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다'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4.08.10 지갑과 사례금 7
  2. 2013.12.09 누가 가져갔을까 8
  3. 2013.10.07 장장 9개월 16
  4. 2013.09.30 가을은 독서의 계절? 8
  5. 2013.05.22 흰머리 미스터리 15
  6. 2012.07.26 귀걸이 4
  7. 2012.01.26 빗질 13
  8. 2011.08.18 까탈의 궁극? 15

지갑과 사례금

투덜일기 2014. 8. 10. 15:04

지난번 등산을 갔을 때 작은 배낭에 먹을 것과 얼음물을 하도 바리바리 쌌더니 평소보다 너무 무거워서 꽤나 애를 먹었다. 등산애호가 후배 말로는 당일 등산이라도 너무 작은 맹꽁이 배낭 말고 무게 분산도 되고 혹시나 넘어졌을 때 몸도 보호해주는 적당한 크기로 사는 게 좋다고 했다. 그간  계속 검색하고 골라보고 고민하고 실제로 매장에 가서 구경도 한 배낭을 결국 사들였고, 그 김에 평소 들고다니는 가죽지갑 대신 휴대폰이랑 신용카드 한 두장 넣을 수 있는 작은 천지갑도 함께 샀다. 배낭 끈에 찍찍이로 매달 수 있는 형태의 손바닥만한 검정색 지갑이었다.

 

그러고는 어제 등산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글쎄 신분당선을 갈아타는 도중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서울 지하철 중엔 처음에 한번, 그리고 나중에 내릴 때 한번만 교통카드를 찍으면 되는 노선이 있는가 하면, 신분당선 같이 민자 도입 전철은 중간 중간 갈아타면서도 환승 개찰구에서 다시 계속 카드를 찍어야 한다. 정자역에서 갈아타고도 금방 또 내려서 카드를 찍어야 하므로 내내 배낭에 매달고 다니던 지갑을 손에 들었던 게 문제였다. 전철을 타고 널널하게 빈 의자에 앉아 배낭을 껴안고 뻐근한 다리를 쉬려는 찰나 허걱, 지갑이 없다! 맙소사... 분명 손가락에 끼고 있었는데 어디갔지... ㅠ.ㅠ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교통카드도 거기 들었고, 현금도 거기 넣어두었는데! 또 휴대폰은 어쩌나! 최악의 경우 집에 갈 차비 한 푼 없는 상태였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달랑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ㅠ.ㅠ) 후다닥 다음 역에서 내려 반대방향 열차를 타고 다시 정자역으로 갔다.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도 아까워 다다다다 계단을 뛰어 오르고 내려 내가 앉았던 전철역 벤치를 찾아보았지만... 지갑은 없었다. 혹시 검정색 지갑 못 봤냐고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도리도리... 남은 가능성은 역무실로 가보는 것 뿐이었다.

 

개찰구 앞에 있는 역무원은 혹시 지갑 주워온 사람 있나 물어봤더니 모르겠다며 역무실로 가보라고만. 개찰구 호출버튼을 누르고 지갑을 잃어버려서 혹시 신고 들어온 거 있나 물어보려 한다고 했더니, 혹시 아이폰 들어 있는 검정색 지갑이냐고 묻는다. 네, 맞아요! 철커덕 잠겼던 비상문이 열리고 역무실로 달려가니, 내 지갑이 맞았다. ㅠ.ㅠ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 보여달라는데, 다 빼놓고 왔으니 원.. 그래도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번호 확인을 하고 잠긴 패턴 풀어 다시 통화기록까지 확인한 뒤 지갑을 돌려주었다. 어휴... 안에 신용카드도 무사히 들어있다고. 헌데 현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

 

5만원짜리 1장, 만원짜리 1장, 천원짜리 2장 들어있었는데... ㅋㅋㅋ (왜 하필 별로 쓸 데도 없으면서 현금은 또 그리 많이 가져갔을까!) 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내가 다짐한 것이 있었으니--어쩐지 지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뜬금없이 50퍼센트쯤은 들었다.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혹시 누군가 지갑을 주워 맡겨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고마운 사람에게 지갑에 든 현금을 몽땅 사례금으로 주어야지 하는 결심이었다. 그랬었기에 지갑에 들었던 현금이 홀라당 사라졌어도, 그저 다행이다 고맙다 역무원들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했다. 역무원들은 원래부터 현금은 없었다며 찝찝하다고 걱정했지만, 원래도 사례금으로 다 줄 생각이었다고, 그분이 미리 챙겨간 셈 치면 된다고 얘기하고 역무실을 나왔다. 지갑 주워준 사람도, 지갑을 열어보고 현금을 발견한 순간 이 정도 사례금은 받을 만 하다고 자평하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지갑 못 찾았으면 당장 집에 갈 일도 깜깜한 상황에서(그럴 땐 역무실에서 차비도 꿔주고 그러나?? 문득 궁금 ㅋㅋ) 신용카드며 휴대폰까지 무사히 되찾았으니 진짜로 얼마나 다행인가. 돈 잃어버리고도 기분 좋은 경험은 또 처음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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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30권에 혹해 결국 읽지도 못한 책들을 두번에 걸쳐 나눠 반납하고도 몇권은 일주일 대출연기를 했지만, 또 다시 금세 돌아온 반납일. 책 한권은 연체까지 됐다고(분명 다 같이 대출연기했는데 왜 한권은 안됐는지 그것도 미스터리;;;) 자꾸만 문자가 날아오는 바람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오늘 다시 도서관엘 올라갔다. 마침 프린트할 것도 있고 해서... (고장난 프린터 내다버리고 스캐너만 놓고 살다보니 드물게 인쇄할 게 있으면 예전엔 집근처 pc방엘 갔었다. A4 1장당 100원 이었나 200원의 거금을 내야한다는 것이 함정. 게다가 컬러 프린트는 무려 장당 1-2천원! 사진 같은 건 2천원이고 일반문서는 천원. 그러다 도서관엘 가면 흑백문서를 장당 50원에 인쇄할 수 있단 걸 알고 애용중. 컬러프린트도 장당 700원. 비교적 저렴하다)

