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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9 3
  2. 2015.01.25 지우 가족의 띠 그림 9
  3. 2015.01.20 류큐의 바람 1
  4. 2015.01.19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영원한 풍경 3
  5. 2015.01.15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2
  6. 2015.01.12 1월 등산
  7. 2015.01.09 보고싶은 전시 4
  8. 2015.01.06 지는 해
  9. 2015.01.03 2015년 10
  10. 2014.12.22 새 부엌 12

투덜일기 2015. 1. 29. 17:53

언제부턴가 소화력이 떨어진 건 확실하고, 밥만 먹으면(특히 저녁밥) 빌빌 졸린 증상이 이어지더니 최근엔 가끔 빈속이나 식후에 뱃속이 좀 따끔거렸다. 위염이 약간 있다는 건 건강검진때 알았으나, 불편한 점 없으면 굳이 치료받지 않아도 된다기에 나몰라라 방치해서 증상이 심해진 건가? 아니면 그냥 단기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했다.


그러다가 그끄저께 밤부턴 속이 심하게 쓰라려 집중이 안 돼 일도 잘 못하겠고 그렇다고 잠도 잘 못자는 상황. 아플 때 대뜸 병원부터 달려가는 성격이 아닌 사람이라 그냥 버텼다. 소화기 내과 찾아가면 내시경부터 하자고 할 텐데, 동네 병원에서 내시경을 위생적으로 잘 관리할지 어쩔지 미심쩍고, 그렇다고 대학병원엘 곧장 갈 수도 없고 (예약하기도 어려울 걸;;) 2차 병원 중에서 찾아봐야 하는데.... 뭐 이런 생각만 가만히 앉아 하고 또 하는 스타일, 짜증나지만 진짜 우유부단의 극치다.


병원 멀리하다가 큰 코 다친 사람들을 봤으면서도 도무지 '병원가기 싫은 병'은 떨칠 수가 없다. 암튼 그래서 인터넷 검색으로 대충 속쓰림, 위염 따위를 알아보다 눈에 띈 건 바로 '단식'. 옛날부터 울 집에서도 할머니들이 배앓이엔 그저 굶는 게 최고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옳거니, 굶으면 되겠다 싶었다. 위가 따가운 건 상처난 위벽에 자꾸만 위액이 닿아서 그런 게 아니겠나, 뭐 이런 돌파리 진단으로 생각해보면, 1달 내내 병원다니며 약 먹어도 안 낫던 위염이 3일간 단식후 싹~ 다 나았다(물론 과장임을 안다;;)거나 훨씬 속이 편해졌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타당하게 여겨졌다.


언젠가 TV로 본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도 '단식'이 확실히 여러가지 병을 치유한다던데, 나도 까짓거 굶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속이 아파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데 뭐. 사흘 쯤 물만 먹고 버티는 거, 외출만 안하면 문제 없지 않을까... 사흘이 힘들면, 되는 데까지 지친 위를 최대한 쉬게 해주겠어!


허나 ㅋㅋㅋ 밖으로 나다닐 땐 한 끼만 굶어도 손발이 벌벌 떨리고 마구 분노가 치밀지만, 집안에 얌전히 있을 땐 괜찮겠지 싶었던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20대쯤이었나 단체로 동조단식을 한다며 물만 마시고도 으쌰으쌰 밤새 노래부르고 꼬박 이틀을 버텼던 경험은 그냥 젊은 패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던 듯했다. 2끼는 아무 어려움 없이 건너뛰었으나, 만 24시간이 넘어가자 온몸에 기운이 쪽 빠지며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일도 해야하는데 도무지 글자도 눈에 안들어오고,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문장이 안 만들어져! ㅠ.ㅠ 그럴 땐 자는 게 상책이라지만, 잠을 시도하기 전에 나는 이미 뭔가 부드러운 음식을 만들 재료를 찾아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맙소사, 유민아빠는 45일간이나 단식을 하셨다던데... 어휴. 민망했다. 암튼 그래서 오밤중에 감자 한 알을 전자렌지에 찌고 우유를 약간 데우고 잡곡밥과 한 술과 함께 믹서기에 넣어 휘리릭 갈아서 대충 미음 비슷한(실은 수프에 더 가까웠다)걸 만들어 한 컵을 먹었다. 또 쓰라리면 어쩌나 염려했던 뱃속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고, 대신에 차가워졌던 손발에 차츰 다시 온기가 돌았다. 식탐녀 주제에 단식은 무슨...  괜히 밥 안먹는다고 커피까지 금했더니 편두통만심했다. 


그렇게 하루만에 단식을 포기하고 계속 살살 위를 달래는 중이다. 이후 두 끼는 죽을 조금 먹었고, 밥을 먹더라도 예전의 절반 양만 50번씩 꼭꼭씹어서 삼키고, 위에 남아 염증을 일으킨다는 밀가루는 입에도 대지 않는 중. 근데 이잉... 우동도 먹고 싶고 스파게티도 먹고 싶다. 


