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따리'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3.09.30 가을은 독서의 계절? 8
  2. 2013.09.11 조선의 못난 개항
  3. 2013.06.07 타블로이드 전쟁 3
  4. 2013.01.05 2012년에 읽은 책 6
  5. 2012.09.12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6
  6. 2012.03.06 윌리 로니스 - 그날들 13
  7. 2011.12.27 올해 읽은 책 11
  8. 2011.08.25 분노하라 INDIGNEZ-VOUS! 12
  9. 2011.07.19 책버릇 15
  10. 2011.05.10 어떻게 팔릴까 11

9월 중순쯤 동네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올초에도 몇달간 공사로 휴관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또 휴관을 한다나.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휴관 안내가 아니라, 10월 1일부터 12월 초까지 방음공사를 하는 휴관기간을 맞아, 대출 책 부수를 30권까지 늘려주겠다는 것이 문자의 요지였다. 앗... 2주만에 책을 안 돌려줘도 된다고?

 

올 9월달까지 읽은 책이 총 20권도 안되는 주제에, 두달만에 30권을 읽어볼 생각은 대체 왜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암튼 사고 싶은데 비싸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축과 한옥관련 책들을 위주로 열심히 책 목록을 만들었다. 괜히 강박적으로 소설책도 많이 끼워넣고...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빌려가 반납예정일이 12월까지로 되어있는 책들이 꽤 있었는데, 내가 보고팠던 책 중에 2권짜리  반납일이 딱 내가 책 빌리러 가려는 날이길래 예약을 해놓고는 일부러 늦은 오후까지 버텼다. 나처럼 소심쟁이면 기일 맞춰 반납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 그 책은 그날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지난주에 빌려온 책이 무려 26권. 배낭도 매고 에코백을 챙겨갔음에도 책이 다 안들어가서 매고 들고 한아름 안고서 3층을 내려와 주차장까지 가는 것도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많은 책을 낑낑대고 운반해 집에 쌓아놓고는 괜히 흐뭇했다. 나는 확실히 독서가가 아니라 '장서가'를 지향하는 인간이 틀림없다. 내 책도 아닌데 왜 흐뭇?

 

그러고는 며칠 지나서 또 날아온 문자. 내가 예약한 책이 들어왔으니 29일까지 대출하러 오라는 거였다. 두 달 안에 26권을 다 읽을 자신도 없으면서, 왜 또 그 책은 읽어볼 욕심이 나는지 원. ㅠ.ㅠ 그간 부지런 떨어서 읽은 책 2권을 반납도 할 겸, 예약 책을 찾으러 일요일 오후에 또 구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트 장바구니 같은데 책을 잔뜩 담아가지고 둘이 낑낑대며 도서관 앞 언덕길을 내려오는 엄마와 아이를 보았을 때 이미 짐작했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도서관은 주차장 입구부터 차가 엉켜 아수라장이었다. 30권 대출 욕심을 부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직원이 나와서 들고 나는 차들을 한참 정리하고 난 뒤 주차할 데도 없어서 건물 뒤 쓰레기 하치장 옆에 대충 차를 박아놓고는 부리나케 들어갔더니, 주로 아이들 대동한 아빠, 엄마들이 죄다 한아름씩 책을 안고 끙끙대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편의를 봐주느라 현관 문을 붙잡아주다보니, 꼼짝없이 계속 문만 붙잡고 있어야 할 판! 에라 모르겠다 나도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네 사람이나 문 잡아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딱 한번밖에 못 들었다. 쳇...

 

열람실에 올라가 지난번에 못 찾은 책도 다시 한권 찾아들고 예약한 책을 받아 총총 도서관을 나오며 또 다시 주차장 아수라장 속에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는데, 짜증보다는 신기하단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일까? 의외로 이 동네 사람들 책 많이 읽네? 두권 돌려주고 세권 더 빌려 왔으니 나도 30권은 못 채웠어도 29권이나 빌렸다! 다 읽고 갖다줄 수 있을까? 몇권이나 그냥 돌려주게 될까?

 

몇년 전인가, 도서관에 신간도서 신청을 하면 남들 안본 깨끗하고 따끈한 새 책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여기다도 자랑했던 것 같은데, 바로 그해였나 그 다음해엔 도서구입 예산을 다 썼다면서 신간도서 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공지를 본 게 떠오른다. 도서관에서도 예산이 없어 책 구입을 못할 정도니 출판계가 말라죽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책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더 기운이 빠졌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에 3-40만권씩 쏟아져나오는 신간이 모두 다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운영주체가 국가든 지자체든 개인이든 이 나라의 모든 도서관에서 한권씩 신간을 구비해준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출판사마다 초판은 다 팔 수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 과거엔 보통 책의 초판을 2천부 찍었으니까.

 

그러나 요즘에 초판을 2천부 찍으면 각종 언론사와 홍보용으로 배본하는 500부 말고는 죄다 반품이라 물류비용만 많이 드니 아예 초판부수를 천부로 줄였다는 출판사도 많다고 한다. 그나마 좀 팔리는 책도 마케팅용으로 반값 할인하다보면 판매부수는 많아도 결국 계산해보면 적자일 때도 있고. 출판 종사자의 얘기를 듣다보면 하루 빨리 책에 기대어 밥벌이하는 인생을 청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드는데, 또 막상 무슨 일을 새로이 하겠나 싶어 그냥 한숨만 푹푹 쉴 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암튼 그렇게 출판사 망해가는 이야기만 듣다가 도서관에서나마 후끈한 대출 열기를 목도하고 오늘은 괜한 희망에 젖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이렇게 블로그에라도 광고하면 괜한 오기가 생겨서라도 빌린 책 독서에 더 열을 쏟지 않겠나. 나도 궁금하다. 저 책중에 몇권이나 다 읽을지. ^^; (사실 비싸서 살까말까 망설이던 책들은 좀 읽어보고 괜찮으면 와우북 페스티벌 할 때 가서 할인가에 장만할 욕심도 없지 않다. 과연 게으름과 장서욕 중에 어느쪽이 승리할 것인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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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관련해서 역사강의를 들으러 좀 다니면서, 19세기말 20세기초 조선이 처했던 국제정세와 비교할 때 현재 G2로 부각한 중국과 G3나 다름없는 일본 사이에 끼어 대미관계를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사뭇 비슷하다는 말을 꽤 들었다. 아시아로 몰려든 서양열강의 제국주의 압박 속에서 외세에 기대어 눈치를 보다 나라를 잃었던 조선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고 말이다. 정치인들도 똑같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짜증스러운 망국의 역사라 별로 관심없었던 근대에도 요즘 새삼 눈을 돌려 이 책을 읽게 됐다.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라는 이 책의 부제 그대로 그 내막이 실로 궁금했고, 과거엔 나라 빼앗긴 무능한 왕이라고만 여겼던 고종에 대한 평가가 최근들어 달라져 여기저기서 그를 '나름대로'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신문물 도입과 개화에 힘쓴 개혁군주로 그려내고 있는 점도 호기심이 일었다. 고종이 진짜 그랬다고? 이미 까마득하지만 중고등학생 때 배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잘못이었고, 대한제국을 선포해 나라의 위신을 세우려 했던 고종의 눈물겨운 근대화 시도는 단순히 일제의 횡포 때문에 실패했을까? 

