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에 해당되는 글 127건

  1. 2013.01.28 창경궁 14
  2. 2012.11.19 덕수궁 프로젝트 2
  3. 2012.09.04 팔찌 욕심 12
  4. 2012.08.24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 & 한국근대미술: 꿈과 시 2
  5. 2012.05.15 버니드롭 9
  6. 2012.04.16 14
  7. 2012.04.06 건축학개론 12
  8. 2012.02.23 기분 좋아지는 그림 13
  9. 2012.02.02 때아닌 스누피 열풍 10
  10. 2012.01.14 올 첫 그림 구경 5

창경궁

놀잇감 2013. 1. 28. 23:13

지난 주말 하필 최저기온 영하 13도라는 날에 창경궁 답사를 가며, 덕수궁 못지않게 궁이 좁아서 30분이면 다 둘러보겠던데 3시간이나 무슨 설명을 하려나 좀 의아했었다. 그러나 웬걸... 너무 뺨시리고 손시려워서 볼펜과 수첩은 꺼낼 생각도 하지 않고 핫팩만 감싸쥔 채 열심히 들으며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다 지나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궁궐은 무조건 창덕궁이라고 주장했었는데, 창경궁도 아기자기 정말 예쁘다. 복원한지 몇년 되지 않아 너무 선명하고 화려해서 오히려 거부감 드는 다른 궁궐에 비해 예산 편성이 되질 않아 복원 속도도 가장 느리고 단청 색깔도 몹시 낡고 바란 것이 되레 더 정겨웠다. 마음 편히 산책하기에도 딱 적당한 크기와 구조인듯. 게다가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 셋(500년도 넘었다는 창덕궁 금천교 말고;;)은 글쎄 다 창경궁에 있었다!

 

 

광해군 때 세워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전각 셋 중 하나가 바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이란다. 버스 내려서 횡단보도 건너기 직전에 건너편 길에서 얼른 한장 찍었더니만 수평이 안맞았다. ㅠ.ㅠ

창덕궁의 보조 궁궐 성격이 크다보니 규모와 품격도 낮아 중간에 문이 하나 생략되었고, 정문에서 곧장 정전이 들여다보이는 유일한 궁궐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명정전이랑 명정문, 홍화문 축이 일직선은 아니란다. 의도적으로 좀 틀어놓은 듯하다고...

추정되는 이유도 두 가지쯤 설명 들었는데, 하나는 화살 사정거리 때문이래고 나머지 하나는 뭐였더라... 까먹었다. ㅋ 

 

째뜬 바로 저 문밖까지 왕이 나와서 친히 백성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영조가 균역법 실시 전에 홍화문 밖에 나와 일종의 설문조사를 했단다!), 정조는 화성행차 이후에 쌀을 나눠주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정치적인 쇼였다지만 그래도 쌀 받아든 백성들은 감동하지 않았을까? +_+

 

창경궁 이론수업에서도 나왔던 <홍화문 사미도>가 안내책자에도 작게나마 들어있었다. 원래도 왕실 행사는 죄다 기록으로 남긴다지만 이런 기록까지 죄다 의궤로 꼼꼼하게 남기게 한 정조는 진짜 기록문화의 대가, 원조답다. 이런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 수많은 화원들은 또 뭔가! 문앞에 쳐놓은 차일까지도 대단히 정교하다. 앞으로 어디선가 의궤 전시회 한다고 그러면 꼭 달려가서 구경해야지... ㅠ.ㅠ

 

 

새삼 내가 찍어온 사진과 이 그림을 같이 놓고보니 차도로 잘려버린 홍화문 앞 마당이 더욱 초라해보인다. 어차피 왕도 사라졌고 조선의 궁궐이란 다 죽은 공간이지만, 문화재면 문화재답게 대우하고 보존하는 것도 나라의 수준과 함께 발전하는 것 같다. 문화재 보호도 다 먹고 살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

 

그나마도 율곡로로 잘려버린 창덕궁과 종묘를 잇는 공사가 요새 한참 진행중이다. 자동차는 지하로 다니게 하고 본래 창덕궁, 창경궁, 종묘로 이어졌던 숲을 일부나마 연결한단다. 그간 안국동에서 버스타고 대학로 가려면 무진장 막혀서 짜증냈었는데 알고보니 그 길 뚫는 공사였다. 앞으론 불편해도 암말 말아야지...

 

 

궁궐에서도 품계석이 서 있는 조정 마당에 들어설 때면, 문이 액자처럼 건너편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거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 비슷하게 찍어본 것이 홍화문 정문에서 들여다본 명정문의 모습이다. 어차피 안에 들어가면 설명 듣느라 사진은 못 찍을 테니까....

 

날이 워낙 춥기도 하고, 창경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인기도가 떨어지는 편이라 토요일 오후임에도 다른 관람객들이 많지 않아 좋았다. 저기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명정문도 그러니까 광해군이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은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금천 위로 가로지르는 옥천교도 옛날 그 다리다. 더욱이 창경궁 금천에는 실제로 졸졸졸 물도 흐른다! 다 얼어붙긴 했지만 흐르는 물을 직접 확인했음. 창덕궁 금천은 물길이 말라버려 어느 지점에선가 일부러 물을 끌어다 흐르게 했다던데.

 

일제시대  창경원으로 전락하며서 가장 많이 훼손된 아픈 역사를 지닌 궁궐이면서 또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갖춘 건물이 제일 많기도 한 궁궐이라는 묘한 아이러니가 이곳의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린시절 흑백사진을 보면 정말로 창경원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 많다. 동물원에서 코끼리 과자 주는 사진도 있고, 드넓은 잔디밭에서 도시락 펴고 먹는 사진도 있고...

