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연진 가족이 나를 찾아왔던 작년 6월부터, 양양이가 사라지고 10월쯤엔 진이도 안보이게 된 뒤 홀로 남은 연이한테 점점 더 아늑한 집과 밥자리를 마련해주고서 생긴 가장 큰 걱정은 내가 곁에 없을 때 고약한 침입자냥이 해꼬지를 하면 어떡하나, 하는 점이었다. 그간은 다행히 내가 1박2일간 집을 비워도 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었는데... 지난 토요일 진안 마이산엘 다녀오느라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집을 비운 사이... 새끼냥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흑...

22년 5월 12일. 밖에 나와 쉬고 있던 연이 모습. (새끼냥들은 집안에)

며칠 전인 금요일 13일까지도 연이와 새끼냥들은 집안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매일같이 집 바로 앞에 물과 사료 그릇을 놓아주면 연이는 머리만 구멍으로 내밀고 하악하악... 나를 위협했다. 제아무리 호르몬과 본능의 힘이라지만, 1년간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건 연이의 출산 이후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야생성을 유지하고 인간에게 거리감을 두는 것은 좋은 일이라 여기면서도 내심 섭섭했다. 언제는 막 창문 방충망에 매달려서 집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굴더니! 쳇... 암튼 사료 접시 집으려 손만 내밀어도 냥냥펀치 당할 것 같은 느낌에 조심조심하긴 했어도, 새끼 한마리를 얼핏 보기는 했었다. 연이처럼 새하얀 새끼가 아니라 하늘이처럼 검은무늬가 더 많아 고등어 느낌의 보송보송한 새끼냥은 아직 눈도 채 못뜬 듯 취침중이었고 연이가 하도 위협적이라 곧바로 후퇴했는데, 나의 그 행동이 연이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걸까? 물론 이제와선 후회해도 쓸데없다. ㅠ.ㅠ

토요일 새벽에 내다보았을 때 사료는 넉넉히 남아 있길래 물만 보충해주고 떠났고, 긴 등산에 지친 몸으로 늦은 밤중에 귀가해서는 당연히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등산 뒤풀이에서는 하필 돼지 등갈비 구이를 먹었는데 다들 배가 부른 상태라 엄청 많이 남았고, 양념도 전혀 안된 고기니 다들 반려견과 반려묘 가져다주겠다며 비밀봉지에 주섬주섬 남은 갈비를 챙겼다. 당연히 나도 연이 몫을 챙겨왔길래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일찍 근육통 작렬하는 다리를 억지로 들어올려 베란다를 넘어갔는데....    

사료 주기 전에 놀랄까봐 늘 연이야, 연이야 부르면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고 하악하악~ 소리를 내던 연이가 안보였다.  어쩐지 느낌이 쌔~~... 집안을 들여다보니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왜!!! 고양이 모성애가 출산후 2주차까지 극단적으로 높다는 ㅁㅈ의 말을 들었기에 그간은 그려려니 했었다. 그래도 이제 3주차에 접어들었으니 꼬물꼬물 새끼냥들이 기어나와 바람을 쏘이지는 않을까, 연이도 서서히 나에게도 곁을 내줄지도 몰라 상상하며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았던 것이 연이에겐 위협으로 느껴졌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흑흑흑.. 사진 찍는 소리가 거슬렸나? ㅠ.ㅠ

암튼 허망한 마음에 사료그릇과 물그릇 놓아두는 자리를 원래 베란다 창문 밑으로 옮겨놓고선 연이야 연이야 불러대니 어디선가 에옹~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담벼락 쪽에서 나타난 연이가 익숙한 츄르 냄새 때문인지 다가오긴 하는데 전처럼 내가 보는 앞에서 덥석 먹기 시작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를 경계중인 게 느껴져서, 오냐, 무사하니 되었다, 싶어서 물러났다가 슬며시 다시 다가가 보니 허겁지겁 식사중.

22년 5월 15일. 새끼냥들 사라진 뒤 홀로 와서 갈비 뜯는 연이

아무래도 왼쪽 방향 어디엔가 새끼를 숨겨둔 듯 먹다말고 그쪽을 자꾸만 바라봄. 살코기와 갈비 두 대를 함께 놓아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갈비 두 대가 모두 사라졌다. 양치질을 시켜줄 수 없으니 치아관리를 위해서 뭔가 딱딱한 것도 좀 줄 필요가 있다고 고양이 전문가께서 조언해주심.

품종묘 협회 회원이라는 지인에게 연이 사진을 보내주고 새끼냥들이 사라졌다고 징징댔더니만, 나를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 새끼들을 숨긴 게 아니라, 내가 없던 하루 사이 침입자냥이 위협을 해 현재 집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거나 혹은 이제 3주차에 접어들어 밖에 나와 꼬물꼬물 놀기 훈련을 해야하는 아가들에게 위해한 환경이라 (지붕 아래로나 축대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 옮겼을 수도 있으니 너무 염려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연이 입장에서 집을 옮긴 이유를 상상해보면...

1) 집사가 자꾸 기웃대며 새끼냥을 노린다. 도망치자

2) SOS 울음으로 알리면 늘 잠자리채로 침입자를 쫓아주던 집사가 종일 안보이는데 깡패냥 출현. 이 집 안 되겠네, 이사가자

3) 이제 새끼냥들 걷고 노는 훈련 시켜야하는데 환경이 너무 개방되어 있고 바닥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네, 이사가자. 

그밖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암튼 새끼냥들을 숨긴 새로운 보금자리가 어디일지, 한 마리 한 마리 입에 물고 위험한 담장과 축대를 오르내리며 이사를 했을텐데, 연이도 작년 요맘때 천방지축 갓난 아기였단 걸 생각하면 너무 놀랍다. 

새끼냥들이 사라진지 오늘로 벌써 3일째. 다시 연이와 신뢰를 쌓고, 집사가 요주의인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다시 심어주려고 매일 같은 시간에 다양한 간식과 특식으로 연이를 유혹하고 있다. 근데 출산 전에는 꽤나 잘 먹던 삶은 멸치는 외면하심. 입맛이 바뀌었나... 

