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17.05.30 여행기 예고 ^^ 5
  2. 2017.05.25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2
  3. 2017.04.10 2017 벚꽃일기 4
  4. 2017.03.27 글쎄... 8
  5. 2017.03.07 너의 이름은 & 라라랜드 5
  6. 2017.03.06 그래도 커피 4
  7. 2017.02.15 훈데르트바서展 6
  8. 2017.02.04 성수동 대림창고 4
  9. 2017.01.18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 가나 아트센터 7
  10. 2017.01.02 2016 Best 9

여행기 예고 ^^

여행담 2017. 5. 30. 14:54

콜드플레이 공연 후기도 1달도 더 지나 겨우 마무리를 끝냈으니, 차츰 여행기도 써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쓸 땐 자랑용 포스팅 목적이 가장 큰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나를 위한 소중한 기록인데 어디에도 남기질 않으면 그냥 다 잊히고 사장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몇년 전 터키 여행이 바로 그 예다. 같이 갔던 후배가 겪은 슬픈 일 때문에 도무지 여행기를 쓸 형편이 되지 않았으나, 이젠 사진을 들여다봐도 어디가 어딘지, 그때 무얼 했었는지 거의 기억나질 않는다. 그러니 남은 기억 휘발되기 전에 요번 여행기는 좀 남겨볼 작정이다. 

헌데 계속 크고작은 바쁜 일이 겹치고 거기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문장력 딸리는 현상이 극심해져 글 한줄 쓰는 게 겁나고 망설여지는지 좀 됐다. ㅠ.ㅠ 그러니깐 여행기는 그런 일종의 근심병과 엄살을 극복해보고자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에효.

일단 시작을 하면 마무리를 하는 것도 강박적으로 신경쓰는 인간이므로, 이번엔 예고부터 시작하련다. ㅎㅎㅎ 이번주엔 교정지 작업이 있고, 왕비마마 백내장 수술이 있고 뭐 이래저래 또 바쁜데, 바빠야 딴짓이 하고 싶은 증상은 여전함에도 그 딴짓 중에 블로그질이 포함 안된다는 게 문제다. 여행기는 또 엄청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니깐...


우선 맛보기로 거의 '로드 무비'를 찍는 것 같았던 10박 11일간 나의 여정 지도를 올려봄.

갈때올때


무려 왕복 5천 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거리여서, 원래는 나도 국제면허증을 발급해가지고 번갈아 운전에 동참을 하려했으나, 마감에 쫄려서 출국직전까지 일하다 결국 노트북을 싸들고 가야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운전은 친구와 친구 언니 두 사람이 도맡아야했고, 나는 뒷좌석에서 편히 졸지 않으면 조수석에서 CD와 mp3를 교체하는 역할만 담당했음.

미국이란 나라가 별로 매력도 없거니와 과거 출장과 친구 방문을 빌미로 몇번 다닌 걸로 족하다고 여겨, 미국 갈 돈 있으면 차라리 딴 나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던 내가 요번에 친구의 부름에 전격 응했던 건 아마도 영화 <라라랜드>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볼품없고 황량하던 LA가 영화에서 좀 근사했나 말이다. ^^; 그치만 또 결과적으로 LA는 도착한 날과 출국 전날만 찍고 왔을 뿐이다. 암튼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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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달도 더 지난 공연 후기를 쓰려니 민망하지만... 연말 집계할 때 보나마나 최고의 공연으로 꼽고 링크해두려면 포스팅을 해야하느니라.. 속으로 계속 되뇌고 있었다. 그날의 감동은 이미 다 식어 아련하지만, 휴대폰에 든 사진과 동영상을 가끔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해서 미소가 벌벌 흐른다. 내 평생 드디어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았구나...​

작년에 현대카드에서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소식을 알렸을 때, 부리나케 현대카드를 신청했으나 발급을 거절당하고 (나홀로 프리랜서는 수입 있는 남편이 보증서주면 카드 발급되는 가정주부보다도 못하다는 걸 또 한번 알게 되었다), 그럼 사학연금 수령자인 울 엄니는 어떤가 신청해보았더니 떡 하니 카드가 날아왔다. 비참처참민망x1. 

