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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08 연어 덮밥 3
  2. 2020.04.28 초록 이름 2
  3. 2020.04.23 철마다 옷타령 3
  4. 2020.04.20 엄마의 미투 3
  5. 2020.04.02 2020 벚꽃일기 1
  6. 2020.03.05 마스크를 어쩌나 2
  7. 2020.02.27 80세 2
  8. 2020.02.19 다시 훈련 4
  9. 2020.02.1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7
  10. 2020.02.06 아는 병 3

연어 덮밥

식탐보고서 2020. 5. 8. 20:59

 

어버이날 행사는 늘 주말에 미리 당겨서 동생들과 모여 밥을 먹지만, 정작 당일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지나기가 좀 그래서 어차피 먹는 밥이지만 또 한번 메뉴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해서 작년 어버이날엔 스테이크를 구워 곁들이 채소와 함께 접시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다음주 채혈을 앞두고 있어서 최소 일주일간은 나름 눈가리고 아웅 건강식으로 열량을 제한하는 중이라 가벼운 메뉴로 연어덮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칭찬에 워낙 인색하신 엄마가 맛있다 맛있다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 처음 만들어본 거라 간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간도 딱 맞았기에, 다음에도 참고하려고 여기에 기록해둔다. 

그리고... 마트에 나간 김에 카네이션도 사왔는데 ㅠ.ㅠ 아이비랑 카네이션을 예쁘게도 섞어 잘 키웠네 생각하며 들고 와보니 꽃은 조화였다. 나 원 참. 그 옆에 카네이션만 있는 화분도 있었는데 꽃이 별로 안 예쁘길래 탐스러운 것으로 골랐더니 럴수럴수 이럴수가. 눈이 삐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재료: 생연어 200g(2인분), 양파 1/4개, 다진 마늘 약간, 간장 1과 1/2숟갈, 참기름 1숟갈, 설탕 1티스푼, 고추냉이 약간, 후추, 요리술, 달걀노른자, 무순

 

1. 생연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오미자요리술에 담가 10분쯤 냉장고에 넣어둔다.

2.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에 간장, 설탕, 참기름, 고추냉이, 후추를 넣고 휘휘 젓는다.

3. 재웠던 연어를 건져 요리술을 잘 짜낸 뒤에 양념장에 버무린다.

4. 뜨거운 밥은 좀 식혀야 한다고 해서 그릇에 미리 담아 더운 기운을 뺐다. 담아놓은 밥 위에 양념한 연어와 무순을 올리고 맨 위에 달걀노른자를 얹는다.

5. 노른자를 톡 터뜨려서 비벼 먹으면 됨. 

연어보다 달걀노른자가 주인공처럼 나왔다. ㅋㅋ 연어를  칼로 길쭉하게 잘랐지만 결국 비빌 땐 가위로 더 잘라드려야했다. 다음엔 깍둑썰기로 해야지. 내가 찾아본 레시피엔 부추나 쪽파를 넣으라고 했는데, 마트에 가보니 너무 거대한 양을 사기 꺼려져 내맘대로 무순을 넣어봤는데 완전 딱이었다. 다음엔 무순을 더 많이 넣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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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름

놀잇감 2020. 4. 28. 14:58

그동안 절대 없었을 리는 없고, 어떻게든 꽁꽁 감추어져 있던 추악현 현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이겠지만 연일 뉴스를 보는 게 겁나고 끔찍할 만큼 믿어지지 않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N번방 수사는 아직도 지지부진, 26만명의 명단공개는 멀기만 하고, 소아성애자 성범죄자가 어엿하게 능력있는 남교사로 활약하고, 판사들은 아직도 디지털성착취범죄자들의 형량이 3년이면 적당하다고 한단다. 미칠노릇이다. 얼마나 더 독하게 마음먹고 쌈박질을 해대야하는 건지...

암튼 그래서 머리도 식힐겸 창밖으로 연두색과 초록색의 중간쯤으로 변한 이파리들을 보다가 대체 저 오묘한 색깔은 무어라 불러야하나 궁금증이 일었고... 첫 직장시절 회사에서도 귀한 자료였으며 지금까지도 쓸데없이 갖고 싶어하는 팬톤 컬러북 색상표를 검색해보았다. 팬톤에서 붙인 컬러마다 다 따로 색깔 이름이 있긴 한데 일단 후르륵 찾아본 이미지엔 컬러 이름이 안 들어있네..  

 

순서조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초록색 범주에 붙인 이름과 이미지는 찾았다. 채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팬톤컬러와 연결되지 않을까? 한가하진 않지만,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로 하나하나 우리말로 옮겨봐야겠다. ^^; 얼핏 보니 허브와 채소 이름이 많아서 아마도 대부분은 그냥 외래어 표기가 될 듯. ㅠ.ㅠ 

Lime 라임   Leaf 잎사귀   Sage 세이지   Pine 소나무   Kelly 진초록

Shamrock 토끼풀   Olive 올리브  True Green 참초록   Turtle 초록거북   Froggy 초록개구리

Asparagus 아스파라거스  Green Apple 연두(초록?)사과  Darkest Green 검초록   Bright Green 밝은초록  Barista 바리스타

Grass 풀빛   Cucumber 오이   Mint 민트    Lilly Pad 수련잎  Forest 숲

Holly 호랑가시나무  Parrot 앵무새   Celery 셀러리  Kiwi 키위   Army 군복(군초록?)

나중에 초록빛깔 묘사가 나오는 책을 번역할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지만 그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좋겠다. 암튼 잠깐 눈이 시원해지면서 행복했다. 나의 최애 색깔은 늘 파란색 계통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요즘은 초록 연두 빛깔들이 점덤 더 좋아진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하겠다. 옷색깔이라면야 푸른계통, 검정색이 제일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색깔만으로는 예쁜 색들이 좀 많은가. 형광분홍색 계통을 대체로 극히 싫어하긴 하지만 또 꽃으로 피어났을 땐 군말없이 아름답다 여기게 되므로, 색깔에 관한 한 선호하는 색깔과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 자연에서 아름다운 색깔은 모두 다르고 그래서 몽땅 다 예쁘다는 게 정답. 점점 더 진해지는 초록빛깔에 지치기 전에 영롱한 연두, 잎사귀, 풀빛, 연잎, 참초록, 초록개구리 색깔들을 하나하나 눈에 더 많이 담고 싶다. 열심히 창밖 잎사귀와 색상표를 비교한 결과... 오늘 햇빛 속의 벛나무 잎은 pms370초록개구리 빛깔에 가장 유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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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옷타령

투덜일기 2020. 4. 23. 11:08

곤도 마리에의 책은 한권도 안 읽어봤지만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그 사람의 정리 원칙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고 공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단촐하게 정리하고 살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어도, 그건 넓은 공간과 수납장이 확보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일뿐, 수십년된 집에서 수십년된 물건에 둘러싸여 비어 있는 벽이 하나도 없는 옛날 집에 붙박이로 살면서 웬 미니멀리즘! 거기다 우리 모녀는 물건을 잘 버리지도 못한다.

암튼 여러 물건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는 역시나 옷이다. 계절별로 10벌인가 5벌만 남겨두고 다 버린 뒤 돌려입고 살라는 충고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것 같은 기묘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요즘 밀라논나 장명숙님의 유튜브를 구독중인데, 30년씩된 옷도 아직 고쳐입고 갖고 있는 걸 보면서 음.. 과연 나도 체중관리만 계속 잘 하면 그리고 욕심만 버리면 가능도 하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내 옷장에 든 옷 중에서 2, 30년씩 계속 입을 만큼 기본기가 확실하고 가치있는 옷이 얼마나 되려는지 의문도 덩달아 따라온다.

