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20.06.29 르네 마그리트특별전
  2. 2020.05.12 재난지원금 기부 실수 3
  3. 2020.05.08 연어 덮밥 3
  4. 2020.04.28 초록 이름 2
  5. 2020.04.23 철마다 옷타령 3
  6. 2020.04.02 2020 벚꽃일기 1
  7. 2020.02.27 80세 2
  8. 2020.01.03 2019 늦은 정리
  9. 2019.11.19 순천만, 조계산 선암사 송광사 6
  10. 2019.11.12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 3

코로나 시국에 비행기도 못뜨는데 어떻게 마그리트의 대작들이 한국에 왔을까 의아했었는데, 당연히 원작 전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장료가 15000원? 미친거 아니야? 씩씩댔으나 30% 할인받을 방법이 있다는 지인의 말에 일단 보기로 하고 볕좋은 날 일행과 인사동에서 만났다.     

그 동안 인사동은 상전벽해... 곳곳이 낯설었고, 전시회가 열리는 인사센트럴뮤지엄은 규모가 조계사 앞길까지 이어진 초대형 '복합문화공간'(?) 같은 곳이었다. 마당에서 기웃기웃 옷구경도 하고 기념품가게도 들여다보고... 드디어 지하전시장으로 입장. 

주말 오전인데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마스크를 쓰고도 사람들과 간격을 유지하느라 제법 신경을 써야 했다.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전시를 알고 잘도 찾아오는지. 

전시장을 둘러보니, 가족과 연인끼리 온 관람객들이 꽤 많았고 다들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치.. 마그리트 작품이 사진빨이 잘 받긴 하지. ^^;;

원화가 아니라 프린트니 사진찍기가 자유로워서 그게 장점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작품 크기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전시장 벽 크기에 맞춰 작품을 집어넣어놓은 구성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래는 코로나 시대의 연인과 키스를 뜻하는 거 같다며 많은 연인들이 인증샷을 찍던 작품이다. 으음. 당연히 그림 제목 다 까먹음. 생각날까 싶어서 설명문도 같이 찍었으나 역시 기억 안난다. ㅠ.ㅠ 

 

투덜투덜 꿍얼꿍얼 트집을 잡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시장 디지털 영상 속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과 줄 서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며, 결과적으로는 나도 즐기고 있었다. 그래 뭐 이 정도라도 나름의 문화생활 즐기는 거 좋지 아니한가. ㅎㅎ 

9월 13일까지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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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회사 홈페이지에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다가 실수로 기부했다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니 왜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좀 전까지만 해도 잘난 척 하며 의아했었다. 

바로 어제 나는 엄마를 대신해서 신용카드 회사에 재난지원금을 신청해드렸고, 버퍼링도 없이 공인인증서나 회원가입 절차도 없이 단번에 금세 끝나는 간편한 과정에 흐뭇했다. 그런데 뉴스에 등장하는 기부금란 표시 화면을 보니 어째 느낌이 쎄~~~ 했다. 금액을 적어서 신청하는 게 아니라 금액을 적으면 그 금액을 기부한다는 뜻이었어! 어어... 나도 금액 적었는데...

째뜬 나는 오늘 신청일이라 무사히 재난지원금 신청을 마치고서 금액 확인 문자까지 받은 뒤, 왜 울 오마니는 어제 바로 재난지원금 신청되었다는 확인문자가 오지 않았을까 불안해하며 다시 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ㅠ.ㅠ 실수로 몽땅 재난지원금 기부해버린 똥 멍청이가 바로 나였다! 내 지원금도 아니고 엄마 지원금을! 헉! 

재빨리 검색해보니 당일 밤 11시30분까지는 곧장 다시 홈페이지에서 착오로 인한 기부금 취소와 재신청이 가능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도 취소 불가능하다며 각종 포털과 SNS에서 강제기부를 유도한 정부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었다. 에이, 설마. 난 그럴 리 없다고 믿었다. 기부는 어차피 강제가 아닌데 어떻게 취소가 불가능하겠어? 뒤늦게라도 시스템 보완이 됐겠지... 

불안한 마음에도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그러나 취소 안 되면 어쩌나 엄청 쫄렸음을 고백한다. 내 실수를 털어놓자 대인배이신 엄마는 40만원 어치 떡 사먹은 셈 치면 된다고 하셨지만 그게 아니죠! 헛똑똑이+똥멍청이 인증도 아니고 어떻게 내가 그런 실수를... 😭콜센터 전화 연결은 아니나 다를까 나 같은 사람들 탓인지 30분을 넘겨 1시간이 다 되도록 계속 대기상태였지만 기다림의 끝은 달콤했으니...

결국 기부금 취소 신청이 가능했다! 다만 확인문자를 따로 보내주진 않을 거라 이틀 뒤쯤 재확인해보라고 함. 평소에 사람들이 왜 한글을 읽고도 이해를 잘 못하냐고 노상 궁시렁거렸는데 남탓 할일이 아니었다. 빤히 읽고도 손이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고, 제대로 읽었다고 읽었어도 머리에서 이해가 안되는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크게 깨달았다. 다시는 문해력으로 남들 손가락질 하지 않으리! 

