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2018 여름

투덜일기 2018. 8. 22. 17:57

111년만의 폭염이라는 올 여름의 살인적인 더위도 더위지만... 그밖에 개인적으로도 올 여름은 한마디로 '마가 끼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뒷마당에 허락없이 대형견 2마리를 키우던 아래층 101호 세입자가 드디어 이사를 나가고, 10년도 넘게 계속 전월세로 세를 놓고 살던 주인 내외가 이사를 들어온다더니만... 집이 비자마자 작은방 천장이 샌다고 우리더러 당장 누수공사를 하라고 난리였다. 으어...

101호 내외가 '잘 아는' 업자를 불러다가 기계로 누수 지점을 찾아보았지만 보일러 배관과 상수도는 멀쩡해서 누수탐지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딘가 하수도관 접합부 같은 데서 아주 미세하게 샌다는 의미라나. 결국 7월말 사흘에 걸쳐서 엄마네 집 화장실 바닥 공사를 했고, 어마어마한 소음과 상상을 초월한 흙먼지에 시달리며 '쌩돈'을 처들였다.

하필 그 무렵 영화 번역 마감과 겹쳐서 첫 업자가 하라는대로, 달라는 대로, 거액의 공사비를 내고 보니.... 바가지였다. 웬만한 업자는 그 금액이면 화장실에 샤워부스까지 설치하고 천장 벽까지 몽땅 리노베이션 하는 가격이라는데 우린 것도 모른 채 꼴랑 바닥 타일과 세면기, 변기만 교체했으니. ㅠ.ㅠ 내가 미쳐.

그뿐인가. 화장실 공사가 끝나고 아래층 천장과 벽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작은방 천장 보수와 도배비까지 물어줘야했다. 누수 범위인 '일부' 도배비라고 견적을 받긴 했지만, 결국 금액으로 볼 때 101호에서 우리한테 다 씌웠다는 '심증'이 있다. 물론 열받아서 나도 다른 도배업자를 불러 견적을 뽑아보았지만, 101호 내외와 작업범위 협의하다가 도저히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냥 가버렸다. 부부 사기단이냐! 결국 며칠 뒤 그들이 데려온 도배업자에게 일을 맡겼다. 계속 속을 끓이는 내게 지인들이 조언했다.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들을 니가 무슨 수로 막겠냐. 그냥 잘 먹고 잘 살아라, 드러워서 피한다, 하는 마음으로 속편하게 손해를 보라고 했다. 그게 나의 건강에도 이롭다고... 맞는 말이었다. 연일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부들부들 떠느니, 그냥 다 당해주리라 포기하고 마음먹으니 엄마도 나도 차라리 속이 편했다.

암튼 그래서 8월 6일엔 아래층 작은방 천장 석고 보드 공사를 해주었고

8월 7일엔 이참에 집 좀 단장하자며 네 집이 분담해 앞마당 시멘트 공사를 다시 해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었고

8월 10일엔 아래층 도배가 끝났다. (나중에 보니 집 전체를 거의 다 새로 도배했는데, 방 하나 값은 자기네가 분담했다고 우기지만 가격으로 보아 거짓말 같다.) 

그렇게 드디어 일단락 되나 싶었더니만.. 빌어먹을 이 낡은 집!

내가 사는 쪽인 아래층 202호에도 목욕탕 천장에 물이 맺힌다며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아주 미친다. 이번엔 내가 엄선해서 동네 누수탐지업자를 불렀고.. 역시나 이쪽 집도 보일러와 상수도엔 이상이 없어 누수탐지기로 파악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화장실 변기와 하수구 방수가 주요인인 경우가 많다며, 무작정 화장실 바닥을 다 뜯지 말고 조치해보자고 했다. 반나절 공사로 끝났을 뿐더러 당연히 엄마네 화장실 방수 비용의 6분의 1 가격이 들었다. 우와 진짜...

내가 보기에도 엄마네 화장실 타일이 삐뚤빼뚤 바닥 수평도 엉망이고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누수탐지 업체 사장님이 최근에 공사했다는 저쪽 화장실구경 한번 해도 되겠냐고 하더니 정말로 실소를 머금었다. 타일 배워서 처음 붙인 초짜 솜씨라며 사장님이 직접 했다는 걸 믿지 못하겠단다. 같은 업계고 이 동네서 서로 뻔히 아는데 혹시나 친한 사이면 어쩌나 걱정스러워 처음엔 업체 상호도 안 알려줬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러바쳤다. 소비자 등쳐먹는 업자라고 이 동네 누수공사 업계에서 나쁜 소문이라도 나랏! 흥! 