 

궁궐 안에서 보이는 너른 잔디밭은 곧 건물의 무덤이라는데(홍순민의 <우리궁궐 이야기>를 어제부터 다시 읽고 있다 ㅎㅎ), 그 옛날엔 까마득히 모르고 궁궐 전각의 무덤에서 신나게 뛰놀며 도시락을 까먹었구나 싶다. 일제는 조선왕실을 부정해야 하니 그렇다쳐도, 창경원은 80년대까지 있지 않았나? ㅋ

 

 

창경궁에선 특히나 광해군 때, 19세기에, 1980년대 이후에 각기 지은 건물이 공존하기 때문에 서로 지붕 모양이며 처마의 각도도 미묘하게 조금씩 다를 거라고 했는데(이건 또 대목장의 취향과도 관련된 문제란다;;), 나의 막눈으로야 당연히 구분하지 못했지만 최근에 새로 지은 경복궁 흥례문이나 창덕궁 인정문과는 확실히 좀 다른 것 같다. 같은 팔작지붕이라도 각이... 좀 더 예리하다고나 할까? 암튼 예쁘다. ㅎㅎㅎ

 

옥천교 앞에서 본 명정문

 

창덕궁도 후원을 돌아다니려면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헉헉대야 할 때도 있고 높은 지대에서 아래쪽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궁궐 전각들의 지붕을 조망하는 건 북촌 언덕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헌데 창경궁엔 높은 계단 위 언덕의 자경전 터에 서면 곧장 궁궐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숨도 고르면서 사진 한장 찍어도 된다고 해서 얼른 나도 찍어보았다.

 

오른쪽 사진 앞쪽에서 보이는 작은 건물은 후궁들의 처소로 추정되는 '집복헌'이다. 80년대 이후 복원해 놓은 건물이긴 하지만, 암튼 옛날 저기 있는 집복헌에서 사도세자와 순조가 탄생했단다. 정조는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를 총애하여 자주 저기 드나들었대고, 아예 바로 옆으로 이어진 건물(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쓰다 거기서 세상을 떠났단다. 정조 관련 이야기는 창덕궁에 더 많은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다. 사도세자를 위한 경모궁을 서울대학병원 터에 지어놓고 한달에 한번씩 특별히 드나들던 문(이름하여 '월근문')도 여기 있더라. +_+ 

 

그밖에도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여성 인물들의 거처도 다 창경궁에 있었다. 나름 자주 찾아다녔던 다른 궁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긴 전각 이름도 죄다 낯설고 어려워 공부를 한참 더 해야 턱턱 건물 이름이 생각날 것 같다. -_-; 째뜬 내게도 추억의 장소인 대온실도 구경했다. 궁궐과는 참 안어울리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이지만 (당시엔 아시아 최대 온실이었다고;;) 이미 100년을 넘기고 보니 그 또한 등록문화재이고, 나름 아름답다. 궁궐 해설할 땐 안 들어간다는데 우리는 너무 추워서 잠시 들어가 몸을 녹였다.

 

원래 있던 희귀식물들은 죄다 과천 식물원으로 옮겼고 지금은 한국 자생식물들로 채워져 있단다. 봄가을에 시민들에게 야생화 모종 나눠주기 행사도 한다고...

어린 시절 난 저 온실 안에서 동생들이랑 술래잡기 하다가 뛰어다닌다고 다른 어른들에게 혼이 났던 것도 같다. 온실 안이었던 건 확실한데 어쩌면 남산 식물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창덕궁에 갈 때마다 인정전 꽃문살 참 예쁘다고 늘 한번 더 어루만졌는데, 그 또한 창경궁 명정전 문살이 '오리지널'이고 인정전과 근정전은 명정전을 본보기로 삼아 복원해 놓은 거란다. 어디서나 '원조', '오리지널'이라고 하면 왜 더 다시 보이는 건지 원. ㅎㅎㅎ 암튼 세월이 느껴지는 허름한 단청 빛깔도 원숙해 보이고, 일제시대에 전각이 있던 터까지 죄다 파버려서 복원하기에도 수월하지 않아 휑하니 사방에 빈터 투성이에다 건물 주변의 행각은 좀체 볼 수도 없는 창경궁은 그 허망한 느낌이 또 은근하게 좋았다. 다른 궁궐엔 눈 새하얗게 쌓였을 때 꼭 한번 가보고싶어지던데, 여긴 어쩐지 따뜻한 봄날에 다시 찾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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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프로젝트

놀잇감 2012. 11. 19. 15:07

원래는 친구의 LA 동료들과 만난 날 밤에 같이 가려고 했었는데, 자기들끼리 바로 다음날 궁궐순례 계획을 잡아놓았다고 하여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해서 친구는 결국 덕수궁 프로젝트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친구에겐 궁궐과 설치미술 구경보다는 수세미, 행주부터 수면바지, 속옷까지 식구수대로 사가지고 갈 쇼핑품목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미술관 때문에 제일 자주 찾는 궁궐이 덕수궁이지만 '서도호'를 포함한 설치미술이 전각 안에 전시되어 있다니 더욱 흥미가 동했다. 드디어 덕수궁 전각 안에도 들어가보게 되는군!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덕홍전. 금속으로 만들어놓은 곡선형 좌식 의자가 바닥에 빼곡하게 깔려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각 밖에서 안을 흘끔흘끔 들여다보고만 있는데, 입구에 서 있는 안내인은 들어와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왜?! 내가 먼저 신발을 벗고 성큼성큼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날이 부쩍 차가워져 엉덩이와 등이 이내 시려왔으니망정이지 안그랬으면 한 30분쯤 누워 쉬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인체공학적으로 몸에 딱 들어맞는 편안한 디자인이었다. 하지훈의 <자리>라는 작품이라고. 찍어온 안내판 사진을 보니 성기완의 음악도 연주되고 있었다는데 사실 기억에 없다. ㅋ

 

파도의 일렁임 같기도 하고 터미네이터2가 생각나기도 하는 금속 의자와 덕홍전 천장 사진을 세트로 찍어오는 블로거들이 많던데 그럴만했다. 편히 눕다시피 앉으니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새로이 채색한 듯한 화려한 단청이었다. 예쁘기도 하지...

 

 

석조전도 그렇고 중화전 뒤쪽으로도 그날따라 공사중인 곳이 꽤 많아 길을 돌아돌아 가다보니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이 나왔다.  

아니 이것도 작품인가 싶게 거울을 사이에 두고 회의 탁자가 놓여있었다. 설치미술은 뭔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다시 되살려준 정서영의 작품. ^^

 

 

전시 시작할 때는 미술관에서 설치미술 제작 과정을 죄다 보여주는 특별전시도 함께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미술관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쩐지, 입장료로 달랑 천원만 받더라니... 좀 아쉬웠다.

 

 

단풍으로 아름다운 나무들을 바라보며 궁을 가로지르다 보니 바닥에서 뭔가 반짝거렸다.

