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에 해당되는 글 127건

  1. 2011.02.26 장욱진 20주기 회고전 4
  2. 2011.01.26 눈길 11
  3. 2010.12.11 바느질 13
  4. 2010.03.31 나에게 주는 선물 23
  5. 2010.02.26 무지한 눈으로도 6
  6. 2008.02.23 바느질 15
  7. 2006.10.20 소장품 2

새해 달력에 주렁주렁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두었던, 가고픈 전시회가 여섯개나 됐는데 보지도 못하고 하나하나 떨어져나가고 있다. 샤갈전이나마 얼른 보고 오기를 잘했지, 3월까지 한다고 뭉기적거렸다간 어찌됐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국내에 소장되어 있던 딱 한편의 고흐 그림,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도 새 주인에게 넘어가기전에 전시되었었는데,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날짜를 놓쳤다. 그림 딱 한편에 관람료 만원이 비싸서라기보다는 내게 심리적으로 코엑스가 너무 멀었다. 거기만 다녀오면 지하철 멀미를 하는 바람에...  서로 사는 동네가 멀어서 데려다주기 불편하다는 구실로 헤어지는 연인을 비웃었는데 내가 똑 그짝이구나 싶었다. 고흐에 대한 애정이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지. 대규모 회고전의 경우 양적인 충족감은 있을지 몰라도, 작품 하나하나의 세밀한 감상이 불가능하다며 대규모 전시회를 마뜩찮아하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만 해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를 그림이니 더욱 꼭 가야겠구나 생각했으나 결국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과천 현대미술관에도 꽤 소장돼 있고 장욱진 재단도 있으니 머지 않은 시기에 또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앙증맞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순 없었다. 게다가 전시장도 만만하게 경복궁 옆 갤러리 현대였다. 전시 막바지라 다들 조바심을 냈는지 홍보가 워낙 잘 된 때문인지 평일 오후에 갔어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봄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들이 특히 많았는데, 동심이 묻어나는 그림이라 아이들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여기저기서 그림 설명하는 엄마들 때문에 시끄럽긴 했지만, 엄숙하고 조용한 관람 분위기보다는 어쩐지 그런 소란함이 다정한 그림들과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포스터 그림은 78년작, 가로수


동그랗거나 길쭉한 단순한 형태의 나무와 옹기종기 모인 마을의 집들, 정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아이들 그림처럼, 대부분 작은 화폭에 그려진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 나는 마냥 좋다. 어떤 화가의 그림이든 대체로 새 그림을 무서워하는 나에게 예외가 있다면 어린 시절 나도 그렸을법하게 선으로만 묘사된 까치로 대표되는 장욱진의 새 그림이다. 장욱진 그림 속의 새들은 어린시절 내게  본격적인 새 공포증을 각인시킨 학교앞 병아리 좌판이나 히치콕 감독의 <새>와도 다르고, 뚱뚱하고 더러운 도시의 닭둘기와도 다르고, 언젠가 내 팔뚝에 똥을 찍 갈기고 날아간 이름모를 새와도 다르다. 



'57 나무와 새, 34x24cm



거의 모든 그림에서 해와 반달이 공존하고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무에 올라가 있거나 가족이나 동무와 함께 걸어가거나 어디선가 놀고 있다. 동화 삽화로도 꼭 어울릴 것만 같지 않은가!

다 좋아하지만 특히 남색과 초록색이 예뻐서 마음에 드는 <나무와 새>, 갈색 배경이 정겨운 <수하>는 봐도봐도 느낌이 좋다. 국내 가방업체에서 장욱진의 그림으로 가방과 지갑류를 선보였기에 신나서 얼른 지갑 하나 골라사고는 요번 전시에 그 그림도 포함되면 좋겠다 생각했으나 아쉽게도 그 그림은 화집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어디서 한번쯤 실물을 만날 수 있겠지. 지갑을 한번 사면 3, 4년은 너끈히 쓰는 편이므로 일단 그 그림이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다.