 

암튼... 책을 반납하면서, 연체료 2200원을 낸 뒤 대출정지를 풀어 아직 미련이 남은 책 세 권은 도로 빌려왔다. 이번엔 과연 다 읽을 수 있으려나. ㅠ.ㅠ 그러고는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디지털자료실에 내려가 먼저 usb에 담아간 사진 파일 컬러프린트를 직원에게 부탁했다. .  

바로 이 그림... ^^;

1868년 신정왕후(고종을 양자로 들여 왕위에 오르게 한 인물)의 회갑연을 묘사한 <무진년 강녕전내진찬도>라는 병풍 그림이다. 좀 흐리기는 하지만 궁궐안내할 때 써먹을까 싶었던 것...

 

구겨질까, 혹시 비에 젖을까 일부러 가져간 투명비닐파일에 인쇄한 걸 고이 담아 프린터 옆 테이블에 두고, 예약해둔 컴퓨터에 앉아 다른 문서를 출력했다. 5분도 채 안된 시간...

 

출력한 문서를 같이 담으려고 프린터 옆 테이블을 쳐다보니, 그림이 없다. ㅠ.ㅠ

인쇄비 700원과 비닐파일값 아까운 것보다도 너무 황당하잖아!! 아니 왜 도서관에서 남의 물건을 집어가나?? 내용물보다도 비닐파일이 탐났을까? 천원이면 사는 흔한 건데!

 

기가 막혀서 도서관 직원에게 방금 인쇄한 컬러그림 잃어버렸다고 하니깐, 그분은 괜히 한바퀴 디지털자료실을 돌며 컴퓨터질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도둑놈이 아직 거기 앉아 있을 리가 없잖아...  쳇...

 

째뜬 내 불찰이니 다시 인쇄를 부탁했는데, 나이 지긋한 직원 아저씨께서 두번째 인쇄비 700원은 안받고 그냥 해주셨다. ㅎㅎ 다른 데도 아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과 도둑질은 어쩐지 전혀 안어울릴 것 같지만,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 심리인듯.

 

문득 10여년 전 Y대 도서관에서 엎어져 자다가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던 때가 생각났다. 시험기간이라 누가 자리 좀 맡아달라고 해서 바로 옆자리에 책가방을 두고는 엎드려 깜박 졸았는데 어느틈엔가 사라져 버렸었다. 돈과 신용카드, 신분증이 든 지갑도 문제였지만 가방에 든 열쇠고리엔 집열쇠와 자동차열쇠가 같이 매달려 있었다. (여벌의 자동차 열쇠가 하나 집에 있긴 하지만, 자동잠금장치 없이 그냥 열쇠로 돌려 열면 요란하게 알람 울리고 난리가 난다. 물론 당시엔 그것도 모르고, 머리가 하얘졌다. 뾱뾱이 없이 자동차를 어떻게 열 거냐고! 어쨌거나 돈 꿔서 택시타고 집에 가 그 여벌 열쇠라도 가져와야 하나?)

 

말 그대로 '멘붕'이 되어 망연자실했던 나는, 가방 훔쳐가는 것도 모르고 엎어져 잠든 걸 자책할 새도 없이 열람실 문에 도둑에게 보내는 메모를 써붙였다. ^^; 지갑은 됐으니 열쇠만이라도 돌려달라고. 그러고는 도서관 건물 화장실을 꼭대기층부터 다 뒤졌다. 도둑들이 가방이나 지갑 훔쳐서 귀중품 빼고나면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경비 아저씨의 조언을 참고했던 거다. 징징 울지도 못하고 기가 막혀 도서관을 배회하는데... 띵동~ 문자 메시지가 왔다. 4층(5층이던가;; 암튼;;)  열람실 맨 안쪽에 가방 두었으니 가져가라고... ㅠ.ㅠ  도둑은 여전히 도서관 건물에서 활동하며, 내가 써붙인 읍소의 메모를 읽고 답장까지 보내준 거다. 정말로 그곳에 가보니, 나의 누런색 '루카스' 천 배낭이 떡하니...

