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따리'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1.04.29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9
  2. 2011.03.29 정유정 - 『7년의 밤』 16
  3. 2010.05.27 눈뜬 자들의 도시 2
  4. 2010.04.09 씁쓸 7
  5. 2010.02.01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5
  6. 2009.12.25 2009년에 읽은 책 14
  7. 2009.11.30 책 고르기 20
  8. 2009.10.14 증정본 22
  9. 2009.05.15 띠지 27
  10. 2009.04.24 약력 25

안 쓰던 북리뷰는 계속 안 쓰는 게 좋겠고 특히 따끈한 신간 후기는 검색망에 걸려들기 쉬워 괜히 난감(?)할 수도 있으니 안하겠다고 선언한지 얼마나 됐다고, 손바닥 뒤집듯 또 독후감을 쓴다. 의지력 박약 및 우유부단, 내가 그렇지 뭐.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일단 옮긴이의 블로그에서 이 표지와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낚인 게 틀림없다. 전작 <밴버드의 어리석음>을 읽고나서 폴 콜린스라는 사람 참 대단하고 신기한 사람이구나, 역자가 소신껏 밀어줄만한 작가로구나 생각은 했지만, 토머스 페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대번에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으니 제목 한번 잘 지었다 싶다. 거기다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라는 부제도 호기심을 끌기 충분하다. (다 읽고 보니 중의적이다. 그 옛날 18세기에 이미 토머스 페인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이 지극히 '상식'이라고 주장했고, <상식>이라는 책도 펴냈다) 역사가 외면하고 잊어버린 기인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두는 폴 콜린스의 취향은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지는데, 전작 <밴버드의 어리석음>보다 대중적이고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 읽는 재미도 훨 낫다. 

토머스 페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란다. 심지어 미합중국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냈으며, 자기 주머니 돈을 털어 미국 연방준비은행(뉴스에서 자꾸 '연준'이라고 해서 내가 못 알아먹었던 그곳의 역사가 이리도 오래됐구나!) 종잣돈을 마련했고, 미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주장한 책 <상식>을 써서 '독립선언문'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영국에서 군주제 폐지를 부르짖다 반역자로 조국에서 쫒겨나 프랑스에서 혁명운동을 하다 투옥됐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끊임없이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던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를 비난하는 <이성의 시대>라는 책 하나 때문에 독립영웅 대신 혐오스런 무신론자로 배척 당하다 끝내 가난과 고독에 허덕이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어쩜.. 이름도 하필 Pain, '고통'이람. 나중엔 끝에 e를 넣었다지만 영어로는 고통, 한국말로는 '폐인'의 어감이 난다. 혹시 그의 수난은 작명탓이 아닐까 잠시 딴 생각이 들었다만, 뭐 그의 일족이 죄다 그런 일생을 살았을 리는 없겠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면 벤저민 프랭클린 아닌가?(그러니까 무려 10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진 게 아니었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면 나도 한번쯤 들어봤을 텐데(물론 내가 상식이 풍부하거나 세계사를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금시초문인 걸 보면 뭔가 사연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은 토머스 페인의 '전기'가 아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인물은 그저 대 전제로 존재할 뿐 이야기의 골자는 어디까지나 그의 '사라진 유골'이다. 프랭클린의 장례식에는 2만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는데, 페인이 매장될 때 참석한 인원은 달랑 6명이었다. 퀘이커 교도였던 그는 교회 묘지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그 어디서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 결국 그의 시신은 살던 오두막 근방의 마당 한구석에 묻혔다. 

10년 뒤, 한밤중에 누군가 그의 유골을 파내 영국으로 가져간다. 살아생전 토머스 페인을 사사건건 트집잡고 비난하고 논쟁을 벌이고 조롱했던 골수보수주의자 윌리엄 코빗의 소행이다. 페인이 죽은 뒤 개처럼 버려져 묻혀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던 코빗은 뜬금없이 페인의 기념비를 제대로 세워줄 목적으로 그의 유골을 파내 대서양을 건너왔다. 긴 세월을 거친 뒤에야 페인이 주장하던 진보적인 진리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나 영국에서 그런 일을 호락호락 허가할 리는 없다. 통관부터 문제가 되었던 페인의 유골은 기금 마련에도 어려움이 생기면서 계속 방치되어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떠돈다. 금서였던 그의 책은 다시 용기 있는 젊은이와 서적상 덕분에 암암리에 유통되고, 페인의 생애도 재조명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시각은 부정적이므로 페인의 유골은 계속해서 '뜻있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별로 힘은 없는 이상주의자, 진보주의자들에게나 관심의 대상이다. 

이 책은 그렇게 추종자들의 관심망에 따라 페인의 유골이 정처없이 떠돈 흔적을 뒤쫓아가며,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리도 페인의 유골에 관심이 많았는지 결국 페인의 유골은 어디에서 안식을 취했는지(또는 영영 떠돌고 마는 것인지) 독자의 궁금증을 잔뜩 부추기며 대서양을 오간다. 급기야 두개골 따로, 뇌 따로, 왼손과 일부 유골 따로, 몸 따로 흩어진 페인의 자취를 좇는 과거(페인의 유골을 손에 넣었거나 유통한 사람들의 역사)와 현재(옛날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지은이의 행적)의 시선이 공존한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나 싶으면 유골은 또 파산이나 몰락의 이유로 또 다시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 뒤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말을 아낀다. 설마 찾겠지, 어디든 페인의 유골이 방황을 멈춘 곳이야 있겠지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책의 후반부다. 그래서 폴 콜린스가 분실된 페인의 유골을 결국 추적하는데 성공했느냐고? 물론 그건 나도 알려줄 수 없다. ^^;;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기를! 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으로 생각되는 19세기 영국인들의 각별한 유골 사랑(아 글쎄, 밀턴의 유골도 일부 도난당했다네!)과 기이한 수집벽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덤이다.  

토머스 페인도 낯선 마당에 그를 추종한 영미권의 수많은 사람들 이름은 책장을 덮고 나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가운데 남부출신의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였다가 사상이 완전히 바뀌어 페인의 추종자가 된 몬큐어 콘웨이는 워낙 독보적이라 두드러진다. 골통보수라고 할 수 있는 순회목사였던 콘웨이는 에머슨 목사(우리가 아는 그 랠프 왈도 에머슨 맞다)의 글을 읽고 신학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심하는데, 에머슨을 찾아가 만나면서 계속해서 소개받고 만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 짐작하다시피 호수 근처 이웃은 소로이고, 인쇄공으로 일하는 노동자 시인을 소개받아 만나고 보니 휘트먼인 식이다. 그 뿐만 아니다. 페인의 자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선 또 테니슨 경, 새커리, 로버트 브라우닝, 다윈과 교류한다. 마크 트웨인, 해리엇 비치 스토 부인, 찰스 디킨스까지, 전부 다 콘웨이의 '지인'들이다. 우와, 역시 유유상종이로다.

