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다'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5.07.20 눈가리고 아웅 2 2
  2. 2015.06.19 스마트폰 스트레스 6
  3. 2015.05.29 새 이웃 7
  4. 2015.04.11 몰라요 5
  5. 2015.03.23 필리핀 동전 10
  6. 2015.02.09 달라도 너무 다르다 10
  7. 2015.02.03 들이기와 버리기 4
  8. 2015.01.29 3
  9. 2014.08.27 산에서...
  10. 2014.08.18 못 생기고 매력이 없어서

머릿속이 피폐해져서 이젠 제목 정하기도 귀찮은가보다. 똑같은 제목에 번호붙이기 재미들렸나.

암튼 제 얼굴에 침뱉기 같은 아래 포스팅을 밀어내고자 뭔가 빨랑 새로운 포스팅을 해야한다는 강박감이 불쑥 작용했다. ㅎㅎ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 광풍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는 듯 뉴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연일 충격적인 뉴스가 좀 많아야지;;) 하지만 대형병원엘 가면 당연하겠지만 아직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발열을 확인하는 간호사들이 곳곳에 앉아 있고, 진료 창구에선 문진용 쪽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다 눈가리고 아웅이라는거! 흥!


6월말이니까 좀 지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더 어처구니 없었던 ㄷ병원. 이곳은 나름 종합병원이지만 병상수가 적은 2차병원이다. 엄마가 대장내시경을 받기로 하셔서 보호자로 따라갔는데, 9시 예약이라 일찌감치 건물로 들어가려니 정문을 잠가놓았다. 메르스 확신 방지를 위해 <응급실>쪽 출구만 개방한다고 적혀 있었다. 엥? 응급실 출구를 오히려 피해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째뜬 8시 40분쯤... 응급실 입구로 다시 돌아가니 출입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냥 내시경센터로 가면 그뿐. 엄마팔뚝에 링거 꽂는 걸 보고 나서 보호자 대기실로 나왔던 나는 아침 커피를 사려고 다시 어슬렁어슬렁 커피숍이 있는 별관으로 향했다. 앗.. 이젠 응급실 입구와 별관 입구에 모두 간호사가 책상을 놓고 앉아 있다. 드나드는 사람들 모두 이마에 온도계를 대서 체온을 확인하고 들여보내는 식. 물론 책상에 손 세정제가 놓여있긴 했지만 굳이 그걸 쓰진 않았다. 아이스커피를 사가지고 다시 본관 건물로 들어가려니, 별관에서 커피 사온 게 뻔한 나를 보고 그냥 패스~


한 4, 50분 지났나. 내시경을 끝내고 나온 엄마를 모시고 다시 별관이 있는 외과 진찰실로 향하는데, 별관 입구에서 이번엔 체온계로 발열도 확인하고 출입자의 모든 이름과 연락처를 적으란다. 본관에서 이미하고 온 사람도, 좀 전에 별관에 왔었대도 또 하라고... 아 뭐야... 시간대별로 출입자 관리가 달라지는 건 또 뭐임?


메르스 환자나 의심자가 9시 이전에 그 병원에 들락거렸다면 아무런 제지가 없었단 얘기고, 심지어 9시 이후에 들락거렸대도 인적사항은 전혀 확인이 안 될 테고.... 출입자 목록은 분명 계속 적는 게 원칙이었을 테니 담당 간호사의 '성실함' 여부에 따라 출입자 인원파악이 달라졌다는 의미가 아닌가! 게다가 울 엄마는 마취제가 다 안 풀려서 글씨도 잘 안보이고 이름과 연락처 적는 난에 개발괴발... 이름도 엉터리 전화번호도 엉터리로 적으셨다. ㅋㅋ 역시 아무런 제재 없음.


형식적인 전시행정이 아니고 뭔가. 물론 가뜩이나 바쁘신 간호사 선생님들을 '겨우' 발열 체크 하는 걸로 빈틈없이 24시간 3교대로 돌릴 리가 없겠지. 위에서 시키니깐 뭔가 하는 척 정상 근무 시간에만 반짝 눈가리고 아웅...


지난주엔 대형대학병원인 ㅅ병원엘 갔는데, 진료카드를 기계에 대 확인을하자마자 문진용 쪽지를 내밀며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최근 다른 병원에 갔는지, 갔다면 무슨 과였는지, 병원은 어느 동네였는지, 열이 있는지, 외국에 다녀온 적 있는지...  그래서 그 종이를 다 적어서 제출을 했느냐... 하면 아니다. 그냥 들고 다니다가, 누가 문진 했느냐고 물으면 했다고 대답하라는 것이 끝. 쪽지는 종일 갖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 버렸다. 발열이나 문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만 따로 관리하는 건가??? 암튼 역시나 뭥미 싶었다. 진짜로 메르스 의심자가 무지불식간에 뚜벅뚜벅 대학병원에 들어와서 문진 쪽지 작성하다가 콜록콜록 기침으로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면 어쩌려고?? 


좀 있으면 '종식'을 선언한다는데 정말로 바이러스라는 게 '종식'이 가능 한 건지 어쩐지... 아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던데 나는 도무지 답답해서 마스크를 쓸 수도 없고(안경에 김서려서리) 외출할 때 딱 한번이나 썼던가..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하는 요상한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참... 점점 더 용감해지는 것 같다. 

Posted by 입때
,

며칠전 4년간 쓰던 아이폰4를 드디어 6로 갈아탔다. 그놈의 요금제를 홀로 고민하느라고 또 한참 망설이다 드디어 2주전엔가 큰 맘먹고 휴대폰 바꾸러 동네 대리점에 나갔더니 내가 원하는 색깔이 없어서 퀵으로 받으려면 1시간 기다려야 한다기에 그냥 돌아선 적도 있었다. 그래서 요번엔 아무래도 휴대폰 물량이 많을 것 같은 신촌 대리점에 드가서 상담하며 제일 먼저 기계 있느냐고부터 물었다. =_+ 보유하고 있진 않지만 퀵으로 받으면 15분 걸린다고... 그 동안 서류정리하고 개통 준비하면 된다나.