 

집열쇠, 자동차 열쇠는 물론이고, 돈만 쏙 빼간 지갑도 고스란히 가방에 들어 있었다. 의외였던 건 '여행용 휴지'가 없어진 것. ㅋㅋㅋ 도둑이 감기라도 걸렸었던 걸까. 암튼 난 가방과 지갑과 열쇠까지 되찾았으니, 참 친절한 도둑도 다 있다고 막 감탄을 했던 것 같다. 혹시 학생 아냐? 주변에선 날아온 문자 번호 신고하라고 난리였지만, 바보가 아닌 한 자기 번호로 문자를 보냈을 리가 있겠나? (요새도 되는지 모르지만 그땐 휴대폰에서 문자 보내는 사람 전화번호 조작이 가능했다;;)

 

대학 도서관에는 늘 상습적인 도둑들이 상주하고 있어서 가끔 뉴스에 체포 소식이 들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동네 도서관에선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규~~!! 난 동네 도서관에서도 가끔 가방 자리에 놓고 잠깐씩 데스크 직원한테 뭐 물어보러 가고 그러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굳게 결심했다.

 

그나저나 A4용지 그림 달랑 한장 든 비닐 파일을 가져간 도둑은 대체 왜 그랬을지 몹시 궁금타. 귀중품도 아닌데.... 혹시 우산이 없어서 머리 가리고 뛰어갈라고 그랬으려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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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9개월

투덜일기 2013. 10. 7. 01:09

이만하면 나도 끈기가 있는 건가 싶은 하나의 성취.

결과적으론 1년도 못 채우고 끝나고 만 알량한 안식년을 맞아 새로운 배움으로 시작한 궁궐 공부. 1월부터 석달간 교육받고, 현장 답사 다니고, 봄부터 뜨거운 여름까지 수습활동에 힘쓴 끝에 드디어 9월말에 모든 과정을 끝냈다. 중간에 관둘까 말까 고민도 되고 나가기 싫어서, 또는 바빠서 몇번 빠지기도 하면서 일단은 마무리를 짓기로 결심해놓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도 계속 고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버텨낼 수 있을지 그 또한 미지수다. 뭐랄까, 내가 그간 생각해온 나름의 취향과는 워낙 맞지 않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숫기도 없고 낯선 사람들이 단체로 한꺼번에 쳐다보면 움츠러드는 '주목공포증'도 있는 게 분명하고, 생활한복은 '도를 아십니까' 관련자들이나 입는 '도나기 복장'이거나 머슴/몸종 같아 보여 싫다고 부르짖던 내가...

 

어찌보면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생각에 종종 억울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모름지기 자원봉사란 여유있고 잘난 사람들이 벌이는 일종의 '허세놀음'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정식으로 2주에 한번씩 궁궐 안내를 시작했다. 문화재청 소속 해설사들은 1시간 안팎으로 깔끔하게 딱 끝내는 해설을 자원봉사자들은 친절하게도 1시간 반은 기본, 더 자세한 해설을 원하면 3시간까지도 정성을 들여 구석구석 안내를 한다. 각자 만든 안내 매뉴얼을 모조리 익혀서 관람객 수준에 따라 적절히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드넓은 궁궐을 쏘다니며 떠들어대려면 체력이 필수!

 

마지막 수습활동 이후 근 한달간 집에만 콕 박혀 있다가 엊그제 정식 활동을 시작한 날, 오전에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중2 여학생들과 1시간 반, 오후에는 천방지축 초딩들을 데려온 열혈 학부모들과 2시간을 꼬박 돌아다녔더니 집에 와 장렬히 전사한 건 물론이고 일어나 보니 입술과 입안이 다 부르텄다. 또 한 번 이 뭔짓인고 싶어지는 순간. 게다가 초절정마감기간에 연일 밤샘까지 ㅠ.ㅠ

 

그런데도 우스운건 그런 부담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말의 '보람' 같은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다. 배워도 배워도 도무지 끝이 없는 듯한 역사와 건축, 동양사상, 한옥 관련 지식들을 주워듣는 기회가 많기도 하지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졸졸 따라다니는 관람객들을 대하다 보면 왠지 궁궐과 한옥 애호가 동지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정말 귀엽다! 교생실습 나갔을 때도 편애할 수밖에 없는 예쁜 아이들이 있음을 깨달았지만, 궁궐에 현장학습을 나온 아이들 중에서도 하는 짓 예쁜 아이들은 척 보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따분하다는 듯 시큰둥하게 굴던 여중생들도 "얼른 그늘로 들어오세요, 여러분 피부는 소중하니까요!"라고 한 마디 해주면 빵 터져서 잘 따라온다. 귀여운 녀석들... 

