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놀잇감 2013. 1. 28. 23:13

지난 주말 하필 최저기온 영하 13도라는 날에 창경궁 답사를 가며, 덕수궁 못지않게 궁이 좁아서 30분이면 다 둘러보겠던데 3시간이나 무슨 설명을 하려나 좀 의아했었다. 그러나 웬걸... 너무 뺨시리고 손시려워서 볼펜과 수첩은 꺼낼 생각도 하지 않고 핫팩만 감싸쥔 채 열심히 들으며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다 지나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궁궐은 무조건 창덕궁이라고 주장했었는데, 창경궁도 아기자기 정말 예쁘다. 복원한지 몇년 되지 않아 너무 선명하고 화려해서 오히려 거부감 드는 다른 궁궐에 비해 예산 편성이 되질 않아 복원 속도도 가장 느리고 단청 색깔도 몹시 낡고 바란 것이 되레 더 정겨웠다. 마음 편히 산책하기에도 딱 적당한 크기와 구조인듯. 게다가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 셋(500년도 넘었다는 창덕궁 금천교 말고;;)은 글쎄 다 창경궁에 있었다!

 

 

광해군 때 세워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전각 셋 중 하나가 바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이란다. 버스 내려서 횡단보도 건너기 직전에 건너편 길에서 얼른 한장 찍었더니만 수평이 안맞았다. ㅠ.ㅠ

창덕궁의 보조 궁궐 성격이 크다보니 규모와 품격도 낮아 중간에 문이 하나 생략되었고, 정문에서 곧장 정전이 들여다보이는 유일한 궁궐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명정전이랑 명정문, 홍화문 축이 일직선은 아니란다. 의도적으로 좀 틀어놓은 듯하다고...

추정되는 이유도 두 가지쯤 설명 들었는데, 하나는 화살 사정거리 때문이래고 나머지 하나는 뭐였더라... 까먹었다. ㅋ 

 

째뜬 바로 저 문밖까지 왕이 나와서 친히 백성들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영조가 균역법 실시 전에 홍화문 밖에 나와 일종의 설문조사를 했단다!), 정조는 화성행차 이후에 쌀을 나눠주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정치적인 쇼였다지만 그래도 쌀 받아든 백성들은 감동하지 않았을까? +_+

 

창경궁 이론수업에서도 나왔던 <홍화문 사미도>가 안내책자에도 작게나마 들어있었다. 원래도 왕실 행사는 죄다 기록으로 남긴다지만 이런 기록까지 죄다 의궤로 꼼꼼하게 남기게 한 정조는 진짜 기록문화의 대가, 원조답다. 이런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 수많은 화원들은 또 뭔가! 문앞에 쳐놓은 차일까지도 대단히 정교하다. 앞으로 어디선가 의궤 전시회 한다고 그러면 꼭 달려가서 구경해야지... ㅠ.ㅠ

 

 

새삼 내가 찍어온 사진과 이 그림을 같이 놓고보니 차도로 잘려버린 홍화문 앞 마당이 더욱 초라해보인다. 어차피 왕도 사라졌고 조선의 궁궐이란 다 죽은 공간이지만, 문화재면 문화재답게 대우하고 보존하는 것도 나라의 수준과 함께 발전하는 것 같다. 문화재 보호도 다 먹고 살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

 

그나마도 율곡로로 잘려버린 창덕궁과 종묘를 잇는 공사가 요새 한참 진행중이다. 자동차는 지하로 다니게 하고 본래 창덕궁, 창경궁, 종묘로 이어졌던 숲을 일부나마 연결한단다. 그간 안국동에서 버스타고 대학로 가려면 무진장 막혀서 짜증냈었는데 알고보니 그 길 뚫는 공사였다. 앞으론 불편해도 암말 말아야지...

 

 

궁궐에서도 품계석이 서 있는 조정 마당에 들어설 때면, 문이 액자처럼 건너편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거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 비슷하게 찍어본 것이 홍화문 정문에서 들여다본 명정문의 모습이다. 어차피 안에 들어가면 설명 듣느라 사진은 못 찍을 테니까....

 

날이 워낙 춥기도 하고, 창경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인기도가 떨어지는 편이라 토요일 오후임에도 다른 관람객들이 많지 않아 좋았다. 저기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명정문도 그러니까 광해군이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은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금천 위로 가로지르는 옥천교도 옛날 그 다리다. 더욱이 창경궁 금천에는 실제로 졸졸졸 물도 흐른다! 다 얼어붙긴 했지만 흐르는 물을 직접 확인했음. 창덕궁 금천은 물길이 말라버려 어느 지점에선가 일부러 물을 끌어다 흐르게 했다던데.

