같은데... 어휴.. J는 어차피 모시고 살아야할 상황이라면, 내 돈 들이는 거 아니니까 다 늙어서라도 예뻐지는 게 뭐 나쁘냐.. 수술 당장 할란다. 뭐 그러고 있다. 으허!! 


노상 매를 맞으면서도 남편을 못 떠나고 같이 살아가는 여자들의 심정과 혹시나 시어머니의 구박에 휘둘리고만 있는 J의 심리가 유사한 건 아닌가 염려스럽고, 마음에 안드는 며느리의 얼굴을 바꿔서라도 꼭 같이 살겠다는 J의 시어머니가 나는 너무 무섭다. 그런데도 나의 극단적인 의견과 조언은 도무지 들어먹히질 않으니 힘이 빠진다. 내 역할은 그저 J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상황을 하소연하며 J도 내게 미안하단다. 하지만 달리 어디 속시원히 털어놓을 데도 없다고. (친정엄마한텐 자존심도 상하고 노친네 속상하실까봐 곧이곧대로 말도 못하는 인물) 아 답답해 답답해...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 며느리 외모 싫어서 성형수술 시키는 시어머니가 혹시 등장했던 건 아닐까.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