그래도 왕성한 식탐이 이끄는 대로 예전처럼 아무거나 와구와구 먹어대려면 한동안 조심해야지. 며칠 두고보다 결국 위내시경을 받아보긴 해야겠지 싶던 마음은 차츰 속쓰림이 잦아들면서 꼬리를 내리고 있다. 그냥 버텨도... 자연치유가 되지 않을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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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그림을 별로 안 그린다는 지우. 아주 가끔씩만 기발한 착상과 솜씨를 보여주곤 하는데, 새해 들어선 자기네 식구들을 띠 동물로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어찌나 디테일한지... ㅋㅋㅋ

2015년 1월 3일 지우 10세 (3월에 3학년됨^^)


주말에도 노상 출근해 애들과 얼굴 마주칠 일 드물다는 돼지띠 아빠는 일벌레 돼지란다. 워낙 바빠서 가방 열린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모습이라고.
말띠 형아는 공부벌레의 이미지. 너무 열심히 공부하느라 눈에 핏발이 섰다. ㅋ
토끼띠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트레드밀을 걷고있다. 요새 특히 운동에 힘쓰고 있다나.
마지막으로 개띠 본인은 침대에 드러누워 빈둥거린다. 야 조용히 해... 라면서 ㅋㅋㅋ

어제 가보니 그림 옆에 성격과 특징도 적어놨던데 화가께서 자기 항목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설명해놓았다. 평소 담날이 시험인지 아닌지 통 관심없이 제 맘대로 사시는 편이라고... ㅋㅋ

양띠 고모 그림도 좀 그려주십사 부탁했더니 포복절도할 작품을 선사해주었다. ^^;;
2015년 1월 3일 지우 10세

그림 왼쪽의 양은 고모와 동갑이신 이모 양의 모습. 치킨과 피자를 비롯한 온갖 음식들을 차례로 비워 앞쪽에 빈접시를 쌓아놓고 계시다. 내가 알기론 키도 크고 날씬한 분인데 저런 탐식양으로 그려내다니 ㅎㅎㅎㅎㅎ

오른쪽 고모 양의 모습에서 북실북실 검은 양털과 함께 주의 깊게 봐야할 건 개구진 표정으로 양팔에 매달려 양을 괴롭히고 있는 말과 호랑이다. 그들은 바로 말띠 지@이형과 호랑이띠 정O이 누나!
지우는 저 두 남매가 평소 얼마나 고모를 못살게 구는지 안 봐도 다 알고 있었던 것! (하긴 지난번 제삿날 지우가 홀로 남아 자고가게 되자, 지@이 형아는 지우에게 '잠 안자고 고모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죄다 전수해주고 갔고, 함께 남았던 정O누나의 만행?을 다음날 아침 지우가 일부 목격하긴했다;;) 

양팔에 두놈을 매달고 ㅠㅠ 길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 팔 모양은 설마 하트인가? 너무 사실적이고 웃겨서 아주 배꼽을 잡았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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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바람

놀잇감 2015. 1. 20. 15:12

경복궁 옆 고궁박물관에서 2월 8일까지 <류큐 왕국의 보물> 특별전을 하고 있는데 관련 공연이며 교육이 꽤 알차다. 류큐 왕국이란 ^^; 옛날에 '유구국'이라고 해서 조선, 중국과 교류한 역사도 꽤 길고 일본과는 별개의 나라였던, 현재 오키나와 섬에 존재했던 왕국을 말한다.
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 역사박물관, 고궁박물관 중에서 안내책자와 전시 도록, 팸플릿의 질도 항상 고궁박물관이 최고라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는데, 가만 보면 기획 전시내용도 거의 늘 알차고 훌륭하다. 안내책자나 브로셔의 글귀나 오타만 봐도 보유인력의 자질을 알수있는 법이 아닌가! 게다가 매번 공짜! (프란치스코 교황 내한 기념으로 했던 <천국의 문> 전시는 예외로 유료였다. 수녀님들을 비롯해 천주교신자들이 엄청 구경오던데 워낙 비싸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 오가면서도 안봤다. 혹시 기회되면 나중에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규~ -_-;) 고궁박물관 조직 자체가 탄탄한 건지, 뛰어난 학예사와 직원들을 잘 뽑은건지 갈 때마다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암튼 요번에 본 공연은 오키나와 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류큐 왕국의 보물> 전시와 연계해 류큐 왕국의 고전무용과 노래를 소개하는 자리. 이름하여 <류큐의 바람>이다. 고궁박물관 별관에서 17일과 18일 양일간 3회 공연을 하던데(부산에서도 공연 1번 하더라마는;;), 마침  주말에 경복궁에 갈 일이 있어서 맘먹고 구경했다. 오키나와는 내가 몇년 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여행지다. 갇혀있는 물고기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라는 추라우미 수족관을 꼭 보고 싶어서리... (그렇게 들먹들먹하고 있는데 작년에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사랑이네가 구경가질 않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조인성이랑 공효진이 코끼리 바위엘 막 찾아가질 않나;; TV에서 펌프질을 막 하더군)  

