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13.12.24 명화를 만나다_한국근현대회화 100선 8
  2. 2013.12.1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8
  3. 2013.05.18 동궐도 전시회 8
  4. 2011.09.27 휘트니미술관전 13
  5. 2011.06.22 오르세미술관 전 11
  6. 2011.03.25 천재인 줄 알았다 1 - 정민편 8
  7. 2010.12.31 2010 한해 정리 16
  8. 2010.03.24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5
  9. 2010.01.02 2009 한해 정리 12
  10. 2009.09.07 페르난도 보테로 15

한국근대미술은 덕수궁관에서 하도 여러번 전시해줘서 이제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지만... ^^; 그래도 또 보러가자는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근현대회화 100선엔 또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전이니 뭔가 이어서 봐주어야할 것도 같았다. 역시나 낯익은 작품들이 많아서, 오지호나 장욱진처럼 내가 애정하는 화가들 그림은 또 유심히 신나게 들여다보았지만, 대개는 설렁설렁 둘러보았다. 일요일이라서 사람들이 워낙 많아 쾌적한 관람환경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100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확실히 유명한 작품을 알현할 수 있었다. 이중섭의 <황소>라든지, 박수근의 <빨래터> 같은 작품 말이다. 박수근이나 이중섭 그림은 꽤 열심히 본 것 같은데도 아래 딱 한장 찍어온 미술관 사진에서 왼쪽 현수막 그림을 본 기억이 없다. ㅠ.ㅠ 자주 볼 수 없었던 박수근의 <골목 안> 그림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아우 젠장. 현수막 오른쪽 그림은 김기창의 <아악의 리듬>이다.

 

이응노의 <향원정> 그림이 좋아서 그림파일을 검색했더니만 김기창 그림과 같이 뜨네.

 

이응노 [향원정] 1959년, 김기창 [아악의 리듬] 1967년

 

그밖에 또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최영림의 <경사날>. 어째 옛날 연하장에서 많이 본 그림인 것도 같지만 아기자기한 귀여운 느낌이 좋았다.

 

최영림 [경사날] 1975년

 

천경자의 <길례언니> 그림도 반가웠고, 변관식의 산수화도 새삼 느낌이 좋았다. 김환기 작품은 조만간 환기미술관에 100주년 기념전(올해 말까지한다!)을 보러 갈 거라 상대적으로 좀 소홀하게 봤는데, 꽤 크고 유명한 작품들이 너댓개나 전시되어 있었다.

 

2014년 3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이고, 입장료는 6천원(덕수궁 입장료 포함). 박수근과 이인성, 이중섭 작품은 일부가 1월말이나 2월초까지만 전시되고 교체된단다. 그러니 시간이 좀 넉넉히 남긴 했어도 내년 1월 중으론 가봐야 제대로 100선 작품을 다 볼 수 있을 듯. 현대미술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근대작품이 많고, 김환기의 추상화 같은 건 나도 좀 좋아하는 편이라 현대미술이 늘 어렵고 벅차다는 느낌이 덜했다. ^^; 아직 이름 모르는 화가들도 많은 데다, 초중고 미술교과서에 들어있는 작품들을 몽땅 실물로 본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서, 한번 더 볼까 말까... 그러는 중.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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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 불이 나질 않나, 종친부 담장 문제로 전주이씨와 싸워대질 않나, 계속 말도 많고 탓도 많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드디어 개관을 했다. 11월 개관 직후엔 사람들이 엄청 몰렸대고 인터넷 예약이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해서 (내가 바쁘기도 했고) 12월 들어 별렀다가 가봤다. 경복궁 옆 길가에서 보면 옛날 학교 건물 같기도 하고 오래 된 창고 건물 같기도 해서 볼품없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는데(있던 건물 그대로 쓰려니 어쩔 수 없었겠으나;;;) 안에 들어가보고선 일단 건물이 맘에 들었다. 사방으로 툭툭 트여 시선 가리는 거 없고, 지하층인데도 통창이 있어서 환하고, 유리창 밖으로 너른 마당 보이는 거 좋아! (그런 의미에서 종친부 담장은 원래 계획대로 안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의견. 그러나 뭐 일부만이라도 세우기로 했다지 아마?)

 

건물이나 공간은 그런대로 흡족했던 반면 특별 기획전시는 한 마디로 기대에 좀 못미쳤다. -_-;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물론 가장 기대가 컸던 서도호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은  좋았고, 그래서 통합관람권 7천원이 하나도 안아깝다고 여겼지만, 개막 특별전이면 앞으로도 계속 상설전시할 작품들도 엄청 유명한 대작들을 좀 턱턱 가져다 놨어야하는 게 아닐까나? 전시실이 꽤 많다고는 하지만 1층과 지하 전시실 돌다보니 다리만 아프고 금세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2층엔 굳이 미술관 공사과정 장면들과 공사소음까지 재현해놓은 공간을 마련해놓았던데, 발상 자체는 기발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 같은 사람은 싫다규~ ㅋㅋ

 

특별전시를 다 포함한 통합관람권은 7천원. 각각의 전시를 3천원, 5천원으로 볼 수도 있게 해놓아, 전시실 입구마다 표를 보여달라고 하는 게 좀 성가셨다. 가방과 소지품은 디지털도어락 달린 무료 사물함에 넣어두고 다녀서 홀가분했지만, 핸드폰이랑 티켓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일행 하나는 전시장 바닥에 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통합권은 팔찌 같은 걸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직원에게 툴툴거렸더니 그렇게 건의 해달라고...  티켓 떨어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한가보다.

 

1층에 아마도 제일 큰 제1전시실이 있고 거기에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이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도마뱀 조형물이 인상적이었고, 미래의 로봇이었던가... 새하얀 여체의 기계식 몸매가 멋졌던 이불 작가의 조각도 좋았다. 전시실 맨 안쪽 구석에 노숙자(?)를 형상화해놓은 작품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귀찮아서 이날은 도슨트 설명을 안듣고 그냥 내키는 대로 돌아다닌 탓도 있지만, 대체 뭐가 <시대정신>이라는 건지 주제가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이며 숭례문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그렇고, 뭔가 중구난방이란 느낌... 이 시대가 워낙 개판이란 의미인가? ㅋㅋ 

 

설치미술 말고는 죄다 작품 사진을 못찍게 해서 별로 사진도 없다. 남들은 몰래몰래 다 찍는다면서 일행 하나도 어느틈에 몇 개 찍어오긴 했던데, 뭐 굳이 찍지 말라는데 싫은 소리 들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도촬까지 할 마음이 드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p 뭐니뭐니 해도 내가 기대했던 서도호 작품은 맘껏 사진 찍어도 되는 거니까 ㅎㅎㅎ

 

 

작품 내부에서 찍은 사진 작품 전체 외형은 위층에서 내려다보아야 다 보임

서도호의 작품은 지하1층 중앙에 '서울 박스'라고 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리움 미술관 전시 때도 본 적 있는 미국 유학시절의 3층짜리 서양집 안에 다시 성북동의 한옥집이 들어앉아 있는 모양새다. 둘 다 실물 크기라는 것 같다. 제목이 왜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이냐면, '한옥을 품은 양옥, 양옥을 품은 서울 박스, 서울박스를 품은 서울관, 서울관을 품은 서울'까지 공간이 확장되는 개념을 담은 거라서 그렇다고...  상설전시가 아니라서 5월 11일까지만 볼 수 있단다. 끝나기 전에 한번 더 가서 봐줘야지, 라고 마음 먹었다.