하지만 결론적으로 걸린 시간은 1시간 반이 넘었다. ㅠ.ㅠ 퀵아저씨가 신촌 온 일대를 다 배달하고 다니는 듯 1시간 넘어 나타남. 아오 정말!! 내 귀한 시간!!


째뜬 짜증을 애써 감추고 새끈한 새 휴대폰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더니 왕비마마가 의외의 코멘트. 커졌는데도 생각보다 별로 안 무겁네...  어어.. 이거 뭐지. 자긴 전화 걸고 받고 문자확인만 하면 되니깐 5년째 쓰고 있는 폴더폰 아무 불편 없으시다더니만... (물론 사진 찍고 확인하는 거 어케 하는 지 모르고 mms문자는 글씨 작아서 못 보겠다고 간간이 불평을 하긴 하셨다) 슬쩍 물어봤다. 엄마도 스마트폰으로 바꿔줄까? 요새 공짜 기계도 있다던데... 


으레 아니다, 나는 됐다.. 귀찮다... 라는 대답을 절반쯤 기대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의외의 반응. 

공짜 기계도 있대? 진짜? 그럼 한번 써볼까? @.,@  

하긴 요샌 다들 큰 전화기 들고 다니면서 손주들 사진 자랑하더라... 슬며시 덧붙이는 말을 들으며 결론은 났다.


마침 휴대폰 대리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내가 그동안 마르고닳도록 KT를 써왔음에도 (결합상품으로 묶여 있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혜택이 별로 없어서 불만이지만 바꾸는 것 또한 귀찮아서 그냥 두고 있었는데... 컴퓨터 인터넷과 휴대폰 2대를 모두 결합하면 할인율이 높아질뿐더라.. 내가 '메가패스' 시절부터 쓰던 인터넷을 더 빠른 걸로 바꿔줄 수도 있고 ㅠ.ㅠ (KT는 왜 그런 안내를 한번도 해주지 않은 걸까요? 의아해했더니 무려 10년 전부터 쓰던 거라 아마 KT일선 직원 중엔 그 사실을 아는 직원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자기네는 점장님이 하도 오래돼서 아는 거라고...) 심지어 쓰던 폰을 반납하면 더 혜택이 있다고 한번 더 나오라는 전화를 받은 터였다. 맙소사...  쓰던 아이폰 중고로 팔아주는 건 다른 대리점도 하는데 기껏해야 한달 요금 값 정도 빠진다던데.. 암튼  오케이 담날 다시 나가기로 한 김에 엄마 휴대폰도 바꾸기로 결정.


저가 보급형 모델 중에서 완전히 기계값이 없는 공짜폰은 너무 작고 허접해서 안되겠고, 결국 제일 저렴한 기종 중에서 새 기계로 하나를 골라 드디어 70대인 우리 오마니도 스마트폰 세상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여기서 또 한 번 함정은 내 명의로 개통한 거라 어르신 요금제가 불가능하다는 것. ㅠ.ㅠ 일단 석달 쓰고 나서 명의변경을 하고 요금제도 바꾸기로 했다. 개통과 명의변경과 요금제 변경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는 듯...


암튼 걱정은 노친네가 스마트폰 익히기 어려워 스트레스를 받으실지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노인들 마우스 더블클릭이 불가능하듯, 화면 '터치'부터 난항이었다. 뭐든 꾹~ 눌러야 직성.. 그것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ㅋㅋㅋ


일대일 과외를 하다가 말로는 아무리 반복해도 안될 것 같아 눈높이 매뉴얼을 4장이나 꼼꼼히 적어 외우시라고 한 뒤 계속 실습을 하고 있는데...으아...내가 만약에 교사가 되었다면 얼마나 무능하고 신경질적이고 짜증만땅인 선생이 되었을까 실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기껏 설명을 하고 나면 금방 딴 소리.. 아우... 버럭버럭... 


젊은 사람도 다 익히려면 1달은 걸린다고 뻥도 슬슬 치면서 차근차근 천천히 익히시라고 하는데도 성질은 또 왜 그리 급하신지.... 그러면서 자꾸 뭐가 안된다 안된다.. 왜 내가 하면 안되냐... 푸념만..


카톡방에 동생들 다 불러다놓고 엄마의 스마트폰 세상 입성을 축하드리라고 했었지만,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고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째뜬 엄마가 스마트폰 들고 씨름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도 있단다. 시간이 정말 잘 간다는 것. 애들이 왜 노상 휴대폰에만 빠져 있는지 알겠다나. ㅋㅋㅋ 아직 전화걸기와 문자 입력 단계를 넘어서지도 않았는데 그렇단다.  과거 검찰청에서 최고 뛰어난 타자수였다는 자부심을 동원해 문자 창에 애국가 가사를 쳐셔 보내기도 하셨다는데 대체 그건 어디로 사라진 걸까나? ㅋㅋㅋ 


아무튼 스마트폰 이전에도 가끔 낮에 늦게까지 자고 있으면 왜 안 일어나느냐고 거실서도 내 방으로 휴대폰으로 전화하시는 양반인데 걸핏하면 문자나 카톡 보내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제까지는 자판 작고 정신없다고 문자는 보는 것만 하셨었는데.... 으음...





Posted by 입때
,

새 이웃

투덜일기 2015. 5. 29. 01:27

엄마네 집쪽 아래층에서 6,7년쯤 살던 주류 도매상 아저씨네(한때 몸집 거대한 잡종 진돗개 '곰돌이'를 키우며 온 동네를 괴롭게 했던;;)가 얼마 전 이사를 가고, 집주인이 다시 이사를 올거라며 수리를 한참 하더니만 결국엔 또 세를 놓은 모양이었다. 아래층 집주인이 워낙 괴팍하고 싸움도 욕도 잘해서 온 동네에 죄다 인심을 잃은 '장로님'이시라 엄마는 그 아저씨가 다시 이사온다는 소식에 지레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떡하니 이삿짐 트럭이 도착한 날 전혀 다른 사람이 인사를 하자 퍽이나 놀랐다고 했다. 


