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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7.24 고교생 연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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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4.07.15 등산이 뭔지 10
  5. 2014.07.08 종교인이 문제다 10
  6. 2014.07.02 경복궁 특별답사 5
  7. 2014.06.30 못해먹겠다 6
  8. 2014.06.28 자아분열? 8
  9. 2014.06.20 엄마의 발원문 8
  10. 2014.06.19 서울 도서전 6

드라마 잡담

놀잇감 2014. 7. 29. 15:09

요샌 통 챙겨보는 드라마가 없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정붙이고 볼만한 드라마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들도 하나도 못/안봤다. 일단은 다운로드족이 아니라서 몰아보기도 못하고, 내 방엔 케이블이 골고루 안나오고.. 그렇다고 시간 맞춰 본방이나 재방을 볼 부지런함은 앞으로도 영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다 귀찮고 시큰둥한지 원... 


하여간 그런데도 가끔씩 엄니 따라서 보는 드라마가 있으니 <참 좋은 시절>과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주말드라마로군. 공중파 주말드라마의 특징은 몇주 안보다가 보아도 내용 이해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점인 것 같다. <기분 좋은 날>의 경우 일요일엔 <개그 콘서트>에 밀려서 안보는 날이 많은데도 등장인물 관계를 다 알겠으니 원... 암튼 KBS 주말 연속극은 울 엄마의 경우 어떤 내용이든, 배우가 누구든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틀어놓고 보신다.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면 적응 못해서 한달 쯤은 고생을 하면서도 딴데로는 채널이 절대 안 돌아간다! 어휴... 참 놀라운 충성심이라고 해야할지.


<참 좋은 시절>의 경우 이서진이 주인공인데, 엄마도 나도 <꽃보다 할배>로 뜬 투덜이 서지니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참고 보려다가 한참을 괴로워했었다. 울 엄마 왈,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 때가 백배 낫단다. 드라마에선 하도 무게를 잡고 인상을 써대서 늙은 아저씨 같다고... 여주인공이랑 안어울린다나. (심지어 이서진은 노총각이고 김희선은 애엄마인데도! ㅋㅋ)  그럼에도 울 엄마가 인내심을 갖고 그 드라마를 보는 건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쓰는 귀여운 애들(동원이 동주) 덕분이 칠할 쯤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본처인 장소심 여사(윤여정)과 첩 하영춘 여사(최화정)의 관계가 아닐까 대충 짐작하고 있다. 


바람둥이 남편이 오래 전 나몰라라 내팽개친 집안을 일구며 시아버지에 쌍둥이 시동생에, 배다른 막내아들에, 또 그 막내아들이 고딩때 사고쳐서 낳은 쌍둥이 손주들까지 호적에 자식으로 올려 보살핀 '보살' 같은 사람이 바로 장소심 여사(윤여정)인데, 첩인 하영춘(최화정)과의 애틋한 관계는 거의 놀라울 지경이다. 십수년간 남편 없는 집에서(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둘이 한 방을 쓰며 자매처럼 모녀처럼 지냈을 정도.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바람둥이 남편이 있는 집안이거나 불임의 문제로 후처를 들인 경우 형님, 아우 해가면서 본처와 후처가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사는 일이 옛날엔 꽤 많았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외갓집이 그랬다니 뭐 말 다했지...


내가 울 엄마의 친할머니, 그러니깐 증조 외할머니이신 '송씨' 할머니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반해, 울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에도 떡하니 한복 입고 가족사진에 찍힌 울 엄마의 '큰엄마'에 대해서는 통 기억이 없다. 그분이 증조외할머니보다 일찍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암튼 울 외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남매를 키우던 중, 살림 해주러 일 다니던 같은 동네의 어느 집에 아들을 낳아주러 후처로 들어가게 된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고향 가는 배를 탔다는 남편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니, 가족 부양의 의무는 계속 외할머니 몫이었다...) 


딸 하나만 낳고서 계속 아이를 낳지 못해 대가 끊기게 생긴 그 하씨 집에, 외할머니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더 낳아주었고 본처와 후처는 나란히 한 집에서 애들을 건사하고 키웠다. 원래 있던 두 아이(울 엄마와 큰외삼촌)도 바로 윗집에 살면서 잠만 따로 잤지, 밥은 다같이 먹었다는 것 같다. 울 외할머니에겐 시어머니가 되는 송씨 할머니가 건재하셨기에 집까지 다 합치진 못했던 듯... 암튼 그러다 하씨 할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떴으니... 남은 건 우글우글 여자들과 올망졸망한 애들뿐. 


드라마 속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처럼 울 외할머니와 본처 할머니는 오손도손 같이 살며 애들을 함께 키웠대고, 동네에 작은 절을 지어 바칠 만큼 돈이 꽤나 많고 살림살이 규모도 컸다는 하씨네 집안일을 같이 돌봤다고 한다. 울 엄마는 하씨네 본처 아줌마를 큰엄마라고 불렀던 반면, 울 외할머니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은 본처를 그냥 엄마, 낳아주신 생모인 울 외할머니를 '작은엄마'라고 불렀단다. 그러니깐 울 외할머니 역할이 최화정이란 말쌈. +_+ 일반적으로 남편이 바람기가 많은 오입쟁이라 후처를 들이는 경우 본처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본처가 아들을 낳지 못해 스스로 아들 낳아줄 후처를 주선하는 경우엔 사이가 좋은 경우가 더러 있단다. (아무리 그래도 참 놀랍다! 곤경에 처한 여자들의 동지애, 자매애는 어디까지 가능하단 얘긴가...) 


째뜬 울 외할머니는 평생 그 하씨 집안 호적에 오른 적 없이 그냥 대를 이어준 첩으로만 사신 분이다. 생계 때문이긴 하지만 이씨 성을 가진 두 자식을 데리고 정식으로 개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에게 법적인 어머니 노릇도 할 수 없는 정말 딱한 처지에서 두집 자식들에게 모두 죄스러워하며 사신 것 같다. 체력이며 목청이며 천성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인데, 자식들에게는 늘 전전긍긍...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본인이 낳지 않은 하씨네 큰딸까지  하나같이 죽어라 속들을 썩여대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김치 담가 나르고 사고치면 뒷수습하고... 그러셨다. (젤 멀쩡한 자식인 울 엄마만 해도 걸핏하면 우울증이 도졌으니 뭐;;) 하여간에 울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울 외할머니와 '큰엄마'의 사이는 몹시 좋았고, 첩이 낳은 아이들도 다 엄청 예뻐했단다. 대를 잇게 된 두 아들 뿐만 아니라 막내딸까지도 주로 업어 기른 사람이 '큰엄마'였다나.본처 입장에서 볼 때 울 외할머니가 자신의 법적인 지위를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배다른 자식들을 예뻐하다 못해, 엄연히 따지면 남남인 울 엄마와 큰외삼촌까지 잘해줬다는 걸 보면 본처나 후처나 두 양반 성품이 워낙 착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태어났을 때도 그 '큰엄마'라는 양반이 아기 손가락 하나만 붙잡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우리 외갓집의 경우 남편의 이른 사망으로 본처와 후처간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집안을 일구었다면, 드라마 <참 좋은 날>의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수십년간 집밖으로 떠돌던 바람둥이 남편(김영철)이 돌아온 것! 당연히 두 여자의 공분과 미움을 살 수밖에 없고, 울 엄마 역시 그들에게 공감하며 김영철 아저씨를 엄청 욕하며 드라마를 보고있다. 저런 남편은 없는 게 낫지.. 라면서. 최근 이야기는 돌아온 남편 때문에 결국 첩이었던 하영춘이 집을 나갔고, 다들 늘그막에 노부부가 행복한 재결합을 하나보다 짐작하지만 장소심 여사가 이혼 카드를 내밀며 파란이 인다. 평생 희생하며 산 아줌니가 엄마 노릇 지긋지긋하다고 집을 나가겠다니 원... 