물론 내 옷장에도 20년된 재킷이나 셔츠, 정장이 있다. 우선 두 동생들 결혼할 때 장만한 정장이 두벌. 둘 다 기본형이고 원단도 고급이라 지금 입어도 훌륭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딱 떨어지는 정장에 몸을 맞춰 딱딱하게 유지하는 걸 못견디는 것이 문제다. 그 외에도 결혼식 교복이라 부르는 정장류 옷들이 거의 다 15년 이상 20년은 된 듯하다. 옛날처럼 결혼식 갈 일이 자주 없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ㅋ (그러나 머잖아 친구들의 자녀 결혼식이 다가오겠지;;)

째뜬 철마다 옷타령을 하는 건 전 국민, 아니 전지구인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다. 기억력 탓인가 작년 이맘때 대체 뭘 입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함정. 게다가 들쭉날쑥 이상해진 날씨도 한몫한다. 트렌치코트 같은 건 도무지 입을 타이밍을 모르겠다. 요즘처럼 갑자가 다시 추워져서 패딩입은 사람들도 보이는 4월말. 현명한 옷입기는 뭘까? 든든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거의 50일만에 미용실에 외출했다 추워서 덜덜 떨며 집에 왔더니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도졌다. 

울 엄마의 경우는 '철마다 옷타령'과 '죽을때까지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 입장을 수시로 반복하신다. 외출을 앞 두고 무얼 입고 나가나, 입을 옷이 왜 없지? 작년엔 뭘 입었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옛날 옷들은 주로 좀 무거운 편이니 가벼운 옷으로 하나 장만하자고 하면, 금세 태도가 돌변한다. 나 옷 많다, 80이면 살만큼 살았다, 죽을 때까지 있는 옷만 다 입어도 못 입는다... 실제로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기간이 길어지면 한 계절을 통째로 날리기 때문에 못 입고 넘어가는 옷들이 꽤 많은데, 요번처럼 몇달째 집안에 갇혀 사는 전염병 시국엔 오죽할까. 

올 아카데미시상식의 클라이막스 작품상 시상 장면은 기생충 호명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눈엔 제인 폰다의 등장으로 더욱 인상깊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깨에 걸치고 나온 빨간색 코트 때문이었다. 드레스에 웬 코트? 

게다가 제인 폰다는 무려 1937년생. 울 엄마보다도 3살이나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환경운동가이며 여러 사회문제에 열렬히 목소리를 드러내는 투사다. 그리고 이 빨간 코트는 제인 폰다가 그레타 툰베리를 지지하며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더는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장만한, 아마도 저항의 의미를 담은  빨간색 코트였던 것.

작년에 제인 폰다는 뉴욕에서 매주 금요일 환경시위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체포되는 행동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장면이고 이 때 매주 입었던 빨간색 코트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들고 나왔던 옷이다. 영화제의 한 순간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인 문제를 열심히 전하는 놀라운 태도에 다시 한 번 존경심이 든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싼 옷 사서 금세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뿐만 아니라 청바지도 환경오염의 주역이라고 한다. 화학약품으로 물을 들였다 뺐다 하면서 엄청난 물을 사용한다는 듯.  에효.

저날 아카데미 시상식에 제인폰다가 입고 나왔던 드레스 역시 당연히 재활용이었다고 한다. 수십년전 칸 영화제 때 입었던 드레스라는데, 협찬으로 명품 드레스 빌려 입는 우리나라 대다수 연예인들과 상황이 좀 다른 걸까? 암튼 여든살이 넘어서도 수십년전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놀라운 몸관리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영화제 직후였나 기생충 작품상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제인 폰다의 빨간 코트 이야기를 꺼냈더니 후배들의 중론이, 제인 폰다는 좋은 옷들이 워낙 많으니 안 사고 입어도 되겠지만 우린 안 돼!  ㅎㅎㅎ

암튼 그래도 더는 살림을 늘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지 몇 년. 새 물건을 들이려면 동종의 옛 물품을 버려 가지수라도 맞추자고 노력하며 살았고 가능하면 옷은 사지 않고 버텨볼 작정을 했었다. 작년엔 터져나가려는 옷장과 서랍에서 진짜로 최근 3년간 안 입은 옷들은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정리해 아름다운 가게에 대거 기증했고, 약간 여유로워진 옷장을 보며 꽤 흐뭇했다. 한꺼번에 열벌은 사도 되겠어,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ㅎㅎ 올 들어선 곧바로 전염병과 함께 소비 심리 위축! 물론 프리랜서의 불안한 경제사정도 감안해야 할 일이다. 

째뜬 제인폰다보다 세살 어린 여든살의 엄마는 오늘 코로나19 창궐 이후 중지 되었던 초하루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거의 4개월만에 처음으로 홀로 버스틀 타고 서오릉 앞에 있는 절까지 외출을 감행하시었다. 그리고 추워진 날씨 '덕분에'  다행이라며 2월에 사드린 새 모직 코트에 스카프를 칭칭 매고 나가셨다. 음. 나는 마지막으로 산 옷이 작년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질 않지만 암튼 제인 폰다 따라하기는 우리 모녀 둘 다 쉽진 않을 것 같다. 나이들수록 기분도 옷차림도 추레하면 안되잖아...가 우리에겐 아주 좋은 핑계다. 어쨌거나 저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존경하며 계속 노력은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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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미투

아픈 손가락 2020. 4. 20. 18:27

Me too는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말한다'는 의미라고 여성계에서 암만 말을 해도 여전히 언론에선 미투 옆에 괄호 치고 '나도 당했다'라고 적혀 있다. 아무튼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이 땅에 살면서 공공장소의 불법촬영 위험과 성추행, 성희롱의 경험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은 0%일 거라 확신한다. 너무 흔해서 오히려 황당하고 차라리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어 속으로 삭히고 지나간 수많은 상처들.

얼마전 총선을 앞두고 팔순 노모에게 연동형비례제 정당은 어디를 뽑을 예정인지, 어디를 뽑으면 좋겠는지 의논하는 과정에서 N번방에 관해 설명을 드렸다. 파렴치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성범죄자놈들의 행태와 피해자들의 고통, 언론과 일부 인간들의 2차 가해... "그러길래 좀 조심하지" 따위의 말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가해자 중심 언사인지. 그러다가 문득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래 전 나의 상처가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물었다. 그 옛날 북가좌동 할머니댁에 살 때 우리 이웃에 살던 까까머리 남자애 이름이 해중이 맞아? - 해중이? 아... 정O 동생? 엄마는 종종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도 까먹으면서 놀랍게도 옛날 일은 귀신같이 기억한다. 