이렇게 선망을 갖고 있으면 결국에는 조만간 저지르지 싶어서, 미리 공부(?)도 할 겸 연말에 경복궁 봉사 나간 날 짬내서 류큐 왕국 전시회를 둘러보았고 공연이며 특별교육 프로그램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ㅎㅎ <류큐의 바람: 오키나와의 춤과 노래>이라는 제목으로 여러가지 고전무용과 창작무용, 노래까지 보여준 공연은 생각보다 좋았다. 무료인 대신 선착순 입장이라고 해서 30분이나 일찍 갔는데도 앞자리는 죄다 관계자석이란 종이 붙여놓은 게 불만이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직원들이 어린 아이들부터 챙겨서 차곡차곡 앞쪽 내빈석 빈자리로 옮겨주고 일일이 동선을 안내해주고 그랬다. 대체로 공무원들은 좀 싸가지가 없고 고자세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편인데, (계약직인지 아닌지 몰라도 다른 국립 및 시립 박물관 가봐도 직원들이 야박하게 구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 선입견이 가끔 고궁박물관에 가서 깨진다. 아주 좋은 예. ㅎㅎ 

1시간 반에 달하는 공연은 앞부분의 궁중무용 순서때 하도 정적이고 조용해서 좀 졸리려고 했으나(한국이나 일본이나 궁중무용과 음악은 느릿느릿 움직임도 정적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좋게 말하면 우아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맥빠진다. ㅎㅎ 왕앞에서는 암살 위험 때문에 함부로 역동적인 동작이 담긴 춤을 출 수 없다는 듯;;) 후반부에선 활기찬 창작무용과 노동요 등이 있어 확실히 시끌시끌 신명나고 유머가 넘쳤다. 아싸~ 아싸~ 하는 추임새가 일본에서 온 것임을 새삼 확인. ㅋㅋ

아래 사진은 내가 찍은 건 아니고 일행 중 한분이 일찌감치 박물관 화장실 갔다가 마침 출연진을 만났다기에 전달받았다. 색감 화려한 의상이 아주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예쁜 옷도 많고...  전통무용을 어느 가문에서 3대째 전수받아 널리 알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일본에 많이 가본 건 아니지만, 료칸엘 가봐도 기념품 쇼핑센터에를 가봐도 쇼핑백이나 세탁물용 비닐팩 하나를 만들어도 그냥 허투루 하지 않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요번에도 오키나와 관광 지원을 위함인지 오키나와 안내책자랑 공연 브로셔를 예쁜 비닐봉투에 담아 주었는데, 안에 든 설문지를 작성하면 비닐파일도 나눠준다고 했다. 아쒸, 볼펜 없는데 생각한 순간 설문지에 저 앙증맞은 필기구가 클립처럼 꽂혀 있었다. (비닐종이 위에 놓인 검정색 물체;;)

공연 브로셔는 꼼꼼히 읽어보고 재활용 폐지로 내놓았지만, ​오키나와 안내책자는 (관광지 안내며 섬 전체 지도까지 들었다!) 비닐파일에 넣어 잘 보관해 두었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오키나와 갈 때 가져가야쥐! 문득 우리나라 관광홍보도 과연 이렇게 꼼꼼하고 아기자기하게, 사람들 마음을 확 끌게 잘 하고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행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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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첫 전시관람은 이왕이면 브레송으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같이 가기로 한 파트너랑 잡은 스케줄 상 브레송전이 두번째로 밀렸다. 째뜬 1월에 너무 집중적으로 문화생활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계속 안다니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드네그려. 

암튼 3월 1일까지인 전시를 서둘러 보러간 건 역시나 1월말까지로 기한이 있었던 초대권 덕분. 12000원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야했다면 또 브레송전을 볼까말까 고민 좀 했을 것 같다. 최소 절반 이상은 전에도 본 작품일 테고, 동대문디지털플라자가 전시장으로서 별로 매력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조명도 우중충하고... 째뜬 새로운 작품이 얼마나 왔을지가 관건인데...


브레송 사후 10주기 회고전이라는 이번 전시엔 작품수가 총 253점이라고(근데 늘 이정도 작품은 오지 않았던가?). '브레송'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찰나의 거장'으로서 담은 '결정적 순간'의 사진들이 인상적인데, 확실히 요번엔 도시풍경과 자연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좀 더 두드러지는 느낌이었다(어쩌면 선입견일지도!). 그래서 요번 전시 부제도 아예 <영원한 풍경>. 어림짐작한 내 느낌으론 인물 사진과 풍경사진이 반반쯤 되려나? 아니, 그래도 인물사진 비율이 더 많았던 것도 같고...