듣자하니 이전 세입자와 금전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 다른 세입자를 들이는 게 일종의 비밀이었다나 뭐라나. 암튼 우리로선 천만다행이었다. 다가구주택임에도 오래된 집이라 주차공간은 한대밖에 없어서 그 아저씨 이사오면 주차 문제로 싸우기 싫어서라도 내가 차를 골목에 대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오예~! ㅋㅋ 게다가 새로 이사온 아래층 아줌마는 노상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마당에 빨래를 널면서 벌써부터 울 엄마와 서로 좋은 인상을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이사 후 두번째 마주쳤을 때 이미 차 마시러 좀 들어오세요~ 그랬다나. 오지랖 넓은 할머니이긴 해도 선뜻 응하기 뭣해서 엄마는 일단 사양을 했다는데, 그간 몇번 얼굴 마주친 거 치고는 놀랍게도 신상명세를 벌써 다 파악해오셨다. +_+ 하기야 울 엄마도 우리 모녀 신상을 대충은 다 공개한 듯, 며칠 전 외출하는데 오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마당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머니 인상이 참 좋으세요. 좋은 분이랑 이웃되서 반가워요."라고 말했다. @.,@


나는 당황해서 우물쭈물 뭐라고 대꾸했는지 기억도 잘 안난다. 암튼 엄마가 '캐내온' 아래층 이웃의 정보는 남편이 영국인이고 다 큰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른 집에서 살면서 가끔 들른다는 것. 그리고 이사온지 얼마 안 돼 영국에 보름간 다녀오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울 엄마가 마당 화분 몇개와 스티로폼 통에 상추와 고추 모종을 사다 심어놓고 매일 물을 주는 걸 보면서, 부러워서 자기도 그 옆 화분에 상추랑 치커리 따위를 심었다고 했단다. 집 빈 동안에 아들이 다녀갈 수도 있으니 놀라지는 마시라고. 


새 이웃이 영국에 간 사이 울 엄마는 또 그집 채소 화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 안주면 금방 말라죽을 텐데... 내가 우리 화분 주면서 같이 물을 줘야하나... 아픈 다리로 이층에서 물조리 한 통 갖고 내려가는 것도 힘든데 내가 대체 왜?.. 뭐 이런 생각을 하셨던 거다. 다행히 그 사이 비가 몇번 내렸고, 시들시들 말라가는 채소를 차마 그냥 보아넘길 수 없었던 엄마는 간간이 조리에 받아간 물을 아껴가며 이웃 화분에도 나눠주었던 듯했다.


오지라퍼 할머니는 아래층 이웃이 돌아오기를 괜히 오매불망 기다렸다. 기껏 심은 모종 다 말라죽으면 어떡하냐. 아들이 다녀는 가던데 화분에 물은 안주는 것 같더라. 물 덜 줘서 축 늘어진 모종 불쌍해서 어쩌냐... 제일 안쪽 화분은 팔이 안 닿아서 물을 줄래도 줄 수가 없던데...  아 놔;;;;


보름이 지나고 드디어 아래층 이웃이 돌아온 듯했지만, 엄마의 관찰 결과 더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살지 않아 사람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채소 모종은 계속 축 늘어져 말라가고 있다고 또 성화를 하셨다. 아 진짜! 엄마! 상추모종 천원에 다섯개라며! 고추모종도 그렇고! 죽으면 좀 어때요! 물 주기 귀찮아서 죽이기로 했나보지! 아래층 아줌마 만나면 그간 내가 화분에 물 줬다고 생색내고 싶은 거예요??? 그거 아니면 제발 남의 일에 간섭도 걱정도 좀 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며칠 전에 드디어 아래층 영국남자랑 마당에서 뙇 마주쳤다는데 당황해서 엄마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하고 들어왔다고 '안녕하세요' 그럴 걸 그랬다고 후회 또 후회.... ㅠ.ㅠ 난 또 버럭했다. 아니, 할머니를 봤으면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했어야지, 엄마가 왜 미안해하고 그러냐고! 그리고 영국사람들 원래 쌀쌀맞으니깐 곰살맞게 인사받는 거 바라지도 마셔! (그간 효녀 코스프레 한 얘기만 적어서 그렇지, 내 본모습은 이렇게 표독스럽다;;;)


사실 나도 이 동네 3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원래부터 잘 알던 이웃이 아니고선 같은 골목 주민들에게도 선뜻 인사를 하게되질 않는다. 오지랖 넓은 엄마 덕분에 나는 반장 아줌마도 알고, 야쿠르트 아줌마도 알고, 같이 실버합창단 하시는 옆 빌라 안X분 할머니도 알지만, 저들은 은둔형 인간인 나를 잘 모르는 게 확실하다. 제대로 하는 외출이 아닌 한 꽁지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후드를 뒤집어 쓰고 나가기 때문에 어차피 인사를 해도 몰라본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원래 마구 상냥한 스타일도 아니고 뭐... 


하여간에 엄마는 혹시나 또 영국인 남자와 마주치는 경우를 대비해서 당황하지 말고 '안녕하세요'라고 하겠다고 시뮬레이션 연습까지 마치셨는데 이후 아줌마도 아저씨도 대면한 적이 없단다. 오히려 나는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골목 어귀에서 하얀 '난닝구'에 반바지 차림 + 왕뿔테 안경을 쓴 배불뚝이 영국 아저씨랑 마주쳤지만 바로 집앞이 아니라 인사하기도 웃기고 해서 당연히 모른체했다. 나도 마당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연습이라도 미리 해둬야하는 건가. ㅋㅋㅋ 


그간 런던아줌마' 블로그를 통해서 영국사람들이 얼마나 '못버리는 병'에 걸린 환자들인지 전해듣기도 했지만 가끔 마당구석에 정말 신기한 물건들이 하나씩 놓여서 시선을 끈다. 최소 50년은 된 것 같은 다 떨어진 구식 여행가방이라든지, 다리가 기울어진 나무 의자라든지... (그럴 때마다 울 엄만 또 혼자 꿍얼꿍얼 하신다. 아니 그런 물건은 이사올 때 버리고 와야지 왜 다 갖고 와서 새삼 쓰레기를 만드나 그래..)