째뜬 카드사마다 기부금과 신청금 항목이 좀 헷갈리는 건 사실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강제 기부, 착오 기부를 유도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항목을 구성했다고 비난하는 언론도 보이던데--그러니까 정부 욕하며 특히 주의해야한고 알리는 단체 카톡방 공지도 2개나 받았다--진짜로 그랬을까? 돈 나눠주며 굳이 욕을 먹으려고 그런 짓을? 그냥 한 페이지 안에서 직관적으로 다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려다가 그런 폐단이 생겼을 거라 믿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 재난지원금 온라인 신청하실 이웃분들은 주의깊게 잘 살펴보시기를... (참고로 오마니의 신청 카드사는 BC카드였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멍청하고 한심스러워서 트위터에도 남겼지만 여기다 구구절절 반성을 해야 바보짓의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잘못되면 내 잘못보다는 남탓을 하는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가도 요번에 새삼 깨달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나 역시 항목 헷갈리게 해놓은 페이지 구성과 기부 취소 어렵게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엄청 욕했으니 말이다. 며칠 내로 착오 기부금 취소와 관련된 메뉴가 더 잘 보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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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덮밥

식탐보고서 2020. 5. 8. 20:59

 

어버이날 행사는 늘 주말에 미리 당겨서 동생들과 모여 밥을 먹지만, 정작 당일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지나기가 좀 그래서 어차피 먹는 밥이지만 또 한번 메뉴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해서 작년 어버이날엔 스테이크를 구워 곁들이 채소와 함께 접시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다음주 채혈을 앞두고 있어서 최소 일주일간은 나름 눈가리고 아웅 건강식으로 열량을 제한하는 중이라 가벼운 메뉴로 연어덮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칭찬에 워낙 인색하신 엄마가 맛있다 맛있다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 처음 만들어본 거라 간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간도 딱 맞았기에, 다음에도 참고하려고 여기에 기록해둔다. 

그리고... 마트에 나간 김에 카네이션도 사왔는데 ㅠ.ㅠ 아이비랑 카네이션을 예쁘게도 섞어 잘 키웠네 생각하며 들고 와보니 꽃은 조화였다. 나 원 참. 그 옆에 카네이션만 있는 화분도 있었는데 꽃이 별로 안 예쁘길래 탐스러운 것으로 골랐더니 럴수럴수 이럴수가. 눈이 삐었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재료: 생연어 200g(2인분), 양파 1/4개, 다진 마늘 약간, 간장 1과 1/2숟갈, 참기름 1숟갈, 설탕 1티스푼, 고추냉이 약간, 후추, 요리술, 달걀노른자, 무순

 

1. 생연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오미자요리술에 담가 10분쯤 냉장고에 넣어둔다.

2.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에 간장, 설탕, 참기름, 고추냉이, 후추를 넣고 휘휘 젓는다.

3. 재웠던 연어를 건져 요리술을 잘 짜낸 뒤에 양념장에 버무린다.

4. 뜨거운 밥은 좀 식혀야 한다고 해서 그릇에 미리 담아 더운 기운을 뺐다. 담아놓은 밥 위에 양념한 연어와 무순을 올리고 맨 위에 달걀노른자를 얹는다.

5. 노른자를 톡 터뜨려서 비벼 먹으면 됨. 

연어보다 달걀노른자가 주인공처럼 나왔다. ㅋㅋ 연어를  칼로 길쭉하게 잘랐지만 결국 비빌 땐 가위로 더 잘라드려야했다. 다음엔 깍둑썰기로 해야지. 내가 찾아본 레시피엔 부추나 쪽파를 넣으라고 했는데, 마트에 가보니 너무 거대한 양을 사기 꺼려져 내맘대로 무순을 넣어봤는데 완전 딱이었다. 다음엔 무순을 더 많이 넣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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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름

놀잇감 2020. 4. 28. 14:58

그동안 절대 없었을 리는 없고, 어떻게든 꽁꽁 감추어져 있던 추악현 현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이겠지만 연일 뉴스를 보는 게 겁나고 끔찍할 만큼 믿어지지 않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N번방 수사는 아직도 지지부진, 26만명의 명단공개는 멀기만 하고, 소아성애자 성범죄자가 어엿하게 능력있는 남교사로 활약하고, 판사들은 아직도 디지털성착취범죄자들의 형량이 3년이면 적당하다고 한단다. 미칠노릇이다. 얼마나 더 독하게 마음먹고 쌈박질을 해대야하는 건지...

암튼 그래서 머리도 식힐겸 창밖으로 연두색과 초록색의 중간쯤으로 변한 이파리들을 보다가 대체 저 오묘한 색깔은 무어라 불러야하나 궁금증이 일었고... 첫 직장시절 회사에서도 귀한 자료였으며 지금까지도 쓸데없이 갖고 싶어하는 팬톤 컬러북 색상표를 검색해보았다. 팬톤에서 붙인 컬러마다 다 따로 색깔 이름이 있긴 한데 일단 후르륵 찾아본 이미지엔 컬러 이름이 안 들어있네..  

