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12월 23일까지여서 10월부터 중앙박물관 지도 전시회랑 같이 보러가려고 별렀으나 결국 지도 전시는 놓치고 이것도 끝나기 나흘 전에 겨우겨우 보러 갔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처음 가본 건데... 대기업에서 홍보용이든 탈세용이든 아니든 작품 소장하고 미술관 운영하는 거 난 찬성일세. ^^;
전시는 생각보다 넘 좋아서 여러번 감탄했다. 서양 문화에선 그림을 일단 벽에 턱 걸어놓고 상시 감상을 하는 편이라면 겸손을 군자의 미덕으로 여기는 동양에선 병풍이나 족자로 그림을 갖고 있다가 가끔씩만 꺼내서 감탄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혼자 보기도 아까워서 좋은 그림을 감상할 양이면 친구들 지인들 불러다가 핑계김에 술도 마시고 시도 막 읊고.. 그림 감상이 풍류의 일환인 거지. 그렇다면 내가 허세 떨듯 미술관 구경다니는 것도 내 나름의 풍류 취미라고 우겨야겠다.
설명도 없이 사진만 무진장 찍어와서 더 뭐라 적을 이야기도 없다.
그냥.. 전시는 좋았고, 병풍의 종류가 어마어마했고, 그림속에 모두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구석에 작게 보이는 게 한 마리, 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도 그냥 괜히 그려 넣은 건 없었다. 그리고 기록화 느낌의 병풍은 사진기 없던 시절 옛날 사람들이 '참석 인증샷' 정도로 나눠갖던 기념품 역할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이토록 화려한 병풍을 실컷 보고 집에 오니, 차례와 제사 때 세워두는 우리집 병풍이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ㅎㅎㅎ
좌: 해치. 기린, 백탁, 천록... 뿔달리고 몸뚱이에 털이 얼룩덜룩한 상상의 동물을 도무지 분간 못하겠다. 이건 뭐라고 적혀 있었더라. +_+
중: 살아있는 오징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린 게 틀림없다!
우: 조개와 해당화도 각각 무슨 의미가 있었는데 ㅠ.ㅠ
세계지도를 그린 병풍도 있고..
평안 관찰사가 부임하는 모습을 그린 거라던가.. 암튼 평양 시내를 그린 병풍도 있고!
청설모가 토종 다람쥐를 몰아낸 외래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어디서 잘못 들었나? 암튼 옛날 병풍 속에도 청설모가 있더라!
설치류 싫어하는 내 눈에도 좀 귀여워보여서 얘만 클로즈업해 찍어보았다.
놀라운 자수 병풍도 있었고...
궁궐에서 열린 연회 장면을 그린 병풍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궁중 화원들이 행사를 지켜본 뒤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조감도처럼 실제보다 더 장엄하게 그려 넣었겠지.
사람들 한사람 한 사람 표정이 다를 때도 있고 재인들의 춤사위가 살짝 다른 것도 찾아보는 묘미가 있다. 물론 그렇게 자세히 보려면 멀미가 필수.. ㅋㅋ
오디오 가이드 대신에 박물관 앱을 깔고 이어폰으로 설명을 들었는데 버그가 있는지 자꾸만 튕기고 에러나고... 자수 병풍 몇개는 송혜교 목소리로 작품 설명이 나왔고, 아모레퍼시픽 회장님이 직접 설명 녹음도 했던데 그건 쫌;;; +_+ 굳이 왜 그렇게까지!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 주변에서 누구는 심히 아프고, 누구는 갑자기 떠나버리고, 나 역시도 건강을 자신하지 못하게 되면서 모두 조바심을 냈다. 보고 싶을 때 망설이지 말고 만나기, 하고 싶은 일은 주저하지 말고 저지르기, 싫은 일은 싫다고 티내고 동조하지 말기, 행복한 일 기쁜 일만 하고 살기... 따위의 결심을 하자고 단합? 같은 걸 하게 된 거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 대로.. 누가 어디 갈까? 그러면 무조건 오케이! 하며 따라다녔다. ^^ 물론 그래서 행복했고, 힘들 때 그날의 사진들을 꺼내보며 조금 위로가 되었다. 이런 날들이라도 무기력하게 늘어져 낙담하고 나쁜 생각만 하면서 허투로 보내진 않았구나,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화공원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노란 공작단풍잎과 빨간 단풍잎이 정말 카페트처럼 푹신하게 깔려 있었다. 우와... 찬란한 저 색깔좀 보소.. 비가 내려 색이 더 진해 보인다.
박경리 선생이 글을 쓰시던 방에 쌓인 책더미를 보는데 얼마전 책장 정리하기 전까지 내 방 꼬라지랑 똑같아서 슬몃 웃음나고 정겨웠다. 가운데는 반려묘상... 오른쪽 큰 책상엔 원래 재떨이가 놓여 있어야하는데 ^^; 유치원생들부터 체험학습 몰려오는 학생들 교육상 나빠서 치웠다는 후문. 남성 작가나 화가였여도 재떨이를 굳이 치웠을까 궁금타.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는데... 혼불문학관이며 윤동주 문학관엘 가봐도.. 작가는 역시 필체가 예술가답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도 내 편견인가?
암튼 '원고지에 쓴 육필원고'라는 말을 요즘 아이들도 그렇고 후대 아이들도 박물관에서다 보는 유물로 알겠지.
난 학교 다닐 때 원고지에 독후감 써서 상받고 그랬는데. ㅠ.ㅠ
우리집엔 문방구에서 파는 빨간 선 원고지 말고 검정색이나 초록색으로 선이 그려진 '출판사용 원고지'가 굴러다녔다. 아마도 아버지가 대학출판부에서 쌓아 놓고 쓰는 비품 원고지를 집에다 가져다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난하고 알뜰한 부모님이 출판사에 다니던 지인에게 얻어다 둔 것일 수도 있겠고.. 암튼 대학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이 인쇄된 그 원고지에 글을 써서 내는 걸 창피해하던 유년의 내가 기억난다.
이날 답사의 하일라이트는 그간 여러번 별렀으되 입장료가 하도 비싸고 멀어서 가지 못했던 '뮤지엄 산'. 제임스 터렐관이던가 깜깜한 통로로 들어가 빛의 예술을 보는 별관 관람까지 무려 2만5천원이던가 암튼 거금을 들였으나 한번쯤은 아깝지 않다 싶었다.
안도 타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질감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여긴 확실히 물과 빛을 잘 이용했다는 느낌이 들어 아름다웠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 놓기라도 한듯 조르륵 물살에 밀려 흔들리던 단풍잎도 예쁘고...
색깔을 주제로 열린 특별전이었던가... 대작들이 많았는데 현대미술은 보는 눈도 없고 추상화엔 좀처럼 감흥을 잘 못느끼는 내눈엔 그저 그랬다.
로비에 있던 백남준의 작품(왼쪽) 마네킹 때문에 좀 무서웠지만 오래된 자동차는 맘에 들어서 굳이 찍어옴.
뒷마당의 둥근 돌무덤들은 경주에 있는 고분군을 형상화했다는 것 같다.
미술관 로비엔 엄청 비싼 자코메티의 조각품도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 같아서 재미났다. 그치만 난 예전 자코메티 전시도 본 사람이라 뭐 그 정도 소품은 쿨하게 패스~. 사진도 안 찍었다.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잘 찍어올 재주도 없었고...
2018년에 본 첫 그림전시는 뜻밖에도 신윤복과 정선 그림이었다. 2017년 마지막 본 전시가 고궁박물관 희정당 벽화 총석정 그림이더라니.. ㅎㅎ 뭔가 절묘한 인연의 연장선?
동대문 DDP에서 몇년전부터 계속 간송미술관의 수장고에 첩첩이 쌓여있던 미술품들을 교체전시하고 있는데, 혜원의 전신첩과 정선 그림을 야금야금 나눠 보여주는 바람에 꽤 여러번 갔었지만, 요번처럼 혜원 전신첩을 대거 한꺼번에 구경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영하 18도 예보가 있던 날 하필 이 전시를 보러 가자고 그랬을 때는 에이... 이왕 혹한을 떨치고 나간 거, 바로 직전 포스팅에 적어두었던 기대전시 중 하나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으나, 막상 가서 보니 그저 좋았다.
혜원과 겸재의 그림만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옛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나 나의 편견으로 괜히 꽁해가지고는 나는 원본이 좋더라, 특히나 디지털로 되살린 현대 미술품 나는 원래 안 좋아해! 라며 궁시렁거렸었는데 ㅋㅋ 그 또한 막상 보니 좋았고 으아~ 감탄한 작품도 있었다. 아이고 민망하여라. 앞으로는 '나는 원래 어쩌고 저쩌고...' 이런 말 함부로 안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했다. 절대고, 원래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좀 변하기도 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말이야... 간송도 요즘 트렌드에 어쩔 수 없이 기개를 꺾었는지, 휴대폰으로 플래시 안 터뜨리면 원본 사진도 찍게 해주더라. 물론 작품 보호를 위해 조명을 하도 컴컴하게 해놔서 잘 나오지는 않지만서도..