 

서도호의 작품을 한바퀴 돌아나오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청아한 가곡이 들려왔다. 어머나, 여긴 전시장에 음악도 트나보다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고 <리밍웨이>라고 하는 대만 작가의 <소닉 블로섬>이라는 작품이었다. 병환 중인 어머니에게 슈베르트의 가곡을 틀어드리면서 느꼈던 교감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관객들과도 느낌을 교류하려했다는 것 같다.

 

리밍웨이, 소닉 블로섬, 가운데 서 있는 분이 성악가

전시장 통로 같은 곳에 의자 하나와 나무 틀 같은 게 덩그라니 놓여있는데, 시간대 별로 진한자주색 가운을 입은 성악가가 나타나 직접 선택한 관객 한 사람을 의자에 앉히고 혼자만을 위한 노래를 들려준다. 남녀 성악가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듯...

슈베르트의 가곡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이날 처음 알았다. 뭔가 괜히 울컥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작가의 어머니가 아팠을 때 들려드렸다는 글귀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닌듯...),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스피커로 흘러나온 아리아를 들은 죄수들이 잠시 느꼈을 자유의 희열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암튼 천장 높은 전시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저 성악가의 목소리가(앳된 얼굴로 보아 어쩐지 성악전공 학생 같다고 짐작했음) 참으로 좋아서, 다른 전시 보다가 노래소리 들리면 다시 달려가 옆에 서서 구경하곤 했다. 그치만 만약에 성악가가 나를 콕 집어 저 의자에 앉히겠다고 하면, 아마 난 얼굴 뜨겁고 민망해서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제대로 음악을 감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

암튼... 서울대 동문회 하냐는 뒷말을 들었다는 1, 2관 전시에서 시큰둥하고 애걔걔 싶었던 마음이 서도호 작품과 슈베르트 가곡 작품 딱 두 개로 무마되는 기분이었다. 

 

리밍웨이는 이 <소닉 블로섬>(굳이 번역하자면, 소리 꽃, 음향 꽃라는 뜻인데, 또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도 있고 하니 번역해서 제목을 달아주지 그랬나 싶었다. '블로섬' 정도는 누구나 아는 영어인가? -_-;;) 보다도 <움직이는 정원>이란 작품으로 더 언론이나 블로그계의 조명을 받은 것 같다. 별것도 없는 길다랗고 시커먼 콘크리트 틈새 같은 데 진짜 꽃을 꽂아놓고 관객들이 집어가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요는 그렇게 집어간 꽃을 본인이 갖는 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주면서 또 다시 교류와 소통을 하라는 거란다. 그런 경험을 sns 같은데다 남기는 게 조건이라던가.. (작품 설명 자세히 안 봤음 ㅋㅋ)

 

암튼 수시로 수백 송이씩 꽃을 꽃아놓아도 워낙 관객들이 많으니, 꽃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러 봤어도 작품에 꽃이 꽂혀있는 장면은 한번도 보질 못했는데 부지런한 일행이 어느 틈엔가 한 송이 뽑아와 내게 바쳤다. ^^; 낯선 사람 아니면 뭐 어때.. 이러면서. ㅋㅋ

사실 남들 들고 다닐 땐 거베라 조화인가보다 했는데, 실제로 받고 보니 철사로 줄기를 튼튼하게 버텨놓은 생화였다. 줄기가 엄청 길어서 오래 들고다녔더니 자꾸 부러져 줄기는 점점 짧아지고, 부러진 줄기는 버릴 데도 없어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자니.... 어느 순간 꽃이 짐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사진을 기념으로 남기고는 주변 인물을 물색하다, 어쩐지 예뻐보이는 커플을 골라 아가씨한테 불쑥 건네주었다. 엄청 좋아하며 고맙다는 아가씨에게, 속으로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뭐 작가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교류가 아니겠냐며 돌아섰다.

 

 

 

 

고대 화석 같기도 하고, 심해 생물체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최우람 작가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

중앙홀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저 갈비뼈 같은 돌기들이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며 그림자도 달라져서 신기해하며 한참을 구경했다. 첨단 과학기계문명과 고고학적인 상상력의 만남이라나 뭐라나.. 그랬던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래도 내년 11월까지 전시 예정.

 

 

 

 

 

 

 

'타시타 딘'이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제목도 안 적어와서 까먹어 모르겠다. 7명의 큐레이터가 7명의 작가를 선정했다던가 하던 <연결-전개> 전시 중 하나였는데, 깜깜한 전시실 저 끝에서 영상물이 계속 돌아가고 바닥에 길쭉한 방석 같은 걸 놓아 앉아 쉴 수 있게 해놓은 게 좋아서 꽤 오래 다리를 쉬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 발도 같이 찍었음. ㅋㅋ  

 

 

그밖에 <알레프 프로젝트>라고 해서 도무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신개념이론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었는데 전기고문이 바로 이런 거겠구나 싶게 계속 스파크가 터지는 깜깜한 방도 있고(나는 그 안에서 5분도 못 버티겠다 싶어서 그 전시실 담당 직원이 불쌍할 정도였다), 이상한 액체를 담아 특수섬유로 만들어 사람이 다가가면 촉수처럼 막 움직이는 거대한 샹들리에 같은 작품도 있었다.

 

새빨간 고딕체 글씨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듯한 장영혜중공업 프로젝트도 나로선 난해했고....

어우.. 난 역시 현대미술은 어려워서 잘 못보겠어, 라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

 

 

 

 

암튼 그래서 빙글빙글 전시실을 한바퀴 다 돌고 나선 체력 완전 방전. 씩씩한 일행들이 더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자꾸만 앉아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전시장 안에 벤치를 마련해놓은 곳도 있는 건 반가웠지만, 서울박스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리잡은 전시장 사이사이마다 쉴 곳이 있진 않았음.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그나마 지하 공간 안마당은 뭔가 공사중이라 출입금지.

 

그래도 날씨 따뜻해지면 나가서 쉴 수 있을 것 같아 사진 한방 박아왔음. 오른쪽은 어느 구석에 있던 아주 푹신한 소파. 전시장을 죄다 돌고 났을 즈음엔 다리허리가 너무 아파서 저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며 오래도록 처박혀 일행을 기다렸다. ㅎㅎ

 

이날 가장 큰 불만사항은 카페테리아가 로비 밖에 있다는 것! 전시장은 입구와 출구도 달라 재입장이 안되기 때문에, 전시 보다가 카페인을 충전하고 다시 관람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아닌가! 아 젠장. 3시간 가까이 가열차게 전시를 구경한 나는 어차피 볼 만큼 봤으니 퇴장을 선언했으나, 뒤늦게 합류한 일행 하나가 전시를 절반도 못본 상황이라 여차하면 싸울 태세였는데 ^^; 직원이 융통성을 발휘하여 그럼 다녀오시라고 허락해주었다. 앞으로도 전시 보다가 카페 들락거리는 문제는 좀 개선이 되어야할 듯.

 

암튼 아직 초창기라 도서관도 디지털아카이브도 개장을 안했다는 것 같다. 따뜻한 봄쯤 되면 죄다 이용할 수 있으려나. 그런 기대를 안고 나왔음.