 

순서조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초록색 범주에 붙인 이름과 이미지는 찾았다. 채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팬톤컬러와 연결되지 않을까? 한가하진 않지만,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로 하나하나 우리말로 옮겨봐야겠다. ^^; 얼핏 보니 허브와 채소 이름이 많아서 아마도 대부분은 그냥 외래어 표기가 될 듯. ㅠ.ㅠ 

Lime 라임   Leaf 잎사귀   Sage 세이지   Pine 소나무   Kelly 진초록

Shamrock 토끼풀   Olive 올리브  True Green 참초록   Turtle 초록거북   Froggy 초록개구리

Asparagus 아스파라거스  Green Apple 연두(초록?)사과  Darkest Green 검초록   Bright Green 밝은초록  Barista 바리스타

Grass 풀빛   Cucumber 오이   Mint 민트    Lilly Pad 수련잎  Forest 숲

Holly 호랑가시나무  Parrot 앵무새   Celery 셀러리  Kiwi 키위   Army 군복(군초록?)

나중에 초록빛깔 묘사가 나오는 책을 번역할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지만 그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좋겠다. 암튼 잠깐 눈이 시원해지면서 행복했다. 나의 최애 색깔은 늘 파란색 계통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요즘은 초록 연두 빛깔들이 점덤 더 좋아진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하겠다. 옷색깔이라면야 푸른계통, 검정색이 제일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색깔만으로는 예쁜 색들이 좀 많은가. 형광분홍색 계통을 대체로 극히 싫어하긴 하지만 또 꽃으로 피어났을 땐 군말없이 아름답다 여기게 되므로, 색깔에 관한 한 선호하는 색깔과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 자연에서 아름다운 색깔은 모두 다르고 그래서 몽땅 다 예쁘다는 게 정답. 점점 더 진해지는 초록빛깔에 지치기 전에 영롱한 연두, 잎사귀, 풀빛, 연잎, 참초록, 초록개구리 색깔들을 하나하나 눈에 더 많이 담고 싶다. 열심히 창밖 잎사귀와 색상표를 비교한 결과... 오늘 햇빛 속의 벛나무 잎은 pms370초록개구리 빛깔에 가장 유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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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다 옷타령

투덜일기 2020. 4. 23. 11:08

곤도 마리에의 책은 한권도 안 읽어봤지만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그 사람의 정리 원칙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고 공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단촐하게 정리하고 살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어도, 그건 넓은 공간과 수납장이 확보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일뿐, 수십년된 집에서 수십년된 물건에 둘러싸여 비어 있는 벽이 하나도 없는 옛날 집에 붙박이로 살면서 웬 미니멀리즘! 거기다 우리 모녀는 물건을 잘 버리지도 못한다.

암튼 여러 물건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는 역시나 옷이다. 계절별로 10벌인가 5벌만 남겨두고 다 버린 뒤 돌려입고 살라는 충고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것 같은 기묘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요즘 밀라논나 장명숙님의 유튜브를 구독중인데, 30년씩된 옷도 아직 고쳐입고 갖고 있는 걸 보면서 음.. 과연 나도 체중관리만 계속 잘 하면 그리고 욕심만 버리면 가능도 하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내 옷장에 든 옷 중에서 2, 30년씩 계속 입을 만큼 기본기가 확실하고 가치있는 옷이 얼마나 되려는지 의문도 덩달아 따라온다.

물론 내 옷장에도 20년된 재킷이나 셔츠, 정장이 있다. 우선 두 동생들 결혼할 때 장만한 정장이 두벌. 둘 다 기본형이고 원단도 고급이라 지금 입어도 훌륭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딱 떨어지는 정장에 몸을 맞춰 딱딱하게 유지하는 걸 못견디는 것이 문제다. 그 외에도 결혼식 교복이라 부르는 정장류 옷들이 거의 다 15년 이상 20년은 된 듯하다. 옛날처럼 결혼식 갈 일이 자주 없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ㅋ (그러나 머잖아 친구들의 자녀 결혼식이 다가오겠지;;)

째뜬 철마다 옷타령을 하는 건 전 국민, 아니 전지구인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다. 기억력 탓인가 작년 이맘때 대체 뭘 입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함정. 게다가 들쭉날쑥 이상해진 날씨도 한몫한다. 트렌치코트 같은 건 도무지 입을 타이밍을 모르겠다. 요즘처럼 갑자가 다시 추워져서 패딩입은 사람들도 보이는 4월말. 현명한 옷입기는 뭘까? 든든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거의 50일만에 미용실에 외출했다 추워서 덜덜 떨며 집에 왔더니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도졌다. 

울 엄마의 경우는 '철마다 옷타령'과 '죽을때까지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 입장을 수시로 반복하신다. 외출을 앞 두고 무얼 입고 나가나, 입을 옷이 왜 없지? 작년엔 뭘 입었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옛날 옷들은 주로 좀 무거운 편이니 가벼운 옷으로 하나 장만하자고 하면, 금세 태도가 돌변한다. 나 옷 많다, 80이면 살만큼 살았다, 죽을 때까지 있는 옷만 다 입어도 못 입는다... 실제로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기간이 길어지면 한 계절을 통째로 날리기 때문에 못 입고 넘어가는 옷들이 꽤 많은데, 요번처럼 몇달째 집안에 갇혀 사는 전염병 시국엔 오죽할까. 

올 아카데미시상식의 클라이막스 작품상 시상 장면은 기생충 호명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눈엔 제인 폰다의 등장으로 더욱 인상깊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깨에 걸치고 나온 빨간색 코트 때문이었다. 드레스에 웬 코트? 

