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는데;;

투덜일기 2018. 1. 31. 22:26


어제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처음엔 정말로 재가 날리나 싶었던 가는 눈발은 어느틈에 함박눈으로 변했고 두어시간 사이 수북하게 싸였다. 해저문 저녁 왕비마마 등쌀에 또 내려가 아픈 손목으로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다. 이젠 정말 이 건물에 눈 쓰는 사람이 나 아니면 울엄마뿐이다. 아래층 101호 아저씨는 늘 한밤중에 귀가해 오전내내 자는 것 같고 (그래서 종종 밥때를 놓쳐 마당에 묶인 개가 한밤중에 쇠사슬을 쩔그럭거리며 빈 밥그릇을 발로 차는 게 아닐까) 새로 102호 이사온 사람은 얼굴도 본 적 없고 가끔 밤에 불이 켜진 것만 보았는데... 어제 보니 마당 눈을 밟고 망설임없이 집으로 들어갔더라. 하긴 나라도 이런 집에 세들어 살면서 마당 쓸기 의무를 느꼈을 거 같진 않다. ㅋㅋ 그러나 또 착한 나와 엄마는 맨날 아래 두 집 현관 앞과 계단까지 눈을 쓸어준다. 야박하게 계단에서 우리집 현관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만 내는 건 또 좀 아니다 싶어서... 다행히 어제 눈은 별로 수분이 없어 무겁지 않았고 금방 쓸렸다. 다행히도.

째뜬 아마 무릎이 아프지 않았으면 오늘 신이 나서 눈 밟으러 동네 앞산에 올라갔을 텐데 ㅠ.ㅠ 나중을 기약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미끄러운 눈길에 발목과 무릎에 힘주어 걷다보면 멀쩡한 다리도 퍽퍽한데, 괜히 넘어지기나 하면 큰 낭패. 못 간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바닥 울퉁불퉁 안 미끄러운 패딩 부츠 신고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 나무에 쌓인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투덜투덜 커피나 마시자 생각하며 휴대폰에 든 설경 사진을 되돌아보는데, 어랏 맞다, 적년 겨울엔 앞산에 눈 구경 가서 동영상도 찍었었지! 하는 깨달음. 그리고 마침 어제 여기 동영상을 직접 올리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겠다, 곧바로 활용해야지.

휴대폰 스피커로 듣는 바람 소리랑 컴퓨터 스피커 바람소리는 확실히 다르다. 그간 계속 욕만 했는데 ㅋㅋ 새삼 쓸만한 티스토리.

그치만 동영상 초보라 가만히 못 들고 있고 이리저리 휘둘러대서 좀 어지럽다고 미리 고백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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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자수 시작

놀잇감 2018. 1. 30. 01:00

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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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본 첫 그림전시는 뜻밖에도 신윤복과 정선 그림이었다. 2017년 마지막 본 전시가 고궁박물관 희정당 벽화 총석정 그림이더라니.. ㅎㅎ 뭔가 절묘한 인연의 연장선? 

동대문 DDP에서 몇년전부터 계속 간송미술관의 수장고에 첩첩이 쌓여있던 미술품들을 교체전시하고 있는데, 혜원의 전신첩과 정선 그림을 야금야금 나눠 보여주는 바람에 꽤 여러번 갔었지만, 요번처럼 혜원 전신첩을 대거 한꺼번에 구경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영하 18도 예보가 있던 날 하필 이 전시를 보러 가자고 그랬을 때는 에이... 이왕 혹한을 떨치고 나간 거, 바로 직전 포스팅에 적어두었던 기대전시 중 하나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으나, 막상 가서 보니 그저 좋았다. 

혜원과 겸재의 그림만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옛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나 나의 편견으로 괜히 꽁해가지고는 나는 원본이 좋더라, 특히나 디지털로 되살린 현대 미술품 나는 원래 안 좋아해! 라며 궁시렁거렸었는데 ㅋㅋ 그 또한 막상 보니 좋았고 으아~ 감탄한 작품도 있었다. 아이고 민망하여라. 앞으로는 '나는 원래 어쩌고 저쩌고...' 이런 말 함부로 안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했다. 절대고, 원래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좀 변하기도 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말이야...  간송도 요즘 트렌드에 어쩔 수 없이 기개를 꺾었는지, 휴대폰으로 플래시 안 터뜨리면 원본 사진도 찍게 해주더라. 물론 작품 보호를 위해 조명을 하도 컴컴하게 해놔서 잘 나오지는 않지만서도..

해서.. 원본 대신 입구에 진열된 혜원 전신첩 설명을 찍어왔다. 어차피 그림 제목도 혜원이 정한 게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편의상 붙인 것인데, 그 아래 요즘 유행하는 언어로 붙여놓은 태그 글귀들도 기발하고 재미났다. #BGM빵빵 #알콜뽀샵 #사대부스웩.. 막 이래! ㅋ

2018년 5월까지 넉넉하게 계속 전시한대고, 입장료는 입장료는 10,000원이다. 


혜원전신첩이 총 30점인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ㅎㅎ


혜원 전신첩에서 특히 유명한 <단오풍정> <쌍검대무> 같은 그림 속 의상을 고급지게 만들어 마네킹에 입혀 전시해놓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좀 섬뜩하지만 ㅋㅋ 실제로 볼 땐 캬... 한복이며 옷감 예쁘다고 그 앞에서 침을 흘렸다. 

신윤복의 그림 속 주인공들을 모두 모아 한편의 애니메이션처럼(고흐의 작품들로 만든 <러빙 벤센트>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야기를 꾸몄고, 쌍검대무의 무희들은 특별히 따로 춤추는 장면이 나타났다. 혜원 전신첩 중에서 <쌍검대무>를 특히 좋아하는 편이고 그림에서 바람이 슝슝 나오는 것 같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그 느낌을 동영상으로 보니 또 나름 좋더라. 

단점이라면... 영상 화면이 나오는 벽이 너무 길어서 한눈에 볼 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ㅠ.ㅠ 당연히 내 실력 탓이지만 동영상도 잘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저나 나 여기 동영상 직접 올리는 건 처음인가 보다! 이런 기능 있는줄 왜 몰랐지? ㅋ)


겸재 정선은 서른여섯 살엔가 처음 근처 현감으로 부임한 친구 이병연의 초청으로 금강산 구경을 하고는 그때부터 70대가 될 때까지 여러번 금강산 그림을 그렸는데, 연도별로 점점 더 호방하고 세련되게 숙련된 필치로 발전해나가는 그림체의 느낌이 확연히 보인다. 초심자땐 누구나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만, 원본에 집착하게 되는데 나중에 노련해지면 최선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느라 생략의 묘미도 막 부리고 그런 거지...

암튼 금강산 그림들이 담긴 겸재의 전신첩도 멋드러졌으나 사진엔 그 맛이 하나도 담기지 않아 죄다 삭제해버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한 점 선보이자면...

<해악전신첩>에 든 '내금강산도'일 거다


이 금강산 봉우리 사이사이에 현대적인 도시를 접목시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디지털 작품은 이런 느낌이다.

위 그림에선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아래 그림에선 잘 찾아보면 남산타워, 에펠타워도 있으며 9분인가 7분인가 작품이 상영되는 동안 불꽃놀이도 벌어지고 그런다. 

금강산의 4계절의 변화 모습도 있던데 그건 좀 너무 속도가 드려서 답답한 느낌이라 빨리감기 버튼이 어디 있으면 막 누르고 싶었었다. ㅎㅎ

금강산 <총석정>은 금강산 앞바다에 있는 주상절리 '총석' 꼭대기에 세워진 정자 이름이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도 궁금한 총석정 그림을 희정당 벽화로도 보고 겸재 그림으로도 보고... 평창 올림픽엔 북한 선수들이 오고... 언젠가는 정말 금강산 총석정 구경을 나도 할 수 있을까? ㅎ 

둘의 느낌이 비슷한가? ^^;; 


아래는 맨 마지막 전시실 디지털 작품인데... 기다란 벽 화면에 화려한 꽃들과 풍경이 눈부시게 연이어 펼쳐진다. 한참을 구경하며 핸드폰으로 찍으려고 이리저리 애를 써도 색감이 죄다 날아가버려 포기하고 아쉬워하며 뒤를 돌았더니 뒤쪽 거울에 비친 화면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옳타구나 찍어오긴 했는데 이제보니 내 실루엣을 확 오려버리고 싶다. +_+


말도 안되는 혹한에 며칠째 두문불출하다 게으름 떨치고 나간 외출이라 특히 보람있고 좋았다. 이날 동대문에 간 바람에 드디어 자수실과 브로치 재료도 사왔다. (곧 자수 포스팅이 이어진다는 예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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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놀잇감 2018. 1. 23. 21:12

해마다 거의 그렇지만 2018년이라는 말이 제대로 입에 붙으려면 설날은 지나야하는 것 같다. 기분상으로도 아직은 새해가 아니고 '헌 해'인 것 같달까. 1월 1일에 떡국은 끓여먹었지만 어거지로 더 먹은 나이도 아직은 인정 못하겠고... 

