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고흐 전시회가 다음주로 다가왔다. 지난 주말 인사동엘 나갔더니 가로등마다 고흐 전시회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어서 더욱 가슴이 설렜다. 과연 이번에 온 67점의 작품들의 면면이 어떤 것인지 살피러 슬쩍 서울 시립미술관 공식 사이트(사이버 미술관도 있다 http://vangoghseoul.com/cyber01.htm)엘 가보고선 약간 실망.
실물 알현의 염원을 품고 있던 <아몬드꽃>은 오지 않았다. -_-;; 해바라기 시리즈는 하나도 안 온 모양이고, 미국 미술관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나 <별이 빛나는 밤>도 당연히 없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밀러 미술관 두 군데서만 작품을 공수한 모양이다. 아이리스 연작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리스 꽃밭 그림 작품 대신 꽃병에 꽂힌 아이리스가 선을 보이는 듯...
나는 이 아이리스를 보고싶었는데 ㅠ.ㅠ 대체 어디 있는 작품인가 새삼 찾아보니 역시 미국 게티 박물관에 있단다 1889년작.
확실히 내 안목이 전문가들과는 다른 듯, 나는 이 아이리스 그림이 더 좋은데 꽃병에 꽂힌 아이리스 그림이 원래 더 유명한 거란다 ^^;; 제일 비싼 작품에 속한다나 뭐라나..
아이리스 (1890)
그래도 달빛과 별빛이 교교하게 동심원으로 표현된 프로방스의 시골야경은 볼 수 있게 됐다. 개인적으로 사이프러스나무들이 여럿 서 있는 고흐 그림들을 좋아한다. ㅎㅎ 좀 아쉽지만 이게 어디냐.
프로방스 시골 야경 (1890)
고흐의 작품을 초기작부터 시기별로 전시실을 나눈 듯한데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역시 현란한 색감과 꿈틀거리는 붓터치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아를 시기와 생레미 시기다. ㅋㅋ 여기 올린 그림 세장이 모두 생레미 시기로군. 아마도 아를 시기에 속한다는 것 같은(벌써 까먹었다 젠장) <우체부 조셉 룰랭>그림도 두근두근 기대중.
물론 사이버 미술관에 일부 소개된 작품만으로 아직 크게 실망하기는 이르지 않겠냐고 애써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작품 가격만 1조 4천억원이라는데;; 감지덕지해야지.
2007년 11월 24일부터 2008년 3월 16일까지 전시라 기간도 꽤나 넉넉하다. 입장료는 만2천원. 코엑스멤버십 카드, GS칼텍스 보너스카드를 제시하면 천원 할인된단다. 개관 첫날 달려가는 성의를 부리고 싶기도 하지만 주말이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까봐 두려워서 안 갈 작정이다. 이번 전시와의 첫 만남은 한가로운 평일 오전으로 계획해 봐야지!
스킨을 바꾸고 나서 색깔과 느낌이 어울리는 고흐 그림을 떠올려보니 단번에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이 아몬드 꽃그림이었다.
1890년. <꽃이 핀 아몬드 나무> 캔버스에 유화.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렸다고
처음 이 그림의 '사진'을 보고는 "어머나, 혹시 벛꽃 종류 아냐?"라고 탄성을 질렀는데 그림 설명을 보니, 아몬드 꽃이라고 했다. 아몬드 꽃도 성급하게 잎이 나기 전에 피나보다. ^^; 어쩐지 동양화 느낌이 난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고흐의 화집을 보면 아예 노골적으로 일본 화풍의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 꽤 된다. 아마 이 그림도 그럴 거라 '나름' 짐작했다.
이 그림에 관한 사연은 고흐의 그림인생을 무던히도 후원해주었던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아 빈센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소식에 고흐가 몹시 기뻐하며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렸단다. 바탕의 파란 배경은 조카 빈센트의 파란 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들은 듯...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톤의 '파랑색'을 참 좋아하는데, 인쇄술에 따라 화집 그림 색깔도 몹시 달라지지만 약간 옥색 기운이 들어간 이 파랑색도 아련해서 참 마음에 든다. 내 기억이 맞다면.. 비슷한 그림을 여러 번 그린 고흐 특유의 작품경향에 따라 아몬드 나무 그림도 두어 개는 됐던 것 같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지 아마.
파리 오르세 미술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시카고 현대미술관 등등... 고흐의 작품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한 작품 있단다!!)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소장한 곳은 역시나 반 고흐 미술관이다. 언제고 내 꼭 반 고흐 미술관엘 가보리라!! ^^ (생각해보니 어쩌면 11월부터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흐 미술전에 이 그림도 올지 모르겠다! 캭~)
조카들은 고모의 헤어스타일 변신을 마구 비웃어댔다. ㅜ.ㅜ 하필 작은올케도 미용실에 가서 추석맞이 파마를 했다는데 작은엄마는 예쁘지만 고모는 이상하다고 정민공주 등이 깔깔대며 놀렸다. 심지어 짖궂은 정민공주는 "이상한 꼬불꼬불 머리를 한 아줌마 같은 고모!"라고 부르기까지... 늘어지는 귀고리와 목걸이, 은색 반짝이 의상으로 최대한 머리를 커버하려고 했던 나의 노력에 대해서도 "머리가 이상하니까 큰 귀고리랑 목걸이를 했구나! 근데 다 보여, 고모!"라고 일갈했다. 흑..