202호 누수공사를 한 것이 8월 14일 월요일.

시련은 다 끝인가 싶어... 바로 다음날 별렀던 내과병원을 찾았다. 요번학기에도 신체검사서를 내야하는데 아무래도 혈압이 문제일 것 같아서(그간 스트레스가 좀 많았나! 집에서 재보니 엄청나게 높아!) 혈압약을 처방받기로 했던 거다. 약 먹고 혈압 정상으로 만든 다음에 신체검사 받으려던 계획이었다. ㅜ.ㅡ

아 근데 혈압약 처방에 웬 심전도와 엑스레이가 필요하담? 얼결에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 검사를 한 건 그렇다 치고... 그러느라 목걸이를 빼서 가방 주머니에 핸드폰, 이어폰과 함께 넣어두었었는데;;;;; 

밤에 샤워하다가 거울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어라 내 목걸이! ㅠ.ㅠ

그 목걸이로 말할 것 같으면... 몇년 전 귀금속을 업으로 삼은 후배의 설득으로 그간 내가 잡다하게 갖고 있던 14k, 18k, 24k 반지와 팔지, 귀걸이 따위를 모두모두 모아 팔아서 장만한 거였다. 아니 돈을 벌어도 시원찮은 판국에 목걸이까지! 병원에서 나와 약국에 들렀고 약을 지어 나온 뒤엔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걸어왔었다. 핸드폰에 묻어서든, 이어폰 줄에 묻어서든 바닥에 흘린 게 틀림 없었다.

징징 울며 목걸이 분실을 토로하는 내게 후배는 혹시 모르니깐 당장 랜던 켜들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보라고 했다. 얇은 목걸이라서 눈에 잘 안띄어 남아있을 수도 있다면서...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휴대폰후레시와 랜턴을 둘 다 켜들고 되돌아가본 길에 목걸이 따위는 없었다. 낮엔 분명 플라타너스 낙엽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는데 부지런한 미화원분들이 어찌나 깨끗하게 길을 쓸어놓았던지. 어흑.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 물건과 나의 인연이 그 정도였던 거지. 속 쓰리지만 어쩌겠나. (하지만 속상해! 엉엉)

그날 밤 이번 여름 손재수가 정말 끝장이로구나 생각하며 빨리 가을이 오기를 빌었던 것 같다. 


...


그러나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개학 후 첫 수업일이었던 8월 16일. 집앞 골목에서 주차하다 앞차 범퍼를 살짝 긁었다. 아 놔 정말!! 나 왜 이러니. ㅠ.ㅠ 아마도 그날 애들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집앞에 세워둔 이웃 차가 아니었더라면 모르는 척 뺑소니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양심이 자꾸 나를 괴롭혔고.. 결국엔 사고를 실토하는 메모와 연락처를 차유리에 꽂아놓았다. 살펴보고 수리해야 하면 사고처리는 보험으로 하겠다고.

아 근데 그날 저녁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오후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이거 뭐지? 휴가라도 갔나 싶어 다시 문제의 차를 살폈다. 전날엔 당황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차주의 전화번호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고, 사고 부분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허거걱... 근데 번호가 낯이 좀 익네? 차주가 바로 102호 세입자 아가씨였던 것. 그래도 긁힌 범퍼 이외에 전혀 엉뚱한 데까지 죄다 수리하며 옴팡 비용을 덮어씌우진 않겠구나 싶었다. 두어번 얼굴 본 사이고 그쪽 명함도 받아두었는데 101호 사기꾼 부부처럼 의뭉스러운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평일엔 차를 쓰지 않는다더니만 주말에야 겨우 서비스센터에 다녀왔는지 오늘 비로소 견적서와 함께 수리 관련 연락이 왔고, 그래서 나도 정식으로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했고, 완전 마무리는 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마음고생이 끝났다.

설마..  이 여름에 나 또 뭔 일 내는 거 아니겠지? 부디 이걸로 끝이기를 비는 마음으로 이렇게 창피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고 있다. 계속 무사고 운전자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맨날 주차하던 골목에서 수백번 반복하던 동작인데 왜 정신을 어디다 빠뜨리고 실수를 한 건지 자괴감이 자꾸만 치밀어오르지만... 결국 다 내탓이다. 그러니 올 여름 너무 더워도 집도 나도 미쳐서 정신줄을 놓았던 셈치고 이제 그만 좀 하자. 민망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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