해서.. 원본 대신 입구에 진열된 혜원 전신첩 설명을 찍어왔다. 어차피 그림 제목도 혜원이 정한 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편의상 붙인 것인데, 그 아래 요즘 유행하는 언어로 붙여놓은 태그 글귀들도 기발하고 재미났다. #BGM빵빵 #알콜뽀샵 #사대부스웩.. 막 이래! ㅋ
2018년 5월까지 넉넉하게 계속 전시한대고, 입장료는 입장료는 10,000원이다.
혜원전신첩이 총 30점인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ㅎㅎ
혜원 전신첩에서 특히 유명한 <단오풍정> <쌍검대무> 같은 그림 속 의상을 고급지게 만들어 마네킹에 입혀 전시해놓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좀 섬뜩하지만 ㅋㅋ 실제로 볼 땐 캬... 한복이며 옷감 예쁘다고 그 앞에서 침을 흘렸다.
신윤복의 그림 속 주인공들을 모두 모아 한편의 애니메이션처럼(고흐의 작품들로 만든 <러빙 벤센트>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야기를 꾸몄고, 쌍검대무의 무희들은 특별히 따로 춤추는 장면이 나타났다. 혜원 전신첩 중에서 <쌍검대무>를 특히 좋아하는 편이고 그림에서 바람이 슝슝 나오는 것 같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그 느낌을 동영상으로 보니 또 나름 좋더라.
단점이라면... 영상 화면이 나오는 벽이 너무 길어서 한눈에 볼 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ㅠ.ㅠ 당연히 내 실력 탓이지만 동영상도 잘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저나 나 여기 동영상 직접 올리는 건 처음인가 보다! 이런 기능 있는줄 왜 몰랐지? ㅋ)
겸재 정선은 서른여섯 살엔가 처음 근처 현감으로 부임한 친구 이병연의 초청으로 금강산 구경을 하고는 그때부터 70대가 될 때까지 여러번 금강산 그림을 그렸는데, 연도별로 점점 더 호방하고 세련되게 숙련된 필치로 발전해나가는 그림체의 느낌이 확연히 보인다. 초심자땐 누구나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만, 원본에 집착하게 되는데 나중에 노련해지면 최선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느라 생략의 묘미도 막 부리고 그런 거지...
암튼 금강산 그림들이 담긴 겸재의 전신첩도 멋드러졌으나 사진엔 그 맛이 하나도 담기지 않아 죄다 삭제해버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한 점 선보이자면...
<해악전신첩>에 든 '내금강산도'일 거다
이 금강산 봉우리 사이사이에 현대적인 도시를 접목시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디지털 작품은 이런 느낌이다.
위 그림에선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아래 그림에선 잘 찾아보면 남산타워, 에펠타워도 있으며 9분인가 7분인가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불꽃놀이도 벌어지고 그런다.
금강산의 4계절의 변화 모습도 있던데 그건 좀 너무 속도가 드려서 답답한 느낌이라 빨리감기 버튼이 어디 있으면 막 누르고 싶었었다. ㅎㅎ
금강산 <총석정>은 금강산 앞바다에 있는 주상절리 '총석' 꼭대기에 세워진 정자 이름이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도 궁금한 총석정 그림을 희정당 벽화로도 보고 겸재 그림으로도 보고... 평창 올림픽엔 북한 선수들이 오고... 언젠가는 정말 금강산 총석정 구경을 나도 할 수 있을까? ㅎ
둘의 느낌이 비슷한가? ^^;;
아래는 맨 마지막 전시실 디지털 작품인데... 기다란 벽 화면에 화려한 꽃들과 풍경이 눈부시게 연이어 펼쳐진다. 한참을 구경하며 핸드폰으로 찍으려고 이리저리 애를 써도 색감이 죄다 날아가버려 포기하고 아쉬워하며 뒤를 돌았더니 뒤쪽 거울에 비친 화면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옳타구나 찍어오긴 했는데 이제보니 내 실루엣을 확 오려버리고 싶다. +_+
말도 안되는 혹한에 며칠째 두문불출하다 게으름 떨치고 나간 외출이라 특히 보람있고 좋았다. 이날 동대문에 간 바람에 드디어 자수실과 브로치 재료도 사왔다. (곧 자수 포스팅이 이어진다는 예고다. ㅋ)
해마다 거의 그렇지만 2018년이라는 말이 제대로 입에 붙으려면 설날은 지나야하는 것 같다. 기분상으로도 아직은 새해가 아니고 '헌 해'인 것 같달까. 1월 1일에 떡국은 끓여먹었지만 어거지로 더 먹은 나이도 아직은 인정 못하겠고...
암튼 그래서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내야 행복할까 고민하며, 부질없든 말든 이런저런 소망들을 적어본다. 여기저기 소문내고 기록해두어서 그 '말의 힘'으로라도 많이 이루어지면 좋지 아니할까. 자꾸만 맥떨어져선 쓸데없는 회상에 젖어 미련이나 떨고 그러지 말고 이제 좀 앞으로 전진...하고 싶다.
1. 베트남에 나가 있는 친구네 놀러가기 (마음 같아선 한 2, 3주 가서 얹혀 지내며 놀고 싶지만 에효.. 불가능하겠지. 북쪽 지방 트레킹도 가려면 현재로선 너무 더워지기 전인 4월을 노리고 있으나 과연;; )
2. 무릎 잘 고쳐서 등산 열심히 다니기 (그러려면 남들 잘 때 자는 생활습관부터 길들여야할 듯;; ㅠ.ㅠ) & 서울 둘레길 남은 스탬프 다 찍고 완주 배지 받기
5. 새 취미생활 시작 - 프랑스 자수 (자수책과 자수틀과 천 구입 완료. 실과 바늘, 브로치 재료만 사면 됨 ^^;)
6. 전시회 많이 다니기 (작년엔 기대 전시 적어놓고도 거의 다 놓쳤음)
7. 휴대폰 개비? (액정이 깨지고 배터리게이트 탓에 느무느무 속터지게 느려진 아이폰6를 바꾸긴 바꿔야할텐데 애플은 밉상이고 삼성은 더 밉상이고 LG는 안예쁜데다 요번에 엄마 핸드폰 보니 기본앱들이 너무 흉하다. 아이튠즈에 들어 있는 음악 때문에라도 또 아이폰을 사게 되려나... 아 몰랑)
하여 일단 2018 기대 전시목록부터 적어놓으련다. 12월부터 적어놓은 목록 중엔 벌써 끝난 것들도 있다.ㅜ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 아라아트센터 ~2/4까지
소화:짤막한 이야기 - 서울미술관 ~2/7까지
님을 위한 바다: K현대미술관 ~2/11까지
퀸틴 블레이크 일러스트 원화전: 상상마당 ~2/20까지
지브리 대박람회: 세종문화회관 ~3/2까지
플라스틱 판타스틱: D뮤지엄 ~3/4까지
자코메티 특별전: 한가람미술관 ~3/11까지
마리로랑생 전: 한가람 ~3/11까지
신여성 도착하다: 덕수궁 현대미술관 ~4/1까지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대림미술관 ~5/27까지
강요배: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덕수궁 현대미술관 5-10월 예정
조선지도 500년 공간, 시간, 인간의 위대한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6/19~9/2
니키 드 생팔: 한가람 6/30~9/25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5~8/26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궁중회화 - 덕수궁미술관 11/7~2019 2월
마르셀 뒤샹: 국밉현대미술관 서울관 12월~2019 4월
전시목록을 열심히 적다보니 책도 좀 읽으시지.. 하는 마음이 드네그려. 책은 결심 같은 거 안하고도 좀 많이 읽으면 안되겠니. 흠.
미국 여행기를 연말안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겨우겨우 달성한 뒤엔 곧이어 2017 베스트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감기몸살로 계속 빌빌댔다. 그나마 다행히 A형 독감은 아니어서 열은 오르지 않았고, 그냥 팔다리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시고 아프고 눈과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슝슝 나오더니 콧물이 쏟아졌다. 사나흘 앓고 일어나 이제 좀 살만 한데, 아직은 머리가 멍해서 책도 안 읽히고 그래서 일도 못하겠고 꼼지락 꼼지락 쓸데없는 바느질을 좀 하다가 블로그 정리나 하자 싶어졌다.