 

문소영 지음, 역사의아침, 2013

제목에서도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조선의 근대화 실패가 일본과는 확연하게 달랐던 사대부들의 고리타분한 사상과 내부적인 준비부족, 세계정세에 어두운 편협한 시각, 국가재정의 궁핍 등을 원인으로 삼는다. 그리고 특히나 몇번 개화파가 시도했던 근대화 개혁의 기회 앞에서 고종은 걸림돌 노릇을 톡톡히 했다. 당시 고종과 개화파들의 의식수준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뛰어난' 동양 사상은 고수하며 서양의 앞선 기술만 도입하자는 '동도서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도 한계였다.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과 다이묘들도 구한말 한학자들과 양반 못지않게 처음엔 개항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무력봉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메이지 유신을 성공리에 이끌 수 있었던건 주요 반대인사들이 직접 유럽과 미국을 유람하며 앞선 산업기술과 '대세'를 실감한 뒤 방향을 전환했고 거국적으로 서양문명과 합리적인 서구 사상까지 받아들여 부국강병에 힘썼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조선은 서양으로 유학을 떠났던 인물의 경험과 깨우침이 제도개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적인 에피소드로 남았을 뿐, 근대화와 관련하여 변덕이 죽끓듯 했던 고종의 정책과 입맛에 따라 일부 개화파는 일본으로 망명을 해야할 정도였다. 부국강병에 힘쓰는 대신에 자꾸만 외세나 끌어들이고 말이지...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같은 위로부터의 개혁 가능성은 물론이고,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같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가능했던 순간에도 고종과 관료들은 항상 청나라와 일본에 기대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대가 한반도에 상주하는 빌미만 제공하고 말았다. 물론 호시탐탐 외세가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고는 해도 왕권약화는 고종의 자업자득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6세기 이후로 조선이 모든 분야에서 진취성을 잃고 자만하여 퇴행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말이지 구한말의 역사는 읽고 있다보면 혀를 끌끌 차게 되거나 부아가 치밀만큼 안타깝다. 나 역시도 그렇기 때문에 굳이 들여다보려하지 않거나,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빌미로 최대한 그 때를 미화해 생각하려는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가령,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환궁우를 지어 조선왕조 500년간 중국 눈치보며 알아서 기느라 못했던 천신제를 올렸다든지(제후국의 왕은 감히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것이 중화의 질서;;),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지 불과 8년만에 아시아 최초로 경복궁 건청궁 일대에 전깃불을 설치할 만큼 고종이 신문물 도입에 관심이 많았다든지(경복궁 향원정 옆에 가면 '전기발상지' 표석도 있다), 헤이그밀사 파견으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려 했다든지, 왕실 사유재산인 내탕금을 털어 워싱턴에 주미공사관 건물을 매입해 자주외교의 노력을 했다든지, 고종이 순순히 양위를 거부하다 순종의 즉위식에 참석을 안했다나 뭐라나(그러나 관련자료 사진을 보면 고종과 순종 모두 즉위식에 참석했을 확률이 높다;;; ㅋ).....

하지만 분명한 건 제국주의 시대에서 조선말의 행보는 분명 잘못된 것이었고 개화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으니 '나름대로의 노력' 정도로는 확실히 부족하다. 남탓만 하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고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다. 이 책 이전에도 조선의 근대와 관련된 책을 썼나본데 '일개 기자' 따위가 언급할 내용이 아니라는 학계의 비판도 있었다고 서문에 적혀있다. 아니, 역사책은 꼭 역사학자만 써야하나? 쳇... 그렇다고 이 책이 흥미위주로 가벼운 것도 아니다. 1, 2차 사료들을 충분히 공부하고 기존 역사학자들의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비교분석했기 때문에(물론 그래서 인용문도 많음) 꽤나 공부삼아 읽어야 했는데 나로선 재미도 쏠쏠했다. 그나저나 근대 조선말과 고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한 백년쯤 더 흘러야 객관적으로 자격지심 없이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으려나. 역사학계에선 여차하면 서로 식민사관이라고 공격질을 해대니 참 어떤 견해가 옳은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선말 고종과 양반들은 너무 무지했고 무능했다는 견해가 옳다는데 나도 동감. 그런데도 고종 승하 후 온 백성들이 덕수궁 앞에 몰려가 통곡을 했던 건 고종을 애정해서가 아니라 그냥 절대왕권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조건반사 행동이 아니었을까. 내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바에 따르면, 독재자 박통이 사망했을 때도 소복 입은 시민들이 연도에 늘어서 통곡을 했었단 말이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쌈이 새삼 자주 떠오르는 세상이다.

 

 

흥선대원군 체제에서 오히려 조선은 개혁되고, 부강하고 강력했다. (33쪽)

 

조선이 새로운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통로는 청나라와의 사신 교류와 임진왜란 이후 정례화된 일본과의 통신사 교류였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정보는 서적으로 출판돼 널리 공유되기 보다 개인문집으로 남아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중략) 성리학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이단으로 치부하는 노론식 사고방식과 국정운영이 16세기 말부터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98쪽)

 

그렇다면 1910년 8월까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있었던 순종이나, 1863년에 왕좌에 올라 1907년까지 44년간, 특히 마지막 10년은 황제로까지 불렸던 고종에게는 아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일본에게 받은 은사금이나 작위만 가지고 따져보면, 고종이 가장 많은 은사금과 가장 높은 지위를 보장받았다. (119쪽)

 

1873년-94년 사이에 민씨가문 사람들이 전보다 많이 등용됐으나 결코 조정을 손아귀에 쥐고 휘두를 정도는 아니었다. 민씨로 삼정승에 오른 사람이 1878년 잠깐 우의정이 됐다가 사망한 민규호 하나뿐이었다. 명성황후와 민씨가문은 고종이 가장 든든해할 보좌역을 했을지언정 고종을 압도하거나 대신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123쪽)

 