암튼 그래서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내야 행복할까 고민하며, 부질없든 말든 이런저런 소망들을 적어본다. 여기저기 소문내고 기록해두어서 그 '말의 힘'으로라도 많이 이루어지면 좋지 아니할까. 자꾸만 맥떨어져선 쓸데없는 회상에 젖어 미련이나 떨고 그러지 말고 이제 좀 앞으로 전진...하고 싶다.  

1. 베트남에 나가 있는 친구네 놀러가기 (마음 같아선 한 2, 3주 가서 얹혀 지내며 놀고 싶지만 에효.. 불가능하겠지. 북쪽 지방 트레킹도 가려면 현재로선 너무 더워지기 전인 4월을 노리고 있으나 과연;; )

2. 무릎 잘 고쳐서 등산 열심히 다니기 (그러려면 남들 잘 때 자는 생활습관부터 길들여야할 듯;; ㅠ.ㅠ) & 서울 둘레길 남은 스탬프 다 찍고 완주 배지 받기 

3. 공포감을 극복하고 치과 & 피부과 가기 (그러나 무시무시한 비용 어쩔!)

4. 작년에 시들해진 취미생활 5분 스케치 & 색연필 스케치 (일단 프리즈마컬러 색연필 150색부터 지르자! ㅋㅋ)

5. 새 취미생활 시작 - 프랑스 자수 (자수책과 자수틀과 천 구입 완료. 실과 바늘, 브로치 재료만 사면 됨 ^^;)

6. 전시회 많이 다니기 (작년엔 기대 전시 적어놓고도 거의 다 놓쳤음)

7. 휴대폰 개비? (액정이 깨지고 배터리게이트 탓에 느무느무 속터지게 느려진 아이폰6를 바꾸긴 바꿔야할텐데 애플은 밉상이고 삼성은 더 밉상이고 LG는 안예쁜데다 요번에 엄마 핸드폰 보니 기본앱들이 너무 흉하다. 아이튠즈에 들어 있는 음악 때문에라도 또 아이폰을 사게 되려나... 아 몰랑)


하여 일단 2018 기대 전시목록부터 적어놓으련다. 12월부터 적어놓은 목록 중엔 벌써 끝난 것들도 있다.ㅜ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 아라아트센터 ~2/4까지

소화:짤막한 이야기 - 서울미술관 ~2/7까지

님을 위한 바다: K현대미술관 ~2/11까지

퀸틴 블레이크 일러스트 원화전: 상상마당 ~2/20까지

지브리 대박람회: 세종문화회관 ~3/2까지

플라스틱 판타스틱: D뮤지엄 ~3/4까지

자코메티 특별전: 한가람미술관 ~3/11까지

마리로랑생 전: 한가람 ~3/11까지

신여성 도착하다: 덕수궁 현대미술관 ~4/1까지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대림미술관 ~5/27까지

강요배: 학고재갤러리 5-6월 예정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덕수궁 현대미술관 5-10월 예정

조선지도 500년 공간, 시간, 인간의 위대한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6/19~9/2

니키 드 생팔: 한가람 6/30~9/25

조선민화걸작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7/5~8/26

제국의 황혼, 근대의 여명: 근대전환기궁중회화 - 덕수궁미술관 11/7~2019 2월

마르셀 뒤샹: 국밉현대미술관 서울관 12월~2019 4월

전시목록을 열심히 적다보니 책도 좀 읽으시지.. 하는 마음이 드네그려. 책은 결심 같은 거 안하고도 좀 많이 읽으면 안되겠니.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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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기를 연말안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겨우겨우 달성한 뒤엔 곧이어 2017 베스트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감기몸살로 계속 빌빌댔다. 그나마 다행히 A형 독감은 아니어서 열은 오르지 않았고, 그냥 팔다리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시고 아프고 눈과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슝슝 나오더니 콧물이 쏟아졌다. 사나흘 앓고 일어나 이제 좀 살만 한데, 아직은 머리가 멍해서 책도 안 읽히고 그래서 일도 못하겠고 꼼지락 꼼지락 쓸데없는 바느질을 좀 하다가 블로그 정리나 하자 싶어졌다.

일단 2017년 정리 포스팅을 다 해야, 나의 모든 유희와 여행 기록을 메모해 놓은 탁상 달력을 내다버릴 수 있다규~ ㅋㅋ




2017년에 본 공연

1. 콜드플레이 내한공연(4/16)

2. 뮤지컬 나폴레옹(9/20) - 임태경, 정선아, 김수용, 박송권 

콜드플레이 공연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ㅠ.ㅠ <나폴레옹>은 왕비마마 모시고 가려고 여름부터 예약했다가 위약금까지 물고 취소하기를 2번이나 반복한 뒤에 겨우 관람성공해 감개무량했다. 아직은 와병중이라 위태위태했고, 아니나 다를까 공연에 집중 못하고 자꾸 나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움찔거려 옆자리 관객이 중간 쉬는 기간에 언짢은 불평을 했다. 에효... 보는 내내 엄마 때문에 긴장해서 뮤지컬에 대한 인상이나 감상보다 그날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안도감이 더 떠오른다. 



2017에 본 드라마 & 예능

1. 셜록 시즌4

2. (여전히) 도깨비

3. 비밀의 숲

4. 이번 생은 처음이라 

5. 윤식당

6. 효리네 민박

<셜록>은 그토록 고대했던 것에 비하면 좀 실망스러웠고... 꼬박 1년 전이라 정말로 아스라하다. 그치만 또 언제 나올지 모를 시즌5를 기다리겠지. <도깨비> 역시 1월에 끝이 난 드라마라 2016년 베스트에 넣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없던 건 아니지만, 영상미며 스토리며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에 반해 <비밀의 숲>은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 한참 바쁠 때 본방중이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며 아껴뒀다가 한편씩 두편씩 어쩔 땐 세편 내리 꼬박 밤새며 봤다. 으아.. 정말 대단한 흡입력과 완성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중간에 몇편 보다가 결혼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대사들이 맘에 들어서 나중에 다시 몰아봤다. 중성적인 여자 이름을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여주인공 이름이 지호, 남주인공 이름이 세희다. ^^; 뭔가 이런 미묘한 설정부터 좋아! 세희 역할의 이민기 배우를 새삼 다시 보게 됐고, 여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도 각각 소홀하지 않게 잘 다루어져 좋았다. 

<윤식당>은 오래오래 집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로망을 잠재우느라 헬렐레 즐거이 보았고(난 식당 종업원들 아니고 거기 나오는 외국인들에 감정이입해서 보는 재미가 좋았다), 이효리와 아이유를 다시 보게 되었던 <효리네 민박>도 제주도 로망과 함께 보고보고 또 보고 재방도 보고 그랬다.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게스트하우스에 취직할까, 감귤농장에 취직을 할까, 뭐 그런 꿈을 아직도 못 버렸다. ^^;  


2017년에 떠난 여행&답사

1. 미서부와 캐나다 빅토리아섬 (4월)  --- 8개월만에 여행기를 마쳤으니 더 설명 않겠다. ^^

2. 서울 북촌 (6월)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1

북촌 한옥마을 여러번 가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가 오잉~ 하며 놀랐다. 종로구와 서울시에서 꽤나 많은 곳들을 새로 가꿔놓았더라. 엄청 예뻤다. 


3. 양주 회암사지 & 장욱진 미술관 & 권율장군 묘 (6월 & 9월) 

양주에서 문화해설사 하시는 지인분 덕분에 속속들이 구경하며 신이 났었다. 폐사지(유구만 남은 절터) 구경을 별로 많이 안해본 터라, 회암사지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아 신기했다. +_+

거의 왕궁터 같았던 회암사지...


건축상도 받았다는 장욱진 미술관 구석구석 예쁘다장욱진 미술관 옆 권율장군 묘에서 내려다보며이는 예쁜 한옥

4. 안면도(6월)

5. 곤지암 화담숲(7월)

6. 속초 동명항(8월)


6. 강화도(9월)

7. 외산 무량사 & 보령 성주사지 & 오천항 수영성(11월)
흐렸어도 무량사의 가을은 눈부셨다나폴리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오천항

같은 날 오전과 오후 날씨가 이토록 다르다 ^^;


8. 수원 화성 행궁(12월)

행궁과 화성 성곽을 1바퀴 다 돌았는데.. 우와.. 너무 좋아서 봄날에 날씨 좋으면 한번 더 가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그림과 설명이 너무도 정확해서 그대로 복원해 놓은 화성은 조선시대 건축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터키에서 못 타본 열기구 선망 때문인지 제자리에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인 저 열기구(18,000원)라도 좀 타보고 싶었다. ㅋㅋ



9. 서울 둘레길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2

빠진 날이 많아서 함께했던 팀들의 공식 둘레길 순례는 끝났는데 난 미처 못 끝냈다. ㅠ.ㅠ 총 28개 스탬프 중 아직 7개를 더 찍어야함. 옛날 우체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탬프 보관소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ㅎㅎㅎ 은근 쏠쏠하다. 스탬프 상관없이 서울 둘레길을 이미 몇바퀴나 돌았다고 큰소리치시던 선배님들도 막상 스탬프북 없으면 말짱 꽝이라고 하자, 별것 아닌데 욕심난다며 결국 157km를 완주하고 완주증서를 받아내시던데... 난 뭐냐.  뭐든 시작은 잘해도 금방 싫증내고, 그렇다고 또 완전 포기도, 깔끔한 마무리도 잘 못하는 나의 미련떠는 성격이 여기도 반영된 것 같다. 남은 스탬프를 2018년 상반기에 다 찍고 완주기념 배지를 꼭 받으리! (새해 결심 중 하나다 ^^;) 