드라마에선 본처의 이야기지만 장소심 여사의 희생으로 점철된 인생을 보면 나는  울 외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본처도 일찍 죽고 결국 모든 집안 건사와 자식 교육의 책임은 울 외할머니의 어깨에 떨어졌다. (울 부모님 결혼식 사진 속의 하씨 형제들은 모두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 차림이다.) 외할머니는 86세까지 장수하셨고, 계속 꽤 큰 살림 규모를 유지했지만, 본인 명의로는 그 어떤 재산도 남아있지 않았더랬다. 미리미리 죄다 자식들 공동명의로 해놓았는데도 또 그 지분을 놓고 하씨네 자손들은 장례 끝나기 무섭게 박터지게 싸움을 해대고...  윤여정이 이혼선언과 함께 가출 결심을 밝히면서, 엄마 노릇이 지긋지긋해서 이제 관두겠다고 하는데 내가 막 공감이 됐다. 아오.. 안봐도 비디오지... 얼마전까지 대소변 받아내야 하는 시아버지 봉양도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아무튼 하도 설정이 신파스럽고 구식이라 8,90년대가 배경인 줄 알았던 드라마는 요즘 이야기였다. ㅋㅋ 울 엄마 세대 이야기도 아니고 무려 울 할머니 세대에나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삼았으니 당연히 인기가 없지 싶지만, 암튼 나와 울 엄마는 주말 저녁 밥먹고 나서 잠시 쉬는 동안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답답한 구세대 드라마를 계속 보지 않을까 싶다. 울 외할머니의 인생은 일제 강점기에 남편과 이별한 이후 단 한순간도 아름답게 피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과연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에겐 참 좋은 시절이 오긴 오려나..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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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연인?

투덜일기 2014. 7. 24. 17:50

번역하다보면 오래 고민해 봐도 뾰족하게 일대일로 이거다 싶게 대응하는 답이 안나오는 말들이 더러 있다. 'highschool sweetheart'도 그런 말이다. 곧이 곧대로 '고교생 연인'이라고 하면 얼마나 웃긴가! 그냥 아무개랑 아무개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다.. 정도로 풀어쓰는 차선책을 택하는 게 낫다. 요새도 가끔 고등학교 때 사귄 첫사랑이랑 결혼하는 이들이 더러 있나본데 (대표적인 주자로 차태현이 있다;; ㅋ) 옛날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이 케이스의 대표주자는 단연코 울 부모님이다;; +_+)했다고 들었다. 결혼시기가 지금보다 빨랐으니 아무래도 더욱 그랬겠지.


하여간 외국에선 최근까지도 '고교생 연인'끼리 결혼하는 비율이 한국보다는 더 높고(그래봤자 걔들도 고딩때 사귄 애인과는 절반 이상 졸업 후나 대학 들어가면서 헤어진다고;;)  대체로 어린 마음에 확 결혼했다가는 몇년 못 살고 헤어지는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일반 이혼율이 40퍼센트를 넘는다는 것 같은데, 어린 부부들이야 오죽할까!


요즘처럼 너도나도 장수하는 100세 시대와 발을 맞추려면, 평균 수명 40세 안팎일 때 만들어진 결혼제도와 일부일처제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최소한 배우자를 3번은 바꿔가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나! ㅋㅋㅋ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말로 자신과 잘 맞는 파트너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그냥 웃어넘기기엔 나름의 타당성도 있다. 살아봐야 아는 점이(어떤 건 살아봐도 잘 모르지 않나?) 어디 한두가지여야 말이지... 그렇다고 덜컥덜컥 쉽사리 결혼하고 또 헤어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개인의 성향차이고 선택의 차이겠거니 할 따름. 


얼마 전 번역하다 책에 나온 '고교생 연인' 이야기의 추이에 유달리 신경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조카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도 그렇고 그간 남자친구 있느냐고 그렇게 묻고 의심해도 절대 없다고 딱 잡아떼시던 우리의 ㅈㅁ공주. (중딩땐 진짜로 없었던 건지도...) 고등학교 올라가자마자 남친과 동네에서 데이트 하다가 온 가족에게 현행범으로 딱 걸렸다. 하필 울 엄마랑 나도 간 날이라 밖에서 저녁 먹고 나서 평소와 다른 뒷길로 움직이던 중이었는데, 그야말로 '고교생 연인'의 실루엣이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딱 걸려들었다. ㅎㅎㅎㅎㅎ 


고2때 만난 남자랑 8년 연애 끝에 결혼해 40여년을 같이 살고도 다시 태어나도 그 남편과 살겠다는 순애보를 고집하는 할머니는 당장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뭐하는 집 아들인지 알아보라'고 성화를 부리시고, 공주 아빠는 얼굴이 굳었다. (남자애가 뭐 저렇게 못 생기고 키도 작고 비실비실하냐!) ㅋㅋㅋㅋ 물론 당시 겉으로는 다들 웃는 얼굴로 창문을 내리고는 반갑다, 니가 ㅎㅈ이구나, 나중에 또 보자, 집으로 놀러와라... 다정하게 대해주었음을 밝혀둔다.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에서 우린 ㄱㅎㅈ이란 애가 남친일 수도 있다고 이미 추측하고 있었다!)


아무튼 '쿨한 고모 코스프레'에 충실하려는 나는 울 공주 결혼하려면 그 전까지 남친 열명도 더 갈아치울 테니 염려 말라고, 이제 겨우 고1인데 뭔 걱정이냐고 코웃음을 쳤다. 본인이 예쁘니깐 남친 외모도 안보고 사귀네, 엄청 훌륭하네 뭐, 남자애가 착한가보다... 너스레를 떨면서... (근데 내심 나도 그 남친 ㅎㅈ이가 그리 맘에 들진 않았다. ㅠ.ㅠ 이놈의 외모지상주의자!) 


이후로도 조카에게 남친 얘기 물어보면 절대로 대답도 안해주고 버럭 화만 내기 때문에 조카의 카톡 프로필 글귀나 보면서 둘 사이를 짐작할 뿐이었다.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가끔 보란듯이 엄청난 남친 욕설을 적어놓는다든지 수상한 글귀가 떠오르면 둘이 헤어졌나 싶기도 했는데, 또 금세 잘 만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젠 막 남친이 집으로 놀러도 오는 사이라나... ㅠ.ㅠ 


그러더니 급기야 좀 있으면 사귄지 200일이라고 선물(커플 시계!)까지 준비중이시란다. 그것도 영원한 봉 고모의 스폰서를 받아서.. 끙... 그냥은 스폰서 못해주겠고 와서 할머니 어깨 주무르기 알바라도 하면 시급으로 비용을 까주겠다고 했더니만 진짜로 방학 첫날인 오늘 건너왔다. 주말에 제발 좀 놀러오라고 할머니랑 고모가 애걸복걸 할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쳇... 아 놀라운 풋사랑의 힘이여~! 