콘웨이가 그 유명한 지인들과 주고받는 대화는 거의 선문답이다. 이를테면,
"정신이 일단 어떤 상태에 다다르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열매가 맺히는 법이지."(p144)
<블랙우즈 매거진>에 실린 에머슨의 글을 읽고 콘웨이가 얼마나 감동을 받고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는지 고백했을 때 에머슨이 겸손하개 해준 말이란다. 또한 에머슨은 목사의 존재 이유가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로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면서 "학교 회의에 양심적인 사람 한 사람은 앉아 있어야 하고, 지역사회 모임을 돕고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있기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파리 한 마리가, 존재하는지 않는지 불분명한 천사보다 더 중요하네."(p145)라면서.
하버드 재학 시절, 남부 출신으로 노예문제에 이견을 갖고 있는 콘웨이가 양측의 공격을 받을 때 에머슨은 또 이렇게 충고한다.  "위대하다는 것은 (...) 오해 받는 것일세."(p154)

"약간 쌉싸래하죠. (...) 하지만 그게 경험입니다."(p156)
월든 호수를 같이 산책하며 소로가 콘웨이에게 풀잎을 씹어보라고 한 뒤 한 말이다.

워낙 유명인들과 교류한 콘웨이가 내 기억에 유독 남았을 뿐이지 페인의 유골 행방을 좇은 사람들은 대부분 흥미로운 개인사를 갖고 있다. 당시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주장(여성에게 피임법을 알리거나,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등;;)을 펼치거나 실천하려던 그들이 토머스 페인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페인의 사상은 현재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펄떡거린다.

"관용은 불용의 반대가 아니라, 불용을 아닌 척 위장하는 것이다. (...) 둘 다 전제주의다. 불용은 양심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관용은 양심의 자유를 허가할 권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p198)

페인은 자기 묘비명에 단 한 구절 "<상식>의 작가"라고 새겨달라고 했단다. 46쪽에 달하는 소책자에 불과하지만 그의 사상이 축약되어 있고 책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다.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으로도 나 역시 페인의 팬이 될 것 같다.
"어떤 그릇된 것이 그릇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오래 굳어지면 겉보기에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p35)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시 시작할 힘이 있다."(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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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감상을 좀처럼 쓰지 못하는 지병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몇자 적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정말 대단한 작가, 대단한 소설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몇년 전 나온 『내 심장을 쏴라』가 퍽 괜찮다는 후문을 더러 듣고도 읽지 않았던 건 무슨무슨 상을 탔다는 수상작에 대한 괜한 반감과 시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친구가 책을 디밀며 극구 권했다. 한번 읽어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 라면서. 알았다고 대답하고 보니 구경다니는 블로그 주인장들이 앞다투어 올해 최고의 소설감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읽고 보니 그럴만 했다. 어휴...
 
띠지와 뒤표지에 적힌 박범신의 추천사처럼 '괴물' 같은 작품이다. 번역료를 인세로 받든 매절로 받든 상관없이 이왕이면 책이 잘 팔리면 좋겠다는 마음에 한결같이 찬양일색인 주례사 후기를 남발하다 보면, 부끄럽게도 뒤표지에 역자후기 일부가 인용되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그러면 또 앗 뜨거라 싶어서 사탕발린 역자후기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몇년 전엔 그래도 꽤 괜찮은 책이다 싶어 최고의 찬사를 날린 적이 있다.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야할 문장임에도 일단은 뒷 이야기에 대한 조바심이 나서 체하든 말든 급히 책장을 넘겨야 직성이 풀리는 책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칭찬은 바로 이런 작품을 두고서 써먹었어야 옳다는 생각이 독서 중에 불쑥 들었다. 처음엔 간결한 문장 하나 하나, 섬세한 표현과 묘사를 음미하며 읽어야지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헐레벌떡 숨가쁘게 읽고 있더라는 뜻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겠고, 결과가 궁금하면서 동시에 책이 끝나는 건 안타까웠다.

7년전 열두살 소녀의 시체가 댐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용의자였던 댐의 보안팀장은 곧이어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댐의 수문까지 열어 마을주민 절반을 몰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로 손가락질 받게 된 서원은 친척에게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서 버림받아 모든 관계에서 격리되다시피 떠돌며 세상을 살아간다. 모든 것이 아버지 탓이므로, 서원은 스스로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는 상상을 하지만 한편으론 무언가 다른 진실이 있기를 막연히 기대한다. 그간 서원을 거두어준 사람은 뜻밖에도 댐 보안팀의 직원 하나. 7년 전 밤에 일어났던 일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음험하고 섬뜩한 복수의 그림자는 현재까지 드리워져 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치밀한 짜임새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도 대단하다고 느낀 건 탁월한 인물의 심리묘사라 7년 전 그날밤의 사건을 풀어내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에 나는 매번 홀딱 빠져들었다. 짠하고, 안타깝고, 오싹하고, 으스스하고, 참담하고, 화나고, 통쾌하고... 슬프다(두어 번 울었다). 수많은 감정에 휩쓸리다 책장을 덮고 나서 여운도 길다. 결국 나는 혀를 내두르며 책 날개의 저자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뭐 이런 작가가 다 있냐 싶어서. 아무래도 『내 심장을 쏴라』,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까지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아니 그 전에 천천히 쉬어가며 이 책부터 다시 읽고 나서. -_-;

급히 읽느라 인상적인 구절을 공책에 적어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용을 더 발설하면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작가의 말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체하련다.

우리는 최선의 -- 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 -- 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일간지 사회면을 점령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보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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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많이들 읽으셨겠지만, 그래도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 거의 며칠 만에 읽어 재꼈던 반면 <눈뜬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해냄)는 좀처럼 이어 읽지를 못했다. 아마도 읽기 시작한 건 작년이었던 것도 같다. 그만큼 끝마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내 정신사나움 때문이 팔할이요, 나머지 이할은 숨막히도록 절망적인 그 도시 상황이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현실도피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내기라도 시켜야 할 것처럼 한심스러운 소설 속 정부와 이 나라 정부가 겹쳐지면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어쨌든 띠지를 책갈피 삼아 꽂아두었다가 조금 읽다 말기를 거듭하던 책은 일 핑계로 먼지를 뽀얗게 입었다가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책의 3분의 2선을 넘어섰었다. 허둥지둥 사건에 대처하는 정부의 꼬락서니가 정말로 딱이다 싶었고, 눈뜬 자들의 도시에선 과연 어떤 방향으로 사건이 풀려나갈지 궁금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남들보다 뒤늦게 읽으며 신종플루 때문에 더욱 공포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백지투표 사건을 처리하는 도시 권력자들의 모습이 연일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뉴스에 나와 천안함 사건 진척사항을 보고하는 현실에 투영됐다. 그러다간 또 원고마감과 간병무수리의 삶에 밀려 독서는 다시 뒷전이었다.