2017년 등산

도봉산, 소백산, 예봉산, 수락산, 관악산, 용마산, 괴산 갈모봉, 내변산 관음봉, 안산 자락길, 북한산 향로봉

하반기엔 거의 등산을 못다녀서 다시 등산 초보자의 폐활량과 몸이 되었음을 12월 북한산에서 실감했다.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2018년부터는 매달 두번씩 안빠지고 좀 다시 산에 다녀볼 작정이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자꾸 무릎이 아파서 등산도 앞으로 몇년이나 하겠나 싶은 심정. ㅠ.ㅠ 


2017년 전시

1. 훈데르트 바서 - 세종문화회관 (포스팅도 했으니 생략)

2. 르누아르의 여인 - 덕수궁 미술관 (그저 그랬음)

3.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상설 전시 & 마티스와 디벤콘 특별전

4. 장욱진 미술관 탄생 100주년 특별전 (6월과 9월에 각기 다른 특별전을 두번이나 봤다) 

5. 고궁박물관 창덕궁 희정당 벽화 - 지금도 전시중이고, 희정당에서 떼어 복원한 금강산 그림이 진짜로 볼만하다. 금강산 관광을 대체 왜 가나 싶었는데, 남북관계 복원돼 관광루트가 다시 뚫린다면 가보고싶어졌을 정도다.  


2017년 기억될 사건

1.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

아무래도 출판과 번역은 사양길이고... 뭔가 더 재미난 일 없을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중학교 1학년들 자유학기제 수업을 한 학기 맡았다. 밤 새가며 수업자료 PPT 만들 때마다, ^^; 형편없이 적은 강사료를 받으며 다들 이짓을 왜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기발랄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한편 기대되고 즐거웠다. 중2병이 중1로 내려왔다고 해서 엄청 떨었는데, 그냥 귀여운 애들이었어! 물론 말 안듣고 떠들고 쿨쿨 자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애들의 그 팔딱팔딱한 기운을 전달받는 느낌이 짜릿했다. 다만.. 연기된 수능 일정에 밀려 방학날 오전까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선 콜록거리는 애들한테 옮아온 감기로 연말연초를 빌빌대며 보내야했지만 말이다. 처음 한두 주 수업때만 해도, 내 다시는 이 짓 안한다! (물론 번역일의 소중함과 귀함을 새삼 깨달았다 ㅎㅎ) 라고 별렀지만, 한 학기를 다 지내고 난 뒤의 마음은 또 잘 모르겠다. ^__^

2. 후배 인터뷰 & 취업 특강 ㅠ.ㅠ

동아리 후배의 부탁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줬는데 그게 일파만파 일이 커져서 결국엔 번역에 관심있는 후배들을 위해 취업특강도 하게 됐다. 어우... 번역 하고 싶은 애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7년도 남지 않은 2024년에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거라는 옥스포드 대학교 보고서도 알려주고, 암울한 출판 전망도 들려주고... 번역은 영어 실력이 주가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돌아왔다. 근데 뭐;; 어차피 힘든 대학생들의 취업... 번역가로 진입하는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  

3. 이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이게 뭔가, 사귀는 건가, 썸인가, 아닌가 지지부진 고민하고, 아니 고민 자체를 거부하고 괜한 두려움에 대화와 감정을 회피하고.. 그러면서 어느 결엔가 뽀르르 달려가 만나고 그러면서 1년 넘게 이어져왔던 관계가 크리스마스에 끝났다. 서로 지향하는 미래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나름 배려했으나 결국 상처 없는 이별은 없다. 따져보니 무려 20년 만이라서 내가 서툰 탓도 있었겠고, 뭔가 되게 두렵고 어려웠다.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다는데, 호감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질까봐, 혹은 사랑이 아닐까봐 겁이 났었다. 째뜬 끝까지 차마 묻지 못한 질문과 미련을 덮어 놓자니, 내상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굳이 2017년을 정리하는 공간에 이 이야기를 적어두는 것은 혹시나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왜 지나고 나서야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 건지 모르겠다. 혹은 추억의 미화를 위해 과장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한숨. 몇번의 고비 이후,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 없게 엄청 잘해주겠노라고 말해놓고, 결국엔 그러지 못했다. 그치만 아무리 잘해주었더라도, 끝이 난 마당에 후회 없는 관계는 없겠지. 행복하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행복하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일단 나는 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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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2017년은 참 많이 놀러다녔고, 출간이 미뤄져서 그렇지 번역 일도 꾸준히 꽤 많이 했다. 블로그질 할 시간과 정신 여유가 없었을 만도 하다. 나와는 상관 없는데도 충격으로 다가온 사람들의 죽음과 친구의 난치병 같은 것들 때문에 괜히 조바심이 나서 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소소한 낙과 순간의 기쁨보다는 자꾸 더 '쎄고 확실한'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해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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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행기의 끝이다.

봄에 다녀온 여행 후기를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겨울에.. 그것도 올해의 마지막날 마무리하고 있는 나는 뭐냐. 언제나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앗뜨거라 일을 마무리하는 성격을 끝내 못버리고 살다 죽겠지. ㅎㅎ

한국에선 계속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자다말고 자꾸 깨어나는 바람에 자도자도 피곤한 날이 이어졌는데 여행하는 동안에는 친구랑 한 침대에서 자는 날이 많았는데도 막판엔 거의 눈감았다 뜨면 아침일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 그만큼 차 타고 돌아다니는 일이 노곤한 때문이기도 하겠고, 내가 여행하며 놀러다니는 걸 즐기는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암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쥐죽은 듯 소리없이 자던 친구도 나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골골 코를 고는 중년 아줌마가 되고 말았지만 서로의 소음이 별로 잠에 크게 방해가 되진 않았다. 살짝 시끄러워서 이리저리 돌아누우면 옆에서 알아차리고 서로 잠든 자세를 바꿔주었다. 그럼 또 언제 그랬나 싶게 쿨쿨쿨..

미국이 테러위협 때문에 출입국 심사를 강화해서 공항에 4시간 전에 나가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출국날 기상시간은 무려 6시 15분이었다. 12시 40분 출발 비행기인데 도대체 왜?! 에효..

하여간 7시에 후다닥 집을 나서 LA E언니네 집에서 다시 차를 바꿔타고 넷이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LAX 공항 에서 짐을 부치고 로비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보름간의 여행을 죽 돌아보니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먹고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계획과 예약, 결산뿐만 아니라 운전도 거의 도맡았던 E언니에겐 정말 뭐라 감사를 해야할지... 그치만 E언니는 또 2015년에 세자매+1 멤버가 한국 다녀갔을 때 제주도와 일본 여행을 계획했던 나의 수고에 대한 빚을 갚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땐 까탈스러운 둘째 I언니와 천진난만하기만 한 어린 올케 때문에 살짝 조마조마한 순간들도 많았는데 ^__^ 요번엔 넷이 다니며 의견이 심하게 안맞는다거나 기분 상하는 순간이 정말로 단 한번도 없었다! 다들 무던한 성격이기도 하려니와 E언니가 워낙 철저하게 준비하고 넉넉하게 베풀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첫날 걷은 회비는 터무니없이 적었던 것 같다. 나중에 샴푸며, 치즈, 비누, 헤어롤 빗까지 E언니는 바리바리 선물을 안겼다. 나중엔 또 와서 동부 한바퀴 같이 돌자! 아니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만나든지! 그러면서... ㅎㅎㅎㅎㅎ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물론 나의 친구 S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여행보다 한국에 나오는 걸 더 좋아해서 문제지만 ㅋ 

친구 S는 1년 안에 어쩌면 올해 안에도 직장을 때려치우고 한국행 비행기를 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어서(아시아나 마일리지가 쌓이는 신용카드를 쓰고 있어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은 늘 마일리지로 장만하기 때문) 나로선 이별이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K언니는 E언니와 헤어져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인천공항과 달리 LA공항은 에스컬레이터 입구부터 비행기 티켓 소지자만 올라갈 수 있더라) 살짝 눈물을 훔쳤다. 그 마음 저도 알지요...

면세점에서 왕비마마께 드릴 뇌물로 립스틱을 하나 골라 사고는 라운지를 좀 돌아다니다 별로 살것도 없다며 소파에 앉아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조명이 마음에 들어서 찍은 딱 1장의 LA 공항 사진이다. 바깥날씨는 여전히 미세먼지 1도 없어 보이는 청명함 그 자체. 

공항 에너컨이 너무 빵빵해서 춥다며 셔츠를 꾸역꾸역 입고 있었는데, 비행기에 오르고 나니 이상하게도 비행내내 너무너무 더웠다.

비행기는 대체로 추워서 담요를 막 2개씩 꽁꽁 두르고 있어야하는 곳 아니었던가?