일단 2017년 정리 포스팅을 다 해야, 나의 모든 유희와 여행 기록을 메모해 놓은 탁상 달력을 내다버릴 수 있다규~ ㅋㅋ
2017년에 읽은 책
1. 캐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김미정 옮김/그책(2016)
2.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억관 옮김/민음사(2016 리미티드에디션)
3. 5분 카페 스케치 --- 김충원 지음/진선아트북(2016)
4. 이것 좋아 저것 싫어 --- 사노 요코 지음/이지수 옮김/마음 산책(2017)
5. 죽는 게 뭐라고 --- 사노 요코 지음/이지수 옮김/마음산책(2015)
6.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 사노 요코 지음/전경아 옮김/을유문화사(2017)
7. 레베카 ---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이상원 옮김/현대문학(2013)
8. 책이 입은 옷 --- 줌파 라히리 지음/이승수 옮김/마음산책(2017)
9. 처음 만나는 프랑스 자수 --- 박성희 지음/티나(2016)
동화로 만나는 프랑스 자수 -- - 박성희 지음/티나(2017)
히구치 유미코의 자수 12개월 --- 히구치 유미코 지음/황선영 옮김/이아소(2016)
10. 시녀 이야기 ---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김선형 옮김/황금가지(2017 특별판)
<캐롤>은 16년에 본 영화와 원작이 어떻게 다른가 궁금해서 올해의 첫 책으로 읽었다.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좋았고, 책속에선 테레즈가 사진작가가 아니라 무대 디자이너라는 점도 신선했다. 루니 마라의 테레즈도 좋았지만, 책에선 주인공이 겨우 풋풋한 스무살, 스물한살이었다는 게 인상 깊었다. 난생 처음 만난 사랑이 캐롤이었다니 축복이다. 인상 깊은 구절을 적어놓은 독서 노트에서 "두려워 하면서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테레즈는 생각했다. 두려움과 사랑,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없다"(p331)는 글귀가 새삼 가슴에 박힌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몇번 시도하다가 뭔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의 글이었던 막연한 인상과 최근 들어 어마어마하게 높아진 선인세에 괜히 배알이 틀렸던 것 같다. 근데 어느날 비틀즈의 Norwegian Wood를 듣는데, 문득 이 음악에 영감을 받아 썼다는 하루키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예전엔 <상실의 시대>로 출간되었다던가. 마침 아삼삼한 느낌의 트레이싱페이퍼 커버를 씌운 리미티드 에디션이 나왔다고 알라딘에서 홍보 메일도 날아왔겠다... 그래 한번 읽어주지 하며 구입했던 거다. 내가 왜 하루키를 불편해했는지 그 남성중심적 글쓰기의 실체를 파악할 수도 있었고, 좀 더 어려서 읽었더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암튼 뭐 나랑은 별로 안 맞는 작가라고 결론 내림.
사노 요코의 책을 세권이나 읽은 건... ㅠ.ㅠ 내가 이 '일본 할매'랑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며 읽어보라고 권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그에게 비친 내 인상과 생각이 어떤지 궁금했다. 평소 내가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워! 근데 죽도록 아픈 건 무서워..."라고 했던 말과 일맥 상통하는 말들이 확실히 책에 담겨 있었고, 그 밖에도 이거 내가 한 말 아냐? 싶은 구절들을 발견했다. "나는 인사치레를 못한다. 인사치레를 하려들면 입이 썪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하는 칭찬은 진심이다."(<죽는 게 뭐라고> p62) "나는 돈이 없을 때에도 돈을 잘 쓰는 게 자랑이다."(<죽는 게 뭐라고> p135) ^^; 당연히 이 작가와 나는 다른 점도 많았지만... 그 사람이 대체로 나를 제대로 파악한 게 맞다고 생각했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책을 작업하면서 작품에 홀딱 반해가지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리즈의 책 중 <레베카>를 틈틈이 읽었다. ㄹㅇㅊ 이 더 매력적인 주인공이었고 작품도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무레도 <레베카>는 어린 시절 흑백영화로 보았던 히치콕 감독의 영화 장면들이 뇌리에 깊이 박혀 편견으로 작용했다. 길쭉하고 비스듬한 대문자 R만 보아도 섬뜩했던 느낌이 아직도 남은 걸 보면 영화를 꽤 여러번 보았나? ㅎㅎ
9번 자수책은 '읽었다'라고 하기엔 민망한 책이라 세권을 하나로 쳤다. 후배가 편집 작업에 참여한 자수책 증정본을 줬는데, 작은 브로치 같은 소품 자수들이 너무도 예뻐서 스케치 취미생활은 완전 내팽개치고 자수 욕심에 불탔다. 결국 또 다른 자수책까지 사들이고는 천과 수틀까지 마련... 원하는 색깔의 실만 사들이면 또 맨날 바느질이나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서 아직 실과 바늘은 구입 안하고 있음 ;-p
<시녀 이야기>는 2017년에 읽은 마지막 책이었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받게 되면서 그럴 만 하다 느끼는 한편 나 홀로 애트우드에 대한 존경심을 독서로 표할 작정(?뭐래.. ㅋ)이었다. 작금의 현실을 파헤친 것 같은 섬뜩하고 예리한 작품을 이미 20년 전에 썼다니(원작은 98년 출간인듯;) 참 대단하다.
부끄러울 만큼 ㅠ.ㅠ 워낙 독서량이 적어서 올해의 책 베스트 3권은 어렵지 않게 골랐다. 죄다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란 공통점을 지금 발견했다. ㅎㅎ
2017년에 본 영화
1. 너의 이름은
2. 언어의 정원
3. 초속 5센티미터
4. 시간을 달리는 소녀
5. 라라랜드
6. 가장 따뜻한 색, 블루
7.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8. 무현, 두 도시 이야기
9. 모아나
10. 라이언
11. 덕혜
12.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
13. 히든 피겨스
14. 공조
15.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16. 죽여주는 여자
17. 공모자들
18. 지니어스
19. 파리로 가는 길
20. 라푼젤
21. 신데렐라
22.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23. 아가씨
24. 썸머타임: 아름다운 두 계절
25. 은밀한 가족
26. 여교사
27. 더 셰프
28. 호프 스프링즈
29. 페어웰, 마이 퀸
30. 아담
31. 미쓰 와이프
32. 옥자
33.아이 캔 스피크
34. 맨체스터 바이더씨
35. 메리와 마녀의 꽃
36. 꾼
진하게 표시한 영화만 영화관에 가서 봤고, 나머지는 비행기에서 봤거나 죄다 휴대폰으로, 아니면 컴퓨터로 다운 받아 본 영화다.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봐서 그런가...어떤 영화는 제목을 봐도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도 있다. ㅠ.ㅠ 달력엔 분명 그 옆에 별점 표시도 해놨던데 ㅎㅎㅎ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요즘 너무도 활발하다.
2017년엔 퀴어 영화를 꽤 본 것 같다. 퀴어 인물도 남녀 감독이 참 얼마나 다르게 그려내는지... 상업성을 추구하기 때문이겠지만, 불편한 시선과 묘사가 좀 거슬린다 싶으면 역시나 남자 감독이었다.
암튼 심히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꼽은 올해의 베스트 영화 3는...
개봉일과 상관없이 내가 본 순서대로 뽑고보니 또 다 소수자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특히 <죽여주는 여자>엔 소외된 약자들만 등장한다. 성매매 여성, 장애인, 트랜스젠더, 그리고 병든 노인. 쉬쉬하는 노년의 성과 빈곤 문제, 어떻게 늙을 것인가, 늙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현실감 있게 다뤘고,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히든 피겨스>는 유쾌하고 잘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그들이 미국 NASA에 들어갈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지적으로 뛰어난 인재이고 최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실화인데도 판타지처럼 느껴진 이유는 우리나라만해도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으니까?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 할머니만 해도, 자기가 운영하는 수선가게를 지닌 소상공인이고, 영어회화 학원에 다닐 수 있을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다. 여성들이 그나마 좀 힘을 쓰려면 배움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당연한 일인데 현실과 겹쳐서 왜 슬픈지...
덧붙이자면 <재키> 비행기 안에서 보다 넘 지루해서 초반에 포기하고, 나탈리 포트만에 대한 애정으로 나중에 다시 시도했지만 역시나 끝내지 못했다. ㅎㅎ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재미 없으면 이젠 끝까지 참아줄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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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엔 세계의명화, 일요시네마 2 프로그램을 작업하며 모두 12편의 EBS 영화를 번역했었는데, 2017년엔 EBS에서 재방송하는 영화들도 워낙 많았고, 세계의명화만 일이 들어온 데다 나와 작업 스케줄이 잘 맞지 않아서 9월 2일 방영분까지 달랑 7편을 작업했다. 사진 편집 앱에서 포스터 안짤리는 8개짜리 프레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12개짜리에 넣어 더 휑하다.