여전히 삶은 팍팍하지만 얼마 안 남은 책을 다시 잡게 한 건 <눈뜬 자들의 도시>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의 이 나라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확실한 '물증'으로 제시한 녹슨 철판에 적힌 '1번'이라는 매직 글씨였다. 세.상.에.나. 한 점 의혹 없이 규명하라던 진상조사의 결과 발표에 나는 또 "야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고 헛웃음까지 킬킬 나왔다. 정부의 진상 발표를 듣고 얻은 결론은, 나도 북한산 매직 한번 써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한국산' 매직과 네임펜으로 낙서질해댄 티셔츠는 세탁 한번으로 다 지워져 '일제' 패브릭 전용 마커까지 사들였지만, 그것으로 그린 그림 역시 나날이 지워져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강철을 녹슬게 만드는 짜디짠 바닷물 속에서도 성분이 유지되는 훌륭한 품질이라면, 티셔츠 낙서질용으로도 딱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도 아직은 북한산 표고버섯, 고사리 따위를 쉽게 살 수 있으며 통일전망대에 가면 (키드님 포스팅 참조) 북한산 맥주도 살 수 있다지만 연일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전쟁 준비설에다 개성공단 폐쇄 운운하는 뉴스까지 나오고 있으니 조만간 북한산 매직이 내 손에 들어올 일은 어째 요원할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다. 

아무려나 현실이 너무 암담해지자 책 속의 도시는 되레 나에게 위안이었고, 희망의 빛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애당초 선거에서 백지투표를 가능하게 했던 시민들의 존재부터, 얕은 술수와 음모로 정부가 아무리 대중을 현혹시키려 해도 끄덕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데다 정부의 하수인인 경찰이면서도 결국엔 인간적인 양심대로 행동한 경정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와 각료들은 또 얼마나 경멸과 조롱의 대상인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배운 바로는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말도 안된다고 판단하는 것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외려 그런 말도 안되는 것을 이용해서 양심을 무디게 하고 이성을 파괴하오." (377)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의 결과가 과연 어떻게 나오려는지 몰라도 확실한 건 실명 바이러스 공포를 겪었던 눈먼 자, 눈뜬 자들의 정부와 정치인들 만큼이나 이 나라 꼬라지도 무능력하고 환멸스럽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그 도시민들만큼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연일 전쟁 위기, 간첩 암약, 한반도 긴장 첨예, 대북 심리전, 도발 응징, 주가 폭락 따위의 소식들이 오르내리며 3, 40년전에 써먹던 국민들 겁주기 수법이 똑같이 통용되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 5, 6월이면 나는 늘 악몽을 꾸며 울다 깨어나곤 했는데, 그 악몽의 주제는 모두가 전쟁이었다.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와 반공 표어를 만들었고, TV에선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에서 북한 소년병이 다리를 쇠사슬에 묶인 탓에(퇴각하는 북한군이 해놓은 짓이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죽는 순간까지 '따발총'을 쏘아대거나 북한군이 '드르르륵'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이 거듭 등장하는 전쟁영화가 흘러나왔다. 저다마 보따리 이고 동생 들처업고서 피난 내려갔던 추억담을 품고 있는 부모님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악몽 속에서 나는 전쟁터에 홀로 버려지거나 북한군이 쏟아붓는 대포 공격을 피해 숨어 있거나 폐허가 된 동네에서 가족을 찾아 헤매곤 했다.

엄마는 키 크려고 꾸는 꿈이라고 나를 달랬지만 어린 나에게 세뇌된 전쟁 공포와 빨갱이 공포는 엄청났다. 정권마다 하도 그 수법을 오래도 써먹는 걸 지켜본 까닭에 이제 난 시큰둥 코웃음치게 되었는데, 큰일 있을 때마다 '북풍'이 여전히 만만찮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걸 보면 다들 내 생각 같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전쟁위험 국가 1위로 손꼽혀서 정말로 얻어지는 게 뭔지 나로선 정말 의문이다. 무모한 애들 힘겨루기도 하니고 원...

의사 부인과 눈물 핥아주는 개를 처리하는 어리석은 정권의 방식은 뒤떨어진 나라들에선 어디나 현재 진행형이고,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불확실한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아야하는 선거로 뭘 바꿀 수 있겠나 한심스럽지만 온 국민의 '한심도'를 또 한번 확인할 계기가 될 이번 선거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별로 기대할 건 없더라도, 선거 결과를 보면 선거 직전에 터뜨린 일련의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또 앞으로 몇십년간 우스꽝스러운 역사가 반복될지 아닐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요즘은 하려던 이야기에 필요한 낱말도 잘 떠오르질 않는 것뿐만 아니라, 글도 처음 생각했던 대로 쓰여지질 않는다. 원래부터 수다를 떨다가도 곁다리로 잘 빠지는 인간인데다, 글이란 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저절로 방향을 잡는 성질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거 좀 문제가 아닌가 싶다. 드물게 올리는 책 리뷰로 시작한 포스팅은 그냥 또 푸념일기로 끝나고 말았다. 내 역량이 요만큼인 탓이겠지. 암튼 성균관, 규장각 시리즈 이후 처음 끝낸 책이다. 이러다간 작년 대비 절반도 못 읽을 듯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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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

책보따리 2010. 4. 9. 17:07

어제 간만에 멀리 사는 친구들을 만나느라 강남 교보엘 갔었다. 그곳이 나름 중간 지점이라서 거의 지정 모임장소처럼 되고보니, 그런 날엔 서점 볼일도 같이 챙기는 편이다. 찾아볼 책도 좀 뒤지고 요새 책시장은 어떤가도 좀 살펴보려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법정스님의 책들이었다. 책의 가치여부를 떠나서 명사의 죽음은 늘 (나쁘게 말해) 책 장사의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지만, 그야  무엇이든 떠나보내고 난 뒤에나 새삼 돌이켜보는 인간의 어리석은 경향을 반영한 상술이니 무조건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책들은 절판 유언 때문에 더욱 기이한 소유욕과 과열 시장을 만들어냈고 이래저래 계속 말이 많았고, 알게 모르게 그 여파가 나 같은 존재한테도 영향을 미치는 듯 해 씁쓸하다.

각 출판사에서 법정스님의 절판 유지를 받들어 올해까지만 책을 판매하기로 협의했다는 뉴스를 들었고, 올 연말까지면 출판사에서도 팔아먹을 만큼 팔아먹은 뒤고 건망증 심한 이 나라 독자들의 기이한 독서열풍 또는 소유열풍도 사라지겠군 싶었다. <무소유> 초판본이 중고책 시장에서 수십만원에 거래되는 지경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면서, 또 <단군이대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에 그나마도 책이 움직이는 빌미를 제공한 스님한테 책으로 밥빌어먹고 사는 사람들 모두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강남 교보에도 벽에 따로 마련된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법정스님의 책이 몇권이나 꽂혀 있었으며, 친절하게도 스님의 책만 모아 여러 군데 자리잡고 있는 특별 책 판매대에는 <무소유>가 4월 몇일 이후에 입고될 예정이며 선주문을 받는다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출판사도 매우 다양했다.