내 체온이 높아져서 그런 게 아니고, 후드티 입고 탔던 대학생 남자애들은 너무 덥다며 몇번이나 승무원들에게 불평을 할 정도로 정말 비행기 안이 덥고 답답했다. 참 이상한 경험...

그리고 한국에서 출발했을 때는 영화 딱 3편 보니깐 LA 도착해있었는데.. (11시간 걸린다)

돌아올 때는 ㅠ.ㅠ (13시간으로 늘어남!)

비행기 타자마자 1시간쯤 있다 비빔밥으로 점심먹고 나서 내리 영화를 3편이나 봤는데 시간이 딱 절반 지나 있었다. 으어어....

<히든 피겨스>, <재키>, <공조> 3편을 내리본 뒤엔 멀미가 나서 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콜드플레이의 GHOST STORIES 공연실황을 보며 여행 떠나기 전날 보았던 잠실 주경기장 공연의 감흥을 되살려보았다.^^;

마지막으로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를 보고도 비행시간이 한참 더 남아 있어 너무도 괴로워하며 비행기 뒤쪽 공간에서 서성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기도 왜 이렇게 힘이 든 것인지.

장거리 비행기를 탄 여행이 워낙 간만이어선지 좁은 비행기좌석에서 열시간 이상을 버티는 게 정말 너무너무 고역이었다. 동유럽과 스페인, 그리스, 남미 같은데로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막상 계획을 세울 때는 그 막막하고 오랜 비행시간 때문에 겁부터 좀 날 것 같다. 조금만 더 오래 있었다간 폐소공포증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착륙때 창밖만 내다보지 않으면 비행기에서도 고소공포증을 느끼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LA에선 분명 4월 30일 일요일 대낮에 출발했는데, 한국에 도착한 건 꼬박 하루도 더 지난 5월 1일 오후 6시였고,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답답한 공기만큼 탁하고 뿌연 인천 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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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토요일. 매일같이 호텔 조식을 챙겨먹던 습관을 깨면 안된다면서 ^^; 친구는 전날 마켓에서 사온 버터식빵을 굽고 달걀 프라이 한개를 곁들여 커피와 함께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원래는 친구 부모님 댁에 들러서 인사도 드리고 가져간 홍삼 선물도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쿨한 어머니께서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셨다. 몸이 좋지 않아 손님 맞을 형편과 기분이 아니라고... 친정 엄마랑 만나면 괜한 잔소리 듣는 게 일이라면서 친구 S도 차라리 잘됐다고 했다. 물론 사실 나도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는 거 부담스럽고 싫었다! 만세이~ ㅎㅎ

더욱 여유로운 아침 시간... 전날 돌려두고 잔 빨래를 건조기로 옮겨 말린 뒤 차곡차곡 개며 벌써부터 슬슬 돌아갈 짐가방을 쌌다. 외출해서 종일 돌아다니고 밤중에 들어오면 짐 챙길 시간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

이날의 일정은 일단 S의 LA 친구들이자 나와도 안면이 있는 J님의 집들이에 가는 것이었다. 각자 먹을 것을 한두 가지 담당해 싸가지고 가는 식이었는데, 친구S는 워낙 요리와도 담쌓은 데다 전날까지 빡세게 서부일주 로드트립을 하고 온 걸 감안하여 디저트와 과일을 '사가기로' 담당했었다.

행선지는 그라나다힐스애서 LA를 거쳐 남쪽으로 좀 더 내려가야하는 피코 리베라. 주말이라 차가 안막히면 4,50분쯤 걸리는 곳이란다. 

화창하고 구름 한점 없는 날씨! 드디어 하늘색 미니의 뚜껑을 열고 좀 달려보기로 했다. 미친년 꽃다발처럼 너풀거리는 머리칼과 볼살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일종의 실험? ㅋㅋ

이날 찍은 미니 시승 사진을 여행기 첫편에도 올렸었지만 ^^; 암튼 속도계에 보이듯이 시속 2,30킬로미터까지만 뚜껑 열고 달리기에 적당한 느낌이었다. 시속 4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근데 또 너무 차가 빨리 달릴 땐 바람의 저항 때문인지 뚜껑을 덮는 게 불가능하단다. 로컬(지방도로의 의미?)에서 기분 낸다고 뚜껑 열고 달리다 어리바리 닫을 때를 때를 놓쳐 그대로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꼼짝없이 목적지까지 미친바람을 맞으며 가는 수밖에 없다고... ㅎㅎ

친구가 이미 겪어본 일이라나. 해서 우린 고속도로 진입 전에 얼른 뚜껑을 닫고 음악을 틀었다. 으음.. 미니를 장만한다고 해도 난 원래 컨버터블을 살 마음이 없었지만, 컨버터블이 아니어도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용으로 만들어진 차는 아니란 걸 완전 실감했다. 승차감이 어찌나 나쁜지! 게다가 뒷좌석은 또 얼마나 좁은지! ㅋㅋㅋ 예쁘니깐 다 용서가 되는 차이긴 하지만, 클래식하고 귀여운 외관과 달리 운전하는 느낌도 꽤나 육중하고, 일단 내 형편으론 한국 가격이 너무 비싸!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미니쿠페는 나의 (현실을 감안한) 드림카 목록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ㅠ.ㅠ

LA를 지났을 때쯤이던가... 고속도로에서 배트맨이 탔을 성 싶은 길쭉하고 희한한 차 발견! 그러나 워낙 빨리 슝~ 지나가버려 제대로 못찍었다. 미국 고속도로에선 생김새도 색깔도 워낙 다양한 자동차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맥퀸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카> 주인공들이 막 도로에서 돌아다녀! ㅎㅎ

J님의 타운하우스엔 우리가 1착으로 도착. 한국에서 공수한 조각보와 커튼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집구경에 나섰다. 한국도 타운하우스가 유행이지만... 나도 능력이 된다면 아파트의 편리함과 단독주택의 독립성이 혼합된 타운하우스에 살고싶다. ㅠ.ㅠ 

곧이어 도착하신 분들이 한아름씩 안고 온 음식 덕분에 화려하고 어마어마해진 잔칫상을 보라! +_+ 이 중 떡볶이와 김밥만 '사'가지고 온 것이고 나머지는 다 손수 놀라운 솜씨로 만들어 온 음식들이다. 정말.. 배가 찢어지도록 과식을 했다. 친구 S는 넘 느끼하다고 괴로워했지만 내 입엔 해산물 크림 파스타가 단연 최고! 느무느무 진하고 맛있고 푸짐했다. ㅎㅎ

맛있는 두 종류 김치부터 시계방향으로... 해산물 크림 파스타, 떡볶이, 도토리묵 무침, 잡채, 김밥, 오징어 및 야채 튀김의 순이다. 내가 찍은 사진 아님 ^^;;

우리가 사간 케이크는 결국 꺼내지도 못했던 디저트 테이블...

예쁜 약식 또한 C님이 손수 만들어오신 것인데... 한국서 날아온 나 때문에 죄다 특별히 좀 더 신경을 쓰셨다고 해서 감동을 받았다. 내가 뭐라고;; ㅎㅎ 

배가 너무 불러서 거의 각자 여기저기 소파와 식탁 의자에 널브러져 괴로워하던 차.. 우리는 언니들의 호출을 받았다. 두 언니는 <라라랜드>에 나온 명소인 해변과 시장(?)을 돌아보고 쇼핑도 하며 하루를 보냈으니, 출국 전날 저녁은 다시 또 다 함께 만찬을 즐겨야하지 않겠냐는 것. 암요, 그래야죠. 

LA 시내 E언니 집에 친구의 차를 세워놓고 다시 넷이 한 차로 옮겨타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LA 바로 옆에 있는 올드 패서디나. 쇼핑가와 음식점들이 많이 모여있는 나름 관광지? 고급 부티크도 있고, 일반 쇼핑몰도 많은 거리엔 여행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시아인들이 특히 바글바글거렸다. 

큰 길에서 발레파킹을 부탁한 뒤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예쁜 카페와 음식점들이 이어졌다. 아직 해지려면 먼 캘리포니아 봄의 오후 햇살은 6시가 다 되어도 뜨겁고 강렬했다. 

우리의 마지막 만찬은 또 다시 이탈리아 음식 사촌인 그리스 음식. ㅋㅋ 미국식 대형 스테이크를 부담스러워하니깐 젤 만만한 게 파스타 종류일수밖에. E언니가 예약해둔 '산토리니'는 K언니도, 친구 S도 예전에 가본 곳이라고 했다. 나만 처음이야! S는 배가 너무 불러서 늘 시키던 그릴드 깔라마리 (구운 새끼 오징어? ㅋㅋ) 한두 마리만 먹고 말 거라며.. 2주 가까이 이어지는 먹부림 고문에 괴로워했다.   

식당에 올라갈 때만 해도 내려와선 야심차게 디저트로 젤라토를 먹어야지 했으나 나중엔 생각도 나지 않았다 ㅎㅎ



그치만 마지막 만찬인데 그냥 맨숭맨숭 깨작거릴 순 없지... 저는 상그리아도 마실래요! 

이 사진의 햇살과 분위기를 보고 누군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갔다 왔느냐고 물었었다. 으음... 이왕이면 그리스라고 해주지..

