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동전

투덜일기 2015. 3. 23. 02:11

엄마가 백원짜리인줄로 알고 받아온 거스름 돈 중에 하나가 알고보니 필리핀 동전이었다. 1페소짜리인데, 얼핏 보기에 크기와 두께, 색깔이 딱 백원짜리였다. 같이 섞어서 건네주면 누구라도 쉽사리 골라내지 못했을 것이다. 검색해보니 1페소의 환율은 대략 25원. 엄마는 75원을 손해본 거다. 그래도 엄마가 동전 분류하다 이상한 걸 알아차렸으니 좀 다르긴 다르다는 얘긴데, 이 사건을 두고 모녀의 반응은 크게 달랐다.


엄마: 생각할수록 괴씸하고 억울하다. 어디서 잘못 줬는지 따져야겠다. 약국인가? 목캔디를 샀던 마트인가? 또 어디를 들렀더라? 300원 거슬러 받은 데가 있었는데? 어디더라? 아이고 치매가 왔나, 왜 생각이 안나냐. 어딘지 확실히 알아야 찾아가서 따질텐데. 바보같이 거스름돈 속이는 것도 모르다니 눈이 삐었다. 시력이 많이 나빠졌나. 안경이 안 맞나. 안과에 가봐야겠다. 백내장 수술해야 되는거 아니니. 속상해죽겠네. 화난다. 근데 이 동전을 어떡하지? 버릴 수도 없고 어디 써먹나? 공항에나 가야 외국 동전 기부통 있던데... 

(참고로.... 엄마의 정신 건강 상태가 요즘 좀 저조하다. 별다른 이슈는 없는데... 그냥 환절기 봄탓일까...) 

= 째뜬 철저한 자책파에 알뜰 이타주의자.  


나: 진짜 비슷하게 생겼네. 거슬러 준 사람도 모르고 줬을지 몰라요. 설마 알고도 손해 안볼라고 얼렁뚱땅 눈나쁜 할머니들한테 넘기는 건가? 그럼 사기꾼인데! 음.. 그냥 잊어버리셔. 100원 내가 줄게! 혹시 옛날에 우리나라 500원짜리 동전이랑 일본 500엔이랑 비슷해서 자판기로 환치기했다던데(해서 일본은 500엔 동전의 재질과 색깔을 아예 바꿔버렸단다) 필리핀에서도 설마 조직적으로 동전 들여와 유통시키는 거 아냐? (막 음모론 꾸며댄다) 써먹긴 뭘.. 그냥 버려요. 외국돈도 동전은 바꿔주는 데도 없고, 어차피 겨우 25원이라니까! (실은 책상 서랍에 일본 동전, 미국동전, 영국동전, 호주 동전, 뉴질랜드 동전.... 등등이 한 뭉치 들어있다. -_-; 근자엔 여행가도 동전까지 악착같이 쓰고 들어오는 편이지만, 과거엔 신기하다고 괜히 종류별로 남겨오던 때가 있었다. 1달러짜리 동전 신기하지? 이러면서 친구가 준 것도 있고... 하지만 책상 속 서랍 외국 동전의 절반 이상은 아버지의 여행 흔적이다...)       

= 어디까지나 철저한 남탓파에 이기적인 귀차니스트.


우울증 탓이겠지만, 자꾸만 백원짜리 동전 하나 때문에 속을 끓이는 엄마를 보다 못해 몹쓸 필리핀 백동전을 빼앗아 10원짜리 통에 치워버렸다. 그러면서 문득 유통의 유혹을 느꼈다. 동전지갑을 따로 쓰다보니, 마트 갈 때 카트 빼는데 필요한 백원짜리를 자꾸 까먹어서 (천원짜리도 없어서 심지어 만원짜리 내고 동전 거스른 적도 있다. 짜증;;) 차에도 몇 개 놓아두고, 테이블 차키 옆에도 1개, 화장대 옆에도 1개 늘 굴러다니고 있는데.... 진짜로 보기만큼 백원짜리랑 혼용가능한지 카트에 넣어볼까 싶은 거다. ^^; 물론 어마어마한 이름의 법에 저촉되는 범죄행위겠지만... 애당초 그놈의 필리핀 돈이 돌고 돌아 하필 우울증환자의 신경을 거스르게 만든 이유도 누군가 호기심에 슬쩍 써먹어봤기 때문이 아닐까나? 


혹시나 진짜로 필리핀에서 환율 4배 장사 하려고 조직적으로 1페소 동전을 들여온 건 아닌가, 비슷한 피해 사례가 있나 검색해보니 전혀 없는 듯. ㅋㅋㅋ 이거 최초 발견이라며 신고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네그려. (물론 귀찮아서 절대 안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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