1/28 우주전쟁 2/9 로빈후드 2/26 터미널
6/17 제로법칙의 비밀 7/22 파앤드어웨이 8/12 굿윌헌팅 9/2 디파티드
맷 데이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빈 윌리엄스, 키아라 나이틀리...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는 일단 나를 먼저 떠올려주는 프로덕션 PD님이 있어 기쁘다.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영화인 <굿 윌 헌팅>을 번역하게 되서 어찌나 기뻤는지!(하지만 이 영화에 그토록 여혐 발언이 많은 줄은 정녕 미처 몰랐었다. ㅎㅎㅎ 할리우드가 어떤 곳인지 드러난 작금의 상황을 보아도 어휴...) <디파티드>는 홍콩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영화라 개봉 때 보고싶었으나 놓쳤던 터라 쾌재를 부르며 작업했었다. 2018년에도 두달에 한편 정도는 작업하고 싶은데 과연 사정이 허락될지 모르겠음. (아직 의뢰가 없다 ㅠ.ㅠ)
2017년에 본 공연
1. 콜드플레이 내한공연(4/16)
2. 뮤지컬 나폴레옹(9/20) - 임태경, 정선아, 김수용, 박송권
콜드플레이 공연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ㅠ.ㅠ <나폴레옹>은 왕비마마 모시고 가려고 여름부터 예약했다가 위약금까지 물고 취소하기를 2번이나 반복한 뒤에 겨우 관람성공해 감개무량했다. 아직은 와병중이라 위태위태했고, 아니나 다를까 공연에 집중 못하고 자꾸 나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움찔거려 옆자리 관객이 중간 쉬는 기간에 언짢은 불평을 했다. 에효... 보는 내내 엄마 때문에 긴장해서 뮤지컬에 대한 인상이나 감상보다 그날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안도감이 더 떠오른다.
2017에 본 드라마 & 예능
1. 셜록 시즌4
2. (여전히) 도깨비
3. 비밀의 숲
4. 이번 생은 처음이라
5. 윤식당
6.효리네 민박
<셜록>은 그토록 고대했던 것에 비하면 좀 실망스러웠고... 꼬박 1년 전이라 정말로 아스라하다. 그치만 또 언제 나올지 모를 시즌5를 기다리겠지. <도깨비> 역시 1월에 끝이 난 드라마라 2016년 베스트에 넣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없던 건 아니지만, 영상미며 스토리며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에 반해 <비밀의 숲>은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 한참 바쁠 때 본방중이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며 아껴뒀다가 한편씩 두편씩 어쩔 땐 세편 내리 꼬박 밤새며 봤다. 으아.. 정말 대단한 흡입력과 완성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중간에 몇편 보다가 결혼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대사들이 맘에 들어서 나중에 다시 몰아봤다. 중성적인 여자 이름을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여주인공 이름이 지호, 남주인공 이름이 세희다. ^^; 뭔가 이런 미묘한 설정부터 좋아! 세희 역할의 이민기 배우를 새삼 다시 보게 됐고, 여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도 각각 소홀하지 않게 잘 다루어져 좋았다.
<윤식당>은 오래오래 집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로망을 잠재우느라 헬렐레 즐거이 보았고(난 식당 종업원들 아니고 거기 나오는 외국인들에 감정이입해서 보는 재미가 좋았다), 이효리와 아이유를 다시 보게 되었던 <효리네 민박>도 제주도 로망과 함께 보고보고 또 보고 재방도 보고 그랬다.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게스트하우스에 취직할까, 감귤농장에 취직을 할까, 뭐 그런 꿈을 아직도 못 버렸다. ^^;
2017년에 떠난 여행&답사
1. 미서부와 캐나다 빅토리아섬 (4월) --- 8개월만에 여행기를 마쳤으니 더 설명 않겠다. ^^
2. 서울 북촌 (6월)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1
북촌 한옥마을 여러번 가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가 오잉~ 하며 놀랐다. 종로구와 서울시에서 꽤나 많은 곳들을 새로 가꿔놓았더라. 엄청 예뻤다.
3. 양주 회암사지 & 장욱진 미술관 & 권율장군 묘 (6월 & 9월)
양주에서 문화해설사 하시는 지인분 덕분에 속속들이 구경하며 신이 났었다. 폐사지(유구만 남은 절터) 구경을 별로 많이 안해본 터라, 회암사지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아 신기했다. +_+
거의 왕궁터 같았던 회암사지...
건축상도 받았다는 장욱진 미술관 구석구석 예쁘다
장욱진 미술관 옆 권율장군 묘에서 내려다보며이는 예쁜 한옥
4. 안면도(6월)
5. 곤지암 화담숲(7월)
6. 속초 동명항(8월)
6. 강화도(9월)
7. 외산 무량사 & 보령 성주사지 & 오천항 수영성(11월)
흐렸어도 무량사의 가을은 눈부셨다
나폴리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오천항
같은 날 오전과 오후 날씨가 이토록 다르다 ^^;
8. 수원 화성 행궁(12월)
행궁과 화성 성곽을 1바퀴 다 돌았는데.. 우와.. 너무 좋아서 봄날에 날씨 좋으면 한번 더 가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그림과 설명이 너무도 정확해서 그대로 복원해 놓은 화성은 조선시대 건축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터키에서 못 타본 열기구 선망 때문인지 제자리에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인 저 열기구(18,000원)라도 좀 타보고 싶었다. ㅋㅋ
9. 서울 둘레길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2
빠진 날이 많아서 함께했던 팀들의 공식 둘레길 순례는 끝났는데 난 미처 못 끝냈다. ㅠ.ㅠ 총 28개 스탬프 중 아직 7개를 더 찍어야함. 옛날 우체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탬프 보관소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ㅎㅎㅎ 은근 쏠쏠하다. 스탬프 상관없이 서울 둘레길을 이미 몇바퀴나 돌았다고 큰소리치시던 선배님들도 막상 스탬프북 없으면 말짱 꽝이라고 하자, 별것 아닌데 욕심난다며 결국 157km를 완주하고 완주증서를 받아내시던데... 난 뭐냐. 뭐든 시작은 잘해도 금방 싫증내고, 그렇다고 또 완전 포기도, 깔끔한 마무리도 잘 못하는 나의 미련떠는 성격이 여기도 반영된 것 같다. 남은 스탬프를 2018년 상반기에 다 찍고 완주기념 배지를 꼭 받으리! (새해 결심 중 하나다 ^^;)
하반기엔 거의 등산을 못다녀서 다시 등산 초보자의 폐활량과 몸이 되었음을 12월 북한산에서 실감했다.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2018년부터는 매달 두번씩 안빠지고 좀 다시 산에 다녀볼 작정이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자꾸 무릎이 아파서 등산도 앞으로 몇년이나 하겠나 싶은 심정. ㅠ.ㅠ
2017년 전시
1. 훈데르트 바서 - 세종문화회관 (포스팅도 했으니 생략)
2. 르누아르의 여인 - 덕수궁 미술관 (그저 그랬음)
3.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상설 전시 & 마티스와 디벤콘 특별전
4. 장욱진 미술관 탄생 100주년 특별전 (6월과 9월에 각기 다른 특별전을 두번이나 봤다)
5. 고궁박물관 창덕궁 희정당 벽화 - 지금도 전시중이고, 희정당에서 떼어 복원한 금강산 그림이 진짜로 볼만하다. 금강산 관광을 대체 왜 가나 싶었는데, 남북관계 복원돼 관광루트가 다시 뚫린다면 가보고싶어졌을 정도다.
2017년 기억될 사건
1.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
아무래도 출판과 번역은 사양길이고... 뭔가 더 재미난 일 없을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중학교 1학년들 자유학기제 수업을 한 학기 맡았다. 밤 새가며 수업자료 PPT 만들 때마다, ^^; 형편없이 적은 강사료를 받으며 다들 이짓을 왜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기발랄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한편 기대되고 즐거웠다. 중2병이 중1로 내려왔다고 해서 엄청 떨었는데, 그냥 귀여운 애들이었어! 물론 말 안듣고 떠들고 쿨쿨 자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애들의 그 팔딱팔딱한 기운을 전달받는 느낌이 짜릿했다. 다만.. 연기된 수능 일정에 밀려 방학날 오전까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선 콜록거리는 애들한테 옮아온 감기로 연말연초를 빌빌대며 보내야했지만 말이다. 처음 한두 주 수업때만 해도, 내 다시는 이 짓 안한다! (물론 번역일의 소중함과 귀함을 새삼 깨달았다 ㅎㅎ) 라고 별렀지만, 한 학기를 다 지내고 난 뒤의 마음은 또 잘 모르겠다. ^__^
2. 후배 인터뷰 & 취업 특강 ㅠ.ㅠ
동아리 후배의 부탁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줬는데 그게 일파만파 일이 커져서 결국엔 번역에 관심있는 후배들을 위해 취업특강도 하게 됐다. 어우... 번역 하고 싶은 애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7년도 남지 않은 2024년에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거라는 옥스포드 대학교 보고서도 알려주고, 암울한 출판 전망도 들려주고... 번역은 영어 실력이 주가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돌아왔다. 근데 뭐;; 어차피 힘든 대학생들의 취업... 번역가로 진입하는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
3. 이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이게 뭔가, 사귀는 건가, 썸인가, 아닌가 지지부진 고민하고, 아니 고민 자체를 거부하고 괜한 두려움에 대화와 감정을 회피하고.. 그러면서 어느 결엔가 뽀르르 달려가 만나고 그러면서 1년 넘게 이어져왔던 관계가 크리스마스에 끝났다. 서로 지향하는 미래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나름 배려했으나 결국 상처 없는 이별은 없다. 따져보니 무려 20년 만이라서 내가 서툰 탓도 있었겠고, 뭔가 되게 두렵고 어려웠다.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다는데, 호감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질까봐, 혹은 사랑이 아닐까봐 겁이 났었다. 째뜬 끝까지 차마 묻지 못한 질문과 미련을 덮어 놓자니, 내상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굳이 2017년을 정리하는 공간에 이 이야기를 적어두는 것은 혹시나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왜 지나고 나서야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 건지 모르겠다. 혹은 추억의 미화를 위해 과장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한숨. 몇번의 고비 이후,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 없게 엄청 잘해주겠노라고 말해놓고, 결국엔 그러지 못했다. 그치만 아무리 잘해주었더라도, 끝이 난 마당에 후회 없는 관계는 없겠지. 행복하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행복하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일단 나는 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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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2017년은 참 많이 놀러다녔고, 출간이 미뤄져서 그렇지 번역 일도 꾸준히 꽤 많이 했다. 블로그질 할 시간과 정신 여유가 없었을 만도 하다. 나와는 상관 없는데도 충격으로 다가온 사람들의 죽음과 친구의 난치병 같은 것들 때문에 괜히 조바심이 나서 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소소한 낙과 순간의 기쁨보다는 자꾸 더 '쎄고 확실한'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해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되었다.
