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8.09.22 이어지는 버리기 8
  2. 2008.09.19 버리기 12
  3. 2008.09.08 결심 13
  4. 2008.05.05 5월의 그 방 19
  5. 2008.04.28 자기만의 방과 역마살 17
  6. 2008.03.20 우유부단 17
  7. 2007.04.27 소음공해 8
  8. 2006.12.20 마리안느 관찰 일기 6
  9. 2006.12.16 머피의 법칙 6

엄마 대신 살림을 하면서 웬만한 음식들은 별 두려움 없이 척척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설거지는 워낙 요리보다 즐기던 거라 별 어려움이 없는데 역시 난관에 부딪치는 부분은 정리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오징어 볶음을 해먹었다고 치자. 일단 접시에 덜어 한끼니를 먹고 나면 당연히 남는 양이 있기 마련.  남은 음식을 뚜껑있는 보관용기에 넣으려고 할 때 난 왜 그렇게 음식 양에 <딱맞는>통을 짐작하지 못하는지.
무쳐놓은 나물이 통에 비해 엄청 많다고 느껴져 다른 그릇을 찾아들면, 엄마는 살림의 고수답게 넘치지 않게 통에 들어갈 테니 염려 말고 담으라고 하시는데 그 말은 늘 옳다.
그래서 또 많아 보이지만 다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관용기를 고르면 턱도 없이 작을 때가 많다. 한 마디로 눈썰미가 형편없고 크든 작든 공간감각이 부족하다는 얘기.

이번 이사 때도 그랬다.
작업실에 책이 얼마 없다고 생각했지만, 옷장 안에 두겹으로 겹쳐놓은 책들과 종류별 크고 작은 사전까지 챙기니 얼추 네박스나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똑똑한 사람 같으면 책의 권수를 세어, 버린 책의 권수와 따져보고 필요한 책꽂이 공간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멍청한 나는 책꽂이 선반을 세 개나 비웠으니 대충 책이 다 들어가겠지... 라고만 짐작했다가
이삿짐을 옮겨 박스를 풀고 나서 또 다시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_-;;

그래서 책 둘 장소 때문에 이번에 뒤늦게 또 대거 내다버린 것들은 비디오 테이프.
옛날에 중고 비디오 가게를 기웃거리며 사들인 테이프들은 그나마도 많이 버리지 못했고^^;;
dvd를 사두기 훨씬 전에 열심히 공테이프에 녹화해두었던 ER 시리즈,
케이블 영화채널 주간편성표를 들여다보며 한참 예약녹화에 힘쓰던 시절에 만들어둔 이런저런 영화 복사본들,그리고 EBS 세계의 명화와 명작드라마 자막번역한 영화들은 최대한 추려내고 다 내다버렸다.
3년간 들춰보지 않은 건 앞으로도 들여다볼 확률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몇편은 교육적인 EBS용으로 편집하지 않은 걸로 소장해두고 싶어서... (라지만 몇년 뒤엔 또 미련 없이 다 버리게 될 것 같다 ㅋㅋ)

내내 마르고 건조하던 날씨가 꾸물꾸물 흐려져 난데없이 비를 뿌리던 지난 토요일 오전.
드디어 나의 <자기만의 방> 시대는 막을 내렸고, 온몸을 근육통에 시달리며 또 다시 이틀 꼬박 이리저리 옮기고 내다 버리고 쑤셔넣어 정리를 했건만, 그럭저럭 제 모습을 찾은 건 마루와 자는 방뿐이다.
첫날엔 큰 집기와 책들만 대충 꽂아두고 엄두가 나질 않아 엄마방에서 자야 했을 정도.
작업실에선 그리 커보이지 않던 책상은 원래 컴퓨터 책상이 있던 자리에 놓이지 않을 만큼 길었고, 그래서 애써 자리를 잡아 옮겨 놓았던 책장은 또 다시 맞은 편 벽쪽으로 옮겨놓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또 다른 살림의 이동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크게 힘쓰는 일은 막내동생이 다 해주긴 했지만, 버리기와 정리 과정은 계속해서 고된 노동이었다.
아직도 컴퓨터방은 여전히 폭탄 맞은 상태. 면벽하듯 모니터를 대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여전히 CD박스, 정리하지 못한 가방들, 사진, 문방구가 가득 든 종이백들이 방바닥에 널려 있다.

그래도 오늘은 기필코 정리를 마치리라 마음 먹고 동사무소에 가서 대형폐기물 신고를 했는데, 크헉 소파는 무려 만원이나 한단다. 버리는 게 수월하지 않음을 상기시켜주듯 소파와 책상, 의자를 버리는데 드는 비용이 만육천원. 
알량한 작업실 살림 이사하면서, 삶은 단출하게 꾸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계속 얻고 있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욕심 줄이면서 검소하게 살아야지.