최승훈+박선민의 <결정>이라는 작품. 전시 안내책자에 어찌나 인색한지 브로셔도 없이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다 작품과 함께 설명 표지판을 찍어온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서 작품 제목까지 기억하는 게 가상타. -_-;

 

 

아래 사진은 덕수궁에서 제일 잘생긴 건물이 아닌가 싶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석어당의 옆모습.

 

이상하게도 단청 화려한 궁궐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전각을 꼽다보면 꼭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다.

창덕궁에선 연경당.

덕수궁에선 석어당.

경복궁에선 건청궁.

 

경희궁과 창경궁은 아직 복원이후 구경가보지 못했다. 어서 거길 다 가보아야 남아있는 5대궁궐 탐사가 다 끝날 텐데... ^^;

 

예술가들도 각별히 애정을 품었는지, 이곳에선 두가지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김영석의 <better days>와

이수경의 눈물.

 

 

덕혜옹주를 특히나 어여삐 여겼다는 고종이 석어당에 유치원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복과 보료, 영사기로 투사된 덕헤옹주의 사진들로 방을 재현해놓은 작품이 왼쪽의 모습이다.

 

 

흑백사진을 투명한 망사에 저렇게 비춰놓으니 더욱 처연하면서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죄다 어디에서 난 사진인고 했더니, 그 사진 액자들이은 분합문 위 문틀에 나란히 올라가 있다.

 

 

 

 

 

중화전 행각에 있던 이 작품은 이름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겠다. 궁중소설을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들려오던데 우린 철사에 묶여 있는 소설책을 대충 넘겨보다 잠시 앉아 다리만 쉬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중화전에도 뭔가 조명과 음향을 설치해놓은 것 같던데 하나도 안보이고 안들렸었다. 밤에만 보이는 건가?

 

 

기대했던 서도호의 함녕전 작품 <동온돌>은 약간 의외였다. 

고종이 명성황후와 엄비를 그리워하여 항상 이불 세채를 깔고 주무셨다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래고, 대청 한가운데에선 한복 입은 남자가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고 궁녀들이 이불 개고 펴며 잠자리 준비하는 동영상이 계속 돌아갔다. 이불 세채의 사연이 좀 안쓰럽긴 하지만 서도호의 리움 전시를 본 사람으로선 애개개 싶었음.

 

 

 

덕홍전 천장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함녕전의 천장.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쌍학이 날고 있는 똑같은 그림이다. 천장마저도 서글픈 느낌.

 

 

 

궁궐 전각과 예술품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의 의의도 좋았고 뿌듯했지만, 역시나 이날 가장 감동을 주었던 건 가을 풍경이었던 것 같다. 아직 만추가 되기 전이었던 저 나무들도 지금은 다 완전히 색이 달라졌거나 헐벗었겠지. 게으름 부리다 밀린 일기 쓰는 것의 장점 하나는 떠난 계절까지도 오래도록 질질 붙들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덕수궁 프로젝트는 12월 2일까지.

 

 

 

 

 

(201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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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 욕심

놀잇감 2012. 9. 4. 17:50

귀걸이, 팔찌, 반지. 이 셋은 큰 돈 안 들이고 소소한 소비욕과 흡족함이 필요할 때 내가 주로 선택하는 품목인 것 같다. 반면에 목걸이는 잘 안사게 된다. 한번 목에 걸면 몇달씩 안빼고 하는 스타일이라 살갗과 땀에 닿아도 괜찮은,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야하니 그런듯. 하지만 워낙 '버리지 못하는 지병' 때문에 고가의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까마득한 옛날 길거리 좌판에서 겨우 몇천원 주고 사들인 것까지도 생김새만 멀쩡하면 죄다 껴안고 사는 탓에 새 액세서리를 사려면 우선은 죄책감부터 든다. 이거랑 비슷한 거 집에 있지 않나? 고만고만한 취향이 또 어딜 가는 것도 아니고...

 

귀걸이는 귓불 구멍이 걸핏하면 말썽을 부리는 통에 그나마 묵직한 디자인을 제외하다보니 그나마 좀 덜 사는 편이고, 반지도 막상 사들여봤자 끼고 나가려면 귀찮을 때가 많아서(손 씻을 때는 빼야 하는 요란한 디자인일수록 꼭 그렇다;) 최근 액세서리 구매는 팔찌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구슬팔찌 좀 주렁주렁 해줘야 시원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내 나름의 패션 철학(?).

 

여름마다 생일선물로는 꼭 한두개씩 팔찌를 골라 주변에 사달라고 종용하는 편인데, 막상 하고 다니는 팔찌는 거의 정해져 있고 최근에 산 것보다는 꼭 옛날 옛적에 선물 받아 오래 추억이 서린 물건을 애용하게 된다. 헌데 문제는 팔찌의 고무줄이 세월과 함께 녹아버린다는 것. ㅠ.ㅠ  20여년 전에 선물받은 호박 팔찌도 고무줄이 녹았으나 그건 구멍이 워낙 커 집에 있는 마끈으로 나름의 아이디어를 짜내 수선을 해서 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만 고무줄이 아니라 빡빡한 마끈을 저 마지막 구슬에 끼우는 걸 한 손으로 하려니 더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라했던 옥돌 팔찌마저 고무줄이 늘어나자, 몇년째 여름마다 나는 수제 액세서리 파는 곳에 가면 팔찌를 사면서 슬쩍 팔찌용 고무줄을 좀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매몰차게도 다들 없다고! ㅠ.ㅠ

 

진기한 보석도 아니고, 구슬팔찌 정도야 고무줄 늘어지고 망가지면 휙 버리고 새것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죄다 못버리고 고쳐 쓰려고 모아두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에 가면 액세서리 재료 파는 곳이 있을 거야... 라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또 몇년... 물건 잘 못 버리는 것도 병이지만, 뭐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건 잘해도 막상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이 몹시 떨어지는 건 정말이지 나의 고질병이다. 오죽하면 컴퓨터도 바꾼다 바꾼다 1년도 넘게 고민만 하다 겨우겨우 샀을라고.