사실 해중이라는 이름은 나도 요번에 처음으로 기억이 난 거다. 그냥 까까머리 시커먼 얼굴, 더럽고 꾀죄죄한 차림새와 히죽거리는 기분나쁜 웃음, 그리고 뭉뚱그려진 얼굴로만 막연히 기억되는 걸 애써 지우곤 했는데 어쩌다가 퍼뜩 그 이름이 떠올랐을까. 암튼 욕쟁이가 된 지금 난 엄마에게 말했다. 5살 때인지 6살 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해중이 그 새끼가 나한테 엄청 나쁜짓을 했다고. 그간 애써 지우려고 했던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중학생 정도 되었던 그놈은 우리 할머니댁의 안방과 건넌방 사이 거의 창고처럼 쓰이덧 마룻방 깜깜한 공간에서 어린 나의 속옷을 벗긴 뒤, 손으로 성추행을 했고, 무섭고 아파서 우는 내게 그 사실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했었다. 당연히 나는 그 이야기를 당시는 물론이고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냐고? 그리고 이제 와서 왜 그 이야기를 하느냐고? 그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을 테고, 창피해서 숨겨야할 일이라 느꼈을 테고, 놈의 협박이 무섭기도 했겠지.... 이름도 기억 못하는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나 역시도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버리고 싶은 끔찍한 기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초등학생 때 명절에 한복을 입고 온 가족이 버스를 타고 외갓집에 다녀오던 길, 버젓이 아빠엄마가 옆에 서 있는데도 어떤 나쁜 인간이 공단 한복을 입은 열살 무렵의 내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길을 느끼고도 얼어붙어 아무말 못했었다고, 그 옛날엔 왜 그렇게 성추행범들이 많았는지, 왜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곧바로 부모에게 이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금 같으면 소리를 질러 피해 사실을 알리고 경찰서로 버스를 몰아 (소매치기범이 있는 경우 옛날엔 정말로 기사 아저씨가 버스 문 안 열고 곧장 경찰서 앞으로 버스를 댄 적이 있었던 걸 경험한 바 있다) 현행범으로 놈을 잡아 처넣었을텐데 말이다. 그뿐인가, 대학 신입생 때 버스에서 성기노출범을 만나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과 둘이 손잡고 엉엉울었던 기억까지 다시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에 출몰하던 온갖 성범죄자들이 이제는 화장실과 지하철에서 불법촬영을 일삼는 것에서 벗어나 무고한 피해자들을 성노예로 만들고 그 영상을 돌려보는 끔찍한 지경에 이르른 것이 N번방의 실태이니, 반드시 성범죄자 관련 처벌법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를 뽑아야한다는 것이 나의 요지였는데... 모녀의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 혐오스럽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겼다고 생각되어 실제 내용은 접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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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엄마도 그런 일이 있었어... 두 번이나. 

열살쯤 됐던가, O동 국민학교 다닐 때 동네 뒷산에서 노는데, 어떤 남자가 맛있는 걸  사준다며 따라오라고 하길래 멋 모르고 따라갔더니 그 남자가 으슥한 곳에서 바지를 훌떡 내리더니 '내 고추를 먹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놀라서 도망쳤는데, 따라간 자기가 잘못했다 생각해 울 엄마도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단다. 무려 70년 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그런 일은 한번 더 있어서, 한국전쟁때 부산으로 피란을 갔던 시절--40년생인 엄마는 부산에 열린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군무원 고모부의 말을 믿고 가족은 서울에 둔 채 혼자서만 먼저 부산으로 갔었고 학교는커녕 못된 고모의 학대를 받으며 11-12살에 고모네집 식모 노릇을 하며 굶주렸던 일이 있다고 다른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아이들에게 초콜릿과 사탕 따위를 던져주며 선심쓰던 유엔군 중 하나가 또 다시 어린 엄마를 초콜릿으로 유인한 뒤 성기를 노출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영국군인'이라고 정확히 국적까지 알고 있고, 그 뒤로는 외국인  남자들만 보면 도망을 다녔단다. 지금도 성범죄자들은 전세계적으로 어디나 존재하지만, 전쟁통에 남의 나라에 와서도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범죄자들이 군인으로 파견되었다니 끔찍하다. 60년대 베트남에 참전한 한국군 중에도 그런 성범죄자들이 수두룩했을 것 같다. 아무튼 엄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얘기를 어디 가서 하겠니, 창피하게.' 엄마잘못이 아니라니깐요! 역시나 그 일은 엄마가 70여년간 비밀에 붙여둔 또 하나의 끔찍한 기억이었다. 

성추행, 성폭행의 피해자는 생존자이기도 하므로... 나도 더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다치지 않고 잘 빠져나왔으면 된 거라고, 그 새끼들이 용서 못할 변태성욕자, 소아성애자, 성기노출범, 성범죄자들이라고, 지금 같으면 경찰에 신고해 감방에 쳐넣었어야 한다고 한참 열을 올리며 욕을 해댔지만 그런다고 엄마의 오랜 상처가 단숨에 치유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엄마도 의아해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전 일인데 그놈들이 입었던 옷 색깔까지 기억이 난다면서...

엄마, 그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끔찍한 기억은 뇌에 상처를 깊이 새겨놓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아요... 나 역시 그 해중이 새끼를 비롯해 성추행범, 성기노출범 때문에 꾸었던 악몽이 얼마나 많았던지 새삼 몸서리가 쳐졌다. 

 

내가 해중이라는 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촉발된 엄마의 미투 고백을 듣고 보니, 나는 또 궁금해졌다. 70년간 말하지 못했던 성추행의 상처와 자책 역시 결국 엄마의 조울증에 원인이 된 건 아닐까. 원래 울 엄마의 성격은 마음에 있는 이야기는 다 터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쪽이시라던데, 엄마 고교동창생들의 증언을 들어보아도 싸우면 곧장 편지로든 대화로든 풀어버려야지 며칠간 말 안하고 꽁하고 있는 건 절대 못참는 사람이라시던데...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반복되었던 그 끔찍한 기억을 꾹꾹 파묻고 눌러놓았다면...  ㅠ.ㅠ

전문가가 아니어서 나로선 그냥 그때 그 사건은 어린 시절의 엄마 잘못이 절대로 아니에요, 나쁜 놈들이 그때도 너무 많았고 아직도 너무 많아요. 그러니깐 이제 더는 그런 일 일어나지 못하도록,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기면 제대로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우리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해요...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일단 엄마도 나도 그 옛날의 성폭행 피해를 외부로 '발화'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라고 믿는다. 여기에나마 내가 그 개만도 못한 새끼 해중이란 놈의 욕을 쓰면서 제대로 단죄의 욕구와 치유가 시작됨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주 초 투표를 하기 직전, 나는 이러저러한 의미로 37개나 되는 비례대표 정당 중에서는 정의당 아니면 여성의당을 찍으시는 게 좋겠다고 추천했었는데... 엄만 과연 그 기다란 투표용지 어디쯤에 기표를 하셨을까. 그간 수많은 어이없는 판결과 솜방망이 처벌을 먹고 자란 N번방 사건수사 과정을 더더욱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도 엄마도 확고하다. 더는 가만히 있지 않아야 옳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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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벚꽃일기

투덜일기 2020. 4. 2. 13:49

서울에도 다른해보다 벚꽃이 훨씬 일찍 피어 만개했다는 뉴스를 한참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서북권인 우리집은 확실히 좀 늦었다. 그래도 작년 포스팅을 찾아보니 일주일에서 열흘은 빨리 핀 게 맞다. 작년엔 4월 8일에 기록을 남겼음.

바로 아래 사진은 팝콘 터지듯이 꽃들이 팍팍 피어나기 시작하던 월요일 3월 30일의 모습이다. 계속 날씨도 화창하고 하늘도 파랗고 사진으로만 보면 더할나위 없이 꽃놀이 다니기 딱 좋은 계절인데... 역병시국이기도 하고 마감중이기도 하고, 마음은 바빠도 잠깐씩 베란다 문 열고 나가서 나가서 구경했다. 