(아 근데, 구매대행사에 주문한 '검정가죽'가방은 왜 안오는 걸까... -_-;;)

Posted by 입때
,

버리기

투덜일기 2008. 9. 19. 03:04

청소와 정리.
운동과 더불어 내가 제일 못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연휴 이후 매일 청소와 정리에 힘쓰느라 컴퓨터 앞엔 거의 엉덩이를 붙일 새가 없었다.
20일까지 작업실을 비워주기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살림의 대이동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만의 방>에 대한 미련이 워낙 질기기도 했지만, 30년 가까이 이사라고는 해본 적 없는(작업실 시작할 땐 다 사들여 배달시키면 됐기 때문에 공식적인 '이사'날 나는 커피와 커피메이커와 머그잔 몇 개 든 비닐을 달랑 들고 입주했었다)  내가 트럭을 부르고 이삿짐을 꾸려 살림을 옮기는 어마어마한 일을 실행하는 것이 두려워 그토록 우유부단하고 미련맞게 쌩돈을 허비했구나 싶다. 옮길 짐이라봤자 소파랑 책상, 책 몇 박스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 짐도 그보다 크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이사' 스트레스 지수가 거의 '배우자의 죽음'에 이를 만큼 높다는 말을 이제야 실감하는 중이다.
계산 상으로는, 집에서 쓰던 컴퓨터 책상과 오래된 소파를 버리고 작업실에 장만했던 책상과 소파를 들여오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일단 내가 쓰는 마루에 있던 소파는 2인용이고 작업실 소파는 3인용이니 공간이 더 필요하고, 작업실 옷장에 들어 있던 책을 꽂을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마루에 있던 큰 책장과 방에 있던 낮은 책장의 위치를 바꿔 소파 놓을 공간을 일단 확보하긴 했지만, 그런다고 작업실 옷장에 들어있던 책을 꽂을 공간이 새로 마련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서 이참에 몇년에 한번씩 하는 <책버리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책은 잘 읽지도 않는 주제에 또 폼 잡는 건 좋아하니, 탐서가랍시고 책 욕심은 좀 많은가.
그나마 요샌 마구 사들이는 책은 좀 줄었지만 출판사에 갈 때마다, 또는 출판계 지인들이 주섬주섬 챙겨주는 책을 얼씨구나 받아와 여기저기 쌓아두곤 언젠간 다 읽어보리라 마음 먹지만 절반 쯤은 먼지만 쓰고 처박혀 있기 일쑤다.
이왕 버릴 책이라면 도서관에 기증하면 좋겠지만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그렇게 기특한 수고를 도맡을 리는 거의 없다. 지난번에도 도서관이든 하다 못해 대여점에라도 갖다주는 게 폐지로 팔려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오래 고민했지만 결국엔 귀찮아서 그냥 끈으로 묶어 집앞에 내놓고 말았었다.
이번에도 책장 한번 들춘 게 전부인 새책들을 대거 묶어 내놓으니, 엄마는 자꾸 잔소리를 하며 잘못 내놓은 게 아닌가 확인을 하셨다. 오래 두어도 절대 읽지 않을 것 같은 얻어온 새책들과 왜 굳이 사서 읽었는지 모를 책들까지 40여권을 추려내 버렸지만 그래도 책꽂이는 마냥 부족한 형편.
결국 엄마네 마루에 있는 책장까지 침범해 오래 된 아버지 책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무던히도 인내심을 발휘해 도전했다 포기하기를 수차례 거듭하며 읽었던, 책등이 누렇게 변한 세로판형 삼국지 양장본 같은 책들은 버리기가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눈 질끈 감고 내놓았다.
대체 왜 사셨는지 모를 거대한 판형의 10권짜리 총천연색 세계여행안내서도 내다버렸다.
백권도 넘는 책들을 추리고 묶어 내놓는데만 꼬박 반나절이 걸린 것 같은데, 어설픈 체력은 그 노동만으로도 나가 떨어질 지경이었고 추석 연휴 때 섭취한 영양분이 다 빠져버렸다.

꼬박 이틀간의 집정리와 청소를 마치고 작업실에 나가보니, 별것 없다고 생각한 그곳 살림살이도 만만치가 않았다. 집기 손상은 책임 못 지겠지만 힘센 인부들을 동원한 최저가 이사비용을 장담한 막내동생에게 이사를 맡기려니 포장 과정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컵과 잔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부엌 살림만 두 박스를 챙기고 나니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책정리를 앞두고는 달콤한 과자와 커피를 헐레벌떡 먹고 마셔야 했다. 