어쩌면 그 이웃집에서도 위층에 '이상한' 할머니 모녀가 산다고, 귀찮아 죽겠다고 꿍얼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이웃이란 아무래도 서로 적응해나가는 기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나저나 그 옆집, 내방 쪽 아래층엔 이사온지 6개월도 넘었는데 아직 사람 구경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는 흔적도 없고... 한전과 가스공사에서 체납고지서를 보내다보내다 못해 사람이 나와, 그 집에 사람 안 사느냐고 우리집을 두들기고 물었을 정도. 이웃사촌이란 말은 사라진지 오랜 도시에서 암튼 새 이웃 덕분에 포스팅도 하고 나도 좀 웃기다.  


Posted by 입때
,

몰라요

투덜일기 2015. 4. 11. 11:25

50년 가까이 같이 산 엄마한테서 가끔 아직도 신기한 점이 발견된다. 오 놀라워라. 사람 참... 몰라요...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젠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오만이었던 거다.


왕비마마에게서 어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활자중독증'이 의심된다는 점이다. 주변의 다독가나 인문학 전공자나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이 특징은 그 어떤 활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광고전단지나, 심지어 화장실 낙서도 죄다 읽어야한다고. 나도 약간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중독'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혹은 눈이 피곤하면 자잘한 글자 피해 질끈 눈감기도 하고 관심없는 분야는 단호히 외면할 수 있다. 헌데 울 엄마는 하이고...


공식적인 '안산 벚꽃축제'가 오늘부터라기에 우리는 일부러 어제 꽃놀이를 나섰다. 집앞에도 벚꽃이 한창 만개했지만 꽃길을 걸으려면 역시 나가는 수밖에. 실은 꽃놀이 핑계대고 자락길을 한 바퀴 끌고 돌 심산이었다. 총 7km이고 보통 걸음으로 2시간 반 걸린다는데, 동네 주민이면서도 우린 아직 한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었다. 작년 가을에 후배들 데리고 거의 한바퀴 돌긴 했지만 자락길 중간에 정상을 올라갔다 내려온 터라 완주라곤 할 수 없으니...


좀 무리인 것 같았지만 암튼 결과적으로 자락길 완주엔 성공했다. 4시간만에. ^^; 안산 자락길은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만들어놓은 길이라 별 걱정을 안했는데, 우리집에서 자락길 입구까지 가는 오르막길과 계단이 복병이었다. 자락길 진입 시작도 전에 2, 3번이나 쉬었을 정도. ㅋㅋ 자락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도 중간중간 벤치가 보일 때마다 무작정 주저앉아 쉬어야하는 저질체력 노친네를 모시고 너무 무리하는 건가 더럭 걱정도 되었지만, 1/3쯤 갔을 때 중단하려면 너무 늦기 전에 되돌아가야한다고 했더니, 본인이 완주 의지를 불태웠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다고 왕비마마를 놀려대긴 했지만, 중간에 벤치에서 만난 어느 아줌마가 매일 한 바퀴씩 도는데 안 쉬고 걸으면 2시간 걸린다고 했으니 4시간이면 절반씩 걷고 쉬었다는 의미다. 70대 노친네가 뭐 그만하면 선방이라고 인정. 느릿한 걸음이야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조를 맞추기로 했지만, 가뜩이나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한 상황(내가 원래 성질이 급해서 걸음이 좀 빠르다)에 불을 붙인 건 바로 엄마의 '활자중독증'.


자락길 곳곳에 위치를 알리는 번호 팻말이 붙어 있고, 갈래길마다 표지판도 붙어 있는데 아오, 왕비마마는 그걸 죄다 소리내어 읽어야 지나치신다. 현재 위치 12-1, 너와집 442미터, 봉수대 1.2킬로미터... 설상가상, 서대문형무소 주변이기 때문인지 자락길 곳곳에 항일인사의 활약상이나 남긴 글이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그 또한 서서 다 읽어야 지나가시는 거다! 으으으... 

김지섭은 나도 금시초문... -_-;


근대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널리 알린다는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산에 가면 흔히 나무에 묶어놓은 '입산금지' 표시처럼 펄럭펄럭 천조각에 여기저기 난간과 나무에 노끈으로 매달아놓은 모양이 내 눈엔 심히 거슬렸건만, 오마니는 모르는 사람 많다며 또 열심히 그 앞에 서서 읽고 계시더라는..


"힘드니까 일부러 서서 쉴라고 다 읽는거지!"라고 내가 퉁박을 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나무 이름 팻말이며 지난 식목일에 심은 듯 새로 묘목에 달아놓은 성명 꼬리표, 스틱 및 아이젠 사용 금지하고 달리기도 하지 말라는 자락길 주의사항, 바위에 적어놓은 오래된 낙서까지 빠짐없이 중얼중얼중얼... +_+


장장 4시간(집에서 나간시간부터 따지면 무려 4시간 40분)에 걸친 자락길 완주를 치하하는 의미로 탕수육과 잡채밥을 사드리고는 (실은 나도 고단해서 집에 와 저녁 차리기 싫었다;;ㅎㅎ) 기어코 내가 한 마디 했다.


엄마는 활자중독증이야! 


다달이 날아오는 사학연금 회보랑 서대문구 소식지를 하나도 안 버리고서 챙겨뒀다가 두고두고 읽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거였나. 난 또 그냥 못버리는 병인 줄 알았지 거기 찍힌 활자에 탐닉하시는 건 줄은 몰랐지 뭔가. 사람 참.. 몰라요... 


저 앞에 또 뭐라고 적혔나 보자... 힘차게 걸어가는 오마니;;





Posted by 입때
,

필리핀 동전

투덜일기 2015. 3. 23. 02:11

엄마가 백원짜리인줄로 알고 받아온 거스름 돈 중에 하나가 알고보니 필리핀 동전이었다. 1페소짜리인데, 얼핏 보기에 크기와 두께, 색깔이 딱 백원짜리였다. 같이 섞어서 건네주면 누구라도 쉽사리 골라내지 못했을 것이다. 검색해보니 1페소의 환율은 대략 25원. 엄마는 75원을 손해본 거다. 그래도 엄마가 동전 분류하다 이상한 걸 알아차렸으니 좀 다르긴 다르다는 얘긴데, 이 사건을 두고 모녀의 반응은 크게 달랐다.