이번 전시는 연대별로 화실 이름에 따라 초기, 덕소 시대, 명륜동 시대, 수안보 시대 등으로 그림이 나뉘어 있었는데 시기에 따라서 엄청나게 화풍이 달라지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초기와 덕소시대 그림을 제일 갖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난번 덕수궁 석조전에서도 보았던 덕소 화실의 물건들이 여기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화폭이 작으니 덩달아 작고 탄탄해 보이는 앉은뱅이 이젤이 참 탐났다. 그리고 만약에 작품 하나 누가 골라 가지라고 한다면 <수하>가 아닐까 싶다. ㅎㅎ

'54, 수하, 33x24.7cm


이 그림은 재작년 한국근대미술걸작전에 갔다와서도 올렸던 것 같은데, 또 올린다고 문제될 건 없겠지. 아우 예쁘다.

초기에 그린 노란 바탕의 <자화상>도 그렇지만 장욱진의 그림은 간혹 손바닥보다도 작은 캔버스에 오밀조밀 유화를 그려놓았다. 요번에 처음 본 1972년작 <가족도>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오도카니 홀로 걸려 있었는데, 7.5x14.8cm의 작은 크기임에도 보는 이를 감동시키는 힘이 뿜어져나왔다. 주최측에서도 그걸 느꼈는지 일부러 엘리베이터 건너편에 사진촬영용으로 확대해 벽화로 만들어놓았던데, 색감이 어찌나 다른지 도저히 같은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감어린 흙색을 왜 시뻘겋게 표현해놓았는지 원! 아이들 데려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던데, 나는 불평용으로 찍어왔다. 제아무리 원작의 색감을 살려내기가 어렵기로서니, 자손들과 재단에서 기획한 전시에서 유일하게 벽에 새겨넣은 그림이 그모양이면 어쩐단 말인가. 수없이 기념촬영을 해갔을 사람들의 사진속에서만 장욱진 그림을 접한 이들은, 그 그림이 그토록 시뻘겋고 강렬한 줄로 착각할 게 아닌가. 안타까운 노릇이다.


원작은 이렇게 시뻘겋지 않다규!


문제의 가족도 벽화는 이렇게 생겼다. 원작 그림은 위에 있는 <수하>와 비슷한 색감이라고 보면 됨. 나무의 초록색도 영 아니올시다다.

그밖엔 대체로 흡족한 전시였다. 돌아가시기 불과 두어달 전에 그렸다는 <밤과 노인>도 처음 공개되었고 별로 본 적 없는 먹그림들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물에서 육성도 들을 수 있게 해놓았는데, 주름 가득한 얼굴, 깡마른 체구에 거의 늘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사진들을 많이 접한 때문인지 이젠 오래전부터 알던 먼 친척같은 느낌이 들 만큼 친근했다. 놓치고 못갔으면 아마 땅을 치고 후회했을듯. 역시나 내일이면 끝나는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도, 3월 1일에 끝나는 <피카소와 모던아트> 전시회도 포스트잇 메모를 조금 전 그냥 떼어버리며 아쉬웠지만, 하나는 건졌으니 장하다고 생각할란다. ㅎㅎ

마지막으로 고흐의 <아몬드꽃> 파란 지갑--낡아서 그림이 다 바래 하얗게 됐었다--에 이어 마련한 장욱진의 <나무> 지갑을 화집 옆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래도 색감이며 섬세한 부분까지 살려내진 못했지만 (나무 위 노란 집안에는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 백화점에서 본 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선물로 받으려고 목록에 적어뒀었는데 연말에 세일하길래 냉큼 사버렸다. 음화화핫. 브랜드 로고 옆의 금속 장식 두개만 없으면 금상첨화겠으나 (번쩍이는 거 싫엇!) 동그란 나무에 시선을 돌리면 이내 흐뭇하다. 고흐 지갑 살때는 살아생전 딱 한 편밖에 그림을 못 팔았고 평생 가난했던 고흐에게나 그의 후손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돌아갈 것 같지 않아 좀 찝찝했으나, 이런 그림 저작권료는 장욱진 미술재단으로 들어갈 게 틀림없으니 아깝지도 않다. ^^; 

'86, 나무, 33.4x24.2cm

표에든 그림은 73년작 부엌, 21.6x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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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투덜일기 2011. 1. 26. 11:24