작업실 살림은 최대한 단출하게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그나마도 버릴 것이 많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겨 챙겨둔 책상 서랍속의 카드, 편지, 탁상달력은 버릴까말까 오래 고민하다 일단 그냥 벌려두고 철수했다.
정리는 못하지만,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건 꽤나 과감히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닌 듯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소규모는 이사랄 것도 없지만, 이사는 곧 <버리기>라는 걸 깊이 실감하고 있다.
이제 이틀만 더 버리기에 힘쓰면 끝.
본격적인 이사는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삭신이 쑤시고 아프다. 어휴.

포장이사를 하면 또 다르긴 하겠지만, 나 같은 인간은 2년마다 한번씩 이사다니며 부동산 늘려 부자될 생각 꿈도 못꿀 것 같다. +_+
(처음 글을 쓸 땐 이런 결론을 내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간만에 글을 쓰니 완전 갈팡질팡이다 ㅋ)
Posted by 입때
,

결심

투덜일기 2008. 9. 8. 21:00
우유부단한 인간이 또 어렵사리 결단을 내리고 나면 냉혹하기가 이를 데 없다.
가족 이외의 지인들이 대부분 나를 (잘 몰라서;;) 성격 좋다, 착하다, 믿음직스럽다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반해, 내 정체를 속속들이 잘 아는 가족들은 나를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매몰차고 냉혹한 내 성질 때문일 것이다. ^^;

아무튼 1년 넘게 질질 끌던 고민을 완벽하게 끝내고 작업실을 청산하기로 결심한 것이 지난주 금요일.
5년째 자동으로 연장된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관리인 아저씨에게 작업실을 내놓아야겠다고 알리니 아무 걸림돌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날로 바로 오피스텔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더니만 오늘 벌써 계약이 되었단다.

지난주 금요일에 바로 유선전화도 해지했고, 위약금을 내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 인터넷 전용선도 끊었다. 일단 저지르고 보니, 뭘 그렇게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며 생돈을 퍼버렸나 싶을 만큼 모든 것이 간단하다.
대단한 핑계거리로 작용했던 소파와 책상을 집으로 들여오는 문제도 아마 금세 해결될 게 뻔하다.
아깝긴 해도 지금 쓰는 컴퓨터 책상이랑 리폼해서 쓰던 오래된 소파를 버리면 될 일.

일이 너무 빨리 진행돼서 추석 전까지 방을 빼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는데
그나마도 20일까지만 비워주면 된다니 추석 쇠고 나서 여유롭게 처리해도 될 상황이다.

물론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나만의 방>을 포기한 터라
가슴 한구석에 휘휘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고는 있지만
생각만큼 참담한 기분은 아니다.
아직 실감이 덜 나기 때문일까.

우유부단함은 결국 단호함이 부린 게으름이었던 모양이다.
보증금을 손에 쥐자마자 훌쩍 떠날 수는 없다는 현실이 좀 슬프긴 해도
등신처럼 빌빌대던 심리적인 방황이 어느정도 갈피를 잡았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Posted by 입때
,

5월의 그 방

삶꾸러미 2008. 5. 5. 00:09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인 5월이 시작되었지만, 가정의달이기도 하기 때문에 계속 슬픔이 따라다니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버이날 선물을 뭘로 할지 두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비용도 절반으로 줄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다 살아계실 때 어버이날 부담이 네 배, 다섯 배였어도 오히려 좋았던 것처럼 상실과 부재의 크기는 현실적인 편리함과 결코 비교할 수가 없다.

5월의 첫 포스팅은 뭔가 행복한 것으로 하고 싶었는데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가도 생각나는 쓸 거리는 죄다 우울한 푸념이나 울분의 토로밖에 안될 것 같아 며칠 전 볕 좋은 날 잠깐 작업실에 나간 김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만의 방 모습을 블로그에도 담아두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내 살림과 남의 살림을 주제로 달랑 두 장 찍어와서 올리려고 지금 보니 사방을 다 찍어올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음에 가면 입구쪽이랑 그저 새하얗기만 한 붙박이 장쪽도 찍어와야지. =_=