엄마카드라도 어디냐 감지덕지... 하지만 4월 15일 공연은 사전예매도, 본 예매도 모두 결과는 실패. ㅠ.ㅠ 비참처참민망x2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4월 16일 추가공연이 잡힌 뒤 또 다시 예매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역시나 카드 소지자와 예매자 이름이 달라서 그런 건지 나는 결제에러로 실패... 비참처참민망x3. 다행히 벨로와 지다님이 여분으로 예매한 표를 넘겨받아 드디어 역사적인 공연 구경에 나서게 되었던 것. 

내 인생은 나 혼자만의 운으로는 도무지 잘 풀리질 않는 건가 싶은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결국 나의 불운은 해가 바뀌어 실제 공연날에도 또 한번 입증된다. ㅋ 그건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오프닝 공연에서 괜히 힘빼지 말자며 느긋하게 저녁먹고 커피마시고 노닥거리다 본 공연 시작 직전에 공연장으로 들어가선, 전날 공연을 본 파피 따라 맥주 사들고 인증샷부터 찍었다. 화장실 문제가 살짝 고민되었지만 공연장에서 술마시는 거 신났다! 까마득한 옛날 헐리웃볼에서 공연을 보며 와인을 마셨던 생각도 나고... 야구장에서 치맥하던 생각도 나고... 암튼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첫곡 A head full of dreams가 흐르면서, 입장 때 나누어준 손목밴드가 자동으로 작동이 시작되어 잠실주경기장 전체가 신기한 불빛으로 물들어가는데 하필 내 건 불량이었다. 흑흑흑... 불이 안 들어와! 불운한 인간은 어디서든 티가 나는구나.. 에효.  비참처참민망x4

지나던 진행요원에게 하소연하니 간혹 불량품이 있다며 직접 입구로 내려가 바꿔와야 한단다. 아...그냥 포기하고 공연에만 집중해야하나 우유부단하게 마구 고민하고 있는데 내 오른쪽 옆옆 사람도 마침 불량이라, 자기 친구는 바꾸러 내려갔다며 내 바로 옆에 앉은 이십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 관객이 그래도 바꾸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 공연 내내 속상해하느니, 한곡은 귀로만 듣자 싶어 얼른 뛰어내려갔다. 다행히 출구와 통로에서 멀지 않은 자리라 두번째 곡이 끝나기 전에 후다닥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길 잘했지...

자이로밴드?라나 뭐라나 이렇게 조명따라 음악따라 색깔이 변하는 신박한 물건을 나도 함께 누리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싶다. A sky full of Stars 노래 나올 때 잠실주경기장이 온통 영롱한 별빛으로 뒤덮인 듯한 광경이 펼쳐진 순간 너무 좋아서 살짝 눈물이 솟았었다. 가사처럼 Such a heavenly view 가 아니고 뭔가! ㅠ.ㅠ


예매를 하고보니 4월 16일이 마침 세월호 참사 3주기라 신나게 방방 뜨며 놀긴 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노래 제목도 공교로운 <Yellow>가 흐르다말고 공연사고인듯 음악이 뚝 끊기더니 노란 리본이 화면에 떠올랐다. 아 이 짜식들... 뭘 좀 아는구나. 화면엔 세월호 노란 리본, 관객석엔 노란불빛들... 다시 광화문 촛불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나름 셋트리스트 찾아 미리 예습한다고했는데도 처음 듣는 듯한 노래도 있어서 난 아직 멀었구나 했었고, 나라마다 크리스 마틴이 따로 작곡해 불러준다는 노래는 너무 아마추어스러워서 별로였다. ^^; 그치만 1, 2, 3집에 들어 있는 어쿠스틱한 노래들도 꽤 많이 불러주어 어찌나 기쁘던지... <Fix you>도 <In My Place>도 라이브로 듣다니.. ㅠ.ㅠ 기념으로 소장할라고 <In my place>는 쬐끔 동영상도 촬영했다. ㅎㅎ  

