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한풀이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젠 온종일 문화생활에 힘쓰느라, 평소 걷는 양의 10배쯤 되는 걷기를 통한 육체노동(?)과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를 겪고 보니 오늘은 살짝 몸살 기운마저 있다.
그렇지만 흐뭇하기 짝이 없던 하루를 기록해두지 않을 수야 없지.
역시 문화생활이란 내 두뇌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주변에 자랑을 일삼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희열이 궁극의 목적이 아니겠나. (아.. 속물스러워라~~ ^^;)
째뜬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라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르네 마그리트를 보러 갔었는데
우글우글 아이들 포함 100명쯤 몰려다니는 사람들에 뒤섞여
(개학을 얼마 앞둔 평일 낮엔 어린이 단체 관람도 많다는 걸 왜 몰랐을고! ㅠ.ㅠ)
가까스로 작품 설명을 듣는 과정은 좀 피곤하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내게는 너무도 어렵고 무서운' 마그리트 그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드물게 내 마음에도 드는 마그리트 그림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그림 ^^;;
심금, 캔버스에 유채
내가 무서워하는 새ㅡ.ㅡ;;도 없고 (나뭇잎과 새가 중첩되어 있는 그림들.. 어흑 너무 무서웠다 ㅠ.ㅠ)
하늘색이 내가 딱 좋아라하는 색감. 투명한 와인잔도 예쁘고... 어쩐지 산등성이 모양새도 낯익다. ㅎㅎ
마그리트가 자기 작품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그나마 그의 작품을 보는 혜안을 좀처럼 갖출 수 없었던 나의 무지함에 위로가 되었지만
역시나 초현실주의 그림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도 뜻밖의 횡재로 느껴진 또 다른 전시회가 있었으니!!
두둥~~
그것은 바로 시립미술관 1층에서 완전 홀대를 받으며 전시되고 있던
<로베르 콩바스 전>!!!
마그리트 전시회를 보면 그냥 공짜로 들어갈 수 있고
이 전시회만 보려면 달랑 700원의 입장료를 내면 된다는데
겨우 47점에 불과하다니 간단히 돌아봐주마 마음먹고 저녁 약속시간을 겨우 30분 남겨두고 전시장에 들어갔던 나와 일행은 완전 눈이 뒤집힌 듯, 화려한 색채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콩바스의 그림을 후다닥 훑어 보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사진 크기도 차이나는 것 좀 보라지..
콩바스는 현재 활동하는 프랑스 화가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인물이라는데
(작품 설명 맨 앞부분만 듣고선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ㅠ.ㅠ)
마그리트 그림을 보고난 뒤의 암울하고 찝찝하고 음산한 느낌(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영화처럼, 그림에 대한 취향도 하늘과 땅차이니깐 뭐... )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유쾌하고 기발한 그림들이 전시장에 넘쳐났다.
특히 화가가 직접 쓴 작품설명들이 어찌나 재미있든지!!
47점에 불과하다는 전시작품의 양을 얕잡아본 걸 몹시 후회했던 J와 나는
약속시간에 쫓겨 전시장을 나서며 다시 보러 오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캔버스 틀을 떼어내, 대형 족자 느낌이 나는 대형 그림들을 주르륵 한꺼번에 붙여놓아
작품 설명과 대조하며 읽기에 너무도 불편하게 해놓은 성의 없는 전시기획에도 불끈 화가 났지만 어쩌랴... 목마른 자가 우물 파야지.
미술관 홈페이지에도 역시나 작품 이미지가 달랑 2장밖에 없어서, 내가 홀딱 반한 작품은 자랑할 수도 없다.
700원 아니라, 7000원을 더 내라도 보러가게 될지는.. ^^;; 잘 모르겠지만
암튼 난 역시 화려한 색감의 작품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다시한번 실감했음.
아차차..
아직 르네 마그리트 전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할인카드가 있음을 주지바람 ^^;
신세계 포인트 카드와 함께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할인쿠폰을 가져가면 20% 할인
모든 BC카드는 10% 할인된다. (천원이 어디야!)
마그리트 전은 4월까지 하니깐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콩바스 전은 겨우 2월 11일까지밖에 하질 않아 이 역시 안타깝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번 미술관 순례를 같이한 J와 나는 만원짜리 마그리트 전보다
700원짜리 콩바스 전이 훨씬 좋았다! ^_________^
어제 문화생활의 마지막은 거의 2달 전에 예매해놓고 기다리던
뮤지컬 <하루>.
유니버설 아트센터로 다시 단장한 리틀엔젤스 회관의 화려하고 푹신한 카페트와
2층 중앙 맨앞줄의 우아한 박스석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
서범석, 엄기준, 오만석 세 사람을 한 무대에서 봤다는 역사적인 의미와 감동만으로도
꺅꺅 거리며 마냥 좋아라하긴 했지만, 이미 들리는 소문으로 염려했던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많이 떨어져 아쉬웠다.
뮤지컬이 끝나 막이 내리고 나서 내 첫 코멘트가 '이게 뭐야.. 마음에 안들어!'였을 정도.
툭탁거리며 싸우던 동거 연인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에 하루 전날로 되돌아간 내용이었던... 몇년 전에 본 영화 줄거리와 똑같은 상황 설정 때문에 공연 보는 내내,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일행들과 그 영화 제목을 고심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이프 온리>더라. ^^
창작 뮤지컬이라더니, 그 영화 판권을 사서 원작으로 삼은 건가?
암튼... 개인적으로 서범석의 가창력과 연기와 존재감은 몹시 마음에 들었지만 극에 제대로 녹아들지 않는 생뚱맞은 '플루토'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후까시대마왕' 노릇으로 일관하느라 엄기준의 섬세한 연기력이 묻히고 말았던 방송작가 캐릭터도 맘에 안들고,
두 여주인공이자 목소리마저도 예쁜 척하기 대가인 ㅡ.ㅡ; 김소현과 양소민은 둘 다 목소리가 가늘어 차별화되질 못한 데다 인물표현이 어찌나 상투적인지..
그나마 오만석이 맡은 강영원이라는 인물은 그럭저럭 봐줄만 했지만, 매력과 감동을 느낄 순 없었음.
하여간 그래서 우린 '무슨 스토리가 이렇게 산만하고 어수선하냐'고 구시렁댔으며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가 단 한곡도 없었음에 기막혀 했지만 ^^;;
그래도! 서범석과 엄기준과 오만석이 한 무대에서 삼각구도를 그리며 열창하던 장면들이 몹시 인상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역시 가창력에선 서범석이 짱! <벽뚫남>에선 워낙 레퍼토리가 조용조용해서 가창력을 느낄 수 없었던 엄기준도 수준급, 의외로 오만석이 제일 딸리더군.. 너무 예쁘고 감미롭게 부르려고 해서 그랬을까?)
어차피 2월 초면 끝날 공연이지만, 주변에 널리 홍보하거나 칭찬하고 싶진 않은 작품이고
입소문을 타서 마구 연장공연에 들어갈 것 같지도 않다.
아무려나 문화생활 종합세트 같은 '하루'를 가열차게 보낸 다음날은
역시 피곤하군. ^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