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낙서장에 가까운 블로그지만 담백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문득 내가 알고 있는 뜻과 속속들이 맞는지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또 하나 배우게 됐다.
<담백하다>는 원래 담박(淡泊)하다에서 나온 거란다.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고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사전에 <담백한 글>이라는 용례는 없지만, 담백함의 반대말은 느끼함이라고 내 맘대로 생각하며 글에도 비유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련다.

요 며칠 또 괜히 머리가 시끄러워서 잠도 잘 안오는 밤과 새벽 머리맡에 책을 쌓아두고 정서불안 환자처럼 이 책 저 책 들춰보다가 느낀 게 있다. 나도 접속사로 연결된 복잡하고 긴 문장을 습관적으로 많이 쓰는 편인데, 확실히 간결한 문장이 더 설득력있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 문장이 긴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유려한 글쓰기를 하는 이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호흡이 길어지면 시선과 이해력이 흐트러져 다시 되돌아가야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의 나처럼 정신 시끄러울 때 하는 독서의 경우는 더더욱. 거기다 젠체 하는 거들먹거림까지 버무려진 느끼한 글을 만나면 아예 참을 수가 없다.
어디선가 소개글을 보고 한번 읽어보고는 싶은데 내 돈주고 사기는 아까운 책이라 마침 그 출판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한권 얻어놓은 책이 있었다. 이참에 한번 읽어볼까 싶어 몇달만에 드디어 들춰보려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무거운 주제도 아니고, 인간의 <쇼핑> 욕망에 대한 잡다한 단상을 적은 것임에도 그렇더라. 조사와 접속사 빼고는 죄다 외래어인 패션잡지를 멀미나서 잘 못 읽는 나의 개인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유없이 거슬리는 꼭지들을 건너뛰어 뒷장으로 넘어가도 문장들이 딴죽을 걸듯 자꾸 턱턱 걸렸다. 어찌나 멋을 부리셨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션전문가의 손을 빌려 꾸미고 명품으로 휘감았는데, 진품인지 모조인지 구분하기는커녕 명품 브랜드에 무지한 나는 그게  명품인줄도 모르는 격이랄까. 아니지, 내눈엔 진짜도 죄다 가짜로 보인다는 게 더 맞겠다.
아무튼 결국 난 그 책 읽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다 읽진 못했어도 나도 쓸데없이 기교와 멋부리는 문장은 쓰지 말아야한다는 교훈을 주었으니 그마저도 성공적인 독서라고 할 수 있으려나. ㅎ

상대적으로 수전 손택, 서경식의 글과 생각들은 어찌나 명징(나는 이 단어가 참 좋다!)한지 하나같이 밑줄 그어 두고 싶은 주옥같은 표현이다. 우리말로 옮긴이들의 공도 당연히 있겠지만 저들은 삶부터 겉치레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원래 글도 담백하고 간결했을 거라 믿는다. 
한 두어달 일은 관두고 장서욕심에 사두고 밀린 책들이나 죄다 읽으면 좋겠건만 마음만 바빠서 독서도 초조한 메뚜기처럼 자꾸 이 책 저 책 옮겨다니게 되니 어쩌면 좋으냐. 으휴. 하기야 그런 욕심을 품으면 담백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건가? 이래저래 딜레마로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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