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엄마 되다

양양연진 2022. 4. 25. 16:25

22년 4월 24일. 연이가 출산을 했다. 지난번 발정기 때 기묘하게 울었고 하늘이와 묘하게 꼬리잡기를 하듯 놀았으니 그냥 지나갈리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배가 부른 건지 어쩐지 통 모르겠더니만 ㅠㅠ 오늘 심상치 않게 조용하고 사료 먹으러도 안나타나서 집 방향 돌려주려 다가갔다가 집안에 웅크려 하악질하는 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나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 겁쟁이 연이는 내가 다가가면 후다닥 집에서 튕겨나와 달아났을텐데!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면서 하악질만 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조용히 물러나 아무래도 이상해서 황태포를 입구에 던져주니 슬그머니 나와서 먹는데… 엉덩이와 꼬리 부분이 피에 젖어있는 게 아닌가! 출산한지 얼마 안된 게 틀림없었다. 에고에고 갑자기 멘붕이 왔다. 출산박스 여럿 만들고 담요 갈아줘야한댔는데… 어쩌나. 하지만 그건 집고양이 얘기고 지금은 내가 접근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잔뜩 예민해져 있을 테고 내가 접근하면 새끼냥 훔쳐가려는 시도로 여길 수도 있을 거다. 

매일 내가 사료와 물을 놓아주는 위치는 연이 집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베란다 창턱 너머로 내가 집게를 이용해 놓아주기 편한 장소다. 연이는 새끼냥들 때문에 집주변에서 꼼짝도 안하는 것 같으니 얼른 츄르를 얹은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연이네집 바로 앞에 놓아주고 물러났다. 역시나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하악질을 했다. 걱정마, 너 먹을 거 챙겨주는 거야.. 조심조심 물러났다.

불과 3일전 4/21에 찍은 사진이다. 날씬해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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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출산 만 하루가 지난 오늘. 어젯밤에 미리 불고기감과 황태를 푹푹 끌이고 잘게 잘라 미리 산후 특식을 만들어 놓았다. 뜨거울 때 주면 안되지 않겠나. 점심 무렵 베란다 창문을 열고 연이야~ 부르니 연이가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평소처럼 야옹야옹 울었다. 오야... 맛있는 특식을 주마. 그러나 내가 또 베란다 턱을 넘어 집으로 다가가자 집안으로 숨어들어 하악하악~~. 집 앞에 특식과 평소 먹던 사료와 츄르를 나란히 놓아두고 물러났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으로 내다보니, 배가 고팠던 건지 허겁지겁 특식도 먹다가 츄르도 먹다가 왔다갔다 신나게 먹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피로 물들었던 꼬리와 엉덩이 부분은 이제 거의 다 깨끗하게 마른 상태. 약간 누리끼리한 자국만 남았다. 목욕도 안하고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지는지 신기하다. 암튼 연이가 밥먹는 동안 꼬물꼬물 새끼냥들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의젓한 엄마냥이 된 연이가 얼른 집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이 선견지명이란 게 있는걸까? 그간 연이 겨울집에는 입구에 두툼한 비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연이가 집안에 안 들어가고 집밖 바닥이나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 통풍이 안되나보다 싶어 출산 바로 전날 그 비닐커튼을 뜯어버렸었다. 그리고 안에 넣어주었던 겨울용 발방석도 꺼내버렸다. 연분홍과 노랑색이었던 방석이 회색이 된데다 고양이털이 북실북실 묻어 있어서 혹시라도 연이가 임신한 게 맞다면 위생상 깨끗한 담요만 있는 게 낫다고 여긴 거였는데, 바로 다음날 출산을 하다니! 공교롭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보온용 방석이 있는 게 더 나았을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대체 새끼는 몇 마리나 낳았을지 궁금해 죽겠지만, 연이 엄마였던 양양이도 처음에 딱 두 마리만 데리고 나를 찾아왔었고, 연이 배를 보아도 임신한 티가 별로 나질 않았으니 되게 여러마리일 것 같지는 않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꼬물꼬물 우는 소리로는 두세 마리 같기도 하고... ㅠ.ㅠ 작년 6월초에 양양연진 식구를 처음 만났고 크기로 보아 한달쯤 된 것 같다고 짐작했으니 연이는 아직 만1살도 안된 아이다. 근데 엄마냥이 되었다니! 본능적으로 새끼를 잘 보살피고 있을까...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는 걸로 봐선 그러는 것 같다.

어제 오후 침입자냥1(검냥이)이 슬며시 다가와 연이네집 입구를 노려보는 걸 발견하고 쫓아주었다. 그 뒤로 하늘이도 잠시 다녀갔는데, 하늘이가 왔을 땐 연이가 야옹야옹 울면서 집밖으로 나와 들이받는 것 같길래, 이놈시키! 소리쳐 역시나 위협해 쫓아버렸다. 하늘이는 내가 끝까지 쫓아가지 못한다는 걸 아는 녀석이라 좀 멀리 떨어져서 한참 지켜보던데;;; 아빠 노릇하러 온 거였으면 어쩌나 좀 걱정됐다. 하늘이는 한쪽 눈 아래쪽에 약간 누리끼리한 상처가 남아서 얼굴 구분이 가는데 그 외 검냥이들은 통 구분을 못하겠다.

밤새 혹시나 또 침입자냥들이 연이네 식구를 위협할까봐 걱정이 된 건지 새벽4시까지 잠도 오질 않았다. 고양이들이 야행성이라 그런지 그간 추이를 보면 새벽 4-6시 사이에 연이가 자지러지게 울며 SOS를 청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암튼 오전 시간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특식 배달한 뒤 한시간쯤 지났을까 오후에 다시 연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먹을 것을 노리고 접근한 침입자냥인듯. 녀석은 내가 창문을 열자마자 철창 너머로 도망치고, 연이는 허겁지겁 남은 특식을 먹어치웠다. 새끼냥 젖을 먹이려면 물도 많이 먹어야한다는데 물은 별로 안줄어든 듯... 신경이 자꾸만 연이네한테 쓰여서 한쪽 귀는 아예 바깥으로 향한 것 같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자꾸만 안방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

새끼냥들 무사히 쑥쑥 커서 어서 귀여운 모습 알현하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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