설날 전에 두번 남은 주말 가운데 큰작은아버지의 일정에 맞춰 잡은 성묘일은 마침 대폭설이 내린 지난 일요일이었다. 집에서 출발할 즈음 눈길을 걱정스러워하는 전화를 받기는 했으나, 정말이지 그땐 눈발이 우스워보였고 공주보필에 힘쓰느라 나는 뉴스니 일기예보니 하는 것에도 무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강행한 파주 성묘길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여기저기 눈길에 서너대씩 차들이 뒤엉켜 있는 도로를 엉금엉금 달려, 작은 언덕도 못올라 빌빌 미끄러지는 차를 산소 입구에 세워두고 모두들 함박눈을 맞으며 버적버적 걸어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였다. 제일 먼저 출발한 나는 빌빌 기어갔어도 한시간도 안 되어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공원묘지에 당도했지만, 모두 다섯대가 다 모인 시간은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그간 쌓인 눈이 엄청나 발이 푹푹 빠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엔 접근도 못했고, 아버지 계신 납골당에 들어가 급히 이면지에 적은 조부모님 지방과 아이폰에 담긴 아버지 사진을 나란히 제단에 놓고 절을 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손을 호호 불며 (부츠는 신고 갔으되 왜 장갑을 빼먹었던고!) 한참이나 눈길을 걷고나서 돌아온 다음날까지 뒷다리와 허리가 뻐근했다. 생각해 보니 뜻밖의 눈사태로 나는 울음바람도 잊었더라. 지난 추석 성묘땐 비가 철철 오더니, 설날 성묘땐 대설이라... 다 자손들 잘 되라는 뜻이라는 큰작은아버지 말씀에 비싯 웃으며 동감했다. 눈길 운전은 솔직히 겁났지만, 1킬로 미터에 한번 꼴로 여기 저기 구석에 차가 처박혀 있던 자유로를 달렸어도 열여섯 명이나 되는 가족들 모두 별 탈없이 무사히 귀가하였으니 그냥 눈구경 한번 잘했다 싶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너무 춥고 장갑이 없어서 조카들이랑 눈싸움 한번 못한 건 두고두고 한이 되겠다.

그나마 돌아올 무렵엔 거의 눈이 그쳤다. 저런 길을 내가 다녀왔구나.... 사진으로 다시 봐도 놀랍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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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놀잇감 2010. 12. 11. 13:31
주말이랍시고 또 일이 하기싫어져서 방바닥을 뒹굴며 어른들의 장난감 아이폰이랑 씨름중이다.

11월에도 괜히 딴짓하고 싶어서 밤마다 바느질에 힘썼던걸 자랑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올려야지. 블로그에 포스팅하려고 사는 인생인가 싶어 민망하지만 이런 거 자백하고 나면 스스로 한심스러워져서 채찍질의 효과가 좀 있다. ㅋㅋ

우선은 왕비마마가 할머니 같아보인다고 질색을 하는 울 할머니의 유품 스웨터를 살짝 리폼했다. 단추만 바꿔 단 것도 리폼이라 쳐준다면.... 40킬로그램도 안되는 체중의 할머니가 입으시기엔 솔직히 옷도 너무크고 묵직하다. 셋째고모가 핸드메이드에다 순모라고 엄청 생색내며 선물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어쩔수없이 몇번 입으시고는 노상 간수하는데 더 신경을 쓰셨고, 그래서 20년쯤 묵었어도 아직 새것 같다. 원래는 털실로 짜서 덧씌운 단추가 달려 있었는데 나무느낌의 단추를 사서 바꿔 달았다. 이렇게만 해도 할머니옷 얻어 입은 느낌은 좀 덜나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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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사진 방향이 안돌려지누만 ^^;