 

암튼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고민만 거듭하다 요번에 팔찌재료를 인터넷으로 파는 곳에서 쉽사리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전 실고무줄처럼 잘 늘어나지도 않고 잘 풀리지도 않는 우레탄 고무줄! 그런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야 없는 일, 어느 틈엔가 나는 이런저런 색깔의 구슬들을 마구 카트에 담고 있었고...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 정말로 엄선한 것들만 가뿐하게 결제를 했다. 하루만에 날아온 투명 고무줄과 구슬로 나는 또 구슬꿰기 놀이에 심취;;; 

외할머니가 생전에 중국 여행갔다 사다주셨기에 진짜 옥돌일 거라 굳게 믿고 있는(실제로 착용감이 완전 서늘하고 시원하다!), 제일 좋아하는 구슬팔찌도 고쳤고...

 

마끈으로 엮어놓고 나름 에스닉하다고 자평했으나 실용성은 떨어졌던 호박 팔찌도 다시 꿰고... 요번에 사들인 구슬도 죄다 팔찌로 만들었다! ^^;

 

요번에 내가 구입한 8~12mm 사이 각종 구슬은 50개 안팎 한 줄에 5천원~만원 정도. 더 비싼 구슬과 천연석도 많았지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색깔 위주로 사느라 애써 자제했다. 팔 굵은 울 엄니를 위해 터키석과 침수정(맨 위 갈색)은 각각 하나씩 특별히 좀 길게 만들어 드렸기에 남은 구슬이 좀 모자라지 않을까 했는데 남은 것만 엮어도 내 팔찌 만드는 덴 문제가 없었다. ㅎㅎ 재료비 3만원 정도 들여서 팔찌가 8개나 생긴 셈! 하지만 인건비랑 중간에 보석장식 같은 거까지 넣었을 재료비 따져보니 내가 그간 비싼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사곤 했던 몇만원짜리 팔찌값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장사꾼이라도 팔찌 하나에 최소한 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 ㅋ 아무래도 파는 팔찌는 고무줄 묶은 부분 안보이게 교묘하게 장식도 하나 정도 더 넣었던데 말이지...

 

암튼 망가진 엄니 염주 팔찌까지 죄다 고쳐드려야 해서 한밤중에 투명 고무줄에 일일이 구슬 꿰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_+ 그러고는 엄니랑 세트 팔찌라며 희희낙락 하고 나갔다 들어와, 팔찌통에 다시 넣으며 보니 아.. 진짜 팔찌 많은데 왜 계속 욕심을 내나 싶다. 이런 자랑 겸 반성 포스팅 하고 나면 내년 여름부턴 팔찌 욕심 좀 덜 부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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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 전인 것 같다. 덕수궁에서 한국근대미술 전시회가 열렸을 때, 유독 설명이 소상하고 정성스러웠던 도슨트가 이인성 화백의 그림 앞에서 말했다. 2012년이 탄생 100주년이니 아마도 조만간 대규모 회고전이 기획될 것이라고. 그 말대로 올해 5월부터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고, 나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맙소사, 석달 내내 벼르다 또 다시 끝나기 며칠 전에 겨우 다녀왔다. 입장료도 안받는 이런 무료 전시회는 미리미리 다녀와서 사방에 광고 하고 그래야하는데 쩝...  그나마 이인성 회고전 말고도, 2층에선 <꿈과 시>라는 주제로 근대미술 기획전시도 하고 있는데 그건 12월 2일까지라는 데서 위안을 삼아야겠다. 역시나 무료. 덕수궁 입장료 천원만 내고 들어가면 된다.

 

 

 

<계산동 성당>, <해당화>, <카이유>, <소녀> 같이 전에 본 적 있어 반가운 그림도 있었고 난생 처음 보는 그림과 소장품들도 많았다. 유화와 수채화만 그린줄 알았더니만 특히나 수묵담채화도 그렸더군! 그간 나는 이인성의 그림을 예뻐서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요번에 모아놓은 그림들을 돌아보니 어쩌면 뭔가 많이 익숙한 느낌이라 좋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속적인 인물화에서는 고갱의 화풍이 느껴지고, 해바라기 정물화에선 당연히 고흐가 떠올랐으며, 풍경화 몇점에선 언뜻 샤갈이나 마티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미술상에서 도안과 수채화를 배워 전시회에 출품해 척척 입선을 했다니 천재가 틀림없다.

 

 

이인성, [가을 어느날] 1934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鄕. 3, 40년대 문화예술계에서 워낙 조선의 향토성이 활발히 다루어졌대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선 아예 향토색을 심사기준의 하나로 강조했다지만 대구 출신의 이인성은 꾸준히 조선의 향토색과 한국적인 정서를 서양의 화풍과 기법에 접목했던 듯하다.

 

왼쪽은 타히티 여인들을 그린 고갱의 그림과 종종 비교되는 <가을 어느날>. 이 작품도 조선미술전람회 수상작이란다. 일제시대 관제미술의 수혜자였으므로  당연히 친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듯한데, 식민지 백성으로서 별다른 부와 배경 없이 남다른 재능을 펼치려면 일단 널리 인정받는 수밖에 더 있었겠냐고 설명했던 2년전 도슨트의 이야기에 나도 수긍했었다. 다만 그림 구석구석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놓여 있는 갖가지 소재들의 의미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시장엔 이인성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각종 자료와 그림엽서,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도  나처럼 참 열심히도 명화 엽서를 사모았다는 사실에 괜스레 흐뭇했다. 물론 나야 한동안 구경하다 서랍속에 넣어두고 끝이지만, 이인성은 엽서 그림으로 서양의 화풍을 배우고 참고해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반영했다고. 그래서 작품의 화풍이 다양하게 느껴진 것 같다. 모르긴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지 않았을까?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언뜻보고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여름 실내에서>. 

이인성 [여름 실내에서] 1934

단순히 붉은 빛깔의 인테리어와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 때문일텐데, 나만 비슷하고 느끼는지 다른 사람들도 뭔가 관련성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두 사람의 활동시기가 얼핏 겹치니까 혹시라도 일본 체류시절 교류의 가능성이 있을까나? 하지만 <붉은 실내>는 1948년 작품이라, 이인성이 이 그림을 훨씬 먼저 그렸다. 괜히 나 혼자 소설 쓰고 앉았는 것일지도... 어쨌거나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 화백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아오... ㅎㅎ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카이유>나 <계산동 성당>은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그림인데도 정겹고 참 좋다. 저 성당 앞 감나무가 아직도 있어 여전히 '이인성 감나무'라 칭한다는데, 진짜로 어떤 모습일지 대구에 가게 되면 꼭 한번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은지 수년째, 대구는 기차타고 지나가보기만 했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때문인지 요번에 처음 본 <이화 교정>이나 <아리랑 고개> 그림은 나도 좀 지나다녀 본 언덕이라 슬며시 반가워 유심히 더 오래 구경했다. 