업고 안아 재우며 키운 첫조카가 벌써 17살이 되어 연애질을 한다는데 허거걱 그간의 세월이 놀랍기도하려니와 고딩 연인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데이트를 하는지 호기심이 발동하며 자꾸 실실 웃음이 난다. 중간고사 기간 땐 둘이 울 동네 구립 도서관에도 같이 간 모양인데 (아우 귀엽다!) 자리가 없어서 헤매다 둘이 밥 얻어먹으러 우리집에도 왔었다. 이쯤 되면 건전하고 착한 연인이라고 인정. 다만 조카가 자꾸 다이어트에 열 올리지 않도록 남친 녀석이 좀 살이 쪄주면 좋겠다. ㅎ 


200일 기념 커플아이템 마련을 위해 (공주께선 그간 남친이 사준 커플링을 두번이나 잃어버리셨다고 +_+) 일종의 알바를 하러 온 건데, 나 원참 할머니 어깨는 10분씩 겨우 두번이나 주물렀나.... 히히호호 남친이랑 통화를 하지 않으면 카톡하느라 정신이 없더니 30분에 걸쳐 곱게 '풀메이크업'을 하고는 데이트나가신단다. 계속되는 조카의 봉노릇... 기분이 그닥 나쁘지는 않은데, 이거 괜찮은 건가 좀 염려는 된다. 조카 남친의 봉노릇까지 하는 고모라니 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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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잉여짓

놀잇감 2014. 7. 18. 17:24

등산용품 선망에 이어 요번엔 또 생활한복 타령이다. 등산이든 요가든 낚시든, 뭘 하든 상관없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전에 그와 관련된 옷과 장비부터 사고보는 사람들.. 나도 이젠 절대로 손가락질 못하겠다. 그 사람들이 옷 욕심이나 허세가 많은 게 아니고,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 한달에 한두번도 안되는 기회를 바라며 끊임없이 쓸데없이 계속해서 등산복과 생활한복에 눈독을 들이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고 있으니 으휴... 그나마 알량한 수입과 지출 규모를 따져서 막 질러대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궁궐 안내 나가는 날 입는 생활한복도 이제 계절이 완전히 한바퀴 돌았으니 분명 새로이 더 옷을 사지 않아도 입을 옷은 있다. 그런데도 자꾸만 너무 머슴스럽지 않으면서 예쁜... 그러나 너무 거추장스럽지는 않은 한복에 대한 로망은 좀체 꺼지질 않는다. 평소 입는 옷도 남들의 시선보다는 혼자만의 자기만족이 더 큰 기준인데;; 작년 여름 수습기간 중에 덜컥 싼맛에 장만한 여름 옷은 소재만 마일뿐, 사실 그냥 긴 통치마에 매듭단추가 달린 블라우스 형태였다. 푹푹 찌는 폭염엔 그 정도로도 나름의 복장규정('지킴이는 활동시'최소한' 생활한복을 입고 안내하여한다'는)에 위배되진 않는 모양이지만, 도통 한복스럽지 않다며 나 혼자 마음에 안들어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여름도 다 가는 9월쯤 하얀 적삼 비스무리한 걸 하나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정식 옷고름은 아니지만 고름 비슷하게 변형된 리본도 달려있고 (요즘은 또 일반 한복도 옷고름이 짧고 얄상한 게 유행이다) 한복여밈 같은 깃선이며 홈질로 마무리해놓은 장식도 마음에 들었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하얀색이 시원해보이지...


생활한복류는 아무래도 젊은사람들이 입는 옷이 아니다보니 小자가 66 사이즈부터 시작된다. 해서 막상 택배온 옷을 입어보니 꼭 남의 걸 얻어입은 듯 허수아비 같았다.. ㅋㅋ

얼른 품도 줄이고 소매통도 안으로 꿰매 좁히고 뒤쪽으로  

허리부분에 대충 다아트를 넣어 어벙벙한 느낌을 줄였다.

그러고 야심차게 궁에 입고 갔더니만....


-_-; 반응이 별로였다. 일단 형광 하얀색이라 푸르딩딩한 기운이 도는 흰옷이랑 나랑 별로 안어울린다는 총평. 게다가 또 내가 뭐 화장을 막 진하게 하는 편도 아니고 립스틱도 바르는 둥 마는둥.. 하다보니 딱 환자복 입은 아픈 사람 같단다. (거울로 내가 봐도 그건 인정 ㅋㅋ 평소 흰색&검정 배색을 자주 입고 다니지만 그냥 티셔츠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역시 궁궐에선 화려한 색깔이 어울린다는 고수들의 조언. 결국 딱 한번 입고 더는 안입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올해 여름...  반드시 다려야 입을 수 있는 마블라우스 대신에 저 적삼(이름이 구김마 꽃적삼이던가;;)을 산 이유도 그냥 빨아서 말렸다가 대충 입으려던 거였는데! 싶어지면서 또 다시 인터넷을 눈빠지게 검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은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색깔로 또 한번 사 볼까 어쩔까 고민하다 퍼뜩 든 생각은, 염색을 해입자!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천연염색과 관련된 정보를 폭풍검색, 비트로 염색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중간쯤으로 물이 얼마나 예쁘게 들까 마구 기대하면서... 


일부러 재래시장에 가서 비트 두 덩이를 사다가 대충 썰어 믹서기로 갈아서 매염제로 필요하다는 백반까지 함께 넣어  천연염료를 만든 뒤 신나게 옷감에 비벼댔다. 그러나 핏빛처럼 진했던 비트의 진분홍색은 백반을 섞으니 약간 갈변하는 듯? 어쨌거나 손목 아프게 주물러대다가 (30분간 담가 주무르라고 어느 블로그에;;) 대강 물이 다 든 것 같아 좀 꾸둑꾸둑 말려 염료를 고착시킨 뒤에(그러는 과정에 여기저기 얼룩덜룩 ㅋㅋㅋ 그러나 그게 천연염색의 묘미지.. 라며 내심 뿌듯;;) 물에 헹궜다.

그런데 으악... 헹구는 과정에서 염료 물이 다 빠지네그려!  ㅠ.ㅠ


결국 1차 천연염색은 실패로 판명났다. 비트든 포도든 양파든 천연염색 매염제는 '백반'이라고 하던 모든 블로그들이 다 '뻥'이었던 거냐! 나 원참... 나의 옷은 저 형광 하얀색에서 하도 오래 입어 더럽게 때 탄 흰색으로 돌변했을 뿐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다시 폭풍검색을 했다. 이번엔 실제로 본인이 천연염색을 해본 건지 어디선가 풍월로 들은 걸 옮겨적어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블로그 포스팅은 다 무시.. 주로 실패담을 읽었다. 신나게 염료 물 들였다가 들은 풍월대로 매염제로 백반을 사용했더니 색이 다 빠졌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 백반 물의 농도가 중요한가? 


그러다 유레카!  천연염료에 관해 쓴 논문을 발견했다. 95도로 30분간 끓여 만든 각종 천연염료의 발색 과정을 옷감의 종류(면, 마, 견)에 따라 매염제(백반, 소금, 식초, 사용 안함) 별로, 고정 상태와 착색 정도를 담은 내용이었다. 결론은 견직물이 효과가 제일 좋고, 염색을 세 차례 실시한 결과, 착색효과는 매염제를 썼을 때나 안썼을 때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 나중에 빨아도 물이 안빠진단다. 옳거니.


백반도 남았겠다. 2차 시도에 돌입. 다시 비트를 사왔다. 백반의 농도가 중요할지 모르니깐 뜨거운 물에 10% 용액을 대체로 맞춰 준비해놓고 잘게 자른 비트를 망에 담아 푹푹 끓였다. 아 색깔 좋고... 그러나 모든 흰색 옷감에 형광증백제가 들어가기 때문이겠지만 쉽사리 그 선연한 진분홍색깔이 저고리에 침투하진 못했다. 어쨌든 염료 30분, 매염제 30분씩 담그는 절차를 3번 하면 되렸다....  허걱. 기껏 분홍색으로 물든 저고리를 백반물에 담갔더니 다시 흰색으로 환원! ㅠ.ㅠ 열받아서 백반물은 확 쏟아버렸다. 다시 물에 헹궈낸 뒤엔 그냥 비트물에 소금 좀 넣고(어디선가 TV에서 본 적 있다. 소금이 천연염료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던가) 4, 5시간 푹 담궈놓았다. 논문에서 매염제 안써도 효과는 똑같다고 했으니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옷값에 비트값에 쓸데없이 돈만 엄청 버렸구나 싶은 낭패감이 들었다. 잘못하면 염료 산화되서 색깔 완전 이상해진다던데 에라 모르겠다. 쳇. 간간이 들여다보니 분명 염색물은 진자주색인데 옷감 색은 분홍도 아니고 갈색도 아니고 요상망측. ㅋㅋㅋ


그쯤했으면 최선을 다했다 싶어 그나마 누런 흰색은 모면한 저고리를 꺼내 깨끗한 물에 주물러 헹궜다. 신기하게도 보라자주 기운이 돌던 저고리가 헹구면 헹굴수록 갈색으로... 그나마 얼룩덜룩했던 1차 염색의 후유증은 다 사라졌다. 그럼 됐지 뭐... 