사실 동생들은 일주일전까지 내 몰골이 하도 추레했기 때문에 훨 나아졌다고 위로했으나 그 역시 나에겐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 5살된 조카 지환이는 나를 이런 모습으로 묘사했었다.
아이들 눈에 비친 내 머리가 과연 얼마나 이상한지 파악해보고자 세 조카들에게 제발 고모 좀 그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정민공주는 아예 보이코트, 6살된 녀석은 차마 그림이랄 수도 없는 낙서를 해놓고는 이상해진 고모라고 킬킬댔는데, 5살난 지환이가 그나마 고모 머리가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위로해주면서 그림도 꽤나 귀엽게 그려주었다.
이 그림이 요 며칠 유일한 나의 위안이다 ㅠ.ㅠ
아.. 그림 사이즈 줄이는데 서툴러서 어째 좀 무섭기까지 한듯 ㅋㅋ
결국 나는 다음날까지 샴푸하지 말라는 미용사의 말을 무시하고 미용실에서 돌아온 날부터 마구 감아주고 있는데, "탄력있는 컬"을 위해 단백질 파마를 권한 때문인지 별로 잘 안펴졌다. 쳇...
한동안은 계속해서 화려한 의상과 악세사리로 가리고 다니는 수밖에 없을듯;; 그놈의 빌어먹을 미용사 추석 연휴동안 배탈이나 나라!
8월이 시작된 첫날... 복작거리는 시장통 같은 미술관엘 다녀왔다. 해마다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친구와 두 딸을 만나 함께 그림이나 공연을 보기도 하고 그냥 만나 수다를 떨다가 문방구 순례를 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잡은 지 몇년째인데 올 여름엔 그들이 방학숙제로 시립미술관에 모네 전시회를 보러 온다고 했다.
처음엔 전시를 보고 나온 세 모녀와 잠깐 만나 수다나 떨려던 계획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나도 덩달아 전시관엘 들어갔고, 내가 가장 꺼려하는 미술관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 '시장판 북새통'이나 다름없는 시끄럽고 어수선한 전시장에서 최대한 빨리 그림을 둘러본 터라 별 감흥없이 전시장을 나서야 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했던 것 같다. 역시나 변하지 않은 나의 문화적 허영심에 약간이나마 콧바람을 불어넣었기도 하고 늘 즐거운 친구 모녀와의 연례만남이 어쨌든 성사되었으므로.
고흐의 노랑 샤갈의 빨강에 이어 모네의 작품 이미지는 나에게 늘 연보라색으로 떠오른다. 가장 유명한 시리즈인 '수련' 시리즈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이번 전시에도 수련 시리즈가 가장 집중 조명을 받았고 제일 큰 작품도 수련이었는데 말년에 시력이 흐려져 형체마저 흐트러진 '등나무'그림 같은 것에서도 나에겐 유독 연보라색이 마음에 남았다.
아쉽게도 내가 좋아하는 모네의 '예쁜' 그림들은 많이 찾아볼 수 없었고 생각보다 작품 수도 많지 않은 듯했지만 9월 26일까지 전시라니 애들이 바글거리지 않는 한가한 어느 때쯤 한 번 더 찬찬히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모르고 그냥 갔는데 GS 칼텍스 보너스 카드가 있으면 천원 할인을 해준대고 포인트 점수가 있으면 2천원을 추가로 할인해준단다. 정말로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꼭 할인받아서 봐야지... -_-;;
사실 같은 인상파라도 나는 역시 모네보다 고흐에 대한 편애가 심해서 모네의 작품에 대한 인상보다는 전시실 맨 마지막에 11월부터 시작되는 고흐 전시회의 예고편으로 걸어놓은 모조 작품들이 더욱 깊은 잔상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지금 미술관 구경이나 다닐 때인가.. 하는 자조보다 외출의 기꺼움이 더 큰 걸 보면 확실히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긴 한가 보다. 비록 그게 나의 이기심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한 여자가 앞장서다보면 나머지 한 여자도 따라오지 않겠나. 그렇게 믿을란다. 내일은 더 모질고 이기적인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슨 한풀이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젠 온종일 문화생활에 힘쓰느라, 평소 걷는 양의 10배쯤 되는 걷기를 통한 육체노동(?)과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를 겪고 보니 오늘은 살짝 몸살 기운마저 있다.
그렇지만 흐뭇하기 짝이 없던 하루를 기록해두지 않을 수야 없지.
역시 문화생활이란 내 두뇌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주변에 자랑을 일삼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희열이 궁극의 목적이 아니겠나. (아.. 속물스러워라~~ ^^;)
째뜬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라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르네 마그리트를 보러 갔었는데
우글우글 아이들 포함 100명쯤 몰려다니는 사람들에 뒤섞여
(개학을 얼마 앞둔 평일 낮엔 어린이 단체 관람도 많다는 걸 왜 몰랐을고! ㅠ.ㅠ)
가까스로 작품 설명을 듣는 과정은 좀 피곤하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내게는 너무도 어렵고 무서운' 마그리트 그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드물게 내 마음에도 드는 마그리트 그림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그림 ^^;;
심금, 캔버스에 유채
화가의 후기작에 속하는 이 그림엔
내가 무서워하는 새ㅡ.ㅡ;;도 없고 (나뭇잎과 새가 중첩되어 있는 그림들.. 어흑 너무 무서웠다 ㅠ.ㅠ)
하늘색이 내가 딱 좋아라하는 색감. 투명한 와인잔도 예쁘고... 어쩐지 산등성이 모양새도 낯익다. ㅎㅎ
마그리트가 자기 작품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그나마 그의 작품을 보는 혜안을 좀처럼 갖출 수 없었던 나의 무지함에 위로가 되었지만
역시나 초현실주의 그림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도 뜻밖의 횡재로 느껴진 또 다른 전시회가 있었으니!!