 

 

 

 

 

대체로 작은 크기의 그림들 사이에서 <가을 어느날>과 <해당화>는 꽤 큰 작품이라 이번에도 두드러져 보였는데 나의 착각인지 예전에 뭔가 오류가 있었는지  <해당화>가 '개인소장'이라고 되어있어서 살짝 의아했다. 지난번 기획전시때 본 <해당화>에는 분명 '삼성 리움 미술관 소장'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미술품 가운데 대작은 다 삼성이 갖고 있군, 하며 코웃음을 쳤었는데... 어찌된 것일까나. ㅋㅋ 어쨌거나 언제 또 만날지 알 수 없는 개인소장품들을 더 열심히 오래오래 감상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전시실을 나섰다.

 

덕수궁 미술관 2층 전시실에선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을 비롯해 유명한 한국 근대서양화가의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오지호의 <남향집>도! ^^; 사실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면 늘 상설로 순회전시를 하고 있으니 만나기 어렵지 않은 작품들도 많았지만, 볼 때마다 흐뭇한 걸 어쩌라고... 

 

오지호 [남향집] 1939

화가의 딸이라는 빨간옷 소녀와 햇살 받으며 졸고 있는 하얀 강아지, 청보라색으로 표현된 나무그림자까지 정겹고 사랑스럽다. 이른바 '한국적 인상주의의 완성작'이라고 소싯적부터 교과서를 달달 외던 시절부터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인상파 편향적인 나의 그림 취향은 참 오래도록 변할줄을 모른다. ㅋ

 

<남향집>외에도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던 화가와 작품들이 꽤 눈에 띄며, 작품 사이사이에 이상과 윤동주 등의 싯구절을 적어놓았다. 생각해보면 이 나라의 근대는 암울한 일제강점기지만 그 시절에도 예술은 꽃피고 사람들은 꿈을 꾸며 살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분명 이 땅에선 황금시절이 아니었겠지만 우리나라 근대의 모습도 퍽이나 매력적인 것 같다. (엇, 이런 발언 위험한가?) 이런 상상은 아마도 <미드나잇 인 파리>의 영향인듯. 

 

 

 

 

 

 

 

 

 

궁궐 안 마당에 군데군데 서 있는 이인성 전시회 배너 가운데서 <카이유>를 찍어가지고 나오려니, 대한문 바로 옆에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에서는 쉰 목소리로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가롭게 전시회나 보러다니는 게 조금 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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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드롭

놀잇감 2012. 5. 15. 17:19

 

친구가 5월에 어울릴 것 같다며 이 영화 보고싶다고 해서 개봉일을 기다려 약속을 잡았다. 헌데 가까운 데는 개봉관이 없다! 대한극장, 서울극장 이런데는 하루 중 이상한 시간에 한번쯤 교차상영을 하고, 전국적으로도 상영관이 열개 안팎일 정도 ㅠ.ㅠ

 

암튼 그래서 일산 화정까지 가서 어렵사리 보고왔다. 그렇게 벼르고 볼 만큼 주변에 강력추천할 영화는 아니지만, 촉촉히 봄비 내리는 날 우산쓰고 돌아다니다 관람객이 전부 네명 밖에 안되는 초소형 영화관에서 각자 막 수다떨며 보기엔 딱이었다(우리 석줄 앞쪽에 앉은 커플 중 남자는 일본 영화인줄도 모르고 들어왔두만 ㅋㅋ). 조숙한 어린아이와 철부지 어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전형적인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그야 뭐 나도 알고 간 거니 상관없다. 아이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가, 내겐 항상 그것이 관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 문상을 내려간 다이키치. 친척들은 외할아버지와 꼭 닮은 다이키치의 외모에 '히엑~!!'하면서 놀라고, 동시에 할아버지의 숨겨진 딸 6살짜리 린의 존재 때문에 수군거린다.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는 골칫덩어리 꼬마는 입양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친척 어른들의 냉담한 반응에 다이키치는 충동적으로 자기가 맡겠다고 선언한다. 첫눈에도 슬프고 외로워 보이는 린에 대한 연민 때문. 린 또한 다이키치의 제안에 옷자락을 덥썩 잡는다. 어른들 가운데 유일하게 다정하게 바라보기도 했고, 일단은 다이키치의 외모가 아빠(할아버지)랑 닮은 설정이니 뭐.  

 

아우, 진짜 쪼끄만 애가 표정이 어찌나 처연하고 슬픈지, 나중에 조잘조잘 웃으며 떠드는 모습이랑 같은 애가 아닌 것만 같다. 린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비하면, 다이키치의 만화같은 과장 연기는 막 유치해! (원래 만화가 원작이라고;;) 다이키치 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들 연기도 지나치게 과장되고 희화된 느낌인데(특히 물류센터 같은데서 일하는 직장 동료들!), 이런 영화는 또 아역배우 하나만 건질 수 있으면 다 용서가 된다. 린이 넘 귀엽고 깜찍하니깐!

 

그나저나 포스터 보니 다이키치가 겨우 27살이었군. 회사에서 워낙 일 잘하는 관리직 상사인 듯 나와서 30대인줄 알았다. ㅋ 일본에서도 쉽지 않은 육아문제, 부모의 역할, 가족애를 한 축으로 하고, 아이와 어른의 동반성장을 아기자기하게 그린 영화다. 다이키치가 린을 데려와 사는 단독주택도 예쁘고, 처음 나온 할아버지네 집, 나중에 잠깐 나온 부모님네 집, 다이키치가 출근시간에 늦어 노상 린을 안고 뛰어다니는 골목길도 다 예쁘고 정겹다. 일본영화 보고 나면 나는 영화속의 예쁜 골목길이랑 주택가만 기억에 남기도 하는데, 촬영지가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불쑥 가보고 싶다고 느꼈다. 한류 드라마 촬영지에 외국 관광객 바글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무튼, 포스터에도 보듯, 저렇게 애랑 땡땡이무늬 커플 잠옷 입은 것도 귀여워 귀여워! 작아도 아이들 머릿속엔 별별 복잡한 생각이 다 들어있고, 마음씀씀이가 어른들 뺨친다는 걸 아는 어른들이 만든 이야기구나 싶다.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어린 조카 앞에서 나도 멍해진 적 있었다.