 

일제시대  창경원으로 전락하며서 가장 많이 훼손된 아픈 역사를 지닌 궁궐이면서 또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갖춘 건물이 제일 많기도 한 궁궐이라는 묘한 아이러니가 이곳의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린시절 흑백사진을 보면 정말로 창경원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 많다. 동물원에서 코끼리 과자 주는 사진도 있고, 드넓은 잔디밭에서 도시락 펴고 먹는 사진도 있고...

 

궁궐 안에서 보이는 너른 잔디밭은 곧 건물의 무덤이라는데(홍순민의 <우리궁궐 이야기>를 어제부터 다시 읽고 있다 ㅎㅎ), 그 옛날엔 까마득히 모르고 궁궐 전각의 무덤에서 신나게 뛰놀며 도시락을 까먹었구나 싶다. 일제는 조선왕실을 부정해야 하니 그렇다쳐도, 창경원은 80년대까지 있지 않았나? ㅋ

 

 

창경궁에선 특히나 광해군 때, 19세기에, 1980년대 이후에 각기 지은 건물이 공존하기 때문에 서로 지붕 모양이며 처마의 각도도 미묘하게 조금씩 다를 거라고 했는데(이건 또 대목장의 취향과도 관련된 문제란다;;), 나의 막눈으로야 당연히 구분하지 못했지만 최근에 새로 지은 경복궁 흥례문이나 창덕궁 인정문과는 확실히 좀 다른 것 같다. 같은 팔작지붕이라도 각이... 좀 더 예리하다고나 할까? 암튼 예쁘다. ㅎㅎㅎ

 

옥천교 앞에서 본 명정문

 

창덕궁도 후원을 돌아다니려면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헉헉대야 할 때도 있고 높은 지대에서 아래쪽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궁궐 전각들의 지붕을 조망하는 건 북촌 언덕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헌데 창경궁엔 높은 계단 위 언덕의 자경전 터에 서면 곧장 궁궐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숨도 고르면서 사진 한장 찍어도 된다고 해서 얼른 나도 찍어보았다.

 

오른쪽 사진 앞쪽에서 보이는 작은 건물은 후궁들의 처소로 추정되는 '집복헌'이다. 80년대 이후 복원해 놓은 건물이긴 하지만, 암튼 옛날 저기 있는 집복헌에서 사도세자와 순조가 탄생했단다. 정조는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를 총애하여 자주 저기 드나들었대고, 아예 바로 옆으로 이어진 건물(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쓰다 거기서 세상을 떠났단다. 정조 관련 이야기는 창덕궁에 더 많은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다. 사도세자를 위한 경모궁을 서울대학병원 터에 지어놓고 한달에 한번씩 특별히 드나들던 문(이름하여 '월근문')도 여기 있더라. +_+ 

 

그밖에도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여성 인물들의 거처도 다 창경궁에 있었다. 나름 자주 찾아다녔던 다른 궁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긴 전각 이름도 죄다 낯설고 어려워 공부를 한참 더 해야 턱턱 건물 이름이 생각날 것 같다. -_-; 째뜬 내게도 추억의 장소인 대온실도 구경했다. 궁궐과는 참 안어울리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이지만 (당시엔 아시아 최대 온실이었다고;;) 이미 100년을 넘기고 보니 그 또한 등록문화재이고, 나름 아름답다. 궁궐 해설할 땐 안 들어간다는데 우리는 너무 추워서 잠시 들어가 몸을 녹였다.

 

원래 있던 희귀식물들은 죄다 과천 식물원으로 옮겼고 지금은 한국 자생식물들로 채워져 있단다. 봄가을에 시민들에게 야생화 모종 나눠주기 행사도 한다고...

어린 시절 난 저 온실 안에서 동생들이랑 술래잡기 하다가 뛰어다닌다고 다른 어른들에게 혼이 났던 것도 같다. 온실 안이었던 건 확실한데 어쩌면 남산 식물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창덕궁에 갈 때마다 인정전 꽃문살 참 예쁘다고 늘 한번 더 어루만졌는데, 그 또한 창경궁 명정전 문살이 '오리지널'이고 인정전과 근정전은 명정전을 본보기로 삼아 복원해 놓은 거란다. 어디서나 '원조', '오리지널'이라고 하면 왜 더 다시 보이는 건지 원. ㅎㅎㅎ 암튼 세월이 느껴지는 허름한 단청 빛깔도 원숙해 보이고, 일제시대에 전각이 있던 터까지 죄다 파버려서 복원하기에도 수월하지 않아 휑하니 사방에 빈터 투성이에다 건물 주변의 행각은 좀체 볼 수도 없는 창경궁은 그 허망한 느낌이 또 은근하게 좋았다. 다른 궁궐엔 눈 새하얗게 쌓였을 때 꼭 한번 가보고싶어지던데, 여긴 어쩐지 따뜻한 봄날에 다시 찾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