21세기 들어 고종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약하고 무능해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갖다바친 왕이 고종이었다. 권력욕에 날뛰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게 치이고, 아버지가 하야한 뒤에는 드센 아내 명성황후에게 휘둘리면서 민씨 외척세력에게 권력을 내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한제국을 선포해 땅에 떨어졌던 나라의 위신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13년 동안 근대화에 온몸을 불사른 왕으로 칭송되고 있다. 외교에도 남다른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가? (146쪽)

 

일본과 조선의 차이는 농민운동을 바라보는 개화 지식인들의 폐쇄적인 사고와 신분적 질서를 완고하게 강조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깨우치지 못한 동학 농민군을 탓하기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 조선의 선비들이 더 부끄러워해야할 일이었다. 구한말 조선의 양반들은 조선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만한 사상으로 재무장하지 못했다. (210쪽)

 

고종은 미국을 믿었으나 미국은 두차례나 일본과 밀약을 맺으며 조선의 뒤통수를 쳤다. (248쪽)

 

조선 근대화 성공의 유일한 방법은 개화파와 고종이 협력해 제도개혁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통해 드러나듯이 근대화를 유효하게 추진할 제도개혁이 왕권을 제약하게 되면 왕이 협력하지 않았다. 왕이 개혁의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255쪽)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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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2013)

'문학 탐정'이라는 별명에 딱 맞게, 폴 콜린스는 이번에도 19세기말에 벌어진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흔적을 낱낱이 추적해 '황색 언론'이 탄생하게 된 현장을 재조명했다. 더불어 미스터리로 남았던 사건의 진실까지 추리해낸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사건> 때도 느꼈지만, 추리소설 뺨치는 흥미진진한 서사와 전개는 이제껏 읽어본 다섯권 가운데 이 작품이 '갑'이다. 법정스릴러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음.

 

게다가 언론과 문학 부문에서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의 주인공인 조지프 퓰리처가 지독한 특종 경쟁과 부수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온갖 꼼수와 불법을 자행한 언론인의 표상이었다니! 후발주자로 나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승승장구하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에 맞서기 위하여 퓰리처의 <뉴욕 월드>가 벌인 선정적인 폭로전 양상은 정말이지 요즘 인터넷이며 종편 매체가 하는 짓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뻥 터뜨렸다가 아님 말고, 식의 황색 언론 보도행태가 이토록 강력한 전범을 갖고 있을 줄이야.

 

1897년, 이스트강에서 엽기적인 토막사체가 발견된다. 방수포에 꽁꽁싸서 묶어 강에 던진 꾸러미를 발견한 건 강에서 놀던 아이들. 시신의 신원과 살인범을 찾기 위해 뉴욕 전역을 뛰어다니는 건 경찰보다 먼저 두 일간지의 기자들. 당시엔 기자들도 배지를 번쩍이고 다니며 경찰 못지 않은 특권을 누렸던 모양이다. 게다가 신문사는 아예 탐정단을 꾸려 경찰보다 앞서서 사건수사에 개입한다. 수사 진행은 아예 기자들이 먼저 발견하고 선점하고 빼돌린(!) 증거와 증인의 인터뷰 기사를 바탕으로 진행될 정도다. 매일같이 엽기 살인사건과 관련된 따끈한 뉴스가 1면에 대문짝만하게, 그것도 컬러 삽화를 곁들여(사건 현장 지도는 물론이고, 희생자의 손 그림까지 생생하게!) 실린 걸 보게 되다니 나로선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당시 1센트짜리 신문은 이 선정적인 보도경쟁 덕분에 날개돋친듯 팔려나갔단다. 고가의 신형 컬러 인쇄기계를 도입하고 스타 삽화가, 스타 기자들을 몽땅 '돈으로' 스카우트해 선배의 등을 친 허스트의 <저널>이 당연히 압승. 발행부수가 무려 150만부에 달해 세계최고가 되었다나 뭐라나... 

 

캘리포니아 샌시미온인가 하는 곳에 허스트가 '돈 처발라' 지은 허스트 캐슬에 구경간 적이 있다. 산꼭대기에 그야말로 '성채'를 지어놓고 화려뻔쩍한 실내는 유럽의 온갖 골동품으로 채웠고, 일부 건물은 유럽의 고성을 통째로 날라왔다는 듯했다. 언론재벌이라고 해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기에 그렇게 막대한 돈지랄을 할 수 있었나 싶었더니... (관광지 내 박물관 같은 데서 기록영화도 보긴 했다만 당연히 내 기억 속의 지우개;;;) 별별 짓을 다 했던 모양이다. 허허허. 심지어 쿠바 감옥에 갇힌 혁명가의 딸도 기자가 쇠창살을 끊고 몰래 빼와 특종을 냈을 정도다. 

 

암튼 사건발생부터 희생자 신원확인 과정, 범인 검거, 재판, 증언, 판결까지 순간순간 드라마틱한 전개의 연속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연일 특종전쟁을 해댄 타블로이드 신문도 놀랍지만 수천건의 기사를 죄다 검색낸 지은이의 노고도 기막힐 노릇! 폴.콜.린.스.진.정.존.경.스.럽.다. 마지막엔 사건 관계자들의 후일담까지 곁들여졌다. 젊은 언론인 허스트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공격에 무너져 처절하게 패배한 퓰리처는 말년에야 비로소 <뉴욕 타임스> 같은 정도 언론이 옳다고 느꼈나보다. 전재산을 기부해, 자기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되면서 황색언론의 창시자라는 오명도 슬그머니 잊혀지고 말았다.  

 

사건이 하도 엽기적이라 처음엔 잠자리에서 읽기 섬뜩하다 싶었는데, 자전거 부대로 몰려다니는 기자들의 행태도 그러려니와 당대 사람들의 반응이 하도 웃겨서 나중엔 계속 낄낄댔다. 시대의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세기말 미국인들 진짜 징하다. 살인사건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어쩜! 알 권리를 빌미로, 상업적인 성공을 위하여 인권 따위 무시하고 취재의 촉을 들이대는 기자들과 언론의 생리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너무 자세한 사건 기사는 유사한 모방 범죄를 양산한다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신나는(?) 구경거리에 반색해 황색언론의 정착을 도운 세기말 미국 대중들은 가만 생각해보면, 요즘 인터넷 찌라시에 열혈 댓글과 악을 달며 흥분하는 사람들과도 다를 바가 없다. 세기의 살인사건을 만든 건 결국 당시 탐욕스러운 언론인들이었지만, 그 탐욕이 가능했던 건 결국 대중의 호응 덕분이었다. 쓰레기 같은 인터넷 찌라시나 증권가 찌라시, 일베 같은 것도 결국엔 수요가 있으니 생겨나는 게 아닐까. 뉴스에도 연령표시를 해야할 것 같은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과거의 한 자락이었다.