옷걸이에 걸려 말렸더니, 그럴싸한 베이지색이 되었고, 원래 옷감에 든 꽃무늬 부분은 은은하게 약간 더 갈변한 느낌. 아싸~


결국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천연염색 저고리가 완성되었다. ^^; 칙칙하다고 누가 뭐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흡족하면 됐지! 볏짚 색이랄지, 베이지색으로 변한 저고리엔 진밤색 치마가 제격(생활한복 치마 아니고 시원해서 여름마다 내가 애용하는, 무인양품에서 산 긴 랩스커트를 활용했다)이라며 희희낙락 지난 활동일에 입고 다녔다. 이번엔 다들 칭찬해주는 분위기... 색깔 은은하고 예쁘네...라면서. 


그러고 보니 또 다시 커지는 욕심... 이왕이면 리본 고름을 다른 색으로 달고 시프다... 어흑.. 

결국 며칠 전엔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 대로 오밤중에 고름만 떼어서 패브릭 마커로 칠을 했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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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뭔지

투덜일기 2014. 7. 15. 15:44

어차피 내려올 산을 헥헥거리며 올라가는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산이 좋으면 밑에서 올려다 봐도 되잖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려서 억지로 산엘 쫓아다녀서였을까? 북한산과 멀지 않은 동네에 오래 살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는데, 암튼 아버지는 꽤 젊어서부터 종종 등산을 다녔고 40대땐 부부가 아예 이런저런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가끔씩 억지로 우리 삼남매를 등산에 끌고 갔다. 봄엔 진달래 능선에 핀 예쁜 꽃을 봐야한다면서, 가을엔 눈부신 단풍구경을 하자면서, 겨울엔 나무에 얼어붙은 눈꽃이 얼마나 예쁜지 아느냐면서... 

등산화 없다는 핑계를 대면 새로 아이젠까지 다 사주면서까지 어떻게든 꼬드겨 애들을 산엘 데려간 걸 보면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따라나선 우리들이 착하다고 해야할지. 그 옛날엔 모든 산에서 취사가 가능할 때였으니, 코펠에 버너에 쌀과 반찬에 짐을 한보따리 홀로 짊어지고 밥짓는 노동까지 다 도맡아하면서도 아버진 뭐가 그렇게 좋으셨는지 지금도 좀 의아하다. 산에서 먹던 코펠밥과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엄청 맛있긴 했지만, 그 맛에 또 따라나서겠다고 할 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등산 차출'에 동원되었던 건 아마 나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 막내나 큰 동생은 나보다 몇 번 더 끌려(?) 갔을지도 모르겠다. 

등산이라면 절레절레 인상부터 쓰던 내가 수학여행 때 한라산엘 올라갔던 건 순전히 지도교수로 따라간 할머니 교수님 덕분이었다. 요즘이야 뒷동산엘 가도 등산화에 아웃도어에 배낭에 히말라야 등반도 불사할 차림으로 나서는 게 유행이지만, 그때 우린 대체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심지어 정장바지에 구두를 신은 우리과의 퀸카 '패셔니스타'도 있었다!) 배낭은커녕 여관에서 아침에 싸준 은박 도시락과 물 한병을 각자 비닐봉지에 덜렁덜렁 들고 나선 터였다. 정상까지 가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없었고, 대충 올라가다가 점심 도시락 까먹고 내려와야지 싶었다. 그런데 정년퇴임을 앞둔 할머니 교수가 어찌나 깐족거리시는지... 늙은 나도 올라가는데 젊은 니들이 뭐가 힘드니, 여기까지 왔는데 백록담은 보고 가야지...

결국 얼떨결에 나까지도 한라산 정상을 올랐고, 지금까지도 그 사건은 불가사의한 추억담이다. 스물한살의 팔팔한 패기 와 오기 탓이었겠지만, 나이키 운동화에 무겁고 꽉 끼는 청바지까지 입고 대체 어떻게 한라산을?! +_+ 하여간 내 인생의 등산은 그날 한라산 해발 1950미터를 정점으로 영원히 끝이라라고 생각했다. 설악산은 흔들바위 이상 올라가본 적이 없고(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엔 올라갔다 ㅋ) 각종 단풍놀이로 간 내장산, 속리산, 주왕산 등등도 중턱이나 가봤을까. 직장인 시절 야유회를 산으로 가면 중간에 도망쳐 집으로 가거나 산 아래 막거리집에서 기다리는 쪽이었다. 

근데 그러던 내가 변덕도 유분수지, 최근 등산을 몇번 따라갔다.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낭떠러지가 무서워서 눈앞이 노래지는 순간을 겪으며 내 미쳤지! 다시는 안 따라올란다! 결심해놓고는 다음번에 또 따라가기를 벌써 서너번 했나? ㅋㅋ  운동삼아 동네 앞산 뒷산을 오르겠다고 장담할 때부터 스스로 좀 이상하긴 했는데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뭔가에 홀린 듯 등산화, 등산바지에 이어 스틱까지 장만하고는 요즘 계속 등산용품을 기웃거리고 있다. 어쩌면 마라톤화,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요가에 이어 또 그냥 흐지부지 운동타령 푸닥거리로 반짝하다 말 짓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도 못 미더워서 아직 배낭도 손바닥만한 엄마 걸 빌려갖고 다니고는 있는데 과연... 이건 그냥 물욕, 쇼핑욕일까 아니면 새로운 취미에 대한 초보스러운 열망일까. ㅎㅎㅎ

알록달록 색깔과 봉제선이 요란한 아웃도어는 또 내가 무진장 싫어하는 패션이어서 다행히 기능성 등산복엔 별로 눈길이 안가는데 배낭은 아무래도 꼭 하나 장만해야할 것 같고 ㅋㅋ 등산화도 아무케나 제일 가벼운 걸로 광고모델 봐서 덜컥 산 거 말고 좀 안미끄러운 놈으로 제대로 하나 또 사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계속 등산용품 사이트를 들락날락... 아무래도 등산화와 배낭은 고가품이라 확 저지르기 전에 몇달째 망설이고만 있는 우유부단함이 이번엔 나름 미덕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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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미국에서 살인죄로(그것도 노수녀님을 죽였다고;;) 복역하던 가톨릭 신부의 죽음과 그 장례를 놓고 논란이 인다는 해외뉴스를 보았다. 아니 성직자가 어떻게?!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현대에서 종교란 단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성직자 역시 그냥 하나의 직업이란 생각에 점점 동조하게 된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있듯,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의 동기와 이유와 성향도 다양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어려운 곳, 낮은 곳에서 소신껏 봉사하는 성직자들도 물론 많겠지만, 그건 그냥 개인의 성향일 뿐 성직자가 아니면서도 그러는 착한 사람들도 많은 걸 뭐.


어마어마한 재산 규모와 예산을 집행하는 개신교 대형교회들도 그렇고, 괜히 길 막아놓고는 문화재 보호명목으로 절에 안가는 사람들한테까지 입장료 받아 챙기는 불교계 사찰들도 그렇고 그들에겐 종교가 그러니까 그냥 세금포탈에 엄청 이로운 수익사업에 지나지 않는 거다. 전국 어느 절엘 가보아도 '기와불사'라면서 돈 내고 기와에 이름 적어 소원성취하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이 빠지질 않아 눈쌀이 찌푸려진다. 개신교의 십일조 논리도 그렇고, 가톨릭의 성금이나, 불교계의 불전함이나 왜 신을 섬기는 일에는 꼭 돈이 빠지지 않을까. -_-; 


줄곧 심신이 건강했던 엄마는 얼마전부터 약간 흥분과 불안증세를 보였다. 짐작되는 이유도 여럿이었다. 