두둥~~
그것은 바로 시립미술관 1층에서 완전 홀대를 받으며 전시되고 있던
<로베르 콩바스 전>!!!
마그리트 전시회를 보면 그냥 공짜로 들어갈 수 있고
이 전시회만 보려면 달랑 700원의 입장료를 내면 된다는데
겨우 47점에 불과하다니 간단히 돌아봐주마 마음먹고 저녁 약속시간을 겨우 30분 남겨두고 전시장에 들어갔던 나와 일행은 완전 눈이 뒤집힌 듯, 화려한 색채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콩바스의 그림을 후다닥 훑어 보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사진 크기도 차이나는 것 좀 보라지..
콩바스는 현재 활동하는 프랑스 화가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인물이라는데
(작품 설명 맨 앞부분만 듣고선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ㅠ.ㅠ)
마그리트 그림을 보고난 뒤의 암울하고 찝찝하고 음산한 느낌(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영화처럼, 그림에 대한 취향도 하늘과 땅차이니깐 뭐... )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유쾌하고 기발한 그림들이 전시장에 넘쳐났다.
특히 화가가 직접 쓴 작품설명들이 어찌나 재미있든지!!
47점에 불과하다는 전시작품의 양을 얕잡아본 걸 몹시 후회했던 J와 나는
약속시간에 쫓겨 전시장을 나서며 다시 보러 오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캔버스 틀을 떼어내, 대형 족자 느낌이 나는 대형 그림들을 주르륵 한꺼번에 붙여놓아
작품 설명과 대조하며 읽기에 너무도 불편하게 해놓은 성의 없는 전시기획에도 불끈 화가 났지만 어쩌랴... 목마른 자가 우물 파야지.
미술관 홈페이지에도 역시나 작품 이미지가 달랑 2장밖에 없어서, 내가 홀딱 반한 작품은 자랑할 수도 없다.
700원 아니라, 7000원을 더 내라도 보러가게 될지는.. ^^;; 잘 모르겠지만
암튼 난 역시 화려한 색감의 작품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했음.
아차차..
아직 르네 마그리트 전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할인카드가 있음을 주지바람 ^^;
신세계 포인트 카드와 함께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할인쿠폰을 가져가면 20% 할인
모든 BC카드는 10% 할인된다. (천원이 어디야!)
마그리트 전은 4월까지 하니깐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콩바스 전은 겨우 2월 11일까지밖에 하질 않아 이 역시 안타깝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번 미술관 순례를 같이한 J와 나는 만원짜리 마그리트 전보다
700원짜리 콩바스 전이 훨씬 좋았다! ^_________^
어제 문화생활의 마지막은 거의 2달 전에 예매해놓고 기다리던
뮤지컬 <하루>.
유니버설 아트센터로 다시 단장한 리틀엔젤스 회관의 화려하고 푹신한 카페트와
2층 중앙 맨앞줄의 우아한 박스석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
서범석, 엄기준, 오만석 세 사람을 한 무대에서 봤다는 역사적인 의미와 감동만으로도
꺅꺅 거리며 마냥 좋아라하긴 했지만, 이미 들리는 소문으로 염려했던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많이 떨어져 아쉬웠다.
뮤지컬이 끝나 막이 내리고 나서 내 첫 코멘트가 '이게 뭐야.. 마음에 안들어!'였을 정도.
툭탁거리며 싸우던 동거 연인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에 하루 전날로 되돌아간 내용이었던... 몇년 전에 본 영화 줄거리와 똑같은 상황 설정 때문에 공연 보는 내내,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일행들과 그 영화 제목을 고심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이프 온리>더라. ^^
창작 뮤지컬이라더니, 그 영화 판권을 사서 원작으로 삼은 건가?
암튼... 개인적으로 서범석의 가창력과 연기와 존재감은 몹시 마음에 들었지만 극에 제대로 녹아들지 않는 생뚱맞은 '플루토'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후까시대마왕' 노릇으로 일관하느라 엄기준의 섬세한 연기력이 묻히고 말았던 방송작가 캐릭터도 맘에 안들고,
두 여주인공이자 목소리마저도 예쁜 척하기 대가인 ㅡ.ㅡ; 김소현과 양소민은 둘 다 목소리가 가늘어 차별화되질 못한 데다 인물표현이 어찌나 상투적인지..
그나마 오만석이 맡은 강영원이라는 인물은 그럭저럭 봐줄만 했지만, 매력과 감동을 느낄 순 없었음.