실물로 처음보는 게 틀림없는 작품도 있었지만, 지난번 전시 때 본 건지 사진첩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본 작품인지 다들 낯이 익어서 상당수가 아리까리... ^^a 에즈라 파운드, 사르트르, 베케트, 카뮈 같은 인물사진은 워낙 인상적이어서 확실히 예전 전시때도 본 작품인데, 자코메티, 피카소는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게다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카슨 매컬러스'의 사진이 두 개나 있었는데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 작품을 봤더라도 휙~ 지나가고 말았을 듯. 

마침 시간이 맞아서 도슨트의 설명도 들어보았는데, 아우 요즘 도슨트는 자질보다 외모가 우선인지, 너무 지나치게 봉긋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과 눈매가 부담스러워서 계속 쳐다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목소리는 예쁜데 뭘 그닥 알고 설명하는 것 같지는 않은 느낌.. ㅠ.ㅠ 

체 게바라 사진을 설명하며 브레송이 함께 만나기로 했던 유명인이 '피델'이라고 언급하는데 그게 '카스트로'라는 걸 정작 도슨트는 모르고 말하는 게 분명. 외워서 설명하려면 '카스트로'로 외워두었어야지! 존댓말도 막 이상하게 과용하고 '뉴욕 모마 미술관에 빚을 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비츨'이라고 계속 몇번이나 발음해서 어찌나 거슬리던지. 으악... 

게다가 작품 설명문구엔 오타와 외래어 표기 오류, 띄어쓰기 잘못된 게 어찌나 많은지... 으어으어... 행갈이 이상하게 해서 읽다말고 '으잉?' 하며 다시 읽게 만든 문장도 허다했다. 작품설명 적힌 판때기가 삐딱하게 걸려 있는 것도 보여서, 액자 비뚤어진 거 못 견디는 환자인 나는 막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 ㅜ.ㅜ

그래도 뭐 작품 수는 꽤나 많은 느낌이고, 생라자르 역 앞에서 물 웅덩이 폴짝 뛰는 남자 담긴 작품이랑 프랑스 브리의 풍경사진 속 하트 나무길을 찬찬히 되새겨 본 건 좋았다. 작업실에 이어 방문 앞에, 올해로 무려 10년째 되는 옛날 포스터를 개비할 마음이라, 전시 연계상품에도 눈독을 들였는데 아쒸;; 아트포스터가 여긴 무려 9천원! 종류도 브리 나무사진과 황량한 파리 에펠탑 풍경 딱 두 종류. 멋진 에코백도 있으면 살까 했으나 그런 건 아예 없고, 허접한 도록이 만오천원, 엽서세트도 만오천원, 엽서 한장엔 2천원...  +_+ 그나마도 인기 작품 낱장 엽서는 품절되고 없다. 세트로만 판매한다고. 

뭔가 괴씸해서 포스터를 살까말까 고민하다, 입장료가 굳었으니 사자 쪽으로 마음을 돌려 저 공식 포스터에 든 나무 사진을 사왔다. 방문에 붙이려면 세로 작품이 제격인데 파는 포스터가 다 가로형이니 어쩔 수 없음. 

사람들 블로그 보니깐 실제 전시장 사진과 작품 사진이 많아서 브레송전도 사진촬영을 허락하나보다 했더니 그럴리가... 촬영금지인데 사람들이 그냥 막 도촬한 거였다. 내가 보러 간 날도 휴대폰 들고 철컥철컥 사진 찍어대는 사람들 꽤 됐음. 다만 관계자들이 아주 심하게 제제하러 다니진 않더라. 난 또 하지 말라는 건 못하는 사람이라, 곳곳에 크게 확대해 벽면으로 만들어놓거나 포토존으로 만들어놓은 거나 겨우 찍어왔다. 대충 이렇게...  

​그리고 아래는... 작업실 이사 때도 고이 떼어와 방문앞에 줄곧 붙여두었던 옛날 전시 포스터. ^^; 떼어버리기 전에 마지막 기념촬영을 했다. 이건 구입한 게 아니고 전시 관계자에게 잘 말해서 일행과 한장씩 공짜로 얻은 거였다. 옛날엔 벽보 홍보용으로 대량제작한 저렴한 포스터를 막 나눠주기도 하고 2천원 정도에 팔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샌 플라스틱 '배너'를 세워두는 정도이고 벽보 포스터는 아예 만들지를 않는 게 추세인가? 나로선 괜히 아쉽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는 벽보판에서 몰래 떼어다가 집에 붙이고 그런 추억이 꽤 많은데.. 쩝...  하여간 그냥 일반 종이로 만든 포스터인데도 뒷면에 셀로판 테이프를 붙여 보강을 해서 이사까지 다니며 10년이나 간직했다뉘... 참 내가 얼마나 물건을 못 버리는 인간인지 알 수 있다. ㅠ.ㅠ


