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알면 아마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다.
매일매일 같이 그림을 그리며 놀자고 졸라서 애엄마가 괴롭다고 토로하는 나의 조카 지우.
방금 고흐 자화상을 컴퓨터로 골라놓고 제일 마음에 드는 걸 따라그렸다면서 올케가 동영상과 그림을 보내왔다. +_+
완성본만 본다면 겨우 6살, 아니, 만으로는 다섯살 밖에 안된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는 걸 다들 믿을까 싶을 만큼 모사화 솜씨가 훌륭하다. 머리모양과 눈매, 양복의 선이며 이미지까지 완벽 포착!
비단 팔불출 고모라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라니깐!
동영상 속 노트북에 떠 있기는 하지만 상세 비교를 위해 고흐 자화상도 함께 퍼왔다. ^^;
지우가 따라 그린 고흐, 2011 6세
오르세 박물관에 있는 고흐 자화상
지우는 고흐가 잘생겨서 좋단다. 여러 종류 자화상 가운데 양복을 입은 걸 고른 이유도 아마 제일 단정하고 '잘생겨' 보여서가 아닐지. ^^; 동영상 받자마자 전화로 마구 칭찬해주었더니만, 나중에 자기가 '좀' 갖고 있다가 이 그림을 고모에게 주겠다고 했다. 반색한 내가 얼마나 있다가 줄 거냐니깐, "고모가 할머니 되면..."이란다. ㅠ.ㅠ
나쁜넘. 할머니 되서라도 지우 그림을 받을 수 있으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거겠지. ㅋ
엄마의 합창발표회가 무사히 끝났다. 연분홍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로 단복까지 맞춰입은 실버합창단 공연을 보는데, 첫 노래를 들으며 사진을 막 찍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열혈 선생님이 손수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구워준 CD를 들으며 집에서 개별연습까지 열심히 했던 엄마는(역시나 <그대 있는 곳까지>가 너무 어려워 제일 끝까지 속을 썩였다;;) 공연 내내 표정도 좋고 방긋방긋 입도 크게 벌리시고, 나중에 <닐리리 맘보>를 부를 땐 살짝 보일듯 말듯 리듬도 타며 훌륭히 맡은 바 역할을 해내신 듯 했다. 청일점 할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가운데선 울엄마가 유일한 은발이고 은발 두분만 70대라고 들었다. 청일점 할아버지 노래 잘하고 목소리 좋으시다고 엄마가 칭찬하는 말 여러번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눈> 부를 때 솔로도 하시고 나중에 노래자랑 땐 가곡을 불러 상도 타셨다. 두시간 전부터 가서 최종 리허설하랴, 공연하랴, 노래자랑 구경하랴, 몹시 고단한 하루를 보낸 엄마는 간신히 미니시리즈를 마저 보고서 조금 전 얼른 자겠다며 방으로 퇴청하셨다.
조카들 재롱잔치 때마다 꽃다발이든 캔디다발이든 들고 가서 축하해주었는데 이젠 할머니 되신 울 엄마 발표회를 다 구경하는구나 싶은 것이 마음이 좀 복잡했다. 하필 공연이 평일 오후라,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좋은 구경(?)을 할 이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었는데, 큰올케가 시간을 내 꽃다발 사들고 와주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창피하니깐 절대로 꽃다발은 사오지 말라고 내게도 신신당부를 했지만 우리 말고도 꽃다발을 사온 가족들이 더러 있었다. 물론 울 엄마가 받으신 꽃다발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찬조출연을 해 <닐리리 맘보>를 같이 부른 유치원 어린이들이 나중에 포토타임 때 무슨 영문인지 엄마를 둘러싸고 모여 조잘조잘 말을 걸었다. 나중에 들으니 장미꽃이 진짜냐고 물으며 꽃을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가시도 있느냐고 물었단다. 가끔 느끼지만 아이들과 노인들은 좀 더 잘 통하는 구석이 있다.
어르신께 드릴 꽃이니 화사한 걸로 만들어달랬다는 꽃다발을 안겨드리며, 엄마가 제일 예쁘고 제일 잘하더라고 칭찬해드렸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느꼈다. 영자씨 최고! d^^b
맨 앞자리는 귀빈석이라 다들 엉거주춤 뒷줄에서 찍고 있으려니, 발표회 전에도 온 좌석을 돌며 인사를 청했던 구청장이 선뜻 우리를 앞으로 내몰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걱정말고 다들 앞에 나와 마음놓고 찍으라며 자기는 일어나 뒤로 갔다. 선거 직전 후보 때도 엄마랑 구청에 갔다가 맞닥뜨리는 바람에 얼결 악수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역사상 얼굴 알고 찍은 유일한 구청장이 아닐는지. ㅋ 암튼 덕분에 간만에 배터리 충전한 디카로 사진은 실컷 찍어왔다. 이번엔 밍기적거리지 말고 1년전 사진까지 죄다 인화해 앨범에 꽂아야겠다.
지우의 두번째 작품집을 곧 공개하겠다고 장담해놓고 약속을 못지켜 혼자 찔려하는 중이다.
지난 주말 드디어 스케치북을 알현하고 작품사진을 서둘러 찍기는 했으나, 하필 제삿날이라 분주한 가운데 제대로 그림 설명을 듣지 못했다. 화가 본인께서도 노는 데 바빠 좀체 그림 설명을 하려들지 않았다. 제목이 뭐냐고 물으면 그림 뒤에 써 있다며 쿨하게 반응하시고...
암튼 그래도 그림혼 충만한 지우가 잠시 짬을 내어 초상화 두 점을 그려주어, 그것을 대신 미리 공개한다. 지우가 그린 큼지막한 초상화를 갖고 싶은 소원을 드디어 이루어 감격스럽다. 다음에 만날 땐 색깔도 칠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집에 물감으로 변하는 색연필을 미리 장만해놓아야하는 것인가 생각이 복잡하다. 화가소년을 위해 이 기회에 확 지를까? -_-;;
[큰엄마 ]2011년 11월, 6세
제 큰엄마를 아주 면밀히 관찰하며 그린 작품이다.
머리모양도 대단히 사실적이고(가르마를 타서 하나로 묶고 있었음) 경쾌한 느낌이 정말 큰올케를 닮았다. ^^;
사과무늬 앞치마는 꽃무늬 옷으로 척 대체하더니만 주방을 배경으로 스툴에 앉은 자세를 재량껏 옮겨 식탁에 앉은 모습으로 그려냈다.
뒷배경 왼쪽은 실제 식탁 뒤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이고, 오른쪽은 인터콤.
첫 그림이라 정성을 들인 게 한눈에도 보인다. 귀걸이에 목걸이까지...
+_+
이 초상화의 주인공인 큰올케는 몹시 마음에 들어하며 벽에 걸어놓았고, 이 사진은 그걸 찍은 것.
나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고모도 제발 초상화 한장 그려달라고 굽신굽신 애걸복걸했고, 몇 시간이나 졸라댄 뒤 드디어 소원을 이루었다. ㅋ
[고모] 2011년 11월, 6세
화가는 모델인 나에게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V를 그리며 웃고 있으라 주문했다.