어제 만난 친구 하나도 번역을 하고 있으니 수다 중에 당연히 출판계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법정스님의 책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 친구도 나도 작년말부터 나온다 나온다 말만 앞세운 번역서의 출간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이유가 법정 스님 책의 열풍 때문이라는데 동의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법정 관련 출판사들이 저마다 대량으로 책을 제작하고 있는 터라 상당히 많은 인쇄소며 제본소에 다른 신간이 끼어들 여유가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황이라 신간을 내도 팔릴지 말지 모르는 와중이니 일단 잘 팔릴 책, 50% 할인해서 물량공세로 밀어낼 책, 홈쇼핑에서 전집으로 판매대박을 낸 책들 먼저 인쇄에 돌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러다가 결국 출판시장이 망하거나 말거나. -_-;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이런 저런 뒷말로 새삼 욕되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말빚>을 청산하고 싶다는 위대한 유지에 딴죽을 걸 입장도 아니지만, 삐딱한 심성으로 계속 지켜보자니 법정스님의 절판 유언은 결과적으로 한국 출판계 최대의 마케팅 전략으로 비쳐진다. 정말로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그간 출간한 책을 절판하여 말빚을 청산할 작심을 하고 계셨다면, 스님은 왜 입적 직전까지 새책의 서문을 구술해서라도 출간되도록 밀어주셨으며, 최측근 출판권력의 손에 모든 저작권과 사업 이권을 위탁하고 있었을까? 그러고선 대뜸 유언에는 절판하라 말씀하신 저의는 무엇일까?

스님의 유명세와 출판계의 욕심에 밀려 몇달간 골빠지게 작업한 책의 빛 볼 날이 자꾸만 미뤄지는 바람에 속좁게 구시렁거리고 있는 소인배의 푸념이라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 눈에도 분명 지금 돌아가고 있는 책세상 형국이 비정상이란 것만은 확실하니까. 어쨌거나 법정스님 책을 내는 유명 출판사들이 어서 올해 말까지 팔아먹을 책들을 창고에 그득그득 쌓아놓아, 이제 그만 충무로와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와 제본소가 다른 책을 찍을 여유를 되찾길 빌 뿐이다. 작년에 내 이름을 달고 나올 예정이라던 몇권의 책들이 올해를 몇달이나 넘기고도 아직 코빼기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들도 예년에 비해 원고 채근이 덜한 게 죄다 법정스님 책 때문이라는 건 순억지겠지만(대체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 사정이 좋아질 날은 있는 걸까?),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땅에 허리케인을 불러온다는 이론이 순 헛소리만은 아니라는 데 자꾸 심증이 간다. 나의 긴 한숨따위는 이런 좁은 공간에서 푸념으로 맴돌다 사라질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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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ㄹ마을 필독도서가 되어버린 책을 이제야 읽었다. 내일까지 검토서 만들어 보내야할 원서가 있었는데도, 워낙 하기 싫은 일인 데다 책 네 권이 자꾸 나에게 손짓을 해대는 것 같아서 그제 밤을 꼬박 새워가며 엄마한테 구박 들어가며(원래 자는 시간인 아침이 밝은 뒤에도 안/못 자고 계속 읽었다) 거의 쉴 새 없이 내달리듯 탐독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웃분들이 거론하던 가상 캐스팅 배우들의 얼굴이 연이어 떠올라 킬킬 웃음짓기도 하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짜내보려고 애쓰다가는 그냥 포기하고 이야기속에 빠져들었다.

로맨스 소설은 읽기 전엔 괜스레 뻔한 상투성을 비웃다가도 읽기 시작하면 매번 정신 못차리고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 중학생 시절 하이틴로맨스로 시작돼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를 거쳐 주드 데브루가 어떻니, 조안나 린지가 어떻니 작가 따져가며 골라 읽던 시절에도 그러했고, 한동안 끊었다가(?) 로맨스 소설로 번역인생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로맨스 번역에서 차츰 손을 떼게 된 건 번역 분야를 넓혀 몸값을 올리고(?) 싶은 내 욕심도 있었지만, 그 무렵 외국(특히 미국) 로맨스 작가들의 작품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속속 등장한 국내물의 선전이 주효했다. 지나치게 진부하고 통속적인 구도와 인물에 신물나기 시작한 외국물보다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아기자기하고 인물도 정감있는 국내물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어서, 중소대형 출판사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로맨스 작가들을 스카우트 하려는 열풍이 불었다.

성균관, 규장각 시리즈를 쓴 정은궐 씨 얘기도 그때 지인에게 들었다. 초기 작품의 교정과 편집을 맡은 친구가 작품 의논 때문에 연락을 해보니 직장인이더라나. 다른 국내 로맨스 작가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던 눈썰미 좋은 그 친구가 글솜씨 칭찬하는 말을 들으며, 다들 막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뭐냐, 직장생활도 하면서 취미생활로 돈도 벌고! 부러워서 질투난다, 뭐 그런 내용이었을 거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인기로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예약 판매분만 수만 부가 넘었다는 얘기도 들은 듯하다. 얼마 전까지도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었으니, 지금쯤 지은이는 돈방석에 올라 직장생활을 관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을까?

나로선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 <성균관>이 2007년 초에 나왔는데 <규장각>이 2009년 여름에 나왔으니 거의 2년 반이나 걸린 셈이다.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그러기도 했겠지만, 직장생활과 병행하느라 더 오래 걸린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짐작이다. 물론 중론이 그러하듯 나 또한 <성균관> 1, 2권이 <규장각> 1, 2권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주요 인물들의 정체가 다 공개되고 말았으니 다음 시리즈는 긴장감이 더욱 느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금 4인방 김윤희, 이선준, 문재신, 구용하를 비롯해 덕구아범과 순돌이, 반다운, 황서영 낭자까지 참으로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낸 솜씨라면 뭔가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엮어내고 있지 않을까나? 지은이가 정조 시대 역사와 궁궐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던데, 여기서 끝내기는 아깝다규~!

반할 수밖에 없는 훈남들의 활약상을 즐기며 상상세계에서 너무 오래 머문 탓인지, 찌질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꼬부랑 글씨 원서가 좀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재미없는 소설 읽고 검토서 만드는 건 정말 못할 짓이다! 어쨌거나 얼른 마무리해서 아침까지는 메일로 쏘아주어야 하는데 어흑... 어제처럼 이선준을 꿈꾸며 잠이나 자고싶다.(나도 이선준은 너무 완벽한 인물이라 문재신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는데 꿈엔 문재신 대신 이선준이 나왔다. 내 옆에 앉아 조보 대신에 신문을 꼼꼼히 읽더니 감미로운 목소리로 잔소리를 해댔다. ㅋㅋ)

그나저나 제 다음 순서는 통통님이신데, 워낙 바빠 언제 읽으실 수 있으려나요? 어떻게 전달을 해드려야 하옵는지... 책이 돌고도는 책방마을 ㅌㄹ마을, 나도 좀 기여를 해야할 터인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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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읽은 책

책보따리 2009. 12. 25. 22:53

올해는 드디어 나도 독서노트라는 걸 만들어 읽은 책을 적어두었고, 탁상 달력 맨 아래 그달그달 읽은 책을 적어보았더니 꽤 훌륭한 채찍이 되는 바람에(단 한권도 끝내지 못한 7, 8, 9월 석달간은 괜히 가시방석이었다) 애당초 목표인 스무권 넘기기를 가뿐히 달성했다. 다 애서가 이웃분들을 따라가 보려는 뱁새의 몸부림이었는데, 앞으로도 적당히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따라가는 시늉을 할 작정이다. 역시나 따라하기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 좋았던 책은 색을 달리해보았는데 비율이 꽤 높다. 재미 없거나 인내가 따르지 못한 책은 더러 읽다 집어던졌기 때문인데,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로할 작정이다.
잘생긴 뱀파이어한테 반해서 <트와일라잇> 시리즈만 탐독하는 열두살 조카의 독서를 독려하느라 새삼 읽은 아동서도 많으니 공주에게도 고맙다고 해야할 판.  
하지만 여전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은 60퍼센트 정도인듯. 이젠 좀 그만 사고 있는 거나 읽자. 책꽂이도 부족해 다탁 밑에 쌓아둔 책엔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점은 반성이 필요하다. 