해서 브레송 사진전에 대한 총평은 음... 이미 최근 전시를 본 사람이라면 굳이 또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것. 특히 몇년 전 세종문화회관 전시를 봤다면 작품이 2/3이상 겹치는 것 같았음. 게다가 추세로 보면 국내에서 브레송 인기가 워낙 높아 수년에 한번씩은 전시가 되풀이되는 것 같지 않은가? ㅎㅎ 머잖아 또 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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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매카트니라는 사진작가에 대해서 내가 미리 뭘 좀 안 것도 아닌데, 애당초 보러가겠다 마음 먹었던 건 작년 폴 옹의 내한공연이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었던 게 크게 작용했지 싶다. 거기다 대림미술관도 쫌 내가 좋아하는 건물이고, 심지어는 초대권까지 생겼으니...  해서 카톡으로 온 초대권 이미지로 공짜 관람을 꿈꾸며 야심차게 달려갔으나 초대한 팀원 이름을 적어내야한다고 했다. 알음알음 이루어지는 패밀리 세일이나 전시의 온라인 초대권은 원래 인쇄해서 관계자 이름 적어 제출하는 게 원칙이다. 매번 따라만 다녀보아서 생각도 못했지 뭔가. 초대권 전송해준 후배에게 차마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는 못하겠고... 조심스레 문자를 보내놓고는 좀 기다리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표 끊고 들어갔다. 그나마 유료 멤버십 가입(만원으로 티켓 두장과 커피 한잔 구매가능)하고 40% 할인받으면 매우 저렴한 입장료.  
원래는 5천원. 할인후엔 3천원

대림미술관 모든 전시에 관람객이 많은 이유는 뭔가 너그럽고 호의적이라는 기분 때문인 듯하다. 멤버십 회원을 위한 무료 공연이나 문화행사도 꽤 많은 편이고... 티켓이나 전시장내 인증샷을 제시하면 기간중 언제든 재관람이 가능하단다. 게다가 작품 사진 촬영도 오케이...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오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으면서도 괜히 막 담아오고 싶어졌다. 벽에 확대해놓은 사진까지도.

4월까지 전시라니 틈나면 한번 더 보러갈까나...
3, 4층의 유명인 사진들보다 확실히 나는 2층의 가족사진이 더 좋았다. 연출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았다는 아이들 사진이 특히 사랑스럽다. 폴 매카트니는 확실히 연예인답게(?) 사진마다 좀 노련한 모델 느낌을 풍기는 데다 젊은 시절 그는 너무 예쁘게 생겨서 별로. ㅋ 딸인 스텔라 매카트니가 한국 전시 기획에도 참여했다는데, 디자이너로 성공한 배경엔 유명한 부모님의 후광이 있었을까 없었을까(당연히 크게 작용했겠지), 양쪽 부모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물려받은데다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테니 유리했겠다 그럼서 괜히 (대체 왜?) 배아파했다. 결국 인생엔 타고난 재능과 든든한 비빌 언덕이 모두 중요하다는 결론. 

흑백 사진 좋아서 구경 가놓고 웬 뜬금없는 푸념인가 그랬다. 

​휴대폰 사진을 넘기다 보니 벽에서 찍어온 지미 헨드릭스 사진이 특히 마음에 든다. 5천원에 팔던 맨 위 사진 흑백포스터가 좀 탐나긴 했으나 가로사진이라 패스~ 

방문에 붙일 새 포스터를 산다면 나중에 브레송의 풍경사진을 노려볼 작정이다. 이로써 보고싶은 전시 목록 중 하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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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등산

놀잇감 2015. 1. 12. 23:56

둘째주 토요일마다 등산고수들을 따라가는 산행의 올해 첫 행선지는 북한산. 독바위역에서 올라가 족두리봉, 향로봉, 탕춘대능선, 불광역으로 내려오는 3시간짜리 '가벼운' 산행이 될거라고 했다. 하지만 작년 경험상 이들 기준의 '가벼운' 산행도 내게는 늘 고강도 등산이었고, 등반 배정 시간이 짧을수록 쉬는 시간이 얼마 없어 더 고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덜덜 멀미나는 암능 구간을 얼마나 다녔는지 머리가 지릿지릿. 고소공포증 환자에겐 그저 북한산 둘레길이 딱인데 ㅠㅠ 내눈엔 벼랑처럼 보이는 봉우리로 무작정 올라가라 그럴때마다 아주 오금이 저렸다. 곳곳에 얼어붙은 길이 있어 벌벌 떨며 지나긴 했지만 아이젠을 착용할 정도는 아니었다. 암튼 쾌청한 날씨에 거의 봄볕 같은 햇살과 파란하늘, 툭 트인 시계가 멋졌던 날. 