 

정명우, [움직이는 바닥에게] 2013/12/6

인사동으로 이동하려고 마당을 뒤쪽으로 가로지르려니 마침 아트선재 앞에선 행위예술이 준비중. 트럭에 온갖 기계와 장비를 올려놓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움직이는 바닥에게>란 작품. 춤도 출 거라면서, 시간 되면 구경하고 가라기에 서서 좀 구경했는데 ㅋㅋㅋ 춤이 아니라 수줍은 율동 수준. ^^; 마지막까지 참 현대 예술은 어렵구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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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 전시회

놀잇감 2013. 5. 18. 16:33

조선시대 세워진 궁궐은 무려 다섯개. 5대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중에서 역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고, 경복궁이 임진왜란으로 사라지기 이전에도 익히 애용했던 궁궐은 창덕궁이다. 그렇다고 다섯 궁궐이 동시에 모두 사용되었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고, 법궁과 이궁, 두 개의 궁궐을 사용하는 양궐체제가 주욱~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궁궐이 여기저기 워낙 많아서 그랬는지, 원래 이름 이외에도 궁궐엔 별칭이 있었다. 경복궁은 북궐,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 경희궁은 서궐이라 불렀다고. 창덕궁과 창경궁은 지금 담장으로 나뉘어 입장료도 따로 내고 들어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성종 때 대비마마가 무려 네 분이나 계신 덕분에 창덕궁이 비좁아 왕실가족을 위하여 넓혀 지은 공간이 창경궁이므로 엄밀히는 하나의 공간이었고, 당연히 드넓은 후원도 공유했다. 지금 창경궁 입장에선 아름다운 후원이 창덕궁 쪽에서만 접근할 수 있으니 꽤나 억울하겠다.

 

암튼 이 '동궐'이 조선시대 왕조사의 핵심이 되는 궁궐임은 분명한듯, 경복궁의 경우 흥선대원군 복원 당시나 이전의 단면도 정도만 현존하는데 비해 창덕궁과 창경궁 권역은 <동궐도>라고 하는 엄청난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각각 하나씩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로도 지정된 귀중한 자료인데, 놀라운 것은 이 <동궐도>에 대한 역사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든 전각은 물론이고 나무 하나 꽃 하나까지(심지어 나무 위 까치집도 있음!) 세밀하게 묘사한 놀라운 기법의 정밀화를 누가 왜 어째서 그리게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는 '미스터리'가 또 이 동궐도의 매력이다.

 

 

어쨌거나 고려대와 동아대가 각기 갖고 있던 동궐도 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있었다. 2월말에 시작해 5월 12일까지라기에 시간 많다고 여유부리다 끝나기 며칠 전에 간신히 볼 수 있었다(그러나 두둥~ 알고보니 6월 2일까지 연장 전시한다고! ㅋㅋ) 부산 동아대까지 가서 보긴 뭣해도 고려대 박물관에 가면 무료 상설전시로 언제든 구경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만, 훼손 방지를 위해 더는 전시를 안한다는 것이 문제 ㅠ.ㅠ 고려대본 16폭을 죄다 펼쳐놓고 전시했던 때를 못 본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번엔 화첩을 4개만 펼쳐놓고 나머지는 그냥 쌓아놨더군. 쳇. 빌려온 동아대본(병풍으로 만들어졌다)을 더 예우하려 했던 것일까나?

 

하여간 하나도 못본 것보다는 낫다고 애써 위로하며, 도화서 화원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꽤나 훌륭한 보존상태에 기뻐하며 구경했다. 궁궐 강의 들을 때 창덕궁 소장님이 그랬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백년 수령의 향나무가 태풍때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도 겪었고 계속 기울어 버팀대를 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동궐도>에도 이미 그 향나무는 지주대로 버텨놓았을 만큼 고목이었다고.

 

그래서 <동궐도>는 단순히 역사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건축학과 조경학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자료란다. 다른 화원이 그려서 그랬겠지만, 고려대본과 동아대본이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것도 신기하고 ^^;; 우진각 지붕인 돈화문(광해군 때 중건 이후엔 한번도 소실된 적 없다는데;;)을 팔작지붕으로 그려놓은 것도 미스터리란다. 그래서 전시장에서도 두 그림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컴퓨터 영상이 계속 돌아간다. 극사실화를 추구하더라도 계단 모양이나 대문의 빗살, 나무와 까치집의 크기 같은 건 화원마다 다르게 그렸을 수도 있겠으나, 선정전 잡상이 고려대본엔 있고, 동아대본엔 없다는 것도 참 재미있다. 현재 창덕궁 선정전에도 잡상이 없다는데... 어느 쪽이 맞을까나.

 

열여섯 폭 비단에 그린 고품격 채색화인 <동궐도>는 분명 당시에도 야심찬 기획이었을 텐데, 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지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고려대본에 '인(人)이라고 적혀 '천/지/인' 세가지 본이 그려졌음을 알수 있다는데, 두 개만 전해지는 것도 안타까운 부분. 그나마 동아대본은 누군가 화첩을 아예 중간에 병풍으로 만들어 버렸고, '천'과 '지' 어느 판본인지 알 수도 없다. 세번째 지도가 더 있었다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셋을 비교해보는 묘미가 더 컸을 텐데...

 

지도 자체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동궐도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목조건축이라 수없이 화재 소실과 중건을 겪은 궁궐 전각에 대한 기록이 소상하기 때문이다. 창덕궁에서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공간인 '연경당'은 1828년 순조 때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는 동안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려고 지은 건물이란다. 그런데 <동궐도>에 이미 연경당이 보인다. 그밖에 창경궁의 전각과 빈터 등을 고려할 때 동궐도는 1828년에서 30년 사이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며, 당시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이므로 효명세자가 도화서에 명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란다.

 

효명세자가 누군가. 정조의 손자로, 창덕궁 후원입구에 한칸 반짜리 소박한 북향 전각 기오헌을 지어놓고 언덕 너머 규장각에서 책을 날라다가 밤낮으로  '열공'하면서 할아버지 정조대왕의 뒤를 이으려고 했던 준비된 인재 아닌가. 그래서 순조가 일찌감치 대리청정을 시켰을 테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효명세자는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요절. ㅠ.ㅠ 정조가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고 괜한 가능성을 점쳐보며 한탄하듯, 아버지 인조에게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는 소현세자와 함께 효명세자 역시 요절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명운을 바꾸어놓았을 인물로 종종 손꼽히는 인물인데 참 아쉽다. 째뜬 그나마 귀중한 유산 <동궐도>를 남겼으니, 감사할 따름. 

 

국보급 유물의 전시라서 당연히 동궐도 진본의 촬영은 불가능했다. 대신 복사본을 밖에 걸어뒀던데 이왕 복사본을 만들려면 좀 제대로 또렷하게 인쇄를 하든지! 진품의 위용을 흐리지 않기 위함인지 복사본 지도는 흐리멍텅, 선이며 채색이 몹시 마음에 안들었다. 쳇;;; (그래도 찍어왔으면서  ㅋ)

 

가로 5.76미터 세로 2.73미터의 엄청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면 궁궐 안엔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원칙이 상당히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 궁궐을 뜻하는 네모 안에 나무 목(木)을 넣으면 빈곤할 곤(困)자가 되기 때문에 궁궐 담장 안엔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지만, 조경학에서 귀중한 자료로 사용할 만큼 동궐도엔 수종도 다양한 나무들이 엄청 많다!

 

 

복사본을 그나마도 흔들어 찍어온 위 사진으로 동궐도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엔 역시나 역부족. 부분부분 세밀화를 보아야 느낌이 전달되므로, 문화재청 자료 자신 몇장 퍼왔다. ^^;; (그나마 화질이 좋아 퍼오긴 했으나, 실제 그림보다는 전체적으로 너무 노란 기운이 강하다)

 

팔작지붕의 미스터리를 갖춘 돈화문 부분. 문 앞으로 길게 뻗은 월대 앞 ㅈㅈ 표시는 궁궐출입자들이 모두 가마와 말에서 내려야한다는 하마비(그 앞에 ㄴ자로 생긴 돌의 이름)를 나타내는 거라고 들었다.