하여간 그래서 우린 '무슨 스토리가 이렇게 산만하고 어수선하냐'고 구시렁댔으며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가 단 한곡도 없었음에 기막혀 했지만 ^^;;
그래도! 서범석과 엄기준과 오만석이 한 무대에서 삼각구도를 그리며 열창하던 장면들이 몹시 인상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역시 가창력에선 서범석이 짱! <벽뚫남>에선 워낙 레퍼토리가 조용조용해서 가창력을 느낄 수 없었던 엄기준도 수준급, 의외로 오만석이 제일 딸리더군.. 너무 예쁘고 감미롭게 부르려고 해서 그랬을까?)
어차피 2월 초면 끝날 공연이지만, 주변에 널리 홍보하거나 칭찬하고 싶진 않은 작품이고
입소문을 타서 마구 연장공연에 들어갈 것 같지도 않다.
아무려나 문화생활 종합세트 같은 '하루'를 가열차게 보낸 다음날은
역시 피곤하군. ^___^
작년 연말에 뜻밖에 전시장을 찾았다가 대박을 만난 느낌이기도 했고 '엄청나게' 다양한 작품 세계 가운데 천진난만하고 색감이 화려하고 예쁜 그림이 너무도 많아 그림 좋아하는 우리 조카 정민공주도 좋아할 전시라는 생각에 공주를 대동하고 두 번째로 전시장을 찾았다.
나 역시 사람 없이 조용한 미술관 관람을 그 누구보다 즐기기에 지난번 강추위 속에 평일 야간 관람을 할 때가 더 좋긴 했지만 어린이를 위한 그림 설명을 따라가는 재미도 나름 흘륭했고 그나마 방학 초기라 샤갈전 때처럼 와글와글 장터바닥 같진 않아 다행이었다.
마침 덕수궁앞에선 오후 수문장 교대식이 벌어지려는 찰나여서 공주는 몹시도 즐거워하였고...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선 '반드시' 궁궐도 꼼꼼히 돌아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결국 미술관 1, 2층 전체를 2번이나--한번은 우리끼리, 두번째는 어린이 작품설명하는 도슨트와 함께, 그리고 우를루프 전시관은 3, 4번은 봤을 거다--돌고 난 뒤에, 어스름녘 추운 날씨에 궁궐을 돌며 중화전, 함녕전 따위를 다 보고 다니느라 고모 무수리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ㅠ.ㅠ)
이 블로그엔 스킨의 특성상 웬만해선 사진을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샤갈전과 더불어 2번이나 전시를 관람한 흔치 않은 경우라 자랑하고파서 무리를 무릅썼다.
자.. 보시라~
17살에 다니던 파리의 미술학원을 6개월만에 때려치우고는 더 배울 게 없다고 했던 장 뒤뷔페는 의외로 가업을 잇느라 마흔 살까지 포도주 상인으로 살았단다. 그 이후 인생의 절반만을 화가로 산 셈인데.. 아.. 역시 천재는 다른 게 확실하다. 지난번에도 내가 좋아라 하는 그림이라고 올린 초창기 그림도 재미있고 아기자기하지만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작품들은, 피카소처럼 예술적 영감이네 어쩌구네 하면서 여자를 수시로 갈아치우지 않고도 예술세계의 깊이와 폭이 몹시 다양하고 중층적이었다.
모자를 써 보는 여인 / 1943년 11월 / 캔버스에 유채 / 60 x 73 cm / 파리 파르티퀼리에르 컬렉션 소장
예술가야 워낙 상상력이 뛰어난 게 당연하겠지만 모자를 써보느라 분주한 손가락의 모양을 달랑 네 개만으로 저렇게 단풍잎처럼 처리한 뒤에 얼굴과 머리모양, 모자에 중점을 둔 뒤, 나머지 몸은 대강 쓱쓱 작게 그렸다. 정말 어린아이 그림 같지 않나?? ^^;;
아래 작품도 내가 좋아라~ 하며 미소를 머금었던 작품이다.
금반지 / 1958년 / 100 x 81cm / 캔버스에 유채 / 파리 뒤뷔페 재단 소장
뒤뷔페가 흙, 돌, 지표 등의 재질학에 관심을 두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 시기엔 예쁘고 화려한 것보다 다 이렇게 질감이 가장 두드러지고 표현이 단순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저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실제로 보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
정민이는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우를루프' 세계를 제일 좋아했고, 작품을 딱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걸 고르겠냐고 물었더니 이걸 골랐다.
클로슈포슈(?), 밀도가 좀 더 높은 스티로폼을 조각하고 채색한 입체 조형물인데 몹시 귀엽다!
딱히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뒤뷔페만의 신조어라는 '우를루프'의 세계에선 사람도, 물건도, 제각각의 공통적인 색채를 갖고 탄생한다. 우를루프 세계 속에서 물건 이름 맞추기도 그림 감상의 또 다른 재미였는데 멀리서 본 느낌과 실제 작품 제목이 전혀 틀린 것도 많지만, 제대로 짐작했을 때의 기쁨이란! 뉴욕과 파리에 거대한 우를루프의 세계 조형물들이 있다는데 몹시 가보고프다.