 

그러고는 이틀 뒤인 어제. 만우절날의 벚꽃. 집이 동향이라 벌써 해 방향이 넘어가 첫날 점심 먹고 찍은 사진이 우중충했던 게 아쉬워 이날은 오전에 좀 부지런을 떨었고, 끄트머리에 봉우리가 좀 남았어도 젤 예쁘게 찍힌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가지 맨끝 봉오리까지 다 피었으나... 벌써 맨 처음 핀 꽃들은 다 떨어져 휘날리기 시작했다. 마당 한 가득 하얀 꽃들이 깔려있다.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정성을 다하면 더 예쁘게 찍을 수도 있겠으나 ㅎㅎㅎ 이미 어제 최고의 작품을 건졌다고 생각하니 막 난사하게 됨. 이렇게 잔인한달 4월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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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이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도 나는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다. 미세미세 앱에서 검은 바탕에 해골표시를 보여주며 "최악, 절대 나가지 마세요!"라고 뜬 걸 보면 잠시 각성해서 마스크를 써봤지만 자꾸만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에 시야가 가려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숨이 가빠졌다. 호흡기가 약한 건지, 단순히 폐소공포증의 일환으로 마스크 쓰기가 답답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숨차서 쓰러지느니 그냥 미세먼지를 마시겠다고 결심하며 살았다. 100세시대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의미에서 미세먼지로 수명을 좀 단축하지 뭐, 그런 심보도 얼마간 작용했다. 

과거를 돌이켜보아도 나는 숨가쁜 걸 잘 못견디는 체질이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 ^^;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 및 중학교 시절 마당이 넓고 한옥도 양옥도 아닌 벽돌 집체에 파란색이나 주황색 기와를 얹은 집들을 전전하며 살았다. 당연히 화장실은 마당 제일 외진곳에 있는 푸세식이었고, 세수는 마당 수돗가에서 엄마가 큰솥에 미리 데워놓았거나 연탄보일러에 연결된 온수통에서 더운 물을 퍼날라다가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그랬었다. 그러니 당연히 목욕은 대중목욕탕에 가야 가능했다. 헌데 내가 덥고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찬 대중목욕탕을 잘 못견딘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나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주말에 엄마에게 끌려 목욕탕엘 가면 숨을 잘 못쉬겠고 어지러워서 자꾸만 밖으로 물을 마시러 나가거나 찬물을 갖고 놀다가 많이 혼나곤 했다. 체육을 워낙 못하는 몸치이지만, 그 중에서도 체력장 과목인 오래달리기를 엄청 힘들어했던 것도 뭔가 호흡과 관련이 있지 않으려나 싶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도 오래 쇼핑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두통이 찾아온다. 여러모로 예민한 심신을 가졌지만 산소 농도에 특히 민감한가? 몇년전에 거금 들여서 개인 건강검진을 했을 때, 운동 부하와 폐기능은 멀쩡하다고 했으므로 그냥 순전히 내 기분에 의한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째뜬 어려서부터 중년에 이른 지금까지 일맥상통하게 난 숨가쁜 상황을 못견디므로, 보건용 마스크가 필수인 이 전염병 시국이 특히 난감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지만 노상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다. 장보기가 귀찮아서 1년째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당일배송이나 새벽배송을 받았었는데, 다들 인터넷 장보기에 몰려드니 당일배송은 언감생심 지난 주말엔 이틀 뒤로 배송시간이 떴다. 나는 장봐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가 텅텅비도록 버틴 다음 다시 장을 보는 사람인지라... 당장 반찬거리와 쌀이 떨어졌는데 당일배송이 안되면 몸소 사러 나가야한다. ㅠ.ㅠ 해서 요샌 오히려 귀찮게 장보러 나가는 일이 많았으니 참 사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집순이 노모와 함께 사는 프리랜서는 마스크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3년전에 사두었다가 안쓰고 내버려둔 것부터, 2월 중순에 정말 마스크가 구하기 힘든가 동네 마트에 가서 한두개씩 사온 것까지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닐 때 쓰기엔 충분했다. 마스크가 진짜로 바이러스를 막아주는지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곧장 전염병 보균자나 개인위생을 소홀히하는 사람으로 매도당할 수 있으니 눈치 보여서 아예 안 쓸 수는 없다. 일부 종교인들이 비밀리에 암약하며 사회를 집단 감염시킨 상황을 보면 실제로 어디에서 누굴 만날지 몰라 두렵고 조심하는 게 맞다.

하지만 국내 언론을 못믿어 연일 눈빠지게 BBC와 CNN 코로나 관련 뉴스를 섭렵해 얻은 정보로 보자면 KF마스크를 써도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을 순 없을 것 같다. 고글까지 완벽하게 쓰면 모를까, 아니 고글과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했더라도 손에 바이러스를 묻혀와 집안 어딘가를 만져서 바이러스 흔적을 남겨뒀다면 말짱 꽝이다. 집에 오자마자 손 씻었는데 들어갈 때 목욕탕 문 손잡이 바이러스를 묻혀뒀더라면? 으악... 일단 손씻기가 엄청 중요하단 것만은 잘 알겠고, 핸드폰도 잘 소독해야겠고... ㅎㅎ 암튼 해외 전문가들은 오히려 보건용 마스크 썼다고 방심했다가 개인 위생에 더 소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사람 많은데 가지 말고 마스크는 그냥 환자나 의료진에게 양보하라고, 수급에 어려움 생길 수 있으니 사지도 말라고 권한다. 온 국민에게 1일1마스크 공급 안하면 정책 실패라고 난리치는 나라는 정말 전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는 것 같다. 미국 일본은 바이러스 테스트키트도 모자라다고 난리구만... 겨우 마스크 가지고 참.  

그나마 다행인 건 의료진과 환자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스크가 돌아가도록 마스크 안사기 운동도 나름 벌어지고, 천마스크 쓰기도 장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어차피 KF94를 쓰면 숨가빠져 코를 내놓아야하는 형편인데 뭐하러 그걸 고집하나 싶어 검정색 천마스크를 하나 만들어 두었다. 유튜브를 보니 행주나 키친타월을 이용한 사제마스크 만드는 영상도 꽤 보이길래 집에 있는 빨아쓰는 행주 2종류 사이에 필터 대신 정전기청소포를 잘라 빵끈과 함께 넣어 양면테이프로 붙인뒤 고무줄은 실로 꿰매어 넣는 방식으로 1회용 3겹마스크도 하나 만들어보았는데 ㅋㅋㅋ 한번 쓰고 버리기엔 들이는 품이 너무 아까워 또 만들게 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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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직포행주 마스크는 철사까지 넣어 착용감이 그럴듯하지만 역시나 숨쉬기는 좀 힘들어서 최애 마스크는 검정색 천마스크다 ㅋ

우선 마스크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자는 취지에 동감하기도 하지만, 게을러서 5부제 구입 날짜를 맞춰 공적마스크를 사러 나가기도 귀찮고, 종로와 명동 등지에서 개당 4천원씩 막 박스째 놓고 파는 마스크는 괘씸해서 사주고 싶지도 않으며, 미세먼지 마스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제대로 차단해줄 거라 할 거라 믿지도 않으므로 나는 당분간 천마스크를 쓰겠다! 보건용마스크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에게도 일부 국민들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겠으나... 어휴 그 수많은 의료폐기물과 일회용품들은 나중에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든다. 5천만명 중에 천만명이 매일 마스크를 쓰고 버린다면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쓰레기는... ㅠ.ㅠ 어쩌면 이번 전염병 창궐은 생명체인 지구에 가장 해로운 인간을 퇴치하려는 몸부림의 일환일 수도 있겠는데, 인간들은 안간힘을 쓰며 살아남으려고 또 다시 지구를 더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현실은 정말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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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투덜일기 2020. 2. 27. 14:20

