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

투덜일기 2017. 2. 5. 23:47

나름 취미생활이랍시고 헐거운 조직에 다시 들어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언젠가는 겪을 수도 있는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고, 그래서 그 전에 때려쳐야하는 게 아닌가 고민도 했었지만 어영부영 머뭇거리다보니 결국 발목을 잡혔다. 이런 걸 미련스럽다고 해야하나 책임감이 강하다고 해야하나, 그냥 우유부단한 건가 잘 모르겠고 그저 스스로 한심하다. 

아직도 종종 대체 내가 왜 아직도 이짓을 하고 있나 회의가 들면서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궁궐 자원봉사 일은 교육부터 따지면 올해로 벌써 4년째에 접어든다. 경력 챙겨야하는 회사생활도 아닌데 애당초 왜 3년은 채워야지 했었나 의문이지만, 일단 3년쯤 하고 나면 계속 할지 말지 뭔가 확고한 결심이 설 줄 알았다. 하지만 확고한 결심은 개뿔. 여전히 이 일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며 의미를 찾느라 가끔 신경질을 부린다. 

너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문제이니 운동 삼아 2주에 한번 궁궐 산책도 하고 잘 지은 한옥 구경이나 하지 뭐, 하는 게 가장 큰 핑계이고 지난번 폭설이 내린 다음날엔 정말로 감탄을 자아내는 궁궐의 설경을 보며 그래 이 맛에 나오는 거지, 했었다. 하지만 그밖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에효..

놀라운 건 에라이 그만 때려치워야겠다 생각할 때 좀 찔리는 것도 그곳에서 시작된 인간 관계 때문이고 또 넌덜머리가 나서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이유 또한 그곳의 인간 관계 때문이다. 어디나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고 괜히 싫은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월급 때문에 버티는 회사도 아니고 대체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나.. 심지어 올해부턴 순서가 돌아와 '총무'란 걸 맡게 됐다. 으악! 골치아파라... 

근데 또 나란 인간이 뭐든 주어진 일은 '잘하고 싶어하는' 병'이 있어서 슬렁슬렁 대충은 못 지나가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활동일지도 기록해야하고, 회비 수입지출도 관리해야하고... 어떤 조직이든 만만하고 말 잘 듣고 일도 제법 하는 사람은 일이 몰리게 되어 있다. 절대 그런 캐릭터로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구성원 중에서 처음엔 심지어 '막내'였고 몇년이 흘러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세명이나 생겼지만 아직 젊은 축에 들다보니 눈깜짝할 새에 계속 뭔가 일이 주어진다. 참 내..

궁시렁궁시렁 투덜투덜거렸지만 어쨌든 1월이 가고 2월 순서도 한 차례 지나가 총 26번 활동일 중에 23번이 남았다. 23번만 버티면 해방이다 그러면서 중간에 몇번 언제 빠져서 누구에게 임시 총무일을 넘길까 호시탐탐 노리는 중.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3번은 빠져야지 그러고 있다. 어차피 개근하던 사람도 아니었고..

등산 모임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작년에 개근하는 게 아니었다. 젠장. 첫해엔 계속 따라다닐까 말까 고민도 많았으니 절반이나 갔을까, 둘째 해에도 마감이다 집안행사다 바빠서 몇번 빠졌었는데 3년째인 작년엔 할일도 별로 없겠다 등산의 묘미도 좀 알았겠다 정말 열심히 체력단련까지 해가며 따라다녔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날 너무 성실히 본 게 문제!

무슨 기념문집인가 뭔가 만들때도 완전 독박을 쓰고서 쓸데없는 노동력을 착취당했는데! 이번엔 또 뭔 일을 맡기려고! 1월 등산은 마침 위에 적은 임무가 겹쳐서 처음부터 빠졌고, 올해 달력 정리하며 보니 다달이 둘쨋주에 아버지 기일에다 이런저런 집안 행사가 많아 빠질 날이 쎄고 쎘던데 눈치가 수상하다. 학연지연을 타파해야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놈의 '연줄' 때문에 제대로 '거절의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분명 싫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안하는 선배들 정말 와... 결국엔 늘 <더러우면 내가 떠나야지> 카드밖엔 쓸 게 없는 것 같다. 

암튼 그래서 올해는 이래저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할 조짐이 보인다. 재미삼아 본 토정비결은 올해 운수 되게 좋다고 그랬는데... ㅋㅋ 괜히 시간만 쳐들이고 기껏해야 욕만 먹을 이상한 일들 대신에,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일이 많아져야한다규! 속으로 이렇게 끙끙 앓으면서 또 막상 나가서는 어르신들 앞이라 크게 싫은 내색 못하고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열심히 몸바쳐 일하는 모습이 상상돼서 더 짜증이 난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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