게다가 제인 폰다는 무려 1937년생. 울 엄마보다도 3살이나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환경운동가이며 여러 사회문제에 열렬히 목소리를 드러내는 투사다. 그리고 이 빨간 코트는 제인 폰다가 그레타 툰베리를 지지하며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더는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장만한, 아마도 저항의 의미를 담은  빨간색 코트였던 것.

작년에 제인 폰다는 뉴욕에서 매주 금요일 환경시위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체포되는 행동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장면이고 이 때 매주 입었던 빨간색 코트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들고 나왔던 옷이다. 영화제의 한 순간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인 문제를 열심히 전하는 놀라운 태도에 다시 한 번 존경심이 든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싼 옷 사서 금세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뿐만 아니라 청바지도 환경오염의 주역이라고 한다. 화학약품으로 물을 들였다 뺐다 하면서 엄청난 물을 사용한다는 듯.  에효.

저날 아카데미 시상식에 제인폰다가 입고 나왔던 드레스 역시 당연히 재활용이었다고 한다. 수십년전 칸 영화제 때 입었던 드레스라는데, 협찬으로 명품 드레스 빌려 입는 우리나라 대다수 연예인들과 상황이 좀 다른 걸까? 암튼 여든살이 넘어서도 수십년전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놀라운 몸관리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영화제 직후였나 기생충 작품상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제인 폰다의 빨간 코트 이야기를 꺼냈더니 후배들의 중론이, 제인 폰다는 좋은 옷들이 워낙 많으니 안 사고 입어도 되겠지만 우린 안 돼!  ㅎㅎㅎ

암튼 그래도 더는 살림을 늘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지 몇 년. 새 물건을 들이려면 동종의 옛 물품을 버려 가지수라도 맞추자고 노력하며 살았고 가능하면 옷은 사지 않고 버텨볼 작정을 했었다. 작년엔 터져나가려는 옷장과 서랍에서 진짜로 최근 3년간 안 입은 옷들은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정리해 아름다운 가게에 대거 기증했고, 약간 여유로워진 옷장을 보며 꽤 흐뭇했다. 한꺼번에 열벌은 사도 되겠어,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ㅎㅎ 올 들어선 곧바로 전염병과 함께 소비 심리 위축! 물론 프리랜서의 불안한 경제사정도 감안해야 할 일이다. 

째뜬 제인폰다보다 세살 어린 여든살의 엄마는 오늘 코로나19 창궐 이후 중지 되었던 초하루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거의 4개월만에 처음으로 홀로 버스틀 타고 서오릉 앞에 있는 절까지 외출을 감행하시었다. 그리고 추워진 날씨 '덕분에'  다행이라며 2월에 사드린 새 모직 코트에 스카프를 칭칭 매고 나가셨다. 음. 나는 마지막으로 산 옷이 작년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질 않지만 암튼 제인 폰다 따라하기는 우리 모녀 둘 다 쉽진 않을 것 같다. 나이들수록 기분도 옷차림도 추레하면 안되잖아...가 우리에겐 아주 좋은 핑계다. 어쨌거나 저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존경하며 계속 노력은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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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벚꽃일기

투덜일기 2020. 4. 2. 13:49

서울에도 다른해보다 벚꽃이 훨씬 일찍 피어 만개했다는 뉴스를 한참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서북권인 우리집은 확실히 좀 늦었다. 그래도 작년 포스팅을 찾아보니 일주일에서 열흘은 빨리 핀 게 맞다. 작년엔 4월 8일에 기록을 남겼음.

바로 아래 사진은 팝콘 터지듯이 꽃들이 팍팍 피어나기 시작하던 월요일 3월 30일의 모습이다. 계속 날씨도 화창하고 하늘도 파랗고 사진으로만 보면 더할나위 없이 꽃놀이 다니기 딱 좋은 계절인데... 역병시국이기도 하고 마감중이기도 하고, 마음은 바빠도 잠깐씩 베란다 문 열고 나가서 나가서 구경했다. 

 

그러고는 이틀 뒤인 어제. 만우절날의 벚꽃. 집이 동향이라 벌써 해 방향이 넘어가 첫날 점심 먹고 찍은 사진이 우중충했던 게 아쉬워 이날은 오전에 좀 부지런을 떨었고, 끄트머리에 봉우리가 좀 남았어도 젤 예쁘게 찍힌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가지 맨끝 봉오리까지 다 피었으나... 벌써 맨 처음 핀 꽃들은 다 떨어져 휘날리기 시작했다. 마당 한 가득 하얀 꽃들이 깔려있다.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정성을 다하면 더 예쁘게 찍을 수도 있겠으나 ㅎㅎㅎ 이미 어제 최고의 작품을 건졌다고 생각하니 막 난사하게 됨. 이렇게 잔인한달 4월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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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투덜일기 2020. 2. 27. 14:20

10년 전에 엄마 칠순 생일 가족모임을 어떻게 준비하나 고민을 여기 블로그에 적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후딱 10년이 지났고 ㅜㅜ 주말에 왕비마마의 팔순 생신을 맞았다. 작년 생신때는 올해 팔순을 기약하며 아예 동생들도 집에 못오게 했었다. 그때도 병끝이라 엄마 상태가 부실했었기 때문이다.  1년전만 해도 칠순때처럼 팔순 역시 가까운 친척분들은 다 모시고 밥을 먹어야하는 게 아닐까 짐작했지만 1년새 생각이 확 바뀌었다. 다 귀찮아! 준비하는 나의 귀찮음이 가장 크겠지만, 오실 분들도 다 노친네들인데 오라가라 힘드니 안 부르는 게 서로 상책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불과 1달 전만 해도 엄마가 멀쩡히 외식을 하러 나갈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고, 그 말은 조울증세에도 해당된다. 엄마가 심히 아프기 전에 이미 의논했을 때 딴 식구는 절대 부르지 말자고, 우리 삼남매랑 손주들만 모여 평소처럼 조촐하게 밥 먹는 게 좋겠다고 주인공의 동의도 미리 받아놓았었다.