유복한 어느 선배가 분양받은 오피스텔처럼 한쪽 벽면에 질좋은 나무로 책장을 짜넣어 책을 빼곡히 꽂아넣지도 못했고, 호수나 강이 내다보이기는커녕 창밖 경치는 빨간 벽돌로 지은 다른 건물이 전부이며, 화분은 10개쯤 죽여 내보냈고 남은 화분도 누렇게 마른 잎들이 불쌍하게 매달려 있으며, 완전히 내 소유도 아니라 처음엔 못을 박고 액자를 걸어도 될까 소심하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작업실에 나가 앉아 있으면 단출한 살림살이 속에서 비로소 세상과 마음껏 단절될 수 있다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4년전 작업실을 마련했을 때 나만큼이나 좋아했던 지인들은 아직도 <작업실로 한 번 놀러갈게>라고 벼르다 서울 귀퉁이에 있는 나만의 방에 찾아와 차 한잔 마시는 게 마치 남들 모르는 예쁜 카페 하나 찾아 놓았다가 아주 가끔 가보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 골목 구석의 인적 드문 카페가 영 장사가 안되는 바람에 문을 닫는다고 하면 몹시 섭섭한 마음이 들듯, 내가 작업실을 포기할까 고민하는 걸 알고 그들도 덩달아 마음이 씁쓸하다나.
나만의 방과 유럽여행을 바꿀 것인가의 결정은 우유부단한 마음속에서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중이고, 만날 적자만 내면서도 어거지로 손님 없는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처럼 나도 씁쓸한 웃음 지으며 4월분 관리비 청구서를 집어들고 돌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살림>을 주제로 찍은 사진인데 창문 옆에 붙어 있는 건 비상시에 몸에 묶고 뛰어내리라는 밧줄이 들어 있는 하얀 플라스팅 상자이므로 유일하게 내 살림이 아니다. 그래도 뚜껑에 샤갈전 팸플릿을 붙이고 위에 밤의 카페 테라스 액자를 올려둔 건 내 소행임.
오후 햇살이 저렇게 비쳐드는 걸 보면 서향이란 얘기다. 누렇게 잎이 말라 몰골이 형편없긴 하지만 화분에 햇살이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블라인드는 늘 걷어놓고 다닌다. 소파가 햇빛에 허옇게 바라든 말든...
2년 전엔가 출판사 부탁으로 dmb방송에 나가는 책소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번역하는 사람의 작업실이라니까 책꽂이 앞에서 촬영하면 되겠다고 자기네 마음대로 생각했던 담당 pd가 와서 보고는 작업하던 책 말고는 다른 책이 한 권도 안보이는 작업실 몰골에 살짝 난감해 했다. ;-p
몇권 안되는 책들은 그나마도 붙박이 옷장에 숨어 있는데, 수십년 가까이 짐으로 빼곡한 옛날 집에 살고 있는 나는 이 공간에 별로 짐이 없다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
(그렇지만 제버릇 못버리고 책상위는 늘 어지럽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쪽은 건물주인이 원래 장만해놓은 <남의 살림>들이 주축을 이룬다. 그렇지만 전자렌지와 설거지 건조대, 커피메이커, 의자는 당연히 내 살림. 4년 넘게 저 주방에서 해먹은 요리는 라면이 유일하고 드럼 세탁기는 딱 한 번 써봤다. *_*
게을러서 컵을 있는대로 다 꺼내놓고 쓰다가 더는 쓸 컵이 없어지면 설거지를 하는 편이라 매일 출근할 때는 싱크대가 늘 만원이었는데... 간만에 나가 컵들이 건조대에 쌓여 있는 걸 보니 어째 버려진 자식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걔네들은 더러워진 채 개수대에 켜켜로 쌓여 있을 때 버려진 느낌일 텐데)

또 언제 나가게 될지 몰라 갈 때마다 화분에 물을 잔뜩 주고 오는데, 주인 잘못 만난 화분들한테 노상 미안하다. 

Posted by 입때
,
회사를 때려치우고 번역을 해보겠다고 작심했을 때, 막연한 내 바람과 달리 초보자로선 출판계쪽 번역일을 맡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당연히 겁에 질렸고 과연 잘한 짓인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때 마침 친구가 솔깃한 얘기를 했다. 애송이 띠동갑이랑 결혼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오빠 때문에 걱정스러워서 둘의 사주를 보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가겠냐는 것. 신내린 무당이 치는 <점>과 달리 사주는 <나름> 통계와 과학을 근거로 한 것이라며 꼬드기는 친구의 말에 못이기는 척 따라가며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라고 스스로 핑계를 대긴 했지만 난생처음 내 운명을 점치러 가면서 나는 심장이 꽤나 두근거렸다.

그날 킥킥거리며 귀담아 들었던 나의 사주풀이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은 당연히 그해 독립해서 사업(?)을 시작할 운세라는 것과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얘기였다. 어차피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이니 당분간 백수생활을 이어가며 차츰 살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방향만 잡아놓은 상태에서 누군가 <그게 니 운명이야>라고 힘주어 말해주니, 사주니 점이니 하는 거 다 미신이라고 여기면서도 어찌나 힘이 되던지 한 1년은 자투리 같은 일만 하며 준백수로 살아도 거뜬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 사주보는 아저씨에게 또 한 가지 아주 신나는 말을 들었으니, 그것은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는 얘기였다. 다행스럽게도(?) 내 역마살은 계속 정처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오긴 하는데 조금 지나면 또 엉덩이가 들썩거려 떠나고 싶어지는 쪽이라나.