일단 베란다 문을 열고 연이야 부르면 멀리서도 에옹~ 대답을 하고 좀 있으면 슬그머니 나타난다. 오늘은 그래도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내가 문 닫고 사라지기 전에 와서 츄르부터 할짝할짝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고온 새끼들이 걱정되는지 잠깐 먹고는 금세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원래도 한번에 폭식 안하고 수시로 먹는 스타일이니, 잠깐 요기하고 다시 새끼보러 갔다가 틈 나면 와서 먹는 건가?

고양이가 인간의 말귀도 잘 알아듣는다고 하니, 좀 전에 창문 밑에서 쉬고 있던 연이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새끼들 어디에 숨겼니? 걱정하지 말고 새끼들 다시 데리고 와라. 여기가 제일 안전해.... 안 그러니? 연이는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계속 대꾸를 하듯 울다가 잠시 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번 더 에옹에옹 울더니 가버렸다. 

이제 바람이라면 작년에 양양이가 연이랑 진이를 데리고 나타나 함께 사료와 츄르를 먹고 지냈듯이, 걸음마를 다 익힌 새끼냥들을 거느리고 연이가 다시 옛집에 보금자리를 트는 것이다. 근데 한번 버리고 떠난 집에 길냥이가 다시 오는 경우가 있나?? ㅠ.ㅠ 뭔가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연이 출산 직전에 방향을 바꿔놓았던 집과 박스를 완전히 연이 어린 시절 살던 때 예전 그대로, 입구가 안쪽 벽을 바라보도록 돌려놓았다. 연이 없는 새 혹시 다른 녀석이 집을 차지할까봐 그것도 걱정이다. 해서 부시럭 소리 날 때마다 내다보고는 있는데 아직은 계속 연이만 오가는 듯 했음. 

대체 연이는 새끼를 몇 마리나 낳았는지, 모두 건강하고 무사한지 너무 너무 너무 궁금하다. 제발 새끼들 좀 보여주라, 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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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엄마 되다

양양연진 2022. 4. 25. 16:25

22년 4월 24일. 연이가 출산을 했다. 지난번 발정기 때 기묘하게 울었고 하늘이와 묘하게 꼬리잡기를 하듯 놀았으니 그냥 지나갈리 없겠지 생각하면서도 배가 부른 건지 어쩐지 통 모르겠더니만 ㅠㅠ 오늘 심상치 않게 조용하고 사료 먹으러도 안나타나서 집 방향 돌려주려 다가갔다가 집안에 웅크려 하악질하는 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나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평소 같으면 겁쟁이 연이는 내가 다가가면 후다닥 집에서 튕겨나와 달아났을텐데!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면서 하악질만 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조용히 물러나 아무래도 이상해서 황태포를 입구에 던져주니 슬그머니 나와서 먹는데… 엉덩이와 꼬리 부분이 피에 젖어있는 게 아닌가! 출산한지 얼마 안된 게 틀림없었다. 에고에고 갑자기 멘붕이 왔다. 출산박스 여럿 만들고 담요 갈아줘야한댔는데… 어쩌나. 하지만 그건 집고양이 얘기고 지금은 내가 접근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잔뜩 예민해져 있을 테고 내가 접근하면 새끼냥 훔쳐가려는 시도로 여길 수도 있을 거다. 

매일 내가 사료와 물을 놓아주는 위치는 연이 집에서 2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베란다 창턱 너머로 내가 집게를 이용해 놓아주기 편한 장소다. 연이는 새끼냥들 때문에 집주변에서 꼼짝도 안하는 것 같으니 얼른 츄르를 얹은 사료 그릇과 물그릇을 연이네집 바로 앞에 놓아주고 물러났다. 역시나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하악질을 했다. 걱정마, 너 먹을 거 챙겨주는 거야.. 조심조심 물러났다.

불과 3일전 4/21에 찍은 사진이다. 날씬해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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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출산 만 하루가 지난 오늘. 어젯밤에 미리 불고기감과 황태를 푹푹 끌이고 잘게 잘라 미리 산후 특식을 만들어 놓았다. 뜨거울 때 주면 안되지 않겠나. 점심 무렵 베란다 창문을 열고 연이야~ 부르니 연이가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평소처럼 야옹야옹 울었다. 오야... 맛있는 특식을 주마. 그러나 내가 또 베란다 턱을 넘어 집으로 다가가자 집안으로 숨어들어 하악하악~~. 집 앞에 특식과 평소 먹던 사료와 츄르를 나란히 놓아두고 물러났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으로 내다보니, 배가 고팠던 건지 허겁지겁 특식도 먹다가 츄르도 먹다가 왔다갔다 신나게 먹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피로 물들었던 꼬리와 엉덩이 부분은 이제 거의 다 깨끗하게 마른 상태. 약간 누리끼리한 자국만 남았다. 목욕도 안하고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지는지 신기하다. 암튼 연이가 밥먹는 동안 꼬물꼬물 새끼냥들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의젓한 엄마냥이 된 연이가 얼른 집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이 선견지명이란 게 있는걸까? 그간 연이 겨울집에는 입구에 두툼한 비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점점 날씨가 더워지면서 연이가 집안에 안 들어가고 집밖 바닥이나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이 자주 보여 통풍이 안되나보다 싶어 출산 바로 전날 그 비닐커튼을 뜯어버렸었다. 그리고 안에 넣어주었던 겨울용 발방석도 꺼내버렸다. 연분홍과 노랑색이었던 방석이 회색이 된데다 고양이털이 북실북실 묻어 있어서 혹시라도 연이가 임신한 게 맞다면 위생상 깨끗한 담요만 있는 게 낫다고 여긴 거였는데, 바로 다음날 출산을 하다니! 공교롭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보온용 방석이 있는 게 더 나았을지 어쩔지 잘 모르겠다. 

대체 새끼는 몇 마리나 낳았을지 궁금해 죽겠지만, 연이 엄마였던 양양이도 처음에 딱 두 마리만 데리고 나를 찾아왔었고, 연이 배를 보아도 임신한 티가 별로 나질 않았으니 되게 여러마리일 것 같지는 않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꼬물꼬물 우는 소리로는 두세 마리 같기도 하고... ㅠ.ㅠ 작년 6월초에 양양연진 식구를 처음 만났고 크기로 보아 한달쯤 된 것 같다고 짐작했으니 연이는 아직 만1살도 안된 아이다. 근데 엄마냥이 되었다니! 본능적으로 새끼를 잘 보살피고 있을까... 집안에서 꼼짝도 안하는 걸로 봐선 그러는 것 같다.