첫째, 작년 여름에도 그러더니만, 담당자가 공무원 성과주의에 빠진 건지,  암튼 엄마가 다니는 보건소 부설 실버합창단이 무슨 대회엘 나간다고 했다. 작년엔 서울 지역만 참가하는 합창대회엘 나갔고, 거기서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전국대회라서 예선도 거쳐야한다는데, 엄마는 작년 대회준비를 앞두고도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어했다. 자기만 틀려서 민폐 끼치면 어쩌나, 입장순서와 동작 순서를 헤매면 어쩌나 뭐 그런 이유였다. 부모들 기쁘게 하자고 유치원 선생들이 재롱잔치 준비로 애들 잡는 거랑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작년에도 욕심 많은 지휘자 선생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었다. 헌데 올해는 전국대회라니, 노친네의 스트레스는 더욱 높아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집에서 CD를 틀어대고 가사를 외우고... 가사 안외워져 큰일이라고 걱정하고.. 으억~!!! 하마터면 구청 사이트에 민원 넣을 뻔했다. 노친네들 성취감 고취도 좋지만,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도 많으니 괜한 고생 시키지 말고 큰일 벌이지 말라고...  일단은 참고 있다. 


둘째, 12살 조카를 3주 넘게 돌보는 건 나름 평화로운 모녀의 일상에 파격이었고 당연히 노친네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지네 집에선 TV도 안켜는 애가 우리집만 오면 할머니방 TV를 점거하다시피하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맞벌이로 돈 번다고 애 교육 망치는 건 아닌지, 장사는 잘 되는지도 염려했고, 운전수에 보모 노릇하느라 늙은 딸 고생하는 건 또 안쓰러워보였던 모양이다.   


셋째, 엄마가 다니는 절의 신도회장을 지냈던 어떤 아줌마가 지지난주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간 듣자하니 그 '보살님'은 좀 말도 함부로 하고 오지랖이 넓은 수준을 떠나 좀 주책스러워 밉상인 짓을 많이 하는 유형이었다. 고인을 두고 꼬치꼬치 따지기 좀 뭣하지만 이런 식이다. 울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루비반지(결혼 25주년때 아버지가 해주신 것)를 보더니 알이 좀 작지만(!) 예쁘네.. 라면서 대뜸 빼보라고 하더란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루비를 유리에 대고 문지른 뒤, 유리에 안붙는 걸 보니 이거 가짜네! 그랬단다. +_+ 그 일로 엄마는 그 아줌마를 속으로 미워하고 (나라도 엄청 미워했을 거다!) 상종하지 말아야지 마음 먹었다는데, 그분이 덜컥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 거다. 아니 그 아줌마 암 걸려 돌아간 게 왜 자기 탓인가! (물론 노인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부고가 알게 모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어쨌든 1, 2, 3번의 스트레스 원인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차츰 해결이 돼 나갔다. 1번은 내가 민원 넣어서 합창대회 무산 시키면 오히려 울 엄마가 더 괴로워할 것 같아서 열심히 가사 외우기를 거들며, 노친네들은 합창 틀리는 게 묘미라고 세뇌했다. 그래야 관객들이 재미있어서 웃는다고.. -_-; 2번은 올케가 직원을 뽑으면서, 조카가 우리집에 오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됐고, 3번은 일단 그런 찜찜한 마음을 내게라도 털어놓았으니 치유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ㅋ 우울증환자 보필 30년이면 이 정도 심리파악 풍월은 가능해짐을 양해바람)


저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은 2, 3주 지나면 풀리기 마련인데도, 이상하게 노친네의 불안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무언가 신경쓰이는 일이 더 있다는 의미였다. 길가다 이상하게 웃는 여자얘기부터, 누가 재활용품 이상하게 버려놨더라는 얘기까지 시시콜콜 별의별 것을 다 내게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양반이, 대체 그게 뭔데 나한테 숨길까. 


안되겠다 싶어서 이틀전 달래는 척 집요하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뭔가 나한테 말 안하고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분명 있다. 그게 뭔지 어서 털어놔라... 그런 거 없다고 발뺌을 하던 엄마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나중에 편지로 쓰겠다;;고 말했다. 엥? 딱 감이 왔다. 왜, 누구한테 돈 빌려줬다가 떼이셨나? 아님 절에다가 돈 갔다주셨나?  답은 후자였다.


사찰마다 교묘한 수익사업이 참 다양하겠지만, 이노무 절의 수익사업 가운데 하나는 '천불' 모시기였다. 나는 가보지도 않아서 모르겠는데 암튼 불화 전시회도 열었다는 유명한 화가(?)가 부처를 손바닥만하게 천 명이나 그린 벽화를 조성(아마도 화가의 그 노역까지 '보시'라는 이름으로 공짜로 재능기부 받았을 거다)하고 그 부처 그림 하나하나를 개개인의 이름으로 분양(?)해 돈을 버는 식이다(그림 아래 이름표라도 달아주려나? -_-;;) 우리 동네 있던 절이 새 절을 지어 서오릉 근처로 이사가면서, 그런 이야기가 있을 때 울 엄니도 당연히 하나쯤 도맡을 줄 알았고, 그러려니 했다. 결국 큰동생 이름으로 알량한 부처그림에 백만원을 쾌척하셨다. (백만원X1000 명이면 10억. 뭐 재산이 몇백억씩 된다는 대형교회완 쨉도 안되는 수준이겠으나, 나는 얘기 듣고 기가찼다.) 


그게 한 1, 2년 전이던가?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 이후에도 (불교신자도 아닌 딸 잘 되라고;;) 내 이름으로도 부처그림에 또 한번 돈을 냈었대고, 최근엔 노친네 본인 이름으로도 또 하나 부처그림값(?)을 내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원래도 부자 신도들은 한집에서 막 10개씩 척척 맡아서 돈내고 그런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수익사업이 원할하게 마무리가 안되니 마지막 바겐세일이라도 하듯--물론 깎아주는 건 아니지만--남은 그림을 분양했던 모양)  그것도 5개월 할부로. ^^*


어차피 엄마 재산(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많은 것 같지만 그냥 연금 통장 정도 ㅋㅋ)은 본인이 관리하시고,  종교생활에 드는 소소한 비용이며 본인 용돈 쓰시는 것 역시 내가 전혀 상관하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남기신 배우자 연금이 엄마 쓰시기엔 넉넉해서 어찌나 감사한지. 그저 감지덕지할 뿐. 그런데 공교롭게 얼마 전 내가 목돈으로 들어온 원고료 일부를 선심쓰듯 간만에 용돈으로 드리며 토를 달았다. 엄마가 놀러다니고 옷사입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주는 거야, 홀라당 절에 갔다주지는 마셔. 그러면 다시는 용돈 안 줄 거임~


아무래도 복을 받아 편안하게 이 세상 하직하려면 정성스러운 금강경 필사뿐만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도 천불 모시기에 동참해야할 것 같아서, 돈 내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온 바로 그 시점에 하필 내가 저런 말을 하며 돈 봉투를 안겼으니... ㅋㅋㅋ 노친네는 차마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 했던 거다. 딸 속이고 하지 말라는 짓 하자니 제발이 저리셨겠지...