내가 이 사람의 그림을 왜 좋아하게 됐는지.. 두 번째로, 각기 다른 도슨트의 작품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니 장 뒤뷔페는 일상의 소박한 것, 초라한 것, 별것 아닌 것, 추할 수도 있는 것들에서 미를 느끼고 그대로, 또는 더 밉고 못생기게 표현하면서 아름다움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거창하고 심각하고 정치적인 색채가 진하거나 암울한 느낌의 그림은 내가 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람의 그림은 인간적이면서도 밝고, 가끔 슬프면서도 희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더 많지만 공식 홈페이지(덕수궁 현대미술관)에 소개된 그림 가운데 퍼오느라 선택의 폭이 좁아졌는데,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은 나처럼 건망증 심하고, 특정 분야에 대해선 장단기 기억력 상실증 환자에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꼭 찝어내서 그린 것도 같다. ^^;;
좌표 / 1978년 205 x 291cm / 종이에 아크릴(36개의 구성재료를 붙임) / 파리 뒤뷔페 재단 소장
'기억의 극장' 연작 가운데 하나라는 이 작품에서.. 기억의 조각들 가운덴 그냥 소용돌이처럼 흔적만 남거나, 점점이 사라져가거나.. 또렷이 각인된 사람의 모습들이 여기저기 툭툭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래도 배열이 참 예쁘기 그지없다!
점점 노쇠해지면서, 그림 뒤에 자석을 붙여 철판에 붙여놓고 이리저리 배열을 한 다음 오려붙였다는군. 실제로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아련한 색감이 참 몽환적이라 느꼈다.
장 뒤뷔페는 "나의 전체 회화 작품에는 두 개의 바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불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개입 흔적을 극도로 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존재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여... 부재의 원천에서 물을 길어 마시는 것이다"라고 했단다. 아무래도 나는 전자의 바람이 나부끼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쪽이 더 즐겁고 행복했는데, 인간 존재를 없애 허무감이 느껴지는 작품들도 물론 감탄스러웠다.
앞으로 난 이 화가를 주목해보리라! 1985년에 작고한 이 화가 생김새도 멋지다 ㅎㅎ
공식 홈피에서 퍼온 월페이퍼인데.. 책상 전면에 놓인 그림들이 사랑스러워서..
대개 못마땅한 전시회는 외국의 소규모 미술관 한두 개에서 작품 몇개 덜렁 가져와 놓고선 그럴듯하게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장 뒤뷔페 재단 창고가 텅텅 빌 정도로 작품을 실어왔고, 다른 미술관 소재의 작품들도 많아서 일단 전시의 질이 알차고 비중 있었다.
게다가 sk가 웬일로 그런 선심을 쓰는지 포인트 삭감 없이 그냥 멤버십 카드만 보여주면 할인을 해주는데, 동반자까지 무조건 할인이라 정민공주는 단돈 3천원에 궁궐까지 다 봤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을쏘냐. 1월 28일일까지밖에 하질 않아서 주변에 더 널리 알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
2006년 마지막 문화생활과 2007년 첫 문화생활이 같은 전시회라니.. 이 또한 뜻 깊지 않은가!
(그런데 사진들이 모두 저작권에 저촉을 받는 것들이라 문제가 생기면 후다닥 삭제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ㅡ.ㅡa)
정민공주가 밤중에 헤어지며 "고모, 오늘 정말정말 재미있고 즐거웠어! 다음에 고모 전시회 갈 때 나도 꼭 데려가야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점심때 들른 음식점에 '윌리 호니스전' 팸플릿이 있었는데, 공주 모녀에게도 가보라고 권하다가 그만 촐싹맞게 내가 '벨로 언니랑' 보러 갈 거라고 발설하고 말았던 것... 아... 어찌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키드님을 선두로 이웃 블로거들의 재미난 베스트 문답을 보며 참 흥미롭긴 했으되, 나는 기억력도 나쁘고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는 인간 유형에서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다 보니(다이어리 쓰기를 작파한지 최소 5년은 넘은 것 같다. 이젠 아예 장만하지도 않는다) 난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파피와 쌘이 한 번 더 옆구리를 쿡쿡 찔러주니 또... 정리 못하는 인간이라 더욱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 그냥 수월하게 살면 될 것을 나란 인간은 뭐든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다 판난다.