저 능선 중 맨 왼쪽 봉우리가 족두리봉이다. 향로봉은 그 옆 두번째였던가. 막판엔 정신 혼미해서 기억도 잘 안남. 대체 능선을 얼마나 뺑뺑돌아 온건지... 어린시절 부모님따라 북한산 가서 송추로 올라가 구기동으로 내려오거나, 평창동으로 올라가 우이동으로 내려오며 길고 험한 등산에 징징 울던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북한산... 진짜 만만하지가 않다. ​


잘 못찍어서 길이 선명하지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능선 중간에 '북한산 차마고도'라고 불린다는 바윗길이 있다. 무시무시할거라 예상했으나 폭이 제법 넓어 안쪽으로 바짝 붙어 걸었더니 참을만 했다. ​이른 시간이라 마주치는 사람들이 없어 다행.


멋진 기암괴석 나타나면 휴대폰 꺼내들 여유도 생겼다는게 스스로 대견해서 또 한장...

고수들의 등산을 한 1년 열심히 따라다니면 폐활량도 늘고 근력이 붙어 좀 수월해진다더니만, 오는 3월이면 만1년 되는데 아직도 허덕허덕 힘겹기만 하다.  한달에 한번으로는 단련이 안된다는 얘기. 앞산을 가도 심장이 터져라 빠르게 올라야 연습이 되나보다. 쉬엄쉬엄 아름다운 경치 보며 슬슬 다니면 될 걸, 왜 그렇게 죽자살자 산을 타야하는지 좀처럼 모르겠으나 일단은 따라다녀보는 수밖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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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전시

놀잇감 2015. 1. 9. 02:16

방학 맞은 아이들 끌고 나온 학부모들로 바글거리기 전에 가봐야한다고 마음 먹었으나 어느덧 겨울방학의 피크로 치닫고 있는 즈음, 현재 하고 있거나 앞으로 예정이라는 전시 중에 좀 땡기는 것들만 목록을 정리했다. 그래야 안 잊을 확률이 좀 더 높으니까. 결국 나는 배설 및 과시형 블로거가 아닌가. 작년엔 가고픈 전시 목록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놓았었는데 (여기도 포스팅을 했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30퍼센트쯤 가보았더군. 일단 나가면 빨빨거리며 잘도 돌아다니면서, 집에 붙박이로 있다보면 게으름과 귀찮음을 떨치고 나가기가 참 어렵다. 


아무튼 이미 시작한 전시도 3, 4월까지 아직 여유가 있긴 하지만 초대권은 기간이 짧아서 공짜로 보려면 1월 말 안에 봐야할 전시도 있고 하여 괜히 마음만 조급하다. 이 중에서 과연 정말 가서 보게될 전시는 무엇이며, 가서 본 만큼 기대에 부응하거나 또는 실망스러운 전시는 뭐가 될까. 그런 기대감으로 또 1년을 설레며 보낸다면 참 좋으련만... 무얼 해도 시큰둥한 이 무기력감은 으휴...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 대림미술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 중앙박물관

장욱진의 그림편지 - 양주장욱진미술관 (아 ㅠ.ㅠ 이건 1월 18일에 끝난다니 못갈 확률이 더 높다;; 가을부터 별렀는데;;)

오드리 헵번 전시 - DDP (3월 8일까지)

케테 콜비츠 - 서울시립북서울 미술관(4월 19일까지)


아래는 예정 전시.


이중섭 - 갤러리 현대(1월6일-3월1일)

이쾌대 - 덕수궁 현대미술관(7월-10월)

페르난도 보테로 - 한가람미술관

밀레, 모더니즘의 탄생 - 올림픽공원 소마 미술관(1월25일-5월10일, 14000원. 매주 금요일 야간 할인)

한국전통건축 예찬 - 리움


브레송 사진전은 내가 알기로도 벌써 세번째 전시인데, 그간 한국에 안 왔던 작품이 있다니 또 안가볼 수가.. +_+ 언뜻 보니 풍경사진이 많은 듯. 키큰 나무가 하트처럼 모여 서 있는  길을 찍은 작품 하나만 보고와도 기쁘지 않을까나. 

통통한 인물 그림으로 유명한 보테로도 한국에서 인기 많은 화가이니 또 오누만. 한가람에서 또 얼마나 입장료를 비싸게 받을까 쳇... 이중섭도 많이 본 작품들이 대부분일 거란 생각에 꼭 갈지는 모르겠으나, 한국근현대미술전에서 서너 작품만 본 적 있던 이쾌대 전시는 좀 기대된다. 내가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그림들은 딱 근대화가의 작품까지인듯. 무지한 나에게 현대미술은 넘 어려워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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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

투덜일기 2015. 1. 6. 16:24

올해는 내 몸을 각별히 아껴주겠노라, 작심했던 대로 점심 먹고 느즈막히 올라간 앞산은 얕봤던 나를 조롱하듯 영상 날씨에도 곳곳에 빙판길, 눈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노상 다니던 길이라 여겼건만 심지어 눈이 덮여 있으니, 어느 결에 길을 잘못들어 한참이나 눈길을 버둥버둥 뒤뚱거리며 되돌아 나와야 했고 그럼에도 오기가 발동해 정상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휘청휘청 미끄덩, 콰당 넘어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눈길로 내려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 내려올 땐 멀리 덜 얼어붙은 다른 길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조심조심 한발짝씩 옮기다보니 어느새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그러고 보니 새해들어 처음으로 유심히 바라보는 해렸다. 게으른 올빼미는 당연히 뜨는 해를 본 기억보다 지는 해를 바라본 기억이 수백배는 많을 듯 싶은데, 그나마도 볼 때마다 낯설고 신기하다. 뜨는 해 지는 해는 눈이 덜 부셔서 그건가, 중천에서 빛날 때보다 왜 훨씬 더 커보이는지. 