점점 더 상업적인 음악만 추구하고 대형공연장에 적합한 빵빵 울리는 EDM 쪽으로 가는 게 영 마뜩찮지만 막상 들어보면 중독성이 정말 엄청나다. 처음 음반 나오면, 에이 별로야 그러다가 어느새 중독되서 흥얼흥얼 따라부르고 찾아듣게 되는 묘미?가 있는 듯. 그러니깐 이틀간의 공연에 팬들이 이토록 열광하고 매진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닐까.  요즘 애들이 듣기엔 당연히 더 최근 음반들이 더 매력있을 거 같다.

게다가 대형공연장 공연 노하우가 쌓이고 쌓였을테니 볼거리도 풍부하겠다, 팬서비스 훌륭하겠다(스탠딩석 한가운데 런웨이같은 무대말고도 갑자기 중앙 조명탑 아래쪽에서 나타나 노래불러주는 거 완전 좋더라. 물론 나는 맨눈으로 얼굴 확인하기 어려운 2층 좌석이었지만;; 거리는 가까워질수록 좋은법!), 크리스 마틴 가창력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뛰어다니며 노래하는데도 헐떡거림 없이 그 정도면 진짜 훌륭하다 싶었고, 형광봉 역할 대신하는 자이로밴드 활용도 좋았지만 조명도 예쁘고, 중간에 공굴리기? 같은 퍼포먼스도 즐겁고 맨 마지막 불꽃놀이ㅠ.ㅠ로 마무리하는 것도 다 좋았다. 사진에 실제 색감이 잘 안나타나는데도 ​이 정도로 예쁘니 뭐;; 

크리스 마틴이 17년만에 와서 미안하다며 또 오겠다고 하던데, 과연 언제나 오려는지? 지정석에서 간간히 일어나 열광하기에도 힘든 나이인지라 이왕이면 빨리 오너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 과연 재공연이 잡히면 난 또 미련없이 예매전쟁에 뛰어들것인지 그건 또 모를 일이다. 표만 구할 수 있다면야 이번엔 혼자 앉는 자리도 감지덕지였으나, 다음에 또 혼자 뚝 떨어져 앉아 관람하라면 싫을 것 같다. 영화든 공연이든 감흥을 즉각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더 즐거운데 말이지... 

소음 민원문제라는 듯, 공연이 매몰차고 냉정하게 앵콜곡 하나 없이 끝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셋트리스트 마지막인 <Up & Up)이 흐르자 아쉬운 마음에 또 동영상을 잠깐 촬영하고는 마음을 달랬다. 아 근데 내게 자이로밴드 바꿔오라고 조언했던 여자애들 둘은 마지막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후다닥 공연장을 빠져나가더라. +_+ 공연 내내 미친듯이 춤을 추어대더니만 니들은 편한 귀가가 더 중요했구나 싶어 좀 놀랐음.

마지막 인사와 함께 관객석에 조명이 들어오고... 아쉽지만 빠이~

주경기장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밀리듯 지하철역으로 걸어가 집으로 돌아오며 계속 다시 콜드플레이 음악을 복습하는데 어찌나 흐뭇하던지. ㅎㅎㅎ 이날 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곧장 다음날 LA로 날아가기 위해 짐을 싸야했다. 약간은 미친짓이라고 여기면서도 내 생전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은 또 없으리 짐작하며 그래서 더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콜드플레이는 미국으로 향하는 11시간 비행 동안에도 중간중간 나를 위로해주었다. 아 글쎄, vod에 콜드플레이 공연실황도 있더라니깐! ㅎㅎㅎ   


티스토리에도 동영상 곧장 올리기가 있는줄 몰랐다 ^^; 알게 된 기념으로 하나 자랑;; 마지막곡 Up&U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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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벚꽃일기