어제 오후 침입자냥1(검냥이)이 슬며시 다가와 연이네집 입구를 노려보는 걸 발견하고 쫓아주었다. 그 뒤로 하늘이도 잠시 다녀갔는데, 하늘이가 왔을 땐 연이가 야옹야옹 울면서 집밖으로 나와 들이받는 것 같길래, 이놈시키! 소리쳐 역시나 위협해 쫓아버렸다. 하늘이는 내가 끝까지 쫓아가지 못한다는 걸 아는 녀석이라 좀 멀리 떨어져서 한참 지켜보던데;;; 아빠 노릇하러 온 거였으면 어쩌나 좀 걱정됐다. 하늘이는 한쪽 눈 아래쪽에 약간 누리끼리한 상처가 남아서 얼굴 구분이 가는데 그 외 검냥이들은 통 구분을 못하겠다.

밤새 혹시나 또 침입자냥들이 연이네 식구를 위협할까봐 걱정이 된 건지 새벽4시까지 잠도 오질 않았다. 고양이들이 야행성이라 그런지 그간 추이를 보면 새벽 4-6시 사이에 연이가 자지러지게 울며 SOS를 청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암튼 오전 시간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특식 배달한 뒤 한시간쯤 지났을까 오후에 다시 연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먹을 것을 노리고 접근한 침입자냥인듯. 녀석은 내가 창문을 열자마자 철창 너머로 도망치고, 연이는 허겁지겁 남은 특식을 먹어치웠다. 새끼냥 젖을 먹이려면 물도 많이 먹어야한다는데 물은 별로 안줄어든 듯... 신경이 자꾸만 연이네한테 쓰여서 한쪽 귀는 아예 바깥으로 향한 것 같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자꾸만 안방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

새끼냥들 무사히 쑥쑥 커서 어서 귀여운 모습 알현하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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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증

투덜일기 2022. 4. 19. 16:42

오늘 아침 일찍 또 엄마 모시고 병원 진료 가야해서 간밤에 잠을 잘 못잤다. 알람을 맞춰두고도 중간에 자꾸 깨고 또 꿈인지 생시인지 연이 울음소리에 퍼뜩 놀라 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암튼 그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집에 와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데 컵에 실오라기 같은 게 걸쳐있는 게 아닌가. 앗.. 그게 아니네. 머리카락인가... 한 것도 잠시, 이 가느다란 실오라기 또는 또르르 말린 머리카락 같은 것이 마구 옮겨다녀!

주변에 선배님들 왕언니들이 많이 계신 관계로 익히 들어본 적 있었기에 직방으로 답을 알았다. 비문증이네. ㅠ.ㅠ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다.

비문증은 실같은 검은 점, 떠다니는 거미줄, 그림자 또는 검은 구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시신경유두부에 유착되어 있던 신경교조직이나 농축된 유리체 또는 동반된 유리체출혈이 후유리체박리로 인해 자유로이 유리체강내에 떠다니고 환자가 이를 자각하는 것이다.
후유리체 박리는 유리체 피질과 망막 내경계막이 분리되는 것을 지칭하며 중심와 주변 후극부에서부터 시작된다. 후유리체박리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지만, 노인에서의 유리체-망막유착에 따른 합병증 발생 위험을 경감시키는 예정된 노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비문증 [vitreous floaters]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한자로 飛蚊症이고 가운데 글자는 '모기 문'인데 한글로는 '날파리증'이라네. 모기가 웽웽 날아다니는 것 같은 궤적이라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 주변 누군가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다가 자꾸 액정을 쓸어도 잡티가 안 사라지더라고도 하더니, 오늘 나도 처음 증상을 느낀 것. 눈앞을 아른거리는 검은 실오라기는 눈을 깜박일 때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다니고 왼쪽 눈에만 증상이 있다. ㅠ.ㅠ 처음엔 후유리체박리? 어쩐지 무시무시해서, 안과 가야하나? 걱정스러워 동네 안과를 검색하다가 말았다. 결국엔 눈의 노화란 얘긴데... 일단 몸과 눈의 피로가 좀 사라지면 나아지지 않을까도 싶고, 늙어서 그렇다는데 뭐, 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다.

엊그제 트위터에서 보았던가. 38세가 지나면 몸이 무료구독 끝났으니 이제부터 유료구독 시작이라며 아우성을 친다고 하던데 나야 이미 오십대니 차근차근 온 몸의 장기들이 망가져가는 게 당연하겠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고, 웃고 울어서 생긴 나의 주름살도 사랑할 거라고 원칙은 세워두었지만, 막상 꺼려하며 드물게 찍힌 사진 속의 나는 점점 매우 낯설다. 아, 팔자주름이 이렇게 깊어졌구나. 이중턱이 더 심해졌구나. 동그랬던 얼굴이 이젠 네모가 되었네...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나도 모르게 들이밀고 있는 거다. 제발 사진 찍어주면 액정 손으로 꼬집어 땡겨 보며 자기 흠좀 잡지 말라고 어느 후배님이 타박을 한 적이 있다. 근데 굳이 땡겨 확대해보지 않아도 미워진 걸 어쩌나. ㅎㅎ

휴대폰 사진첩의 기능 하나는 몇년 전 오늘 니 모습과 추억이라면서 옛 사진을 자꾸만 들이미는 것인데... 그러니 잊고 싶어도 실감을 안할 수가 없다. 불과 2, 3년 전만해도 표정이 얼마나 더 싱그럽고 젊은지 ㅎㅎ 나쁜 생각 괴로운 생각만 하면 얼굴이 금세 못생겨진다는 걸 잘 안다. 오늘처럼 잠 못자고 일어나 느릿느릿 비협조적인 노모와 함께 사람 바글거리는 대학병원 진료과를 2곳이나 섭렵하고 처방전 받아 약국 찾아가고 어쩌고... 얼굴에 얼마나 심술이 붙었을지 안봐도 알겠다.