두번째 바느질도 할머니와 관련이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생신에 넷째고모가 이불을 선물했었다. 집집마다 풍습이 달라서 고인의 물건을 다 태우거나 없애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기도 있고 특히 이불은 반드시 살라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난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고인의 유품을 간직하며 추억을 곱씹는게 뭐가 나쁜가? 특히나 올빼미인 내가 잠자러 들어가면 그때 할머니가 곧 일어날거니까 당신자리에서 자라고 덮어주시던 이불인 것을...
해서 봄가을에 10년 넘게 애용했더니 드디어 한쪽 가장자리가 헤졌다. 버려야하나 고민했었는데 막상 버리자니 다른데가 너무 멀쩡하고 대용량 쓰레기봉투값도 아까운 거다. (이럴 땐 또 지지리 궁상 ㅎㅎㅎ) 그래서 천을 끊어다가 덧씌워 꿰매보자고 결심한 게 작년이었다. 사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는데 요가학원 근처에서 발견한 바느질 부자재 가게에 저 스웨터 단추 사러 가보니 아 글쎄 천도 파는게 아닌가! 동대문 가야하는줄 알고 1년도 넘게 미루기만 했었는데... 그래서 그날로 득달같이 천을 잘라 헤진부분을 감쪽같이 덧씌웠다. 완성품을 본 정민공주가 예쁘다고 아래쪽도 마저 하라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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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폭풍 바느질에 힘쓰다보니 두려울 것이 없어졌고 동네 구두수선 아저씨가 가죽이너무 부드러워 자긴 못고친다고 하는 바람에 찢어진 채로 그냥 들고다니던 가방을 손수 꿰매겠다는 도전의식이 불타올랐다. 마침 택에 달렸던 가죽 한조각도 안버리고 두었더라고!! 안쪽 천을 튿어서 바느질을 버텨줄 천도 풀칠해 넣으며 스스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삭바느질로 전생에 먹고 살다가 갖바치 노릇도 했던 것일까 ㅋㅋㅋ 아무래도 가죽이라 바늘땀은 비뚤빼뚤하지만 이로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 탄생했으니 더욱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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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이렇게 복잡하고 긴글을 휴대폰으로 쓰다니 나도참 못말린다. 오타는 얼마나났을지 모르겠으나 다시는 이런 삽질을 방지하는 의미로 컴퓨터로 수정하지 않겠음.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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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는 선물

놀잇감 2010. 3. 31. 14:57

우유부단한 것도 가끔은 장점으로 작용하는 터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름신에 넘어갈 때면 늘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건 그동안 잘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라고. 게다가 작년부터 변변찮은 수입을 염려하여 퍽 금욕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탓에 알게 모르게 욕구불만이 가득 쌓여 더욱 까칠하고 음울한 인간으로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을 핑계삼아 최근 마구 질러대고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더욱 블로그질에 탐닉하는 쌘이처럼 나 역시 바빠서 제대로 즐길 겨를도 없지만 어쨌거나 특히나 정신없는 3월의 마지막날에도 이렇게 틈틈이 블로그질을 하며 자랑까지 나섰다. 가열찬 블로그질은 늘 하기 싫은 일이 더더욱 하기 싫다는 욕망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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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는 아름답고 눈부시더라. 다들 김연아 칭찬에 입이 마른 터에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기분 좋아지는 포스팅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제만해도 <1등만 기억하고 주목하는 더러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최소한 곽민정 경기부터는 관람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알람을 맞춰 놓고도 그냥 누르고 잤다. 민정양, 미안. -_-;

이름 까먹은 그루지야 선수가 넘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잠을 떨쳐낸 나는 미국의 레이첼 플랫 선수부터 정신을 차리고 경기를 관람했는데 이제 겨우 17살이라 토실토실 젖살이 남아 있는 귀여운 얼굴로 정말 신나게 즐기면서 경기하는 모습이라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안도 미키는 등장과 함께 속이 상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클레오파트라라지만, 그래도 지난번 시퍼러둥둥한 의상보다는 좀 차분해졌지만, 내가 초록색 옷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지닌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 촌스럽게 느껴지는 초록색 의상은 이번에도 안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사다 마오보다 안도 미키가 더 뛰어난 재능과 노련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좀 넓은 듯한 얼굴과 이목구비도 시원시원 매력이 있고. 헌데 안도 미키는 매번 의상이 꽝이다. 뭘 그리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지 원! 게다가 클레오파트라 때문인지 난데없는 단발머리도 어색하고, 피겨 스케이팅에 완전 무지한 울 엄니가 보시면서 "쟤는 왜 스케이트를 타다 말다 한다니."라고 하실 정도로 연기가 뚝뚝 끊겼다. 보라색 옷 입고 했던 세계 선수권 대회였나 그땐 그나마 좋았었는데!