 

 

부용지에 배를 띄워놓은 모습도 보이는 주합루 앞과 그 너머 연경당의 모습. 조감도를 그릴 만큼 높은 곳에 올라가 그릴 수 없었으니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겠고, 당연히 실제 거리나 원근법과는 좀 맞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5월에 그린 그림인 듯. 꽃나무 색깔이 아련하다. 저거 앵두나무일까? +_+

 

 

용마루가 없는 대조전의 특색이 두드러져 보이는 부분. 현재 창덕궁에서 청기와가 남아있는 전각은 선정전이 유일한데, 이 그림엔 대조전과 복도각으로 이어진 경훈각(그림 맨 꼭대기 건물)도 청기와다. 청기와는 청나라에서 수입하는 회회청으로 구워야해서 돈이 많이 들었다던데.... 아우.. 그림이 정말 정교하지 않은가! 깃발까지 날리고 있다. 전각마다 다 이름이 적혀있고, 편액 글씨까지 섬세하게 다 보이는데, 내가 무식하여 한자를 다 못읽는 것이 아쉬웠다. -_-;

 

안내문엔 하루에 몇번 로봇이 하는 전시 설명과 해설사 설명이 있다던데, 대학원생인 듯한 해설사 설명을 조금 듣다가 관뒀다. 완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느낌으로 설렁설렁...   아무리 봐도 해설사란 남들이 뭐라든 자기만의 열정이 샘솟아야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 <하하하>에서 문소리가 열연했던 왕성옥 정도는 되어야... 끙.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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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미술관전

놀잇감 2011. 9. 27. 22:23

6월부터 시작해 9월 25일까지 석달도 넘게 한 전시를 끝나기 며칠 전에 간신히 다녀왔다. 처음엔 시간 많으니 애들 방학 끝나고 천천히 가지 마음 먹었다가 점점 갈까말까 망설이는 쪽으로 기울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라는 전시 제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으나 어쩜 이리도 오만하고 건방진 제목을 정했을까 공연히 빈정이 상했다. 아무리 휘트니 미술관의 역사가 유럽 미술 중심의 흐름에 반감을 품고 미국 화가들을 독려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서 겨우 80몇점 그림 빌려와서 보여주며 그게 미국 미술의 전부라고 큰소리칠 수가 있단 말인가? (미술관을 다 돌고 나서, 진짜로 내가 무식하기 때문에 궁금하여 던지고 싶었던 질문: 에게게... 정말 이게 미국 미술의 전부라고? -_-;)

가기 전부터 이미 고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에드워드 호퍼 딱 세 사람의 그림만 보고 와도 '본전'은 뽑겠다고 생각했던 전시회는 퍽 실망스러웠다. 현대미술과 추상화에 완전 무지한 내 탓일 수도 있고, 무조건 예쁜 그림만 선호하는 내 취향 탓일 수도 있으나, 아무튼 나는 그랬다. 앤디 워홀 작품도 어쩜, 수프 깡통이랑 세제 박스 같은 것만 두어개 가져왔더라. 리히텐슈타인 작품도 딱 두 점. +_+
<아메리칸 아이콘과 소비문화>를 주제로 한 방이었던가? 죄다 앤디 워홀 아류작 같고 그밥에 그나물 타령인 대중적인 상업 미술을 보며

로이 리히텐슈타인, [크리스털 그릇이 있는 정물] 1993.

난 아무 감흥도 일지 않았다. 리히텐슈타인의 경우도 <크리스털 그릇이 있는 정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뭔가 더 크고 새롭고 유명한 작품이 왔기를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브제와 정체성, 오브제와 인식을 2, 3부로 꾸민 전시실에서도 특별히 마음을 끄는 작품이 없어 몇번이나 방을 돌아다녔어도 관람은 금세 끝이 났다. 휘트니 미술관 가면 반나절 내내 쉬지 않고 그림을 봐도 다 못보고 지친다더만 이게 뭐람! 쳇...

그나마 귀엽다 느꼈던 작품은 축소한 옷을 연결해 놓았던 빨랫줄(사진 못찾았다 ㅎ)과 찰스 레이의 <퍼즐병>.

찰스 레이, [퍼즐병] 1995.

영국에서도 이런 좁은 병안에 엄청나게 정교한 범선을 넣어놓은 작품 본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일일이 조립을 하는 걸까? +_+

미국 현대미술이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물건과 이미지로 작품활동을 했다는 건 얼핏 알겠으나, 나는 그래도 뭔가 좀 회화스러운 느낌의 작품을 더 좋아한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오브제를 통해서 미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였다는데(현대미술도 잘 모르지만 오브제 싫다규~!), 스스로도 좀 민망했는지 특별코너로 <20세기 미국 미술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방을 하나 꾸몄고 내가 알현을 바라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바로 이곳에 걸려 있었다. 비록 호퍼의 그림을 딱 한점 볼 수 있기는 했지만, <해질녘의 철로> 그림 앞에서 나는 이미 지나온 3개의 전시실에서 쌓였던 실망감을 어느정도 풀 수 있었다. 사실 호퍼의 그림을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간 온갖 책에서 호퍼의 이름과 작품 설명을 만나며 정말이지 궁금했다. 화집이나 사진으로 보는 호퍼의 그림은 얼핏 (무식하다고 욕먹어도 할 수 없다 ㅋㅋ) 약간 <이발소 그림> 같은 느낌을 풍겼고, 인물이 등장하거나 안하거나 늘 황량하고 쓸쓸함이 물씬 묻어났다. 뭔가 아주 복잡하고 기구한 사연이나 황망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것도 같고...  어쩌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에서 풍기는 인상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던 누군가의 평론을 보아 생긴 편견 때문일수도 있겠다. 하여간 툭 트인 공간과 여백에서 느껴지는 막막함과 무심함이 호퍼 그림의 매력이라고 나름 상상하고 있었는데, 나의 상상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만난 것 같았다. 
 

에드워드 호퍼, [해질녘의 철로] 1929.

이전까지는 모두 합해 30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휙휙 작품을 스쳐지나다가 호퍼의 이 그림 앞에서는 정말 넋이 빠진듯 한참이나 감상하고 서 있었다. 노을에 물든 하늘 빛깔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철로변이라는데 나는 이 그림을 본 순간, 문득 할머니,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파주를 향해 자유로를 달리다 왼편으로 만나게 되는 한강변 철책과 군초소가 떠올랐다. 오래 전 무언가 속이 상한 일로 질질 눈물을 짜다가 통닭 한 마리랑 소주 한 병 들고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 앞에서 엉엉 눈물을 쏟은 뒤 돌아오던 길에 오른쪽 차창으로 이런 노을빛을 본 것도 같고...

암튼 결론은, 그래서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계속 입이 댓발쯤 나와 툴툴거리다가 마지막 전시실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ㅎㅎㅎ 마음이 좀 풀리니 처음엔 조악하게 입구에 재현해 놓은 복제본 작품사진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비웃던 마음도 잊고 나도 한 장 찍어오기까지... ㅋㅋㅋ

마리솔, [여인과 강아지], 1964

마리솔이라는 화가의 작품을 입간판처럼 입구에 세워놓았는데, 실제 작품에선 왼쪽의 저 개 머리가 '박제'라고 해서 좀 놀라고 으스스했다. -_-; 이 사진에서 흥미로운 건 오른쪽 위에 구멍을 뚫어 보이게 해놓은 소화전(?)이다. 전에도 이런 구도로 다른 작품 복제본 세워놓았던 것 같은데, 그 때도 저렇게 구멍을 뚫어놓았던 걸 기억한다. 매번 저것도 작품의 일부 같아 웃기다!