10년 전에 엄마 칠순 생일 가족모임을 어떻게 준비하나 고민을 여기 블로그에 적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후딱 10년이 지났고 ㅜㅜ 주말에 왕비마마의 팔순 생신을 맞았다. 작년 생신때는 올해 팔순을 기약하며 아예 동생들도 집에 못오게 했었다. 그때도 병끝이라 엄마 상태가 부실했었기 때문이다.  1년전만 해도 칠순때처럼 팔순 역시 가까운 친척분들은 다 모시고 밥을 먹어야하는 게 아닐까 짐작했지만 1년새 생각이 확 바뀌었다. 다 귀찮아! 준비하는 나의 귀찮음이 가장 크겠지만, 오실 분들도 다 노친네들인데 오라가라 힘드니 안 부르는 게 서로 상책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불과 1달 전만 해도 엄마가 멀쩡히 외식을 하러 나갈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고, 그 말은 조울증세에도 해당된다. 엄마가 심히 아프기 전에 이미 의논했을 때 딴 식구는 절대 부르지 말자고, 우리 삼남매랑 손주들만 모여 평소처럼 조촐하게 밥 먹는 게 좋겠다고 주인공의 동의도 미리 받아놓았었다.

밥먹는 장소도 내 마음대로 정했고 3주전에 예약도 마쳤다. 경치가 밥값의 절반이라는 여의도 사대부집 곳간. 의외의 변수는 코로나19였지만 뭐 차로 이동하고 마스크 쓰고 가면 되겠거니 했다. 9식구 단촐하게 모여 밥먹는 자리라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팔순인데 하나쯤은 뭔가 달라야지 싶어 케이크토퍼를 주문했다. 토퍼까지 아예 세트로 보내주는 화려한 꽃앙금으로 만들어진 떡 케이크를 주문할까 말까도 오래 고민했지만 한식뷔페에 후식으로 떡이 지천일텐데 싶고, 우리 가족들은 몇번 사본 떡 케이크보다 역시 제대로 케이크를 더 좋아하므로 요맘때 제격인 딸기 케이크를 사기로 결정.

케이크토퍼 문구는 대충 샘플에서 이름만 바꾸고 주문했는데 바로 다음날 택배가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대구에서 확진자 폭발하기 직전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요즘엔 뭘 시켜도 빠른 배송이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생필품까지 배달시키며 사는 듯. 휴...

'팔순축하드립니다' 대신에 '항상 건강하세요'를 넣어야하는 게 아닐까도 좀 고민했었는데 도착한 택배를 보니 이렇게 추가 문구와 하트 두개까지 서비스로 넣어 딱딱한 종이에 단단히 붙여서 보내주더군. 뭘 살 때 잘 모르면 돈을 더주는 게 낫다는 옛사람의 진리를 요번에도 실감했다. ㅎㅎ

토요일 오후, 예약시간보다 넉넉하게 집을 나섰는데 다들 바이러스 공포로 집에 콕 박혀 있을줄 알았더니만 길에 차가 꽤 많았고, 음식점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심지어 바로 옆 연회장에선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20200222. 2가 무려 5개나 들어가는 엄청난 길일이라 결혼식이 많다는 이야기는 진즉 들었지만 에고.

째뜬 계획했던 대로 조촐하게, 배부르고 뿌듯하게 이른 저녁을 다 먹고는 케이크를 준비해 조용조용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드린 뒤 엄마에게 소원을 비시라고 했다. 아들놈 하나가 웃으며 '팔십살에도 소원이 있나?'라고 코멘트하기에 속으로 버럭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도 바라는 거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참 내... 


8개의 촛불을 엄마는 네번에 걸쳐 힘겹게 불어 끄셨고, 난 좀 속이 상했다. 원래 케이크 촛불은 거의 한방에 불어끄시는 분이었는데 흠... 사진을 보니 초를 너무 벌려 꽂아놔서 끄기 힘들었던건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로써 우리나이로 80세, 엄마의 팔순 모임이 무사히 지나갔다. 약이 과도해선지 아니면 기억력이 심히 떨어진 때문인지 걱정스러운 수준이 된 건망증도 자극할 겸 열심히 외우게 시킨 영어문장 중 하나. 아임 에이티 이어즈 올드. I'm eighty years old.

헬로우로 시작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동생들에게 퍼돌릴만큼 신나게 읽고 연습하시기에, 이날 손주들 앞에서 뭔가 짧게 영어 스피치도 하시라고 할까 계획했으나 결국 그러진 못했다. 발음도 좋으시고 읽기는 잘 되는데 암기는 어려워. ㅠ.ㅠ  반복 연습을 시키며 내년엔 에이티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싫으시단다. 만으로는 에이티잖아. 계속 에이티만 할 거야. 하긴 나도 맘같아선 계속 피프티만 하고 싶다.  

그나저나 나는 팔십세까지 몇년 남은거지? ㅠ.ㅠ 또 10년 뒤면 엄마가 구순이 되시고 난 육십대가 된다는 게 지금으로선 상상도 되질 않는다. 무섭게 흐르는 시간을 이럴 때나 실감하는 듯. 하지만 그냥 하루하루 무심하게 흘려보내며 사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는 없겠다. 가능하면 나이는 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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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훈련

아픈 손가락 2020. 2. 19. 16:46

수년전 금강경 사경을 시작으로, 작년 상반기까지 엄마는 꾸준히 거의 매일 불경이나 불교서적을 노트에 필사 하셨다. 처음엔 그냥 종교적인 신심에서 비롯된 자발적 시도였지만, 독서보다도 훨씬 더 두뇌활동에 자극이 되는 게 바로 책을 읽고 중얼거리면서 손을 움직여 쓰고 다시 확인하는 복합과정이기 때문에 내가 강권하다시피 했고 엄마도 곧잘 협조해주셨다. 하지만 5월 22일을 끝으로 방치했던 노트는 나의 닥달로 9월1일에 딱 한번 다시 한 페이지 필사한 뒤 줄곧 외면당하고 있었다.

작년연말부터 병세가 나빠졌을 땐 온전하게 대화만 가능해도 감지덕지할 정도였으니, 필사는 개뿔. 바랄 수도 없었는데 2월 중순 접어들면서 엄마는 거의 안정적인 상태로 회복되었고, 머잖아 다시 약을 줄여야할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번주에 걱정스러운 두번의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일요일인 2월 16일. 화장실에 다녀온 엄마는 대뜸 내일 큰아들 생일이지? 라고 물었다. 네? 뭐라굽쇼? 내일이 며칠인데 큰아들 생일? 엄마의 대답은, 11월 17일이잖아....  (큰아들 생일이 11월 17일인 것은 맞다. 건강한 상태였던 몇달 전 그날을 기념해서 엄마가 아들 가족에게 밥도 사주셨더랬다)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냉장고에 붙어 있는 달력을 보시라고, 정신 차리라고, 지금이 11월이 맞냐고 물었다.  

