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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가

삶꾸러미 2006. 11. 17. 16:54
"언니행복하삼?"

오늘 오후에 받은 짤막한 문자메시지다.
행복한지 불행한지 잘 모르겠으니.. 그럼 불행한 건가..라는 답을 보내고 나서
줄곧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고민이 되는 걸 보니 정말 불행한 건가?

등산 가신 아부지 대신 엄마를 지키느라 집에 있으면서
점심때 무친 가지나물과 오이생채가 맛있게 돼서 잠시 행복했고
조금 전에 달달하게 탄 커피도 향긋하고 맛있어서 행복했고
작업실 화분과 달리 쑥쑥 잘 커주고 있는 토피어리 아이비에 물을 주다가 새로 난 연두색 이파리를 보면서도 잠시 행복했고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냉장고 옆면에 다닥다닥 붙여놓은 사랑스런 우리 조카들 사진을 보노라니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면서 또 행복했는데...

그런 잠깐 동안의 자잘한 행복들이 총체적으로 내 마음을 환하게 비쳐주진 못한다는 생각이 아무래도 더 큰 모양이다.
사소한 일에서 늘 행복과 기쁨을 찾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일 없을 땐 속절없이 놀아야 하는 준백수나 다름없는 프리랜서로서
내년 봄 이후까지 치이도록 작업스케줄이 잡혀 있으니 당연히 행복해야 하고
처자식 벌어먹일 걱정도, 다달이 생활비 낼 걱정도 없이 부모님한테 얹혀 편히 살고 있으니 그것도 행복에 겨운 일일 테고
마음 아픈 일 있을 때 서슴없이 주절주절 넋두리 늘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도 없지 않으니 그 또한 행복해야 할 일이고
불규칙한 삶에 건강 축날까 조심스레 걱정해주는 착한 가족들 곁에 있으니 그 또한 행복인데...
(이것 봐.. 벌써 말투부터 자조적이잖아..)

언제부턴가 자꾸 혼잣말을 하며 나도 모르게 주억거린다.
맞아, 내가 요새 사는 낙이 없어... 라고.

유치찬란하다고 욕하며 보던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던 것 같다.
사랑의 이유를 댈 수 있으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하는 이유를 딱히 댈 수 없는데도 사랑을 느끼는 감정이 진짜 사랑이라나 뭐라나.
그 대사를 들으며 무릎을 딱 치며 공감한 것도 아닌데 오래 기억에 남은 걸 보면
얼추 맞는 말이라고 생각은 한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란 게 원래 분석 가능한 게 아니므로, 궁극의 기쁨을 주는 사랑이나 행복 따위가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지금 이렇게 주절주절 손꼽고 있는 걸 보아하니 진짜 행복하다 느끼는 상황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군.

자꾸만 맥 떨어지는 푸념만 하게 되는 건 단순히 11월의 부족한 일조량 탓인지
아니면 그간 조금씩 소모되어 바닥을 드러낸 자신감의 고갈 탓인지
애써 낮춰놓은 나의 눈높이를 조롱하는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인지
그건 나도 통 잘 모르겠다.

과연 잘, 제대로 살고 있는지 반문하는 지인들에겐
본인에 대한 잣대가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며 엄살떨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것인지 퉁박을 주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서슴없이 건네지만
이렇게 나 역시 내 삶의 행/불행에 대해서는 좀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으니
새삼 그간의 치기에 얼굴이 뜨겁다.

그냥...
객관적으로 볼 때도 딱히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뼈저리게 불행하지 않으므로
행/불행의 경계선에서 행복쪽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자위하고 싶긴 한데
욕심쟁이답게 그것만으로는 확실히 뭔가 부족하다.
"나 요새 ~~~하는 낙으로 살아!"라고 남들에게 큰소리 치고 싶은 겐가.

부질없는 공명심이나 허영 따위 버려야하는데 그것 참...
아무려나
큰소리는 관두고라도, 행복하냐는 물음에 대뜸 '응!'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대책없는 나의 낙관주의나 돌아와주면 좋겠다.
집 나간 이 녀석.. 어서 돌아오너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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