밥먹는 장소도 내 마음대로 정했고 3주전에 예약도 마쳤다. 경치가 밥값의 절반이라는 여의도 사대부집 곳간. 의외의 변수는 코로나19였지만 뭐 차로 이동하고 마스크 쓰고 가면 되겠거니 했다. 9식구 단촐하게 모여 밥먹는 자리라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팔순인데 하나쯤은 뭔가 달라야지 싶어 케이크토퍼를 주문했다. 토퍼까지 아예 세트로 보내주는 화려한 꽃앙금으로 만들어진 떡 케이크를 주문할까 말까도 오래 고민했지만 한식뷔페에 후식으로 떡이 지천일텐데 싶고, 우리 가족들은 몇번 사본 떡 케이크보다 역시 제대로 케이크를 더 좋아하므로 요맘때 제격인 딸기 케이크를 사기로 결정.

케이크토퍼 문구는 대충 샘플에서 이름만 바꾸고 주문했는데 바로 다음날 택배가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대구에서 확진자 폭발하기 직전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요즘엔 뭘 시켜도 빠른 배송이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생필품까지 배달시키며 사는 듯. 휴...

'팔순축하드립니다' 대신에 '항상 건강하세요'를 넣어야하는 게 아닐까도 좀 고민했었는데 도착한 택배를 보니 이렇게 추가 문구와 하트 두개까지 서비스로 넣어 딱딱한 종이에 단단히 붙여서 보내주더군. 뭘 살 때 잘 모르면 돈을 더주는 게 낫다는 옛사람의 진리를 요번에도 실감했다. ㅎㅎ

토요일 오후, 예약시간보다 넉넉하게 집을 나섰는데 다들 바이러스 공포로 집에 콕 박혀 있을줄 알았더니만 길에 차가 꽤 많았고, 음식점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심지어 바로 옆 연회장에선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20200222. 2가 무려 5개나 들어가는 엄청난 길일이라 결혼식이 많다는 이야기는 진즉 들었지만 에고.

째뜬 계획했던 대로 조촐하게, 배부르고 뿌듯하게 이른 저녁을 다 먹고는 케이크를 준비해 조용조용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드린 뒤 엄마에게 소원을 비시라고 했다. 아들놈 하나가 웃으며 '팔십살에도 소원이 있나?'라고 코멘트하기에 속으로 버럭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도 바라는 거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참 내... 


8개의 촛불을 엄마는 네번에 걸쳐 힘겹게 불어 끄셨고, 난 좀 속이 상했다. 원래 케이크 촛불은 거의 한방에 불어끄시는 분이었는데 흠... 사진을 보니 초를 너무 벌려 꽂아놔서 끄기 힘들었던건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로써 우리나이로 80세, 엄마의 팔순 모임이 무사히 지나갔다. 약이 과도해선지 아니면 기억력이 심히 떨어진 때문인지 걱정스러운 수준이 된 건망증도 자극할 겸 열심히 외우게 시킨 영어문장 중 하나. 아임 에이티 이어즈 올드. I'm eighty years old.

헬로우로 시작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동생들에게 퍼돌릴만큼 신나게 읽고 연습하시기에, 이날 손주들 앞에서 뭔가 짧게 영어 스피치도 하시라고 할까 계획했으나 결국 그러진 못했다. 발음도 좋으시고 읽기는 잘 되는데 암기는 어려워. ㅠ.ㅠ  반복 연습을 시키며 내년엔 에이티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싫으시단다. 만으로는 에이티잖아. 계속 에이티만 할 거야. 하긴 나도 맘같아선 계속 피프티만 하고 싶다.  

그나저나 나는 팔십세까지 몇년 남은거지? ㅠ.ㅠ 또 10년 뒤면 엄마가 구순이 되시고 난 육십대가 된다는 게 지금으로선 상상도 되질 않는다. 무섭게 흐르는 시간을 이럴 때나 실감하는 듯. 하지만 그냥 하루하루 무심하게 흘려보내며 사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는 없겠다. 가능하면 나이는 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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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늦은 정리

놀잇감 2020. 1. 3. 01:05

작년엔 블로그도 멀리했지만 대체로 뭔가를 정리하는 것 자체를 게을리했다. 삶이 엉망진창 뒤죽박죽 제멋대로 흘러간 느낌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 탁상달력과 메모를 토대로 대충이나마 한해 기록을 남긴다.