암튼 새해들어 나흘만에 겨우 올려다본 하늘과 태양이니 기념으로 담아두기로. 짬 날 때마다 하늘과 바람을 올려다보며 한숨 돌리는 것도 올해의 작심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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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투덜일기 2015. 1. 3. 17:20

보통 새해가 밝고서도 한달은 지나야 새해 숫자를 쓰는 어색함이 덜어지는 것 같다. 올해도 마찬가지.

아직도 2015년이 밝았고 내가 한 살 더 먹어 드디어 '아홉수'를 만난 중늙은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진 않는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이번엔 새해 달력을 하나도 미리 마련해두지 못해 뭔가를 기록해두어야 할 때마다 메모할 탁상달력도 벽걸이 달력도 없어 난감한데, 그 때에야 비로소 아 새해구나 싶다. 


2014년은 정말이지 12월 31일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다사다난했다. 막판엔 2014년 어서 가버려라, 그런 마음이었던 듯. 슬픈 일 가슴 아픈 일, 속상한 일이 한해 마지막 날까지 강타할 줄은 정말 몰랐다. 2014년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잔인한 해'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되돌아보며 정리할 마음도 차마 들지 않는...


그래서 새해를 바라보련다.

2015년은 내가 밥벌이로 번역을 시작한지 딱 20년째 되는 해다. 첫 번역서의 발행일이 1995년 12월 10일. 10주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나갔던 것 같은데 20주년은 뭔가 기념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뜬금없이 자축파티를 열어 친구들을 초대할까 뭐 그런 생각을 작년 내내 좀 하기도 했다. 같은 분야에서 20년이면 그래 너 장하다고 칭찬해줄만도 하지 않나. 특히나 이렇게 열악하고 가난한 대한민국의 출판환경에서 잘 버텼으니... ㅠ.ㅠ  (미래는 뭐 일단 접어둔다고 해도 말이다. 혹시나 번역인생 30주년 파티 따위는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르니까...)


세월 참 빠르다... 고 중얼거렸더니 그럼 뭐하냐, 그래도 대통령은 아직 안 바뀌었다고, 이후엔 또 얼마나 끔찍한 지도자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누군가 지적해서 절망스러웠는데, 이 나라 절망스러운 건 뭐 하루이틀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손으로 찍은 대통령이 선출되서 기뻐했던 시절에도 배신감에 부르르 떨었던 정치행각이 어디 한둘이었나. 사회의 부조리에 완전 무관심할 순 없겠으나, 일단은 이기적이든 말든 철저히 내 개인사와 일신 상의 안위에만 집중해 살겠다.


이미 건강 위험분자로 찍혀서 보건소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신세임을 감안, 운동도 많이 하고, 어차피 끌려다니기로 자청한 산에도 더 열심히 쫓아다녀 폐활량도 근력도 높이고, 그렇게 다진 체력으로 일도 더 꾸준히 열심히 하고, 가난이 곧 청렴이자 미덕은 아니란 걸 명심할 작정이다. 덜덜거리는 15년 된 차는 이제 좀 바꿔타야하지 않겠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화기 꺼두고 도망치려는 비겁자의 마음도 떨쳐버려야한다. 점점 더 까칠한 쌈닭으로 변해가고 있는 뾰족함과 가시는 부디 가까운 사람들을 찔러대지 말고 더 멀리 밖으로 향하기를. 그래서 남들에겐 너그럽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겐 인색한 잣대를 거꾸로 돌려 잡아야겠다. 자책과 자학도 이젠 그만.  


공교롭게도 딱 새해 3일째 되는 날에 이런 작심을 적어놓고 있다니 웃기다. 작심3일의 새 의미를 정하자는 건가. ㅎㅎ 아무튼 습관처럼 건네는 새해 덕담이 아니라 블로그 이웃분들, 친구들, 이렇게 저렇게 아는 분들, 모두모두 새해엔 바라는 일 죄다 이루어지시고 부디 좋은 일, 행복한 일만 가득한 하루하루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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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부엌

투덜일기 2014. 12. 22. 10:45

오래된 싱크대의 수납장 문이 잘 안닫히기 시작한 건 오래 되었고 얼마 전엔 덜컥 수도꼭지, 아니 물 나오는 부분의 길쭉한 철제 호스 같은 게 부러졌다. 이리저리 꺾어서 각도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안에 든 플라스틱까지 끊어진 건 아니므로 물이 나오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철제 호스가 꺾여 덜렁거리니 설거지를 하려면 뭔가를 기대어 놓거나 왼손으로 잡고 한손으로만 그릇을 헹구어야하는 사태. 