해마다 어느 시점이 되면 꼭 바다가 보고 싶어 몸살이 나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안달을 내는 것도 다 내 운명이라는 훌륭한 핑계를 얻게 된 나는 그 때부터 기회만 되면 떠나는 삶을 꿈꾸며 살았던 듯하다. 적금따위는 평생 들어본 적도 없으니 원고료가 들어와 통장에 조금만 돈이 모이면 어딜 갈까 마음이 설렜고, 다양한 여행지를 경험하진 못했지만 1, 2년에 한번씩은 <재충전용>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달아 여행을 선언했다. 멋진 휴가를 꿈꾸며 일년 내내 열심히 번다는 외국인들의 삶이 곧 진리라고 여기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내 인생의 모토로 삼기도 했다. 통장잔고가 바닥나도록 여행에서 돈을 톡톡 털어 다 쓰고 돌아오면 불안감보다는 "또 열심히 벌어서 여행가야지!"라는 동기부여가 더 컸다. 남들에겐 대책없고 한심해 보일지라도 나에겐 행복하기 그지없었던 그런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3년 전엔가 엄마가 쓰러져서 오래 병원신세를 지고 그 뒤로 좀처럼 반짝 건강을 회복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작년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이제 크든 작든 여행을 떠나려면 어린아이 맡기듯 엄마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가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에도 내 역마살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질 않고, 다만 짜증스러운 현실에 몸부림을 칠 뿐이다. -_-;; 계획대로 제주도로 떠난 지인들이 보낸 위로용 바다 사진과 메시지를 받은 순간 충동적으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지금 그 터무니 없는 생각으로 마음이 마구 설렌다. 밀린 원고고 뭐고 다 젖혀두고 작업실을 처분해 그 돈으로 유럽으로 날아가 돈 떨어질 때까지 한 달 쯤 편하게 여행다니다 올까보다 하는 생각이다. ㅋㅋㅋ

오래 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연간 5백 파운드의 고정수입이랑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5백 파운드면 꽤나 큰돈이어서 남편이나 가족에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처음 내가 작업실을 마련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5백파운드 대신에 나는 <계약금>과 <원고료>를 받을 수 있으니 가족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생기면, 비록 글을 쓸 능력은 안되더라도 더 열심히 훌륭한 번역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벌써 10개월째 거의 비워두고 있는 작업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망설이는 이유도 처음 내 능력으로 확보한 <자기만의 방>의 의미가 퍽이나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 자유의 공간을 포기하고 한달만에 보증금을 다 까먹을 생각을 겁없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하하.
그런데 생각할수록 유쾌하다. 작업실 재계약일이 지나서 일년은 또 묶여 있어야 하는지 마는지 현실적인 상황도 알아보기 전에 나는 벌써 파리엘 다시 갈까, 이탈리아와 그리스엘 갈까, 아님 프라하나 스페인엘 갈까 뭐 이런 꿈을 꾸며 벌벌 웃음을 흘린다.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만약 작업실을 포기하게 되면 그 돈을 정기예금에 넣어야 하나 위험하게 펀드를 들어야 하나 아니면 기회 닿는 대로 다시 장만해야 되니까 입출금 통장에 그냥 넣어두어야하나, 뭐 그런 경우의 수만 생각했지 홀라당 까먹고 놀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에, 억눌렸던 역마살의 발현은 지금 내게 거의 발상의 전환 수준으로 뿌듯하다.

그런데 남은 문제는...
역시나 가장 어려운 가족의 굴레다. 새삼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혼자임을 즐기는 인간인지 깨닫게 된다. 이런 내가 어려서 실수로라도 가족을 꾸렸으면 참 큰일냈겠구나 싶다. 지금 내가 꿈꾸는 건 분명 <가족여행>이 아니라 홀로 떠나거나 친구와 떠나는 여행이다. 자기만의 방과 홀로 떠나는 단기 여행을 바꾸려는 나는 과연 제정신인가. 생각 좀 해봐야겠다.
Posted by 입때
,