 

암튼 그래서 싫어하는 생활한복을 떨쳐입고 한달에 두번이나 내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의미다. 으뜸 궁궐에 어울리게 이왕이면 화려한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선배 해설사샘들은 철철이 수십만원, 심지어 백만원도 넘는 멋진 한복을 장만하는 모양이지만, 고1 이후 한복을 입어볼 기회가 전혀 없던 나로선 그나마 비교적 저렴한 생활한복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내 기준으론 저렴하지도 않아! 다달이 회비 내고 활동하는 자원봉사를 위해 이미 의상비에 수십만원을 지출했다는 것이 나도 놀랍다. 그치만 내 눈에 전혀 안 예쁜 옷을 입을 순 없잖나... ㅠ.ㅠ 이러다 나중엔 나도 눈 뒤집혀서 막 수공예 전통 한복 맞춰입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ㅋㅋ

 

엊그제 안내 도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자경전 앞에서 열한살짜리가 던진 질문. "어? '십장생'이래! 그거  욕 아니에요?" +_+ 요즘 애들은 '시베리아'와 더불어 '십장생'도 욕이라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줄 알았나보다. 어휴... 십장생은 말이죠, 욕이 아니라 죽지 않고 아주 오래 사는 열 가지 자연과 생물을 말하는 거예요. 해, 달, 구름, 바위(산), 물, 거북, 학, 사슴.. 등등을 가리키지요. (나도 아직 다 못외었다 ㅋ) 어쩌면 배워야 할 게 무궁무진하고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아직은 이 난데없는 시도에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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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쯤 동네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올초에도 몇달간 공사로 휴관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또 휴관을 한다나.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휴관 안내가 아니라, 10월 1일부터 12월 초까지 방음공사를 하는 휴관기간을 맞아, 대출 책 부수를 30권까지 늘려주겠다는 것이 문자의 요지였다. 앗... 2주만에 책을 안 돌려줘도 된다고?

 

올 9월달까지 읽은 책이 총 20권도 안되는 주제에, 두달만에 30권을 읽어볼 생각은 대체 왜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암튼 사고 싶은데 비싸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축과 한옥관련 책들을 위주로 열심히 책 목록을 만들었다. 괜히 강박적으로 소설책도 많이 끼워넣고...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빌려가 반납예정일이 12월까지로 되어있는 책들이 꽤 있었는데, 내가 보고팠던 책 중에 2권짜리  반납일이 딱 내가 책 빌리러 가려는 날이길래 예약을 해놓고는 일부러 늦은 오후까지 버텼다. 나처럼 소심쟁이면 기일 맞춰 반납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 그 책은 그날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지난주에 빌려온 책이 무려 26권. 배낭도 매고 에코백을 챙겨갔음에도 책이 다 안들어가서 매고 들고 한아름 안고서 3층을 내려와 주차장까지 가는 것도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많은 책을 낑낑대고 운반해 집에 쌓아놓고는 괜히 흐뭇했다. 나는 확실히 독서가가 아니라 '장서가'를 지향하는 인간이 틀림없다. 내 책도 아닌데 왜 흐뭇?

 

그러고는 며칠 지나서 또 날아온 문자. 내가 예약한 책이 들어왔으니 29일까지 대출하러 오라는 거였다. 두 달 안에 26권을 다 읽을 자신도 없으면서, 왜 또 그 책은 읽어볼 욕심이 나는지 원. ㅠ.ㅠ 그간 부지런 떨어서 읽은 책 2권을 반납도 할 겸, 예약 책을 찾으러 일요일 오후에 또 구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트 장바구니 같은데 책을 잔뜩 담아가지고 둘이 낑낑대며 도서관 앞 언덕길을 내려오는 엄마와 아이를 보았을 때 이미 짐작했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도서관은 주차장 입구부터 차가 엉켜 아수라장이었다. 30권 대출 욕심을 부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직원이 나와서 들고 나는 차들을 한참 정리하고 난 뒤 주차할 데도 없어서 건물 뒤 쓰레기 하치장 옆에 대충 차를 박아놓고는 부리나케 들어갔더니, 주로 아이들 대동한 아빠, 엄마들이 죄다 한아름씩 책을 안고 끙끙대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편의를 봐주느라 현관 문을 붙잡아주다보니, 꼼짝없이 계속 문만 붙잡고 있어야 할 판! 에라 모르겠다 나도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네 사람이나 문 잡아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딱 한번밖에 못 들었다. 쳇...

 

열람실에 올라가 지난번에 못 찾은 책도 다시 한권 찾아들고 예약한 책을 받아 총총 도서관을 나오며 또 다시 주차장 아수라장 속에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는데, 짜증보다는 신기하단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일까? 의외로 이 동네 사람들 책 많이 읽네? 두권 돌려주고 세권 더 빌려 왔으니 나도 30권은 못 채웠어도 29권이나 빌렸다! 다 읽고 갖다줄 수 있을까? 몇권이나 그냥 돌려주게 될까?