게다가 또 이렇게 만날 서론이 길다. ㅋㅋ 사진 편집해 올릴 능력도 없으니 단조롭고 별 재미도 없을 것이라고 미리 경고 ^^;;
2006 최고의 책 3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청미래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지음/조석현 옮김/이마고 - 젠틀 매드니스/N.A. 바스베인스 지음/표정훈,김연수,박중서 공역/뜨인돌
민망하게도 꼽아보니 1년동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이 50퍼센트도 되지 못했다. 조지 마이클이 토크쇼에 나와 '책은 훌륭한 가구'라고 한 말에 힘입어, 사람들이 흐뭇하게 장서용 책을 사들인다는 말에 나도 킥킥 웃으며 뿌듯해 했지만... 일 때문에 하는 번역과 검토 이외의 책을 좀 더 많이 읽지 못하는 내 게으름이 참 민망한 수준이다. 겨우 열권 남짓 읽은 책 가운데 어렵사리 골라봤다. ㅡ.ㅡ;;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좋아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을 또 사보았으나 실망스럽긴 했지만, 이 책은 사랑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터무니 없는 착각이자 자기 최면인가를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한 사유로 엮은 책이어서 단숨에 읽었더랬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다양한 신경증 환자들의 놀라운 임상기록을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우울증 환자이신 엄마 때문에 신경/정신 장애를 다룬 책들에 아무래도 호기심이 많이 가는데, 황당하고 놀라운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었던 듯. <젠틀 매드니스>는 가장 우아하고도 품격 있는 광기라고 애서가들이 이름 붙인 '애서광' 증상을 지닌 여러 서양인들의 특이한 삶과 책에 대한 애착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희귀본을 소장하기 위해 책을 훔치기까지 하며 개인 문고를 가꿔나가는 저들의 문화는 사실 우리에게 많이 낯설다. 1000페이지가 넘는 사전 두께라 사실 다 읽진 못했지만, 내용보다는 순전히 장서용으로 장만해놓고 쓰다듬으며 뿌듯해하는 책이다. ^^;; 게다가 이런 두께의 비대중적인 책을 옮기고 출간하기로 결정한 관계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기도 하고, 읽지도 않으면서 사들여놓고 그저 좋아라 하는 책 허영심의 발로에서 목록에 넣었다고 할 수 있다. ㅋㅋ
2006 최고의 영화 3 - 수면의 과학 - Good Night, and Good Luck - 왕의 남자
올해도 영화를 그리 많이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본 영화 가운데 고를 수밖에 없었다. <수면의 과학>은 당당히 제일 먼저 손꼽을 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생각 좀 해야 했다. <Good Night, and Good Luck>은 마녀사냥 같은 매카시의 공산주의 색출 열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 미국의 정직한 언론인을 다룬 영화였는데, 내가 한 때 몹시 좋아했던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각본을 맡아 훌륭하게 연출을 해내기도 했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을 뿐더러, 거지발싸개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와 비교되는 영화속 실존 인물의 모습이 대단히 멋졌다. 당시 TV 방송에선 저널리스트가 담배를 피우며 진행을 하던데, 그 모습이 어찌나 멋진지 *.* 영화관을 나오며 흡연의 욕구가 마구 용솟음치기도 했던 영화다. ㅋㅋ <왕의 남자>는 동성애 코드와 연산의 인간적인 고뇌, 광대패거리의 슬픔, 한복의 아름다움 따위가 잘 어우러져, 푸짐하게 잘 차린 잔칫상 같은 느낌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6 최고의 공연 3 - 벽을 뚫는 남자 - 미스터 마우스 - 형제자매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본 뮤지컬 <벽뚫남>은 2층 S석이라 시야 확보는 좋았으되, 좌석이 좁아 무릎이 앞 벽에 닿아 불편했던 것을 빼면, 엄기준과 해이의 적당한 호연과 조연들의 열정적인 연기가 어우러져 프랑스 코미디의 특유의 익실과 재치의 묘미를 짜임새 있게 보여준 공연이었다. <미스터 마우스>는 소극장에서 처음 본 뮤지컬이었는데,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흡입력 같은 건 없어도 서범석의 담백하고 진솔한 연기와 가슴 아픈 스토리 때문에 심장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공연 후반 내내 엉엉 울었더랬다. 가격 대비 몹시 만족했던 뮤지컬 ^^;; <형제자매들>은 친구따라 무작정 강남가는 격으로 내용도 전혀 모르면서 자그마치 7시간 반이나 하는 러시아 원어 연극이라는 얘기만 듣고 가서 봤는데 오후 2시부터 시작해, 가부키(물론 본 적 없다)처럼 중간에 저녁 먹는 시간도 있고 밤 10시 넘어 끝나는 놀라운 마라톤 공연이었다. 가끔 지루하다 느낀 적도 있었지만, 스탈린 시대 농민들의 애환을 다룬 내용은 다른 언어와 자막의 벽을 넘어 찌릿하게 마음을 울렸고, 막이 내린 후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기립박수를 오래오래 보냈다. 뮤지컬은 가끔 봤어도, 진지한 연극을 본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각별히 인상적이었던 데다, 20년째 같은 배우들이 같은 연극을 계속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드라마 극장(? 정확하지 않음^^)의 열정적인 팀웍 또한 감동이었다.
2006 최고의 문화생활 3 - 장 뒤뷔페: 우를루프 정원 展 - 이면展
전시회를 그닥 많이 다니지 못한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둘 밖에 못 고르겠다. 클레전과 인상파 거장전은 전시장을 나와서 전시의 성의없음에 마구 화가 날 정도였고, 롭스&뭉크 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나쁨과 미진함 때문에 덕수궁을 나오자마자 마구 단 것과 카페인이 땡겼더랬다. ^^;;
12월의 완전 끝자락에 르네 마그리트 展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나는 초현실주의 그림이 별로인데다, 키드 님과 달리 르네 마그리트 그림은 내 취향과 좀 거리감이 있다 ㅎㅎ), 내가 극구 우겨 보러갔던 장 뒤뷔페 전시회는 별 기대 없이 갔다가 대박을 건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프랑스에선 국민화가로 이름이 높다는 장 뒤뷔페의 작품이 대거 전시된 알찬 기획인 것도 훌륭했고, 작품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의 맛깔스러운 소개도 재미 있었을 뿐더러, 가장 중요하게는 한 사람의 작품 세계라 보기엔 몹시 놀라울 정도로 폭이 넓고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마구 행복해졌다.
그래서 부러 시키지도 않은 전시 품평서를 써주기도 할 정도였는데 ^^;; 평일 목/금엔 밤 8시반까지 전시를 연장할 뿐만 아니라, sk멤버십 카드가 있으면 평소에도 2천원 할인, 오후 6시 이후엔 50%나 할인해준다. 그래서 일행들 모두 단돈 5천원 내고 들어가 보면서 만오천원짜리 전시로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음 ㅋㅋ 전시 감상은 정민공주 데리고 한 번 더 보러 갔다 온 다음에 올릴 계획인데 과연.. 1월 28일까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한다.