엄마: 생각할수록 괴씸하고 억울하다. 어디서 잘못 줬는지 따져야겠다. 약국인가? 목캔디를 샀던 마트인가? 또 어디를 들렀더라? 300원 거슬러 받은 데가 있었는데? 어디더라? 아이고 치매가 왔나, 왜 생각이 안나냐. 어딘지 확실히 알아야 찾아가서 따질텐데. 바보같이 거스름돈 속이는 것도 모르다니 눈이 삐었다. 시력이 많이 나빠졌나. 안경이 안 맞나. 안과에 가봐야겠다. 백내장 수술해야 되는거 아니니. 속상해죽겠네. 화난다. 근데 이 동전을 어떡하지? 버릴 수도 없고 어디 써먹나? 공항에나 가야 외국 동전 기부통 있던데... 

(참고로.... 엄마의 정신 건강 상태가 요즘 좀 저조하다. 별다른 이슈는 없는데... 그냥 환절기 봄탓일까...) 

= 째뜬 철저한 자책파에 알뜰 이타주의자.  


나: 진짜 비슷하게 생겼네. 거슬러 준 사람도 모르고 줬을지 몰라요. 설마 알고도 손해 안볼라고 얼렁뚱땅 눈나쁜 할머니들한테 넘기는 건가? 그럼 사기꾼인데! 음.. 그냥 잊어버리셔. 100원 내가 줄게! 혹시 옛날에 우리나라 500원짜리 동전이랑 일본 500엔이랑 비슷해서 자판기로 환치기했다던데(해서 일본은 500엔 동전의 재질과 색깔을 아예 바꿔버렸단다) 필리핀에서도 설마 조직적으로 동전 들여와 유통시키는 거 아냐? (막 음모론 꾸며댄다) 써먹긴 뭘.. 그냥 버려요. 외국돈도 동전은 바꿔주는 데도 없고, 어차피 겨우 25원이라니까! (실은 책상 서랍에 일본 동전, 미국동전, 영국동전, 호주 동전, 뉴질랜드 동전.... 등등이 한 뭉치 들어있다. -_-; 근자엔 여행가도 동전까지 악착같이 쓰고 들어오는 편이지만, 과거엔 신기하다고 괜히 종류별로 남겨오던 때가 있었다. 1달러짜리 동전 신기하지? 이러면서 친구가 준 것도 있고... 하지만 책상 속 서랍 외국 동전의 절반 이상은 아버지의 여행 흔적이다...)       

= 어디까지나 철저한 남탓파에 이기적인 귀차니스트.


우울증 탓이겠지만, 자꾸만 백원짜리 동전 하나 때문에 속을 끓이는 엄마를 보다 못해 몹쓸 필리핀 백동전을 빼앗아 10원짜리 통에 치워버렸다. 그러면서 문득 유통의 유혹을 느꼈다. 동전지갑을 따로 쓰다보니, 마트 갈 때 카트 빼는데 필요한 백원짜리를 자꾸 까먹어서 (천원짜리도 없어서 심지어 만원짜리 내고 동전 거스른 적도 있다. 짜증;;) 차에도 몇 개 놓아두고, 테이블 차키 옆에도 1개, 화장대 옆에도 1개 늘 굴러다니고 있는데.... 진짜로 보기만큼 백원짜리랑 혼용가능한지 카트에 넣어볼까 싶은 거다. ^^; 물론 어마어마한 이름의 법에 저촉되는 범죄행위겠지만... 애당초 그놈의 필리핀 돈이 돌고 돌아 하필 우울증환자의 신경을 거스르게 만든 이유도 누군가 호기심에 슬쩍 써먹어봤기 때문이 아닐까나? 


혹시나 진짜로 필리핀에서 환율 4배 장사 하려고 조직적으로 1페소 동전을 들여온 건 아닌가, 비슷한 피해 사례가 있나 검색해보니 전혀 없는 듯. ㅋㅋㅋ 이거 최초 발견이라며 신고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네그려. (물론 귀찮아서 절대 안한다)


Posted by 입때
,

궁궐 일도 그렇고 산에 쫓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작년엔 이상스레 '남자어른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점점 더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간 내가 어울리던 사람들의 성비를 따진다면 극단적으로 여자들이 많았고 이른바 '조직생활'에서 벗어나다보니 '회식문화'도 덩달아 멀리 하고 살았는데, 새삼 다시 '꼰대스러움'으로 무장한 남자 어른들과 부대끼는게 영판 낯설고 힘들고 종종 짜증스러웠다. 그러면서 느낀 그들의 특징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1. 악수를 좋아한다. 얼마만에 만나든 무조건 인사와 동시에 악수를 나눈다.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코스프레인가?


2. 그럴싸한 직함과 호칭 붙이기를 좋아한다. 'OOO선생님'이나 'OOO선/후배님'이 공식적인 호칭이라고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굳이 사람따라 구분해서 김사장님이니, 정이사니, 회장님이니, 유박사, 이교수...따위의 직함을 부른다. 나에게도 민망하게 자꾸  'ㅂ작가'라는 칭호를 주려 한다. 작가 아니거든요! 라고 대꾸하기도 지친다. 혹 백수나 전업주부다 싶으면 '김프로', '최선수'라고 부르기도... 그렇게 직함에 목매는 그들의 심리를 나로선 정말이지 모르겠다. 


3. 모든 취미활동은 결국 끝나고 술을 마시기 위한 전초전이다. 등산도, 테니스도, 골프도, 심지어 자원봉사도... 최종 목표는 '끝나고 한잔'이 틀림없다. 


4. 일단 외출한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까지 다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는 것이 집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여기며 으스댄다. 내가 보기엔 술자리 차수를 늘리려는 꼼수 같은데...


5.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과묵하고 말이 없다는 건 순전 뻥이다. 그들은 수다스럽기 짝이 없고 시끄러우며 직업군이나 교육의 정도와 상관 없이 관심분야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침튀기며 몇시간도 떠들어댈 수 있다. 심지어 아무 의미없는 개똥철학까지도 지겹게 설파하는데, 그러다 종종 술자리에서 자기 주량을 넘긴 뒤 주책과 객기를 부린다. 