 

= 등산 (그나마 열심히 했으니 1번으로 기록)

3월 도봉산

4월 섬진강트레킹, 강화도 답사

5월 청계산, 가평 호명산

6월 삼척 쉰움산

7월 문경 대야산

9월 북한산 14성문 종주 중 7개 

10월 홍천 금학산, 과천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11월 순천 조계산

12월 아차산&용마산 

그밖에 두어개 이빠진듯 남겨두었던 서울둘레길 스탬프를 모두 찍어 완주했고 (아직 완주증은 못 받으러감 ㅎㅎ)

한양도성 한바퀴 순성도 2번이나 완료.

걸핏하면 도지는 무릎건초염(근막염)과 사라져버린 알량한 근력과 폐활량을 되찾아 다시 산에 열심히 다니는 것이 새해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1월 1일에도 동네 산에 산책 다녀옴. 

 

= 전시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강산을 그리다: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국립중앙박물관)

성북동 가구박물관 

세브란스 이승오 작가 종이공예화 

코엑스 서울 도서전

서울역 전기우주

2019년도 예정 전시를 20개쯤 적어두고 기대했는데 거의 못다녔다. ㅠ.ㅠ 호크니 전시를 결국 놓친 것이 가장 뼈아프다. 

 

= 공연

Slow Life Slow Live 첫날 스팅, 루카스그레이엄, 코다라인

이윤애 제자 음악회(벨로)

연극: 대학살의 신, 안나마수나마라, 그남자 그여자, 2019톡톡

뮤지컬: 팬텀

 

= 영화

나랏말싸미

토이스토리4

겨울왕국2

 

=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www.검색어를 입력하세요

눈이 부시게 

나의 아저씨 (뒷북으로 몰아서 봄) 

 

= 독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지음

패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할로우 시티/영혼의 도서관 - 랜섬 릭스 지음/이진 옮김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 노지양 지음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이현정 옮김

길 위의 인생 -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고정아 옮김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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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저녁에 떠나서 순천에서 1박하고 9일 새벽에 순천만을 돌아본 뒤, 곧장 조계산을 오르는 빡빡한 일정에 따라 나섰다. 경기 강원 근교 산이야 뭐 마음 먹고 친구들과 스케줄 짜면 갈 수는 있겠지만, 남도 쪽에 있는 산들은 이렇게 단체로 버스 타고 가는 기회가 아니면 가보기가 쉽지 않다. 

서울 모처에서 7시30분에 출발. 밤길이고 거의 다 가서도 길이 꽤 막혀서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버스에서 나눠준 김밥을 헐레벌떡 먹었지만 그래도 출출한 건 사실이고 결국 새벽 1시반에 라면에 계란 넣어 끓여먹고서야 뿌듯한 배로 몸을 뉘였다.

당연히 잠은 설쳤고, 계획대로 6시에 펜션을 출발해 순천만 돌아보기 시작. 으아.. 이 얼마만에 보는 여명과 일출인가.​

벌써부터 오리들이 꾸륵꾸륵 울어대며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높고 멀어서 사진엔 잘 안보이지만 맨 오른쪽 사진엔 활강하는 새 한마리가 찍혔다! 

7시 5분이 일출시간이라며 다들 헐레벌떡 용산전망대라는 곳을 오르는데... 에고에고... 날도 추웠고 길은 멀고.. 결국 맨앞 일행은 몰라도 다들 일출을 보는 건 실패했다. 그래도 올라간 보람이 있을 만큼 숲길도 풍광도 아름다웠음.

순천만 갯벌에서 자라는 갈대도 멋졌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동글동글한 섬과 구불구불한 물길, 멀리 보이는 섬들이 어쩜 그렇게 정겹고 에쁜지! 오른쪽 사진에서 붉게 보이는 건 '함초'라고 한다. 함초소금이 분홍색인 이유가 있었어!

전날 밤에 미리 라면을 안 먹었으면 어쩔뻔했냐고 계속 투덜댈 정도로 이미 뱃속은 허기져서 꼬르륵꼬르륵 울어대고, 방한에 신경을 덜 쓴 관계로 내려올 땐 손시리고 춥고... 아침 식당에 가자마자 꾸역꾸역 밥으로 속을 채웠다.

​다행히 조계산 정상 장군봉을 향해 가는 대신 이왕이면 여유롭게 가을산을 만끽하는 쪽으로 방향이 수정되어 선암사에서 송광사 넘어가는 길로 모두 향했다. 얼마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7대 사찰 중 하나인 선암사엘 드디어 가보는군 싶어 신이 났다. 까마득한 옛날 고딩 시절에 '여름수련회'로 갔던 통도사와 대흥사, 마곡사를 가본 걸로 친다면, 비교적 최근 답사로 다녀온 법주사, 부석사를 포함하고 이번 등산을 계기로 6개 클리어. 안동 봉정사만 가보면 되겠다. (그러나 통도사, 대흥사, 마곡사도 30여년전이 아닌 요즘 모습을 좀 보고싶다. ㅠ.ㅠ)


선암사에서 꼭 눈여겨보아야할 것들이 여럿이라고 현직 역사선생님이신 선배가 미리 준비한 동영상도 보여주고 설명도 해주는 걸 비몽사몽 대충 넘겼으나 그럼에도 선암사의 백미라는 승선교는 그 이유를 알겠더라.