 

몇년 전인가, 도서관에 신간도서 신청을 하면 남들 안본 깨끗하고 따끈한 새 책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여기다도 자랑했던 것 같은데, 바로 그해였나 그 다음해엔 도서구입 예산을 다 썼다면서 신간도서 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공지를 본 게 떠오른다. 도서관에서도 예산이 없어 책 구입을 못할 정도니 출판계가 말라죽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책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더 기운이 빠졌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에 3-40만권씩 쏟아져나오는 신간이 모두 다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운영주체가 국가든 지자체든 개인이든 이 나라의 모든 도서관에서 한권씩 신간을 구비해준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출판사마다 초판은 다 팔 수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 과거엔 보통 책의 초판을 2천부 찍었으니까.

 

그러나 요즘에 초판을 2천부 찍으면 각종 언론사와 홍보용으로 배본하는 500부 말고는 죄다 반품이라 물류비용만 많이 드니 아예 초판부수를 천부로 줄였다는 출판사도 많다고 한다. 그나마 좀 팔리는 책도 마케팅용으로 반값 할인하다보면 판매부수는 많아도 결국 계산해보면 적자일 때도 있고. 출판 종사자의 얘기를 듣다보면 하루 빨리 책에 기대어 밥벌이하는 인생을 청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드는데, 또 막상 무슨 일을 새로이 하겠나 싶어 그냥 한숨만 푹푹 쉴 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암튼 그렇게 출판사 망해가는 이야기만 듣다가 도서관에서나마 후끈한 대출 열기를 목도하고 오늘은 괜한 희망에 젖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이렇게 블로그에라도 광고하면 괜한 오기가 생겨서라도 빌린 책 독서에 더 열을 쏟지 않겠나. 나도 궁금하다. 저 책중에 몇권이나 다 읽을지. ^^; (사실 비싸서 살까말까 망설이던 책들은 좀 읽어보고 괜찮으면 와우북 페스티벌 할 때 가서 할인가에 장만할 욕심도 없지 않다. 과연 게으름과 장서욕 중에 어느쪽이 승리할 것인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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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인들은 대부분 머리를 새카맣게 염색해 10년쯤 젊어보이는 쪽을 택하는 게 대세지만, 왕비마마는 염색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보다 더 늙게(!) 보는 경우가 많아 가끔 속상해하시면서도, 염색비 안들어 좋고 머릿결 좋아져서 좋단다. 정말로 몇달에 한번씩 미용실에서 염색했을 땐, 가느다란 머리칼이 파시시 까슬까슬 비비면 금세라도 다 바스라질 것처럼 윤기가 없더니, 염색 안한 이후엔 머리칼도 굵어지고 윤기도 생겨났다. 완벽한 백발이 아니라서 어떻게 보면 좀 지저분해 보이는 은발이지만, 다른 할머니들의 까슬까슬 파시시한 인공적인 검은 머리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내가 보기에도 마음에 든다.

 

나 역시 염색을 안한지 10년쯤 된 것 같다. 예전엔 나도 검정머리는 고집스럽고 촌스러워 보인다는 미용사의 권유에 따라 지조 없이 밝은 갈색, 붉은 갈색, 자연 갈색 돌아가며 머리칼을 염색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 귀찮아졌다. 염색을 많이 하면 모발의 유전자가 변형된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도 신경이 안 쓰인건 아니지만 (그건 파마도 마찬가지라던데 뭐;;), 보통 6개월씩 미용실을 안가고 앞머리만 집에서 대강 자르곤 하는 나에게 두세달 만에 다시 모근을 물들여줘야 하는 염색은 너무 귀찮은 일. 비용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왕비마마처럼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굳어졌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남들에 비해 좀 늦게 세기 시작한 머리털 덕분이었다. 주변을 보면 삼삽대에 이미 수많은 새치가 나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염색을 한다는 이도 있고, 염색을 안하면 스컹크 수준이라 주변에서(특히 배우자와 아이들이) 더 질색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사십대 들어서 한두 개씩 새치가 나는 정도여서, 비록 머리숱이 지극히 적음에도 새치가 보이면 뽑아버리는 쪽이었다. 그런 내게 친구들은 머리칼 한올이 소중한데 그걸 왜 뽑느냐고! 호통을 쳤다. -_-; 더욱이 나는 이십대부터 정수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속알머리 없는 사람이었거늘.

 

허나 오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작년부터는 나에게도 흰머리가 '다량으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끝은 검은데 중간부터 흰머리인 것도 보이고(모근이 드디어 늙은 거다 ㅠ.ㅠ) 아예 흰머리로 나는 것들도 양쪽 옆통수에 각각 열개씩 출현! 얼마 전엔 정수리에 바짝 서서 난 흰머리를 왕비마마가 뽑아주셨다. 옆으로 누워있으면 그냥 놔두겠는데 튀어나와서 보기 싫다고...