처음엔 귀찮은듯 스케치북 한 귀퉁이에 얼굴을 동전만하게 그리길래, 나도 얼굴 '크~~~게' 그려달라며 지우개까지 찾아다 바쳤더니 옛다 선심 써주마 하는 태도로 동그라미를 아주 크게 확대했다. (먼저 그림을 그려받은 올케는 내 초상화를 보더니 자기보다 얼굴 크게 그렸다고, 자기 그림이 훨 예쁘다고 매우 좋아하였다. 나 원참;;)
동그란 얼굴, 단발머리 길이며 네모난 뿔테 안경, 헝클어져 늘어뜨린 앞머리까지 퍽이나 정교하다. (얼마나 실물과 닮았는지 사진과 함께 공개하면 좋겠으나 신비주의를 고수해야하므로 그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ㅋㅋ)
초상화엔 화가의 이름과 서명까지 받아냈다. 수십년 뒤 이 그림 또한 엄청난 고가에 팔리게 될지도 모르므로 소중히 간직할 생각이다. ^__^v
여름에 잠깐 슬럼프를 겪는 듯 집에선 잠시 그림을 멀리했다던 지우는 다시 폭풍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루에 스케치북 한권도 금세 다 써버리는 시기가 아닐는지 ㅋㅋㅋ 예쁘고 진지한 그림은 유치원(미술학원?)에서 매일 그리니까 집에선 '이상한'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선언하는 적도 있었다는데 암튼... 최근에 또 한권의 작품집을 끝내 집으로 가져왔다는 기쁜 소식도 들리고 하여, 2차 작품집 본격 자랑질의 예고편 격으로 지우 그림 몇장 또 소개할 작정이다. 휘휘 떨어져 내리는 낙엽 따라 마음이 늘어져 그런지 통 포스팅할 '꺼리'도 생각 안나기도 하고...
첫번째 그림은 지난 9월 지우가 준우형님 생일 선물로 그려준 작품이다. 타자로 활약하는 형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투수가 공을 던질 때부터 야구공의 움직임을 화살표로 표현해놓았다는 점. ^^; 준우형아가 홈런을 쳤단다. 그림 오른쪽 하단의 초록색 물체가 바로 야구장의 그물망을 표현한 것인 듯. 외야수가 팔을 한껏 높이 뻗었음에도 공은 담장을 넘어갔다. 캬... 6살 지우가 아직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하였으므로 생일 축하 메시지는 엄마에게 불러주어 적게 하였고 '지우가'라는 서명만 본인이 작성했다고... 수줍음 많은 형한테 부끄럼타지 말라는 게 요지다. ㅋㅋㅋ
2011년 9월 [야구하는 준우형아]
두번째 작품은 색연필로 그린 [용의 공격] (설명 들은 걸 고새 까먹어 제목 내 맘대로 붙였다;; ㅋ)
입에선 불을 뿜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의자에 앉은 사람이 고삐를 매 조종하고 있고, 입엔 여의주까지 물었다. 두가지 색깔로 표현한 불꽃하며, 날개에 그려넣은 무늬까지 아주 섬세하다.
2011년 9월 [용의 공격]
여의주 부분과 고삐를 잡아당기느라 몸을 뒤로 젖힌 사람의 자세까지 면밀히 보라고 올케가 상세사진도 보내줬다! 뾰족한 용의 귀부분도 완전 섬세해 섬세해~~!! 꼬마녀석이 연필로 어떻게 저런 곡선과 직선을 자유자재로 그리는지 모르겠다.
노랗게 반짝이는 큼지막한 별을 달보다도 크게 그린 것이 인상적. 저 삐죽하게 솟아오른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라!
이렇게 그려놓고 고흐보다 잘 그렸냐고 묻더란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해주라고 코치했다.
고흐는 27살에 처음 그림을 그렸단다, 지우야! 너는 그사람보다 무려 21년이나 빨리 이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거야. 훨씬 더 훌륭하고말고!!
지난번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소개한 책을 지우에게 사주었더니 그걸 보고 따라그렸다는데, 장난꾸러기 지우는 해바라기도 그려주겠다며 성의없게
2011년 10월. 지우의 해바라기
슥슥 그려 위 그림에 연이어 사진을 내게 보내왔다. -_-;
지우 표정을 보면 그리기가 싫었거나, 어른들을 놀려먹고 싶었거나... 둘중의 하나가 아닐까나.
아래는 지우맘 카톡 사진에 올라있길래 얼른 청해서 받은 칠교작품이다. 방바닥에 저래놓았으니 영구보존할 수도 없고 참 안타깝다. 내눈엔 그냥 빤해 보이는 색깔나뭇조각으로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다 하는지 원... 지난번 불이랑 얼음 뱉어내 양을 공격하는 용이랑 사자 작품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다. 작품명은 [로봇]이라고.
2011년 10월. [로봇] 장판위에 칠교조각 ^^;
손에 든 건 각각 방패와 도끼란다. 이 작품 사진을 본 내가 말했다. 어디선가 아즈텍 전사의 향기가 나! ^^; 안 그런가?
다음으론 무지개 공작새를 탄 준우네 가족 그림. 지우가 집에서 특히 가족화를 많이 그리는 건 어떤 의미일지, 그만큼 가족애가 많다는 건지 문득 궁금하다. 이번에도 맨 앞에서 새를 조종하는 건 슈퍼맨처럼 망토까지 걸친 지우.
2011년 10월. [공작새를 탄 가족]
이 그림을 보고 준우가 자기만 이상하고 성의없게 그렸다고 화를 냈다고 들었다. 인물 가운데선 역시나 본인과 제 엄마를 제일 정성들여 그렸다. 그래도 내눈엔 새초롬한 공작의 표정과 눈초리가 제일 인상적. ㅎㅎ
2011년 11월. [감따는 지우]
마지막 작품은 그야말로 제2작품집의 예고편이다.
유치원에서 보내온 두번째 작품집 가운데 (아마도 요번 주말에 나도 알현할 수 있을 듯.. 두근두근 설레 죽겠다 >,.<) 제일 가을분위기가 물씬 난다며 동생들이 한 장 먼저 선보여주었다. 작품명은 <감따는 지우>.
나무 모양과 바구니, 창호지로 보이는 감은 선생님이 일괄 붙여주고 나머지 색칠과 나뭇잎 사람 그림을 시킨 모양인데, 지우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높은 감나무를 올려다보는 자세를 그렸다! 그 조그만 머리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감탄스럽다. 나 같으면 기껏해야 옆얼굴 그리고 말았을텐데... 아웅.
옷색깔이랑 양말까지 전체적인 색 배합이 참으로 예쁘다. 작품집에 또 어떤 그림이 들어있을지 궁금궁금...
올케랑 애들 먼저 버스 갈아타고 우리집에 오느라 지우 스케치북을 못가져왔대서 아직 구경 못했다. -_-; 역시 대가의 작품은 알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새로운 그림 사진 하나는 또 입수했다. 사진 상태가 그리 정교하진 않지만... 그래도 지우 그림은 소중하니까 ^^;
제 아빠의 회사 동료(후배?)가 결혼을 앞두고 집으로 인사를 왔다는데 결혼축하의 의미로 지우가 그려준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스케치만 했을 때는 더욱 정교하고 세밀하여 아름다웠다는데 곧 도착한다는 전언에 마음이 급해 색깔을 대강 칠하면서 디테일이 지워져 안타깝다고 지우맘이 말했다. 어쨌거나 보자.