째뜬 이 식당의 이름은 '산토리니'였다니까!

술이 약한 S는 곧 운전을 해야하고, 계속 감기로 고생한 K언니도 알코올은 조심해야 하므로 상그리아는 2잔만 시켰는데, 하필 안에 든 과일 중에 망고가 보여서... 망고 알레르기가 있는 E언니는 맛만 살짝 보는 정도로 그쳐야 했다. 

내 입엔 완전 맛있었는데... 친구 S는 한 모금 마셔보더니 독해서 싫으시다고...

연일 밤마다 술을 마셔댄 덕분에 여행기간 동안엔 나의 간이 튼튼해졌거나 혹은 알코올에 대한 면역이 생겼거나(둘 다 근거 없는 억측임을 잘 안다) 중독이 된 건지 정말로 저녁만 되면 술이 땡겼었고, 과음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늘 거뜬했다. 요샌 밤에 맥주 한 캔 마시고도 다음날 힘들 때가 많은데.. 쩝.. ㅠ.ㅠ 



K언니가 이날 먹은 메뉴를 나중에 깔끔하게 정리해 보내준 사진이다. 

이제 보니 배부르다면서 많이도 시켰군.. ㅎㅎ 지중해식이라서 건강에 좋다고, 다 살 안찌는 음식이라면서 E언니가 또 이것저것 시켰던 것 같다. 주말에 예약씩이나 하고 와서 네 사람이 음식을 너무 적게 시키는 건 예의가 아니라면서.. ㅎㅎ 하긴, 총 음식값의 20-25%를 팁으로 주어야하니 음식을 적게 시킬수록 팁도 적어질테니 그말도 맞다. 암튼 이번 여행에선 매번 밥먹고 내가 팁을 계산해야하는 스트레스가 없어서 느무도 행복했다! 모든 귀찮은 일을 도맡아준 E언니한테 축복을!


오른쪽은 에피타이저 중에서 일행들이 가장 좋아라 먹곤 한다는 구운오징어. 그릴드 깔라마리 클로즈업한 거다.

개인접시에 덜어서 K언니가 따로 찍어 공유해준 사진. 이게 오징어라고? 꼴뚜기 아닌가? 내가 괜히 따지고 들며 궁금해하자 친구가 그냥 좀 먹으라고... 너 또 집에 가서 이거 해먹을라 그러지! 놀려댔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좀 볶다가 레몬갈릭 소스 뿌리고 시금치 넣으면 완성될 것 같긴 하다 ^___^




마지막날 기념으로  친구와 나의 사진을 찍어 주겠노라고 휴대폰을 들이대는 K언니에게 거의 보름간 얼굴이 이따만한 보름달이 되었다고 하소연하는 순간이 찍혔다. 너무 웃기기도 하고,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그리워서 스티커를 활용한답시고 마구 공개한다. 

한국에서 간 나는 덥다고 반팔차림으로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데, LA주민인 친구는 춥다고 외투를 걸쳤다. 하긴 전날까지도 아침저녁으론 오리털패딩을 입고 다녔던 친구다. 

6시부터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가 나올 때쯤엔 바글바글 음식점 테라스 자리가 한군데도 빈 테이블 없이 꽉 들어찼는데,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은 정말 우리밖에 없더라. 서로 '비쥬'를 하며 쪽쪽 친한 척 한 사이도 자리잡고 앉으면, 각자 시킨 음식만 죽어라 먹을 뿐, 절대 한 입 먹어볼래 권하는 법도 없다. ^^;; 우린 또 그게 신기해서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각자' 매몰차게 밥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와.. 어떻게 피자도 한 조각 안 나눠주고 혼자 다 먹냐며... ㅎㅎ

식당에서 나와선 부른 배를 꺼뜨리느라 잠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처음엔 눈요기만 할 작정이었는데;; K언니가 남편 선물이며 딸 선물을 마구 고르기 시작하면서, 나도 괜히 갭에 들어가 할인하는 품목 중에 긴 랩스커트와 스트라이프 티셔츠, 모자까지 충동구매를 했다. 그러고 보니 요번 여행에서 치즈와 트러플 오일 말고는 나를 위해  처음 한 쇼핑이었다! 노느라고 쇼핑할 시간도 없는 여행이었구나야...

눈요기하다가 나중엔 언니들과 헤어져 전화통화를 하고서야 겨우 다시 만나, 발레 파킹 부탁했던 자리로 돌아왔는데 와... 우리 앞에서 차를 기다리던 두 아시아인(중국어를 썼다) 아가씨들은 옷부터 핸드백, 신발까지 샤넬로 도배를 했더군. 그러고도 명품 브랜드 쇼핑백을 바리바리 손에 들고 있었다. 어머나 관광객 아닌가봐, 무슨 차 타고 왔나 보자.. 그러면서 지켜보았는데 역시나 주차요원이 가져다준 차도 벤츠였다. 미국에선 벤츠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다지만 흠... 

중국 갑부들이 워낙 많아져서 유학보낸 자식들 중엔 그렇게 고급 차와 명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다니는 애들이 많다고 했다. 차이나 머니의 힘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도 구경하다니 오 놀라워라.

E언니의 차에 올라 다시 LA 시내로 들어갔다가, 헤어져 친구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암튼 뭐 그렇게 뿌듯하고 배부르고 꽉찬 여행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집에 와서 마저 짐을 정리하며 냉장고에 남겨두었던 캔맥주를 또 마셨던가 말았던가... 그 기억은 가물가물.

친구가 팬클럽 활동(?) ^^ 때문에 휴가때마다 거의 1년에 한번은 한국에 나오고 있기 때문에 헤어짐의 아쉬움이 덜했던 것 같다. 예전엔 내가 미국엘 가든 친구가 한국엘 나오든 최소 3, 4년은 있어야 얼굴본다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쏟아지며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국내 있는 친구들보다 카톡도 더 자주하지, 1년에 한번 한국에 오면 우리집에서 아예 숙식하며 지내지... 그러다 보니 곧 또 볼텐데 뭐! 그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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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언니와 K언니, S와 나, 네 사람이 떠난 자동차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LA로, 다시 한국으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할 날이 시시각각 다가왔다는 실감에 전날부터 슬슬 아 우울해, 집에 가기 싫다...고 다들 투덜투덜거렸다. 은행 지점장님이신 E언니는 휴가 중에도 내내 간간히 주요 고객의 전화를 받아 응대하고 일처리를 지시했고, 역시나 은행원인 친구 S는 휴가 중에 은행에서 연락이 오진 않았지만, 동부와의 시차 때문인지 무려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밤9시까지 매일 15시간씩 격무에 시달렸고 토요일에도 일하러 나가기 일쑤인 '노동기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마감을 못지켜 노트북까지 싸들고 간 나는 그래도 중간에 마무리 원고를 이메일로 쏘아보내주고는 본격 휴가모드를 즐기던 참이었다. 성실한 엄마와 아내 역할로 돌아가 끼니 걱정을 해야하는 K언니까지... 다들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나파 매리엇 호텔은 우리에게 특히나 넉넉하고 푸근한 인상으로 남았다. 왜냐하면 ^^;;

샴푸와 목욕 용품의 질과 향에 민감한 E언니는 큼지막한 샴푸와 샤워바스를 아예 큰 통째로 가방에 싸들고 다녔었는데, 매리엇 호텔 체인도 소모품은 지역마다 호텔마다 거래처가 다 다른지... 전날 혹시나 써보니 호텔에 구비되어 있는 샴푸와 린스, 샤워바스가 더 고급이고 머릿결도, 살결도 더 맨들맨들 좋아진 느낌이었다! 감고 나면 더 머리칼 뻣뻣해지는 다른 호텔 샴푸와 뭔가 달라!(동양인의 직모는 다른 인종의 금발이나 흑모, 적모 등등과 성분이라던가.. DNA 조성이 좀 다르다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인종들을 위해 개발된 샴푸를 쓰면 당연히 뻣뻣해질 수도 있단다. 정말일까?) 해서 전날 저녁 호텔방에 들어가 프런트에 연락해 샴푸랑 린스 따위 비품을 좀 더 갖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당근 오케이. 

잠시 뒤 미소띤 얼굴로 호텔방 초인종을 누른 프런트 직원은 ㅋㅋㅋㅋ 꽤 큼직한 일회용 플라스틱 병에 든 샴푸와 린스, 샤워바스를 각 10개씩쯤? 투병 비닐봉투에 한보따리 담아가지고 나타났다. 푸하하하... 옛다! 실컷 원없이 쓰거라~! 던져주는 느낌? ㅎㅎㅎㅎ

E언니는 돌연 진상 고객 된 것 같다고 민망해했지만, 뭐 어때! 우린 신나게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고, 남은 샴푸랑 린스 따위는 친구 S가 모두 챙겨 가방에 넣었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간 컨시어지 라운지에서도 우린 배불리 조식을 먹고나서 바나나랑 사과, 머핀은 물론 카페처럼 큼지막한 일회용 종이컵과 뚜껑까지 구비되어 있는 커피와 차까지 바리바리 점심끼니를 챙겨가지고 나왔다. 