그나저나 어쩌면 이 블로그는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나의 질병 기록장으로 남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암튼 오늘을 기록해둔다. 오십대중반에 비문증 생겼음. 그냥 두고보면서 추후 예후도 기록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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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은 좀 일찍 4월 2일에 다 피었고, 벚꽃은 4월7일 오늘자로 만개 선언하며 사진 남겼다. 점점 더 소홀해지는 공간이지만 그래도 지난 십수년의 역사와 투덜거림이 다 모여있는 이곳을 완전히 손에서 놓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번 번역한 책에 각종 디지털 인터넷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인터넷 세상에서 인간은 절대 잊힐 수 없다는 게 표제 작품의 주제였다. 이곳 블로그 말고도 SNS 몇군데 계정을 습관처럼 매일 드나들고 있는데;; 내가 죽을 날을 대충 안다면 난 그 공간에 대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것마저도 난 아마 오랜 기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우유부단하게 갈팡질팡하겠지. 사이버세상에서도 내 흔적은 다 지우고 가겠노라, 결심한 적도 있는데 또 나의 소멸 이후에 누군가 남아서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쓰레기로 잊혀지더라도 한동안은 의미가 있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진짜 마음이 왔다리갔다리. ^^
아이고 화창한 벚꽃일기 남기겠다고 들어와서 이 무슨 암울한 소리를 끼적이고 있는지. 암튼 올 봄에 꽃이 좀 늦게 핀걸 봐서도 짐작되듯이 날씨는 계속 좀 쌀쌀하게 느껴지는데도, 우리집은 벌써 살구꽃 벚꽃 모두 떨어지기 시작해서 마당에 엎어진 별꽃이 가득하다. 만개하자마자 지는 벚꽃. 좀 아쉽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하늘색이 약간 보정되서 더 파랗게 나왔지만 그래도 오늘 미세먼지 상태 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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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4월 6일. 친구들과 사울 레이터 사진전을 보러 다녀왔다. 나에겐 완전히 금시초문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였으나 이미 전시를 보고 온 지인들이 되게 '힙한' 전시이며 공간도 색다르다는 말을 익히 들었기에 볕 좋은 봄날 나들이로 딱이로군 하며 마음이 설렜다.
원래는 겨울에 어울리는 전시였던 모양으로, 옥상에서 빨간 우산 쓰고 눈내리는 풍경 찍은 인증샷을 많이 보기도 했는데 인기가 높아 5월말까지 연장 전시를 결정한 모양. 회현역 3번출구에서 189미터였던가 무척 가까우나 길을 잃기도 쉽다고 하더니만 쉽게 건물을 만나긴 했는데, 우리보다 앞서 계단을 올라, 후문인 듯한 나무 문을 밀어본 관람객1이 잠겼다고 하는 말에 허걱. 예약시간 이외엔 잠가두나 좀 난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착각. 미닫이 문이었어! ㅋ
후문은 지하에서 들어가도록 되어있고, 남산순환도로 백범광장 쪽에서 접근하면 차로도 접근 가능한 정문과 카페가 보인다. 암튼 우린 뒷문으로 들어가 약간 어질어질한 금속 통로(바닥 뚫린 길 싫어함)를 지나 건물 앞마당으로 향했다.

건물 옆면? 앞면에 붙어 있는 대형 포스터. 그러나 나에겐 너무나도 눈에 거슬리는 부제! 인노그레이트허리. ㅋㅋㅋㅋ 미치겠다. 저걸 왜 굳이 한글로??

나처럼 불평하는 사람이 많았든가, 아니면 전시 기획하는 쪽에서도 민망했는지 티켓엔 부제가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로 바뀌어 있었고, 건물 정면에도 같은 문구가 보인다. 저 카페에서 풍기는 커피 냄새가 진짜 유혹적이었는데;; 전시를 12시에 예약한 관계로 점심 먹으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서 안타까웠다. 결과적으로 점심 이후 커피 마실 집을 찾다찾다 들어간 곳에서 대실망한 이후, 피크닉 카페의 커피 맛은 과연 어땠을지 선망과 궁금함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나름 '핫'한 곳인듯 카페만 다니러 가는 사람들도 있나보다.

작가가 작품 제목을 붙이는 방식이 어찌나 독특하신지, 계속 제목 맞히기 내기를 하듯 짐작해보면 다 틀렸다. 내 눈에 주제로 보였던 피사체가 제목이 아닌 경우 많아서 제목 추측하는 재미가 쏠쏠. 이 작품은 아마도 (검은) 캐노피? 가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ㅎㅎ 무섭게 사진 찍는 내 모습이 반영에 잡힘. 

우리의 시선을 강탈했던 "주근깨 소녀" 그래도 이 제목은 무난히 맞힘 ㅋ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남산 풍경이 엄청 멋졌는데, 사진엔 확실히 감흥이 다 안담긴다. 케이블카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한쪽 옆으로 마루를 깔아 놓고 남산방향으로는 큰 창을 내놓아 그리로 바라보이는 나무들과 풍경도 딱 "차경"으로 완벽한 공간 같았음. 건물 자체도 하나의 건축 예술품이구나 싶긴 했으나, 친구 하나가 다리가 좀 많이 불편했는데 4층까지 미로같은 전시를 보며 계속 땀 뻘뻘 걸어 오르는 수밖에 없었고, 역방향으로는 관람 불가라고 해서 약간 빈정 상했다. 난 전시 한바퀴 다 돈 다음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오래오래 보다 나오는 걸 좋아하는데 쩝...
게다가 역방향 관람이 안되면 4층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건 어쩌라고, 싶었더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니 그럼 다리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포함한 관람 동선도 감안해야하는 게 아닌가???!!! 요즘 가뜩이나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꼴보기 싫어 죽겠는데, 단순히 지하철과 버스 이동도 어려운 마당이니 전시장 편의시설이야 오죽할까. 나중에 친구 다리가 더 불편해져서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면, 함께 하는 문화생활은 극히 제한되거나 불가능하리라는 게 화난다. 최소 5년간은  세상이 약자들을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진 못하겠지 생각하니 참 슬픈 일이다. 그래도 계속 싸워야겠지만...

옥상 공간엔 갖가지 식물과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음. 조팝나무 꽃도 피고!