나비넥타이를 맨 신랑을 향해 어여쁜 신부가 걸어가고 있다. 처음엔 맨 왼쪽편 단상의 인물이 주례인 줄 알고 신랑이 신부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라 상상했는데, 아무래도 마이크를 손에 잡은 품새가 사회자 같다. ^^; 요즘엔 빨간색 주단 대신에 하얀색 레이스 비단을 깔아놓은 예식장이 많던데, 지우는 빨간색 주단을 선택했다. 흰색 일색인 웨딩드레스 대신에 장식과 채색이 화려한 드레스를 신부에게 입힌 것도 흥미롭다. 제일 기발한 건 화면 맨 아래쪽 테이블에 앉아 손을 든 하객의 모습이다. 제 아빠가 "어이 종오!"(이름 맞나 모르겠음)라고 신랑이름을 부르는 장면이라고...
시간이 넉넉해서 그림의 완성도를 좀 더 높였더라면 좋았겠으나, 뭐 이대로도 훌륭하다고 본다. 천재화가소년에게 이런 놀라운 선물을 받은 신랑신부는 얼마나 기쁠까나. ㅋㅋㅋ
찾아보니 벌써 7년전이다. 부산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KTX타고 셋이 내려가면 울산에 사는 한 사람이 역으로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회사를 마친 직딩 둘을 서울역에서 만나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으로 떠났고, 9시쯤 반가운 상봉 후 곧장 숙소를 잡아놓은 해운대로 향했다.
시간이 넉넉했던 울산 친구는 일찌감치 부산에 도착해 우리가 2박3일간 먹고 지낼 먹거리 장만까지 미리 다 해둔 터였다. 해운대 횟집에서 거나하게 배를 채우고 숙소엘 가보니, 화장실 세면대에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이 비스듬히 물에 잠겨 있었다. 광안대교가 바라다보이는 밤풍경에 이미 신이 나 있던 나는 너무 좋아서 꺅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울산 친구는 낑낑대고 혼자 미리 장을 보며 마트에서 파는 장미다발을 충동적으로 샀다고 했다. 마트에서 꽃을 판다고? 환영의 의미로 장미를 마련해둔 친구의 센스도 만점이었지만, 꽃파는 마트에 대해선 금시초문이었던 나는 부산 마트가 서울보다 좋다고 술김에 막 감탄했다. 그랬더니만 친구가 울산 마트에서도 꽃 판다고 했던 것도 같고...
암튼 그날 우리는 다시 본 술상 한 가운데 장미를 꽂아놓고 기분을 냈고, 다음날부턴 우리가 마신 빈 맥주병에 장미를 꽂아 창가에 놓아두었다. 이렇게...
떠나오는 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아깝지만 저렇게 꽂아두고 방을 나서며 빗방울 맺힌 유리창과 맥주병에 꽂힌 장미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도 마트에서 장볼 때 기회 되면 꽃도 같이 사야지 마음 먹은 게 이때였을까나...
작업실 있던 시절엔 코앞에 이마트가 있어 자주 갔었지만 매장 규모가 서울에서 제일 크다는(확실한지 모르겠다) 그곳에서도 생화는 잘 팔지 않았다. 꽃이 핀 화분(주로 양란이나 포인세티아 정도)과 알록달록 조화 파는 건 많이 봤어도, 한다발씩 묶어놓은 꽃을 파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최근 이마트는 조카들 장난감과 레고를 사러 가는 일이 없으면 아예 가질 않는다. 대형마트는 너무 정신없고 피곤하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숨이 가쁘다. 특히 멀미나게 지하6, 7층까지 뺑글뺑글 내려가 주차를 시켜놓고 나면 벌써부터 호흡곤란을 느끼는 듯.
그래서 내가 주로 다니는 마트는 동네 근처에서 주차가 그나마 편한 곳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프랜차이즈기는 하지만 매장이 단층이고 멀미나게 넓지도 않아 빠르게는 30분, 길어야 1시간내에 후다닥 장을 보기에 딱이다. 그러니 당연히 생화까지 갖춰놓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재래시장 쪽으로 가보면 화원이 하나 있기는 해도 소박한 다발꽃을 파는 것 같지는 않다. 동네 꽃집도 다 문을 닫는 바람에, 내가 가끔 전철역 근처 좌판에서 꽃을 만나면 반색하고 사는 이유도 다 워낙 꽃보기가 드물기 때문이다.
헌데 요번에 노상 다니는 굿모닝마트(혹시나 담당자가 검색하고 들어와 보고 또 꽃화분 기획하길 바라는 흑심에 밝혔다;; ㅋㅋ)엘 갔더니 입구에 꼬맹이 소국 화분이 좌르륵 놓여 있었다. '국내산 1990원'이라고 찍힌 가격표까지 붙어있는 걸 보니 어찌나 기쁘던지 쇼핑카트에 제일 먼저 소국을 두 개 실었다. 나중에 안고가기 번거롭겠지만 어떠랴. 우리동네 마트에서도 꽃을 팔다니. 아니, 마트에서 가을을 파는 것도 같았다. 1990원짜리 가을. ^^
절화는 생명줄을 똑똑 끊어 파는 거라는 말을 들어놔서, 일주일이나 열흘 쯤 눈요기 삼자고 사긴 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찔린다. 뭐 그렇다고 살아 있는 꽃화분을 사서 결국 말리거나 썩혀 죽이는 것도 별로 나은 짓은 아니겠으나, 꽃화분을 사는 건 절화 다발을 사는 것보다는 좀 덜 찔리는 행동 같다. 분홍과 노랑, 두 종류를 품에 안고 돌아와 엄마한테 자랑하니, 엄마 역시 어느쪽을 고를까 잠시 고민하다 (처음엔 분홍을 선택하셨다) 꽃이 많은 노랑을 곁에 놓고 보겠다 하셨다.
재주없이 따로 찍은 사진을 편집하렸더니 영 시원찮다.
꽃파는 마트로서의 위상을 계속 유지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동네 마트에서 꽃을 사왔더니 고릿적 여행추억까지 떠올라 두루두루 기뻤다는 얘기.
지난주에 대학로에 갔다가 전철역 앞 꽃좌판에서 파는 소국을 보고 반색했다. 박스에서 찢어낸 누런 골판지에 적힌 '한다발에 2천원'이라는 글귀까지 여전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밤기운도 서늘하고 가을은 가을이구나 싶어 가을맞이 소국 한다발 꽂아야지 마음을 먹었다. 집에 오는 길에 다시 들러 한다발 주세요 했더니 무작정 5천원에 세 다발 가져가라며 제일 볼품없는 꽃들로만 주섬주섬 챙기는 아줌마. -_-;
5천원도 싸다 생각은 했지만, 내가 아무리 소심하다 해도 시든꽃 바가지를 쓸 수는 없었다. 겨우 한 다발은 싱싱해 보이는 걸로 바꿔달라는 데 성공을 거두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화병에 꽃으려니... ㅎㅎㅎ 세 다발이라는 소국 5천원어치가 겨우 다섯줄기였다. 그럼 그렇지.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아직도 소국 한 다발에 2천원, 3천원이 옛날 그대로 있겠나 싶으면서도 씁쓸했다. 꽃 다섯 줄기를 이리저리 요령껏 잘라 최대한 풍성하게 꽂아놓고 이제 내 몸과 마음도 가을맞이 준비를 해야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늘해졌던 날씨는 추석날부터 다시 더워져 어제 오늘 계속 30도래고, 원래 열흘은 끄덕없이 싱싱해야 정상(?)인 소국은 일주일만에 꽃잎이 꽤 작아진 느낌이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일까, 영 션찮은 소국을 챙겨준 꽃좌판 아줌마 때문일까, 요즘 웬만한 생화도 중국에서 들여온다던데 혹시 저 소국의 원산지 때문일까.