1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김석희 옮김. 살림. 사둔지 꽤 됐는데 작년에 <디아스포라 기행> 읽은 김에 생각나 작년말부터 시작해 연초에 끝냈다. 학자로서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무슨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지.
2.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 김영사. 맞다, 신은 없다. 종교에 대한 오랜 회의를 속 시원히 긁어준 책. 오죽하면 포스팅까지 했을라고.
3.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내용은 제목만큼 기발한 재미는 없었고 평이한 편. 글줄이 곧 밥줄일 땐 어디서든 삶이 지난하다는 만고의 진리.
4. 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 지음/홍한별 옮김. 밑줄그어 외두고 싶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사고와 글의 집합체.
5. 보이지 않는 인간 1, 2. 랠프 엘리슨 지음/조영환 옮김. 민음사.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는 아직도 지천이므로 분명 가치 있는 독서였지만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어려운 과제물 끝낸 기분.
6. 완득이. 김려령 지음. 창비. 조카 주려고 사서 먼저 읽고는 너무 재미있어 자지러졌다. 이후로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던데 원조는 다를걸! 물론 조카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몇날몇일 완득이 얘길 주고받으며 신을 냈다.
7.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한미희 옮김. 비룡소. 조카한테 읽고 토론하자고 해놓고 막상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었는데도 새삼 부분부분 좋더라.
8.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김경희 옮김. 창비. 예상대로 슬프고 감동적이긴 했으나 <만들어진 신> 독서의 영향으로 결말에 대해선 조카와 어떤 토론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9.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지음/박동원 옮김. 동녘. 예전에 읽다가 슬퍼서 몇번이나 울었다고 했더니 공주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눈물이 나더냐고 따져서 빌려다 다시 읽었다. 역시나 또 눈물이 났다. 그제야 떠올랐다. 처음 읽었을 때 너무 비참하고 슬퍼서 책을 내던지며 짜증을 냈던 기억이.
10. 한밤중의 작은 풍경. 김승옥 지음. 전집구매 욕망을 잠재우고 작년 이웃 블로거의 목록에서 딱 한권 고른 책. 역시나 좋았다. 하찮은 블로그질에라도 간결하고 깔끔하게, 너저분하지 않게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김승옥의 글!
11. 그녀의 프라다백에 담긴 책. 이유정 지음. 북포스. 이요님이 여기서 권하는 책도 몇권 골라 읽었다 ^^ 
12. 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 김은영 지음. 브레인스토어. 해리님의 친구분이자 나 홀로 링크 걸어놓고 구경다니는 내맘대로 이웃의 책이라 읽어보고팠다. 영국의 학교체계와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어찌나 부러운지.
13.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이구열 지음. 돌베개.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다녀와서 부푼 호기심에 읽어보며 새삼 '공부'했다. 비록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14.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경식 지음/이목 옮김. 돌베개. <기억>은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옮긴이의 말이 인상적이었고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가운데 내가 미처 모르는 이들이 많아 민망.
15.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박이엽 옮김. 창비. 남다른 개인사 때문에 서양미술 가운데서도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에 유독 시선이 머문 지은이의 감상이 가슴아팠음.
16. 눈먼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 해냄. 신종플루 공포가 처음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던 시기에 읽어 더욱 실감났던 듯. <눈뜬자들의 도시>도 연이어 샀지만 몇십장을 못넘기고 지지부진.
17.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솔. 문근영양 나온 드라마 덕분에 새삼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 펄럭거린 1人의 선택으로 고른 책. 이 책 보고선 또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지 실습하러 국립박물관 가보려 작심했으나 실천은 못했다. -_-;
18.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 지승호 인터뷰. 시대의창. 사둔지 오래돼 이 책에서 비판의 주요 대상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라 맥빠지는 독서였다는 기억이 난다. 소통 안되는 답답한 현실은 그대로지만... 
19. 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레지드 브레의 말에 정말 딱 맞는 지식인이 바로 장 지글러! 무지하고 이기적인 민중이 이런 지식인의 말을 외면하는 현실이 슬플 뿐.
20. 소설. 제임스 미치너 지음/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컴퓨터질로 피로해진 뇌파 정리용으로 올해는 잠자리에서 책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은 잠이 완전히 달아나게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어 자야한다며 일부러 애써 책을 덮기도 했다. 소설 탄생을 둘러싼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기발하게 조명한 소설. 사둔지 오래 됐는데 왜 이제야 읽었던고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
21. 희박한 공기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김훈 옮김. 황금가지. 오래 전 외서기획 할 때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출간도 안 된 이 책에 대한 판권 경쟁이 엄청났고, 당연히 작은 출판사를 대신해 간 나는 힘을 써볼 도리가 없었는데 빼앗겼다고 돌아와서 언짢은 소리를 좀 들었던 책이다. 민음사 그룹을 어찌 이기라고! 해서 97년 첫 출간됐을 때 괘씸해서 안보리라 마음 먹고 잊었다가 이요님의 책을 읽고 마음을 바꿔 집어들었다. 읽고보니 여전히 경쟁적인 고산 등반의 열기가 식지 않아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정상등반의 진실을 의심받는 요즘 세태를 보며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산이 뭐라고... 
22. 한국의 글쟁이들.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글잘 쓰는 글쟁이들에 대한 선망을 부채질하고 수많은 독서를 강권하는 책. 나는 동의할 수 없는 글쟁이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시 수십권의 도서목록을 적어두었으나,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23.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 조목조목 짚어주시는 손택 여사의 말씀이야 한줄한줄 피가되고 살이되고...
24.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2. 발터 뫼르스 지음/두행숙 옮김. 들녘.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판타지 소설을 잘 못즐긴다던데 내가 좀 그런 편이라 여겼으나, 이렇게 기발한 발상이 다 있나 싶어 하며 즐겁게 읽었다. 지루하고 답답한 병원 간병 무수리의 괴로움을 순간순간 잊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
25. 성찰하는 진보. 조국 지음. 지성사. 조국 교수는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에 가까워 칼럼도 열심히 찾아 읽는 편이나, 이렇게 글을 모아놓으니 가끔 그가 쓰는 <백화제방 백가쟁명> 따위의 고루한 한자성어 쓰임새가 턱턱 걸리더라. 내용도 너무 원론적이고... 하기야 원론만 지켜져도 이 세상이 이꼴은 아니겠다만서도.
26. 노란 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지음/정신아 옮김. 문학동네. 서점에 대한 선망이 늘 있어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서점이 좋아 서점 직원이 된 사연이 담긴 앞부분만 좀 읽을만.
27.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정창 옮김. 열린책들. 열린책들 Mr. Know시리즈 50% 할인소식에 눈이 어두워 전격 사들인 열권의 책 가운데 이거 딱 한권 읽었다. 온라인 서점의 반액할인 때문에 출판사가 죽어간다는데 덩달아 춤춘 게 미안해서였던... 건 아닐테고, 주섬주섬 골라보다 이게 제일 재미있었음.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을 즐기는 노인의 사연이 짠하다. 중남미 문학엔 특히 무지한 편이라 좀 더 찾아 읽어볼 작정. 
28. 어루만지다. 고종석 지음. 마음산책. 어떻게든 써먹어 보겠다고 열심히 좋은 우리말 베껴 적으며 읽었는데 책을 덮을 때쯤엔 과연 번역할 때 써먹으면 편집자와 독자들이 받아들여줄지 회의가 들었다. 
29. 앗 뜨거워. 빌 버포드 지음/강수정 옮김. 해냄. 기자직을 때려치우고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려고 뛰어든 남자의 요리학습기.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것, 먹는 것,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시종일관 침나오고 감탄스러웠다. 요리사가 그렇게 어려운 직업인 줄 몰랐다네...
30. 밴버드의 어리석음.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 양철북. 당대엔 파란을 일으켰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 이른바 '루저'들을 결국엔 이렇게 책으로 기억해준 폴 콜린스 같은 사람이 다 있다니, <기억>이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이목 선생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인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도 기록을 시도한 지은이와 이런 책을 번역하자고 기획한 옮긴이 블루고비에게 갈채를! ^^