 

모르는 새 친구가 찍어준 내 뒷모습 공연히 마음에 든다. 난 새싹이 돋아난 느티나무를 찍고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 ㅎㅎ 티스토리 사진 편집 기능 이상해져서 레이아웃이 엉망이다. ㅠ.ㅠ )

 

바빠서 놀면 안되는 일정 속에 에라 모르겠다 나가 놀았던 거라 심신이 편치않고 마음 한구석이 계속 괴로웠지만 그래도 계절의 여왕은 봄이구나 실감하며 봄볕에 달구어진 등판이 잠시라도 따사로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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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하늘이

양양연진 2022. 3. 17. 15:46

연이는 지난 겨울 혹한을 잘 넘겼다. 난생 처음 지내는 겨울일 테니 영하11도가 넘는 날은 핫팻을 겨울집에 넣어주기도  했지만, 적응력을 높이는 게 좋다는 조언도 있고 해서 결국 박스째로 사들였던 캠핑용 대형 핫팩은 다 쓰지 못하고 남았다. 다시 겨울이 찾아오기까지 안 굳고 잘 남아 있을까. ㅎㅎ

암튼 연이의 성별은 암컷이었던 모양이다. 2월 중순 연이는 이상하게 괴로운 소리를 내며 발정기 울음을 시작했다. 얼마 전만 해도 봄가을에 밤마다 울어대는 발정기 고양이들 울음 소리에 엄청 욕하고 싫어했던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발정기 암컷이 우는 건 너무 배가 아파서라니 ㅠ.ㅠ 안쓰럽고 짠해서 빨랑 발정기가 지나가길 빌었다.

물론 걱정도 많이 했다. 발정기 울음을 듣고 수컷이 찾아오면 사료랑 물이랑 뺏기는 거 아닐까? 겨울집=연이 보금자리가 바로 내방 창밖에 있는데 인간의 소음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짝짓기가 가능할까? 별별 걱정이 다 들었던 것이다. 암튼 아으~아으~ 괴롭게 울어대던 연이의 울음소리가 며칠이나 이어지던 밤, 창밖에서 우당탕탕 난투극을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일인가 싶어 얼른 창문을 열어보니 겨울집을 가운데 두고 (힘도 좋지, 둘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벽에 붙여놨던 집이 밀려나와 있었다) 연이와 하늘이가 뱅글뱅글 돌며 쫓기 놀이 같은 걸 하고 있었다.

하늘이가 누군고 하면, 그간 걸핏하면 연이와 연이 집을 노리고 접근했던 칩입자냥이다. 눈동자가 약간 하늘색이 돌아 하늘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연이 사료를 탐내지 못하도록 따로 뒷마당 벽 위에 밥자리를 만들어 매일 저녁 따로 사료를 챙겨주고 있었다. 물론 사료를 따로 챙겨줘도 이 녀석은 연이 집이 탐나는지 2-3일에 한번씩 슬쩍 축대 철망을 넘거나 벽을 타고 접근해 연이가 질색팔색 울어대게 만들었다. 자지러지게 연이가 울면 왜 왜 왜 ! 고함치며 내가 출동해서 잠자리채로 녀석을 쫓아주곤 했었는데;; 헐.. 그 녀석과 짝짓기를 하기에 이른 모양이다!

발정기 동안엔 둘이 싸우던 때의 울음소리가 들린 적이 없고 약간의 하악질 + 그냥 몸싸움만 벌이는 듯 했으므로 나는 조용히 창문을 닫고 물러나드렸다. 대체 길냥이의 발정기 짝짓기는 며칠이나 지속될까 궁금했는데, 연이의 발정기 울음소리는 차차 줄어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또 궁금해졌다. 연이는 과연 임신을 했을까? 작년 5월에 태어났다고 치고 9개월이 지났으니 이미 연이도 성묘라지만 워낙 체구가 작은데; 그래도 단번에 임신을 했을지 어쩔지... 길냥이의 임신 확률은 백퍼센트일까?

열심히 정보를 찾아보니 길냥이들은 전략적으로 여러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해 새끼들의 아비가 누군지 아예 모르게  하고, 실제로 서로 다른 수컷의 새끼를 동시에 임신할 수도 있단다. 연이 주변에 얼씬거린 수컷이라고는 하늘이밖에 못봤는데 과연...

발정기 동안에는 애교도 안부리고, 사료를 줄 때도 가까이 다가와 양양거리기는커녕 멀리 떨어져 지그시 쳐다보기만 했던 연이는 거사 이후 다시 야옹야옹 울며 놀아달라거나 빨랑 사료를 내놓으라고 한다거나 손을 내밀면 붕붕이를 하며 만져보기도 하는 등 안정을 되찾은 것 같다.   

3월 초: 내방 창문을 열면 연이가 이렇게 눈을 맞추고 야옹야옹 인사한다

발정기 이후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연이가 좀 꼬질꼬질해졌다는 것. ^^; 세수도 언제나 깔끔하게 해서 새하얀 털의 자태를 자랑하더니만 요샌 위 사진처럼 눈꼽이 좀 덜 닦인 얼굴이고, 몸을 바르르 털면 노란 먼지가 풀풀풀. 

그러다가 얼마 전엔 하늘이랑 연이랑 둘이 엄청나게 싸움이 붙어서 온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연이가 울어댔는데 내가 잠자리채로 협공에 나섰지만 흥분한 연이는 달아나던 하늘이를 멀리까지 뒤쫓아갔고, 담장 너머 어딘가 안보이는 곳에서 하늘이가 연이를 깨물었다(혹은 할킨 걸까?). ㅠ.ㅠ 엉덩이쪽 옆구리에 털이 움푹 파일 정도로 물린(혹은 할킨)자국이 보였는데 피는 나지 않은 것 같고, 튀어 날아오르듯 도망쳐온 연이는 한참 숨을 헐떡이다 물을 마시고는 제집으로 쏙 들어갔다. 하늘이 이 나쁜 자식!

하늘이는 별로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하늘이 입장에서 보면 헷갈릴 만도 할 것 같다. 하늘의 입장의 가설을 세워보면 아래와 같다.