안도 미키의 안쓰러운 연기 뒤에 본 연아의 모습이야 뭐 다들 아는 바대로 완벽했고 무지한 눈으로 봐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왕비마마도 "김연아는 진짜 잘하네. 딴애들이랑 확실히 다르다."고 촌평할 정도였다. 연기를 끝내고 눈물을 터뜨린 연아를 보며 나도 질질 울어대자 왕비마마는 상당히 의아해하셨지만, 자기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는 연아의 말처럼 나도 왜 울었는지는 딱히 잘 모르겠다.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난다는데 그런 것이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넘기 어려운 연아의 세계신기록 이후 연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도 그만하면 대단했다. 혹시라도 너무 큰 부담감에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몇번의 실수는 있었어도 훌륭하게 연기를 끝낸 걸 보면 연아도 그렇고 마오도 그렇고 스무살짜리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나쁜 방법이 <예쁘다/안 예쁘다> <멋지다/별로다><마음에 든다/안 든다>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라는데, 무식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예술품 앞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을 양분하며 감상을 이어간다. 마음에 안 들었던 작품이 나중에 다시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김연아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부턴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경외감을 품게 된 것 같다. 예쁘고 멋져서 마음에 꼭 드는 예술품인데, 심지어 거기다 인간적이고 마음 씀씀이도 넓은 대인배이며 스무살에 걸맞은 천진난만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저절로 애정이 샘솟는 걸. ^^ 

다들 일상의 구차스러움을 잊을 만큼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 김연아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던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울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했으나, 오늘은 무한반복 재방송되는 연아 얼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김연아 백신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고마워요, 연아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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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놀잇감 2008. 2. 23. 18:08
미쳤나보다.
밥먹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작업에 몰입해도 모자랄 판국에 일이 너무 너무 하기 싫어졌다.
그럴때 또 푹 잠이라도 자면 좋으련만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잠은 얄밉게도 아무때나 찾아와주진 않으며 까탈을 떤다.
그래서 새벽 다섯 시에 정신나간 여자처럼 바느질을 시작했다. ^^

옷방을 뒤져 재료를 찾고 가위질과 바느질에 힘쓴 지 3시간 뒤..
몇번이나 바늘에 찔린 손가락은 너덜거려 아팠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환한 아침 창밖을 내다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리 일이 하기 싫기로서니, 잠안자고 바느질하고 앉아 있었던 내 모습이 두고두고 우스울 것 같다.
그래도 그 노력의 결실은 꽤나 뿌듯하기에 널리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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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삶꾸러미 2006. 10. 20. 15:55


지난 번 고모 전시회에서 찜해둔 작품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나무그늘에 자건거가 기대어져 있는 흑백 판화작품 하나는 이미 갖고 있지만
이번에 전시한 사랑스러운 느낌의 채색 동판화 소품들은
조곤조곤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모의 성품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꽃도 있고, 별도 있고, 초승달도 있고
아련한 밤하늘을 담은 창문도 있고
탁자 위에 놓인 꽃병 옆엔 향기로운 커피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하면서 행복해지는 여러 일의 목록을 따져보면
미술관 관람이 상당히 상위권에 들어 있다.
화가가 되려는 꿈을 한번쯤 꾸어본 사람들은 많겠지만, 나 역시 한동안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더랬다. 그 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이 그림의 주인공인 우리 막내고모.
지금은 고궁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금지됐다지만, 우리땐 사생대회는 늘 고궁에서 열렸고,
가끔씩 주말에 고모 따라 화구 챙겨들고 경복궁이나 덕수궁에 이젤을 세우고
고모 유화 그림을 수채화로 똑같이 베껴(!) 그리던 전적이 있는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온갖 미술대회에서 제법 상도 받았더랬는데
그것만 믿고 무작정 화가의 꿈을 키웠던 거다. ^^;;

그러나 그 꿈은 결국 그냥 꿈으로 남겨졌고
그림에 대한 열망은  이제 감상으로만 만족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소장까지 하게 되다니 어찌 아니 기쁠소냐!
ㅎㅎㅎ
사진 들어간 포스팅을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자랑질!

(ㅎㅎ 고흐 그림이 바탕에 희미하게 비치는 가운데 작품이 놓이니까 느낌이 또 좀 다르다)
(아깐 그림 받은 흥분에 대충 써 올렸다가 다시 좀 더 덧붙였음을 실토함..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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