'본전' 안 아깝게 호퍼의 그림을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미술관을 나왔으나 뭔가 문화생활이 덜 충족된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한 바퀴 덕수궁을 거닐며 밤궁궐의 정취를 느껴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러고 나서야 흡족한 심정으로 대한문을 나설 수 있었다. 갈까말까 망설여지는 전시회는 아예 안가고 아쉬워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교훈을 새삼 하나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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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 전

놀잇감 2011. 6. 22. 16:47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전시작품에 포함됐다는 소식에 가야겠구나 벼르고는 있었다. 오르세미술관 전시회는 잊을 만 하면 몇년에 한번씩 기획되는데다가 몇해 전엔 <고흐의 방>과 밀레의 <만종>이 왔다고는 해도 작품수가 하도 알량해 보이코트했던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수리 때문에 작품을 '대거' 빌려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렸기 때문이다. 134점이면 소품이 포함됐다 해도 예술의 전당까지 흔쾌히 가줄 수 있는 작품량이었다. 6월 4일에 시작해 9월 25일까지 하는 전시라 '언제' 갈 것인가 그것만이 의문이었는데, 마침 어제 저녁약속이 예술의 전당 안에 있는 벨리니에서 잡혔다. 여름밤 산책도 하자면서. 이런 걸 하늘의 뜻이라고 하는 거야, 라며 설렘을 안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별이 빛나는 밤> 말고는 또 무슨 그림이 왔는지 일부러 알아보지 않고 갔는데 그러길 잘했던 것 같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꽤 유명한 그림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듯했다. 오르세에서 빌려주는 작품만 가져오다보니 일관되는 주제나 사조로 전시실을 꾸미기에도 역부족이었던 것 같고...
고흐, 세잔, 르누아르, 밀레, 드가, 모네, 고갱, 피사로, 보나르, 로트렉, 쇠라, 루소 등등 그림책에서 봤다 싶은 화가들의 작품이 한두 개씩은 전부 포함되긴 했으나 이른바 오르세가 자랑하는 대표작은 많이 빌려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난 뿌듯했고 만이천원이 아깝지 않았다. 실물 알현을 못했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실컷 보고 왔기 때문이다. ^^; 데생과 스케치류의 소품도 꽤 많고, 대중화되기 시작한 20세기초의 사진 작품들도 더러 포함되어 있으므로, 134점 모두 대작일거라는 오해는 하지 않는게 좋겠다. 나는 최근 한국과 일본 근대문학을 좀 읽었더니 20세기초 사진과 작품들이 남다르게 다가왔고, 거리의 신문팔이 소년들이나 공장장에서 일하는 소녀들의 노동현장 포착 모습이 짠했다.  


게다가 뜻밖의 그림들도 몇점 만나는 바람에 마음에 드는 작품만 집중적으로 몇번씩 감상하며 눈호강을 할 수 있었다. 방마다 주제를 정해놓기는 했던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서 모르겠고, 암튼 인물화를 모아놓은 전시실에서 맞닥뜨린 르누아르의 <소년과 고양이>, 모네의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 로트렉의 <여자 어릿광대 샤 위 카오> 세 작품은 거의 나란히 걸려 시선을 끌었다.

르누아르, [소년과 고양이]

포스터에 담긴 오른쪽 그림이 바로 르누아르의 초기작이라는 <소년과 고양이> 일부인데 정말 예쁘지않은가! @.@ 
르누아르는 항상 예쁘고 아름다운 대상을 화폭에 담아 눈을 푸근하게 해주는 그림을 그렸지만, 척 보면 르누아르 그림이라고 알 수 있을 듯한 특징이 작품마다 두드러진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초기작이라도 이게 르누아르 그림이라니 의외였다. 평소 보던 르누아르 작품과는 색감도 뭔가 다르고 분위기도 한층 어두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말을 들으니 누드화 가운데서도 남자 누드는 이 작품이 유일하단다. 고양이 표정까지 어쩜 저리도 사실적일고. 꽃소년에 열광하는 본성을 못속이고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이나 헤벌쭉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가 돌아섰다. ㅎㅎㅎ

상당히 작품 크기가 큰 모네의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도 워낙 아름다워 한참을 감상했는데, 좀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 바로 옆에 걸린 로트렉의 작은 인물화였다. 어딘가 퇴폐미와 서글픔이 철철 넘치는 것 같은 로트렉의 그림도 꽤나 좋아하는데 공단 드레스를 떨쳐 입은 단아한 귀족 여인의 전신상 옆에서 더욱 초라하게 대조되는 어릿광대의 뒷모습이라니...
로트렉의 그 그림 사진 찾아올리려고 나름 검색해보았으나 못 구했다. 하기야 구한다고 해도 전시실에서 그 순간 느꼈던 기분을 전달할 순 없을 테니 그냥 통과.

그 방에 같이 걸려 있던, 처음 들어보는 아르망 스갱이라는 화가의 인물화 <가브리엘 비앵>도 눈빛이 오래 잊히질 않을 만큼 좋았고, <빨래하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폴 기구의 그림도 마음에 들었다.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것으로 생각되는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림이 작군, 했다.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도 한 점 왔다. 나로선 처음 보는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이긴 하지만. 가장자리 인물을 가차없이 잘라 표현한 드가의 기법이 당시로선 대단히 선구적인 시도였으며, 그게 일본 판화의 영향이라는 도슨트의 설명에 조금 놀랐다. 화투의 새 그림까지 예로 들어 설명하던데 그 부분에선 시끄럽고 듣기 싫어서 딴그림에 정신을 팔았다. 그림을 볼 때 설명을 들으면 더 많이 세세한 부분까지 보여서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나 혼자만의 느낌에 사로잡히고 싶을 때도 있어 변덕이 부글부글 끓는다. 일부러 도슨트 시간에 맞춘 것도 아닌데 그림 설명을 만나 약간 반가운 느낌과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짜증나는 기분 사이에서 어제도 오락가락했다. 

풍경화 가운데선 뭐니뭐니해도 고흐 그림이 인기 폭발이었지만, 밀레의 <봄> 앞에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저 유명한 <만종>이나 <이삭줍기>보다(이번에 이런 작품이 왔다는 얘기가 아님;;) 나도 밀레의 <봄>이 훨씬 좋았다. 먹구름 잔뜩 낀 왼쪽 하늘에 드리워진 무지개도 예쁘고 농촌의 오솔길과 꽃을 피운 과일나무, 멀찌감치 나무 아래 서 있는 아주 작은 농부의 모습까지 정겹지 않은 구석이 없을만큼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 아닐는지. 하트만이라는 고객을 위해 그린 4계절 연작이라는데 겨울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데고, <봄>이 연작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란다. 계절 중엔 뭐니뭐니해도 봄이 최고지...

그밖

펠릭스 발로통, [공]

에 오호라 쾌재를 부르며 기쁘게 만난 그림은 펠릭스 발로통의 <공>. 작품 크기가 큰 것도 아니고 색감이 화려하지도 않은데 마음을 훅 후비고 들어오는 느낌이라 한참을 감상했다.
그림자까지도 행복해 보이는 것 같다가 또 좀 외로움이 풍기기도 하고... 저 멀리 서 있는 두 여인 가운데 이 아이의 엄마가 있을까 아닐까 혼자 한참 시나리오를 쓰다가 말았다.