1) 작년부터 집도 밥도 여유로운 암컷 길냥이 영역을 호시탐탐 노리는데, 옆에 인간 집사가 자꾸 나타나 훼방을 놓아 목적 달성이 어렵다. 그래도 계속 얼씬거리는 중. 2) 갑자기 발정기 울음으로 이 암컷이 나를 유혹함.  3) 그래 좋다, 짝짓기 성공. 이제 넌 내 애인이다. 4) 이상하다, 짝짓기할 땐 언제고 이 암컷이 다시 나를 멀리한다. 인간도 다시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먹튀냐?! 5) 인간도 이상하다. 밥 챙겨줄 땐 언제고 암컷 냥이 옆에만 가면 잠자리채로 쫓아버리네? 어쩌란 거냐.

하늘이는 몸집도 연이의 1.5배-2배 가까이 되고 뭔가 연륜이 있어보인다. 내가 저리 가라고 버럭 고함을 질러도 멀리 도망치지도 않는다. 어차피 창밖으로 못나가니 담장 너머 철망 너머까지 쫓아갈 수 없다는 걸 아는 듯하다. 그래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빤히 보다가 금세 다시 접근을 시도할 때가 많다. 한 겨울에 창문 열고 헤드렌턴으로 어둠을 비춰가며 녀석과 한참 대치하려면 어찌나 춥던지 원;; 

하여간 하늘이는 오늘 아침에도 연이가 집안에서 쉬고 있는 사이 집밖에서 얼씬거리다가 연이의 구조신호(으으으으.. 낮게 위험신호를 보냄)를 받은 내가 창문 열고 쫓아내야했다. 연이와 하늘이의 영역 다툼은 과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 길게 외출을 해야할 때면 혹시라도 연이가 하늘이한테 해코지를 당할까봐 걱정스러워서, 오자마자 무사한지 확인하는데 입때껏^^; 연이는 다행히도 자기 집을 잘 지켜왔다. 고양이의 임신 기간은 2달. 앞으로 진짜로 새끼를 낳을지 어쩔지 모르겠는데, 양양연진 세 마리를 창밖에서 처음 맞닥뜨렸던 경이의 순간이 또 기대되기도 하고, 제발 이번 발정기엔 그냥 잘 넘어갔길(?) 비는 마음도 있다. 앞으로도 포획틀 대여하고 어쩌고 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것까지는 시도할 자신이 없으니, 그냥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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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삶꾸러미 2022. 2. 10. 21:11

어느덧 주변에 아픈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제 그럴 나이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 유병장수 시대라지 자조해보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겼다는 얘기를 들으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많다. 대사증후군이나 퇴행성 질환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오갈 수도 있는 중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 때문이다. 

작년 여름과 올해 1월, 반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두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I는 희소난치질환을 오래 앓다가 마지막엔 재활병원에 누워 힘겹게 하루하루를 넘겨야 했고, J는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을 진단 받았지만 씩씩하게 두번이나 수술을 받고 오랜 항암기간을 잘 견뎌내 희망을 주더니 금세 상황이 나빠졌다.

늘 느끼는 거지만 죽음은 아무리 미리 예상하고 마음을 다져도 준비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친했던 친구의 부음은 타격이 클수밖에 없다. 오십을 넘기면 인류가 태고적부터 DNA로 넘겨받은 타고난 생명은 다 한 셈이고 나머지 삶은 의학의 힘과 영양, 본인의 운동 여부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이제 내 또래 친구들은 자다가 심장이 멎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라는 말도 책에서 본 적 있지만, 확실히 지나온 나의 삶 보다 남은 삶이 더 짧을 거란 것도 알지만, 그래도 황망함과 충격은 여전하다.

아직 어리기만 한 친구들의 자녀는 앞으로 엄마 없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자식을 먼저 보낸 친구의 부모님은 또 얼마나 가슴이 사무칠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친구에 불과한 남겨진 자로서 되게 하찮은 고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디지털 세상에 남은 친구들의 흔적은 또 어떻게 마무리해야할까. 잘 모르겠다.

새해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던 단톡방엔 친구의 흔적과 프로필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마도 홀로 남은 딸은 엄마의 휴대폰을 해지하지 않고 계속 간직할 모양이다. 나 역시 친구가 남긴 흔적들이 애틋해 얼마간의 애도기간은 필요할 거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 흔적을 볼 때마다 너무 슬프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이젠 그만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기적인 충동이 들기도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내 마음은 개운하지 않을 테고, 톡방에서 나오거나 SNS연결을 끊어버린다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건 마지막까지 오히려 내 걱정을 했던 친구 J의 충고다. 너는 이제 네 생각만 해, 나도 이제 딸 걱정 그만하고 내 생각만 할 거야. 니가 행복해야 주변도 챙길 여유가 생기는 거야. 네 생각만 해, 꼭. 조근조근 타이르는 친구의 목소리까지 아직 생생한 그 말대로 올해의 목표는 내려놓는 삶, 내 생각만 하기... 이런 걸로 정해야지 다짐했었는데...

역시 그래서 잘 모르겠다. 늘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할 때 거침없이 방향을 정해주던 친구 J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해주었을까. 친구의 부재를 결국 이런 고민으로 더 아쉬워하는 내가 또 좀 한심하고. 빈소에서 한참 울고 웃고 또 울다가 헤어지며 누군가 말했다. 이제 우리한테 가장 좋은 친구는 건강하게 오래 곁에 있어주는 친구라고. 이제 나는 확실히 그런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좀 더 챙겨야겠다는 것만 일단 알겠다. 몹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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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차례 준비와 노동을 완전 독박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인지, 무심한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부리다가 버럭 화 나는 원인을 분석했다.