작년처럼 한줄 평만 넣으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길어진 내용이 많다. 역시나 독서노트의 덕이다! 이러다가 내년쯤엔 나도 두려움 없이 읽은책 리뷰를 몇권 더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게 아닐지. 
하지만 내년엔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하겠다. 이 정도로도 내겐 장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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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르기

책보따리 2009. 11. 30. 06:12
책을 읽고 나서 꼼꼼한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책으로 밥 벌어 먹고 살면서 민망하게도 그리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그나마 드물게 읽는 책의 경우도 내가 좀체 후기를 쓰지 못하는 건 직업병과도 관련이 있다.

전에도 푸념을 한 적이 있지만 번역을 맡아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은 <책 검토와 검토서 작성>이다. 순수한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 좋다 싫다 별로다 괜찮다 정도로 뭉뚱그려 판단할 수도 있고 중간에 집어던졌다가 맘 내킬 때 다시 읽거나, 아예 끝내 포기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책의 재미와 가치 여부는 물론이고 상업성은 있겠는지, 독자층은 어떤지, 기존의 책들과는 어떻게 차별화되거나 유사한지, 내용 요약과 책을 조목조목 분석해서 판단하는 의견까지 내놓으라는 출판사의 요구를 받노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책멀미를 느낀다. 논리와 분석력이 떨어지는 인간에게 책 한권을 읽고 객관적인 검토 소견을 제시하는 일이란 몹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해서 바쁜 일정을 핑계삼아 책 검토는 애써 사양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야 할 때면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냥 독자로서 책을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다행히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면 호감어린 검토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작도 전에 느꼈던 책멀미가 계속 이어진다면 비판적으로 헐뜯는 의견을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두려운 건 독자로서 나의 객관성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점이다. 단순히 독서할 책을 추천하는 것이라면야 누군가 읽고나서 투덜대며 별로였다고 던져버려도 상관없지만, 원서에 지불해야하는 저작권 로열티부터 제작비까지 큰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들 <가치>가 있는 책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한다. 

번역만으로는 당연히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번역 초창기 시절 나는 월급을 받으며 비상근으로 어느 출판사의 기획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말이 그럴듯해 출판 기획이지, 내가 하는 일은 저작권 중개 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꼼꼼히 검토해 <대박>날 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경영서 같은 무지한 분야의 책들을 고르는 건 괴로운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온갖 종류의 책을 접하고 읽는 게 좋아서 처음엔 꿩먹고 알먹는 일이라고 기뻐했었다. 요것조것 책을 골라 읽으면서 정기적인 수입도 생겼으니까.
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출판 경력도 전혀 없는 내가 어떻게 개인적인 취향이나 재미 여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잘 팔릴> 책을 골라낸단 말인가! 출판사에서 원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될 책 90% + <출판인으로서 의미 있는 책> 10% 정도의 비율이었으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은 얼마든지 추천 가능해도 <잘 팔릴 책>을 찝어내는 건 로또 번호 찍기처럼 막연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저작권 중개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유망한> 책들을 다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 기획회의를 거쳐 높으신 분들이 결정하도록 책임을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놓친 고기는 늘 커보이는 법이라고, 내가 보기에 괜찮은 책 같아서 열심히 추천하다가 막판에 꼬리를 내려 출간을 포기했는데 그 책이 다른 출판사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 난 곧 지탄을 받았다. 워낙 좋으신 분들이라 심한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때 내가 좀 더 강력하게 출간을 주장했으면 안 놓쳤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내가 완전 별로라며 소개만 하는 수준에서 그쳤던 원서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날개돋친듯 팔려나갈 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다 좋은 책은 아니란 건 누구나 알지만, 아무리 문화산업의 자긍심을 품은 출판사라고 해도 우선은 매출이 높아 돈을 많이 벌어야 그 여력으로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최종 결정은 다 같이 했더라도, 비싼 저작권료 지불해가며 공들여 출간한 책이 맥을 못추고 안팔려도 애당초 맨 처음 그 책을 집어왔던 장본인인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대체 출판이 도박과 다른 점은 뭐란 말인가!

책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도 좋았고 책 자체를 읽는 재미는 충분했지만 나는 3년만에 결국 <책 고르기>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아예 외서 기획일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내게 그 일을 맡겼던 출판사 사장님의 깊은 뜻은 번역가로서 책 고르는 안목을 높여 주어지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책을 선정하고 기획해 출판을 주도하는 역할까지 하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지금도 가끔 아마존이나 뉴욕타임스 북리뷰 같은 사이트에서 좋은 책을 찾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출판인들이 계시지만,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적이는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게을러서 그럴 시간이 잘 없네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블로그 이웃 가운데 동종업계에서 번역에 힘쓰고 계신 두 분은 놀랍게도 번역과 함께 그 어려운 <책 고르기>를 병행하고 계신다. 재미 있으면서 가치도 있는 책을 골라 어렵사리 출간을 권유하고, 또 번역을 맡아 그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땐 성취감과 뿌듯함이 몇배는 더 클 것이다. 더욱이 그 책이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잘 팔리는 책>으로까지 인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막연히 그걸 짐작하면서도 겁쟁이에 게으름뱅이이자 소심증 환자인 나는 의식 있는 번역가의 책무라고 하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책 골라 권하기>는 고사하고 출판사에서 골라준 원서 읽고 검토서 하나 만들라고 하는데도 어깨가 무거워 한숨을 쉬는 위인임에야 어쩌겠는가.