예쁜 꽃을 보며 자꾸 심술이 돋아나면 안되느니라, 변덕스러운 날씨 따라 꿀렁대는 마음을 다스리는 중. 덜컥 가을오면 겨울과 추위도 금세 쳐들어올 테니 여름이 안 가고 미적거리는 게 어쩜 더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대여섯살 무렵의 정민이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고, 천재소녀화가 확실하다고 사방팔방 자랑하고 다녔다가 세월이 흐른 뒤 상당히 머쓱해졌음을 잘 안다. 그래서 준우랑 지환이 때는 호들갑을 좀 덜 떨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여섯살 지우의 그림을 보며 나는 또 다시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감탄하며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하루 전 작년과 올해 지우가 '비공식'적으로 집에서 그린 그림들을 자랑했지만, 미술학원(말이 미술학원이지 종일반 유치원이다)에서 '공식적으로' 그린 작품들은 그 깊이와 품격이 완전히 다르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섯살짜리가 이런 필치와 색깔과 구도로 그림을 척척 그려내는지 원! *_*
나야 눈에 콩깍지가 완전히 덮여 이성을 잃었다고 쳐도, 화가이신 우리 막내고모마저 전문가인 자기 그림보다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인정한 그림이 꽤 많다. 그분도 역시나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데다 핏줄은 속일 수가 없으니--게다가 나의 조카들에게 화가 DNA를 물려주신 장본인이 아닌가!--팔이 심히 안으로 굽기는 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화가로서의 냉철한 판단력이 흐려지진 않았으리라 믿는다.
올 상반기동안 예그림미술학원에서 지우가 완성한 작품집에 든 그림이 모두 17점인데, 하나같이 훌륭하다! 화가 본인도 그 점을 잘 아는지, 지난 여름 방학에 우리집에 놀러오는 날 스케치북을 들고 와 하나하나 작품 설명을 해주었다. 뜸들이다가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 설명 내용이 가물거리는 것들도 있지만 최대한 기억을 돌이켜볼 작정이다. 너무 미리 기대치를 높이면 안되니 이쯤에서 잡설은 줄이고 드디어 천재소년화가의 그림을 전격 공개한다. ^^; (엄청 깁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예상되오니 마음의 준비를 하심이...)
2011년
<공룡> 도화지에 물감, 크레파스, 사인펜. 2011년 상반기, 6세
(똑같은 경우 아래엔 생략예정)
이곳 미술선생님의 특징이 재료와 기법을 섞어서 다양한 표현력을 가르치는 듯하다.
그림마다 거의 테두리는 싸인펜으로 그리고 물감이나 색연필,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공룡의 몸뚱이는 붓으로 칠한 게 아니라 '스펀지'로 두들겼다고 지우가 설명해주었다.
알에서 곧장 태어나 아장아장 걸어나오는 아기공룡인 듯 왼쪽 아래쪽엔 금 간 공룡알들이 세개 더 보이고 저 멀리 화산에선 용암이 분출되고 있다.
배경에 달팽이 무늬를 싸인펜으로 그려넣고 물감으로 번지게한 기법이 쓰였는데 달팽이 무늬 크기가 제각각 다 다르다.
이렇게 귀여운 공룡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둘리보다도 귀엽다고 강력주장... ㅋ
(요번엔 그림들이 클릭하면 '적당히'? 커집니다)
<열기구를 타고>
지난 여름 이 그림을 딱 본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오매불망 꿈꾸고 있던 터키 카파도키아 열기구 여행이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열기구가 둥실 떠올라 있는 터키 여행사진을 녀석이 어디선가 봤을 리도 없는데... ㅠ.ㅠ
암튼 열기구를 장식한 별과 달팽이 무늬, 바구니에 탄 사람이며 저 멀리 지상에 서 있는 나무와 하늘에 뜬 햇님까지 모두 지우 솜씨라는 건 확실한데, 동그란 열기구 모양은 아무래도 선생님이 일률적으로 그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소년 자존심 상할까봐 당시에 묻지 못했는데 나중에 살짝 물어봐야지.(지우에게 확인해보니 선생님이 열기구 모양 그려준 거 맞단다)
화면 오른쪽의 남다른 색칠도 사연을 들은 것 같은데 기억에서 사라졌다. -_-; 추석때 만나서 확인예정. (열기구 오른쪽의 희끗한 형상은 '아파트'라고 함. 왼쪽 하늘색 꽃무늬 같은 것은 구름이고 ^^;)
지우 옆에 타고 있는 소녀는 이 작품집에서 가족 이외에 최다 출연하는 지우의 여자친구 '예서'양이다. 자꾸만 등장하는 걸 보고 고모는 폭풍질투에 사로잡혔었다. ㅋ (이 또한 나의 착각이었다! 열기구에 타고 있는 사람은 지우와 여친이 아니라 왕자와 공주라고! 어쩐지 이제 보니 남자아이가 좀 못생겼다. 지우가 자기를 저렇게 못생기게 그렸을 리가 없다 ㅋㅋ)
<예쁜 우리 엄마>
바로 앞 포스팅에 소개를 했지만 작품집에 든 그림 전체를 공개하는데 의미가 있기도 하고 세부설명도 필요한 것 같아 다시 올렸다.
선생님에 따르면 지우는 작품을 '구상'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다른 애들이 대강 쓱쓱 재빨리 그림을 그리는데 반해 워낙 공을 들이기 때문에 작품 완성이 상대적으로 늦단다. 다른 아이들이 그림을 다 그리고 막 놀기 시작하면 지우도 막 같이 놀고 싶어 엉덩이를 들먹거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놀 생각에 가끔 바탕색 칠하는 걸 힘겨워할 때가 있다고 해서 우린 깜짝 놀랐다. 지우가 워낙 색칠하기를 좋아하고 빈틈없이 칠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도 머리에 단 리본이며, 다이아몬드 귀걸이, 하트 목걸이 같은 섬세한 부분도 일품이지만, 엄마에 대한 넘쳐나는 사랑을 표현하듯 바탕에 하트를 아주 빈틈없이 도배해놓았다. 보라색과 자주색으로 이중 처리한 옷색깔은 또 어떻고! 인물도 예쁘지만 색감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전 포스팅에서 지우가 그린 엄마와 실물 비교를 위해 사진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우가 그린 자화상과 실물의 닮은 정도는 정말 놀랍다! 내가 그림과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할 때마다 다들 입을 모았다. 싱크로율 100%야! @.,@
정말 닮지 않았나? 비단 머리모양 뿐만 아니라 맑은 눈매며 암팡진 인상까지 똑같다고 팔불출 고모는 마구 주장하는 바임. ㅋㅋ
그림 제목은 <내 입속에는>이다. 지우가 완전 편식대마왕님이라서 먹는 게 정말 한정적이다. 저 그림에 드러난 밥, 쿠키, 아이스크림, 치킨, 생선, 바나나, 포도, 수박, 사탕, 콩 정도가 전부다. (드물게 콩을 먹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그 외에 빵과 떡도 좋아한다) 그런데 치킨 옆에 있는 저게 뭔지 통 기억이 안난다. 햄이라고 했던가? -_-; 며칠 뒤에 물어봐야지. ㅎㅎㅎ
(치킨 옆에 있는 파란 물체는 다름아닌 '물'이란다! 먹거리 그려넣으며 컵에 담겨 찰랑대는 물을 그려넣을 생각을 하다니 놀라워 놀라워;;)
<둥지 위의 새>
도화지에 싸인펜, 물감, 색종이, 크레파스
알에서 하나씩 부화하는 새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태어나자마자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그걸 음표로 표현한 것 좀 보라!