투덜일기 2017. 4. 10. 12:40

벚꽃타령을 거의 해마다 빠지지 않고 하고 있는 건 매번 고백하지만 올해로 벌써 10주기가 되는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 테고, 어쨌거나 올해도 집앞에 벚꽃이 만발했다. 동네 안산 벚꽃길도 지난 주말이 축제기간이었는데,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개화일 예측이 어긋나 망해버렸듯이, 이 동네도 엊그제 주말엔 꽃봉오리만 분홍색으로 열렸을뿐 3분의 1도 피지 않았다고 한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주말에 잠깐 엄마 모시고 작년처럼 앞산으로 봄소풍 갈까 했었는데 날도 흐려지고 꽃도 없다니 일단 패스~. 그치만 엄마도 나도 하루하루 팝콘처럼 터져가는 집앞 살구나무와 벚나무 꽃을 매일 베란다에 나가 사진에 담으며 좋아라했다. 꽃놀이가 따로 있니, 이런게 꽃놀이지, 밖에 나가면 시끄럽고 정신만 사납다, 라고 엄마가 말해주어 일단 안심했다.

블로그에 자랑할 만개일을 며칠로 해야하나 분홍분홍하게 꽃눈이 올라올 때부터 관찰하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늘 그래왔듯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봄비가 한번 내렸다. 요즘 미세먼지가 좀 독한가. 혹시 올해 벚꽃은 누렇게 미세먼지에 뒤덮여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으나 결국 그건 기우였다.

나무 심으라고 하늘에서 일부러 비를 내린 건지,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던 4월5일 식목일에 담은 살구꽃과 벚꽃이다. 한 10분의 1쯤 피었다고 해야하나. 

4월5일 살구꽃4월 5일 벚꽃


비가 내리고 나서 미세먼지가 물러가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던 4월 7일 금요일. (사진을 매일 찍은 게 아니었나보다. 켁..) 살구꽃은 이미 꽃잎이 막 떨어지기 시작했다. ​​

4월 7일 살구꽃 

이 살구꽃 사진 찍어 놓고 들여다 보며 혼자 우와 이거 고흐의 아몬드꽃 필 나는데! 라며 혼자 좋아했었는데 이제보니 하나도 안 그렇다. ㅠ.ㅠ ​

햇살이 찬란해서 오히려 벚꽃이 잘 안나오는 것 같이 필터를 사용했더니만 또 너무 밝다. 

4월 7일 금요일

이미 난 이날로 벚꽃 만개선언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벌도 엄청 날아들어서 베란다 나가기 좀 무섭고... 살구꽃은 꿀이 많은지 이상하게 생긴 새들이 날아와서 막 꽃을 쪼아먹기도 했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우왕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게 꽃이 더 풍성해졌다. 드디어 다 피었군 싶은 느낌. 탐스러웠다. 

4월 8일 역시나 필터 사용

​필터 없이 그냥 좀 당겨서 찍었더니 이런 색감이 나왔다. 흠.. 이것도 예쁘다. 근데 나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ㅋ ​

4월 8일 토요일

그리고는 드디어 오늘... 살구꽃은 절반 이상 다 떨어져 마당에 나뒹굴고, 벚꽃도 한잎 두잎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앞산 벚꽃길엔 아직 절반도 다 안피었다는데... 우리집도 언덕이건만, 산밑이라 공기가 더 차가운 건지 높이 몇십미터 차이로 같은 동네라도 개화시기가 그렇게 다르다.  

햇살도 예쁘고, 미세먼지 없는 하늘도 파랗고 예쁘다. 