 

아 맞다, 나에겐 영원히 '조제'로만 기억된 (워낙 일본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는다;;) 이케와키 치즈루가 단역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두살 아들을 키우며 다이키치에게 조언을 해주는 회사 선배로.. +_+ 뭐 여전히 젊지만, 풋풋한 조제 때랑 비교하면 세월이 느껴지는 얼굴이라 내가 괜히 뜨악했다.

 

딸바보들의 세상을 칭송하고 가족권장 드라마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라고 결론내렸다. 부모노릇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만, 부모노릇을 비스름하게만 해봐도 확실히 인간적인 성숙은 필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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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꾸러미 2012. 4. 16. 11:37

일주일전부터 동네 여기저기서 발견하고 모은 봄꽃과 들풀 사진. 이제야 정말로 봄이로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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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임은 분명한데, 아무래도 외래종같다. 제비꽃의 다른 말이라지만 그야말로 '오랑캐꽃'이라고 불러야할 것 같은 양꽃의 느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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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러 동네 중학교 올라갔다 발견한 매화꽃. 묻지도 않았는데 어떤 아줌마가 지나가다 청매화라고 콕 찝어 알려줬다. 동백 흉내를 내려는지 시들지도 않은 꽃이 바람에 툭 떨어져 바닥에서도 고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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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같지만... 엄마가 옛날엔 나물로 해먹던 잣나물이라고 가르쳐줬다. 겨울 나고서 이렇게 흙을 비집고 올라오는 봄날의 여린 풀은 꽃 못지 않게 예쁘다.

춘심이 동해 결국 뛰쳐나가게 만들었던 주말의 봄날씨를 겪으며 집앞에도 꽃잔치가 벌어졌다. 몇년째 계속 두 그루 다 벚꽃인 줄 알고 살았다가 작년에야 비로소 왼쪽 나무는 벚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란 걸 깨달았다. 자세히 보면 꽃이 좀 다르긴 하다. 살구꽃이 더 작고, 촘촘한 밀도도 벚꽃보다 떨어진다. 근데도 작년까지는 계속 까막눈으로 똑같이만 보였다는 사실;; 

이것이 살구나무꽃.

이것이 벚꽃. 얘는 어제까지만 해도 완전히 다 피지 않아서 어젠 위 사진만 찍었는데, 벚꽃도 드디어 오늘 만개했다. 사진으로 보니 진짜로 벚꽃엔 별이 들었구나. +_+ 어디선가 말은 들어밨는데 정말 꽃속에 든 별을 제대로 실감한 건 오늘. 

나의 살던 고향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어제 오늘 계속 흥얼거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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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놀잇감 2012. 4. 6. 13:07

*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에 대해서 들었을 때 나는 한가인/엄태웅 조합보다도 배수지/이 제훈 조합에 훨씬 더 관심이 갔다. 나 역시 <파수꾼>에서 기태 이제훈을 보며 앞으로 주목할 만한 괜찮은 배우 하나를 얻었군 하며 흐뭇했었고, 수많은 아이돌 걸그룹에 대해선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면서 유일하게 알고 예뻐하는 아이가 '수지'다. 엄청 공들여 만져놓은 듯한 인공미 소녀들의 물결 속에서 수지양은  자연스러운데도 맑갛게 빛나며 예쁜 느낌! 한가인의 미모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열아홉살 수지와 비교하니 확실히 광채가 다른 것 같았다. 물론 빛나는 청춘을 그려난 과거의 화면이 현실에 찌든 현실의 모습보다 당연히 환하고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멜로 영화는 여주인공이 예뻐야 보기 뿌듯한 이 불편한 진실.. -_-;

영화를 보기 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포스터의 저 카피 대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쌍년/놈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이웃 어느분의 의견에 빵 터져 킥킥댔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역시 그 말이 진리였다. 감정에 서툴고 사소한 것으로 오해하고 자격지심과 자존심 앞세우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찌질하게 먼저 상처 주는 쪽을 택했던 청춘 한때를 그 말만큼 잘 찝어낸 말이 또 있을라고!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나도 분명 '쌍년' 짓을 했다는 건 잘 안다. 영화처럼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재회는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만났을 때 진짜로 왜 그랬냐고 나더러 따지더라. ㅋㅋㅋ  

수지와 이제훈에 대해선 이유없이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반면, 엄태웅과 한가인에겐 우려의 시선을 품고 있었는데 퍽 괜찮았다. CF속의 한가인이 그간 예뻐서 좋긴 해도 연기하는 걸 제대로 본적이 한번도 없다가 <해를 품은 달>에서 보며 얼마나 아쉬웠는지. "연우 역할을 문근영이 했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탄식을 수도없이 내뱉을 만큼 김수현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연기도 참 못했다(상대적으로 김수현과 아역 김유정 양이 사극 연기를 너무 잘한 걸수도 ^^;). 역시나 어울리는 옷은 따로 있는지, '제주도 학원출신' 음대생이지만 피아노는 지긋지긋하고 아나운서가 돼 돈을 잘 버는 게 꿈이었으나 결국엔 의사 부인이었다가 술마시고 쌍욕도 마구 하는 이혼녀가 된 서연의 옷은 한가인에게 퍽 잘 어울렸다. 세상풍파는 혼자 다 겪은 듯 외모도 성격도 확~ 변해버린 승민(이제훈이 나이든다고 어떻게 엄태웅이 되느냐고!)을 수긍하는 건 약간 더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는 뭐 그랬다 치고! 보는 것이 극의 묘미이니 꼬치꼬치 따질 수야 없다.