모든 엄마들에게 함부로 일반화할 수 없는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나와 (친구의) 엄마들은 왜 자식을 편애하는 걸까?! 특히 울 엄마는 당당하게 속 마음을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특히 아픈 손가락은 따로 있다고. 울 엄마의 경우 그건 막내아들이다.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직장생활을 병행 하느라 밤에만 끼고 살았던 나나 큰동생과 달리 막내는 출산부터(병원에서 출산한 첫째, 둘째가 너무 수월했는지 아니면 병원비를 아끼기 위함이었는지--아마도 둘 다 였겠지--셋째는 집에서 낳음) 육아를 완전히 도맡아 지켜보았을 터이니, 막내라는 필연적인 이유+오랜 애착이 더해져 편애의 당위성(?)은 아주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함께 살면서 당연히 의견이 부딪칠 수밖에 없고 특히나 건강 관련하여 온종일 잔소리를 해대는 존재가 되어버린 나는 그냥 공기 같은 자식이고, 일주일에 한번 안부 전화를 하는 것이 효도의 전부인 막내아들은 너무나도 고맙고 기특한 존재다. 상대적으로 맏아들인 큰동생은 웬만해선 안부전화를 하지 않아서 늘 욕먹는 편. 전화보다 찾아뵙고 싶은데 그걸 못하는 게 미안해서 아예 전화도 못 건다는 것이 큰아들의 같잖은(그러나 전화기피증이 있는 나로선 일견 이해가 되는;;) 변명이다. 암튼 친구들의 엄마도 함께 살며 옆에서 온갖 수발 다 들고 궂은 일 도맡아 하는 자식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원래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에, 기막혀 한 적이 있다.

옆에선 아무리 잘해드려도 지지고볶는 애증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으니 미운털이 더 많이 박히기 일쑤이고, 1년에 몇번 안부전화라든지 삐쭉 얼굴 들이밀며 용돈 봉투 드리는 자식들은 너무나도 장하고 기특한 자식으로 생각되는 아이러니.

더욱이 나를 포함한 K장녀들의 희생은 너무도 당연시된다. 아까 저녁때 새삼 옛날 얘기를 끄집어내며 화를 냈던 건, 엄마가 당뇨관리에 신경 안쓰고 과일을 너무 많이 드신 것에 꼭지가 돌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도인지장애로 깜박깜박 본인이 먹은 걸 기억 못하는 상황에서 과일 탐닉은 더욱 심해져, 내가 정량 따져(사실 병원 의사들은 과일 금지! 토마토만 드시라고 함)  챙겨드렸는데도 그건 그것이고 당신은 게으른자의 최애과일인 귤을 자꾸만 꺼내드신다는 것이 문제다.

조울증이 극심했을 때 혈당관리가 아예 안 돼, 급성신부전증으로 중환자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을 간신히 넘긴 전적이 있는 분이 왜 과일을 자꾸 꺼내먹냐고 신경질을 내다가, 그 황망했던 두달의 간병기가 떠올랐다. 물론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땐 울고불며 그저 무사히 깨어나시기만을 기원했었지만, 이후 일반병실로 옮겨 하지마비가 풀리기까지 온갖 수발을 2달 내내 하면서 나도 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 처음엔 출판사에 양해를 구해 마감일을 연기하고 병간호에만 매달렸지만 그 기간이 2달까지 길어질 줄 아무도 몰랐고, 아버지가 매일 아침 병실에 와 저녁까지 곁을 지키는 애정을 쏟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보조침대 쪽잠은 2달 꼬박 내 차지였다. 낮엔 종종 후다닥 집에 가서 아빠 먹을 반찬 만들어놓고 와야했고, 이젠 좀 간병인을 쓰자는 동생들과 나의 제안에 아빠랑 엄마는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네 엄마를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있느냐고! (애처가인 아빠 본인도 옆에 앉아 엄마 손이나 쓰다듬을 뿐, 기저귀 갈기라든지 소변주머니 비우기라든지 이런 건 손도 못대셨음. 욕창까지 심하게 생긴 상황이라 안쓰럽고 무서워서 자긴 손을 댈 수가 없으시다고... +_+)

당시 큰동생 부인이 나를 안쓰러이 여겨 하룻밤 당번을 교대해주겠다고 나섰으나... 한달 만인가 집에 와서 처음으로 편한 잠을 자던 새벽 3시 30분. 엄마가 빨리 오라고 전화를 했더랬다. 밤새 아예 눕지도 못하고 병상을 지켰던 큰며느리가 도통 못 미더워서 안 되겠다나. 아직까지도 주변에 효녀로 손꼽히는 나도, 그 당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진리임을 깨달았다. 큰딸이자 외동딸이자 하나밖에 없는 만만한 프리랜서 싱글 자녀인 나의 희생과 봉사를 엄마 아빠가 어찌나 당연하게 여기시던지...  아들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퇴근해서 병문안만 와도 막 고마워하는데, 종일 붙어서 누렇게 떠가는 나한테는 고마워하지도 않고 말이지! (이런 상황에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너 밖에 없다, 너 때문에 내가 산다.. 이따위 말은 사실 세뇌이자 부담 전가일 뿐, 감사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울증 때문에 2달 내내 1, 2인실을 고집한 터라 한달에 천만원도 넘게 나왔던 병원비도 결국 절반은 내가 냈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 가려고 모아둔 몫돈 있는 줄 어케 알고!

결국 엄마가 무사히 퇴원했던 건 감사한 일이지만 딸로서 몹시 마음 상했던 그 두 달의 간병기는 이후에도 화날 때 엄마 아빠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곤 했었는데, 부모님께 제대로 사과를 받았는지 기억이 영 나질 않는다. 좀 전에도 엄마한테 십수년전부터 엄마 입원할 때마다 당연히 간병한 나한테 왜 미안하고 고마워하지 않느냐고 따지니까.... 당신께선 기억에 없단다. 헐. 아니 그래서 내가 기억을 상기시켜드렸으면 미안하다고 하셔야죠. ㅠ.ㅠ 미안해, 안 미안해? 막 따져서 겨우 사과 받았다. 에효.

오빠만 하나 있는 친구라든지, 5남매중 막내만 남동생인 친구의 경우 어머니들의 편애는 더욱 극단적이다. 팔십이 넘은 친구 어머니는 아직도 오십대 후반인 이혼남 아들의 아침상을 정성스레 차리느라 새벽부터 친구를 가사도우미처럼 부리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넌 안 낳으려다가 낳았으니 고마워하라고 하신다든지, 무조건 오빠한테 잘해라고 하신다든지... ㅠ.ㅠ 외아들의 큰누나인 친구도 엄마를 안쓰러워하기는 하지만 매사에 아들아들 위하는 모습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아니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모시고 다니는 건 내 친구인데 왜 막내아들만 예뻐하시냐고! 