다음날인 18일 화요일 아침. 6시 알람에 눈이 번쩍! 언니들(큰언니의 친구분도 한 명, 총 4명이 여행 일행이었음)은 8시까지 오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얼른 씻고 소풍 준비하듯 친구는 달걀을 삶고(남편이 주말 농장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유기농 달걀이라면서) 전날 밤 미리 구워 잘라놓은 쥐포와 문어 다리(!)를 챙기고...그러는 사이 나는 치즈케이크 한조각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친구가 차려준 첫 끼니이므로 기념촬영해야한다고 하니 민망하다고 깔깔 웃는 친구... 원래 아침 잘 안 먹지만, 여행 다닐 땐 삼시세끼 꼭 챙겨먹어야하는 의무감 같은 게 있다. 하루 24시간을 악착같이 활용하려면 체력보충부터 해야하기 때문일까?
이렇게 매일 고칼로리로 아침을 시작해 열흘 내내 삼시세끼+간식으로 충만한 삶을 산 결과는 역시나 빤한 것이어서, 나는 얼굴에 주름이 모두 펴질 정도로 빵빵하게 보름달처럼 부푼 얼굴로 귀국했었다. 체중도 3kg쯤 늘었었고...
어행에서 돌아온지 한달도 더 지난 지금 체중은 예전으로 돌아왔는데 빵빵한 얼굴은 왜 때문인지 아직 여전해서,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 좋아졌다'고들 한마디씩 한다. 여행가서 아주 좋았나보구나? 얼굴이 훤하다.. 등등..
그들의 선입견 탓인지, 진짜로 낯빛이 환해졌는지 그건 잘 모르겠고 암튼 동그란 얼굴이 심히 빵빵한 네모가 되어있는 건 사실이다. ^^;
그리하여 아침 8시 드디어 우린 첫 행선지인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 마침 SF MOMA에서 마티스 전시회를 하고 있더라면서 미술관 좋아하는 내 취향을 고려해 3시 티켓을 이미 사놓으셨다는 언니. 아싸~
중간에 들러 나름 염원이던 '인앤아웃 버거'로 점심을 때웠다. 햄버거 4개를 모두 세트로 시켜서 감자튀김은 다른 시뻘건 쟁반에 한가득 따로 나왔는데 으어.. 영 맛없어 보이게 사진에 나와서 삭제했다. +_+ 서부에 왔으니 인앤아웃버거는 먹어줘야한다는;; 가격대비 만족도는 역시나 최고가 아닌가 싶다. 배불러서 바삭바삭한 감자튀김 다 못먹고 나오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갈 길이 멀고 미술관 시간도 맞춰야해서 마음이 바빠, 진짜로 거의 10분만에 빨리 버거를 해치우고는 내쳐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렸다.
몇년째 계속 가물고 산불나고 난리였던 캘리포니아는 주택마다 잔디밭도 없애고 돌이나 나무칩을 까는 걸 주정부에서 보조해줄 정도였단다. 매일 잔디밭에 주는 물값도 어마어마하려니와, 도저히 그렇게 낭비할 물이 없었다나.
근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고속도로 양쪽에 늘 황량하고 누렇기만 하던 언덕에 풀이 돋고 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나왔다면서, 그 또한 우리의 여행을 위한 하늘의 선물이라고 우리끼리 키득거렸다. 캘리포니아 북쪽은 몰라도 남가주엔 절대 없던 일이라나 뭐라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Courtyard Marriott Hotel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짐가방만 방에 덜렁 집어던져놓고선...(나 메리엇 호텔에 묵었어! 감동할 새도 없이ㅋㅋ)부리나게 근처에 있는 SF MOMA로 걸어갔다.
마티스 단독 전시가 아니라, 마티스의 작품에 엄청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디벤콘'이라는 미국 화가와 합동 전시.
한국에서 대형 기획 전시 관람료가 막 만오천원씩으로 올라 불만이 많았으므로, 미쿡에선 대체 이런 특별전 티켓을 얼마 받나 슬쩍 인터넷 예약증을 살펴보니 무려 31불.. +_+
상설전시만 보는 것도 25불이었다. 흠.. 우리나라가 엄청 비싼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전세계 미술관도 요즘 추세는 상설전시는 예전처럼 자유로이 사진촬영이 가능하지만 특별전은 사진을 못찍게 하는 듯. 마티스와 디벤콘 전시관에서는 하나도 사진을 못찍었다.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마티스 그림이 많이 없고, 디벤콘이라는 화가는 내게 완전 '듣보잡'이어서 약간 실망했지만 ^^;; SF MOMA의 건물 자체도 마음에 들고 상설전시된 그림들이 워낙 많아서 시간 빡빡한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세로 사진 구색 맞추느라 막 본인사진도 방출. ㅋㅋ 내가 의식하지 않고 찍힌 뒷모습 사진 좋아한다고 했더니만 큰언니 친구가 어찌나 뒷모습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지... (물론 앞모습도;;) 평소 내 자세가 얼마나 껄렁한지 많이 알게 되었다. ^^;;
암튼 칼더의 모빌 작품 넘 좋으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앤디 워홀 작품도 많고 상설전시 작품이 알찬데 5시 폐장에 맞춰 숨가쁘게 돌아보려니 어찌나 아쉽던지... 그래도 5시를 넘긴 후에도 거의 쫓겨나다시피 기념품 가게에 들러 우산도 장만했다. 짐 줄인다고 우산도 안 챙겨갔는데 캐나다에 가면 계속 비를 맞을 거라나 뭐라나... 마침 몇년 전 선물받은 우산도 잃어버렸겠다, 가느다란 핀스트라이프 들어간 분홍색 3단 자동우산을 골랐고, 며칠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다.
미술관을 나와선 아직 저녁 먹기도 이르겠다... 유니온 스퀘어까지 걸어갔다. 주변에 막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걸 보면 나름 관광명소인듯. 그치만 여기저기 어찌나 공사중인 곳이 많던지 소음에 귀가 멀 지경.
아니 5시 넘었는데 미쿡 사람들 왜 퇴근 안하고 아직까지 일하지? 신기했다. ^^; 엄청 오래전이긴 하지만... 뉴욕과 시카고 갔을 때 보면 건설노동자들도 5시에 칼퇴근하던데.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전차를 또 안 찍을 순 없지... 여행자들인듯 마침 전차에 매달려 가는 사람들 발견해서 가까이서도 땡겨 찍고... (요번엔 전차 안탔음. 돌이켜 보니 샌프란시스코도 세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보다, 두번째가, 두번째보다 요번 세번째가 더 좋았던 것 같다.) .
여정 첫날의 저녁은 한식파인 나의 친구를 위해 (이미 점심때 먹은 햄버거 때문에 느글느글하다고 밥 먹고 싶다고 하심;;) 일식으로 정했다.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제대로 된 캘리포니아롤도 먹고 스시도 먹자면서...
가운데 둥근 그릇에 든 2개의 메뉴는...
왼쪽은 그냥 참치회(연어회였던 것 같기도 하고 ㅠ.ㅠ..) 오른쪽은 일종의 회덮밥이다.
큰언니(앞으로 E언니라고 하겠다;;)가 미국 맛집/쇼핑 평가 앱인 YELP의 신봉자여서, 우리가 갈 모든 음식점을 이 앱으로 검색해 별점과 후기를 꼼꼼히 따져 골랐다.
TACO BAR라는 이 집도 근방에서 엄청 유명한 집인지,바에서 맥주 마시며 30분쯤 기다렸다가 간신히 테이블에 안내되었는데 우리 빼곤 죄다 서양인들이었고... 우리가 2인분으로 시킨 롤을 옆에 앉은 이십대 여자앤 혼자 다 먹더라. ㅎㅎㅎ 암튼 회 싱싱하고 푸짐하고 맛있어서 좋았다!