4월 10일

하여... 올해 벚꽃 만개일은 4월 10일인걸로! ㅎㅎ 이것으로 2017 벚꽃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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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투덜일기 2017. 3. 27. 23:31

인생이 특히나 무의미한 나이대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여전히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 사회와 시국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들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듯 주변에서 자주 묻는다. 넌 요즘 무슨 낙으로 사니?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게 되지 않나? 정말 친한 친구에겐 혼자 있을 때와 똑같은 맨 얼굴을 드러낼 때도 있고 또 못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사람들 앞에선 아주 두툼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도무지 사는 낙이 없는 것 같다는 친구들 눈에 그래도 나는 뭔가 되게 분주하고 희희낙락 꽤나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넌 그래도 신나게 살잖아, 그런다. 아차 싶었다. 내가 행복한 가면을 너무 들이대고 살았던가? SNS가 종종 나 이렇게 바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과시와 자랑의 장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름 조심한다고는 하나, 솔직히 가끔은 그런 의도적인 과시가 오히려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길가에 피어난 봄꽃, 어쩌다 맛있게 만들어진 국수, 간만에 기분 전환이 되었던 외식 사진을 자랑질하는 이유는 그 순간 느꼈던 소소한 기쁨을 나만 누릴 게 아니라 막연한 공간 어딘가에 박제시켜 두고 호응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관음증 환자처럼 다른 사람들의 그런 순간들 역시 자꾸만 구경다니면 그들의 행복에 나도 전염되는 느낌이 든다. 아주 찰나적인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하여간에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카톡 창을 이리저리 괜히 두드리다 과도하게 씩 웃는 이모티콘을 먼저 쏘아보내고는, "글쎄... 나도 사실 사는 낙이 별로 없어. 요즘들어 특히 삶이 엄청 구차하다."라는 솔직한 대답은 차마 적지 못하고 (우울한 친구의 기분을 북돋우려는 쪽이었는지, 또 다시 가면 증후군이 도졌는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꼴 같잖은 잘난 척을 좀 했다.

나야 요새 포켓몬 잡는 재미로 살지! 은둔형 인간이 맨날 포켓몬 잡느라고 괜히 막 나가서 걸어다닌다. 훌륭한 게임이야! (사실은 두달이 넘어가면서 포켓몬 수집욕도 좀 시들해졌다 ㅠ.ㅠ) 음.. 또 5분 스케치도 하잖아... 그림이 안 늘어서 좌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어!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낙은 여행이 아닐까...?

친구는 약간 한심스러운 듯 (그냥 내 자격지심일수도;;) 계속 'ㅋㅋ'라는 반응을 보이다 여행 이야기에 그제야 맞다고, 이제 궁극의 낙은 여행 하나 남은 것 같다고, 근데 그걸 자주 떠나지 못하니 더 암울하다고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낙이면서 로망이어서,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한줄기 희망이자 고문 같은 게 아닐까나? 여행 가고 싶단 생각 들 때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휴가 한달 신나게 놀려고 1년 꼬박 직장 다닌다는 선진국 국민이 아니고서야 원...

게다가 걱정대마왕이자 불안증환자로서 나는 어디서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그만큼 사전준비도 쉽지가 않다. 말로는 훌쩍~ 이라고 하면서도 대체로 여행지부터 예산까지 미리 한참 고민고민하다 떠나는 편이다. ^^ 그나마 아버지가 계실 땐 그래도 기회 봐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후다닥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젠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도 떠나는 날 직전까지 과연 이 여행이 가능한가 너무도 불안하다. 이래서 가족은 울타리면서 동시에 역시나 멍에였어! 라며 짜증부리게 되는 거다. 물론 요즘 가족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사정이지만. ㅠ.ㅠ (버는 것도 변변찮은 니가 지금 여행이나 다닐 때냐!)

암튼... 사는 낙도 없고 애들 뒷바라지도 지겹고 밥먹는 것도 구차하고 억울해서 식욕이 없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나까지 한숨이 나면서 맥이 빠졌다. 천고마비의 계절도 아닌데 막 식욕이 돋아서 먹고 싶은 거 생각날 때마다 꾸역꾸역 찾아 먹어대는 내가 식충이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 *_* 

카르페 디엠, 하쿠나마타타, YOLO...이렇게 맥빠질 땐 별별 주문을 다 외워도 소용이 없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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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쁘면 늘 도지는 지병 탓에 일하기 싫어져 뒤늦은 영화 후기를 써야겠다. ㅎㅎ

* 스포일러는 당연히 있겠지요? 