잘 있어라, 인심 좋은 호텔아.. ㅋㅋ


LA로 돌아가기 직전, 300마일(480킬로미터)을 달려 들른 곳은 야생양귀비 보호구역인 앤틸로프 밸리. 요즘 조경식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심는 화초양귀비가 아니라, 야생 양귀비라는데 으음... 우리가 약간 시기를 잘못 맞춰 거의 다 져가고 있었다. LA로 내려올 때 들를 게 아니라, 열흘 전 샌프란시스코 올라갈 때 들렀더라면 마지막 만개 모습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 (그치만 물론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을 포기할 순 없으니 후회는 없다) 주변 언덕들이 죄다 알록달록한 양귀비 꽃밭이라던데 에이.. 입장료 내고 들어간 곳보다 입구쪽 벌판에 꽃이 더 많았다.

정식 보호구역 들어가기 이전 들판이다. 드론 날리는 구경하느라고 한참 넋놓고 바라봄

이 꼬마 드론 조종 엄청 잘하더라

정작 입장료 내고 들어간 언덕 위는 ㅠ.ㅠ 양귀비가 완전 끝물... 저 건너편 언덕엔 흰색 양귀비가 핀다는데 확인할 길이 없고...

굳이 더 올라가봤자, 언덕을 넘어가봤자 별 볼일 없을 거라며 세 사람은 뒤에 남았으나, 나는 그래도 혹시 모른다면서 등산으로 단련한 튼튼한 두 다리를 뒀다 뭐하겠냐며 꾸역꾸역 혼자 언덕을 넘어갔었다. 결과는 당연히 위와 똑같은 풍경뿐..

S는 옛날에 만개때 왔을 때도 별로 볼 것 없었다고.... 여길 뭐하러 오냐고 E언니 안들을 때 궁시렁궁시렁했지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모든 관광일정을 살뜰하게 짠 E언니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드론 날리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이렇게 짤뚱하고 바람결 따라 거의 누워 자라는 야생양귀비를 구경해서 좋았다. ^___^

터덜터덜 황량한 오솔길을 홀로 돌아오는 모습을 친구가 찍어주었는데, 사막지형인 LA가 가까워졌음이 실감되는 이 사진 마음에 든다. 에고.. 저 하늘 좀 보라지..











이후론 곧장 차를 달려 LA시내 한인마켓 푸드코트에서 각자 원하는 한식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친구가 한국 올 때마다 양 적다고 툴툴거리는 LA짜장면이 궁금했던 나는 짜장면, 친구는 짬뽕을 먹었던가... 감기로 계속 골골했던 K언니는 뜨거운 국물이 나오는 걸로 시켰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E언니는 아마 고기였던듯. 

LA 시내 한복판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아파트에 사는 E언니네 주차장에 세웠던 친구의 하늘색 미니로 바꿔타고 드디어 언니들과 헤어져 다시 LA에서 북쪽으로 40분쯤 달려야하는 그라나다힐스에 있는 친구 집에 도착했다. 

친구와 나의 로망이었던 하늘색 미니를 친구는 결국 2년 전 장만해 나를 태워주었다. 이 사진은 사실 다음날 찍은 거지만 ㅎㅎㅎ


묵직한 가방을 집안에 들여놓자마자...

뜬금없이 약을 사다 달라는 친구가 둘이나 카톡을 보내왔으므로, 좀 짜증스런 기분을 참으며 약 쇼핑에 나서야했다. 다음날도 일정이 빡빡해 따로 쇼핑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ㅎㅎㅎ 

사야할 약은 용량 적은 아스피린(심장병 예방에 좋단다)과 생리통에 잘 듣는다는 진통제, 그리고 영양제. 그러나... 헉... 똑같은 상표에도 뭔 약의 종류가 그렇게나 많은지! 미국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양의 종류가 무진장 많은데, 그 중에서 찾아내느라 와이파이도 잘 안잡히는 마트에서  제품마다 사진 찍어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확인받고 그러느라 중간에 버럭 화가 났다. 아니 왜 이딴 귀찮은 심부름을 시키고 말이야! +_+ 앞으론 여행갈 때 몰래 가야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ㅋㅋ



후딱 약 쇼핑을 마치고선 다시 또 다른 마트에 들러 다음날 집들이에 가져갈 꽃과 과일, 아침에 토스트 해먹을 빵을 사들고 다시 친구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맥주 한 캔 해야지.. 싶어 마트 맥주 코너를 기웃기웃하는데, 옆에서 어떤 아저씨가 왼쪽 사진에 든 맥주를 추천했다. 맛도 있고 싸다나. ^^;;

ㅎㅎㅎㅎ 딱히 맛있는 건 아닌데, 요즘 한국 마트에서 4캔에 만원하는 프로모션 행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듯 이 맥주로 그렇게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어차피 500ml 한 캔이면 취하는 주량인데 뭐가 중요하랴.

친구네 집에서 또 다시 세탁기로 밀린 빨래를 돌리고는 도란도란 친구와 수다를 이어갔다. 주로 친구가 또 언제 한국에 나올 것인가...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노동력을 착취하다못해 기계 취급을 하는 은행은 얼른 때려치워라, 아니면 다른 데로 이직을 해라... 나는 계속 그런 조언을 했다. 

근데 친구는 집에 있는 것보다 은행 나가는 걸 더 편해하는 성격이다. +_+ 집에 있으면 당연히 해야하는 집안일이 너무너무 싫다나. 일요일 온종일 시간 보내기가 지겨우시다고. 맙소사, 일 중독증 환자가 틀림없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온종일 침대에서 뒹굴뒹굴 게으름부르는 것의 묘미와 가치를 찬양하고 설파했고... 그러다 술이 올라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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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21:42

시작한 김에 얼른 또 이어 써보자! ㅋㅋ 오늘이 12월 27일이니 딱 8개월 전의 일이다.

이렇게 혹독한 한국의 강추위 속에서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게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 여행을 다녀온 게 벌써 너무도 까마득한데 올해였다니 에효..

암튼 이젠 7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스르르 눈이 떠지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수첩에 써있다. ㅎㅎ)

숙박객의 아침식사는 방키를 카드 리더기에 삐리릭~ 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컨시어지 라운지에 마련되어 있었다. 비즈니스로 온 손님들이 많은 듯, 정장 차림의 남녀들도 있고 약간 민망한 조깅복 차림으로 들어오는 여자들도 있고... 과일과 머핀, 토스트, 스크램블드 에그와 삶은 달걀 정도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쿠키도 있었는데 대박 맛이 없어서 몇개 집어왔다 그냥 접시에 남겨두고 나오며 코스트코 쿠키 같다고 깔깔댔다. 그나마 초록사과 노란사과 빨간 사과 종류별로 사과가 싱싱해서 내가 특히 신나하며 골고루 잘라 먹고 한개 더 챙겨갖고 나왔다.

아마도 이것은 사이프러스 나무겠지?

오전 일정은 역시나 인근 소도시인 연트빌(Yountville)과 세인트헬레나(St. Helena)를 둘러보는 것. 내 머릿속에 상상한 나파밸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와인 산지처럼 꽤 높은 언덕지형의 가파른 경사면에 키작은 포도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ㅎㅎ 캘리포니아 지형이 어딜 가겠나. 대체로 나지막한 언덕들이 거의 평지처럼 이어지고, 곳곳에 크고 작은 포도원들이 불쑥불쑥 등장했다. 그러고는 핫도그처럼 길쭉하게 생긴 가로수들이 귀엽게 서 있고... 우린 그 사이를 희희낙락 달려가고...


이날 들른 소도시 3군데, 연트빌, 세인트헬레나, 칼리스토가는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나파밸리에 오면 다들 들르는 관광지인 듯, 곳곳에 기념품 가게와 특산품(주로 유제품과 발사믹 식초 따위) 가게가 있고 알록달록한 트롤리 버스가 간간히 돌아다녔다. (하긴 서울 강남역에서도 우스꽝스럽게 트롤리 모양으로 장식한 버스가 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다!)


드넓은 한강에 익숙한 내 눈엔 애개개... 울 동네 개천이랑 비슷하군;;

바로 ​내가 딱 원하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미니 발견! 

​강가에 이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 산책로가 있고... 날씨는 화창하고 기분이가 삼삼했다. ^^;;

치즈나 버터, 와인, 발사믹식초, 수제비누 따위를 파는 ​특산품 가게에 들어가보면 꼭 생화를 같이 팔고 있었다. 완전 싱싱한 꽃들이 별로 비싸지도 않아! 

내가 양띠라서 그런지 양 인형을 보면 괜히 반갑다. 진열장 유리에 휴대폰을 딱 붙이고 찍어왔네그려.  