잠시 후 11월 아니야? 2월이야? 왜 헷갈렸지? 본인도 의아해하고, 나도 어리둥절함과 속상함 속에서 그냥 넘어가는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어제. 셋째주 화요일. 매달 엄마가 고교동창 친구들과 오찬을 하는 날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전날 저녁 취소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올해는 엄마도 엄마 친구들도 대부분 팔순이 되는 해여서, 1월부터 생일자들이 돌아가서 밥을 사기로 했다는데 1월엔 당연히 엄마 상태가 안좋으시니 불참했다.  2월 오찬은 곧 생일을 맞이하는 울 엄마가 밥값을 내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엄마 본인도 요번엔 꼭 참석하리라 단단히 벼르고 계셨고, 나도 부실한 울 엄마를 종종 보살펴주시는 친구분들(길 잃고 헤매거나 약속장소 헷갈리는 울 엄마 찾으러 출동하기도 하고, 택시 태워 보낸 뒤 나한테 전화도 넣어주시고.. ㅠ.ㅠ)께 뭔가 약소하나마 선물을 하고 싶어서 핸드크림을 사다가 포장을 해두었었다.  엄마 친구분들은 성남시장까지 가서 참기름, 들기름도 짜다가 나눠주시고 막 그러는데 자긴 맨날 받기만 한다고 울 엄마가 징징거린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격 모임이 취소되었다는 전화통화 후, 미리 가방에 넣어두었던 핸드크림은 다음달을 기약하며 옷방 책상에 올려두었는데...  어제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보니 엄마가 보이질 않았다.

어랏? 설마... 절에 가는 날도 아니고, 에이, 모임에 가신 건 아니겠지... 생각했으나 핸드크림도 자취를 감춘걸 보며 문득, 취소되었던 모임 상황이 바뀌었나? 생각했으나 그럴 리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이든 핸드폰으로든 전화가 걸려왔으면 내가 잠결에도 못 들을 리가 없다. 엄마가 우편물 확인하러 내려가셨나보다 했던 현관문 소리가 엄마의 외출소리였던 것이다!

득달같이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통 답이 없더니 6번째 전화만에 엄마가 휴대폰을 받았다. 예상대로 약속장소인 사당역까지 갔다가 아무도 없어서 친구들한테 전화로 확인을 한 뒤 집에 돌아오시는 중이라고. ㅠ.ㅠ 어제 취소 전화 받은 건 전혀 기억에 없단다. 거의 두달만에 엄마 혼자 감행한 외출이다보니 그간 몇번 억지산책에 끌고 나가긴 했어도 불안했다. 혼자서 집에 잘 찾아올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엄만 무사히 집에 돌아오셨다. (현관 비밀번호를 엉뚱하게 눌러서 내가 소리쳐 알려드려야 했으나 뭐 그건 전에도 있는 일...) 따로 쇼핑백에 들고간 핸드크림도 손에 꼭 쥐고서. ㅠ.ㅠ (한번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근데 모임이 왜 취소되었는지, 전날 모임 취소 관련 통화를 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했다. 모임 장소에서 홀로 기다리다가 친구들과도 한분한분 다 통화를 한 모양인데, 집에 와서도 또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왜 안 만나기로 했는지 물으셨다. 

매달 셋째주 화요일 모임은 당연히 각인되어 있는 정보이니 잊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모임이 취소되었다는 것도 일시적인 정보이고, 내가 친구분들에게 드릴 핸드크림을 사놓았다는 것도 일회성 정보인데 왜 둘 중에 하나만 기억에 남았을까? 인간은 누구나 기억이 선택적이고 중요한 정보만 두뇌에 남는다. 근데 친구들 나눠줄 선물은 중요하고, 모임 취소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으휴.

2주전 진료때 주치의에게 정밀 뇌진단을 받아보았으면 한다고 의논했을 때, 의사는 좀 더 지켜보고 결정하자고 말했다. 인지기능개선제인 아리셉트를 드시고 계시지만, 지금 복용 용량으로도 알츠하이머 예방은 충분한 건가 불안한 엄마와 내 마음을 의사는 잘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에피소드도 그냥 일시적인 걸로 무시하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암튼 몹시 불안해진 나는 다시 그 옛날 필사 노트를 꺼내왔다. 재미없는 불경과 책 내용 필사는 별로 흥미가 없을 것 같고 두뇌자극에 제일 좋은 건 외국어 배우기라는 말을 본 적이 있어서 이번엔 영어 문장을 베껴적고 단어를 외우시게 할 작정을 한 거다. 

내 이름은 OOO이고 80살이고, 어쩌고 저쩌고... 10문장쯤 되는 말을 만들어서 반복 읽기를 시킨 뒤 단어를 10번씩 쓰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1시간쯤 뒤에 가보니, 3단어만 되풀이해서 쓰고 7개 단어는 깡그리 패스, 나머지는 마지막 네 문장을 베껴적어놓으셨다. 내가 나중에 외우기 시험볼 거라고 했더니 열심히 읽고 외우느라 바쁘셨나보다. 그게 아니면 정보 전달이 일부만 머리에 남거나. 흑흑.

암튼 근 6개월간 엄마가 글씨 쓸 일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영어단어 적어놓은 글씨를 보니 손가락 힘이며 인지기능 상태는 많이 나빠지지 않은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알츠하이머 노인들은 힘있게 획을 긋지 못한다고 들어서... 하여간에 너무 한번에 스트레스 주면 안되니깐 나머지 단어들은 오늘 다 10번씩 쓰시라고 숙제를 내주었는데... 어제 간만에 홀로 대중교통수단 외출로 무리를 한 탓인지 온종일 주무신다.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약도 과도해진듯.  그치만 난 또 못된 사감선생처럼 가서 노친네를 깨워가지고 다시 두뇌훈련을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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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당신 영어 글씨 흡족해하심.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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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블로그에 로그인하다 보면 유입경로 순위에 사스SARS가 높이 떠 있다. 그만큼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몇년 전 사스와 메르스MERS의 외래어표기가 왜 다른가 트집을 잡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R이 똑같이 모음 뒤 S앞에 있는데 사스는 사르스가 아니고 메르스는 메스가 안 된 이유가 뭔지 지금도 모르겠다.  

요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잠시 '우한 폐렴'으로 불리다가 WHO 권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이름이 굳어졌고, 영어명칭은 2019 novel Coronavirus(줄여서는 2019-nCoV)이다. 메르스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었지만,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 발표와 언론,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사스와 메르스 때와는 체감하는 공포가 다르다. 과거엔 감염률과 치사율이 훨씬 높았는데도,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조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부에서도 '과할 정도'로 경계하는 것이 좋다는 방향을 설정했고, 아무래도 과거에서 배운 점이 있으니 현실적인 방역과 대처 방식도 달라졌다고는 하더라도 이렇게 연일 전염병 소식이 언론 1면을 장식했었던가? 카톡으로 날아오는 온갖 ~카더라 소식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정보는 또 어떻고!

지난 주말엔 원래 동문산악회에서 강원도 선자령으로 눈꽃산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고, 나는 간만에 원없이 눈세상을 볼 생각에 한껏 마음이 들떴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10km이상 걸어야한다기에 혹시나 체력이 딸릴까 염려되어 눈쌓인 동네 산에서 나름 특별훈련까지 마쳤는데.... 젠장. 바로 전날 눈꽃산행이 전격 취소되었다.

전염병 시국에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다들 잘 한 결정이라고, 감사하다고 집행부를 칭송하는 글귀들이 어지럽게 단톡방에 올라왔다. 그런가? 나만 실망하고 섭섭했나? 겁나는 사람들 빼고 그냥 강행하기를 바랐던 내가 미친 건가? 난 오히려 아는 분들 3, 40명이 마스크 쓰고 버스타고 3, 4시간 이동하는 것이, 정체불명의 사람들과 동승하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돌아다니는 것보다  안전할 거라고 여겼다. 최소한 본인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진해서 안 나올 테니까 말이다.