사연을 다 듣고 나니 헛웃음이 나면서도 버럭버럭 화가 났다. 돈독 오른 땡중들에게! 순진한 '보살님'들 꼬드겨서 이런저런 수익사업 챙기는 불교계의 작태에! 설교든 설법이든 성직자라는 양반들이 노친네들 앉혀놓고 복을 짓고 선행을 베풀어야 천당이며 극락 간다고, 그리고 그 선행을 돈과 연결시키는 빤한 술수에! 종교단체에 전재산 홀라당 갖다 바치고 길바닥에 나앉는 노친네들 얘기가 그리 먼 사연이 아닐 수도 있다니! 눈뜰 욕심에 분수도 모르고 공양미 삼백석에 딸 팔아먹은 심봉사 같은 인간을 내가 얼마나 혐오하는데! 


으으으... 째뜬 약속은 약속이고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은 하셔야겠기에 내가 결론을 내렸다. 할부는 무슨 할부, 5달이나 신경쓰는 거 절대 반대이니 내일 당장 송금해주고 끝냅시다.... 송금할 계좌번호나 내놓으시오...


심신이 불안해지면 울 엄만 벌써 얼굴표정부터 달라진다. 행동도 안절부절하지만, 특히 나만 알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눈두덩 부분의 주름 방향이 달라져 위로 약간 치솟는 것. ^^;  내가 호랑이눈 됐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3주 가까이 이상하게 절반쯤 호랑이눈이 되었던 노친네 눈주변 주름이 저 대화 이후 하루만에 평온하게 내려앉았다.... 으휴. 


엄마가 속얘기를 차마 못하고 몇주간 끙끙대다 털어놓은 뒤 맘 편해졌듯이, 나도 여기다 시시콜콜 죄다 하소연을 하고나면 나도 반나절쯤 계속해서 투덜투덜, 종교는 둘째치고 탐욕스런 종교인들이 문제야, 순진한 신자들이 문제야, 으억 내돈은 아니라도 3백만원 아까워! 라며 씨근덕대던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지만...  하여간 이번에 또 한번 깨달은 건 내 맘대로 함부로 일반화한 '일부' 종교인들의 탐욕스런 수익사업과 나의 편협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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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특별답사

놀잇감 2014. 7. 2. 23:16

궁궐에서 안내 자원봉사를 하면 일반 관람객이 못들어가는 전각 내부까지 속속들이 구경할 기회가 많을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그런 혜택이 별로 많지 않다. 특히나 경복궁은 청와대가 가까워서 보안요원들도 늘 상주하고 있고, 특히 인적 뜸한 북쪽 전각들은 속속들이 구경하려고 한가한 시간에 홀로 뒷담에 가까이 다가가 사진 찍다가는 흠칫 놀랄 때도 많다. 전경인지 의경인지 암튼 곳곳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어느 틈에 나타나 주시하며 서로 막 워키토키로 '수상한 인물'이 접근중임을 보고하고 난리다. ㅋㅋ


세월호 관련 시위가 광화문과 시청앞에서 벌어지던 어느 주말 낮에는, 대학생들이 청와대 앞까지 기습적으로 진입해 시위를 벌였다는데 그때 이용한 통로가 경복궁이었단다. 대학생들(25세까지던가;;)은 입장료도 무료이고, 북쪽 출입구인 신무문 나가면 바로 청와대 입구이니, 누구 아이디언지 기발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 탓에 보안요원들의 경복궁 입구 감시가 더욱 삼엄해져, 야광조끼 입은 의경들 여럿 뿐만 아니라 선글라스 낀 사복 경찰(경호대 소속일까?) 같은 사람이 아주 까칠한 표정으로 입장권 내고 들어가는 주 출입구(흥례문) 앞에 서서 모든 이들을 주시한다. 듣자하니 언젠가는 사복입고 온 중학생들을 괜히 의심해 심문하기도 했다고...  


계속 경복궁 제모습 찾기 복원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고, 2030년까지 흥선대원군 중건당시의 80%를 복원한다는데, 경복궁이 정말로 제 모습을 찾으려면 청와대가 이사를 가야한다고 본다. 청와대가 경복궁 뒤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대통령 되고 나면 더더욱 지들이 '왕'이 된 거라 착각하는 게 아닐까? 정말로 스스로 왕이라고 여겼던 게 틀림없는 이승만은 심지어 경회루 한 귀퉁이에 정자(하향정)를 지어 전용 낚시터로 사용했고, 그 정자가 아직도 버젓이 남아있다. 없앨 것인가 말 것인가 논란이 많지만, 훼손의 역사도 역사인지라 보존하는 쪽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는 모양이다. 문화재 보존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요즘에나 높아졌지, 독재정권 시절은 물론이고 군사정권을 거쳐 김영삼 시절까지도 대통령이 되면 경복궁을 아주 제 마당처럼 써먹으며 경회루 같은 데서 파티를 벌이고 했다는 거 같다. 문화재 훼손의 제일 큰 주범은 암만해도 한국인들이 아닐지.   


암튼 참 후지게도 지은 청와대는 양옥도 아니고 한옥도 아닌 얼치기에다 내부 시설도 엉망진창이라지만, 역대 대통령 중 감히 누구도 새로 짓자거나 옮기자는 말을 못했고, 앞으로도 쉽게 할 순 없을 거다. 가뜩이나 욕먹기 십상인 대통령이 저 편하자고 대통령 관저에 막대한 예산 들인다면 얼마나 국민들이 욕을 해대겠나. 영빈관 하나 제대로 없어서 외국 대통령들 오면 죄다 호텔에서 묵는 판국이니, 이왕 지으려면 품격있게 최소한 100년은 쓸 수 있게 잘 지어야할텐데 그걸 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면.... 흠.. 뾰족한 답은 없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경복궁에 초점을 맞추어 장기적으로 제대로 문화재 복원사업을 계획한다면 청와대를 옮겨야한다고 생각한다. 궁궐 관람중에 다다다다 요란하게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헬리콥터가 뜨고 내리면 아우 정말 시끄러워서 원! 일제시대 지은 '경무대'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은 청와대 터는 진짜로 경복궁 후원이었다니깐! 언제가 되었든, 정말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나타나서 필요성을 검증받고 온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낸 뒤에 대통령관저를 정말이지 근사하고 아름답게 짓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경복궁 뒤쪽의 후원도 제 모습을 찾기를 한옥 및 문화재 애호가로서 바라고 있다. ^^; 


아우 뭔 딴 소리가 이렇게 길어졌다냐. 경복궁 휴관일인 화요일에 자원봉사자들 특별관람 했다는 거 보고하려던 포스팅이었는데 순 딴소리만... ㅠ.ㅠ 

하여간에 내가 꼭 들어가보고 싶었던 전각은 근정전, 향원정, 집옥재였는데, 그곳은 쏘옥~ 빼고 다니긴 했어도 나름 뿌듯했던 특별답사 사진 대거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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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먹겠다

투덜일기 2014. 6. 30. 22:00

이걸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하는지 모르겠다. 일종의 파트타임 애보기라고 해야하나? 암튼 전업주부로 들어앉았던 큰올케가 또 갑자기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당분간 12살짜리 조카를 보필하는 임무가 내게 떨어졌다. 그래봤자, 화목토에 다니는 수학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고, 매일 저녁 해먹이고, 밤에 집에다 데려다주는 일이 전부다. 


열두살 조카는 이제 집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우리집에 오는 법을 확실히 익혔기에, 월수금엔 방과후 집으로 선생님이 찾아오는 피아노와 영어 과외를 받은 뒤 숙제거리를 싸가지고 저녁을 먹으러 11정거장 거리인 우리집으로 버스타고 찾아온다. 다행히 수학학원 가는 날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걔네 엄마가 학교부터 학원까지 픽업을 해주거나 둘이 택시를 타고(!) 연희동으로 간단다. 애들끼리만 택시 타는 게 나는 너무도 못마땅한데, 조카의 친구 엄마 말로는 자기네 애는 하도 택시를 많이 타고 다녀서 염려 없다고 장담했고 올케도 별 거부감이 없는 눈치다. 