 

 

퓰리처는 세계 최초로 컬러 만화를 신문에 실었다. 귀가 주전자 손잡이처럼 생긴, 공동주택에 사는 익살꾼 민머리 꼬마가 주인공이었다. 제목은 <옐로 키드>. 옐로 키드가 인기를 끌자 경쟁 신문사에서는 <월드>를 만화 저널리즘이라고 비웃었다. 그래서 "옐로 저널리즘(황색언론)"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 p35.

 

허스트는 다시 <월드>보다 한발 앞서서 법원에 전화설비를 했다. 법정에서 인쇄실까지 1분이라고 그 주말 <저널>이 자랑했다. <저널>은 최초로 법원광장에 설치된 전화선을 통해 목격자 증언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 p226

 

허스트는 미국 신기록을 보유한 전서구 세 마리를 빌렸다... 그래서 법정에서 그린 스케치를 단 몇분 만에 <저널> 신문사 창에 설치된 새장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비둘기가 도착하면 움직임 감지회로가 벨을 울려, 용감한 새들이 최신 삽화를 가지고 도착했음을 편집기자들에게 알렸다. - p227.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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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베스트 포스팅을 하려고 보니 먼저 읽은 책 정리부터 해야겠다 싶었다. 마흔권을 넘겼던 작년에 비해 권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으니 정리하기도 더 수월하다. 읽은 족족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만한 독후감을 써놓으면 참 좋으련만 올해도 독서후기는 거의 남기지 못했고, 독서노트랍시고 만들어놓은 공책에도 감상은 별로 없고 죄다 베껴적어놓은 인용문 투성이다. 그래서 어떤 책은 제목도 벌써 가물가물, 낯설 정도다. 적어놓은 제목을 보며 소설인지 비소설인지 분류하는 것도 혼동했으니 오죽하랴. 어쨌든 따져보니 24권, 한달에 딱 2권 꼴이다. 여름 지나고부터는 통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비소설만 찾아보았는데도 소설이 적지 않아 좀 놀랐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도 하기 싫어 마냥 방구석에서 뒹굴러다니는 날들이 많았기에, 독서경향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그저 이 정도로도 장하다고 결론지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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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 지음/박현주 옮김/마음산책

작년 가을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산 책을 요번 여름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가면서 챙겨가 읽었다. 이웃 주민들의 지산 지참서가 작년엔 조르주 심농이었음을 알기에, 나도 더운 여름날 시간 떼우기로 읽기에 적당한 책을 선정하느라 잠시 고민하다 내린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안목이었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는 것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오래 전부터 이 책 훌륭하단 말을 더러 들었었는데, 나도 그 매력을 실감했다. 출판사와 번역자를 달리해 판권 계약까지 갱신해가며 나올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확실. 그래서 또 좀체 안쓰던 독후감도 쓰기 시작했는데... 계속 비공개로 두었다가 마무리하기까지 한달이 넘게 걸렸다. 젠장. 이러면서 책에 기대 밥벌어먹겠다는 건 좀 양심불량 같다. ㅎ

 

그간 나는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일고 있는 북유럽 추리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TV 시리즈나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유명한 <월랜더>니 <밀레니엄> 시리즈도 그저 명성만 들어보았을 뿐 서점 갈 일 있을 때 몇 장 들춰보고서도 선뜻 읽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시리즈로 죄다 읽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고, 범죄소설 장르가 좀 불편하다는 느낌도 있다. 셜록, CSI, 크리미널 마인드, 로앤오더 같은 범죄 수사 드라마는 흥미롭게 보면서 책으로 보는 건 왜 꺼려지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이해력과 지력이 딸려서? ㅎㅎ

 

'하얀 감방'이라고 불리는 조립식 콘크리트 서민주택에 살던 그린란드 출신 소년 이사야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는다. 경찰은 소년이 홀로 눈 덮인 지붕에 올라가 놀다 사고를 당했다고 짐작해 사건을 종결짓지만, 이웃에 살며 이사야와 각별한 우정을 쌓았던 스밀라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직감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사야가 괜히 지붕에 올라갔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린란드 이누이트족 사냥꾼 어머니와 덴마크인 의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밀라 카비아크 야스페르센은 그 누구보다 눈과 얼음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눈밭 위로 누군가 풀쩍 뛰고 나면 공기의 흔적으로 좀 전에 뛴 자세까지 보지 않고 재현할 수 있을 정도여서, 한동안 각종 북극 개발 연구팀 소속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처음 만난 1년 반 전부터 술주정뱅이인 이사야의 엄마 대신 이사야를 보호해야 한다고 결심했던 스밀라는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사야가 비밀 장소에 남긴 녹음테이프, 북극개발 파견 근무중 사망한 이사야의 아버지를 둘러싼 의문, 자원 개발회사가 오래전부터 벌여온 알 수 없는 연구 프로젝트, 이사야를 부검한 로옌 박사의 정체... 실마리가 풀려나갈수록 새로운 의문은 꼬리를 무는데, 스밀라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특수하게 개조한 쇄빙선을 타고 찾아가는 북극해의 작은 섬에는 대체 무엇이 감추어져 있었는지...

 

이렇게 줄거리로 적어놓으니 단순한 내용 같지만 이 책엔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심오한 느낌이 있다. 아웃사이더인 스밀라의 존재론적인 고민이 깊이 깔려 있기 때문일까?  번역자 말로는 일종의 학술소설로 볼 수도 있다고 할 만큼 수의 원리며 얼음, 빙하에 대한 언급이 많지만, 그 또한 보기 드물게 매혹적인 주인공 스밀라의 놀라운 지적 능력과 본능을 강조하는 장치일 뿐 그리 학술적이라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책의 뒤표지엔 스밀라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라고 찬양하는 소설가 김연수의 감상이 적혀 있는데, 나 역시 그 평에 동감했다. 외톨이를 자처하는데 고독하지 않고 당당하며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답다. 딱 내 취향이다 싶은 선망의 여인상이라고 하면 좀 웃긴가? 인물의 매력뿐만 아니라 작품의 서사와 표현도 마음에 든다. 심오하고 진지하면서 따분하지 않기란 원래 어려운 거라 생각한다. 근데 이건 그런 축에 드는 책이다. 지산에서 마지막 날 뙤약볕을 피해 시간을 보내며 읽다 만 이 책을 가져가지 않은 걸 엄청나게 후회했다. 덮어두고 나온 책의 뒷 이야기가 어찌나 궁금하던지. 분량(627쪽)이 길어서 결국 집에 돌아와 마저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여운이 꽤나 한참 가서 며칠간 되풀이해 뒤적이며 읽었다. 겨울과 북극해가 배경인지라 여름에 읽으며 서늘한 느낌이 들어 더욱 좋았던 듯하다.