감독이 꽤나 오래 준비하고 다듬은 대본이라더니 가끔 가슴을 툭 떨어뜨리거나, 참 기발하다고 킥킥대게 만드는 대사가 꽤 많았다. 알탕, 대구탕과 달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 '매운탕'도 그렇고, '싱숭이생숭이', '우루사'도 그렇고...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서 벌써 다 까먹었으니 원;;) 하여간 근래 보기 드문 최고의 조연 캐릭터 '납뜩이' 조정석이 한 말과 행동들은 죄다 인상적이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이제훈한테서 <파수꾼>의 기태 그림자를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특히 택시기사한테 대신 화풀이하는 장면 ㅠ.ㅠ) 그에게 납뜩이 같은 솔직하고 좋은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까지 여겼다. 물론 여기서 이제훈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는 건축학과 새내기 승민이었는데, 미련한 내가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는 뜻이다. -_-;

서울이란 도시는 고향이라 여기기 좀 뭣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곳이다보니 서울에서도 낯익은 지명이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면 엄청 반갑고 정겹다. 전도연 하정우 나왔던 <멋진 하루>도 그래서 더 좋은 영화로 기억된 듯한데, 이 영화에서도 '정릉' 때문에 호감이 배가됐다. 살아본 적은 없어도 그 동네 사는 친구들이 엄청 많아 나 역시 개포동-정릉간 그 버스를 갈아 타고서 자주 놀러다녔고, 누구의 묘인지 아직도 헷갈리는 '정릉'엔 중1때 소풍을 갔었다. 소풍 장소가 발표되자 당시 정릉 친구들은 아우성을 쳐댔다. 국민학교 6년 내내 정릉으로 소풍 다녔는데 중학교에 와서도 또 거길 소풍으로 가야하느냐고! 그리고 건축학개론 첫 시간엔가 서연과 승민이가 지도에 빨간펜으로 그리던 길 위에 현재 내가 사는 집도 있다. 아니, 내부순환로가 개통된지 오래지만 북악터널을 지나 구불구불 신촌으로 이어지는 그 옛길은 요새도 내가 걸핏하면 지나다니는 길이다. 나와 별 상관도 없는 그 설정에 괜스레 흐뭇했던 이유는 역시나 강북인의 정서였을까?   

내가 건축을 해볼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건축과는 이과잖아! 난 수학 못해! 뭐 이런 원초적인 한계;;) 건축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막상 그들 일하는 얘기 들어보면 처음엔 엄청난 박봉에 노상 밤샘에, 건축주와의 신경전에 끔찍한 직업이 따로 없다 싶지만 그래도 '집'과 '건물'을 어느틈에 뚝딱(은 결코 아니겠으나;;) 만들어내는 일이란 얼마나 경이롭고 멋진가! 게다가 영화에 그 과정이 나오는 건축의 배경은 심지어 제주도다. 한옥열망과 더불어 제주도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열망 또한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막 부럽다가 막판엔 심술이 났다. 그러니깐, 제주도에 저 정도 집 짓고 살려면 예쁜 외모로 의사랑 결혼했다가 위자료 엄청 받고 이혼해야 되는 건가? 아니지, 그 전에 일단 제주도에 물려받을 땅과 집이 있어야 하는 거네! 흑... 비뚤어진 심보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제주도 바닷가에 옛집과 추억을 최대한 살려 지은 집은 참 아름답고 마음에 들었다. 확 터를 갈아엎고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서 더 애틋했던 것 같다. 인생 역시 깡그리 갈아엎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불가능지만, 서연과 승민 역시 과거의 기억을 가지런히 잘 정돈했으니 그 집처럼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납뜩이 때문에 대체로 깔깔 웃다가 영화관을 나왔는데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때문인지 덩달아 환기된 청춘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조용히 빗속을 걸으며 조금 슬펐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가 좋았지' 싶었던 부분도 확실히 더러 있긴 하다. 엄청 잘 만든 수작이 아님에도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는 건 다들 영화의 틈을 각자의 추억으로 메우기 때문인 듯. 암튼 이 영화 때문에 새삼 봄을 앓는 주변의 중년들이 몇몇 보여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들에겐 이 영화가 싱숭이생숭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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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고한 적도 있는 지우의 2차 스케치북 그림들은 아직도 작품 제목과 설명을 못들은 탓에 포스팅을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가운데 다른 작품집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도 도도하신 화가 본인의 설명을 듣진 못했으나 다행히 제목은 적혀 있으니 마음대로 작품을 해석할 기회라 여기며 열심히 찍어왔다. 미술관 못가는 대신 조카 그림이라도 보면서 기분을 전환해볼 요량이었다가, 내친김에 자랑 포스팅까지 실천한다. 이쯤이면 이웃들도 나의 무한조카자랑에 심히 질리거나 익숙해지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여기면서;;

아 맞다, 작품집 공개 이전에 녀석의 명작 따라 그리기 작품도 하나 공개.

위트릴로의 [두유마을의 교회]란 작품

지우가 연필로 모사한 그림 2011 12월, 6세


휴대폰에 <세계의 명화>라는 앱을 다운받아놓고 가끔 구경하는데, 지우가 그걸 눌러서 열심히 그림들을 넘겨보다가 하필 콕 찝어 따라그린 그림이다. 유독 그림이 작아 세부사항이 잘 안보이는데도 굳이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못내 궁금하다. 엄마 따라서 열심히 교회를 다녀 녀석의 마음에 은혜로움이 충만하기 때문일까? ^^;

그러고 보니 약간 만화체 같긴 해도, 어디선가 보고 베껴 그린 예수님 그림도 있다. 독실한 교인이신 나의 넷째고모 권사님과 사촌동생은 이 예수님 그림을 사진으로 접하고 마구 흥분하며 반색했다는 후문이다. 유명 화가들 작품엔 예수상 그림 많던데, 언젠가는 녀석이 홀로 생각하고 그려낸 예수상을 만나게 해줄지도...
이 작품은 내가 직접 그림을 본 게 아니라 그림 사진만 전송받아서 왼쪽에 적힌 글씨의 내용이며 사연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성경구절이려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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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최고의 발견으로 손꼽기도 했던 스누피 스트리트 페어 게임에 여전히 심취하여 계속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며칠 전엔 발렌타인데이 기념으로 또 게임이 업그레이드 돼, 막 흥분하는 바람에 하루에 딱 두번 잠깐씩만 하기로 했던 결심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동안엔 일단 캐릭터와 아이템을 장만해놓으면 언제 다시 들어가든, 사라지거나 망가지는 일 없이 저절로 지들이 알아서 돈을 벌어주고 있었는데 요번에 생겨난 화단은 적정 시간을 넘기면 꽃이 시들어 죽어버리니 어쩌란 말이냐! 꽃 피는 시간 기억해뒀다가 죽기 전에 얼른 옮겨 심으러 다시 들어가는 수밖에. ^^;

아무튼 스누피 게임 덕분에 스누피에 대한 열정이 새삼 피어나고 있다. 무려 60여년 전(1950년이라는 듯;;)에 탄생했다는 스누피와 친구들을 나는 처음 언제 알았는지 그걸 잘 모르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워낙 선풍적으로 인기였기 때문에, 어려선 종종 스누피 그림이 들어간 일제 문구용품을 탐냈다. 그리고 확실하진 않지만 집에서 보던 신문에 번역된 스누피 만화가 실렸던 던 것 같다. 원래도 신문 볼 때 맨 마지막 페이지 안쪽을 열어 4컷짜리 만화를 제일 먼저 보곤 했는데, 스누피는 주말판에만 실렸던가... 어디서 봤든 암튼 나는 엉뚱하고 냉소적이고 시큰둥하고 투덜대는 캐릭터가 많은 스누피 만화가 마음에 꼭 들었다. 물론 때때로 알콩달콩 로맨스와 풋사랑이 넘쳐나기도 했고.