이면전.. 은 내가 아는 분이 소속된 그룹 전시회였는데, 순전히 팔이 안으로 굽는 논리로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음 ㅋㅋ... 내가 최초로 전시작품을 돈 주고 산 역사적인 기록도 있고 해서.
2006 최고의 지름 3 - 필리핀 보라카이 여행 - 변수옥 화가의 판화 작품 2점 (사진 가운데 맨 오른쪽 ^^;;) - 롤러 스탬프 세트
ㅋㅋㅋ 마지막 세번째 것 때문에 고민 좀 오래 했는데, 정가 4만8천원이나 하는 책 <젠틀 매드니스>를 넣을까 하다가 가격대비 만족도로 봐선 아무래도 롤러 스탬프를 넣어야할 것 같아 그렇게 했다. 롤러 스탬프란... 말 그대로 예쁜 무늬가 둥근 롤러에 새겨져 있어서 손잡이를 잡고 죽 돌리면 띄 모양의 스탬프가 찍히는 건데, 완전히 재미 붙여서 선물 할 일 있을 때마다 포장지 대신 두툼한 색지나 갱지 사다가 찍어서 포장해 주며 혼자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어제도 조카들이 놀러와서 공연히 이면지에 수십장 찍고 놀다가 갔는데... 스탬프 잉크가 좀 아깝긴 해도 그 마음을 내 익히 이해하기 때문에 그냥 냅뒀다. ^^;;
2006 최고의 드라마 3 - 굿바이 솔로 - 연애시대 - Grey's Anatomy
이건 이웃들과 너무 비슷해서 설명이 필요없을 듯;;; 요새 케이블에서 <꽃보다 아름다워>를 재방해주고 있는데, 또 넋놓고 보면서 노희경의 대사에 감탄하고 있다. *.* 세 드라마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가슴을 저미듯 대단히 공감 가는 현실적인 대사와 주옥 같은 표현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내레이션, 분위기에 딱 맞는 배경음악인 듯 싶다.
2006 최고의 삽질 3 - 재작년에 거금 8백만원이나 번역료를 '완전히' 떼먹은 출판사 직원이(원래 좀 아는 사이였고 소개할 당시엔 그 출판사를 퇴사한 상태) '미안해서' 소개한 신생 출판사 일 때문에 다른 일 제쳐두고 연달아 2권이나 번역했는데, 10달 넘도록 번역료도 못받고 공연히 다른 일만 마구 밀렸던 일. 더욱이 돈 받을 욕심에, 얼굴 팔리는 거 몹시 싫은데도 책 소개 나오게 된 DMB 방송에 인터뷰도 해줬는데! 아.. 신경질나. - 웰빙 좀 추구해보겠다고 거금 5만원씩이나 주고 사들인 마리안느와 아마존 화분 죽이기(아직 안죽었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ㅜ.ㅡ;;;) - 그밖에 자잘한 삽질들은 많았는데... 딱히 뭘 꼽을지 모르겠다. ^^;; 나중에 생각나면 삽입하든지 하겠음
2006 최고의 음반과 싸가지, 안습 지름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다. 음반은 워낙 잘 사지도 않고, 또 잘 듣지도 않는 듯... 몇개 산 게 있긴 한데 까칠해져선 열심히 일할 땐 음악도 귀에 거슬리다보니 잘 찾아듣지도 않고, 찾아 들을 때도 익숙하고 편한 것만 고르게 된다. 사놓고 후회하는 물건도 좀 있지만(가령 백화점 세일에서 산 만원짜리 낙타색 미니스커트라든지, 몇달째 포장조차 풀지 않은 요가매트라든지 ㅋㅋ), 워낙 지르기까지 심사숙고 하는 인간이라 크게 지르고 후회하는 물건은 없어 다행이다.
어렸을 때 크레파스 색깔 가운데 제일 닳아 없어지는 색깔이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을 거다. 내 경우는 노란색이었는데, 노란색도 연노랑과 개나리색, 귤색까지 톤별로 갖추어진, 호화찬란한 48색 크레파스를 가진 친구와 달리, 호사를 누려봤댔자 24색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나는 제일 먼저 하나 뿐인 노란색이 떨어지면 그림 그릴 의욕까지 떨어졌던 것 같다. 나중에 그림물감을 쓰게 되고 수채화의 묘미에 빠졌을 때도, 노란색을 하도 이색 저색에 조금씩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쓰는 바람에 노란색이 제일 부족했더랬다.
내가 여러 화가들 가운데 고흐의 그림을 제일 좋아하는 건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심취했던 노란색에 대한 애정 때문일 거란 생각도 든다. 미술책에서 고흐의 그림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 본 그림이 <해바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악한 인쇄술 때문에 색감을 제대로 살려냈을 리 없는데도 샛노란 꽃잎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탐스럽게 꽂혀있는 해바라기 그림이 참 좋았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한 때는 주저없이 "해바라기!"라고 대답하기도 했는데, 사실 수많은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가운데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 어떤 작품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실제로 감상하는 영광을 누린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열네 송이 해바라기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드는 것도 같지만, 벌써 오래 전 일이라 가물가물할 뿐이다.