우유부단

투덜일기 2008. 3. 20. 20:38
<우유부단함>은 내 성격 가운데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좋게 말하면 생각이 많고 신중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매사에 자신이 없고 변덕이 심하며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우유부단함은 곧 시간의 지연과 게으름으로 연결되며 결국엔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도 피해를 미친다.
흔히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인물로 햄릿을 손꼽는데, 멋있게 고민하는 척하다가(실제로도 고민이 심하긴 했겠지만)  결국 해야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죽어나가는 것은 죄없는 주변 사람들이니 참으로 짜증나는 인간유형이 아닐 수 없다.  
멋드러지게 표현하여 햄릿은 이른바 <사유형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건 말 만들기 좋아하는 후대 사람들이
생각해낸 과잉포장일 뿐, 햄릿이 그리 <깊은 사유>를 한 것 같진 않다.
무슨 일이든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나처럼 변덕이 죽끓었겠지.
마지막으로 햄릿을 읽은 것이 대학원 시절이라 당연히 기억도 아스라하므로 이렇게 씹어대는 것이 부당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의 결론은 우유부단한 인간이 <매우>짜증난다는 사실이다.

아주 옛날에 둥그런 눈이 쏟아질 것처럼 약간 튀어나온 여자 가수가 목청껏 부른 노래가 있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이젠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대강 이런 가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새 그 노래의 후렴구가 수시로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구시렁거린다.
<웃기지 마라. 살아보니 내 인생이 나의 것인지도 모르겠고, 중대사는 누가 내 대신 좀 심각히 고민하고 화끈하게 결정해주면 좋겠다. 책임은 내가 지더라도...  어른이랍시고 강요되는 의무와 책임은 왜 또 그리 많은지. 정신연령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건만 매순간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는 인생은 가끔 너무 버겁단다.>

원래부터 논리적인 사고력은 그리 뛰어난 인간이 아니었고 결단력과 행동력도 꽤나 떨어짐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도무지 결단을 못내리고 이랬다 저랬다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으니 정말 환장 일보 직전이다.
 
작업실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9개월간 작업실에 나올 수 있었던 날은 한달에 한두 번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비워둔 날이 많았으니
논리적으로 따지면 당장 문을 닫아야 옳다.
사실 이 정도의 작업실은 더 욕심만 안 부리면 언제든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3년 번역인생 가운데 작업실을 가졌던 건 겨우 마지막 4년. 처음 9년은 당연히 집에서 일했으니
새삼 못할 것도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90%는 작업실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 가닥을 잡았는데 나머지 10%가 도저히 포기가 안되는 거다.
알량한 핑계는 작업실 소파와 책상을 집으로 가져가려면 트럭을 불러야할 텐데 그게 귀찮고
좁은 집에 놓을 데도 마땅치 않다는 것. -_-;;
그리고 가끔은 홀로 도망쳐 나올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연 5백만원 정도의 유지비를 완전히 <낭비>하면서라도 마냥 비워두게 될지도 모를 작업실을 유지하는 건
확실히 사치이고 미친 짓인데... 그런데도 포기가 안된다. ㅋ
아마도 그건, 완전한 독립이 거의 불가능한 늙은 딸에게 생겨난 <혼자만의 숨쉴 공간>의 의미가 퍽이나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4년간이나 꿰차고 있다보니, 완전 내 집도 아니면서 마치 내 소유인 것 같은 느낌이고
작업실에서 하는 일과 집에서 하는 일엔 엄연한 질적 양적 차이가 존재한다.

휴...
가스비 청구서 챙기러 또 실로 오랜만에 작업실에 나와 앉으니
다시 10%의 미련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근데.. 재계약일 한달 전에는 집주인에게 통보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_-;;
혹시... 어영부영 우유부단하게 혼자 끙끙대다 내심 자동 재계약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및 지인들 소집해서 투표라도 해봐야하는 건지 원.

암튼, 커피 한잔 마셨으니 얼른 또 왕비마마께 돌아가야지.
욕심 같아선
아주 가끔, 겨우 한 시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이 공간을 남겨두는 게 좋겠다고 누가 좀 팍팍 밀어주면 좋겠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

소음공해

삶꾸러미 2007. 4. 27. 10:47
어제는 정말 피곤한 날이었다.
아침에 잠시 눈 붙였다가, 엄마 모시고 병원가서 오전 오후로 나뉜 진료 받고 점심 먹고
백화점 들러 반찬 사오고.. 그것도 피곤의 여러 요인이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오피스텔 건너편에 새로 개업한 어느 음식점 때문이었다.

요즘은 어떤 업종이든 일단 개업을 한다고 하면
알록달록 풍선 아치가 세워지고, 바람을 쏘아 올려 미친 듯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이상한 인형 형상이 자리를 잡고, 옷을 훌러덩 벗어젖힌 예쁜(별로 안 예쁜 경우를 많이 보긴 했다만;;;) 행사 도우미가 요란한 음악과 함께 동작 맞춰 춤을 추어대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내가 가장 혐오하는 요란한 방송도.
주로 도우미 두 명이 뒤에서 춤을 추는 사이 대표격인 도우미가 헤드셋 마이크를 단 채
호객행위를 하는 건데, 요새 음향시설이 어찌나 좋은지 4차로 길 건너편에서 왕왕대는 소리가 창문을 꼭꼭 닫아도 귀에 거슬릴 만큼 들려왔다.