3, 40년대에 태어난 엄마들은 뼛속 깊이 남아선호사상이 박혀있고 본인도 어려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가사노동에 시달려왔음에도 그게 부당하다고 여기기는커녕 다음 세대의 딸 역시 부가노동력으로 여기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열살무렵부터 명절이면 생선전, 동그랑땡에 밀가루 묻히는 것부터 배우며 잘한다, 잘한다는 말이 정말 칭찬인 줄 알고 송편빚기 만두빚기에 자원한 옛날의 어린 나를 돌이겨보면 너무도 억울하고 속상하다. 남동생들은 옆에서 딱지치기 팽이치기나 하고 놀았는데! 난 음식 거들지 않으면 어린 사촌동생들 포대기로 업고 달래주고 있었고 흑..  박수근의 <애기 업은 소녀>에서 울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사실은 그 친숙함에 내 모습도 담겨있기 때문일 수도!  

한껏 비뚤어져 있는 내 심정으로 판단컨대 확실히 엄마들은 자식들에 대해서 얼마간 편애를 한다. 편애 받는 자식들도 아픔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암튼 편애에서 제외된 자식들은, 그 중에서도 보살핌 노동력으로 당연시되는 딸들은 특히 억울하다. 연로한 병든 부모의 보살핌 노동에 대한 실태 조사에서 1순위는 비혼딸, 2순위는 기혼딸, 3순위는 비혼아들, 4순위는 기혼아들(사실은 며느리) 순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공통점이라고 들은듯. 어차피 후대 아이들은 부모 보살핌을 의무로 여기지도 않겠지만, 심정적으로 딸이 더 부모를 잘 모실 거라는 편견이 어쩌면 요즘 딸 선호사상과도 맞물리지 않나 싶어 소름이 끼친다. 편애하는 자식 따로 있고, 보살핌 노동자로 당첨되는 자식 따로 있고, 공평하지 못하다! 요즘 세대의 사상으로 봐서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싶지만, 후대의 딸들은 부디 더 자유롭기를... 나는 이미 이번 생에 글렀으니... 사랑하는 나의 조카 ㅈㅁ이 같은 딸들을 위해서 세상이 더 확확 바뀌기를 소망한다. 엄마들부터 제발 바뀌어야한다고! (설마 바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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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탓도 있었고 게으름 탓도 있어서 전시 구경이 너무나도 뜸했던 2021년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굶주린 사람처럼 3주째 전시장을 휘저었음. 대규모 박수근 전시를 보았던 기억이 있어 언제인가 블로그를 뒤져보니 2014년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가나아트센터로 보러 갔었다고 적혀 있다. 그새 8년이 흘렀다니... 그때 전시가 더 인상 깊었던 것도 같은데, 박수근 그림에 대한 애정은 어쩐지 모든 한국인에게 '국룰'이 된 것 같아서 요번 전시도 여전히 좋았다. 이건희 컬렉션이 포함되었다는 것 같았으나 주로 소품 위주라 딱히 새로이 보이는 작품이 많은 듯한 느낌은 아니고, 다른 개인소장품도 많아서 암튼 대작들은 다 볼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어둡고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깜깜한 전시장에 은은하게 작품만 도드라지게 조명을 받는 분위기가 고즈녁하고 참 좋았다. 맘에 드는 그림 앞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서서 감상하는 묘미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랄까.  

브로셔 표제작품 [나무와 두 여인]

작품 사진도 휴대폰에 실컷 담아왔지만....그날의 어둠컴컴한 전시실 분위기를 주로 담은 사진으로만 골라 올린다.  미술관 구경다니더라도 제발이지 이젠 엽서라든지 포스터 따위 사모으지 말아야지 결심했지만, ㅠ.ㅠ 결국 마스킹 테이프랑 맨 마지막 사진 속 작품인 [나무와 두 여인] 포스터 그림은 사오고야 말았다(아기 업은 소녀 그림과 둘 중에서 끝가지 고민함. ㅎㅎ 그리고 액자에 표구된 그림은 무려 35만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거침없이 사들고 가는 걸 목격하고 부러웠음.) 더 이상 그림 걸 벽도 안 남은 주제에!! 째뜬 일단 고이 잘 모셔두었다. 포스터를 살 때엔 2013년에 사다붙인 브레송 사진 포스터를 이참에 부악~ 떼어버리고 대신 박수근 그림을 걸 작정이었는데... 와서 보니 또 찢어버리기가 아깝네그려. ㅋㅋ 

째뜬 허영심 가득한 문화생활은 여기에 모아두지 않으면 제대로 기록해둘 방법이 없으니 원 코로나 시국에 돌아다닌 게 민망해도 꾸역꾸역 적어둔다. 전시는 2022년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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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마감에 힘써야하는 기간이지만, 작년에 너무 전시구경에 소홀했던 관계로 마구잡이로 약속을 잡아 1주일에 한번씩 전시구경을 다녔다. 벼르고 별렀던 조선의 승려장인 특별 전시는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전시해놓았다는 본관 상설전시 사유의 방 구경과 한꺼번에 볼 계획이었는데... ㅠ.ㅠ 결과적으로 특별전시 하나만 보고 말았다. BTS RM이 국박 사유의 방 전시를 보고 SNS에 올렸다니 당분간 아미들이 러시가 이어지겠지.... 그 전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암튼 2022년 1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로 구경다녀온 이 전시 입장료는 5천원이고 3월 6일까지 계속됨.

보관의 저 정교한 디테일을 보라! 어휴...
일본에 반출됐다가 돌아와서 어깨에 붉은 글씨로 일본이라 써 있는 불상
석탑 안에 들어 있던 미니어처 불상들.. 귀엽다고 하면 안되나? ㅎ
현대작가와 콜라보도 어울리는 금빛 불상들

벌써 그날의 감동이 사라져가고 있다. 탱화 그리는 스님의 붓놀림이 놀라웠던 동영상도 인상적이고 볼 거리가 너무 많아서 약간 소화불량 느낌이었다. 이제는 전시 하나를 봐도 머릿속에 정리가 잘 안되는 기분. 그래도 암튼 보고팠던 전시 보며 허영심을 달래서 행복했다. 밖에 나가 점심 먹고 나서서는 다시 석탑들 줄지어 서 있는 마당 지나 용산 가족공원도 한 바퀴 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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