해가 지면서 LA와는 딴판으로 쌀쌀해지는 날씨에 놀란 우리는 밤이라 어차피 커피도 못 마시는데, 다들 술도 안 즐기는 터라 부른 배를 꺼뜨리겠다고 일부러 한두 블록 돌아가긴 했어도 일찌감치 호텔로 들어갔다.
카디건을 걸치고도 으어 추워... 호들갑을 떨며 호텔에 들어갔는데 로비 한쪽 옆으로 안뜰이라고 할지, 중정이라고 해야할지 건물 중간에 저렇게 모닥불 느낌으로 불을 지펴놓았더라. 가서 불쬐자며 쪼르륵 달려나갔는데... 가스로 만든 불이라 가스냄새 나서 사진만 찍고 얼른 퇴장했다.
우리만 예민한 건지, 물론 저 주변엔 소파나 안락의자에 앉아 신문이나 책 읽는 사람들 꽤 많았다. 암튼 이렇게 여정의 첫날이 저물었다.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상설 전시중인 천경자 전시실이 어떻게 바뀌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시립미술관 건물 자체를 좋아하니깐 뭐 그냥 보러가자 결심했었는데,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 반액할인 받지 않았더라면 본전 아까워했을 것 같다. +_+
어떻게 그나마 내 눈에도 좀 익고 좋아라하는 르누아르 그림은 단 한점도 없는지 원. ㅋㅋ
물론 르누아르가 그린 어여쁜 소녀들의 아름다움과 화사함을 보는 기쁨은 더러 있었지만, 마지막에 한 방에 몰아놓은 여체 그림들도 그저 그랬고 (모델 몸매를 너무 심히 보정해놓은 광고 사진을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나;;) 전체적으로 우와.. 그림 실컷 봤다.. 싶은 충족감이 덜했던 것 같다.
입장료는 13000원. 입장료만 놓고 보면 꽤나 야심찬 기획전인데 글쎄. +_+
그래도 전시 보러 갈 때마다 혼자 끙끙대는 놀이, 그림 한 점 가져간다면 뭘 가져가야하나 2, 3층 전시실을 유심히 2바퀴 돌며 괜한 고민에 빠졌고 두 작품 중 고민하다 어렵사리 하나를 골랐다. ㅋ
르누아르, 장미꽃을 꽃은 금발 여인
르누아르,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나의 선택은 왼쪽! 이유는? 오른쪽 그림도 예뻐서 좋았으나 고양이가 좀 무서워서.. ㅋ
그래도 요번 전시를 보며 르누아르와 내가 멋진 미술작품에 대한 관점이 똑같단 걸 알게 됐다. 사진 촬영이 금지여서 벽에 적혀 있던 글귀를 기억하진 못하겠는데, 암튼 예술은 무조건 아름다워야한다는 게 요지였다(고 기억한다). 역시.. 르누아르가 모공 하나 안 보이는 말간 피부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셀수없이 많이 그렸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군!
다른 때 같으면 집어온 브로셔를 책상에 세워놓고 몇달은 지켜보며 흐뭇해하는데, 색감이 하도 구려서 요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_-; 포스터에 나온 저 그림의 해맑은 소녀 얼굴을 어찌나 우중충하게 만들어놓았던지. 아트숍에 깔려있는 전시 기념품들의 색감도 하나같이 원작과는 동떨어진 게 많았다. 이왕이면 장미꽃 금발여인의 모습이 담긴 걸로 뭐든 하나 골라보고 싶었으나 어우 숭해... 해서 결국 요번 전시에 포함되지도 않은 엉뚱한 뜨개질 소녀 그림이 우울하게 담긴 저렴한 비닐파일 하나 집어오는 걸로 쇼핑을 끝냈다.
오후부터 눈발이 날려서 미술관 가는 발걸음이 괜스레 설렜는데 금방 비로 바뀌더니만 문화가 있는 수요일이라고 뭔가 공연을 한다던 것도 아무 말 없이 취소되고, 전시는 약간 성에 안 차고, 뭔가 마구 아쉬워서 뒤풀이 치맥에 괜히 욕심 부리다 속병이 도졌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 허세는 당분간 좀 참아야겠다. ㅠ.ㅠ
2017년 새해 들어 첫 전시관람은 훈데르트바서. 기대한 만큼 좋았다. 동화나라처럼 보이는 건축모형에선 가우디가 떠오르기도 했고 현란한 색감에선 얼핏 클림트 그림도 연상됐던 것 같다. 후기를 쓴다쓴다 미루다가 벌써 보고온지 한달도 훨씬 넘어 감흥이 가물가물 기억도 잘 안나지만 ㅠ.ㅠ 그나마 초기라서 사진 촬영도 허용해주었고(입소문 홍보용인지 요샌 초반에 작품 촬영 허용하다가 나중에 금지하는 전시 많은 것 같다) 마침 도록도 사온 터라 뒤적여가며 밀린 숙제를 해봐야겠다. 그날 만났던 그림들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놈의 허영심은 암튼...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나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주최측에서 '밀고 있는' 작품인듯. 사랑하는 여인에게 30일에 걸쳐 매일 fax로 보낸 그림을 이어붙인 작품이 있었다. 이름하여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 멀리 외국에 나간 연인이 매일 연서와 함께 이런 그림 보내주면 엄청 감동하지 않을까? ㅎㅎ 근데 나처럼 의심 많은 인간은... 나중에 작품 만들 욕심에 팩스 보낸 거 아니냐고 괜히 따지고 들지도 모르겠다. +_+ 그러거나 말거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여..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이렇게 천진난만한 느낌의 그림을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색감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
전시실마다 벽 색깔을 확확 달리 해놓았던데, 진회색, 진보라색, 주황색 같은 배경과 작품들이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대충 찍어도 막 화보같다고 자화자찬.. ㅋ
정식으로 건축을 공부한 적이 없다는데도 도면을 그리고, 또 그대로 건물이 지어지고 그런 사람에게 각 나라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기고...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일이겠지 싶어 더 대단하게 여겨졌음. 예로부터 건축가들은 흔히 반듯하지 못한 것을 잘 못견딘다고 하던데.. ㅋㅋ 가우디도 그렇고 훈데르트바서도 그렇고, 동대문디지털플라자를 설계했던 자하 하디드도 그렇고 이젠 곡선이 대세인 것도 같고... DDP도 우주선 같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보면 길게 경사진 잔디밭이 나오는데, 지표면과 길게 사선으로 이은 건물 지붕을 풀밭으로 정원으로 꾸민 훈데르트바서 건축물들 실제로 구경해보고 싶다. 창문권리라던가.. 나무 권리라던가.. 암튼 용적률따위 개나 주라는 듯 친환경적인 독특한 건물들을 많이도 지었단다. 실제로 열렬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고.
호주에서 폐 유리병으로 집을 지어 환경 친화적인 삶을 이어가기도 하고, 평생 환경운동가로 활약했기 때문에 지구를 지키자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빗물 활용하자고 호소하는 여러가지 포스터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도 <그린 시티>.
화가가 비오는 날씨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빗방울 모티프가 그림에 많이 등장했던 것 같다. 나도 비 좋은데! 그러면서 괜히 반색했음..
몇년 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가장 인기가 높았다는 <노란 집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도 많던데.. 나 역시 언제 한번 스케치로 따라 그려보고 싶은 작품이다. ㅎ
노란 집들 - 함께 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픕니다(Yellow Houses: It hurts to wait with love if love is somewhere else)
작품 부제를 읽고 보니... 저게 빗방울이 아니라 죄다 눈물방울이었어.. ㅠ.ㅠ
일본 여자를 애인으로 두었다던가.. 일본 목판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아예 백개의 물(百水)라는 호(?)를 정해 낙관도 찍은 작품이 많다. 백개의 물은 멋있으나 '백수'는 좀 웃김 ^^;
타오르는 물, 1991
브로를 위한 모자, 1994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드글드글한 가운데 색감이 예뻐서 찍어온 그림 두 점.
<타오르는 물>은 방콕 빌딩 꼭대기에서 그렸대고 물과 불을 서로 반대로 표현했단다. 오른쪽 그림의 주인공인 브로는 친구이자 스승인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ㅠ.ㅠ 사진 찍을 땐 그냥 예쁘단 생각 뿐이었는데 도록 읽은 뒤 다시 보니 파란 입술과 표정이 슬프게 느껴진다.
클림트, 에곤 쉴레, 그리고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특히 건물 ㅠ.ㅠ)을 직접 보러.. 오스트리아게 가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3월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관람료는 15000원. 도록은 3만원이다. 공식 포스터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진 도록을 사온 건 좋았지만, 저렴한덴 다 이유가 있는 건지 인쇄 질감과 색감이 대체로 좀 어둡고 푸르딩딩한 기운이 많이 느껴진다. 화려번쩍한 오리지널 엽서는 막 한장에 5천원씩 했던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 인쇄술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나? 쳇.. 실망이닷.