처음 며칠은 갑자기 달라진 삶에 심술이 난 조카가 집으로 고모가 자길 데리러 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었고, 그렇지 않으면 택시를 탈 테니 큰길가에 내려와 있으라고 해서 몇번인가 데리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필 고모는 바빠서 죽겠는 기간인데... 암튼 그래도 조카는 금세 리락쿠마 인형에 충전된 티머니로 버스 타는 묘미를 익혔고, 희희낙락 고모네 와서 마음껏 할머니 방 TV를 볼 수도 있고, 하녀처럼 살뜰하게 저를 챙기는 고모를 이리저리 부리는 재미(고모 놀자! 고모, 아이스 메밀차 먹을래! 고모, 방울토마토 먹을래! 고모, 바나나 먹고싶어!--집에 없어서 결국 사다줬다--고모, 얼음만 컵에 잔뜩 담아줘! 고모, 이제 우리 집에 가자! 고모, 우리 집에 같이 들어갔다가 가자!... +_+)에 길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주와 오늘까지 기말고사기간. 괜히 왔다갔다 붕 뜬 마음에 시험공부라도 잘 못하면 어쩌나 괜히 내가 눈치가 보여서 정말로 왕자님 모시듯 떠받드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라 나도 아직 녀석을 애기취급하는데, 엄마 손길이 적어져 애가 맘상하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다행히 지난주 영어시험도 그렇고 오늘 기말고사도 잘 본 것 같단다. 물론 성적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ㅋㅋ 어쩔 수 없이 나도 성적지상주의자로다. 그치만 고모가 보필해서 성적 떨어졌단 말은 듣기 싫은데;; ㅠ.ㅠ) 


그러다 2주째였던 지난주 중간쯤엔 괜히 스트레스 폭발, 조카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영어과외를 째기로 애 엄마와 통화를 하고 애를 집에 데려왔는데, 시험기간 직전이라 굳이 과외선생이 우리집으로 찾아와 수업을 하겠다고 했던 날이었다. 6시에 온다고 해도 7시에 수업 끝나면 저녁이 늦어지는 판국에, 설상가상 길이 막혀 과외선생은 6시 반이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난 원래 끼니 시간을 넘기면 분노 조절이 안된다. ㅠ.ㅠ 6시 반엔 저녁밥을 먹어줘야;;) 괜한 신경질에 조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왜 자기한테 화를 내느냐고 물었다. 아... 화를 낼 대상은 그냥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이었거늘. 금방 반성하고 사과할 수밖에.


매일 조카 저녁 챙겨먹이는 건 뭐 원래도 하는 일에 밥숟갈만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늘 영양 만점이라고 생각하는(아닌 날도 많은데 ㅠ.ㅠ) 고모의 밥상을 조카가 엄청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제 엄마에게 고모는 된장찌개도 대충 끓이는 데 엄청 맛있다고 했단다 으휴...) 편식 없이 아무거나 해주는 대로 잘 먹긴 하지만, 반찬에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저녁약속도 잡을 수가 없다! (엄마 혼자 한끼쯤 홀로 챙겨드시는 건 문제 없어도 손주 끼니 보필은 좀 무리인 게 사실.)


매일매일 조카에게 현재 어딘지, 집에 왔는지 학원에 갔는지, 예정대로 그 시간에 데리러가면 되는지, 혹은 버스 타고 오는 중인지 전화나 문자를 주고받아야 하고, 학원앞에 데리러 가서도 주차할 데 없으면 또 부리나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모든 상황이 나에겐 스트레스. 도대체 사교육에 힘쓰는 이땅의 엄마들은 어떻게 애들을 키울까! 난 겨우 2주만에 못해먹겠다 무자식이상팔자구나, 궁시렁궁시렁 온갖 투정을 해대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금요일엔가 나온 김에 저녁 먹고 들어가자는 말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들어가서 조카 데려다가 밥해먹여야 한다고 하자, 애들 다 키워놓은 지인들이 킥킥 웃었다. 운전해서 애들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거, 그거 마흔살 이전에나 할 수 있는 중노동이야! 라면서. 


물론 한정없이 내가 계속해야 하는 일은 아니고, 올케가 직원을 뽑아 일이 자리가 잡히면 곧 놓여날 수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 아마 나더러 계속 하라고 하면 어디로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부모 노릇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다고 익히 생각은 해왔지만, 역시 난 엄마가 될 수 없는 잠깐잠깐 조카들을 예뻐하는 고모일 뿐이고, 온전한 책임은 버거워하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깨닫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고 하는 말을 새삼 이렇게 뼈저리게 실감할 줄이야... 

매일 같이 지네 집과 고모 집을 전전해야 하는 조카녀석도 안쓰럽고, 집에 데려다줄 때마다 가끔씩 얼굴을 보는 고딩 큰조카도 어쩐지 안돼 보이고, 목이 다 쉬어 계속 피곤한 몸으로 오밤중까지 돈벌이에 힘쓰는 올케도 안쓰럽고, 갑작스런 애보기 신세에 스트레스 받는 나도 안쓰럽고... 문득 이 세상의 모든 맞벌이 부부나 싱글맘, 싱글대디들은 애들을 어떻게 키우나 의문이 든다. 이러면서 나라에선 출산율 떨어진다고 이상한 정책이나 세워대고 말이지...  암튼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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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분열?

투덜일기 2014. 6. 28. 18:24

우리집 바로 옆 빌라에 얼마 전 이삿짐 옮기는 탑차가 들락거리더니 연일 동네 소음이 달라졌다. 까르르 까르르 아이들 웃음소리와 고함소리, 투닥투닥 골목길 뛰어다니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 거다. 


나1: 어머, 노친네만 주로 사는 동네에 어떻게 젊은 부부가 이사왔나보네. 동네 평균 연령 내려가겠다. 아파트 촌엔 낮에도 애들 다 학원가고 뛰노는 애들 거의 없다던데, 애들 잡는 부모가 아닌가보다. 훌륭하군. 애들도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거 신선하겠지. 한참 뛰어놀 나이에 몸을 쓰며 뛰어놀아야 두뇌와 신체가 골고루 성장해 사춘기도 수월하게 넘어간다더라. 막다른 골목이라 드나드는 차도 많지 않고 다행이네. 애들이 몇살이나 됐을까... 궁금하다. 마주치면 인사도 잘하고 그러는 귀여운 아이들이었으면. 


나2: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다) 아악 시끄러워! 쟤네들은 대체 몇 시간을 뛰어노는 거야?! 힘들지도 않나? 더운데 창문을 다 걸어닫을 수도 없고! (장보러 나가려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내 앞으로 물총을 들고 확 튀어나오는 사내아이를 보고) 으악! 이누무시키!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애들은 폭탄이야 폭탄! 부모가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휴, 사고날뻔 했잖아... 왜 골목길에서 위험하게 물총 싸움을 하고 난리... ㅠ.ㅠ


똑같은 상황에서 며칠 차이로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정말 나인지 같은 사람인지 원... 유치원생 아니면 기껏해야 초등학교 1, 2학년인 것 같은 남매의 골목길 물총 전쟁을 룸미러도 흘끔거리며 골목길을 빠져나가면서 엄청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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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발원문

투덜일기 2014. 6. 20. 16:51

며칠에 한번씩 연필 깎아대기 귀찮아서 연필 깎는 기계를 살까말까 고민하는 포스팅을 했다가, 결국 반성하고 계속 연필깎이 봉사를 보태기로 했던 엄마의 금강경 필사는 계절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매일 새벽 거의 2시간씩 꼬박 식탁에 앉아서 금강경을 베껴적으시는데, 이젠 아는 한자가 많아져 속도도 빨라졌고 목표로 했던 7권 가운데 마지막 한권만 남았다는 것 같다. (1권에 3번씩 쓸 수 있으니 총 21번을 쓰는 셈)

 

노친네가 1월에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초반부엔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1달에 한권씩 써서 백중(8월 10일이다) 전에 다 끝내겠다던 대장정이 순조롭게 결실을 앞두고 있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너무 짧아진 연필 몇 개는 버리고 새 연필을 서너 자루 더 깎아드린 것 같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참 대단한 끈기이고 정성이다 싶어서 존경스럽다가도, 간혹 잠도 안자고 새벽 3시에 막 필사하겠다고 나서면 억지로 다시 방으로 쫓아보내 더 주무시라고 하면서 버럭 화가 난다. 뭐든 스트레스가 되면 안되는 거라구욧!