물론 고흐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게 어디 노란색 뿐이랴... 고흐의 그림에선 파란색도 확실히 남다르게 느껴진다. 인상파 그림들은 워낙 색감이 다채롭고 뛰어나지만, 고흐 작품에서 꿈틀거리는 듯한 붓자국으로 표현된 아주 다양한 색깔의 변주를 보면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워 가슴이 촉촉하게 젖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별이 빛나는 밤>과 <밤의 카페 테라스>에 표현된 밤하늘의 색감은 보랏빛이 아련한 <아이리스> 연작과도 이어진다. 물론 실제로 감상한 게 아니라 화집이나 달력, 인터넷 따위로 본 것이 더 많으니 이런 그림들 또한 인쇄 판본마다 조금씩 다른 색감을 전제로 나 혼자 구성하고 상상한 색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고흐 작품의 색채는 그 누구의 작품보다 현란하다고 단언한다.
스케치 작품까지 합하면 고흐의 작품 수가 1000편이 넘는다고 들은 것 같은데 (덧붙임: 고흐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고흐가 10년간 자그마치 19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내가 사진으로라도 본 건 절반이 조금 넘는 400여편 정도에 불과하지만 자기중심적인 내 시각으로 볼 때 그 많은 그림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은 색은 역시나 노란색이다. 이 블로그 스킨이기도 한 <아를에 있는 빈센트의 방>이나 대문 사진으로 일부만 오려 놓은 <밤의 카페 테라스>도 그렇고 <해바라기>는 물론, 꽤 많은 <밀밭> 연작에서도 하물며 다양한 인물의 초상화에서도 내 눈엔 다채로운 색감의 노랑이 제일 강렬하게 남아 샤갈, 하면 강렬한 빨강이 떠오르듯 (이것도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고흐, 하면 노랑이 떠오른다.
그리고 강렬하고 선연해서 가끔 슬프기까지한 고흐의 노란색이 어쩌면 점점 강렬해지는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이자 광기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추측을 하곤 한다. 인상파 화풍의 영향을 받기 전인 초기작에선 노란색의 꿈틀거림이 그다지 강렬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그린 마지막 그림이라고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도 노란 밀의 물결은 검푸른 하늘에 대비되어 흐드러지게 아름답고 동시에 참 슬프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그림이란 걸 알고 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고흐의 노란색은 어린 시절 그림에 대한 나의 애착을 불러 일으키는 아련한 향수이자 막연한 슬픔이고 또 행복이기도 하다. 당대의 잘 나가는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작은 거의 없고, 대부분 크기가 작은 고흐의 작품들은 보면 볼수록 정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친구 같다. 내게 행복을 안겨주는 친구...
까마귀가 나는 밀밭, 50.5x103cm, 1890년 7월, 캔버스에 유채,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고흐... 라고 하면 우선 그의 불행한 병력과 생전 화단의 외면 같은 외적인 요인을 떠올리지 말고 모두들 나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노란색을 제일 먼저 연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끄적거려봤다.
오늘 문득 작은 복제품 액자로, 컵받침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달력으로, 블로그 꾸밈으로 모습을 바꾸어 작은 내 작업실 구석구석에서 나를 쳐다보는 고흐의 작품들이 일제히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아무래도 내 스킨 선택의 이유도 블로그 어딘가엔 적어 놓아야 고흐한테 덜 미안할 것도 같았다. ^^;
지난 번 고모 전시회에서 찜해둔 작품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나무그늘에 자건거가 기대어져 있는 흑백 판화작품 하나는 이미 갖고 있지만 이번에 전시한 사랑스러운 느낌의 채색 동판화 소품들은 조곤조곤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모의 성품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한 느낌. 내가 좋아하는 꽃도 있고, 별도 있고, 초승달도 있고 아련한 밤하늘을 담은 창문도 있고 탁자 위에 놓인 꽃병 옆엔 향기로운 커피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하면서 행복해지는 여러 일의 목록을 따져보면 미술관 관람이 상당히 상위권에 들어 있다. 화가가 되려는 꿈을 한번쯤 꾸어본 사람들은 많겠지만, 나 역시 한동안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더랬다. 그 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이 그림의 주인공인 우리 막내고모. 지금은 고궁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금지됐다지만, 우리땐 사생대회는 늘 고궁에서 열렸고, 가끔씩 주말에 고모 따라 화구 챙겨들고 경복궁이나 덕수궁에 이젤을 세우고 고모 유화 그림을 수채화로 똑같이 베껴(!) 그리던 전적이 있는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온갖 미술대회에서 제법 상도 받았더랬는데 그것만 믿고 무작정 화가의 꿈을 키웠던 거다. ^^;;
그러나 그 꿈은 결국 그냥 꿈으로 남겨졌고 그림에 대한 열망은 이제 감상으로만 만족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소장까지 하게 되다니 어찌 아니 기쁠소냐! ㅎㅎㅎ 사진 들어간 포스팅을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자랑질!
(ㅎㅎ 고흐 그림이 바탕에 희미하게 비치는 가운데 작품이 놓이니까 느낌이 또 좀 다르다) (아깐 그림 받은 흥분에 대충 써 올렸다가 다시 좀 더 덧붙였음을 실토함..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