그 수도꼭지도 몇년 전 언젠가 막내동생이 사다가 직접 달아준 거였는데, 아니 무슨 수도꼭지가 10년도 안 쓰고 고장이 나나 그래... 아무튼 노상 야근에 주말 출근도 불사하는 불쌍한 동생을 또 불러댈 순 없는 일이고 철물점 같은 데 가서 수도꼭지 사고 웃돈을 얹어 출장수리를 해달라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비용도 따지면 총 10만원 가까이 들겠더라.


요즘 유행하는 쿡탑 렌지를 비롯해 싱크대를 싹 바꾸고 싶은 마음은 수년째 품고 있었지만 그러다 집이 전격 팔리면 어쩌나 아까비.. 하는 마음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무 상판이 남아있는 한쪽 싱크대가 물에 쩔어 막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문은 하나같이 제대로 안 닫히는 데도 강제로 욱여 닫아가며 살아왔었다. 아우 새삼 청승맞기도 하여라.


덜렁거리는 수도꼭지와 연일 씨름을 하며 드디어 부엌을 싹 갈아엎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혹시 아나, 머피의 법칙이라고 부엌 싱크대 갈자마자 집 팔려서 속쓰려하는 일이 생길지. 엄동설한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불운/행운이 작용하여 아무도 보러오는 사람 없는 집이 팔린다면 수리비 아까워할 게 아니라 좋아서 팔짝팔짝 뛸 일이다. (집이 하도 낡아 누가 이사오려면 벽부터 완전 개조가 필요한 집이라서 아마 부엌도 다시 뜯어야할 테니 하는 말이다;; ) 하여 결심은 섰으나 우유부단 추진력 제로인 게으름뱅이는 또 동네 주방가구점에 견적을 받으러 가야하는데, 가야하는데... 그러고만 있었다.


헌데 두둥~ 한 열흘 전 한밤중에 괜히 TV 리모컨놀이를 하다가 홈쇼핑에서 부엌 개조 상품 발견! <무이자 12개월 할부>에 특정 카드는 청구 할인, 일시불이면 또 할인... @.,@ 어떤 색깔로 할지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이 그냥 죄다 세트 상품이었다. 이거다 싶어서 얼른 줄자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 대강 칫수를 재고는 주문 완료!


그러고는 속으로 마구 빌었다. 제발 크리스마스 이브(마침 울 할아버지 19주기 제삿날이다) 이전까지 설치 가능하게 해주세요... 아니면 망함...  설마 일주일이면 되겠지... 아 몰라... 설마.. 간만에 나한테 주는 거한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그랬다.


다행히 바로 다음날 주방가구 직원이 실사를 나와서 다시 직접 치수를 재고 사진을 찍더니 일주일 뒤 설치를 약속했다. 휴우... 게다가 진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면 철거와 시공이 다 된다네. 좋은 세상이닷. 감사하여라. 유럽이나 미국에선 수도꼭지 하나 바꿀라고 주문해도 최소 열흘은 걸린다던데 빨리빨리 대한민국 역시 최고. -_-; 


해서 오늘 드디어 대망의 부엌공사가 진행중이다. 어젯밤 우렁각시처럼 살금살금 온갖 그릇들을 치워 싱크대를 비우고, 식탁도 번쩍 들어 옮기고 타일공사 대신 내가 붙여야지 마음 먹었던 시트지 붙이기도 일부 먼저 해놓느라 이미 삭신이 다 쑤신데, 저쪽에선 드르륵 드르륵 공사를 하건말건 난 내방에서 일이나 하겠노라 맘먹은 건 그저 작심일 뿐 귓바퀴는 깔대기처럼 자꾸만 저쪽 집으로 쏠리고,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발소리에 아무데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차 한 잔 드시겠어요, 그러면서 싹싹한 아줌마 코스프레나 하는 수밖에... 철거팀은 한시간 반만에 벌써 후딱 오래된 싱크대를 해체하고 간략한 수도공사까지 마친 뒤 철수했고, 어느 틈에 설치팀이 와 거실쪽을 비닐로 완전 차단막을 쳐놓고 조립 작업중이다. 놀라운 분업의 세계. 과연 이따 저녁땐 어떤 부엌이 나를 맞이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뭐 그래봤자 누렇게 된 벽지를 배경으로 새하얀 씽크대가 심히 튀기밖에 더하겠냐마는... 째뜬 나도 드디어 새 부엌을 갖게 되었다.  이사나 가야 가능할 줄 알았던 일인데.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하나 그간 불편을 외면했던 내가 미련했다고 해야 하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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