보라색 배경에 어울리도록 햇님을 흰색으로 그냥 내버려둔 센스는 또 어떻고~!
화가께서는 맨 왼쪽의 금 간 알을 가리키며, 얘도 이제 곧 깨어날 거라고 말씀하시었다. ^^ 벌레를 잡으러 간 엄마새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고... 대체 무슨 새인지 몸통 색깔이 다 다르다.
<무당벌레>
비오는 날, 커다란 나뭇잎에 무당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왼쪽 무당벌레는 오른쪽 무당벌레가 날아가는 모습이라고("얘가 날아가면 이렇게 날개가 펴지는 거야...")지우가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무당벌레 한 마리의 두 가지 움직임을 한 화면에 포착한 셈이다. @.@
나는 오른쪽 아랫부분에 그린, 민들레로 추정되는 노란꽃까지 전체적인 구도며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든다. ㅠ.ㅠ
<바다 위의 돛단배>
색종이를 접어 붙이는 콜라주 기법이 응용된 작품으로, 돛에는 별 스티커도 장식되어 있다. 바다를 파란색으로 칠하고는 하늘을 노란색으로 표현했다. 아웅...
왼쪽 돛단배에 탄 한 쌍이 또 다시 지우와 예서 커플인지, 제 엄마아빠인지 까먹었다. 물어본 것만 기억나고 대답이 뭐였는지는... 에휴... 이 또한 추후 수정하겠음.
(왼쪽 노란 배를 탄 한쌍은 왕자와 공주이고, 그 뒤를 쫓는 빨간 배에 탄 건 '나쁜 악당'이란다. 얘길 듣고 보니 빨간배에 탄 인물의 표정이 매우 포악, 사납다 ㅋㅋㅋ)
<행복한 우리집>
언뜻 보고 지우도 한옥에 살고싶어 하는 건가 의아했더니만, 자기네가 사는 아파트를 그린 거란다.
하긴 현관문 번호키를 보면 지네 아파트 맞다. ㅋ 방방마다 엄마아빠 형과 자기를 그려넣었는데 특이한 건 오른쪽 아래 누운 사람이 지우의 '이모님'이라는 사실이다. 이모가 자기네 집에 와서 자고 있다나?
고모는 안 그려주고 이모를 그렸대서
속 좁은 고모는 또다시 폭풍질투에 사로잡혔다. 그치만 뭐 어쩌겠나.. 이모는 바로 옆에 살고 고모는 아예 다른 시에 살고 있는 걸. ㅠ.ㅠ (지우네 집은 일산이다)
맨 왼쪽 네모에 들은 인물은 부엌에 있는 엄마가 아니라 '졸라맨'이란다. +_+ 그 옆에 세로로 그려진 두 인물은 아빠와 형, 오른쪽에 나란히 그린 인물이 엄마와 지우라고 함. 웬 뜬금없이 졸라맨? 아무래도 지우가 고모를 놀려주려고 장난친 것 같다. -_-;
<팽이치기 놀이>
지우랑 예서가 '베이 블레이드'라고 하는 팽이놀이를 하는 장면이란다.
팽이를 돌림판에 꽂아 끈을 잡아당겨 둥근 플라스틱 판에 놓으면 신나게 돌아가는 건데, 작년부터 한참 유행이라 나도 녀석들이랑 놀아봤다.
팽이를 부딛치게 해서 싸우거나 누가 오래 돌아가는지로 내기를 하는데, 그림 속에선 두 팽이가 불꽃튀는 전투를 벌이는 모양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팽이의 움직임을 꼬불꼬불 용수철 모양으로 형상화한 게 인상적.
<땅속 개미>
검은 도화지에 흰 크레파스로 개미를 그려 오려붙였다. 개미굴 맨 안쪽엔 알들이 잠을 자고 있고, 주변 땅속엔 개미들이 물어다놓은 애벌레, 과자, 도넛 같은 식량이 잔뜩 쌓여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ㅋㅋ
그림 맨 위 상단부의 주황색 물체는 애벌레가 아니라 '소세지'란다. ㅎㅎㅎ
<코끼리를 타고>
지우네 가족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 장면이다. 당연히 맨 오른쪽 엄마 옆에 앉아 있는 게 지우 본인.
코끼리가 네 식구나 태우고도 어쩜 저리 표정이 밝고 명랑한지. 뒷다리는 두껍게, 앞다리는 얊게 그린 것도 신기하고 힘들지 말라고 미리 포도랑 사과도 갖다주었다. 전체적으로 사랑스러운 느낌.
<거북이>
도화지 화면에 꽉 찬 거북이가 참 알차다. 등가죽의 육각형 무늬를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그렸을까? *_*
그안을 촘촘이 선으로 채운 것도 그렇고... 목덜미에 땀방울까지 디테일의 승리다.
흰색 크레파스로 구름이랑 동그라미 그리고 물감으로 바탕칠하는 기법이야 선생님이 가르쳤겠지만 시원시원한 선과 색감이 일품.
<나비가 훨훨>
제목 대로 꽃을 따라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 모습이다. 여기선 그림물감을 어딘가 딱딱한 데 묻혔거나 물감튜브째로 찍는 기법이 사용된 것 같다.
호랑나비 색깔들도 현란하지만 더듬이와 날개 모양을 어쩜 저리도 잘 그렸는지... 꽃모양도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느낌이 다양하다. 그림마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확실히 다르지 않은가! ㅋ
<비누방울 놀이>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비누방울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어린이가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고 하고 싶다. ㅠ.ㅠ
실제로 비누방울 놀이를 많이 해봐서 처음에 훅 불어내면 약간 바람에 찌그러지는 모습까지 포착한 듯...
천재랄밖에...
<세모나라>
세모나라라서 자동차들도 세모고 나무도 세모고 세모꼴의 대표랄 수 있는 피자조각도 보인다.
팔을 길게 뻗은 듯한 회색 자동차의 정체는 코끼리 자동차익고, 밤색 네모꼴은 '택배상자'란다. ^^;
<생일축하>
이 작품은 실제로 스케치북 제일 마지막에 케이크가 입체적으로 상당히 두둑하게 붙어 있었다. 종이찰흑인지 발포제 같은 걸로 따로 만들어 붙인 듯.
발 아래 놓인 생일선물들은 죄다 레고 시리즈란다. 지우의 파티 의상도 예사롭지 않다. 레고 닌자 시리즈에 꽂혔는지 검을 세개나 차고 시커먼 복면까지... ㅎㅎ
오른쪽엔 예서양 드레스를 입고 또 등장하시었다. -_-;
우리 가족들은 지우가 하도 말라서 자코메티의 조각, 또는 이디오피아 난민이라고 부르며 많이 걱정을 하는데, 지우의 여성취향 또한 가늘가늘 마른 소녀를 좋아한단다.
좀 튼실하게 예쁜 소녀친구에겐 '잘생겼다'고 칭찬을 한대고, 유독 하늘하늘 가녀린 예서만 '예쁘다' 또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사용한단다. 그래서 다른 여자애들이 막 속앓이를 할 정도라고... (꽃남의 인기는 어딜가나 그저!) 실제로 유치원 재롱잔치인가 발표회 때 지우가 워낙 춤동작을 잘하기도 했지만 인기를 감안해서 그런 것인지 다들 쌍쌍이 군무를 펼치는데 지우만 맨 앞 한 가운데에서 양쪽에 여자친구들을 데리고 무용을 했다.