물론 내가 좀 예민한 편이고
번역을 시작해서 좀 유연하게 일이 진행되려면 처음에 책에 몰입할 수 있을 만큼의
정신집중이 필요한데, 이런저런 소음이 들리면 그게 방해가 되어 진도가 대단히 부실해진다.
내가 멀쩡히 집에서 일할 수 있는데도 굳이 작업실엘 나가고
또 집에선 오밤중에만 일을 하는 이유도 다 그런 것 때문인데
가끔 작업실 근처 건물에서 인테리어 개조가 시작되면 은근히 겁부터 난다.
또 얼마나 요란하게 개업식을 해댈것인가 싶어서...

시끄러워서 미칠 것 같은 요란한 개업식 행사가 벌어질 때마다 난 확 경찰에 신고를 할까도 생각하지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일 터인데 우선 새로 장사 시작하려는 주인한테도 못할 짓인 것 같고, 업소 주인한테 문제가 될지, 시끄럽게 호객행위를 한 도우미들한테 문제가 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실천을 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뭐... 안면 방해를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너도나도 개업식엔 반드시 행사 도우미를 데려다가 이상한 옷 입혀 놓고
스피커 볼륨 최대로 올린 뒤 호객행위하는 게 왜 유행이 되었는지 참으로 못마땅하다.
정말로 그런 언니들을 동원하면 장사에 도움이 될까?
지나가는 자동차들마저도 속도를 늦추고 구경을 하느라 길앞이 오후 내내 번잡했던 걸 보면
시선을 끄는 데는 분명 성공한 듯한데, 그게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까?

암튼... 어제 밤중까지 종일 피곤하고 짜증스러워 투덜대는 바람에
집에 오자마자 시체놀이를 했더니만 오늘은 '덕분에' 아침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이런 걸 '덕분'이라고 해야하는 거 맞겠지. ㅋㅋ

어젠 정말 층간 소음 때문에 폭행사건이 벌어지는 상황이 마구 이해되는 날이었다.
바늘 들고 가서 풍선 아치를 죄다 터뜨려버리거나
건물 분전함에 몰래 접근해서 전기 스위치를 확 내려버리는.. 그런 상상을 오후 내내
했으니 말이다.
설마 오늘은 조용하겠지? 개업 이틀째도 그 난리를 치는 건 정말 아니겠지?
음... 걱정이다.
이제 일에 가속도를 붙여야 할 시기가 왔거늘.. 흠..
Posted by 입때
,
1년에 물 한 번만 주면 된다는 장담과 함께 선물받은 선인장도 죽이는 여자가 아무렴..
당연한 결과겠지만, 100일 넘게 나름대로 최대한 정성을 들여 키우던 마리안느가
확실히 죽어가고 있다.

메디컬 드라마나 병원 나오는 영화를 보면, 환자가 숨을 거두어도
의사가 공식적으로 사망선고를 하지 않으면 죽은 게 아니다.
화분 전문가도 아니면서, 나 역시 억지부리듯 죽어가고 있음이 분명한...
어쩌면 벌써 죽은 것인지도 모를 화분의 사망선고를 애써 미루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그 녀석을 얼마나 정성스레 돌봤는지 여기저기 끄적인 글을 죄다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 시절 자연 시간에 강낭콩 키우며 쓴 관찰일기가 생각나
여기 모아놓기로 했다.

정말로 마리안느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날 너무 속상해지면,
이 글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아보려는 알량한 생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싱싱하고 건강하던 녀석들의 처음 모습





잘하면 살아날 것도 같던 녀석들은 나날이 잎이 누렇게 변해갔고
누런 잎을 잘라주면서 모양새도 차츰 앙상해졌다.
이제 초록 부분은 거의 안남은 상태...

식물에도 생명이 있다면 그간 수없는 원망을 들었겠지만
이 녀석은 특히 떠나보내기가 안타깝다.
죽기 전까지 공기청정기 대신으로 이용해먹으려는 심산이긴 했어도
정말 이 정도면 최대한 정성을 들였던 거라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뜻하지 않게 며칠 전에 생긴 포인세티아 화분 두 개랑 수경재배용 개운죽도
이파리 세 장 남은 아마존과 함께
과연 내 악의 포스 속에 얼마나 살아남을 것인지.. 흑흑..
Posted by 입때
,

머피의 법칙

삶꾸러미 2006. 12. 16. 02:11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자기중심적인 편견에 불과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오늘은 좀 이상했다. ㅠ.,ㅠ;;;
1.
밖에 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비즈니스용 외출이라 드물게 정성을 들여 머리를 매만졌는데 (물론 내 솜씨야 늘 어설프지만)
우산을 쓰기에도 안 쓰기에도 어정쩡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우산 펴고 접는 그 짧은 와중에 머리가 금세 망가지고 말았다.