승선교의 무지개 아치 안으로 쏙 들어오는 저 전각을 보려면 개울 아래로 내려가야하는데 ^^; 귀찮아서 난 내려가지 않았고 선배님들이 찍은 사진을 이렇게 퍼왔다. ㅎㅎ 내가 찍는다고 더 잘 찍을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 사진은 내가 직접 찍었음. 파란 하늘과 앞서 걸어가는 일행들의 뒷모습과 노란 단풍이 정말 예뻤다.

올 가을은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잎들이 물들기 전에 말라버리거나 타버리거나 오그라들어서 단풍이 별로 안 예쁘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아직 단풍이 절정이 아닌 순천엔 예쁜 나무색이 정말 많았다. 

빨갛고 노란색, 그 중간색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자아냄. 그러나 역시 휴대폰으로 담아온 사진들은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주지 못하고... 에효. 

이번에 처음 안 건 선암사가 조계종 사찰이 아니고 태고종 사찰이라는 것. 그래서 스님들이 입은 가사 색깔이 갈색이 아니고 새빨간 색이다. 태고종은 승려도 결혼을 할 수 있으니 각자 스님들별로 살림집이라고 할 수 있는 요사채가 곳곳에 나뉘어 있고 크고 작은 암자도 자잘하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런 구조의 절집은 정말 처음 보는 느낌.

 


어딜 찍어도 옆 건물 기와가 서로 겹쳐져 걸리는데 그게 또 매력이다. 한옥집 짓고 살며 처마에 나도 풍경 매달고 싶으다.. ㅠ.ㅠ 


어딜 봐도 고풍스러운 사찰의 매력이 느껴졌는데... 꼭 보아야할 것 중 하나가 원통전 모란무늬 문살이라고 해서 홀로 앞장서 다니며 마구 찾아다녔으나 실패. ㅋㅋ 결국 선배님이 가르쳐주셨다. 내가 보러 다녔을 땐 문을 열어 젖혀놓고 예불 중이어서 보였을 리가 없다. 아래 맨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선암사 원통전의 모란문살이다. 진짜 정교하고 아름답고 단청을 새로 하지 않아 고색창연하고... 

선암사의 '뒷깐'까지 서둘러 구경을 마친뒤 송광사로 출발했다. 스님들이 노상 다니는 길이라 수월하다매! 기막혀서... 돌계단이 끝이 없고 구간구간 경사는 또 왜 그리 가파른지. 잘난 척 스틱 없이 오르다가 결국엔 헉헉대며 스틱을 펼쳐들고 몸을 실었다. 다행인 것은 조계산엔 중턱에 보리밥집이 있어서 굳이 도시락을 싸들고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바라보이는 산자락에도 동글동글 단풍색이 예뻤는데...


부침개와 도토리묵을 추가한 4인 상의 위용.





몇번의 헉헉대는 고비를 넘긴 끝에 깔딱고개를 넘고 넘어 '원조 보리밥집'에 도착했다. 산속에 보리밥집도 심지어 여러개! ㅋㅋ 비닐하우스를 곳곳에 짓고 그 안에 평상을 깔아놓은 식이었는데, 배도 고팠지만 우와 쌈채소도 싱싱하고 반찬이 다 맛있었다. 한잔 곁들인 동동주인지 막걸리도 환상의 맛!

아침을 배불리 먹은 뒤 1시도 안 되어 맞은 점심시간인데도 밥한 공기 다 비벼서 이 한 그릇을 싹싹 다 먹어치웠었더니만 진짜 잘먹는다고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아 예, 제가 간식은 안먹어도 밥은 엄청 잘 먹습니다요. 밥심으로 살지요.. 

이 원조집은 무려 1980년(!)부터 영업을 했대고 월요일엔 휴무란다. 도시락 없이 월요일에 조계산 등산하다 찾아가면 큰 낭패일듯. 혹시 모를 훗날을 위해 나도 기록해놓는다. (근데 과연 또 가게 될까? ㅠ.ㅠ) 



흡족하게 부른 두들기며 출발해보니 송광사까지 아직도 남은 거리가 3.5km쯤. 다시 수많은 돌계단과 비탈을 오르고 내려 드디어 송광사를 만났다. 정상만 안 갔지 거리로나 경사로 보나 힘든 등산은 똑같이 다 한 셈이었다. 다들 지치고 시간도 많이 지체되어 송광사 경내는 최대한 후다닥 돌아보기로. 

초록색부터 연두색, 노란색, 선홍색까지 모두 매달고 있는 환상적인 단풍나무들이 곳곳에 있었으나... 사진으로 찍으면 이 정도가 최선이다. ㅠ.ㅠ

​​선암사의 고색창연함에 너무 감탄했던 모양인지, 다분히 새것으로 갈아엎어 현대식 느낌이 풀풀나는 송광사는 상대적으로 별로 감흥이 없었다. 나름 멋진 건축이다 싶었던 회랑과 누각의 위용은 이 정도... ​

내가 귀찮아서 휙휙 찍은 사진들이 위와 같다면 다른 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찍은 모습은 또 좀 다르다. ^^; 

왼쪽은 내가 찍은 선암사의 해우소.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함! 그래서 난 안들어갔고.. 가보면 엄청 높아서 고소공포증이 느껴진다고 한다. 안 들어가길 잘했지. ㅋ