[#M_그 증거 사진 ^^;|접기|
지우 인기가 이 정도라규~! 발표회 리허설에서 처음 두 여자에게 볼 뽀뽀를 당한 지우는 당황하여 울어버렸단다. 예서한테만 허락하는 뺨이었던가? ㅋㅋ 그러고보니 저 소녀들 중에 예서가 있었는지 물어봐야겠다.
<기차여행>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나뿐만 아니라 지우 그림 사진을 보여주면 이 작품을 탐내는 이들이 꽤 많다. 아이들 그림 중에 드물게 흑백느낌이라 그럴까?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디어도 만만치가 않다!
비오는 날(아래로 죽죽 그어진 하얀 선이 빗줄기란다)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데, 기찻길이 갑자기 울퉁불퉁 꿀렁거려서 '덜컹!' 하는 바람에 기차에 탄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라는 장면이란다. ^^;
검은 기차는 먹구름 짙은 잿빛 하늘에 길게 하얀 연기를 내뿜는데, 기관사도 놀라 조종간을 놓쳤고 사람들은 공중에 붕 떠있다. 심지어 맨 뒤에 탄 사람은 머리가 천장에 부딪쳤다! 기찻길을 촘촘이 채운 자갈돌은 또 어떻고! 언제 지우가 기차를 타봤던가? 관찰력이 참으로 세밀한 지우.
작품집에서 뜯어내기 너무도 아깝지만 이 그림을 주면 액자에 넣어 고이 간직하겠다고 굽신굽신해보았으나 화가께선 배시시 웃기만 하였다. 그치만 이 그림 너무도 갖고 싶다! +_+
벌써부터 써야지 써야지 생각은 많았으나 지우 경우엔 제목부터 바꿔야 하지 않나 -- <천재가 확실하다!> 뭐 이런 걸로 ㅋㅋ -- 싶은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무는 바람에 되레 더 늦어졌다. 이미 지우 그림은 초창기부터 여기 많이 자랑해서 중복해 올리기도 뭣하고, 천재성이 여실한 '아주 멋진 작품집'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림을 꽤 추려내도 워낙 많아 1, 2부로 나눠 올려야하나 어쩌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딱히 방향을 잡은 건 아니라서 지우 그림폴더 펼쳐보며 되는대로 자랑할 심산이다. 아무려나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지우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다섯살이 된 작년부터였다. 다른 조카들은 서너살 무렵부터 여기저기 마구 낙서질을 해대며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면 지우는 그 나이땐 낙서보다 색칠하기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제 부모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테두리 그림이 있는 그림책을 사서 자기는 그 안에 색깔만 칠하는 방식. 그런데 색깔 칠하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무슨 네살 짜리가 크레파스 색칠을 금 밖으론 안 튀어나가게 하는지!
그러다가 다섯살 봄부터 자동차, 인물화 따위를 그리기 시작하더니 몇달만에 그림솜씨가 확 늘었다.
2010년 7월. 5세. [노래방에 간 고모]
이렇게 내 생일에 선물로 그림도 그려다 주고....
노래방에서 마이크 들고 노래하는 내 모습이란다. 이미 자랑한 적 있지만 그림의 변화 정도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다시 올렸다. 올해 선물 받은 그림과 비교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렇지만 내가 지우랑 마지막으로 노래방엘 간 건 아마도 지우 세살 때였다규~! 그날 내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었을까?)
지금으로부터 딱 1년전인 작년 추석. 친척들에게 널리 지우 솜씨를 자랑하려고 이면지를 연필과 함께 지우에게 내밀었더니 슥삭슥삭 순식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폰을 장만한 게 하필 바로 추석 연휴 전날이라 아직 기능을 잘 몰라 버벅거리느라 사진이 영 엉망이지만 그러느라 과정 샷도 있다. ㅋㅋ
2010년 9월, 5세. 작품 활동중인 지우
이것이 바로 완성본.
2010년 9월, 5세. [선미, 진이고모와 지우]
제일 먼저 그린 왼쪽 인물은 <선미고모>, 중간이 본인이고 오른 쪽은 <진이고모>였을 거다. (명절 전날 음식장만을 할 때면 나의 사촌동생인 저 둘이 아이들과 제일 잘 놀아준다. 심지어 선미고모는 유치원 선생님이니 뭐;; 지우한테 예쁨을 받을 수밖에)
이 그림을 보자 너도나도 자기를 그려달라고 난리가 벌어졌다.
다음 차례는 그래서 제 엄마와 큰 엄마.
2010년 9월, 5세. [큰엄마와 엄마]
왼쪽이 큰엄마, 오른쪽이 제 엄마다. 강아지를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가운데 아래쪽에 파랑이도 그려넣었다. 오른쪽 아래 구석에 있는 게 파랑이 침대인데 짤렸다. 인물그림에 악어와 새까지 그려넣어 구도를 맞췄다. 천재답지 않나? ㅋ
서열이 세번째까지 밀린 게 자존심 상하지만 나도 가만 있을 수 없어, 지우를 살살 꼬드겼다. 지우야, 고모도 한번만 그려주라 응? 응? 사랑해~~~
2010년 9월. 5세. [고모]
역시나 압박을 가하면 화가의 예술혼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림이 엄청 단순해졌다. ㅠ.ㅠ 나도 선미고모처럼 소녀같이 예쁘게 그려주지.. 흑... 그래도 표정이 완전 행복해보인다. 현실의 내가 아무리 머리를 길러도 지우가 그려주는 그림속의 나는 언제나 짧은 파마머리다. 아줌마 파마 안한지 오해됐는데... 우쒸...
암튼 이날의 그림들을 담날 내가 챙겨온다는 것이 깜빡 잊었더니, 아 글쎄 청소쟁이 올케가 신문지와 함께 다 버렸는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해서 이들 작품 뭉치는 이렇게 사진으로만 남았다는 슬픈 후문이...
2010년 11월, 5세. [엄마아빠 결혼식]
이 그림은 지우가 제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에 선물했다는 그림이다.
신부가 짧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건지, 피로연장인지 암튼 뒤쪽엔 빨간 융단(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아빠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지우에게 직접 그림 설명을 못들었음 ㅠ.ㅠ)
가슴의 무늬를 보면 또 나름 커플룩이다! ㅋㅋㅋ
제 엄마는 절대로 저렇게 머리를 기른 적 없는 짧은 머리인데도 꼭 저렇게 길게 그린다. 나는 길게 길러도 맨날 짧게 그려주고! 치사하다..
드디어 해가 바뀌고 지우는 6살이 되었다. 해마다 첫 생일인 지환이 헝아 생일날, 원래 파티장소가 예전에도 가본 적 있는 브라질 식당 <메르까도>였다. 브라질인 요리사가 오븐 화덕에 구운 온갖 고깃덩어리를 직접 들고 와서 썩썩 접시에 잘라주는 곳인데, 워낙 인상적이었는지 생일선물 그림으로 그곳을 그렸다.