2016년 마지막 전시관람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이었다. 평창동 가나 아트센터에서 2월 5일까지 전시하고, 입장료는 3천원. 1, 2층 전시관이 꽉 차있고(전시 품목이 총 650점이라고;;), 건너편 구석의 작은 방까지 볼 거리가 많아서 가격대비 거의 횡재한 느낌이었다. 실은... 오후팀이었던 나와 달리 오전에 먼저 보러간 친구 하나는 심지어 주차장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티켓도 안 사고 그냥 공짜로 구경했다고. +_+
언뜻 생각하기론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수집했던 골동품들인가 했더니만, 그건 아니고 한국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공예품을 모아놓은 것 같다. 일상 생활소품 위주라서 재미난 것들도 많고, 예뻐서 갖고 싶은 것들, 신기한 물건들이 참 많았다. 옛날 사람들의 미감이란 참... 대단하다. 살림살이 넉넉한 양반들이나 아름다운 공예품을 누리고 살수 있었겠거니 싶은 마음에 괜히 심술이 난 순간도 있었는데, 사진엔 없지만 어느 일꾼이 벌통 나무 둥치에도 멋드러진 조각을 해놓은 걸 보곤 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본능은 양반이건 평민이건 다를 바 없었겠지.
엄청 추운 날이었고, 전시 보러 들어가기 전에 친구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식겁했다가 되찾은 뒤 막 온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에 찬 심경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감동하며 신나게 감상했다. 전시장을 나오기 아쉬울 만큼.
사진 촬영도 제지하지 않아서 아메바 기억력을 한탄할 필요 없이 원없이 마구 찍어왔기에.. 이 포스팅은 사적인 나의 감흥 기록보다는 사진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 또 어쩔 수가 없고.. ㅠ.ㅠ 그저 나의 기억 상기용일뿐.
희한하게도 전시장에서 제일 먼저 본 것이 '요강'이었다. ㅋㅋㅋㅋㅋ 중년의 우리들은 어린 시절 죄다 요강을 사용해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집에서 사용한 요강의 재질이 사기였다는 둥, '스뎅'이었다는 둥 킬킬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전시된 요강은 방짜유기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오른쪽 놋 요강과 함께 소음 방지를 위해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종이 요강'!
왼쪽 앞부분의 검은색 단지가 바로 종이를 꼬아 만든 '지끈'으로 엮은 종이 요강이다. 지끈으로 방수되는 요강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놀라워라 놀라워... +_+
맨 위쪽 알록달록하고 길쭉한 건 바느질용 '자'이고 그 아래는 바늘통이었던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활옷은 꽃무늬가 저게 다 빽빽한 자수다. 한벌 수놓으려면 최소 6개월쯤 걸린다는 것 같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물려 입거나, 온 고을에서 돌아가며 입었다지 아마. 어휴...
왼쪽 아래 인두도 예쁘고(손잡이 정교한 것좀 보소!), 사각형이든 아니든 실패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쓰시던 실패에도 옷칠을 하고 뭔가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기억이 아련히 나는데... 전쟁통 피란 통에 조선시대 물건이었을 리는 없겠지만 문득 그 실패가 막 아깝고 그리워졌다.
흔한 나무쟁반이려니 휙 지나칠 뻔 했던 이 물건들은 반짇고리란다. 한쪽 구석에 달린 작은 나무함에 바늘을 보관했고, 나머지 골무니, 실이니 하는 바느질 도구와 천을 여기 담아 일을 했겠지. 양갓집 규수나 마님이 자수 틀을 세워놓고 수를 놓는 광경이 막 상상되는 것 같았다. 전생에 침방 나인이 틀림없는지 바느질 도구에 특히 침을 질질 흘렸음. ㅋㅋ
둘이 나란히 있던 물건은 아니지만 가로사진이니 그냥 두개 붙여야겠다.
부채 섹션에서 '옛날 사람'인 우리가 또 반색했던 물건이다. 어린 시절 소풍 가면 꼭 이런 모양의 종이 부채를 하나씩 사오지 않았던가 말이다! 한바퀴 휙 둘러서 펼쳤다가 몇번 부치면 다 찢어지고 말았지만, 소풍 갈 때마다 괜히 사고싶어했으며, 여름이면 종이를 빽빽하게 앞뒤로 접었다가 절반 꺾어 풀로 붙여서 친구들이랑 만들기도 했던 부채가 그 옛날 조선시대부터 사용했던 휴대용 부채였다니 ㅎㅎㅎ
올 여름엔 빳빳한 종이 사다가 한번 다시 만들어봐? 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시장에서 딱 하나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면 나는 이 소반 중에 하나를 골라 갖겠다!고 생각하며 정말 심혈을 기울여 하나를 고르고 또 골랐는데 하나같이 정말 반질반질 탐이 나는 작품이었다. 막연하게 '개다리 소반'이라고만 알고 있던 이 앙증맞은 1인용 밥상, 찻상들은 원래 이름이 '호족반'이란다. 개다리가 아니고 호랑이 다리였어! '개다리 소반'도 없는 건 아니어서, 오른족 사진 중 왼쪽에서 두번째, 한쪽으로만 굽은 모양의 밥상 다리가 바로 주인공이다.
양반집에서도 군자의 미덕을 실천하고자 평소엔 반찬 서너가지에 장, 밥과 국을 올려 먹었기에 요 작아보이는 소반으로도 충분했다는 것 같다. 하긴 궁궐 연회나 잔칫집에서도 1인용 소반으로 각자 대접받았으니 내용물이 달라졌으면 몰라도 왕족이 아니고서야 혼자 커다란 상에 앉아 밥 먹은 사람은 없었겠다.
몇년 전 H백화점에서 밥상, 소반 특별전 할 때 제일 싼 게 4-50만원하는 걸 보고 흐엑~ 놀라 뒤돌아섰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은 더 비싸졌겠구나 싶다. 일단 전통 기법으로 소반 만드는 장인 분들의 맥이나 안끊기면 다행이지 ㅠ.ㅠ
여기다 배추와 무를 다듬어 담았다가 김치를 버무리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그러다가 박박 설거지 하기 참 힘들었겠지, 무거워서 어떻게 다루었을까 온갖 쓸데없는 걱정과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루 한 구석에 놓고 겨울에 과일을 담아놓고 집어다 먹으면 좋을 것도 같고.. 에효.
이건 다식판과 떡살.
다식판은 십수년 전 별별 걸 다 집에서 장만하고 싶어했던 왕비마마 덕분에 우리집에도 하나 있기 때문에 그리 신기할 게 없었는데, 저 동그란 떡살은 엄청 탐났다. 스탬프가 따로 없어! 물고기 모양의 떡이라니... 아 먹어보고 싶다. ㅠ.ㅠ
혹시 이게 국화빵, 붕어빵의 원조가 아닐까? ㅎㅎ
등불 가운데 신가했던 건 가운데 놓인 동그란 것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쓰는 등불이여? 궁금했는데 일종의 손전등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다. 들어보면 아랫부분이 뚫려 있는 모양새. 야경꾼 같은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고 안에 등불을 붙여 옆으로 들어서 비추는 방식이다. 돌이켜보니 사극에서 저런 등불 들고 가는 장면을 본 것도 같다. 촛대도 예쁘고, 등잔 장식도 정교하고... 호롱불도 우아하고..
오른쪽 사진은 대문장식이다. 울 외할머니댁엔 최근까지도 나무대문이 있어서 빗장을 열고 닫는 걸 해봤는데, 물론 저렇게 정교한 물고기 모양 장식은 아니고 그냥 둥글둥글하고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외할머니댁을 차지한 외삼촌이 과연 그 나무대문을 어찌하고 살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그 동네도 재개발은 물 건너간 거 같던데 흥!
마지막에 하마터면 못보고 나올 뻔하다가 사람들 따라서 골목을 이리저리 건너가 본 작은 전시실엔 도자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약간 찌그러진 것도 같은 이 달 항아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뒤쪽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푸르스름한 배경을 이루고 그 앞으로 따뜻한 조명을 받고 있는 동그란 항아리를 보면서, 아 이걸 왜 달 항아리라고 불렀는지 새삼 실감이 들었달까.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오려고 이런저런 사진앱을 죄다 동원했는데 그나마 이게 가장 비슷한 느낌으로 남은 듯.
일상에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름다운 물건들을 쓰고 살았을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가, 막상 그들이 이런 사치와 우아함을 누리도록 밑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겠나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것만은 아니지 싶다가, 어차피 문화라는 것이 대체로 가진 자들이 향유하는 것이지만 못 가졌더라도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것이야 뭐 다 마찬가지려니 했다. 그래서 나 또한 허세 같아 민망하면서도 이런 거 구경다니는 게 아닐까.