 

베껴 적어놓은 글귀가 엄청 많지는 않은데, 아예 통째로 좋은 페이지가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터 회의 다른 책도 좀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서 은혜의 불빛이다. 나는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22)

 

나는 일생동안 지속될 것이라 여겨지는 그런 현상들에는 능하지 않다. 종신형, 결혼서약, 종신직. 그런 것들은 삶의 단편들을 고정시켜 시간의 흐름에서 면제시키려는 시도다.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일들은 더 심각하다. (376)

 

여행은 모든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사냥을 하러, 방문을 하러, 혹은 케케르타트를 향해 카니크를 떠날 때마다 잠복해 있던 사랑, 우정, 적의의 감정이 모두 폭발하고는 했다. (394)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415)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나는 더 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더 이상 볼거리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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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폴더를 슬쩍 훑어보니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만한 독서후기보다는 그저 감상에 치우친 책자랑이 많다. 책읽기에 대한 내공과 역량이 그것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후기보다는 책자랑 또 한판.

사진집은 워낙 비싸서 잘 안사게 되는데 작년말쯤에 나온 윌리 로니스의 이 책은 괜스레 갖고 싶었다. 순전히 바게트 빵 들고 뛰어가는 저 아이 사진이 표지라서 그랬던 것 같다. 오래 전 전시회 다녀와서 흑백사진을 추억하며 막내동생 사진이랑 비교해 올렸던 바로 그 사진이다.
게다가 이 책은 그냥 사진집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그날'에 대한 뒷이야기도 담겨 있다고 했다. 원제는 <Ce jour-là>, 부제가 '내 작은 삶의 기적: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이다.

찾아보니 전시를 보러간건 2007년이었고 사진작가는 2009년에 작고했단다. 1910년에 태어나 무려 아흔아홉살.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해 태어났건만 14년을 더 살았다. 근대와 현대를 모두 경험한 이에 대한 선망일까, 수많은 <결정적 순간>을 선보인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도 좋고, 같은 말이라 생각되는 <정확한 순간>을 담은 윌리 로니스의 사진도 좋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오래전 전시회때 본 사진들은 책에 별로 들어있지 않은 듯하다. 내가 마음대로 로니스의 아들 뱅상이라 짐작했던, 저 <작은 파리지앵> 사진을 포함해 두어 장만 낯이 익었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바스티유의 연인> 사진도 없다. 그 대신 같은 날  찍은 <바스티유 기념탑의 그림자>가 들어있는 식이다. 60장쯤 되는 사진과 그 뒷이야기가 짤막하게 담겨 분량은 18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읽을 거리가 좀 더 많기를 바랐으나, 사실 사진은 구구절절 설명을 듣기보다 보는 사람의 인상과 느낌이 더 중요하므로 이야기가 짧아 사진이 더 돋보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사진이 더 많았다면 가격도 훨씬 더 비싸졌겠지!

가능하면 연출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순간을 포착하거나 기다렸다가 일상을 잡아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작가도, 저 빵소년 사진은 연출한 거란다. 빵집 앞에 할머니와 줄 서 있는 저 아이를 보고 부탁해 '세번이나' 달리게 했다는 사연. 우연히 맞닥뜨려 포착한 사진들은 확실히 조금 흔들려 초점이 흐려지기도 했던데, 저 바게트 빵소년 사진은 정말 거의 완벽해보인다.

두고두고 찬찬히 보고 읽을 심산으로 산 책인데, 택배상자 열다가 그 자리에 앉아 다 읽고 말았다. 사진도 좋지만 간결한 단상과 사연을 적은 담백한 글도 좋다. 요즘 부쩍 '세상은 불공평해! 뭔가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다 잘해! 공부 잘하는 사람은 그림도 잘 그리고 악기도 잘 다루고!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이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아!'라고 투덜대는 일이 잦아졌다. 이 책을 보고서도 하이고, 바흐를 몹시도 좋아했다는 이 아저씨 '사진도 잘 찍지만 글도 잘쓰네' 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_-; 

"보통, 나는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린다. 어떤 사진이든 그냥 그 상황의 인상에 다른다. 내 순간성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위치만 찾으려고 애쓸 뿐이다. 실재가 더 생생한 진실 속에 드러나도록, 그것은 시점의 쾌락이다.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 일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p30)

"사실, 내 사진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완전히 우연한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줄 줄 안다. 내 시선을, 내 감성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사진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일어나고 있다. 내 인생은 실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커다란 기쁨도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이런 기쁨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삶이 슬그머니 아는 척을 해오면 감사하다. 우연과의 거대한 공모가 있다. 그런 것은 깊이 느껴지는 법이다." (p91-92)

으음... 혹시나 저작권법 위반 어쩌구 할까봐, 그리도 또 좀 퍼오기 귀찮아서 사진 없이 글만 인용하려니 느낌이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군. 암튼, 새하얀 설경을 어스름에 찍어놓은 것 같은 소박한 흑백사진과 글들이 참 어울리는 책이다. 서늘한 느낌과 따뜻함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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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책보따리 2011. 12. 27. 18:18

작년에 너무 책읽기를 멀리하여 찔렸던 터라 올해는 재작년과 동일하게 30권을 목표로 삼았다.
결과는?
41권으로 초과달성. ^^;
늘 있는 일이지만 순간 순간 죽도록 일하기 싫을 때 의식적으로 책을 읽으려 노력했노라고 말하긴 뭣한 양임을 안다.
그래도 올해는 스스로 칭찬해줄 게 하도 없어 이거라도 칭찬해주련다. 그래, 장하다. 옛다, 칭찬.
2011 Best를 뽑아서 연말을 깔끔하게(?) 마무리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건만 마음도 괜히 바쁘고 좀체 정리가 안되는 것 같은 데다, 책 내용도 몇줄 적어둔 것 빼고는 깡그리 까먹은 느낌이라 일단 달력 뒤져 목록부터 뽑아보았다. 정리하다보면 올 최고의 책 세권을 추릴 수 있으려나 원. 드물게 후기를 올린 책들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곧 베스트 후보작은 아닌 것도 같다. 아 어려워라... (하지만 꼭 바쁠 때 이런 포스팅 하고 싶은 심보는 또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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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감전시킨 93세 레지스탕스 노투사의 외침> 때문이라기보다는(띠지에 적힌 글귀다) 애당초 이 책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표지 포함 34쪽에 불과한 얄팍한 이 원서 한권에 국내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선인세가 만오천 유로까지 올라갔다는 소문을 들었던 게 주효했다(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이 정도 분량의 원서라면 우리나라 출판시장을 감안할 때 선인세는 5천 유로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과연 그런 책이 팔리나? 출판사들 미친 거 아냐? 하기야 선인세 몇억도 막 베팅하다가 퍽퍽 부도나 넘어가는 출판사가 어디 한둘인가. 한심하다...