2011년 1월 6세. [브라질 식당]
그런데 그날 아쉽게도 파티장소가 바뀌었을 뿐이고! ㅎㅎㅎ 옆에 적힌 글씨는 <엉아 지환>이고, 하트에는 자기 이름을 적었다. 마지막 하트엔 '우지'라고 적혀 있ㅇ어! ㅋㅋㅋ
올해부터 지우는 유치원식 미술학원엘 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미술교육을 중점으로 하는 곳에 보내는 게 당연해 보였을 듯. 그림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인지 지우의 그림실력은 이제 막 폭발한다. 아래는 내가 이미 포스팅으로 자랑한 바 있는 가족화. ^^;
2011년 3월. 6세. [우리 가족]
2011년 3월. 6세. [우리 가족] 채색
이제 지우 그림의 정교함은 감탄의 경지를 넘어선다. 동물 그림도 그렇고, 공룡 그림책을 보고 슥슥 따라 그렸다는 그림들도 완전 기막히지 않은가!
2011년 4월 6세. [동물들]
2011년 4월 6세. [공룡]
2011년 4월 6세. [공룡]
죄송스럽게도 공룡 이름 들었는데 다 까먹었다. ㅠ.ㅠ
째뜬 어른도 이렇게 따라그리기 어려운데 어쩜... 참으로 훌륭하다. 천재인줄 알았다는 과거형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재 맞다규~! ^^;
보고 따라 그린 공룡그림과 직접 그린 공룡그림을 한번 비교해볼까나...
2011년 6월, 6세. [공룡]
2011년 6월, 6세. [화산과 공룡]
2011년 6월, 6세. [축구]
공룡그림도 사랑스럽지만 나는 지우의 인물화가 훨씬 마음에 든다. 맨 오른쪽 축구 경기 장면은, 지우가 강슛을 날렸으나 아쉽게도 골키퍼를 맡은 준우헝아가 막아내는 장면이란다. 표정들이 어쩜 저리도 사랑스럽고 동작이 역동적인지! (클릭하면 사진 커지는데 사진을 줄이지 못해 너무 커져 죄송합니다;;)
그림은 아니지만 준우형아의 칠교놀이 교재로 지우가 만들었다는 작품도 인상적이라 얼른 퍼다 놓았다.
<불을 뿝는 용>과 <얼음을 뱉어내는 사자>, 둘의 희생양이 되고 만 가엾은 양을 형상화했단다. @.,@
빨간색 나뭇조각을 이어붙여 용이 뿜어내는 불이라니... 난데없이 얼음을 뱉어내 공격하는 사자는 또 뭔가.
아이디어가 놀라워 놀라워...
그리고 드디어 올해 내 생일 이미 한달 전부터 지우에게 애걸복걸 그림선물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 덕분인지 작품을 <두 개>나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물론 작품의 완성도는 미술학원에서 심혈을 기울인 공식 그림들에 꽤나 못미치지만 그래도 감지덕지... 그림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다. ^^;
2011년 7월, 6세. [도서관에 간 고모]
2011년 7월, 6세. [생선을 들고 앵두 따는 고모]
왼쪽 그림은 <도서관에 간 고모>라는데 뜬금없이 커피와 도넛(영어도 쓴 거 보시라! 커피 그림엔 김이 모락모락~ 디테일이 살아있다, 간판 커피에서도 김 나는 모양 있는데 사진에 짤렸다. ㅠ.ㅠ)을 잔뜩 사들고 들어가고 있다. 전화통화를 할 때부터 내가 이왕이면 사람들 많이 나오는 그림을 그려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지우가 '도서관에 간 고모'를 그려주겠다고 미리 예고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 열람실 장면을 상상했더니만 한 아름 안은 도넛이라니... 대체 지우 머릿속의 고모는 어떤 인물일지 몹시 궁금하다. ^^ 내 평생 저렇게 도넛을 사들고 먹어본 적 없건만 ㅋㅋㅋ
오른쪽 그림은 우리 집앞에서 앵두를 따는 내 모습이란다. 대체 왜 왼손에 생선을 들고 앵두를 따는지 알 수가 없다. 아래층 개가 무서워서 앵두를 잘 못따겠다고 내가 말한 걸 기억하고 똥개 유인용으로 들려준 걸까? 암튼 아래층 개도 영광스럽게 개집과 함께 그림에 등장했다. 내 발 아래 놓인 건 돌멩이란다. "고모는 키가 작으니까 돌멩이에 올라가서 따는 거야"라고 지우가 말했다. ㅠ.ㅠ 생각해줘서 고맙다, 지우야. 암튼 물감으로 칠한 게 아니라 색연필화라서 색감이 흐리지만 입고 있는 옷도 잘 봐야 한다. ^^; 위아래 한벌이고 가슴에 그려진 무지개 무늬가 바지 밑단에 장식되어 있다. 섬세해 섬세해~~!!
지우는 올 상반기에 정말 엄청난 작품활동과 실력향상을 보였다. 미술학원에서 계속 그렸던 작품집을 집으로 보내왔는데 정말 하나같이 환상적인 작품들이었다. 천재화가소년께서 지난 7월 친히 작품집을 가져와 내게 하나하나 설명을 하며 사진촬영에 협조를 해주어 그 그림들도 곧 소개할 예정이다. ^^; 그 가운데 하나만 맛보기로 소개하고 마무리하련다.
[#M_닮았나요?|닫기|
화가는 원래 사랑하는 대상을 더욱 아름답게 그린다는 걸 알지만 지우가 제 엄마를 그린 그림을 보면 정말 질투가 폭발해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는 절대 안경 안 벗겨주면서 제 엄마 그림엔 거의 안경을 생략하고 반드시 공주풍으로 그린다. 흑.. 부럽 부럽;;
2011년 6월, 6세. [엄마]
2011년 7월, 6세 [엄마]
엄마의 실물 ^^;
왼쪽 그림은 너무도 미화된 공주풍이지만 가운데 그림(작품집에 들어있는 엄마 그림이다)은 실물과 정말로 느낌과 인상이 닮은 것 같아(지우 모친 본인은 지우 머릿속의 이상화된 엄마 모습이라며 극구 부인하지만;;) 참으로 신기해서 일부러 사진이랑 같이 공개했다.
만으로는 다섯살밖에 안됐는데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지우 천재화가소년 맞는 거 같죠? ㅋㅋ
'팝업북'이라고 제목을 써놓고 '입체책'으로 바꿀까 꽤 고민하다 그냥둔다. 우짜냐. 입체책이라고 하면 책장을 열자마자 팍~하고 불쑥 튀어나오는 그림들의 느낌이 안 살아나는 기분인 걸. ㅜ.ㅜ 이러면서 남들의 외래어 남용 탓하고 앉았으니 쯧쯧쯧.
암튼 순전히 일하기 싫어서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놀랍게도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아무래도 너무 더워서인듯;;) 일어나 아침밥도 챙겨먹고 컴퓨터 앞에 앉긴 했으나 역시나 일하기 싫어서 헤헤실실 요번에 산 팝업북을 들춰보다 아예 자랑까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팝업북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서점에 갔다가 보고 반한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북 시리즈는 볼 때마다 침을 흘리며 감탄을 했다. 하나같이 어쩜 그렇게 정교하고 아이디어가 뛰어난지! 갖고싶다는 욕망이 불끈 치솟았지만 '어른'이 되가지고 아이들 그림책을 좋아하다 못해 이젠 소장까지 한다는 건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처음 내 판단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카들에게 선물을 했다. 심지어는 에라 모르겠다 친구 생일선물로도 안겨주었다. 튀어나오는 그림이 가장 현란해서 아름다운 <오즈의 마법사>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둘이 제일 먼저 물망에 올랐고 한참 공룡에 심취해 있던 지우한테는 마침 번역서로 나온 <공룡>사전을 골랐다.