 

우리는 원래도 잡곡밥을 먹어왔지만,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염색약 알레르기 때문에 염색을 포기한 이후로는 서리태와 흑미를 꼭 밥에 넣어 먹어왔고, 서리태 콩자반도 밑반찬으로 자주 등장한다. 검은콩, 흑미, 오징어 먹물 따위의 블랙푸드를 먹으면 좋다니까 먹긴 하면서도 정말로 검은머리가 나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쩐지는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왕비마마는 작년부터 머리칼이 다시 검어지기 시작했다. 이마 위쪽 머리는 거의 다 새하얬었는데 거기서부터 검은머리칼이 사이사이 나왔고, 귀밑머리 부분도 다시 검게 변하는 중. 왕비마마는 내가 먹거리를 잘해먹여서 회춘하는가보다고 (원래 노인들의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피부도 젊어지는 회춘은 90살 넘어야 하는 거라고 들었다;;) 좋아하신다. 검게 변해가고 있는 왕비마마의 은발은 동네 미용사 아줌마도 인정하는 사실.

 

그런데 똑같이 서리태, 흑미 넣은 잡곡밥 먹고 콩자반은 엄마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데(콩을 잘먹어 '콩순이'란 별명도 있었던 나는 어린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콩자반을 노상 싸줘도 좋아했었다) 왜 나는 흰머리가 점점 많아지고 왕비마마는 검은머리가 새로이 나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이듦을 받아들이겠다며, 앞으로 흰머리가 많이 나도 염색은 안하고 버티겠다면서 흰머리가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고 싶은 나의 이 심보는 또 뭔가? ㅠ.ㅠ

 

머리칼 한올한올이 소중한 나이란 건 나도 알지만, 자꾸 뽑아버리면 모근이 스무번쯤 머리칼을 내놓다가 결국 말라죽고 만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들었지만, 당분간은 흰머리가 보이는대로 족족 소탕하고 말 기세다. 흰머리 자꾸 난다고 징징대는 나에게 머잖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그나마 여지껏 먹어온 서리태와 흑미 효과를 본 것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친할머니를 닮아서 (식성은 확실히 닮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왕비마마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위로를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남들과의 비교우위로는 성에 차질 않는다. 중년 이후의 삶이란 확실히 심신의 늙어감에 적응하는 과정인 듯한데, 노안도 그렇고 흰머리도 그렇고 적응과 체념보다는 버럭 화가 나고 슬퍼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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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투덜일기 2012. 7. 26. 09:55

인체의 복원력은 대체로 놀랍다. 간이식 같은 것까지 멀리 갈 것도 없다. 얼굴에 한번 생긴 주름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지만 글쎄? 수시로 밤샘을 하며 잠을 좀 부실하게 자면 얼굴은 금세 자갈밭이 되고 만다. 세수할 때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과장하면 그대로 자갈밭이요, 곧이 곧대로 표현하자면 좁쌀밭(?)이다. 거무죽죽 변한 눈밑이나 넓어진 느낌의 기미 같은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또 하루 이틀 푹 자고 일어나면 세수할 때 느낌이 다르다. 어랏, 다시 맨들맨들해졌네. 물론 어른이 되고 나선 백옥같은 아기 피부였던 적이 통 기억나지 않으며, 아무리 잠을 푹 잔다고 회춘 같은 게 이루어질 리는 없다. 수십년 넘게 중력의 힘을 받아온 볼살은 확실히 아래를 항해 차츰 늘어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자고 빈둥거리면 확실히 낯빛은 나아진다. 세포분열과 재생의 힘일까?

 

그러나 인체의 복원력은 때로 좀 귀찮다. 예를 들면 20년쯤 전에 뚫어놓은 귓불. 당시 처음 귀를 뚫고나서도 엄청 고생을 했다. 남들은 사흘쯤으로 말짱해진다는 먹는 항생제와 연고를 일주일도 넘게 먹고 발라도 귀가 땡땡 부으며 피가 막 났다. 금속 알레르기인가 싶어 금 재질로 바꿔 끼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아픈 수고를 허사로 만들 수가 없어 근 1년 가까이 고생을 참아야 했다. 좀 멀쩡해졌다가도 술만 마시면 덧나고 난리! 젠장, 또 내가 20대 직딩시절 또 좀 애주가였나. ㅎㅎ

 

귀걸이 구멍이 완전 자리를 잡고 나서도 또 한참 귀걸이를 안하다 새삼 끼워보려면 저항이 느껴졌다. 안 익은 돼지고기 젓가락으로 찔러보듯 귀걸이로 귓불을 마구 쑤시는 것처럼 복원일로에 있는 구멍을 다시 확보해야 할 때도 많았다. 으으, 징그럽고도 집요하다. 그치만 그래도 20년쯤 지났으면 이제 한 몇달 귀걸이를 전혀 안하다가 불시에 시도해도 구멍이 온전히 남아있어야 정상 아닌가? 내 생각은 그런데 막강한 인체의 재생력은 그렇지가 않다. 어제 또 근 몇달만에 귀걸이를 했더니 아 젠장, 오른쪽이 또 말썽이다. 쫄깃하게(?) 오른 새살이 구멍을 막아서는 느낌이 들더니만 억지로 귀걸이를 하고 나선 역시나 좀 부었다. 

