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못 버리는 게 병이다 싶은 사람으로서 삶을 깔끔하게 바꿔나가려면, 새로운 물건을 들일 때 그 가짓수 만큼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원칙을 세우는 게 도움이 된다고 누군가 조언을 해주었다. 반드시 동일 품목일 필요는 없지만 새로 옷을 사려면 서랍에 처박혀 있는 옷 중에서 최소 하나는 버려야한다는 얘기. 뜻밖에 뭔가 사소한 충동구매를 했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그 가짓수 만큼 옛 물건과 작별을 해야한단다. 오오 뭔가 그럴듯했다. 쓸데없는 소비와 지출은 줄이고 괜한 물건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작심을 품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도 괜히 한 구석 다이소 매장에 얼씬거리며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주제에...


암튼 새해들어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를 만들라는 산술적인 물건 들이기/버리기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 냉장고는 원래도 한번 장 봐서 채워놓았다가 텅텅 비어 도무지 해먹을 반찬거리가 없어진 다음에나 다시 장을 보는 쪽이라 예외로 하기로 했다. 일단 갯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세고 기억할 수도 없어! 


작년에 대거 등산복과 등산용품을 사들이고 나서는 당분간 옷도 살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빨래 개서 넣을 때마다 이상하게 공간이 모자라 터져나갈 듯한 서랍장도 틈틈이 정리했더니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더 쌓이는 뿌듯한 삶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하다보면 수십년된 살림살이도 하나하나 정리되겠지...


그러나 두둥~ 뜻밖의 난항이 찾아왔다. 작년 연말에 부엌 수리를 홈쇼핑 상품으로 해결했더니만 나로선 기억나지 않는 물건들이 '사은품'이랍시고 하나하나 날아오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시키지도 않은 택배 아저씨의 부름에 앗, 이게 혹시 요즘 택배 배달을 가장한 범죄인가 겁도 났으나 내 이름을 소리높여 부르다가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에 현관 앞에 두고 갈게요~ 외쳐주시는데 범죄일 리가 없잖아! 첫 사은품은 수저 열벌. 오옷 이건 좋다, 싶었다. 15세트쯤 명절용 수저가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식구들별로 죄다 무늬와 모양이 다른 평소 사용 수저를 명절날에도 짝맞춰 놓느라 진땀뺄 필요가 적어졌다는 의미. 그간 어디서 굴러온 건지도 모르면서 혹시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대체 그게 언젠데?) 마냥 갖고 있던 제각각 수저들을 다 챙겨 버렸다. 그 김에 오래된 티스푼, 안 쓰는 머그컵들도 퇴출! 얼추 새 수저 열벌과 가짓수가 비슷해졌다. 


그런데 아우쒸. 이후 상자도 어마어마하게 큰 식품 건조기와 전열판(?)이 또 배달되었다. 수저가 사은품이었던 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건조기랑 전열판은 통 본 적도 없는 느낌인데 어휴. 죄다 중국산 저가품이 뻔한데 어디 둘 데도 없고, 쓸 일도 없고! 전열판 써먹자고 삼겹살을 굽겠나, 라면을 끓이겠나 나 원 참... 울며 겨자먹기로 부엌 살림 중에서 알량하게 빈병 모아둔 것 중 두 개를 내다버렸다. 피클 담을 때 병 모자라면 어쩌나 염려하면서...  이젠 끝이겠지 생각했는데 몇주 후 또 뭔가 상자가 배달되었다. 열어보니 꾸엑~~ 이번엔 24pc 4인 식기 세트! 역시나 당연히 중국산 ㅠ.ㅠ 값싼 중국산 도자기에선 반짝반짝 광 내려고 바르는 유약에 납 같은 중금속이 많으니 웬만하면 중국산 저가 도자기 쓰지 말라고 들었는데. 아오 된장 된장. 게다가 쨍~ 하고 강추위가 찾아왔던 날 배달된 식기 세트 중에 접시 하나 꺼내서 쓸모가 있나 없나 일단 씻고보자 싶어 온수 아래 댔더니 쨍~ 바로 금이 가버렸다. 아우쒸 욕나와.... 얼마나 허접하게 만들었으면 고 정도 온도변화도 못 견딘담. 이런 후진 물건 사은품으로 주지 말고 상품 가격을 내렸어야지!! 


금간 접시는 곧장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23개의 식기들도 버려야할 것 같아 고스란히 쌓아놓았다. 그 물건 대신 다른 물건을 20개도 넘게 어떻게 내다버리나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 차라리 다행인가. +_+ 아무튼 그 밖에도 보험 담당자가 뜻밖에 떡하니 선물이랍시고 샤워용품을 가져오질 않나, 볼펜과 스카프가 생기질 않나, 다른 때 같으면 그저 희희낙락 좋아만 했을 사소한 선물들도 죄다 예상 밖의 물건 들이기라고 생각하니 부담스러웠다. 당분간은 책도 사지 말고 쌓아두기만 한 새책들이나 읽어야지 싶었더니, 증정본도 날아오고 어휴... 삶은 확실히 예측불허다.  


그래도 확실히 좋은 점은 있다. 물건을 살 때도 예전보다 더 망설이고 고민하고 꼭 필요한가, 이걸 갖기 위해 난 뭘 포기할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3년간 입지 않은 옷은 앞으로도 입을 일이 없으니 버린다'를 모토로 삼고도 그래도 차마 못 버리고 끼고 돌던 옷들도 꽤나 챙겨 내놓았다. 미리미리 버려놓았으니 앞으로 몇 가지는 부담 없이 들일 수 있다고 막 기뻐하면서. 계속해서 잘 들이고 잘 버리는 생활을 이어나가봐야겠다.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지 나도 궁금.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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