어린이날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조카들에게 팝업북을 안기며 내가 더 흥분해서 좋아라했던 것 같은데 정작 녀석들은 시큰둥해 했다. 일단 '영어'라는데서 오는 거부감이었던 듯.. (하지만 당시엔 아직 번역본이 나오질 않았다규~) 대리만족으로 조카들에게 선물해서 시리즈를 죄다 구경 및 소장하고팠던 나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피터팬>이랑 <정글북>까지는 꼭 쓰다듬어 보고 싶었는데...
조카네 집에 갈 때마다 은근슬쩍 꺼내 한번씩 열어보며 좋아라만 하기엔 어쩐지 성이 안찼다. 그렇다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선물을 계속 억지로 조카들에게 안기긴 싫고. 그러던 차에 문득 요즘엔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에 좀 인색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이 들며 다른 책과 함께 나도 모르게 <피터팬> 팝업북을 주문하고 있었다. ^^;
결론은 그렇게 해서 요번에 장만한 피터팬 팝업북의 위용을 자랑하겠다는 것. ㅎㅎㅎ
그림체가 아기자기 귀여운 것도 아니건만 기분 처질 때마다 열어보면 효과 즉방이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설계하고 만드는지 원!
이 장면은 웬디 삼남매가 피터를 따라 네버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만난 숲이다.
아래쪽에 접혀있는 텍스트 책장을 열면 페이지마다 작게 또 다시 팝업되는 거 정말 좋다. *_*
나무뿌리 아래 있는 아이들의 동굴 보금자리. 빨랫줄에 넣어놓은 양말이랑 웬디가 들고 있는 빨래가 제일 귀여운데 안타깝게도 사진에서 잘 안보인다. 웅...
<피터팬>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라하는 팝업인데 돛을 펼친 배의 위용이 잘 안보여 속상.
요즘 유난히 유치해지고 싶은 것 같아서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최근 픽사가 제공한 알로하 토이스토리를 깔아두었더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아주 딱이다. 룰루룰루~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로버트 사부다 팝업북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난 역시나 오즈와 앨리스를 고르겠다. 둘 다 이제 번역본도 나온 걸 보면 우리나라 책 제조술도 만만칠 않다는 뜻인가보다. 만들기 엄청 까다로울 텐데... 수입책과 얼마나 접고 펴는 느낌이 다른지(또는 똑같은지) 궁금하긴 하나, 앞으로 또 사게 되더라도 수입 원서를 사고 싶은 건 일종의 사대주의일까 아닐까. -_-; 혹시... 동화책이지만 영어로 갖고 있으면 뭔가 자료스럽게 보일 거라는 착각? ㅋㅋ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둘 다 퍼온 사진인데 아쉽게도 앨리스는 딱 이 장면밖엘 없네. 쳇... 그래도 이 페이지가 나도 제일 신기하고 예쁘다.
주말에 사촌동생네 아기 돌잔치에 갔었는데 답례품으로는 처음 받아본 게 있어서 소개한다. 언제부턴가 돌잔치를 하면 주최측에서 꼭 답례품을 돌리는 게 유행이다. 잔치를 준비하는 엄마들로서는 아가들 한복 준비하랴, 본인 의상 챙기랴, 입구에 세워놓을 사진장식 준비하랴 바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텐데 답례품까지 골라 주문하려면 정말 머리깨나 아플 것 같다. 조카들 때도 그렇고 다녀보면 돌잔치 답례품에도 유행이란 게 있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제일 흔한 건 주방용 작은 수건이나 행주, 아니면 머그잔이다. 돌잔치 답례품이 정민이 때만해도 없었으니 대대적으로 유행한지는 10년 정도밖에 안 된 듯한데, 최근까지도 수건과 머그잔을 받은 기억이 있으니 아직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주방용 수건도 행주도 머그잔도 별로 달갑지 않다. 준비한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미리 슬쩍 확인해서 머그잔이 마음에 안들면 괜히 짐만 되는 걸 알기에 사양해보지만, 고약한 내 심보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건지 그런 답례품은 꼭 두개나 챙겨주더라. ㅠ.ㅠ 버리기도 뭣해서 그런 머그잔을 꺼내놓고 더러 물잔으로 쓰기는 하지만 취향이 다양하니 내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일 리가 없다. (그리하여 결국 내다버린 답례품 머그잔 꽤 여럿이다. 다 낭비라고!) 주방은 원래 내가 선호하는 공간도 아니니 주방 수건이나 행주는 선물로 받고 싶지 않다! (게다가 우리집 수납장에 들은 행주는 대체 다 어디서 난 건지 내가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쓸 만큼 많고, 돌잔치마다 받아온 주방수건--나는 쓰지도 않는데!--도 골치아프게 여러 개다. -_-;) 역시나 주방용품인 작은 쟁반을 받아온 적도 있는데 이건 꽤나 요긴하게 사용중이다. 일부러 그림 예쁜 걸로 내가 골라오기도 했고. ^^v
암튼 엄마들의 아이디어인지 답례품 전문회사의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계속해서 트렌드가 변해가는 듯한 돌잔치 답례품 가운데 최근 내가 가장 므흣하게 받아온건 앙증맞은 상자에 담긴 수제쿠키였다. 요번에도 상자를 딱 보니 수제쿠키인 것 같아서 입맛을 다시며 두 상자 가져와야지, 라고 욕심을 부렸는데 묵직한 무게로 보아 쿠키가 아닌 듯했다. 그럼 혹시 전에도 받아본 적 있는, 분홍색 하트를 새긴 백설기인가, 짐작했다. 그치만 여름인데! 겨울이나 봄, 가을엔 떡을 답례품으로 받은 적이 있기는 했으나 여름 잔치에 떡 선물은 쉴까봐 조마조마할 것 같다.
궁금증을 못이긴 큰고모가 먼저 차에 오르자 마자 열어보니 뜻밖에도 저 상자 안엔 국산 잡곡이 들어 있었다. 어쩐지 묵직하더라니...
비용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생각해보니 일단 건강에 별로 이롭지도 않은 쿠키보다는 잡곡이 훨씬 의미 깊고 좋은 것 같다.
포장을 열면 안에 또 예쁜 레이스 종이를 감은 잡곡 비닐이 들어있고, 혼용율을 적은 스티커가 보인다. 흔히 돌잔치 주최측에서 오래 쓸 수 있는 머그잔이나 주방용품을 선물하는 건 그만큼 오래 첫돌 맞은 아이를 생각해달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으나 내 입장에선 그것 또한 귀찮게 늘어나는 살림살이일 뿐, 차라리 떡이나 쿠키처럼 훅 먹어버리면 그만인 답례품이 더 좋았다. 헌데 아무래도 떡이나 쿠키는 열량을 생각하면 건강에 그리 좋은 게 아니랄 수도 있다. 그런데 국내산 잡곡은 우리 농촌에도 이롭고 모두의 뱃속에도 좋은 선택이 아닌가! 전통적으로 이웃에 돌떡을 돌려 나눠먹으며 아이의 무병장수를 비는 풍습과도 일맥상통하면서, 뭔가 건강을 선물 받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암튼 좋은 아이디어, 현명한 답례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또 이렇게 구구절절 수다를 떨었다. 앞으로는 과연 쿠키, 잡곡 말고 또 어떤 기발한 돌잔치 답례품들이 나타날지 그것도 궁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