6. 유머랍시고 이상한 이야기나 케케묵은 옛 농담을 하며 자기가 굉장히 센스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수첩에 적어가지고 다니며 알려주는 이도 있는데(주로 요상망측한 건배사... 아오 진짜;;), 더러 성희롱에 해당되는 여성 비하 발언을 잘못인줄도 모르고(알면서 그러는지도;;) 주워섬기며 낄낄댄다. 


7. 오십대든, 육십대든, 칠십대든 별 상관없다. 그들은 연배 낮은 모든 여자들에게 '오빠' 또는 '오라버니'라 불리기를 갈구한다. 할배가 더 어울리는 호칭임에도... 어휴.


물론 드물긴 하지만 '남자어른'임에도 배려깊고 세심하고 점잖은 이도 만났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확실히 여자들과 더 잘 어울린다. 집단으로 모이면 더욱 공격적이고 꼰대스러워지는 마초들의 세계에서 그들은 역시나 소수자였기에 이해의 폭이 남다른 것 같았다. 다수의 '남자어른들'을 보며 저들은 나와는 확실히 '달라도 너무 다른' 인간유형이구나 뜨악해지다가도 그나마 그런 분들 덕에 어렵고 짜증나는 순간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스트레스 받아가면서까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다가도, 좀 거리를 두고 남의 일처럼 구경하기 시작하면 또 그보다 재미난 시트콤이 따로없다. 재주만 있다면 캐릭터 쏙쏙 잡아서 소설이라도 쓰면 좋겠다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의외의 복병으로 힘들게 구는 '여자 어른들'도 종종 본다. 울 왕비마마와도 또 다른 신인간형. ㅋㅋ 요즘 울 엄니가 걸핏하면 '너도 늙어봐라!'고 내게 장담을 하시는데,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싶은 행태의 목록을 차곡차곡 적어놓고 자주 상기하면 좀 도움이 되려나... 


아무튼 이왕이면 아름답게 늙겠다!고 결심하며 휴대폰엔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바탕에 깔아놓았다. DDP에서 오드리 헵번 전시회도 하던데 거기도 한번 다녀오고 싶고... 젊어서도 늙어서도 계속 아름답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Posted by 입때
,

잘 못 버리는 게 병이다 싶은 사람으로서 삶을 깔끔하게 바꿔나가려면, 새로운 물건을 들일 때 그 가짓수 만큼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원칙을 세우는 게 도움이 된다고 누군가 조언을 해주었다. 반드시 동일 품목일 필요는 없지만 새로 옷을 사려면 서랍에 처박혀 있는 옷 중에서 최소 하나는 버려야한다는 얘기. 뜻밖에 뭔가 사소한 충동구매를 했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그 가짓수 만큼 옛 물건과 작별을 해야한단다. 오오 뭔가 그럴듯했다. 쓸데없는 소비와 지출은 줄이고 괜한 물건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작심을 품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도 괜히 한 구석 다이소 매장에 얼씬거리며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주제에...


암튼 새해들어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를 만들라는 산술적인 물건 들이기/버리기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 냉장고는 원래도 한번 장 봐서 채워놓았다가 텅텅 비어 도무지 해먹을 반찬거리가 없어진 다음에나 다시 장을 보는 쪽이라 예외로 하기로 했다. 일단 갯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고 기억할 수도 없어! 


작년에 대거 등산복과 등산용품을 사들이고 나서는 당분간 옷도 살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빨래 개서 넣을 때마다 이상하게 공간이 모자라 터져나갈 듯한 서랍장도 틈틈이 정리했더니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더 쌓이는 뿌듯한 삶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하다보면 수십년된 살림살이도 하나하나 정리되겠지...


그러나 두둥~ 뜻밖의 난항이 찾아왔다. 작년 연말에 부엌 수리를 홈쇼핑 상품으로 해결했더니만 나로선 기억나지 않는 물건들이 '사은품'이랍시고 하나하나 날아오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시키지도 않은 택배 아저씨의 부름에 앗, 이게 혹시 요즘 택배 배달을 가장한 범죄인가 겁도 났으나 내 이름을 소리높여 부르다가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에 현관 앞에 두고 갈게요~ 외쳐주시는데 범죄일 리가 없잖아! 첫 사은품은 수저 열벌. 오옷 이건 좋다, 싶었다. 15세트쯤 명절용 수저가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식구들별로 죄다 무늬와 모양이 다른 평소 사용 수저를 명절날에도 짝맞춰 놓느라 진땀뺄 필요가 적어졌다는 의미. 그간 어디서 굴러온 건지도 모르면서 혹시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대체 그게 언젠데?) 마냥 갖고 있던 제각각 수저들을 다 챙겨 버렸다. 그 김에 오래된 티스푼, 안 쓰는 머그컵들도 퇴출! 얼추 새 수저 열벌과 가짓수가 비슷해졌다. 


그런데 아우쒸. 이후 상자도 어마어마하게 큰 식품 건조기와 전열판(?)이 또 배달되었다. 수저가 사은품이었던 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건조기랑 전열판은 통 본 적도 없는 느낌인데 어휴. 죄다 중국산 저가품이 뻔한데 어디 둘 데도 없고, 쓸 일도 없고! 전열판 써먹자고 삼겹살을 굽겠나, 라면을 끓이겠나 나 원 참... 울며 겨자먹기로 부엌 살림 중에서 알량하게 빈병 모아둔 것 중 두 개를 내다버렸다. 피클 담을 때 병 모자라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이젠 끝이겠지 생각했는데 몇주 후 또 뭔가 상자가 배달되었다. 열어보니 꾸엑~~ 이번엔 24pc 4인 식기 세트! 역시나 당연히 중국산 ㅠ.ㅠ 값싼 중국산 도자기에선 반짝반짝 광 내려고 바르는 유약에 납 같은 중금속이 많으니 웬만하면 중국산 저가 도자기 쓰지 말라고 들었는데. 아오 된장 된장. 게다가 쨍~ 하고 강추위가 찾아왔던 날 배달된 식기 세트 중에 접시 하나 꺼내서 쓸모가 있나 없나 일단 씻고보자 싶어 온수 아래 댔더니 쨍~ 바로 금이 가버렸다. 아우쒸 욕나와.... 얼마나 허접하게 만들었으면 고 정도 온도변화도 못 견딘담. 이런 후진 물건 사은품으로 주지 말고 상품 가격을 내렸어야지!! 