일단 영화 본 순서대로 <너의 이름은>

장면 장면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는 맛은 있었으나 뭔가 초현실적인 이유로 남녀가 서로 몸이 바뀌는 설정은 익히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도, 영화 <체인지>에서도 겪었던 터라 약간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기야 이제는 타임슬립도 그렇고 몸이 바뀌는 것도 그렇고 어느것도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없는 듯.

게다가 소녀와 소년의 몸이 바뀔 때마다 쓸데없이 반복해서 가슴을 만져대며(!) 신기해하는 장면은 심히 불편했다. 소녀는 남자가 된 자신의 아랫도리를 부끄러워하며 확인하는데, 소년은 왜 그렇게 함부로 주물러대는지?! 남자는 다 그래.. 라는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째뜬 과도하게 반복되는 것 같아 거북했음. +_+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보고 또 보는 재관람 관객이 그렇게도 많았다지만 난 굳이 또 보고 싶은 생각은 안들던데... 만나야할 사람은 결국 만나고야 만다는 운명론과 해피엔딩엔 애니메이션이 그렇지 뭐 하며 그러려니 흡족하면서도 감동의 도가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사라져가는 일본 시골 마을의 전통에 대한 접근과 그리움은 마음에 들었고, 어쩜... 번역이 그리도 시적인지. 감탄하며 봤다. 그래서 나의 별점은 다섯개 만점에 셋. ㅎㅎ ★★★☆☆

이 영화를 보고 돌아오니 마침 올레모바일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죄다 올려주어 옳다구나 다 챙겨봤다. <초속 5센티미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언어의 정원>까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 그나마 내용이 기억날 뿐, 나머지 2개는 벌써 어떤 내용이었는지 완전 깜깜 서로 헷갈린다. +_+ 영상미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셋 다 확실히 <너의 이름은>만 못했다. 


<라라랜드>

'이 영화는 마법이다'라는 카피를 하도 많이 보기도 했고, 작년부터 그렇게들 재미있다고 주변에서 난리여서 정말 궁금했다. 나도 감동하며 볼 수 있을까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나면 어쩐지 시큰둥해지거나 괜히 시의에 편승하는 느낌이 들어 무조건 외면하는 못된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전에 봐야겠다 싶어 얼른 보러 갔었다. 어린 시절 주말마다 밤늦게 TV에서 보던 할리우드의 온갖 뮤지컬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든지 <사랑은 비를 타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같은--는 참으로 미국적이라 거부감이 들면서도 묘하게 매력이 있었다.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떼거지로 탭댄스나 왈츠를 추거나 군무를 추는 장면에서 크핫 오글거리면서 뭔가 신나는 느낌?

<라라랜드>는 그래서 내겐 '마법'이 아니라 '추억'이었던 것 같다. 단칸방 시절부터 나중에 따로 공부방이 생기고 나서도, 주말에는 TV 영화 핑계로 늦도록 자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이불 속에 누워 영화를 보다 잠들던, 정겨운 느낌과 참으로 미쿡스러웠던 영화의 이질감이 낳은 묘한 기분을 환기시키는 영화였던 것.

특히나 어려서도 나는 탭댄스 추는 배우들 모습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웠는데... 그들의 발재간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눈엔 이상해! <라라랜드>에서도 피아노 치는 라이언 고슬링의 멋진 목소리엔 홀딱 반하겠던데 에이, 탭댄스는 추지 말지 그랬어. ㅠ.ㅠ 왈츠 추다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도 난 두 사람 몸에 피아노 줄 매달았겠지.. 그런 상상이나 하고 앉았고 말이지. ㅋ

어쨌거나 LA 사는 친구 덕분에 아마도 두 주인공이 아침 노을을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나도 야경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밤하늘 색깔이 확실히 한국과는 다르구나 생각했을 뿐, 그땐 그리 예뻐보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는데, 새삼 다시 가면 또 감흥이 다르려나? 