 

귀 뚫었다가 잠시 소홀히 한 사이에 홀라당 막혀버린 사람은 주변에 널렸다. 그래서 다시 또 뚫기도 하던데 나는 한번 막히면 또 다시 뚫을 용기가 없다. 20년 전에도 한쪽만 뚫고 아파서 관두겠다고 도망치는 걸 엄마가 붙잡아 앉혔었다. 미리 사놓은 귀걸이 아까워서 안된다면서... 지금 내 마음도 그렇다. 혹시 나중에 귓불이 막히면 언젠가 친구 하나가 그랬듯이 주변에 귀걸이를 죄다 나눠주면 되겠지만, 귀걸이는 팔찌, 반지와 더불어 나의 기호품이라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귀걸이 타령을 하고 있자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귓불에 걸거나 다는 장신구를 뜻하는 우리말은 '귀고리'만 표준어였다. 그러다가 '귀걸이'도 표준어로 인정된 건데, 아직도 가끔 책에서나 만나게 되는 '귀고리'라는 낱말은 참 어색하고 낯설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왜 귀걸이 귀걸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었는지 원.

 

아무튼... 똑같은 세포분열과 재생의 힘이건만 귓구멍 막히는 건 짜증내고, 피부색 좋아지는 건 반기고, 변덕스러운 주인 때문에 내 몸도 참 고달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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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질

투덜일기 2012. 1. 26. 17:54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꽤 오래 전부터 나는 빗질을 하지 않는다. 곰곰이 돌이켜 보아도 대체 언제 시작된 습관인지 모르겠다. 머리를 보글보글 볶고 나서부터인가?(파마를 하고 나서는 '컬'이 망가지지 않도록 '도끼빗'이라고 하여 빗살이 아주 성긴 거대한 빗을 사용해야 한다고 들었고, 과거 그런 도끼빗이 우리집에도 있었다.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하지만 요샌 줄곧 생머리인데. 암튼 내방엔 아예 납작한 빗(일명 comb)이 없다. 대신에 헤어드라이 할 때 쓰는 둥근 롤브러시와, 일반 브러시가 하나씩 있기는 하다. 그나마 머리를 말릴 때 롤브러시를 앞머리와 옆머리에 대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쓱쓱 빗어내리기는 하므로, '빗질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받을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그 행위는 내게 '빗질'로 여겨지지 않는다. 빗질이라 함은 납작한 빗이든 브러시든 손에 들고서 머리칼 전체를 쓱쓱 빗어내려야하는 거 아닌가? 난 그런 거 안한지 정말 오래됐단 말이지.

차르르 윤기나는 머릿결을 위해서는 열심히 빗질을 해주어야 한다는데, 오래도록 빗질을 생략하고 대충 털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쓱쓱 정돈한 다음 헤어드라이어로 말릴 때도 롤브러시 대신 손가락으로 말거나 빗는 것이 나는 더 편하다. 물론 그 때문인지 머릿결도 엉망이다. 가뜩이나 숱도 적고 얇은 머리칼엔 점점 히마리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나이들면서 죄다 보글보글 아줌마 파마들을 해대는 이유도 생머리로 버틸만큼 숱과 결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이든 친구들이 귀띔을 해준다. 너도 얼마 안 남았어, 얘. 원래도 숱이 적어 속알머리가 들여다보이던 머리칼은 더욱 부실해졌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머리칼이 빠져서 브러시에 마구 끼어있는 걸 빼내는 것도 고역이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도, 브러시에 끼어 엉킨 머리칼도 나는 잘 못보겠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머리 길이가 계속 짧은 편이었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으나(실제로 30대의 대부분은 숏커트로 살았던듯) 최소 10년은 넘게 '제대로' 빗질을 안하고 지냈음을 새삼 깨닫고 보니 스스로도 퍽 신기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까? 게으른 나만 그런가? 빗질 안하기를 처음 내게 조언했던 건 분명 미용실이었다. 젖은 머리를 빗으로 빗으면 상하니깐 빗지 말고 수건으로 탁탁 털어 말린 후 손가락으로 슥슥 어루만지며 말리라고 말이다. 그러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미용실에서 그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지 않을까? 물론 나처럼  그말을 십수년째 별 생각 없이 고수하란 법은 없겠지만.

하여간에 머리 길이와 상관없이 빗질 안하는 습관이 뿌리깊게 박힌 나머지, 요즘처럼 머리칼을 마구 방치하여 꽤나 길어지고 나면 이놈의 머리칼이 마구 엉킬 때가 있다. 특히 머리감고 나서 잘 안말린 채 비비고 잠을 잔 뒤엔 어김이 없다. 대개는 빗 대신 손가락으로 슥슥 빗어 넘기면 걸리는 것이 전혀 없는데, 가끔 뒷머리가 쇠수세미 뭉치처럼 바글바글 엉켜있는 거다. -_-; 그러면 또 행여나 소중한 머리칼 빠질세라 끊어질 세라 한올한올 엉킨 실 풀듯 손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오늘도 한참 엉킨 머리칼을 풀고 앉았다가 킬킬 웃었다. 애당초 머리를 참하게 빗어놓았더라면 엉킬 일도 없었을 텐데 참 나. 성격도 이상하여라.