스테판 에셀 지음/임희근 옮김/돌베개/2011

그 상황 그대로였다면 나는 괜스레 심술이 나서 아마도 이 책을 사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원래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어본 적 없지만[!] 선인세 10억을 주고 사왔다는 말만 듣고도 <1Q84>는 처음부터 독서제외 대상이었다. 참 별스러운 나의 독서취향^^;). 헌데 반전이라면 반전인 소식이 들려왔다. 저자를 설득한 끝에 돌베개 출판사(서경식 선생의 책을 비롯해 나도 돌베개가 내는 책들이 좋고 심지어 어쩜 그런 책들만 내는지 존경스럽다. 물론 출판사와 개인적 친분은 전혀 없고 그저 독자로서;;)가 최고액 선인세를 제시한 경쟁사를 물리치고 만 유로로 판권을 따냈다는 것. 만 유로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어쨌든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여전히 활발하게 저항과 행동을 부르짖는 노투사다운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꺼이 책을 사들여 후딱 읽었다. (원서엔 없는 저자 인터뷰, 추천사, 역자후기를 붙여 프랑스 원서보다 두배 이상 분량을 늘였어도 불과 87쪽이다.ㅎㅎ) 

스테판 에셀은 1917년생이다. 우리나라 나이셈법으로 따지면 무려 아흔다섯.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운동 분야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단다.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 드골이 이끄는 자유프랑스에 합류,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극적으로 탈출. 전쟁 이후엔 외교관으로 활약, 퇴직 이후에도 인권 및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이라는 것이 그의 약력이다. 예술애호가인 어머니 엘렌이 트뤼포 감독의 <쥘과 짐>의 실제 모델이라니, 결혼제도를 비웃는 그런 관계를 지켜보며 살았을 가정환경도 참 자유로운 분위기였을 것 같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대학생, 현직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가 일었을 때 사람들이 외친 구호가 상당수 이 책에서 인용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부당함과 차별에 분노하고 비폭력으로, 평화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어찌보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원칙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새삼 노투사의 당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그 이야기가 탁상공론이 아닌 평생 현역에서 활동해온 운동가의 부르짖음이자,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이기 때문이다. 부당함과 차별의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고.

노상 정치쇼를 일삼는 딴나라당의 일꾼답게 사퇴 카드와 함께 눈물로 읍소까지 했던 서울시장의 주민투표가 무산된 어제, 사퇴 이야기는 쏙 빼고 딴소리를 하는 인간들의 면면이 하도 환멸스러워, 읽은지 한두달 지난 책을 새삼 꺼내들어 다시 읽었다. 이른바 한나라당 표밭이라는 강남 3구의 투표율과 대단한 차이를 보이는 가난한 자치구의 투표율을 보며, 타워팰리스 내부에 설치된 투표소의 경우엔 투표율이 60%라는 언론 발표를 보며 정말이지 깊은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 사회엔 희망이 있을까? 왜 우리나라엔 이렇게 존경할만한 어르신을 찾아보기 힘든걸까.

화는 본디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내는'(出) 것이라 했다. 다른 나라 어르신이긴 해도 분노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격려해주시니 계속 버럭버럭 분노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여기며 다시 책을 덮었다. 사라코지 덕분에 프랑스도 우리나라와 많이 비슷해졌다는 걸 위안으로 삼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이지만, 참 구구절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가 자랑스러운 사회일 수 있도록 그 원칙과 가치들을 다같이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른바 '불법 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 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 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결코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10쪽)

진정한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독립된 언론이다...(중략).... 그런데 오늘날 바로 이 '언론의 독립'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12쪽)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드물었다. (15쪽)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22쪽)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34쪽)

.....위협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언론 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38-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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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버릇

책보따리 2011. 7. 19. 01:54

우리나라에서 싯누렇거나 거무스름한 싸구려 재생지로 만든 보급판 책이 널리 사랑받지 못하는 건 워낙 책을 숭상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페이퍼백이 지천인 외국과 달리 제 아무리 시답잖은 내용이라도 책은 마트 선반에서 대충 골라 한번 읽고 내다버리는 용도가 아니라고들 믿는다는 얘기다. 그렇게 책을 신성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서인구가 적다는 아이러니도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책은 독서 여부와 상관 없이 사서 책꽂이에 '진열'하는 용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내가 책을 살때 장정과 표지, 제목을 꽤 중시하고, 독서하는 동안과 이후에 띠지를 고스란히 간직했다가 다시 새책처럼 둘러 책장에 꽂아두는 버릇도 아마 그러한 전시행정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책을 훼손하는 짓 역시 당연히 금물이라 여겨 옛날부터 책장을 함부로 접거나 줄을 긋지 않았다. 가끔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다가 책장에 한방울 흘리기라도 하면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혀 호들갑을 떨었다. 얼른 닦아내어 흔적을 없애보겠다고 말이다. 예외가 있다면 교과서, 교재, 참고서적 정도. 하기야 그런 책은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책장과 씨름을 하는 거니까 형광펜과 색깔 볼펜으로 죽죽 줄을 긋고 메모를 해두어도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뿌듯했던 것 같다. 나중에 학자가 되고 나면 그런 책들이 부끄러워 새로 다 책을 장만해 꽂아둔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나는 학자가 될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다. 내가 보기엔 옛날 교재를 다시 들춰볼 일도 거의 없을 것 같고.