금간 접시는 곧장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23개의 식기들도 버려야할 것 같아 고스란히 쌓아놓았다. 그 물건 대신 다른 물건을 20개도 넘게 어떻게 내다버리나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 차라리 다행인가. +_+ 아무튼 그 밖에도 보험 담당자가 뜻밖에 떡하니 선물이랍시고 샤워용품을 가져오질 않나, 볼펜과 스카프가 생기질 않나, 다른 때 같으면 그저 희희낙락 좋아만 했을 사소한 선물들도 죄다 예상 밖의 물건 들이기라고 생각하니 부담스러웠다. 당분간은 책도 사지 말고 쌓아두기만 한 새책들이나 읽어야지 싶었더니, 증정본도 날아오고 어휴... 삶은 확실히 예측불허다.  


그래도 확실히 좋은 점은 있다. 물건을 살 때도 예전보다 더 망설이고 고민하고 꼭 필요한가, 이걸 갖기 위해 난 뭘 포기할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3년간 입지 않은 옷은 앞으로도 입을 일이 없으니 버린다'를 모토로 삼고도 그래도 차마 못 버리고 끼고 돌던 옷들도 꽤나 챙겨 내놓았다. 미리미리 버려놓았으니 앞으로 몇 가지는 부담 없이 들일 수 있다고 막 기뻐하면서. 계속해서 잘 들이고 잘 버리는 생활을 이어나가봐야겠다.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지 나도 궁금.

Posted by 입때
,

투덜일기 2015. 1. 29. 17:53

언제부턴가 소화력이 떨어진 건 확실하고, 밥만 먹으면(특히 저녁밥) 빌빌 졸린 증상이 이어지더니 최근엔 가끔 빈속이나 식후에 뱃속이 좀 따끔거렸다. 위염이 약간 있다는 건 건강검진때 알았으나, 불편한 점 없으면 굳이 치료받지 않아도 된다기에 나몰라라 방치해서 증상이 심해진 건가? 아니면 그냥 단기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했다.


그러다가 그끄저께 밤부턴 속이 심하게 쓰라려 집중이 안 돼 일도 잘 못하겠고 그렇다고 잠도 잘 못자는 상황. 아플 때 대뜸 병원부터 달려가는 성격이 아닌 사람이라 그냥 버텼다. 소화기 내과 찾아가면 내시경부터 하자고 할 텐데, 동네 병원에서 내시경을 위생적으로 잘 관리할지 어쩔지 미심쩍고, 그렇다고 대학병원엘 곧장 갈 수도 없고 (예약하기도 어려울 걸;;) 2차 병원 중에서 찾아봐야 하는데.... 뭐 이런 생각만 가만히 앉아 하고 또 하는 스타일, 짜증나지만 진짜 우유부단의 극치다.


병원 멀리하다가 큰 코 다친 사람들을 봤으면서도 도무지 '병원가기 싫은 병'은 떨칠 수가 없다. 암튼 그래서 인터넷 검색으로 대충 속쓰림, 위염 따위를 알아보다 눈에 띈 건 바로 '단식'. 옛날부터 울 집에서도 할머니들이 배앓이엔 그저 굶는 게 최고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옳거니, 굶으면 되겠다 싶었다. 위가 따가운 건 상처난 위벽에 자꾸만 위액이 닿아서 그런 게 아니겠나, 뭐 이런 돌파리 진단으로 생각해보면, 1달 내내 병원다니며 약 먹어도 안 낫던 위염이 3일간 단식후 싹~ 다 나았다(물론 과장임을 안다;;)거나 훨씬 속이 편해졌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타당하게 여겨졌다.


언젠가 TV로 본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도 '단식'이 확실히 여러가지 병을 치유한다던데, 나도 까짓거 굶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속이 아파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데 뭐. 사흘 쯤 물만 먹고 버티는 거, 외출만 안하면 문제 없지 않을까... 사흘이 힘들면, 되는 데까지 지친 위를 최대한 쉬게 해주겠어!


허나 ㅋㅋㅋ 밖으로 나다닐 땐 한 끼만 굶어도 손발이 벌벌 떨리고 마구 분노가 치밀지만, 집안에 얌전히 있을 땐 괜찮겠지 싶었던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20대쯤이었나 단체로 동조단식을 한다며 물만 마시고도 으쌰으쌰 밤새 노래부르고 꼬박 이틀을 버텼던 경험은 그냥 젊은 패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던 듯했다. 2끼는 아무 어려움 없이 건너뛰었으나, 만 24시간이 넘어가자 온몸에 기운이 쪽 빠지며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일도 해야하는데 도무지 글자도 눈에 안들어오고,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문장이 안 만들어져! ㅠ.ㅠ 그럴 땐 자는 게 상책이라지만, 잠을 시도하기 전에 나는 이미 뭔가 부드러운 음식을 만들 재료를 찾아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맙소사, 유민아빠는 45일간이나 단식을 하셨다던데... 어휴. 민망했다. 암튼 그래서 오밤중에 감자 한 알을 전자렌지에 찌고 우유를 약간 데우고 잡곡밥과 한 술과 함께 믹서기에 넣어 휘리릭 갈아서 대충 미음 비슷한(실은 수프에 더 가까웠다)걸 만들어 한 컵을 먹었다. 또 쓰라리면 어쩌나 염려했던 뱃속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고, 대신에 차가워졌던 손발에 차츰 다시 온기가 돌았다. 식탐녀 주제에 단식은 무슨...  괜히 밥 안먹는다고 커피까지 금했더니 편두통만심했다. 


그렇게 하루만에 단식을 포기하고 계속 살살 위를 달래는 중이다. 이후 두 끼는 죽을 조금 먹었고, 밥을 먹더라도 예전의 절반 양만 50번씩 꼭꼭씹어서 삼키고, 위에 남아 염증을 일으킨다는 밀가루는 입에도 대지 않는 중. 근데 이잉... 우동도 먹고 싶고 스파게티도 먹고 싶다. 