예전에 엄마가 뜨개질 고수였던 시절, 술술 뽑아쓰기 좋게 하느라 털실을 미리 풀어 바구니 같은데 담아놓았는데 동생들이 뒤집어 엎는 바람에 실이 엉키면 엄만 엉킨 실을 푸는 임무를 내게 맡겼다. 아주 드물게는 도저히 풀리지 않아 끊고 다시 실을 이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대개는 내가 기필코 엉킨 실을 다 풀어내고야 말았고 그 성취감을 퍽이나 즐겼던 것 같다. 오늘도 엉킨 머리칼을 한올한올 잡아당겨 죄다 풀어 다시 매끈하게 만들어놓고는 별난인간도 다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번쯤은 잘못될 것을 알면서도 즐기는 짜릿한 모험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그렇다고 새삼 내일부터 열심히 빗질을 시작할 위인도 아니고 이 게으름의 끝은 어디일지 그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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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의 궁극?

투덜일기 2011. 8. 18. 02:47

나이와 상관이 있는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예민함이 점점 극에 달해 옷에 달린 라벨을 못견디는 인간이 되었다고 잘 다니는 동호회 게시판에 고백을 했다. 예전엔 가끔 여름 티셔츠 중에 목덜미를 간질이는 것들만 선별해 라벨을 떼고 입는 수준이었다면, 요즘엔 살갗에 닿는 위치에 달린 라벨이 두툼한 새틴을 접어 붙인(옷이 고급일수록 라벨도 고급화되어 금은실로 글씨를 새겨넣거나 말끔히 접어 다림질까지 한 두툼한 라벨이 달리기 마련;) 경우나 봉제에 쓰인 실이 뻣뻣한 경우 예외없이 떼어내야만 마음 편히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옷 안쪽 옆솔기에 달린 케어라벨(섬유 혼용율과 세탁방법이 적혀있으며 가끔은 여벌 단추까지 매달려있기도 하다)도 영 거슬려서 잘라내고야 마는 사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들의 내의엔 상표와 솔기가 바깥쪽에 달려 있는 게 많은데, 내 피부의 연약함이 갓난아기에 필적할 리는 없고 그저 예민함과 까탈스러움이 극에 달했다고밖엔 생각할 수가 없다고.

그랬더니 용기를 북돋아주는(?) 댓글 가운데 누군가는 양말도 뒤집어 신고 다닌다며 피부 민감성은 얼마든지 개인차가 있으니 개의치 말라는 의견이 있었다. 자기만 편하면 됐지 양말 봉제선을 굳이 안쪽으로 감추고 발등에 걸리적거리는 걸 참을 이유가 없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처음엔 그럼 속옷도 뒤집어 입고 다닐 테냐고 비웃었는데, 막상 따라해보니 엄청 편하다나. 이후 그도 계속 양말을 뒤집어 신고 있단다. 오옷 이것이야말로 발상의 전환! 여름들어 몇달째 맨발족이라 최근엔 양말을 신어본 기억이 없으나, 나도 운동화를 신을 땐 양말 솔기 때문에 발등이 불편한 걸 느낀 적이 많다. 양말 안쪽의 솔기 마무리를 아무리 잘했다고 해도 스포츠양말처럼 두툼한 면양말은 안쪽으로 꿰맨 솔기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양말을 뒤집어 신을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데! 앞으로 양말 신고 다니는 계절이 오면 나도 시도해볼 작정이다.

사실 라벨은 오려내고 잘라낸 다음 편히 입을 수나 있지 최근엔 속옷의 솔기도 영 거슬려 괴로워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비싼 속옷도 왜 솔기가 아예 없는 팬티는 못 만드는 건지?! (설마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건 아니겠지?) 요즘처럼 까탈의 궁극을 떨다간 조만간 속옷도 뒤집어입고 살게 생겼다고 한탄했었는데, 어찌 보면 이게 한탄할 일이 아니라 익숙한 습관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입기의 결과로 내가 바보같이 불편을 참아왔다는 의미라는 걸 새삼 느낀다. 속옷을 뒤집어 입으려면 일단 모든 팬티를 면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난점과 함께 밀착되는 얇은 겉옷의 경우 솔기가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지금 퍼뜩 떠오르기는 한다. 하지만 그럼 또 어때? 누가 나만 보는 것도 아니고... -_-; 이참에 사회 곳곳에서 남몰래 괴로워하고 있던 수많은 까탈족을 위하여 당당하게 양말 뒤집어 신기와 속옷 뒤집어 입기 운동을 널리 퍼뜨려볼까나. 큭.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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