현실적인 관계와 엔딩도 그렇고, 만약에... 그러면서 상상한 장면들까지 누군가는 폭풍 눈물을 흘렸다던데 메마른 난 그냥 그러려니 하며 봤던 것 같다. 다만 중독성 있는 영화음악은 한참 뒤까지도 흥얼흥얼...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아 저음으로 부르는 라이언 고슬링 목소리 참 좋다. 게다가 그 피아노 치는 장면도 직접 다 연습해서 한 거라고! 

남녀 주인공이 사랑스럽고 특히나 LA 친구가 제발 놀러오라고 하루가 멀다하고 부추기는 상황이 더해져서 별점은 역시나 셋. ★★★☆☆ 트럼프는 꼴보기 싫지만.. LALA LAND에 나도 다시 가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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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커피

투덜일기 2017. 3. 6. 02:41

밤참과 함께, 혹은 그냥 따로 한밤중에 따끈한 차를 한잔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 동안 사소한 고민을 한다. 밤이니깐 원두 커피는 안되고 캐모마일? 둥글레차? 메밀차? 디카페인 커피? 그냥 뜨거운 물?

디카페인 커피가 두 종류나 있지만, 말이 디카페인이지 카페인 성분이 0퍼센트는 아닌듯, 좋아라 신나게 여러잔을 마시면 커피 많이 마신날처럼 똑같이 잠이 안온다. 그냥 잠의 질이 형편없어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암튼 사랑해마지않는 깨잠을 커피 때문에 망치고 싶진 않다. 잠과 커피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난 역시 잠. ㅋㅋ

해서 조금 전에도 잠시 고민을 했으나, 에라이 모르겠다, 디카페인 커피를 집어들었다. 오늘은 겨우 두잔째이니깐 괜찮겠거니...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역시 나는 커피파다. 평생 녹차를 물처럼 마시고 살았다는 차애호가 후배 하나는 도무지 커피 맛을 모르겠다면서 그저 쓴맛밖에 안나는 커피를 다들 왜 그리 좋아하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나로선 아무리 노력해봐도 풀 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적응 못하겠는 차를 좋아라 마시는 니가 이해 안된다!  

볶은지 얼마 안되는 원두를 핸드밀로 갈아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뜨거운 물 부어 마시는, 하루 딱 한두번의 호사를 누릴 때만큼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씁쓸하고 고소하고 은은한 커피의 향과 맛에 이제 좀 일할 맛이 나는군 싶어진다. 커피와 잠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고 큰소리치며,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의 본질을 거세당했으니 커피도 아니라고 마구 무시할 때가 있었는데, 한치 앞도 모르고 막말했던 그 시절의 악담이 부끄럽다. 커피는 그래도 커피인것을. 이나마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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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展

놀잇감 2017. 2. 15. 22:34

2017년 새해 들어 첫 전시관람은 훈데르트바서. 기대한 만큼 좋았다. 동화나라처럼 보이는 건축모형에선 가우디가 떠오르기도 했고 현란한 색감에선 얼핏 클림트 그림도 연상됐던 것 같다. 후기를 쓴다쓴다 미루다가 벌써 보고온지 한달도 훨씬 넘어 감흥이 가물가물 기억도 잘 안나지만 ㅠ.ㅠ 그나마 초기라서 사진 촬영도 허용해주었고(입소문 홍보용인지 요샌 초반에 작품 촬영 허용하다가 나중에 금지하는 전시 많은 것 같다) 마침 도록도 사온 터라 뒤적여가며 밀린 숙제를 해봐야겠다. 그날 만났던 그림들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놈의 허영심은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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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대림창고

놀잇감 2017. 2. 4. 21:49

대학시절 학교와 가까웠던 성수동은 내게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멀어도 꼭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고집을 부리다 어쩔 수 없이 지각할 것 같은날만 가끔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꼭 내가 뛰어가서 갈아탄 지하철은 순환선인데도 이상하게도 꼭 성수역에서 멈췄다. 지하철 탄 보람도 없이!