아이폰으로 대충 난사누군가 신형폰으로 찍어 공유해준 사진

이날은 아침 6시부터 펜션을 뛰쳐나가 집에 11시반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3만7천여보를 걸었더라. 하산 길에 무릎보호대를 했음에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른쪽 무릎이 아파 낑낑거렸고, 다음날 당연히 근육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1박 2일간 이렇게 알차게 돌아보는 일정이 또 어딨겠나 싶어서 뿌듯했던 가을나들이. 단풍든 나무는 정말 실컷 다 보아서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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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도 2장밖에 안 남았고, 날씨가 하루하루 추워지는 걸 보니... 올해도 후딱 흘러갈 것 같다. 연말이 되면 괜한 조바심에 뭔가 기록을 남겨야할 것 같지만 또 워낙 게을러서 올해는 뭘 하고 뭘 보고 어딜 다녔는지 죄다 아득하다. 

그래도 기억에 또렷이 남은 공연이 있으니, 적어두자.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 7월이었던가 8월이었던가 아무 정보도 모르고 있다가 벨로가 스팅 내한 예정되었다고 해서 후다닥 예매 오픈일에 무작정 당일권 예매를 했다. 과거 스팅공연을 함께 다녔던 일행을 떠올리면 석장을 사야겠으나, 요샌 관계가 좀 서먹해진 고로 2장만.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흘러 드디어 10월 5일. 하필이면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정치적 세싸움을 벌이는 중이었고 설상가상 올림픽공원 주변 여러 경기장에선 전국체전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려했으나 담요에다 돗자리에다 소소한 먹거리에다 따뜻한 차와 물이 든 보온병에다가 짐도 많았고, 공연 끝나고 난 시각에 일행이 파주까지 가는 일이 요원하여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다행히 꽉찬 공원 주차장을 한바퀴 돌고 났을 무렵 한 대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신나게 주차완료. 오후 4시쯤 올림픽공원 잔디마당 도착했다. 둥두르둥둥 울리는 음악 소리에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록페스티벌 분위기 이 얼마만이냐!

​잔디마당을 한바퀴 두른 담벼락에서 공연포스터 발견! ㅎㅎㅎㅎ 신난다.

입장권을 손목에 차는 팔찌와 바꾼 뒤 입장하니 루카스 그레이엄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한가롭게 공연보는 분위기... 좋다좋다. 신난다. 어깨춤이 괜히 들썩들썩 났다.

5일 출연진을 대충 살피고 유튜브에서 한두곡 골라듣기도 했지만 그저 심드렁했었는데 현장에서 들으니 역시 오.. 노래 좋다. 생김새도 귀엽잖아! 갑자기 확 옷을 벗어 드러낸 상반신은 귀욤귀욤 근육질. ^____^​

​체력딸려서 록페스티벌이든 스탠딩공연은 못다닌다고 선언했지만, 또 막상 이런 현장에 나가보면 없던 체력과 에너지가 막 샘솟는 것 같다. 우리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한두 자리 건너편 깔개에선 반백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중년남녀 관객들이 보였다. 뭔가 덩달아 안심되는 분위기? 젊음의 현장(?)에서 나도 모르게 이놈의 연령주의에 함몰되어 괜히 위축되는 비굴한 태도 좀 버려야할 텐데, 그게 잘 안된다. 남들도 우리 보며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쳇...

이런데 왔으면 치맥은 필수지... 손목에 찬 성인인증 팔찌와 출입증 인증샷도 찍어주고.. ㅋㅋ

루카스 그레이엄에 이어진 무대는 아일랜드 밴드 코다라인. 나로선 듣보잡이었지만 작년엔가 내한공연도 했대고, 드디어 돗자리를 벗어나 스탠딩 구역으로 들어가보니 사운드도 좋고 음성도 좋고 팬들도 어마어마했다. 다들 노래 따라부르는데 우린 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고. ㅠ.ㅠ 에고 미안해라. 째뜬 공연음향이 돗자리에서 듣는 거랑은 천지차이라서 이전 공연도 들어와서 들어볼 걸 후회가 됐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스팅...

스팅 내한공연을 간다고 하면 비아냥거리는 누군가는 맨날 옛날 노래만 재탕할 뿐 최근 노래는 넘 후져서 들어줄 수가 없다는 말도 하지만 흥! My Songs로 세계 투어중인 연주는 아는 노래라도 느낌이 또 달랐다. 나 역시 또 앨범을 살까말까 망설였었는데 공연 들어보고 CD 사기로! 밴드 공연에 어울리게 편곡한 노래들이 새삼 정겹고 좋더라는.​

2년만인가 3년만인가... 다시 본 스팅은 여전히 변함없이 날렵하고 우아하고 멋졌다. 이 아저씨는 대체 목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걸까. 함께 공연온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는 확 늙어버린 느낌이던데.. 그래서 요번 공연에서도 도미닉 밀러의 아들이 더 멋진 활약을 보이는 것 같던데 참 나... 랩을 곁들인 편곡도 신나는 코러스도 다 좋았다. 에효... 행복한 한숨. 또 언제 스팅을 보게 될까? 야멸차게 앵콜 없이 90분 공연이 끝나고 쌩 돌아선 스팅을 아쉬워서 몇번 더 불러보다 우리도 공연장을 나왔다. 자정을 향해 달려가며 차에서도 계속 스팅 노래들을 들으며 행복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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