해외 미술관에서 두서없이 주워담듯 빌려온 전시회는 통일감이 없어서 문제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다가 군데군데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눈에 띄어 불평이 쏙 들어갔다. 메인요리로 고흐의 별밤만 기대하고 갔는데 서비스로 주는 각종 디저트에 감동하고 온 기분이랄까. ㅋㅋ


벽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전시실에서 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해보려고 일부러 그런 사진을 구했다. 별빛을 심히 도드라지게 강조한 복제 그림들과 달린 원래 그림 느낌이 거의 고스란히 담겼다.  

사진 출처: http://moonsoyoung.com/90114994256


고흐가 이 밤풍경을 그리려고 밀짚모자에 촛불을 얹어놓고 작업을 하느라 뜨거운 촛농이 뚝뚝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도슨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암튼 하늘의 북두칠성도, 해안도로를 따라 켜진 진노랑색 가스등도,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미소띤 표정도 다 정겹고 아름답다. 코앞까지 가까이 가서 확인했는데 두 사람 다 웃고 있었다. ^^;


어제 만난 친구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인생은 참 공교롭다. 97년이었던가, 도서전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에 간 김에 파리와 런던 여행을 계획했다. 파리에서 2박 3일이었나 3박 4일쯤 보내는 동안 마침 파리에 와 있던 친구와 점심무렵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세 시간이면 그림 구경 실컷 하겠지 싶어 시간을 안배했으나, 오르세미술관의 작품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고 나는 인상파 전시관을 절반도 다 못돈 채 눈물을 머금고 약속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때 못봐서 제일 아쉬웠던 그림이 바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그날 친구는 오후에도 미팅이 잡혀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차를 마셨던가 간단히 점심을 떼우고 헤어져야 했으므로, 같이 지하철을 타다가 나는 뻬르라세즈로 친구는 미팅 장소로 향했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파리일정을 하루 더 늘려 오르세 미술관을 마저 보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런던행 비행기표 변경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파리를 떠나며 몇년 안에 다시 오리라,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여행을 제대로 하리라 결심했다. 다시 가기는 개뿔. 그 결심은 지금껏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제 저녁에 만난 친구가 바로 그 때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만났다가 파리 지하철에서 헤어진 장본인이다. 이 정도면 인생이 공교로운 거 아닌가? 물론 내가 예술의 전당 가는 김에 혼자 전시회를 볼 계획을 세웠지만, 먼저 벨리니로 장소를 정한 건 그 친구였다. 오래 전 그 친구를 만나려고 오르세에서 미처 못본 고흐의 그림을 십수년이 지난 어제 결국 보고 나서 또 그 친구를 만나니 뭔가 하나 빠졌던 퍼즐 조각을 마침내 끼웠거나 어그러졌던 아귀를 딱 맞춘 느낌이 들었다. 그날 파리 지하철에서 헤어지며 내가 친구에게 초콜릿을 주었다는데(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요번엔 친구가 내게 쿠키를 싸주었다. 부른 배를 꺼뜨리겠다고 예술의 전당 주변을 거닐다 올려다본 밤하늘 색깔은 유난히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하늘 색깔이 '프러시안 블루'라고 친구가 말했고 나는 오후에 보고 나온 고흐 그림의 밤하늘 색깔을 떠올렸다. 확실히 인생은 오묘하다. 혹은 인간이 같다붙이기 선수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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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하고 싶은 꿀꿀한 분위기를 털어버리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팔불출 고모노릇이 최고다. -_-'; 댓글 수로도 드러나는 지우 그림의 인기에 힘입어 그간 모아둔 조카들의 구김살 없는 그림을 대거 공개할 작정이다. (방문자 많은 거 싫다면서 결국 흥행에 신경쓰는 것 좀 봐라 ㅎ) 연도별로 꼬박꼬박 컴퓨터에 스캔해 두거나 찍어둔 조카들의 그림 폴더를 새삼 열어보며 느낀 행복과 흐뭇함을 이웃들에게도 나누고 싶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고 솔직한 이유는 그렇다, 그냥 달리 내세울 게 없는 인간의 팔불출 자랑질이다. ^^;; 이런 자랑질 불편하고 귀찮은 분들은 패스하시라고 접어둔다.


 


 2007년 3월에 찍은 사진. 공주가 3학년, 10살 때다. 현재 이 그림은 액자에 들어 왕비마마 거실에 걸려 있다. 그림을 그릴 당시 (2월일지도 모르겠다) 왕비마마가 또 한참 입원해 계셨는데 꽃 좋아하시는 할머니 그림 보고 힘내시라고 정민이가 선물했다. 
이 작품 이후로는 정민이가 우리에게 그림 자랑을 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고모할머니한테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는 있지만, 예전과 달리 좀처럼 작품 자랑을 하지 않으며 감추려고 하는 느낌이다.




오른쪽 사진은, 역시 공주 10살 때.
9월에 열린 고모할머니의 그룹 전시회 <이면전>에 오브제 모빌 작품으로 조카들 셋(아기였던 지우 빼고)이 모두 함께 참여했었다.
자칫 잘못 보면 손가락 욕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포에 그린 모빌 작품을 잡고 있을 뿐이다. ^^; 조카들이 서너 개씩 그린 그림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드리워졌던 이 모빌은 전시회 철거 후, 고맙게도 일부가 나에게로 와 현재 작업실 방문 앞에 매달려 있다.




2008 4월. 11세때. [아기도깨비]


이후 공주의 그림들은 점점 캐릭터 팬시 상품처럼 변해갔다는 후문이다. 왼쪽 사진은 공주의 작품 사진 폴더에 들어있는 가장 마지막 작품으로, 도자기를 빚어 거기에 그림을 그렸다. 채색 슬리퍼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지환이 작품 소개할 때 같이 공개할 작정.

 

 

 



놀라운 천재적 기질이 아직 공주의 머릿속에, 손끝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다고 늘 이야기하며 용기를 북돋고는 있는데, 초등학교 6년간  공주는 이런 솜씨로도 그림 관련 상을 단 하나도 받아오지 않았다. 천재를 몰라본다고 처음엔 마구 분노했는데, 알고보니 학교에 작품을 제출하는 일 자체가 아주 드물었다. 마음에 안든다며 중간에 북북 찢어버리거나 집으로 가져왔다가 미완성인 채로 결국 내지 않는 식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엔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장 즐거운 놀이였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우리로선 알 수 없다. 물론 나는 언제고 공주의 천재 화가 잠재성이 다시 발현될 것이라 믿으며 묵묵히 기다리자고 마음먹었으나 조바심이 나는 걸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 포스팅을 하면서 흔들리는 믿음을 다시 굳히기로 했다. ㅎㅎㅎ


* 폰카로 찍은 사진들도 있어 상태가 조악하지만 그래도 그림은 클릭하면 거의 다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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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해 정리

놀잇감 2010. 12. 31. 17:30

올 한해는 여러모로 정리정돈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혼돈의 1년이었다. 그래서 한해의 마지막 날에라도 정리를 잘 하고 넘어가면 내년을 좀 더 쓸모있고 알차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후다닥 목록을 만들어본다. (실은 2010 베스트 포스팅 하고 싶어서 자꾸 블로그에 쏠리는 마음을 다잡아 보려는 의도다. 한해 마지막 날까지 원고독촉 전화를 받는 진상 떨기는 부디 오늘 날짜로 버리고 가면 안되겠니.)