암튼 그런데 최근 책 훼손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려고 노력중이다. 일부러 막 더럽게 읽거나 줄을 마구 긋는 건 아니지만 인상깊은 구절을 발견하면 일단 책장을 접어둔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책을 읽으며 옆에 공책을 끼고 있다가 인상적인 구절이 나타나면 틈틈이 적어두곤 했는데 그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게다가 독서의 흐름도 확 끊기고! 뿐만 아니라 읽을 땐 괜찮은 것 같아 적어뒀는데 나중에 보면 대체 왜 적었나 싶은 문장들도 꽤 많다. 언제나 감상의 과잉에 허덕인다는 증거다. -_-; 그렇다고 또 내가 막 모든 책을 두번씩 탐독하며 내용을 정리하는 위인도 아닌지라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실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꼼짝도 하기 귀찮은 마음이 더 컸다;)하다 그냥 책장을 확 접어 표시해두기로 한 거다.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게 포스트잇은 통째로 수집 및 관상용 아니면 '일'과 직결된 거라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해서 처음엔 빳빳한 아트지 책장을 접는 손끝이 바르르 떨릴(과장 포함;;) 정도로 좀 찔렸으나, 그 또한 거듭되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어차피 누굴 빌려줄 책도 아니고 나 혼자만 볼 건데 뭐! 원래도 읽던 부분 표시는 온갖 종류의 책갈피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헷갈릴 필요는 없고, 책모서리가 많이 접힌 책일수록 인상깊은 구절이 많은 책임이 한눈에 척 들어오니 다 읽고 나선 꽤 뿌듯하기도 하다. 물론 접어놓은 부분은 며칠 내로 독서노트에 옮겨놓고 다시 잘 펴놓는다. 그 과정에서 역시나 왜 접어놨나, 다시 읽으니 별로다 싶은 부분도 있고, 새삼 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 일석이조다. 한번 접힌 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겠지만, 의미없는 훼손은 아니며 새로운 책버릇일 뿐이라고 세뇌 중이다. 다 읽고나서도 새것처럼 깨끗한 책이 좋기는 하지만, 안 읽어서 새것인 책(아직도 너무 많다;;)은 자랑이 아니라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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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팔릴까

책보따리 2011. 5. 10. 18:32

꾸준히 책을 읽은 감상을 올리는 블로거와 달리 독후감 못쓰는 지병을 탓하며 가뭄에 콩나듯 독서 후기를 올리면서 한 가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파워 블로거도 아닌 주제에 마치 내가 후기를 올리면 조금이라도 책 판매에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같은 타령이다. 하루 접속 인원이 수백 명, 수천 명 되는 도서 전문 블로거라면 몰라도 행여나!

하여튼 출판계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푸념이 한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열악한 이 업계의 구조적 한계를 알고 있기에 나와는 별 상관없는 희소식에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나는 신간, 구간 따지지 않고 내키는 대로 책을 사기 때문에 나온지 몇년 지난 책을 처음 접할 때도 꽤 많은데, 그럴 때 찾아본 서지정보에서 5쇄, 10쇄 이상 발행됐다는 내용이 눈에 띄면 괜스레 기쁘다. 또한 베스트셀러를 일부러 기피하는 성향이 있으면서도 100만부를 넘겨 팔렸다는 책이 뉴스에 등장하면(물론 이제 100만부 넘겨 팔리는 책이 드물어 뉴스거리가 되고 만 현실이 서글픈 것과는 별개로) 역시나 아직도 책을 읽거나 사는 사람이 깡그리 사라지진 않았다는 생각에 슬몃 안심이 된다.

처음 번역에 발을 디디면서 깨달은, 출판기획은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스캔들에 휩싸였던 전직 큐레이터의 자서전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판매 호조도 내겐 그저 놀랍다. 일단 탄성이 붙어 화제에 오르고 난 다음엔, 뇌화부동하는 군중들이(워낙 이 나라 사람들은 집단주의에 휩쓸리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론에도 꽤 오르내리고 주변인들이 좀 아는 체 하면 따라 읽는 심리;;) 너도너도 덩달아 사보는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궁금한 건 어쩌다가 탄성이 붙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과거엔 주요 일간지에 서평이 실리는 게 책 판매실적을 크게 좌우했다. 조중동 서평난에 실리면 기본 1만부는 거뜬히 넘긴다고 장담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번역으로만 밥벌이하기가 힘들어 출판사 외서기획을 돕던 시절, 서로 친분이 두터운 소규모 출판사 사장님들은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그 주요 일간지 서평 담당 기자들을 불러다가 깍듯이 '접대'했다. 한번은 나도 그들과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좋겠다며 인사동으로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기쁨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앉은 내 심사를 파악한 사장님은 어차피 저 사람들 2차로 보낼 데도 있으니 밥만 먹고 일어나라고 달랬다. 그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아 2차까지 '수행'하지 못하게 된 사장님은 동석했던 다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한껏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는 준비해간 돈봉투를 은밀하게 기자들에게 하나씩 찔러주었다.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나는 이미 경리직원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빳빳한 만원권 100장씩이었다. 늘상 있는 일인 듯 그걸 받아드는 기자들은 몹시 태연자약 여유로웠고, 나는 속으로만 부르르 치를 떨었다.

벌써 십수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작고 이름없는 출판사의 경우는 그렇게 밥과 술과 돈과 여흥으로 서평 담당 기자를 접대해도 조만간 일간지에 서평이 실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름'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출판사는 특별히 기자 접대를 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서평이 실렸다. 자금력이 확보되어 있으니 대형 화제작을 언제든 터뜨릴 수 있지 않겠나. 출판계에도 통용되던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 내게 기획자 명함을 파주었던 그 출판사의 서평이 드디어 일간지에 실린 건, 직접 목도했던 돈동투 사건으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였다. 로열티도 꽤 많이 주고 계약한 경제경영서를 출간했을 때였다. 일간지 서평 덕에 과연 그 책의 손익분기점을  넘겨 혜택을 보았는지 결과는 알지 못한다. 내가 곧 그 출판사 기획일을 때려치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컨대 분명 '밑지는' 장사였을 것이다. 1, 2년 꼬박 기자들에게 그런 접대를 해야 했다면 들인 돈이 대체 얼마인가! 기가 막혀서... 

웃기는 건 서평 담당 기자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꼼꼼히 읽고 기사를 쓰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출판사에서 자체 제작한 홍보자료를 순서만 약간 바꾸어 서평을 올려놓고는 그 기사의 저작권을 신문사에서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그 시절엔 나도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고 비상근이긴 해도 출판사에 나가보면 주요 일간지가 매일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거기서 가끔 실제로 책을 읽고 쓴 게 틀림없는 서평을 발견하면 우와 놀라며 감동할 정도였다. 그때 만난 서평 담당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나빴던 나머지, 요즘도 인터넷으로 일간지 서평을 보게 되면 못내 궁금하다. 책을 직접 읽고 쓴 걸까, 홍보자료를 읽고 쓴 걸까? (화제작에 대해서 일간지 별로 대동소이한 서평이 올라오면 십중팔구 출판사 홍보자료라고 장담한다 ^^;) 아직도 서평 담당 문화부 기자들은 출판사의 깍듯한 접대를 받을까?

