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열망

삶꾸러미 2009. 2. 24. 13:00

역시나 얼마전 작업한 책에서 주인공은 내키지 않는 여행을 떠났다가 어느 한가로운 소도시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이들이 짧게 머물려고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한달이 지나고, 그러다 석달이 지나고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왜 결국 남은 평생 그곳에서 살게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겠다고. "이상한 힘. 제 아무리 야성적인 사람이더라도 상관없이, 한 사람을 외국 땅에 정착하게 만드는 기운. 나는 그 이상한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모험과는 반대되는 무언가, 살아가는 습관에서 비롯되는 무언가이며, 단조로운, 매일 같은 일상의 단조로움에 대한 수긍이다."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니 영영 그곳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을 품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여행에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은 적은 많았다. 나에겐 여행의 동기라는 것이 도피였거나 휴식, 애쓴 나에게 주는 포상 같은 것이었으므로 멍에 같은 현실이나 일상의 번잡함이 싫어서 가능한 한 여정을 길게 늘여 돌아감을 지연시키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낯선 곳에 정착이라니.

언젠가 멕시코에 갔을 때였다. 떠나기 전에 내가 기대했던 건 칸쿤 같은 편한 휴양지의 빌라에서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마가리타를 마시거나 새하얀 요트에 누워 눈부시게 파란 바다를 즐기는 휴식이었지만 일행이 나를 데려간 곳은 골수 낚시꾼들이나 찾아가는 태평양 연안의 작은 어촌이었고, 수영장이 딸린 호텔 따위는 아예 없었으며, 일행이 트럭 뒤꽁무니에 매달고 간 배는 물론 요트가 아니라 작은 고기잡이 배였다. 40도를 넘는 폭염에 새벽 6시에 깨어나 찬물을 틀어도 달궈진 지붕과 물탱크 때문에 화들짝 놀랄 만큼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열악한 환경의 모텔에서 친구와 나는 망연자실했다. 친구의 남편이 우리 키만큼이나 큰 방어를 끔찍이도 많이(그때 잡아서 아이스박스 몇 개에 담아온 방어는 최소 석달은 먹고도 남음이 있었다) 잡아와 자랑을 늘어놓아도 우린 둘 다 시큰둥했다. 그나마 현지인들에게 방어를 나눠주고 바꿔먹는 생굴과 클램차우더, 짝퉁 레몬 대신 진짜 싱싱한 라임을 넣어 먹는 코로나 맥주가 맛있어서 참을 뿐이었다. 
그런데 거기, 낚시꾼들을 상대하는 아주 작은 포장마차 비슷한 음식점엔 뜻밖에도 스웨덴 여자가 허드렛일을 거들고 있었다. 멕시코인 부부와 올망졸망한 십대 자녀들이 충분히 운영하고도 남을 만큼 한가한 그곳에서 과연 그 여자는 무슨 일을 하며 얼마나 돈을 받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전직 교사였다는 그 여자는 방학동안 남미로 여행을 왔다가 몇년 전 다 때려치우고 그곳에 그냥 눌러앉았다고 했다. 이미 안면이 있던 친구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특별한 직업 없이 낚시철엔 낚시꾼들이 흔쾌히 주고 가는 생선으로 연명하고 주말에는 그 포장마차에서 서빙을 거들어주고 끼니와 맥주를 제공받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간의 저축과 연금을 쪼개서 궁핍하게 살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그곳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라나. 차마 나이를 물어볼 순 없었지만 오십대는 된 것 같은 여자였다. 
나는 도저히 그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텔에서도 발전기를 돌려야 겨우 에어컨과 전등을 켤 수 있으며 더위 때문에 어떤 날은 해저물 때까지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지독히 심심하고 한가한 그 <깡시골 어촌>에서 그 여자는 어떤 매력을 발견했기에 무턱대고 눌러 앉기로 작정을 했을지. 맑고 푸른 바다는 오대양 주변이라면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을 터였고, 순박한 시골 사람들도 나라마다 없는 곳은 없지 않겠나? 
어쨌거나 지금은 이름도 까먹은 바하캘리포니아 끝자락의 어느 어촌엔 그 여자 말고도 여행으로 흘러들어왔다가 정착한 외국인들이 두어 명 더 있다고 했다. 친구 남편의 꿈 역시 은퇴해서 그곳에 정착해 남은 평생 낚시를 하며 사는 것이었지만, 친구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책을 번역하다 저 구절을 만난 순간, 십년도 넘게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 스웨덴 여자가 불쑥 떠올랐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여행을 떠났다가 뜻밖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낯선 곳에 정착했다는 사람들을 좀체 이해하진 못하겠다. 나에게도 여행은 새롭고 낯선 것들의 경험이 큰 의미를 차지하지만, 결국엔 익숙한 장소와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지연시키고픈 현실임과 동시에 든든한 <빽>인 것만 같은데 말이다.
내가 아직 인생의 연륜을 덜 쌓아 낯선 여행지가 풍기는 <이상한 힘>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사주에 역마살이 있기는 하지만 늘 원점으로 돌아오는 역마살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사주팔자 때문인지, 낯선 곳과 낯선 삶을 두려워하는 우물안 개구리이기 때문인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하나는 있다.
낯선 곳에의 정착은 꿈도 안 꿀 터이니, 그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만큼 여러가지 여유를 지니고 살고 싶다는 사실.
봄바람 살랑살랑 부니 슬슬 역마살이 도지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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