학교 다닐 때 누군가 내게 '루시'를 닮았다는 말도 했다. 납작하고 동그란 코가 두드러지는 옆모습이 특히 닮았다나 뭐라나;; 위 그림에서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애가 루시인데, 만화 속에선 저렇게 착하게 웃는 모습보다 주로 못되게 심술을 부리는 캐릭터다. 특히 찰리 브라운을 몹시 못살게 굴며 무시하는 일이 많고, 친동생인 라이너스 형제한테도 워낙 못되게 구는 인물이라 그리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공필수 과목에서 매주 일주일치 사설로 쪽지시험을 봐야하는 처지여서 어쩔 수 없이 영자신문을 매일 봐야 했는데, 다행히 그때도 스누피 만화가 연재되고 있었다. 대개는 신문 사는 값도 아까워 학교 복사실에서 사설 부분만 복사하는 일이 많았으나, 스누피 만화가 나오는 날은 일부러 신문을 샀다. 근데 애들이 막 철학적인 사유를 하는 터라 사전을 찾아봐야할 때도 꽤 있었다. 만화 하나도 사전 찾으며 봐야하는 영문과 학생이라고 비참해 하면서... ^^;

암튼 최근 매일같이 스누피 게임을 하면서 문득 책장에 오래된 스누피 책도 갖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테두리가 좀 헐긴 했어도 여전히 화려찬란한 스누피 책을 꺼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샀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예전엔 책을 사면 꼭 면지에 언제 어디서 누구랑 사거나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록해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27년 된 정가 2500원짜리 스누피 책

1985년 생일에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책을 선물한 친구는 그해 미국으로 이민가 아직도 LA에서 살고 있다. 뜻밖의 깨달음에 득달같이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내며, 기억 나느냐고 물으니 금시초문이란다. 하기야 뭐 선물 받은 나도 까먹은 마당이렸다. 찰스 슐츠가 원래 이런 책도 썼는지, 출판사에서 사랑과 관련된 글귀와 그림만 발췌해 편집한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으나 그림 하나하나에서 그간 까먹었던 스누피 친구들의 관계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맞다, 찰리 브라운은 패티랑 사귀는 사이였다. 못되처먹은 루시도 음악하는 남자는 매력적이라며 피아노맨 슈로더를 짝사랑했었다. 찰리 동생 샐리도 라이너스랑 친했고...

무려 27년된 스누피 책이라며 책 내용도 사진을 찍어 막 자랑했더니, 촌스러운 원색 색감이 딱 그래보인다는 의견이 나왔다. 노랗고 빨갛고 샛분홍에 진초록, 진짜 알록달록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요즘 만든다면 분명 원색이라도 색감이 이렇진 않을 것 같다. 책 표지의 '스누우피-의' 표기는 또 어떻고! ㅋㅋㅋ



이 책만 발견하고 말았다면 굳이 포스팅까지 할 마음이 없었을 텐데, 방학때 와서 자고 간 지환이가 요상한 마법사 놀이를 하느라 여기저기에서 온갖 소품을 죄다 끄집어내다 장롱 구석에서 또 스누피 아이템을 하나 발견했다. 역시나 올해로 역사가 12년이나 된 물건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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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첫 그림 구경

놀잇감 2012. 1. 14. 03:37

예술의 전당에서 저녁약속이 있어 갔었는데, 딱 10분 남는 시간에 지하에 있는 갤러리를 어슬렁거리다 뜻밖에 고흐를 만났다. ^^; 사실은 갤러리 입구 유리 전시실 안에 걸린 작품이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무료관람> 팻말이 눈에 띄었고 옳다구나 들어가는 순간 정면에 걸린 고흐의 해바라기가 나를 반겨주어 완전 횡재한 기분이었다.

여러 작가들의 최신작이 전시되어 있어 죄다 흥미로웠지만 고흐 추종자로서 역시 내 눈엔 다양한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패러디한 이승오 작가의 <교차된 결> 연작만 기억에 남았다. 모두 네 명인가, 다섯 명의 작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람 얼굴과 눈빛을 조명으로 표현한 작품도, 미세한 철망의 음영으로 놀라운 인물 형상을 만들어낸 작품도 다 좋았으나,  아쉽게도 다른 이들은 이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째뜬 언제까지 전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혹시 조만간 예술의 전당에 갈 일이 있으면 지하1층 갤러리7의 '무료' 관람을 놓치지 마시라! ㅋ

게다가 혹시나 해서 물으니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을 찍어도 된다니 금상첨화! 처음엔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셋만 찍었다가 한바퀴 더 돌고 나선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패러디도 찍고, 대표작인 듯한 (비슷한 작품이 입구에 걸려 있었다. 그림을 비스듬히 한쪽에서 보면 여인이고 반대편에서 보면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모습인;;) 주름 작품(?)도 찍어왔다. 모두가 색색깔의 종이를 차곡차곡 접어 쌓아 만든 작품이었다. 작품 제목은 모두가 <교차된 결> 영어로는 <Layers>였고 재료는 paper stack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떻게 염색한 종이를 접어 쌓고 끼워서 고흐의 꿈틀거리는 붓터치 느낌까지 이렇게도 정교하게 살려낼 수가 있는 지 원... 화가들의 창의성이란 암튼! 신기신기...

같은 작품을 오른쪽에서 본 모습

왼쪽에서 본 모습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 여인들도 앤디 워홀의 작품 패러디가 아닐까나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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