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번씩 이 무슨 난리인지... 갑작스런 간병 무수리 생활 사흘째다. 이젠 마음 놓고 투덜댈 수 있는 상황이니 천만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걸핏하면 반복되는 이런 상황에 대한 짜증이 줄어들진 않는다. 인체의 신비인지, 인간의 한계인지, 현대의학의 무능인지 좀체 알 수 없는 질병 상황 앞에서 난 또 닥터 하우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수요일 밤부터 왕비마마의 상태가 심상칠 않아서 응급실엘 가야하나 고민하다 담날이 정기외래 진료라 주치의와 의논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자꾸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걷고 간간이 판단력도 떨어져 헛소리까지 하는 걸 보더니 의사는 전격 입원을 권했다. 혹시 뇌졸중이라면 빨리 머리 MRI를 찍는게 좋겠다면서...

허나 의욕 충만한 정신과 주치의의 생각과 달리 MRI는 갑작스런 입원절차를 다 거치고도 한밤중에나 겨우 찍을수 있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 응급실로 들어갔어야 하는 거였다. 정신과 환자들은 생명을 다투는 증상이 아니니 순서에서 뒤로 밀린다는 걸 교수된지 얼마 안되는 주치의는 몰랐겠지. ㅡ.ㅡ; 어쨌거나 머리 사진에선 뇌졸중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도한 수면, 균형감각 상실, 보행 어려움, 간간이 섬망증, 이명, 판단력상실 등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과연 뭘까. 가능한 요인은 수십가지나 된다고 말하며 병실담당 레지던트는 내 속을 뒤집었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고!! 혈액과 소변 검사 결과로 신장이나 간 기능 이상으로 인한 전해질 균형 문제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MRI 결과 이상없으면 바로 퇴원하라던 주치의 교수는 퇴근해버리고 결국 왕비마마는 일흔한번째 생신을 병실에서 맞았다. 미역국이고 주말 파티 계획이고 다 물 건너 간 거다.

병원체질이신 왕비마마는 무수리 속이 새카맣게 타든지말든지 잘 자고 잘 먹고(병원밥 싹싹 다 비우는 노인환자 정말 드물다 ㅋㅋ) 하루하루 정신이 맑아지더니 어제부턴 걸음걸이도 제대로 돌아와 부축해 드리지않아도 될 정도다.

은근히 알츠하이머의 가능성도 타진하던 눈치더니 간단한 몇가지 검사 이후 그 말도 쑥 들어갔다. 나머지 유력한 가능성은 수많은 약들 사이에 생긴 충돌현상이라는 것 같다. 약을 하나씩 줄이고 빼며 지켜보자는 얘기. 아 맞다. 심전도에도 약간 이상소견이 있어서 심장초음파도 할 예정이다. 주말이 끼어서 빨라야 내일...

그러는 사이 우린 마냥 멍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병실생활의 절반은 막막한 기다림이고 절반은 킬링타임이다. 링거하나 안꽂은 이른바 '나이롱 환자'는 시방 TV 시청중이시고, 마감인생 무수리는 홀로전전긍긍 하고있다. 금요일에 온 원고독촉 전화에 사정 이야기하며 얼굴이 뜨거웠다. 그쪽에선 아마 거짓말이라 생각할지도... ㅡㅡ; 장기전이면 간병인을 부르겠지만 며칠 안걸릴 것 같으니 그럴수도 없다. 닥터 하우스도 절실하지만 내겐 손오공 변신술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나를 하나 더 복제해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이럴 때마다 한숨 나오는 비혼의 늙은 고명딸 노릇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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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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