일간지 서평과 함께 당시엔 일간지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가 '꽤 먹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전면광고, 통광고 좋아하다가 마케팅 비용에 들인 돈 만큼 책이 팔리지 않아 결국 부도를 내거나 크게 손해를 본 출판사들이 쎄고 쎘지만 말이다. 요샌 종이 신문을 본 적이 거의 없어 경향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만큼 영향력이 없는데도 여전히 일간지에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를 턱턱 내는 출판사들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설마 옛날보다 광고비가 싸졌을 리는 없는데 미약하기는 해도 여전히 효과가 있기 때문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의 엄청난 위용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의 힘이 날로 줄어들고는 있지만, 옛날엔 대형서점의 진열대도 책의 판매실적을 좌우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서점 직원들과 각별히 친하게 지내며 유리한 진열 위치를 선점하려 했고, 따로 돈을 내야 하는 특별 판매부스 코너도 종종 설치했다. 서점에 영업을 나가선 슬쩍 경쟁사의 책을 구석쪽으로 밀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점에 나가서도 베스트셀러는 눈으로만 구경할 뿐 괜히 못마땅해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라며 수북하게 쌓여 있으면 선뜻 손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일부 출판사에서 책 사재기까지 해가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려고 안달을 하는 게 아닐까.

출판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과 달라진 현실 때문에 책 영업에도 고충이 많다. 요즘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입소문과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 거기 올라간 독자 서평이라는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출판사들은 책이 나오면 으레 온라인 북카페나 자체 출판사 회원 사이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 무료로 책을 나눠주고 자신의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게시판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 조건인 것 같다. 그걸 알기에 나는 책이 출간된 후 후딱 올라온 온라인 서점의 후한 서평을 믿지 않는다. 출판사의 입김이 닿은 서평단의 글일 확률이 백프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도 더러 있을 텐데 그들에겐 좀 미안타;;) 출판사에서 굳이 서평단을 모집하지 않더라도, 지은이 쪽에서 사람을 풀기도 하는 것 같다.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선배가 종종 교재를 출간하는데,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단체문자가 날아온다. 온라인 서점에 별 다섯개짜리 서평을 책임지고 두개씩 올리라고. -_-; 학교 제자들한테도 그러라고 시켰다는 후문이고, 나중에 선후배 모이는 자리에선 출석확인 하듯 서평 올렸나 안 올렸나 따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인세 대박이 났는지 그건 또 잘 모르겠다. 최근 이삼 년 간은 조용한 걸 보면 인기 교재 집필자는 아닌 것 같다. ㅋㅋ

얼마전 신간 소설 읽고 올린 후기 때문에 출판사의 검색망에 딱 걸려든 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출판사에선 1인 미디어시대라는 요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소셜미디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웬간한 출판사는 공식 사이트뿐만 아니라, 장르별 북팬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다 열어두고 어떻게든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또한 출간 기념회 같은 행사에도 주요 블로거와 북카페 회원들을 반드시 초청해 기념품과 책 선물을 안긴다. 어느 정도 위상이 높은 서평 전문 블로거나 북카페 회원의 경우 공짜로 책을 받았다고 해서 터무니 없이 호의적이기만 한 서평을 올릴 리는 없다고 믿는다. 애서가로서 자신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판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지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적절한 예일지 모르겠지만,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 울 엄마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불려 다니며 공짜밥을 먹었다. 어쩔 때는 누가 내는 밥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야 전화로 어느어느 후보가 낸 밥이라는 통보와 한 표 부탁한다는 인삿말을 듣기도 했다. 울 엄마는 밥은 얻어 먹되 안 찍어주면 그만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순진하게도 나중엔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러느냐며 그놈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뒷구멍으로 돈을 쓴 놈은 나중에 당선되면 선거비용을 죄다 뽑으려고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내가 길길이 뛰며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요새는 부정선거운동이 발각되면 당선무효가 되는 데도 여전히 뇌물성 선심을 쓰거나 밥을 내는 지자체 선거 후보자가 사라지지 않는 걸 봐도 사람들은 아직 뇌물에 약한 것 같다.

나 역시 애서가 이웃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고 따라 읽으려고 책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짜로 받은 책이나 아는 사람의 책에 근거 없이 후한 평가를 내리는 분들이 아니다. 또한 책에 대한 내공이 깊어 팔랑귀에다 변덕 심한 나의 감상과는 평가수준도 다르다. 어차피 책 또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의 평가는 대체로 옳다. 그렇다면 나는? 독서량이 일천하여 비교대상이 현저히 적은 나로서는 그때그때 즉흥적인 감상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좀 괜찮다 싶으면 어떻게든 좀 더 '팔아줄' 방법이 없나 고심하게 된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리도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지 원. 그나마 위안은 이제껏 올린 후기치고 빌려본 책은 있을망정 출판사나 지은이, 번역자에게 홍보용으로 받아 읽은 책은 없다는 것 정도다. 

독서 후기 자체의 충실함보다 이런저런 책의 판매에 먼저 관심을 쏟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인세 대박을 향한 흑심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번역료의 인세/매절 계약 여부를 내 쪽에서 정하는 건 아니고 출판사의 원칙을 따르는 것 뿐이다. 별로 안 팔릴 것이 너무도 뻔한 책을 인세로 계약할 땐 속으로 꿈을 꾼다. 아는 언니가 <체게바라 평전>을 인세로 낼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이 팔릴 줄 상상도 안했다잖아 결과는 모르는 거야, 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괜한 동병상련이랄까, 지은이든 번역가든 약간이라도 괜찮은 책은 인세로도 혜택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다. 하지만 출판은 도박이라, 어떻게 팔리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요지경이다. 수천만원을 들여 일간지 전면광고를 낸 만큼 수익을 뽑으려면 책을 최소한 수만부는 팔아야 할 텐데, 온라인 서점 반값 할인으로 수익구조는 나날이 열악해지는 가운데 일간지 전면광고, 버스 광고를 계속해서 해대는 출판사가 나는 더 신기하다. 베스트셀러 내고 광고 빵빵 쳐대다가 망하는 출판사를 그간 하도 많이 봤어야지. 

사실 책이 어떻게 팔릴지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데 책으로 밥벌이를 할 운명을 선택하고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다. 언젠가 쓴 포스팅에 당신이 읽는 책 한권이 이 나라의 출판계와 라니의 밥줄을 지킵니다, 라고 눙쳤던 게 생각난다. 어디까지나 목표대로 예순 살까지 번역으로 먹고 살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생각하면 한편 눈물겹다. 누군가 책이 어떻게 팔릴지 걱정하지 말고, 마감일이나 잘 지켜 일감이나 짤리지 말라고 충고할 것만 같다. 암, 그래야 하고 말고.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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