​연트빌 곳곳엔 공공미술(?)의 일환인지 여기저기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재미난 인물상도 있고, 이렇게 과일바구니도 있고... 이때쯤엔 언니들이 사진 찍게 얼른 가서 서 봐라 그러면, 예이~ 그럼서 달려가 찍히는 바람에 웬만한 조각상 옆에 다 내 얼굴이 들어 있어서 차마 공개를 못하겠다. ㅎㅎ​

점심은 연트빌과 뉴욕 딱 두곳에만 있다는 유명한 부숑(Bouchon)  베이커리에서 빵과 커피로 때우기로 했다. ​

노란 건물이 바로 그 부숑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과 커피를 사, 바로 옆 마당 테이블이나 길거리 벤치에서 먹던데... 바게트가 좀 맛있는 건 인정하겠으나 딴 빵이 그렇게나 맛있는 줄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맛있는 빵집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ㅎㅎㅎ

어쩌면 내가 그다지 빵순이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날의 내 감흥인듯... 빵 사진도 참 이렇게나 성의 없게 찍어놓았군. 



빵은 별 인상깊지 않았어도 날씨가 참으로 아름다웠고 눈돌리면 보이는 풍경도 다 예뻤다. 간간이 여기가 미국이구나 싶은 컨버터블 자동차를 보면 촌스럽게 당연히 휴대폰을 들이대게 되고.. ㅎㅎ 





​나 어릴 적 '총채'라고 불렀던 먼지 떨이개가 생각나는 야자수와 푸른 하늘과 연초록의 잎사귀들... 아이고 그리워라. 













세인트헬레나는 저녁 먹을 식당을 골라두고 다시 가기로 했기 때문인지 사진이 별로 없다.  '메인 스트리트'라고 해봤자 왕복 4차로인 도로 양쪽을 죽 걸어 올라갔다 걸어 내려오며 가게마다 들어가보고 갤러리도 하나 들어갔었는데 흠...

세인트헬레나에서 얼결에 들어간 갤러리. 철사 조형물이 멋졌다


암튼 오후 접어들어 다음 행선지는 주변에 다닥다닥 붙은 소도시인 칼리스토가(Calistoga). 예약해둔 와이너리 방문을 위함이었다. 성처럼 생긴 와이너리 이름은 카스텔로 디 아모로사(Castello di Amorosa). 벽돌로 지은 성채 건물보다 우리 눈에 먼저 띄인 건 보리수 아래 돌아다니고 있는 귀여운 양들! 와이너리에 웬 양이냐며 신기해했는데;; 다들 좋아하는 걸 보면 마케팅 신의 한수렸다. ㅎㅎ


어딜 가든 이런 회랑(?) 주랑(?)으로 이어진 공간을 좋아한다. 성채 안뜰 한 가운데 놓인 고풍스런 우물도 마음에 들고...  


바보 인증샷이 되고만 기념 사진 ㅠ.ㅠ

간단하게 건물을 둘러본 뒤 와인 시음장인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는데... 이렇게 연회실에 앉아 기념촬영을 한 나는 아 글쎄, 와인 테이스팅 티켓을 잃어버렸다. ㅠ.ㅠ 

분명 브로셔랑 같이 손에 들고 있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손에 든 게 없어! 앗... 전날 셔츠를 잃어버릴 뻔한 순간에 이어진 대박삽질이었다. 

테이블에 올려두고 왔나보다 돌아갔지만, 흔적도 없었다. 이미 누가 집어가버린 것!

와이너리 입장만 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2잔만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5잔, 10잔...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가격대별로 다 차이가 있는데 우린 5잔 용 $25짜리 티켓을 끊었었다. 

이 사진을 찍어준 K언니가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보더니, 이땐 분명 브로셔랑 노란색 티켓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누가 집어간 게 틀림없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5잔 더 마셨겠지. 흥!

째뜬 다행인 건 E언니가 4사람 티켓을 끊은 신용카드 영수증을 갖고 있어서 별 탈 없이 시음은 할 수 있었다. 매니저한테 영수증 보여주며 티켓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니 별로 따지지도 않고 노 프러블럼! 이라고 ㅠ.ㅠ 멍청하게 사진 찍다 티켓을 두고 나왔다는 자괴감에 빠져 거의 멘붕.. 낙담했던 게 무색해졌다. ㅎㅎ


암튼 시음장인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내부가 이렇게 생겼다. ​


친구는 옆에서 계속 달달한 와인만 시켜 마시는 동안, 나는 꿋꿋하게 드라이한 걸로 달라고 해서 벌컥벌컥 마셨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비앙코.. 와서 보니 수첩에 포도 품종만 적어놨네 ㅋㅋ 

그 가운데 무언지 모를 와인잔도 하나 찍어왔다. 딱 시음할 만큼 조만큼씩밖에 안 따라준다. ^___^

그래도 낮술이라 다섯잔 마시고 났더니 알딸딸... 

술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E언니와 친구S는 둘 다 샛분홍색이 되어 바로 운전해도 괜찮을까 잠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와인 몇 병 사들고 와이너리를 벗어났다. 





와이너리 이름도 좀 그렇긴 했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캘리포니아가 아니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다. ㅎㅎ



아마도 메도우랜드 가는 길..

세인트헬레나에서 미슐랭 별 2개짜리 식당에 6시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우린 다시 시간을 좀 더 때워야했다. 

해서 찾아간 곳은 근처 휴양림 비슷한 메도우랜드(Meadowland). 

숲 잎구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야외수영장이 있고, 군데군데 펜션인지 콘도인지 작은 오두막집들이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고급스런 레스토랑 겸 카페 건물도 있었지만 굳이 들어가서 차를 마실 기분도 아니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냥 쉬엄쉬엄 아스팔트 길 따라 걸으며 저 나무는 이름이 뭘까, 저 꽃은 왜 저렇게 크냐 그런 이야기를 한가롭게 주고받았다.

순전히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기 위한 배꺼뜨리기용 산책과 드라이브. ㅎㅎㅎ  









대망의 미슐랭 2스타 음식점 이름은 소박하게도 '마켓'. 식당 이름이 '시장'이란 얘기다. ㅎㅎㅎ 이름 때문인지 엄청 예술스러운(?)자태로 나오려나 기대했던 음식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고, 맛도 엄청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체로 입이 까탈스럽지 않은데다가 서양 음식이 맛있어봤자지 뭐.. 이런 느낌? ㅋㅋ  느끼한 서양음식을 괴로워하는 친구 S는 미슐랭이라고 해서 비싸기만 하지, 흔하게 먹는 스테이크집이랑 뭐가 다르냐고 투덜투덜...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럴만도 했던 것 같다. 이 정도 샐러드는 나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뎁! ㅋㅋㅋ

스테이크와 파스타도 더 시켰을텐데 K언니에게 넘겨받은 사진도 달랑 이 두장 뿐이다. 연어구이가 맛있어봤자지... 파스타가 맛있어 봤자지... 우린 막 이제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딱히 김치나 한식이 땡기지 않았는데, 촌스런 입맛의 S때문에 모험은 거의 못하고 거의 이탈리안 음식점만 다니다 보니 다 그나물에 그밥처럼 느껴졌던 거다. S는 빨리 LA로 돌아가 짱뽕도 먹고 싶고, 김치도 실컷 먹고 싶다고... 아니 신라면을 끓여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안 그래도 내일이면 곧 돌아갈 거거든! 


마지막으로 이날 돌아다닌소도시 세 군데 중에서 가장 예뻐서 좀 살아보고 싶었던 연트빌 사진 두 장 더 투척.

이것도 연트빌 맞겠지? 세인트헬레나였던 것도 같고 ㅠ.ㅠ


암튼 거리와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멋진 클래식카를 발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자동차 번호판이다. JIM♥CYN아마도 지미와 신디가 아닐까나? 냉소적인 우리는 저 번호판을 보면서 소싯적에 사랑이 넘쳐서 웃돈 주고 저런 번호판을(미국에선 돈을 내고 원하는 번호와 알파벳을 넣어 자동차번호판을 신청할 수 있댄다) 만들었겠지만 아마 지금쯤 이혼했을 거야.. 라고 일갈했다. 위자료로 전재산 아내한테 다 넘겨주고, 남편에겐 달랑 이 차 한대만 남아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되도록 타고 다니는 거지.. (저 정도 클래식 카를 몰려면 부품 값이며 해서 꽤 돈이 많이 든다는 것 같다.). 그러면서 굳이 저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건 전처에 대한 사랑이나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귀찮아서일 거야... (상상력도 참... )  

헐.. 근데 조금 있다가 머리가 새하얀 백발의 늘씬한 멋쟁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분명 지미와 신디가 틀림없어 보이는!) 손을 잡고 걸어와 이 차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우아하게 조수석 차문을 열고 할머니를 먼저 태운 뒤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탔다. 오마나, 옹졸한 우리의 오해였어! 번호판으로도 생색내고 싶을 만큼... 여전히 사랑 넘치는 아름다운 두 사람이었던 거야? ㅎㅎㅎ 우린 괜히 민망해졌다. 





이제 여행기도 겨우 사흘치가 남았다. 올해 안에 끝낼 수 있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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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19:50

묵은 여행기를 다 마무리하기 전엔 블로그에 뭔가를 적기도 좀 떨떠름한데 와.. 정말 이제 5개월도 더 지난 이야기를 하려니 참 민망하다.

게다가 아무런 업데이트도 없는 블로그에 방문자 수는 왜 저런 걸까? ㅠ.ㅠ 실 방문자 수가 아니라 뭔가 티스토리 시스템과 관련된 '야로가 있는' 허수가 틀림없다. 뜬금없이 무서운 댓글이나 달리고 에효..