째뜬 그건 내 생각이었고, 연세 많고 보수성향이 강한 선배님들이 대다수인 이 집단은 강원도로 등산을 떠나는 대신 남산 둘레길을 돌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중국인들의 통행이 많은 명동 주변을 우회하겠다는 말씀. 푸핫. 남산에 중국인들이 얼마나 관광을 많이 가는데! 그렇게 중국인들이 무서우면 남산엘 아예 가질 말아야하는 게 아닌가? 참나... 모순이 따로 없다. 째뜬 말은 안했어도 바이러스가 무서워 등산 신청도 안했는지 원래 예정보다 참석 인원은 10명이나 더 많아졌다. 선자령에 가려다가 실망해서 오히려 빠진 사람을 감안하면 (실은 나도 남산이면 가지 말까 아침에 깨자마자 고민했었다. ㅎㅎ) 코로나바이러스를 염려했던 사람은 더 많다는 의미였다. 

동대입구역에 모여 장춘단 공원부터 투덜투덜 남산 둘레길로 향하며 그나마 유익했던 건 그간 한양도성 목멱구간을 두어번 돌았고, 남산둘레길도 남측 숲길과 순환로 위주로 두번이나 돌아봤지만 동대입구쪽에서 진입해서 서울타워 옆으로 뚫린 숲길은 처음 가보는 새로운 길이어서 나름 신났다는 점이다. 속으로 다음에 친구들 데리고 또 가봐야지 생각했다. 숲길을 지나 서울타워 주변으로 접근했을 땐 우어.. 화장실과 매점 주변 방역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하철 안과 역사에선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걷기 시작한 이후로 난 이미 숨이 가빠 될대로 되라 마스크를 벗어던진 상황. 솔직히 나는 까짓 코로나바이러스 따위 올테면 와봐라 뭐 이런 심정이었다. 혹시라도 걸리면 신상 털리고 행적 드러나는 게 쪽팔려서 그렇지 국가 비용으로 2주간 편히 격리병상에서 일이나 하지 뭐, 이런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했었다. 엄마 때문에 괴로운 심정으론 차라리 그쪽이 감옥 같은 집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느낌일 거라고 주변에 고백한 적도 있다.   

미생물학과 교수인 후배님의 말로는 첫 발생 직후 확산률로 볼 때 이 정도면 방역을 잘 하고 있는 게 맞고 손씻기 같은 개인위생과 마스크 쓰기만 잘 하면 별 문제 없을 거란다. 어차피 모든 감기 바이러스엔 치료제가 없고, 독감 치사율은 정확히 집계가 불가능해서 그렇지 최소 연간 100명은 사망한다고 보아야 하며, 어떤 학자들은 독감 사망자 수를 비율로 따져 그 열배인 1000명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최종 사망 원인이 폐렴이나 패혈증이기 때문에 독감이 원인으로 잡히질 않는다는 얘기다. 해서 해마다 노약자들은 독감 백신 맞으라고 홍보를 하는 것이고. 독감보다 치사율은 낮고 전염율은 높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신종'이고 처음이라 겁나는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괴담이 돌 정도인가?

암튼 지인들 가운데서도 가짜뉴스인지 진짜로 근거있는 뉴스인지 생각도 않고 열심히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식을 퍼나르며 실제로 걱정에 휩싸인 분들은 공교롭게도 정치적 성향이 일치한다. 그분들은 모든 중국인들의 입국을 막아야하며, 모든 대학이 중국인 유학생을 추방하는게 옳다고,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를 방치하면 큰일나는데 이번 정부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현대의 흑사병으로 곧 판데믹이 찾아와 엄청난 인명살상이 예상된다고, 일단 감염되면 완치되어도 폐가 섬유화되어서 죽을 때까지 고생할 거라고 '아는 의사'가 말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 아는 의사 이름은? 소속은? 물론 개인 정보이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_+ 내가 괜히 공포분위기 좀 만들지 말라고, 팩트 체크가 필요한 사항인 것 같다고 반기를 들어도 그들에겐 소용없다. 나더러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니 정신차리라고 오히려 나무라심.  

폐는 병을 앓고 나면 반드시 그 흔적이 남는 장기라고 한다. 울 엄마도 젊어서 폐결핵을 앓으신 적이 있는데, 검진 때마다 의사가 그곳을 묻는다. 폐렴을 심하게 앓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폐섬유화는 아주 심하게 오랜 기간 폐렴을 앓는 경우에 생기는 후유증이고, 최근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때문에 들어보았으며, 호흡곤란이 심해 산소호흡기를 늘 가까이 하고 살아야한다고 들었다. 근데 요번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들은 벌써 퇴원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런 후유증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말의 가능성으로만 그렇게 부들부들 떨 것 같으면 독감 치사율을 걱정하시라니깐요! 

독감이든 바이러스든 전염병이 창궐하면 조심하는 게 옳다. 그래서 다들 집밖에도 안나가고 가게마다 쇼핑몰마다 영화관마다 텅텅 비고 마스크 매진사태가 이어지는 것이겠지. 하지만 여러모로 의심 많은 나는 또 궁금증이 인다. 과연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언론이, 정치인들이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를 가지고 대대적으로 떠들어댔을까? 물론 메르스 사태 때에도 야권이 정부를 공격하는 발언은 있었지만 그땐 진짜로 의사를 포함해 수십명이 죽어나갔고, 정보를 숨기려 쉬쉬했었으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일제히 메르스 사태만 조명하며 환자들의 개인정보까지 캐내려들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 아카데미상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각본상부터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모두 휩쓸면서 이 꿀꿀하고 찜찜한 전염병 시국을 잠시 잊을만한 희소식을 날려주었다는 점이다. 난 드물게도 아직 <기생충>을 보지 않은 사람이지만 ^^; (초창기에 보지 않고 뜸들이는 사이에 천만 영화가 되어버리면 난 에라잇.. 괜히 더 보기 싫어지는 마이너 취향이다) 싫어하는 케이블 채널에서 해주는 생중계를 일부러 찾아보며 감동했다. 출판계에서 노벨문학상의 힘이 예전처럼 폭발적이진 않듯이 지난 몇년간 지켜보면 아카데미상의 힘빨도 별로여서 넘나 미국적인 아카데미 후보작들 인기도 시들하던데, 와... 이런 일이! 

현재 CNN 1면을 동아시아3국이 다 차지했다면서, 한국-기생충 아카데미, 중국-코로나바이러스, 일본-크루즈선 코로나환자 폭발, 이라는 인터넷 뉴스를 좀 전에 보았다. 개인적인 성취를 두고 무엇 하나 도와준 건 없는 나라가 나서서 (김연아, 박태환 때처럼) 국가적인 성취로 선전하는 거 딱 질색이지만, 암튼 워낙 독보적인 최초의 성과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국뽕'이 차오르려는 걸 애써 밀어냈다. 나와 관련된 온갖 행사, 교육, 자원봉사 일정까지도 다 취소되는 마당에, 어제의 쾌거 이후 나의 지인들 가운데선 슬금슬금 새삼 <기생충> 보러 영화관에 또 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전염병 시국에서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이끄는 영화 제목이 <기생충>이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ㅋㅋ 나 역시 용감하게 <작은아씨들>을 개봉일인 내일 보려고 예매를 해두었다. 2주 전부터인가 씨네큐브와 몇몇 극장에서 아카데미 특별상영을 하는 걸 알긴 했지만 어쩐지 공식 개봉일에 보고 싶어 내린 결정이다.

