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설날 고민

투덜일기 2020. 1. 17. 16:56

최대명절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또 마음이 무겁다. 아니, 올해는 심히 더 무겁다. 재작년 가족회의를 거쳐서 차례는 연1회, 설날에만 우리집에 모여 올리고 추석땐 성묘를 가서 묘제를 지내는 것으로 결론을 냈었다. 그런데 작년초에 갑자기 내가 아프게 되면서 설날 차례는 결국 못지냈다. 아파서 누웠다가 절뚝절뚝 거리면서 장도 보러 다니고 차례 음식 장만을 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설날과 추석 연휴 모두 이불속에 누워 있거나, 편히 쉬면서 잘 보냈다.

1년 사이 나름 많은 일이 있었다. 남의 집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고부갈등이랄까 '시'자 붙은 사람들과 성 다른 며느리의 시각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건들이 몇 차례 이어졌고, 내가 아무리 '페미니스트' 시누이로서 중간 역할을 잘한다고 해도 역시나 나도 '시'자가 붙은 당사자이기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있었다.

암튼 여차저차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기고 남은 결론은 서로 '영원히' 안 보고 사는 것. 두 며느리 중 한 며느리는 없는 셈 치고 살기로 했다. 상황을 정리하기까지 많이 괴로웠지만 사실 나 역시 그 편이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다. 명절만 해도 노동의 상당부분을 내가 더 많이 하고 신경도 내가 더 쓰며 배려한다고 살았는데, 이젠 육체적인 노고는 더 많아졌어도 정신적으로는 더 편해졌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머지 한 명의 며느리도 공감했다. 이제 그 사람 눈치 안봐도 되서 마음 놓인다고.

그러나 셋이 나눠 하던 음식 준비중 삼분의 2를 내가 도맡는다고 해도 (녹두전은 이미 공산품으로 나온 걸 여럿 먹어보고 골라서 이미 냉동실에 사다 두었음!), 남자들에게 설거지며 청소 관련 일을 더 시킨다고 해도, 남은 한 명의 며느리 입장에선 그 외 잡다한 명절 노동의 부담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과연 공평한가.

명절 이외에도 우리집엔 두번의 제사가 있다. 조부모님과 우리 아빠. 제사란 것이 음력으로 날짜를 따지다 보니 거의 매번 평일이기 때문에, 멀리 지방 본사로 내려가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아들 하나는 제사 때문에 상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편도 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모님의 제사를 위해 손주며느리가 음식장만을 해와야 하는 의무는 옳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최선의 결론은 95년과 96년에 차례로 돌아가신 조부모님 제사를 이제 정리하는 것이다. 25,6년이나 정성스레 모셨으니, 울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혼이 정말로 있다면, 이제 그만 되었다, 수고 했으니 그만해라... 라고 하시지 않을까. 여차하면 2007년에 돌아가신 아빠 제사도 그만둘 참이다. 10년 넘겨 지냈으면 할만큼 한 거 아닌가. 그것도 비혼의 딸이 노상 병들어 비실비실하는 엄마를 모시고 우리 집에서 주관하는 차례와 제사는 과연, 집안 모두의 평화를 위해 지속되어야 하는가?

특히나 요번 겨울은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불안정한 환자 케어와 명절 준비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고난도의 미션 같다. 해서 요번 설날에 다들 모이면 또 한번 가족회의를 열어야겠다. 조부모님 제사는 이제 그만 지내기로 결정하는 것이 1안, 작은아버지가 모셔가서 조촐하게 지내시라고 하는 것이 2안. 몇달 전 심신 멀쩡하실 때 울 엄마가 제안했던 대로 절에다 얼마간의 돈을 내고 제사를 맡기는 것이 3안이다.

추석 차례를 없앨 때, 전통적으로 추석땐 다들 성묘만 한다더라, 집안 여자들의 노동이 너무 고달프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가부장제의 화신이 깃들었는지 큰동생과 작은아버지는, 옛날엔 하루 종일 3끼 다 먹고 헤어졌던 때도 있는데, 식구도 많이 줄었는데 (그땐 아버지의 오촌당숙님네 식구들도 10명씩 몰려와서 세배하고 그랬었다)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러냐고, 일년에 몇번이나 된다고 그러느냐고, 이젠 전날 와서 자는 것도 아니고 음식도 셋이 나눠서 하지 않느냐고 말해서, 내가 열이 뻗쳐 뒷목을 잡았었다.  결국 "1년에 한번이든, 3년에 한번이든 힘든 건 힘든 거지! 내가 이제 늙어서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아 그럼 그러든지... 억지 동의를 했던 거다.

그러니 요번에도 제사문제를 거론하면 또 어떤 의견과 난항에 부딪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확고한 건 내가 악역을 맡아서 매듭을 지으리라는 결심이다. 엊그제부터 엄마가 징징거리며 반복하는 말이, "착한 딸은 어디 가고 어디서 악독한 년이 와 있다"는 푸념이다. 맞다, 이제 나도 착한 딸 착한 누나 착한 조카 노릇은 그만하련다. 악독한 년, 싸난 년이 되어서 내 앞가림부터 해야지. 그렇지만 회의하자고 해놓고 강압적으로 통보하고 윽박지르는 느낌은 안 들도록, 부디 현명하고 지혜롭게 우아하게 내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통이 허락한 진짜 의무는 생각 않고 이름만 남은 권위만 내세우려는 늙고 젊은 가부장들도 제발 유연한 사고를 품어주길 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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