2010 최고의 영화 3
토이스토리 3
인셉션
하하하

세편 모두 영화보고 와서 후기를 올렸으므로 긴 설명 생략; <토이스토리3>은 보자마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힐 거라고 장담했고, 연이어 본 <인셉션>도 최고다 싶었다. 하반기엔 영화구경도 잘 안다녔던 터라 나머지 한편을 뭘로 꼽나 걱정스러워 나다 프로포즈에서 오늘 4시에 하는 <옥희의 영화>를 보고 나서 베스트 세 편을 뽑을 작정을 열흘쯤 전에 했으나 결국 이렇게 집구석에 있다. 영하 12도에 어딜 나가느냐고! -_-;


2010 최고의 전시 3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샤갈 전
아시아 리얼리즘 전

올해는 전시회도 그리 많이 안 다녀서 최고의 전시 셋을 간신히 꼽을 정도다. 대체 뭘 하며 산 거냐. 역시나 각 전시후기를 포스팅했으므로 긴말 생략.


2010 최고의 드라마 3
파스타
셜록
시크릿 가든

누군가는 주방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요리사가 정신병자 같다고 혹평했지만 나는 올초 <파스타>를 보며 오글오글 손발을 움켜쥐면서도 유경이랑 세프 때문에 진정 행복했다. 둘의 사랑에, 특히 유경의 솔직한 사랑법에 갈채와 응원을 보냈고 음식 만드는 장면이 나올 땐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신나게 봤다. ^^; 그 뒤론 오래도록 마음 붙이고 열광하며 볼 드라마가 눈씻고 찾아봐도 잘 없어서 어찌나 한탄스럽던지... 그러다 연말에 겨우 세편의 에피소드로 나의 마음을 빼앗은 영국 드라마 <셜록>과 아직은 끝나지 않았으나 여러가지로 마음 불편해지면서도( (최철원과 김주원을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마인드콘트롤이 필요했고, 안하무인 개싸가지 김주원의 몇몇 행동은 확실히 계속 문제다) 중독된 듯 주말마다 본방사수하고 있는 <시크릿 가든> 덕분에 목록이 완성됐다. 생각해보니 이 셋 말고는 꾸준히 본방사수한 드라마가 없는 듯; 

아.. 사진 규격 안맞아서 속상하다. +_+ <파스타>는 공효진이랑 이선균만 나온 예쁜 사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지쳐서 포기. <셜록>은 크리미널 마인드, CSI, 멘탈리스트를 뭉뚱그려놓은 듯한 천재 탐정 셜록과 왓슨의 명콤비도 일품이지만, 런던 시내 곳곳이 배경으로 나오는 게 참 좋았다. 시즌2를 눈빠지게 기다릴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시크릿 가든>에서 나는 김주원과 길라임이 눈으로 대화하는 저 장면이 제일 좋았다(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나 더 좋은 장면이 과연 나올까? @.@). 하지원과 현빈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스토리로 이렇게 놀라운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었겠느냐고 볼 때마다 감탄한다.  

2010 최고의 지름 3
1. 일본 온천료칸 체험: 왕비마마 보필은 너무 힘들었지만 파트너를 달리해(이왕이면 친구들과) 또 가고 싶다. 
2. 실내용 자전거: 과거 옷걸이로 전락했다 버려진 전적이 있으나 요번엔 계속 사용중이라는 데서 점수 획득
3. 아이폰: 정액요금과 기기값, 부가세 포함 6만원을 넘는 요금 때문에 (이전엔 3만원 전후였는데!) 아깝고 후회스러운 구석이 있기도 하지만, 지난번 모니터 망가졌을 때 아이폰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인터넷 검색에 사용했고 잘 듣지 않던 음악도 아이팟에 넣어놓으니 틈틈이 듣게 된 변화를 생각하면 잘 질렀다고 여길란다. ㅋ

2010 최고의 사건 3
1. 요가강습 1년 달성: 그렇다. 아직도 이 엄동설한에 추위를 뚫고 요가학원엘 다니고 있다. 작년 11월에 시작했는데 맙소사. 내가 1년 넘게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다 조카 덕분이긴 하지만, 내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요번 겨울방학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_-; 
2. 마감일 어기기 최고 기록 6개월: 한두달도 아니고 서너달도 아니고 무려 6개월이나 마감일을 어긴 건 16년째 번역인생에서 처음이다. 기록깨기 도전은 절대 안될 말이고, 다시는 이 기록에 근접하지도 않기를. 
3. 파랑이랑 친해지기: 아직도 다른 개와 동물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조카네 개 파랑이의 끈질긴 구애와 추근댐 덕분에 이젠 녀석을 쓰다듬어주는 수준을 넘어서 무릎에 올려 안아줄 수도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손바닥에 놓아 먹일 수(!!!)도 있게 되었다. 애완견 혐오자로서 배신의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대 사건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2010 최고의 업적(?)
올해는 번역서가 네 권(이 가운데 둘은 두권짜리 장편이라 역자교정에만 몇주일이 걸리기도 했다;;) 출간되었고, 번역 작업을 한 책은 무려 6권(물론 지금 이 순간도 마무리 중이지만 ㅠ.ㅠ) 이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평균 두달에 한 권 작업이라니 이 무슨 어이없는 짓인가 싶지만, 다 작년에 게으름을 부린 탓에 밀리고 밀린 작업이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어떤 책은 계약 마감일을 무려 6개월이나 어기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업적이 아니라 만행이라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지만, 스스로 업적이라고 믿어야 내년을 성실히 준비하며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고도 아직 나를 악덕 번역가로 매장시키지 않은 출판관계자분들에게 감사와 사죄의 인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기 와보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2010년에도 최고의 공연최고의 음반은 꼽질 못했다. 공연은 아예 보러간 게 없고 (그나마도 예매한 유일한 콘서트였던 플라시보는 공연이 취소됐다. -_-;) 음반은 딱 네 장 샀던데 어쩌라고... 억지로 스팅의 Symphonicities를 꼽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솔직히 나는 신선한 느낌의 Roxanne 말고는 예전 편곡이 대체로 더 좋은 것 같다. 2011년엔 나도 최고 공연과 음반 목록에 넣을 수 있도록 분발했으면...

2010년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침몰 (또는 방황)
계속 이렇게 살면 정말 곤란하다. 자신감을 되찾을 것.

2011년 계획
삶의 '낙'을 좀 더 열심히 찾아보자.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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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까지 유효한 전시회 표 두 장을 진즉에 이벤트로 당첨받아 놓고선 전시 끝나기 열흘 전에야 다녀올 수 있었다. 그나마도 이웃분들이 단체관람 날짜를 잡으며 펌프질을 해준 덕분에 어떻게든 짬을 내겠다는 생각을 했지, 안 그랬으면 조카와 올케에게 티켓을 주어보냈을지도 모를 만큼 그간 만사가 시큰둥했다.

게다가 앤디 워홀의 그림은 하도 유명해서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탓에 직접 보지 않은 그림도 마치 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전시장에서도 순간순간 기시감에 시달렸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을 억지로 뒤져보니 마릴린 먼로나 캠벨 수프 정도는 실제로도 과거 전시회에서 본 기억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떤 백화점 꼭대기의 전시장이었던 것도 같고, 어느 여행길이나 출장길에 들른 이국의 미술관이었던 것도 같긴 한데, 정확한 건 알 수가 없다. 기억력도 나쁜 주제에 기록 습관마저 부실하니 어쩌겠나.