결국 난생 처음 만나는 출판사와의 상담이 시작될 무렵
내 왼쪽 머리 한 줌은 볼썽사납게 삐쳐 있었다.
차라리 드라이나 하지 말것을..
꾸물대며 머리 만지다가 약속시간에도 10분 늦었단 말이다!
(아..  겉치장 하느라 중요한 약속에 늦는 거.. 정말 내가 싫어하는 행동유형인데! ㅜ.ㅡ)


2.
게다가 출판사가 자리잡은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반갑게 아는 체하는 이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대번에 내 이름을 부르며 언젠가 어느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나를 봤다는데 나는 완전히 깜깜.. 이름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못 알아봐 죄송하다고 말하며 대충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외출하던 바로 그 사람이 출판사 대표님이란다.
아유 민망~
사람 얼굴 기억 잘 못하는 병 때문에 민망한 경험이야 많지만, 이번엔 좀 더
싸가지 없이 굴어서(실은 약속시간에 좀 늦어서 서두르느라 ㅜ.ㅜ) 더 나쁜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 같다.

3.
며칠 뒤 생일인 우리 정민공주님이 고모에게 특별히 부탁한 선물을 사기 위해..
그리고 작업실에서 있을 송년모임 준비를 위해 이마트엘 갔는데
분명 재고 있다고 전화로 확인까지 하고 갔음에도
울 공주님이 원하는 문제의 '분홍색' 디카폰이 없었다. ㅠ.ㅜ
노랑색이 있긴 했지만, 그건 '절대로'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받은 터라 식겁했다.
집 근처 완구매장이 떠올라 퇴근 길에 그곳에도 들려봤지만 품절이란다.
근육덩어리 미국 배우가 나왔던 sold out 이란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어흑...

4.
오후엔 청소한답시고 깝죽대다가
작업실에서 유일하게 3년 가까이 푸르름을 자랑하는 테이블야자 수경재배 화분을 떨어뜨렸다.
ㅠ.ㅠ
유리구슬이 온 방안으로 다 튀기고, 뿌리째 바닥에 나뒹굴던 테이블야자 포기를
다시 담아두긴 했지만 과연 탈없이 계속 살아줄 것인가 걱정이다.
수없이 죽어나간 화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생명력을 자랑하던 녀석이니
희망을 품고는 있지만, 워낙 화분죽이기 대장이라 몹시 겁난다. 흑흑..

5.
집에 오려고 주차타워에서 차를 빼려니
난데없이 에러가 났다.
다른 때는 그냥 에러 해제 버튼을 눌러주면 해결되더니
'운전중 좌측미러 감지'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꿈쩍도 하질 않아 결국
주차기계 A/S 센터에서 사람이 나와야 했다. ㅠ.ㅠ
내년 4월이면 입주 만 3년이지만 그동안 단 한번도 사이드미러 안 접고 다녔어도
이런 일 단 한번도 없었는데 웬 낭패람.
처음부터 거울이 문제가 됐으면 주차타워 입고조차 안 돼야 정상인데 멀쩡히 작동하다
출고할 때만 문제가 될 건 또 뭔가...
하지만 차가 약간 한쪽에 치우쳐 입고됐을 경우 거울을 안 접으면 그런 일이 간혹 생긴단다.
그치만 맹세코 지금까진 단 한 번도 문제가 없었단 말이다! 잉잉잉...
늦은 저녁이라 얼른 집에 가서 밥먹으려고 씩씩대고 내려왔다가
늦어진 것도 속상했지만, 단순한 실수로 공연히 바쁜 사람 오라가라 전화하는 사태 만든 내가 넘 싫었다.
으휴..

6. 집에 돌아와서 쇼핑목록 적었던 쪽지를 죽 읽어보니...
역시나 적어갔는데도 빠뜨린 게 있었다. 미쳐미쳐...
내일 모임에서 선물교환을 할지말지 모르지만 그래도 준비는 해놓을 생각이었는데
맨 마지막에 하늘색 형광펜으로 적어놓은 걸 빼먹는 심보는 뭘까나. 참...

이렇게 주르륵 적어놓고 보니 어째 머피의 법칙이라기보다는
나의 미련함과 정신머리없음이 총체적으로 발현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더 사고 안 치고 이미 하루가 지나버렸으니 다행이라 여겨야지.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