마뜩찮게 도맡은 책 검토를 할 때도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번역작업을 맡을 욕심에 재미없는 책을 재미있다고 의견을 내거나 가치없는 책을 가치 있다고 추켜세운 적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사적으로 싫은 분야가 아닌 한 웬만한 책은 소소하게 읽는 재미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이미 다른 언어로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은 누군가 출간할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므로, 그 분위기에 얼렁뚱땅 편승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시 수천만원 이상의 돈과 노력을 들여 나무 없애가며 다시 우리말로 책을 펴낼 의미가 있을지 곱씹어보자면 나는 웬만하면 회의적인 태도로 기울게 된다. 어쩌면 출간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술수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책이 안팔려도 최초 검토자로서 덜 민망하도록. 물론 검토자에게 추후 책 판매 여부의 책임을 묻는 출판사는 없다. 검토자가 아무리 칭찬을 하거나 혹평을 해도, 결국 최종 결정은 출판 기획자의 몫이니 말이다.

번역서든 창작서든 이 땅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하나같이 여러 사람의 고민과 염려와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 얼마 전 본 기사엔 3만개도 넘는 국내 출판사 가운데 작년에 한 권 이상 책을 낸 곳이 10%에 불과하며, 나머지 90%는 단 한 권도 책을 펴내지 못했을 정도로 출판시장이 열악했다고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지천으로 깔려있고 쌓여있고 꽂혀 있는 게 신간이던데, 그게 겨우 10%였다니.

올해 상황은 어떠했을지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먹고 사는 형편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책 산업이 돌연 호황을 누릴 리 만무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렵디 어려운 <책 고르기>와 <책 만들기>에 종사하는 수많은 출판인들이 보람을 느끼려면 그래도 누군가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골치아프게 만들어 내놓는 입장보다야 선뜻 집어 읽는 입장은 얼마나 더 수월한가. 확실히 나는 독자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막상 읽기를 소홀히 하는 걸 보면 책으로 밥 벌어먹을 자격이 부족한 것도 같다. 2009년 정리할 때 덜 부끄럽도록 마지막 남은 한달 동안 몇권이나 더 읽을 수 있으려나 마음이 조급하다. 검토서 멀미증의 영향으로 독자로서 읽은 책의 후기를 쓰는 것 또한 못할 노릇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웃 애서가들에게 자극을 받아 올해는 읽은 책을 기록하는 독서노트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정리에 젬병인 위인에겐 큰 발전인데, 이러다 보면 시답잖은 감상이라도 언젠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꼬박꼬박 독서후기를 쓸 날도 오게 되려나 어쩌려나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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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본

책보따리 2009. 10. 14. 21:26

출판사가 옮긴이에게 무상으로 주는 증정본은 과연 몇부가 적당한 것일까?
번역계약서 내용엔 증정본의 부수까지 포함되어 있다. 내가 같이 일한 출판사들의 경우 10부 아니면 5부다. 물론 담당자들과 친하거나 굳이 친하지 않더라도 말만 잘하면 증정본을 몇 권 더 받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10여 군데 출판사가 죄다 그렇게 정해 놓은 것을 보면, 10부나 5부가 증정본의 적당한 숫자라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책이 나오면 <예의상> 책을 달라는 이들도 많고 또 나도 여기저기 <예의상> 인사할 곳도 많아 증정본 5부론 턱도 없이 부족했다. 책이 모자랄 땐 주변머리 없는 인간 답게 남몰래 서점에서 책을 사서 전달하기도 했는데, 초창기엔 워낙 한군데 출판사와 주야장천 일을 했고 다른 일도 거들어 주게 되었으므로 얼마 후엔 책 좀 가져가겠다고 말만 하고 창고에 직접 들어가 몇부 집어올 수도 있는 형편이라 책꽂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예 증정본을 마다하고 달랑 한권씩만 집에 갖다놓기도 했다.

어느 때부턴가 내가 작업한 번역본은 반드시 두권씩 보관하기로 원칙을 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초창기에 작업한 책은 미리 증정본을 챙겨두지 않은 탓에 한권씩밖에 없는 경우가 꽤 된다. 10년도 넘은 책이니 당연히 절판된 데다 그 이전에 출판사가 문을 닫아버려 구하려면 헌책방을 노리는 수밖에 없는데, 뭐 그렇게까지 귀중한(?) 책은 아니라 그저 한권씩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보관본을 2권씩 챙겨놓겠다는 욕심은, 한권은 새책으로 남겨두고 또 한권은 오탈자나 번역상 미진한 부분을 표시해두었다가 재판이나 2쇄, 3쇄를 찍을 때 수정할 요량으로 품은 원대한 꿈이었다. 초보 번역가에겐 편집 전과 후의 원고를 검토하고 문장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초창기엔 나도 책이 나오면 반드시 원서까지 다시 찾아보며 꼼꼼하게 읽어보고 눈여겨 보아야 할 곳엔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등의 정성을 들였다. 
허나 부끄럽게도 요즘엔 책이 나온 뒤 내가 다시 새삼스레 꼼꼼하게 오탈자를 살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ㅠ.ㅠ 원서 검토할 때 읽어보고, 번역 전에 읽어보고, 번역 내내 씨름하고, 나중에 다시 역자교정까지 거치면 최소한 네번 이상 읽어야하니 제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그 지경에 이르면 거의 멀미가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출간이 늦어졌다거나 <정말로> 애정이 듬뿍 가는 재미있는 책이라면 다시 또 읽어보며 스스로 감동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내게 꼭 필요한 책이 두권이니, 증정본 5부는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은 집에 온 동생들이 집어가기도 하고 특히 욕심쟁이 공주님은 제 엄마 아빠와 별도로 책을 따로 챙기는 형편이며, 가끔씩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는 책의 경우엔 얄밉게도 <너무도 당연하게> 증정본 한권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지인도 있다. 지금은 집에서 일을 하기에 망정이지, 작업실 있을 때는 한번씩 놀러왔다가 증정본이 그거밖에 안남았다는 데도 굳이 책을 뺏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_-;; 해서 어떤 책은 보관용으로 두세 번이나 직접 구입했을 정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래한 출판사라 선뜻 증정본 더 달란 말은 꺼낼 수도 없었고...
사실 증정본 10권이면 대개는 풍족하다 못해 많이 남는다. 블로그 이웃분들과 달리 내 주변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내가 번역하는 책들이 그닥 <양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 강권하기도 민망하여 절반 정도는 집에 쌓아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헌데 문제는 아예 증정본을 안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너무 많이 주는 출판사도 있다는 점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영화흥행에 힘입어 시리즈가 무려 백만부나 팔렸다는 문제의 그 소설은 출판사 직원들과 틀어진 뒤로 증정본 한 부 받지 못했다. 내쪽에서 당당히 요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시는 그 사람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그냥 보관용으로 서점에서 한 권씩 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그런 책은 달라는 사람이 많다. 영화를 보고 온 공주님도 역시나 책을 탐내는 바람에 빼앗기고 다시 구입해야 했는데, 그 책의 증정본을 달라고 손 내민 지인들 몇몇에겐 열받은 사연을 전하고 <사보지도 말라!>고 조언했다. -_-;
소싯적에 도움을 많이 주신 출판사 사장님을 돕는 의미로 <무료봉사>했던 책도 얼마 전에 출간되었는데 내가 사긴 좀 속상하고 언젠가는 보내주겠지 무작정 기다렸더니 추석 전에 와인 두병과 함께 친히 책을 한권 주고 가셨다. 이왕이면 한권 더 주시지 딱 한권은 또 뭐람. 그 책도 어째 보관본 2권의 원칙에선 열외가 될 듯하다. 자꾸 열외가 많아지면 원칙도 무너지기 마련인데 젠장...