암튼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건 끝을 내보련다. 이요님의 몽골 여행기를 재미나게 읽으며 다시 여행가고 싶단 욕망이 꿈틀거렸고...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지난 여행 추억이라도 더듬어보자 싶어졌다. 가을 탓인지 요즘 특히나 사는 낙이 뭘까, 종종 우울감헤 휩싸인다. 이렇게 하루하루 이래저래 사는 소소한 낙이 다 사라지면, 누구에게나 어차피 맨 끄트머리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을 하루하루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들까 요즘엔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더 맥이 빠진다. 그러니 더더욱 행복했던 그날의 기억을 복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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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8월이다. 그러고도 마무리를 못하고 또 넉달이 흘렀다. ㅠ.ㅠ 
올해 안에 여행기를 몰아서 다 쓰는 것을 며칠 남은 2017년의 목표로 삼겠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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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첩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ㅠ.ㅠ)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으나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다 7시 반에 이부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미국 서부(특히 캘리포니아)의 수돗물은 대체로 석회가 많이 섞여 씻고 나면 피부도 머리칼도 뻣뻣해지기 일쑤다. 해서 여행기간 내내 거의 밤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잘 말린 뒤 최대한 얌전히 자고 일어나 다음날엔 세수와 양치만 하는 꼼수를 썼더랬다. 아침에 또 샤워를 하기엔 호텔 방을 하나만 쓰는 경우 네 여자의 욕실 사용시간이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샤워는 후딱 한다고 쳐도 일단 머리 말리기가 귀찮아서! 

마침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서 이게 가능했지 요즘처럼 다시 숏커트라면 무조건 제비집이 생겨나 어쩔 수 없이 아침에 또 머리만이라도 감아야했을 거다. 그나마 옛날엔 미쿡 호텔에 샤워꼭지가 죄다 벽에 높이 고정되어 있어서 머리만 감는 게 불가능했지만 ^^; 간만에 가보니 요샌 호스 달린 샤워기로 바뀌어 있더군. 해서 가끔 머리를 너무 비비고 자 난감한 모양새가 됐을 땐 아침에 머리만 감는 일도 있었다.

하여간.. 대충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 조식 뷔페를 먹었다. 딱히 인상적이지 않은 메뉴였는지 수첩에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다. ㅎㅎㅎ 다들 습관처럼 바나나는 하나씩 챙겨 가지고 나온 것 같은데..  

전날도 흐리더니 메드퍼드를 떠날 때도 다시 비가 내렸다. E언니는 나파밸리는 연중내내 화창하고 맑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우릴 안심시켰다. 또 다시 수백킬로미터를 달려야하는 대장정의 길... 전날에 이어 차안에서 간단히 바나나 등등으로 점심을 때웠고, 휴게소 대신 중간 즈음 화장실 이용을 위해 스타벅스엘 들렀다. 

그런데... 이날부터 나의 두뇌는 자꾸만 오작동을 시작한다. 아 글쎄 스타벅스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랑 마들렌을 먹은 뒤 차에 타고 보니 겉에 입었던 셔츠를 그냥 소파 뒤에 걸어놓고 나온 게 아닌가. 출발하기 전에 어랏, 내 옷 어딨지? 생각했으니 망정이지.. ㅠ.ㅠ

K언니가 걱정했다. 아니 우리 중에 제일 총명한 니가 이러면 우린 어쩌니... ㅋㅋ 아니나다를까 이후 나의 삽질은 계속된다. ㅠ.ㅠ

E언니의 말마따나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늦은 오후 드디어 나파밸리에 도착. 

Marriott Napa Valley 호텔 1129호에 체크인했다. 땅 넓고 싼 지역엔 호텔들이 죄다 나즈막히 옆으로만 길고 넓게(여긴 달랑 2층 건물이었던가..) 지어져 있었지만1층방에 묵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와인으로 유명한 나파밸리답게 호텔 입구에도 막 포도나부가 정원수로 자라고 있었다. 앙증맞은 포도도 송알송알 맺혀 있고... ㅎㅎ

아 근데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

걸어가며 대충 휘갈겨(?) 찍으니 이럴밖에. 뭔가 좀 잘 찍어보려면 여러 장 난사해서 하나쯤 건지고, 그 구도를 머리에 익히고 그래야하는데 난 워낙 게을러서... 사진 찍을 때마다 작품 사진 남기는 고수 경지에 오르는 건 아예 글렀다. ㅎㅎ


호텔에서 무슨 워크샵 같은 걸 하는지, 무슨 행사를 진행 중인지 로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더러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담소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호라 여기가 정말로 와인의 고장이구나 했던 것 같다. 

이 호텔에선 2박이나 하고 갈 거라서 일부러 구석구석 돌아보았는데;; 날씨가 좋고 따뜻하면 야외 풀장에서 수영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으나 한낮에 반팔을 입을 정도의 기온은 되었으되 찬물에 들어가기엔 느무느무 추웠다. 혹시나 물이 따뜻한가 (온천도 아닌데 왜?) 살짝 만져보니 앗 차거워! 우리의 수영복은 결국 두번다시 쓸모가 없게 되었다. (물론 실내수영장도 있으나, 수영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굳이 뭣하러 염소물에 들어가냐고!)

그래도 아쉬워서... 호텔방 키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수영장 철문을 굳이 들어가 확인해본 야외풀장은 이렇게 생겼다.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하기에도 날이 좀 흐려지기 시작했지만, 정말 개미새끼 한마리 없다!  가끔 추운 날씨에도 수영하고 그러는 용감한 외국인들 있던데 흠;; 


건물 뒤쪽 정원엔 책 읽기 좋을 것 같은 정자(?)도 보이고 화단과 잔디밭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거기서도 가든파티가 열리고 있어서 소심하게 그쪽으론 사진도 못찍고 게 걸음으로 건물벽에 딱 붙어 지나왔다. ㅎㅎ 














오후에 둘러보기로 한 곳은 인근 소도시인 소노마(Sonoma). 아마도 옛날에 캘리포니아 남부가 멕시코 땅이었을 때인듯, 멕시코 병영과 요새가 있던 작은 도시라서 200년된 집들이 상점과 갤러리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옛 건물을 보존해 복원해놓은 멕시코 막사 내부는 이런 모습. ^^;; 200년 전이라고 해도 몇십년 전 한국 군인들 내무반보다 더 환경이 나은 거 아니냐고 우리끼리 쑥덕거렸다. ㅎㅎ

박물관처럼 꾸며놓은 건물은 4시가 좀 넘었는데도 (문닫는 시간 5시!) 벌써부터 곧 문 닫을 거라며 나가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쳇...우리도 별로 오래 볼 거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교회 건물은 현재도 사용하는 것 같았으나 들어가볼 수 없었고, 종이 매달린 나무 기둥이 어째 교수대 느낌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 서부영화를 너무 본 탓이여.. ㅎㅎ

 


건물 사이사이 예쁘게 꾸며놓은 레스토랑 뒤뜰과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어쩐지 전주 한옥마을 같지 않냐?!고 했던 가게도 만나고...

괜히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눈이 똥그래질만한 가격의 공예품 구경도 했다.

별뚜껑 유리병이랑 촛대 예쁘닷..


점심을 (나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푸지게 잘 챙겨먹자며 거리를 쏘다니다 눈여겨봐둔 The Red Grape라는 식당엘 들어갔다. 요번에도 만만한 이탈리안. ㅎㅎㅎ

나파밸리에 왔으니 일단 와인! 와인 리스트를 참고해 E언니가 고른 건 만만한 스파클링와인이었다. 

오.. 좋아좋아!

술잔 뒤쪽으로 사진 찍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라 웃고 있는 게 좀 찔리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 윗부분 오려서 공개~. ㅎㅎ

홀짝홀짝 샴페인을 마시며 메뉴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담당 웨이터가 슬그머니 테이블에 병뚜껑 공예품(?)을 놓고 갔다. 우린 일제히 우와~ 그레잇! 감탄해주다가 곧이어 한국말로 덧붙였다. 언니, 저 아저씨 팁 많이 줘야겠어요. 이런 재롱도 다 부리고.. ㅋㅋ


음식점 추천 앱에 올라온 후기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피자 도우 위에 채소가 올라간 샐러드를 일단 시키고는 또 다시 피자와 파스타, 키시를 주문했다. 우리가 샐러드 포함 메뉴가 4개밖에 안되니깐 뭘 하나 더 시키려고 메뉴판을 안 내놓자, 웨이터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너네 그 정도면 충분해! ㅋㅋㅋ 오냐, 그렇다면...

거의 싹싹 다 바닥을 내 먹고는 E언니가 디저트를 더 먹을까말까 그러는 걸 우리가 말렸던 것도 같고... 암튼 또 다시 배꺼뜨리려고 이국적인 거리를 좀 걷다가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시선 닿는 곳마다 여기저기 포도원이 보이는 나파밸리... 느낌이 좋았다. 


호텔방에 돌아와 뭘 했는지도 안 적혀있다. ㅠ.ㅠ 2박하는 곳이니 분명 빨래를 했을테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탱자탱자 각자 놀았던 거 같다. 여행이 끝나감을 마구 아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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