 

엄마 본인의 말로는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단다. (딸에게 이런 고백을 스스럼없이 하는 엄마라니.. 참 나.) 하여간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많이 졸다가 쉬는 시간에만 재잘재잘 살아났고(요즘도 한달에 한번 만나는 엄마의 고교동창들이 그런단다. 얘, 너 학교 다닐 때도 엄청 수다스러웠어!), 집에서도 공부 좀 할라고 그러면 어찌나 졸린지, 시험 앞두고서도 할머니한테 새벽에 깨워달라고 하고는 내쳐잔 뒤 다음날 안 깨웠다 신경질만 부렸단다. 할머니가 왜 안깨웠겠나, 깨워도 그냥 잤겠지. ㅋㅋ 게다가 워낙 악필이라 수업시간에 적어온 필기 내용을 (아마 졸면서 적어서 더 그랬을듯;;) 본인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는 게 함정. 그뿐인가. 무려 고2때부터 이후 8년간이나 이어지는 연애질을 시작해 종종 학교 수업 빼먹고 명동으로 영화구경도 다녔다니, 공부를 대체 언제 했겠나! (가끔 울 아빠가 읽어보라고 건네주는 책--주로 고전--읽기에도 바빴다고;;)

 

하여간 공부를 잘 해보고 싶어도 잘 안됐던 그 시절의 로망을 요즘에 투사하는 건지, 엄마는 뭐든 금강경 필사만큼이나 열심이다. 실버 아카데미 다닐 때는 무결석은 물론이고 숙제도 그날 오자마자 상 펴고 앉아 몇시간씩 낑낑대며 다 해치웠고, 요즘도 활동중인 실버 합창단은 열혈 선생이 구워준 CD를 집에서 연거푸 들으며 악보 챙겨와 따로 예습복습까지 해갈 정도다. 자고로 선생이 예습복습 해오란다고 정말로 해가는 아이들이 반에서 1퍼센트는 될까? -_-;; 암튼 그래서 엄마는 합창단 지휘자 선생도 인정하는 모범생이다. 

 

예전에 엄마가 서예 배우러 다닐 때도 신기하게 느꼈던 건데, 한글 글씨체는 진짜 악필인데 한문 글씨체는 잘 쓰는 편이라는 것! 나는 한글도 엉망이지만 한문 적어놓으면 그야말로 어린애가 그려놓은 듯 우스꽝스러운데, 금강경 필사야 밑에 흐린 점선으로 적혀 있는 대로 베껴적어서 그렇다치고 일반 공책에 한자성어 적어놓은 것도 한글은 지렁이 기어가듯 보이는 반면 한문 획은 반듯하다. 나로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그래도 몇달째 필사를 하면서 손아귀에도 힘이 생겨 악필도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금연하라고 하사금까지 내렸는데 아직도 몰래몰래 담배를 피워 노친네 애를 태우는 동생놈들 양심 찔리라고 엄마의 발원문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노친네가 쌓고 있는 정성의 힘이 어떤 절대자의 마음을 움직인다거나 해서 소원이 덜컥 다 이뤄진다고 믿진 않지만(신은 없다니깐!) 이런 과정을 실천하고 지켜보는 인간들이 슬그머니 변모하려는 노력은 낳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 두 줄은 나와 괜히 티격태격한 날 덧붙인 모양이라 나도 찔린다. 버럭버럭 마감 스트레스 괜히 엉뚱한데 풀지 말고 나도 뾰족한 말 좀 덜 하기를 바라는 차원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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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서전

투덜일기 2014. 6. 19. 23:46

와우북페스티벌 말고는 '도서전'이라 이름 붙인 대규모 행사장엘 가본지 한참되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노상 말이 '국제'지 프랑크프루트나 시카고에서 봤던 국제도서전과는 정말 비교도 되지 않는 소규모 국내잔치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주로 아동도서 할인전에 그치고 마는 꼬라지를 하도 많이 봐서, 언제부턴가는 아예 안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었다. (오늘로서 과거형이다 ㅋㅋ)


도대체 몇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암튼 오늘 도서전 당번이니 놀러오라는 문자를 어제 오후엔가 받고는 웬일인지 혹했다. 진짜로 도서전에 혹한건지 코엑스 갔다가 강남역 올케의 옷가게 들를 생각에 혹했는지 암튼 그건 그냥 잘 모르는 걸로 넘어가기로 하자. 하여간 역시나 수년만이 틀림없는 삼성동 코엑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온통 공사판이잖아!


상경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강북촌년이 오랜만에 강남 번화가에 가면 꼭 그렇게 된다) 티를 팍팍 내면서 도서전이 열리는 전시장을 찾았다가 또 놀랐다. 아니 입장료를 받아??? 언제부터? 미친 거 아닌가? -_-" 그것도 3천원씩이나!! 아 진짜, 티켓값 아까워서 안들어가고 싶었는데 사들고 간 빵이랑 음료수가 아까워서 참았다.


듣자하니 사전등록제로 미리 신청을 했거나, 이벤트 같은 거에 당첨됐거나 코엑스 멤버(? 뭐하는 건지는 모름)거나 출판계, 언론계 종사자들은 공짜로 출입도 가능한 모양이던데 아 뭐야! 하여간에 티켓을 사야하는 나는 짜증이 났다. 공짜로 어서옵쇼 해도 흥행이 될까말까, 고민해야 하는 처지인 것 같은데 아주 잘들 나셨다. 나를 부른 출판계 종사자에게 들으니, 서울 도서전에서 입장료 받은지 꽤 됐단다. 하기야 예전에 무료입장일 땐, 아주 더 도떼기 시장이었고 공짜로 나눠주는 캔버스백이나 기념품 가져가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 엄청 많긴 했다. 정신 사나워서 별로 돌아보지도 않았지만, 이번엔 무료 홍보물 나눠주는 데는 별로 없는 듯. 똑같은 물건이나 부채 들고 돌아댕기는 사람 못본 것 같다.


째뜬 혹시 책을 사게될지도 모른다 싶어서 배낭을 매고가긴 했지만, 지인과 헤어지고 나자 입장료 3천원의 본전을 뽑아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ㅠ.ㅠ 결국 가을에 와우북페스티벌 하면 가서 사야지 마음먹었던, 컬러화보 많이 들어간 비주얼용 자료도서를 마구 골랐다. 30퍼센트 할인에다 7만원 넘으면 무료택배 서비스...  에효.. 내가 그렇지 뭐.


지난번 중고책들을 54권 정리하고 잠시나마 뿌듯해했으나 오늘의 지름으로 또 새책이 10권 생겼다. 그나마 시간이 없어서 후딱 전시장을 나왔으니 망정이지 좀 더 돌아다녔더라면 3천원 본전 생각하다 계속 질러댔을지도 모르겠다. 브로셔를 보니 저자와의 대화에서 몇몇 호기심이 가는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절대 또 가지 않을 걸 안다. 입장권 한번 팔아준 것도 억울한데!


아무려나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적어두자면 서울도서전은 22일까지. 평일엔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토요일은 8시. 마지막날 일요일은 5시에 끝난다고. 대체로 신구간을 30% 할인해서 살 수 있고, 반품되어 온 책들을 저가에 판매하기도 한다. 전시 부스를 다 안돌아봐서 무슨 출판사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대형 출판사는  당연히 다 나왔고 (입구에 다 몰려있다) 아동서적 출판사도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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