놀라운 것은 내 경우 증정본을 아예 못받는 섭섭함보다 <증정본 폭탄>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 많이 주는 것이 더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 책이 두권짜리인 경우는...
몇년 전에 출간된 소설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다시 가져다 책을 냈는데, 아 글쎄 증정본을 20부나 보내준 게 아닌가! 1, 2권으로 나온 책이니 무려 40권. 택배회사에서 책 배달이 오면 나는 대개 1층 현관문에서 받아가지고 들어오는데, 그날은 어깨에 엄청나게 큰 박스를 짊어진 택배 아저씨가 나더러 비켜서라고 하더니 친히 2층까지 올려다주고 갔다. 안 그랬으면 아마 난 들지도 못했을 듯. 
그렇게 받은 20세트의 증정본은 당연히 골칫거리가 되었다. 좁아터진 집구석에 쌓아 놓을 데도 마땅치 않고 당연히 책꽂이엔 자리도 없고, 하필 두번째로 나온 책이라 책 좀 읽는다 하는 지인들은 이미 몇년 전에 나온 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에서 하도 광고를 해대기도 했고 서점 순위에도 올라, 그땐 출판사에서 꽤 여러번 보내준 증정본이 부족할 만큼 주변에서 청하는 이도 많았고 내가 읽어도 좋았던 책이라 부러 선물도 했기 때문이다.

무거워서 선뜻 옮기지도 못하고 책이 10권씩 철끈으로 묶인 채 들어있는 증정본 박스를 현관에 계속 버려두고 있으려니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완전 새책을 확 내다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솔직히 이번 책이 수정보완본이긴 하지만, 난 장정이며 표지가 옛날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책 소진을 위해 왕비마마는 모임 있을 때마다 들고 나가 친구들에게 나눠주시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참 나 2권짜리 두툼한 로맨스 소설을 어느 할머니가 읽으신다고!! 당연히 말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모녀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증정본은 일단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컴퓨터 방 구석에 쌓여 있다. 방문을 열어놓으면 안보이는 구석탱이에. ^^
만일 내가 옮긴이가 아니라 지은이였다면 증정본 20부가 저토록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처음 책을 내신 어느 선생님은 증정본 30부도 모자라서 정가의 70%를 주고 다량 구입하기도 했다는데 말이지...

증정본이 10부도 모자랐던 적이 있는가 하면 때론 5부로도 여유로우니 번역서 증정본의 적정 권수는 몇권인지 나로선 도통 알 수가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20부는 너무 많다는 거!
어쨌거나 고육책으로 선택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현재 다섯 세트 예약받아 놓았다. ㅋㅋ 혹시 이 책도 영화 덕분에 새삼 읽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질지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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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

책보따리 2009. 5. 15. 15:23

요즘 나오는 책들의 거의 절반은 표지 아래쪽에 띠지를 두르고 있는 듯하다. 주로 주절주절 표지에 인쇄해 넣기엔 민망한 책의 광고문안을 새기기도 하고, 드물게는 <눈먼자들의 도시>처럼 영화 장면을 아주 넓게  인쇄해 양장본 껍질인지 띠지인지 모를 어중간한 형태로 두르기도 한다. 책 아래쪽에만 둘러놓은 띠지는 사실 관리면에선 꽤나 골칫덩어리다. 책을 쌓거나 꽂거나 옮길 때 쉽게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띠지를 두르고 나오는 책들이 많은 걸 보면 추가 비용과 관리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도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페이퍼백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는 예로부터 책을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풍습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옛날엔 전 세계적으로 워낙 종이가 귀하고 책이 귀했을 텐데 유독 우리나라만 지금껏 책이라면 무조건 내용과 상관없이 좋은 질의 <아트지> 같은 걸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은 이유를 나로선 알 수가 없지만, 최근 나온 핸디북 크기의 작은 책들도 글씨와 판형만 약간 작아졌지 종이는 여전히 눈부신 수입지라 책 무게는 별로 줄지 않은 걸 보면, 정말 책을 숭상하는 민족이 맞는 것 같긴 하다. 아예 안보면 안봤지 만듦새가 시답잖고 <싼티>나는 책은 안사본다는 뜻 아니겠나.
하기야 습관적으로 책을 소중히 다루고 아끼는 습관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남들은 별 생각없이 버린다는 띠지도 나는 차마 버리지를 못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는데, 새삼스레 동생들한테 책을 빌려주며 한 소리를 듣고나서야 아니란 걸 알았다. 띠지 없는 책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동생들에겐 띠지의 존재여부가 독서의 여부를 알려주는 표시일 정도란다. 책을 읽게 되면 거추장스러운 띠지를 제일 먼저 버린다나.
물론 나도 책을 읽을 땐 당연히 띠지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먼저 빼긴 한다. 그러고는 곧장 버리는 게 아니라 이미 접혀 있는 모양대로 약간 양쪽 길이가 다르게 접어선 책갈피로 사용한 다음 책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띠지를 곱게 둘러 책꽂이에 꽂아둔다. 그러다가 보면 책을 이리저리 빼고 꽂다 가끔 띠지를 찢어뜨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근엔 그냥 책사이에 꽂아둘 때도 많아졌기는 하지만, 띠지를 함부로 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띠지를 안버리고 계속 보관하는 모습이 꽤나 이상해 보였는지 며칠 전엔 정민공주가 물었다. "고모는 왜 저런 책 종이를 안 버리고 계속 갖고 있어?"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잠시 대답이 궁해졌던 나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주절주절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저런 종이 조각 하나도 생각 많이 하고 머리 써서 만든 거고, 종이는 원료를 다 수입해서 만들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면 아깝기도 하고, 접어서 책갈피로 쓰면 아주 요긴하고....

어쩌면 내가 출판업계에 발을 담그고 생계를 잇고 있기 때문에 책을 더 존중할지 모른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띠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책에 대한 애정이 많다기 보다는 최대한 새것인 채로 보관하고 싶은 겉치레 욕심에 불과한 듯하다. 띠지를 안 버리고 책을 읽은 다음 다시 둘러 두는 짓은 번역 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반복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하다. 나보다 훨씬 더 책을 많이 읽으시는 블로그 이웃들은 띠지를 어떻게들 처리하시는지. 정말로 띠지에 대한 집착은 나만의 기벽인지. 나말고도 그러는 분들이 또 있는지.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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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9. 4. 2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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