아 부끄럽게도 달랑 10권이다. 그것도 그림책 포함해서... 나부터 이렇게 책을 안 읽는데 출판업계가 망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매년 점점 더 책을 안 읽지? 올해는 사들인 책의 수도 예년에 비해 적었다. 여혐 범죄사건들을 접하면서 뭔가 나도 세상과 계속 싸우려면(?) 이론적인 재무장이 필요한 것 같아서 페미니즘 책을 읽고 정희진 책까지 세 권을 엮어 감상문을 쓰려고 했었는데 ㅠ.ㅠ 결국 안했다. 수다 떨 때도 종종 말문이 막히듯이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도 버벅버벅 버퍼링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며 좌절했다. 그래서 또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유명인의 촌철살인 조언과 함께 이런저런 글쓰기 에피소드를 담은 <쓰기의 말들>은 막상 읽을 땐 뭐 이런 걸 책으로 다 만들었나 싶었으나, 다 읽고나선 포스트잇 붙여둔 글귀를 다시 들춰보며 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유려한 번역으로 이름 높은 고 장영희 선생의 <슬픈 카페의 노래>도 말맛, 글맛을 따져보느라 원문을 상상하며 다시 읽은 책이다.
옛그림을 보는 법 - 허균 지음/돌베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지음/노지양 옮김/사이행성
정희진처럼 읽기 - 정희진 지음/교양인
빨래하는 페미니즘 - 스테퍼니 스탈 지음/고빛샘 옮김/민음사
쓰기의 말들 - 은유 지음/유유출판사
슬픈 카페의 노래 - 카슨 매컬러스 지음/장영희 옮김/열림원
앵무새죽이기 - 하퍼 리 지음/김욱동 옮김/열린책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5분 스케치 - 김충원 지음/진선아트북
베스트 3권 뽑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서 1권만 뽑는다면 단연 리뷰도 올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2. 2016년에 본 영화
셜록: 유령신부
캐롤
바닷마을 다이어리
굿바이 싱글
제이슨 본
국가대표 2
거울나라의 앨리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잭 리처: 네버 고 백
내부자들
귀향
나의 소녀시대
계춘할망
족구왕
의궤, 8일간의 축제
뷰티 인사이드
베테랑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위쪽 9편. 혼자 보러간 건 내 취향대로 골랐으나, 이제보니 누가 보러 가자고 그래서 얼결에 본 영화도 많다. 암튼 2016년 최고의 영화를 뽑는다면 역시나 영화관에서 2번이나 본 <캐롤> ^^; 근데 베스트 세 편도 어렵지 않게 고를 수 있겠다. 귀여운 자매들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좋았고,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흐뭇하게 봤다. '걸크러시'라는 말이 유행하듯 나 역시 '언니들'이 활약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당연한가? ㅎㅎ
2016년엔 하반기부터 밥벌이로 다시 영화 일을 시작해서 옛날 영화들도 많이 볼 기회가 있었다. 담당 PD가 나름 내 취향에 맞게 골라준 덕분인지 (조니 뎁, 키이라 나이틀리, 베네딕트 컴버배치 팬이라고 미리 알렸음) 좋아라 고마워라.. 그러면서 작업했다. 번역가로서는 어쩐지 퇴물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스스로 칭찬용, 펌프질용으로 포스터를 모아 편집했다. 방영일 아니고 작업일 기준으로 2016년엔 12편. 그 중에 무려 베니의 <이미테이션 게임>을 작업했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번역 작업 영화 중 Best 역시 팬심으로 일한 <이미테이션 게임>인데, <칠드런 오브 맨>도 좋았다.
기묘한 건 과거 국내 개봉 않고 dvd로 출시되었다던 <칠드런 오브 맨>이 공중파 방영일 즈음에 국내최초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는 사실. 이게 뭐람? 영화관과 방송 쪽은 어차피 저작권 관리 및 배급 루트도 다르고 수요자도 다른 듯, 상관없다나. 영화관 재개봉 자막은 누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라도 보러가고 싶었는데 당연히 게을러서 확인 못했다. 혹시 누가 둘 다 보고 자막 번역 비교한 사람 있나 나름 유심히 살펴봤는데 못 찾음. ㅎㅎ
3. 전시/공연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 국립고궁박물관
창경궁을 보듬다 - 국립고궁박물관
윤동주문학관
Color Your Life - 대림미술관
변월룡 회고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호안 미로 특별전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로이터 사진전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 - 가나아트센터
임태경: 그대의 계절
One Love Concert: 임태경 외 ㅋㅋ
위 두 전시는 포스팅을 했으니, 세번째 베스트로 뽑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전시도 포스팅을 할 계획이다. 사진도 엄청 찍어왔으니 자랑 삼아서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입장료 3천원에 완전 눈호강한 느낌이었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상생활 공예품인데 구석구석 예쁘고 사랑스럽더라.
공연은 임태경 광팬인 미쿡 친구의 소망 대리충족용으로 다닌 것. 체력 딸려서 공연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에 공연장의 빵빵한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으로 거의 기절할 뻔 ㅠ.ㅠ
한달에 2번씩 한번도 안빠지고 개근을 했으니 그만큼 많은 산을 다녔고, 스스로 뿌듯하다. 친구들과는 2월부터 주로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서울 근교산을 돌아다녔는데 주변에 갈데가 그토록 많다는 것에 감사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 남산 둘레길도 고즈넉하고 예뻤다. 조금 멀리 가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산이 도처에... +_+ 내가 이렇게 열심히 등산 다닐 줄 진정 몰랐는데 ㅋㅋ 이 열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것도 궁금하다. 모녀 가을 여행에서 작년과 확 다르게 좀처럼 운신을 못하시던 왕비마마 왈, 너라도 다리 성하고 건강할 때 많이 다니라고.. ㅠ.ㅠ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베스트 산 셋을 꼽는다면
원없이 상고대와 설경을 본 계방산, 홀릴 듯 철쭉이 아름다웠던 축령산, 울산바위를 뒤쪽에서 볼 기회가 있었던 금강산.
5. 기타
그밖에 올해 사들인 음반은 노장 투혼으로 새 앨범을 낸 스팅의 <57th & 9th>와 미리 김칫국 마시며 떼창 연습하겠다고 산 콜드플레이의 <A Head Full of Dreams> 딱 2장이다. 콜드플레이는 음원으로 몇곡만 사서 듣다가 내한 소식에 팬심 발휘해 CD도 샀는데 첫 공연에 예매 실패하고 완전 광분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추가공연 가게 되서 다시 애정하며 듣는 중. 스팅은 지난 앨범이 완전 뮤지컬 ost 여서 실망하고 옛날 노래만 듣다가 2016년에 그나마 신뢰와 애정을 회복했다. ㅎㅎ
드라마는 방에 있던 배불뚝이 TV가 완전 사망하는 바람에 잘 챙겨보지 못하고 있어서 기억나는 게 치즈인더트랩, 굿 와이프, 또 오해영, 닥터스, W, 역도요정 김복주, 도깨비 정도다. 주로 배우 선호도로 찾아보는 고로 공중파 드라마도 더러 보긴 하지만 손발 오글오글거리거나 전개가 마음에 안들어서 중간에 끊었다 다시 보고 그랬었다. 단막극 <페이지 터너>가 의외로 좋아서 탁상달력에 메모해둔 기억이 있는데, 그래도 대체로 열광하며 신나게 즐겼던 드라마를 한 편 꼽으라면 <또 오해영>!(<굿 와이프>로 했다가 방금 마음 바꿈 ㅋㅋ) <굿 와이프>는 전도연의 약간 비뚤어진 입매와 자연스러운 주름 덕분에 연기가 더 좋게 느껴졌던 것 같고, 나나의 연기도 유지태도 다 괜찮았다. 제발 중년 배우들 얼굴에 티나게 이상한 짓좀 하지 말면 좋겠다. 서현진 연기 좋고 사랑스러운 건 알지만 에릭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또 오해영>은 재방송까지 막 다시 찾아보며 헤벌쭉 했던 기억이 이제야 새록새록 떠오른다. 에릭이 음향 엔지니어로 나오는데 그 직업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제대로 보여주었던 점도 신선했고, 조연으로 나왔던 해영의 부모님이나, 예지원, 김지석 커플의 이야기도, 에릭의 이복동생 커플 이야기도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다루지 않아 좋았다!
그밖에 tv 프로그램에 상을 준다면 단연코 JTBC 손석희의 <뉴스룸>(뉴스룸 맨 마지막 노래 선곡까지 손석희가 직접 한다는 것 같다. 아아 이분은 정말... +_+ 기막힌 뉴스에 광분하고 허탈해 하다 마지막 흘러나오는 노래에 위로받고 그런 순간이 참 많았다), 그리고 에셰프의 활약이 놀라웠던 <삼시세끼 어촌편3>(에릭이 느릿느릿 신중하게 요리 할 거 다하면서 말도 별로 없는 거 진짜 마음에 들었다. 겸손하기까지 한 듯!), 일요일 밤에 생각나면 찾아봤던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방에 TV 없어서 잘 안 봤다더니 테순이같다. ㅠ.ㅠ)
2016년을 되게 빌빌거리며 암울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반백수치고는 잘 먹고 잘 놀러다니며 꽤 잘 살았던 것도 같다. 2017년에도 야금야금 재미난 일 찾아다니며 행복하게 지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