원래부터 개인 위생 신경 안쓰고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나의 외출 및 영화 관람 동선이 겹칠 일은 없을 것 같다. 혹 겹치더라도 물샐 틈 없어보이는 방역에 더하여 내겐 마스크와 장갑이 있으니. ^^; 정말로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영화관이 파리를 날리는지 실제로 가보면 알겠지. 마스크 사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노상 뉴스에서 나오던데, 저렴하게 대량으로 인터넷 구입이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 동넨 지난주 약국에서도 올리브영이나 랄라블라 같은데서 다 팔길래 그 또한 좀 의아했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집에 황사마스크를 수십장씩 쌓아두고 살 리도 없지 않은가. 필요할 때마다 구입하는 편인데, 지난 한달간 외출했을 때 어디를 들르든 없어서 못 산적 이제껏 한번도 없었다. 이 역시 내일 다시 둘러보겠음. 기레기들이 발로 기사 안쓰고 언론호도에만 힘쓰는지 어쩐지 나가보면 알듯. 그 결과가 나도 궁금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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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병

아픈 손가락 2020. 2. 6. 16:31

 

다행히 설날을 기점으로 엄마의 병세는 고비를 넘긴 듯하다. 불안증과 의심증도 차츰 줄어들더니 드디어 오늘은 내가 언제 그랬냐 싶게 간간이 기분이 좋으시다. 1년 전에도 12월에 심하게 발병했다가 설날 지나고 2월 들어 진정세에 접어들었었다. 그래도 작년엔 2월 말이었던 79세 생일 모임을 건너뛰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었다는 의미다. 당시 핑계는 내년이 팔순이니 2020년에 거하게 밥을 먹자고, 그리고 곧이어 잡혀 있던 고손녀의 돌잔치 때 얼굴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동생들을 설득했다. 

 

2019년 3월9일이었던 돌잔치날 엄마는 도무지 환자로 보이지 않는 건강한 모습으로 파티에 참석하셨다. 심지어 미용실에 가서 머리 드라이도 하고 오셨던 터라 기쁨에 겨워 기념 사진도 남겼었다. 미소가 온화하고 우아하기 이를데가 없다. 평소 내가 왕비마마라고 떠받들어드리는 울 엄마의 모습이다. 남들도 다들 인상 좋으시다고, 엄청 고우시다고 (경복궁 선생님들의 칭찬이다 ㅋ) 하는 얼굴.  

오랜 세월 함께 엄마의 병증을 겪어온 가족들은 엄마 표정만 보아도 안다. 증세가 나쁠 때는 얼굴의 일부 근육과 신경도 이상해지기 때문에 사나운 표정과 눈빛으로 돌변한다. '호랑이 눈썹'이 되었다고 내가 표현하기도 하는데 눈 주변의 주름이 바깥쪽을 대각선으로 경직되면서 무서운 느낌으로 바뀌는 거다.  뇌의 일부 전달물질이 불균형을 이르면서 신경이 곤두서면 근육도 그에 따라 지배되는 것 같다. 암튼 오늘 엄마의 표정은 완전히 이 모습까지 이완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표독스러워져서 무서울 정도의 느낌에선 확실히 벗어나셨다. 이제 나도 겨우 숨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엊그제 2주만에 다시 진료를 받으면서, 잠자는 게 여전히 불편하다는 엄마의 말에 의사는 세로켈 용량을 200mg으로 더 늘렸다. 연세가 많으셔서 복용량 변화를 심하게 할 수가 없다보니 늘 이런식이다. 입원을 시켜 곁에서 면밀히 지켜보지 않는 한 1, 2주 만에 한번씩 상담후 조금씩 약을 바꾸다 보면 한두달이 훌쩍 지나간다. 요번엔 엄마가 비협조적이어서 중간에 더 먼저 찾아가 약을 바꿀 기회를 놓쳐서 더 기간이 오래 걸렸다. 젠장.

하여간 그래도 역시나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이건 '아는 병'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면서 참으면 결국 좋아지는 때가 온다. 다시 병세가 나빠지는 주기가 너무 빨라져 그것이 절망스럽긴 하지만, 악화일로에 놓이는 알츠하이머와는 또 다르니까.

연세 때문인지 점점 더 증세가 심해지고 기간도 길어지면서 요번에 특히 역대로 힘들고 괴롭던 차에 신기하게도 인간의 심리 원리를 다룬 책 증정본을 하나 받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어쨌든 겪어 나가는 당사자로서 삶은 참 공교로울 때가 있다. 엄마한테 난데없는 의심과 비난을 받으며 내가 징징 울며 괴로워할 때 도착한 이 책을 받자마자 양극성 장애 부분을 펼쳐보았다. 그림과 도표로 간단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임에도, 그 간단한 정보가 엄청 위로를 주었다. 어차피 치료약이 있으니 전문가들은 다 아는 병이겠지만, 계속 재발하는 것이 너무 속상하긴 하지만 엄마가 보이는 성격 변화와 온갖 증상들도 결국엔 다 예측범위 안에 들어 있었다.

"기분이 급변할 때는 극단적인 성격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사회적, 개인적 인간 관계에 심한 긴장을 유발한다" (<심리 원리> p40)

"일반적으로 양극성 장애의 주요 원인은 뇌 기능에 관여하는 화학물질들의 불균형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 전달 물질이라고 불리는 이 화학 물질에는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도파민이 포함되며 신경 세포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도 원인의 하나로, 양극성 장애는 가족 내에서 유전되고 어느 나이에서나 발병할 수 있다. 100명 중 2명은 살면서 한번 이상의 양극성 장애의 삽화(episode, 우울증이나 조증 같은 특정 증상이 지속되는 기간-옮긴이)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그 중 일부는 평생 두어번의 삽화만 겪지만 어떤 이들은 여러 번 겪는다. 삽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는 스트레스, 질병,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이나 돈 또는 직장과 관련된 문제 같은 일상 생활 속의 괴로움 등이 있다." (p40-41)

우울증과 조증의 패턴을 나타내는 그림을 보아도, 아 그렇구나 싶다.   

안정기 → 경조증 →우울증(이 시기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수면장애와 식욕저하를 겪고 망상 환각 불안정한 사고를 경험)  → 약한 우울증 → 조증 → 혼재성 상태  ㅠ.ㅠ

영원한 레아 공주, 캐리 피셔가 남겼다는 말도 위로가 됨. "양극성 장애는 도전이지만,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줄 수도 있다." 

석달째 엄마를 돌보면서 나도 우울증 환자가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이 꽤 많았다. 뭔가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느낌? 아는 게 병이기도 하지만 또 아는 게 힘이기도 해서, 기분이 바닥을 칠 때면 위험신호라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홀로 뛰쳐나가거나 약속을 만들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위기를 나름 잘 극복한 것 같다. 스스로 장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땐 엄마의 '삽화'가 매년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므로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또 지나갈 것으로 믿어야지 별 수 있겠나.

엄마의 성격변화와 몇몇 이상 증세가 유독 심해서 혹시 조울증 때문이 아니라 알츠하이머의 전조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 치매 환자를 겪어본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알츠하이머의 가능성에 손을 들었다 - 주치의에게 두뇌 정밀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증세가 완전히 회복된 이후에도 그러는지 두고 보자고. 엄마도 나도 가장 두려워하는 그 병만은 진짜로 아니면 좋겠다. 째뜬 보름 뒤로 다가온 조촐한 팔순 가족모임은 별 문제 없이 강행해도 좋을 듯하니 다행이다. 다들 웃는 얼굴로 맛있는 밥 먹고 힘낼 수 있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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