그래도 왕성한 식탐이 이끄는 대로 예전처럼 아무거나 와구와구 먹어대려면 한동안 조심해야지. 며칠 두고보다 결국 위내시경을 받아보긴 해야겠지 싶던 마음은 차츰 속쓰림이 잦아들면서 꼬리를 내리고 있다. 그냥 버텨도... 자연치유가 되지 않을까. +_+

Posted by 입때
,

산에서...

투덜일기 2014. 8. 27. 17:11

지난 주말에 경기도내 어느 산엘 갔는데 거기서도 가짜 땡중을 보았다. 전철역이나 사람 많은 데 불전함 놓고 꽝꽝 목탁두들기는 사람들 대부분 승적도 없이 그냥 옷만 어서 사다입은 가짜 땡중이라고 주변에 주의를 시키는데, 그런 사람들이 산중턱에도 있었다! 어휴... 대개 산속에 절이 있으니 사람들이 의심없이 믿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날 산봉우리를 세개나 넘어야 한대서 삐질삐질 땀흘리며 헉헉대고 계단을 오르다 뜬금없는 목탁소리에 엥~ 쳐다보니 역시나 불전함 앞에 놓고 결식아동 돕는 성금으로 쓴다는 표지판과 함께 명함도 한 갑 놓여 있었다. 멀리서도 꽝꽝 요란하게 두들기기만 하는 목탁소리를 들으니 분명 제대로 교육받은 적 없는 땡중임이 분명한데, 결식아동돕기 팻말과 명함에 잠시 의구심을 갖던 찰나, 결정적인 사기꾼 증거가 땡중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하반야바라밀다 수리수리마하수리... 아제아제 바라아제...

크하하핫.. 그럼 그렇지!


불교에 대해서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을 법한 <반야심경>과 <천수경>. 이 둘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듯 절에서 드리는 '예불'에 빠지지 않고 외는 불경들인데 반야심경의 첫소절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반야심경의 정식 이름이기도 하고. ^^; 강수연이 주연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반야심경의 맨 마지막 반복구절. 


그렇다면 천수경의 첫소절은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로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와 엄마 따라 하도 절에 다녀서, 그리고 고등학교땐 따로 학생회 활동도 좀 했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외고 있는 구절인데... ㅋㅋㅋ 그 땡중은 둘을 아무렇게나 뒤섞어서 읊어댄 거다!  그것도 사람들 귀에 익숙한 구절만 쏙쏙 뽑아서 반야심경 한 줄, 천수경 한 줄, 또 반야심경 한 줄... 아 놔...  그 노력을 가상하다고 해야할지, 이왕 외울 거 좀 더 신경써서 외우지 그랬냐 핀잔을 줘야할지... 암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교회엘 열심히 다니는 친구에게 가짜중이란 증거를 이야기하며 올라가다보니 200미터 쯤 뒤에 똑같은 땡중이 한 명 더 있었다. 한 패거리겠지? 


쯧쯧쯧... 승복 사입으려면 비쌀텐데 투자비 꽤나 많이 들었겠다, 불전함 매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 애썼지만 흥,  망해라, 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첫번째 산봉우리에 거의 당도하니 이번엔 우렁찬 '아이스께끼~' 외침소리가 우릴 반겼다. 산꼭대기까지 갖고 올라가서 음료수며 아이스께끼며 엄청 비싸게 받아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 나는 절대 외면하는 편인데(먹고난 쓰레기 사람들이 사방에 막 버리는 것도 싫다!) 누군가 값을 물어보니 1500원이란다. 엇, 다른 산에선 2천원 받던데! 단 거 먹으면 더 목말라진다고 주장하는 편이었으나, 그날은 슬슬 당떨어질 때도 됐고 또 일행이 사주신다고 해서 다리도 쉴 겸 낼름 받아먹었다. 중간에 막대기 버릴 데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하며 끝까지 다 먹고 버리고 가야한다고 우겨대면서. ^^


아직도 낮엔 꽤나 뜨거운 날씨에 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고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께끼를 먹으며, 땡중과 아이스께끼 아저씨 둘 다 서울 근교 산을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 무거운 상자를 짊어지고 등산로를 올랐겠지만 본인의 자부심도 그렇겠고 참 얼마나 가치가 다른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설마 산중턱 아이스께기 장사에도 정해진 영역이나  자릿세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랑 1500원짜리 멜론 맛 아이스께끼를 먹으며 노동의 소중함이니 부가가치니 소비효율이니 하는 얘기까지 막 덧붙이며 께끼 아저씨한테는 온갖 칭찬이 쏟아졌었다. 물론 좀 전에 우리가 지나쳐온 땡중에게 시주하는 이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었다. 당연히 수입도 엄청 차이가 나지 않을까? 목탁을 두들기며 불경을 외는 것도, 아이스께끼를 목청껏 외치는 것도 똑같은 노동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기꾼의 눈속임과 엄연한 상업 행위를 동등하게 바라볼 순 없다. 물론 국립공원 관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상업행위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ㅎㅎㅎ  

 

 

 

 


Posted by 입때
,

교황 할아버지의 방한 뉴스를 볼 때였나.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통령이 나란히 한 화면에 잡힌 걸 보고 열두살 조카가 한 마디 했다. 

둘 다 결혼 안 한 사람끼리 만났네. 

어 그렇네, 맞장구를 쳤더니 대뜸 묻는다. 

대통령 되면 결혼 못하는 거지? 

엥? 그런 게 어딨어. 지금이라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어. 근데 하기 싫어서 안했겠지. 할 사람이 없었거나. 

진짜? 아.. 못 생기고 매력이 없어서 못했겠구나. 

(맞다고 대꾸하려다 보니 문득 나까지 도매급으로 똑같은 취급을 당하게 생겼고, 고모는 달라! 라고 말하기엔 녀석이 보기에도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내 몰골이 늘... 엉망이어서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어.... 그런가.... 


그나저나 녀석, 예리하긴!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