하기야 뻔뻔스러울 정도로 미국적으로 느껴지는 앤디 워홀의 몇몇 작품을 처음 대중매체에서 접하며 과거의 나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실제로 그는 자기 작업실을 <팩토리>라 부르고 조수들에게 실크 스크린 작업을 대신 맡기기도 했다) 어떻게 독창적인 예술이 될 수 있겠냐는 비판 쪽에 고개를 끄덕거렸으므로,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아 기억에 안남겼을 수도 있다. (사실 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도 처음 뉴스에서 접하며 저 <따위>가 무슨 예술 작품인가 하고 어이상실을 경험했던 무식한 사람이다) 팝아트에 대한 무지의 소치였을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존경스럽기는 해도 격조 높은 양반들이 우아떠는 세상인 것만 같아 괜히 빈정상하는 구석이 있는 현대 미술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조롱한 앤디 워홀의 삐딱한 정신이 나랑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조림 찍어내듯 뚝딱뚝딱 그림도 복제하는 것처럼 공장에서 쓱쓱 실크스크린으로 대량으로 밀어낸 뒤에 현란한 색채로 마무리하지만, 정작 똑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스스로 언론에 노출되기를 즐긴 괴짜 예술가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단순하면서 명쾌하게 다가오는 앤디 워홀의 작품들은 확실히 <대중적>이어서 친근하고 편하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마릴린 먼로가 그토록 인상적으로 현대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라고. 진한 주황색을 바탕으로 걸려 있던 수많은 인물 작품들은 벽 자체가 커다란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이기도 했다. 튀고 싶고 주목받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는 십대의 정서에서 평생 못 벗어난 것 같은 그의 자화상들도 좋았고, 얼굴이 무너지기 이전의 마이클 잭슨이랑, 비틀즈, 특히 믹재거 연작이 마음에 들었다. 

나야 퍽 보고 싶은 전시였지만 열세살 조카를 대동하고 관람하면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공주는 뜻밖에도 장 뒤뷔페 이후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전시라며 흡족해 했다. "나는 일상생활 그림들이 좋더라"는 촌평과 함께. +_+ 매번 그러듯 둘이 같이 이번 전시 최고의 그림도 선정했는데, 같은 그림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라고 엄청 광고하던데, 소장품과 서류 같은 것들도 포함된 탓인지 그림이 정말 많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색상별로 훨씬 다양한 마릴린 먼로도 몇 작품 안온 것 같아 아쉬웠다. 늘상 느끼지만 <질과 양> 모두 흡족하게 작품을 감상하려면 원 소장처로 가야한다는 것인데, 앤디 워홀 작품들이야 하도 고가에 여기저기 팔려다니니 앤디 워홀 미술관엘 가도 다 보지는 못하려나. 하여간에 봄맞이 미술관 탐방으론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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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해 정리

놀잇감 2010. 1. 2. 01:39

글 하나에 2009년을 정리해 담는 행위는 퍽 뿌듯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하다. 이른바 삶의 <낙>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을 수도 있고, 요것밖에 없었나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실한 기억력으로도 요것밖에 없었나 허망한 느낌이 들 것이라는 데 심증이 가지만, 하여튼 꼽아보자. 나의 2009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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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놀잇감 2009. 9. 7. 15:16

명화 속 주인공들을 찐빵처럼 부풀린 모습으로 패러디한 그림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 그림을 그린 이가 페르난도 보테로라는 걸 확실히 두뇌에 저장해둔 계기는 작년에 덕수궁에서 본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었다. 그때 직접 본 보테로의 <시인>과 <브래지어를 하는 여자> 그림이 어찌나 유쾌하던지, 전시를 보고 돌아와 다시 한 번 다빈치와 벨라스케스의 명화를 따라 그린 그림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보테로 - 12세의 모나리자

다들 그랬겠지만 내가 이번에 보테로 전시 소식을 듣고 기대했던 건 가장 유명한 바로 이 <12세의 모나리자> 그림이었으나, 이 그림은 물론 오지 않았다. +_+
명화를 따라 그린 패러디 그림들은 보테로가 수년에 걸쳐 꽤 여러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혹시 한점쯤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보테로의 모나리자는 뉴욕 현대미술관과 콜롬비아 보고타 미술관에 있다는 듯하니 우리나라같은 데서 쉽게 빌려올 수 없었을 게 뻔하다.
그나마 이번에 전시한 그림들은 전부 최근까지 역동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보테로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란다. 도슨트 설명을 들으니 아직 안팔린 그림들도 많아서 서명이 없는 작품들도 더러 있다고. 유심히 작품 연도를 살피니 2007년, 2008년에 그린 그림들도 꽤 많았다.
70대 중반임에도 대형 그림을 1년에 몇 작품씩 그리다니 사람 좋게 생긴 화가의 사진이 자꾸 떠올라 더욱 신기했다.
어쨌거나 반아이크와 벨라스케스 등을 따라 그린 그림들은 몇 점 볼 수 있었지만 통통한 모나리자를 못본 아쉬움을 완전히 달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가 막연하게 보테로 전시회를 오매불망 보고파했던 이유인 사랑스럽고 유쾌한 느낌들을 이번 전시에선 그리 실감할 수가 없었다. 사물과 인물의 양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원래

보테로 - 죽마를 탄 광대

보테로는 인물의 표정을 뚱하게 그린다는데, 내가 보기엔 뚱한 정도가 아니라 삶에 찌든 슬픔에 가까워보였고 투우, 서커스, 라틴의 삶, 등으로 나뉜 전시 주제들 역시 화려한 원색으로 표현된 것과 상관없이 무거운 분위기에 큰몫을 담당했다.
전시 팸플릿 표지이기도 한  <죽마를 탄 광대> 속 인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두 사람 다 말못할 사연이 있어서 조금 있다가 돌아서서 눈물이라도 흘릴 것만 같다.
심지어 즐겁게 춤을 추는 무도장의 사람들 표정도 하나같이 슬픈 걸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느낌.










무식한 눈으로 늘 행복한 그림을 나만의 명작으로 꼽는 촌스러운 내 마음을 그나마 확 사로잡았던 건 정물화 쪽에 있었다. 작품 크기도 대형이라 시원시원하게 내 눈을 즐겁게 해준 작품은 바로 이 <꽃 3연작>

페르난도 보테로 - 꽃 3연작


내가 아무리 기억력이 별로이긴 하지만, 덕수궁 전시장에선 분명 노란 꽃이 가운데 있었던 것 같은데 노란 꽃이 가운데 있는 사진을 좀체 검색할 수가 없다.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 같이 간 지인 하나는 다닥다닥 붙은 꽃이 인간의 뇌 같아서 섬뜩하다는 평도 했지만 나는 저 노란 꽃의 색감과 통통한 모양이 너무 예뻐서 엽서 세트 말고도 무려 5천원이나 하는 전시 포스터를 사가지고 의기양양 돌아왔다. 또 몇년간 빛바랄 때까지 방문에 붙여놓고 쳐다볼 때마다 흐뭇해할 요량이다. ^^;

며칠 안남은 전시가 끝나기 전에 보테로 그림들을 잔뜩 보고 온 건 뿌듯하고 잘한 일이다 싶지만 이상하게도 조각상 포함 93점이나 된다는 이번 전시보다 난 아무래도 두 세점에 불과했던 지난 전시때의 느낌이 더 강렬하고 오래 남을 듯하다. 아기처럼 통통하고 작은 손에 빨간색 알반지를 끼고 한손엔 담배를 들었던 <시인>의 모습과 뾰족한 구두 위에서 중심잡기 묘기를 하듯 브래지어를 채우던 통통한 여인의 뒷모습이 왠지 더 좋았단 말이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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