그러다 졸업후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말이 미국 의류회사 서울사무소 직원이지, 버젓이 MD 명함을 들고 다녔으되 그냥 본사 디자이너며 검사원들 '따까리'였다. 그래서 샘플 개발이니, 생산 지시니 해서 버젓한 사무실 상담만큼이나 원단공장, 봉제공장, 나염공장을 돌아다녔다. 성수동엔 주요 거래처였던 나염공장이 있어서 한달에도 몇번씩 외근을 나갔던 것 같다. 

주로 벽돌을 쌓아올리거나 철제펜스를 치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흉한 모양새에다 겨울엔 무지 춥고 여름엔 한증막이던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샘플 패턴을 한아름 안고 홀로 택시에서 내리면 공단 특유의 기름 냄새 같은 것에 섞여 가죽 냄새, 찌개 끓이는 냄새 따위가 느껴졌던 것 같다.

내가 먹은 나이 만큼이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 ㅠ.ㅠ 성수동은 이제 또 다른 문화가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단다. 가죽으로 유명한 거리엔 수제화 골목이 생겨나기도 하고, 텅빈 공장 건물에 젊은 작가들이 공방을 차리기도 하고, 갤러리를 열기도 하고... 커피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인들이 모여드니 당연히 카페와 음식점도 속속 생겨났대고.

해서 친구들과 이름하여 '성수동 프로젝트' 날을 잡았다. 말이 거창해 프로젝트지 그냥 서울 경기 곳곳에 흩어져 사는 대학 친구들이 성수동에 모여 '힙'하다는 밥집, 찻집, 갤러리, 공방 따위를 구경하자는 거였다. 근데 또 하필 그날은 영하 9도였던가... 칼바람에 귓불이 꽁꽁 얼어 동상입기 직전인 날씨였고, 서로 잘 알아보고 왔겠거니 기대하는 바람에 괜히 헤매다가 제대로 공방과 갤러리 순례는 하지 못했다.

그나마 추위 핑계로 오래 머물렀던 대림창고를 다들 인상적으로 여겨주어 다행.​

​대림창고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벽에 매달려 있던 옛날 간판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둔데다 '컬럼'이라고 적힌 금속제 새 간판은 눈에 잘 안띄어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휙 지나치기 쉽다. 친구들도 문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뭐 잘못 알고 온 거 아니냐고 나를 의심했을 정도다. ^^;;


​꽤 높은 나무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면 이런 내부가 나오고

넓은 창고형 공간이 툭 트여있는데... 눈앞에 키네틱아트(?) 작품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 뭔가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

 

​넓은 공간은 다시 가운데 벽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어 좀 더 어둠컴컴한 카페와 안쪽에 좀 더 환한 느낌의 레스토랑이 있다. 입구 왼쪽 갤러리 위엔 다락방처럼 생긴 2층도 있는 듯.​

사진은 비슷하게 나왔는데 오른쪽 카페가 훨씬 어둡다. 카페 오른쪽 카운터에서 모든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받은 다음 죄다 셀프로 받아다 먹어야하고 나중에 빈그릇도 각자 반납해야 한다. 가격대도 싸지 않은데 이왕이면 서빙도 좀 해주지... 모델처럼 생신 청년들이 돌아다니며 테이블 정리도 하고 그러던데 좀 더 인건비에 투자를 하시지... 심지어 주말엔 입장료도 만원 받는다고 함!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뜻이려나?

​나중에 찾아보니 대림창고 운영자도 조각가였던가... 예술가이고, 곳곳에 예술작품이 소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주말 입장료도 받는 만큼 정기적으로 작품이 바뀐다는 것 같다. 암튼 추운 겨울에 찾아간 우리는 엄청나게 튼튼해보이고 화력도 좋은 무쇠난로에 홀딱 반해가지고, 저기다 고구마도 구워팔면 좋겠다... 그런 소박한 상상을 했다. ㅋ 여기서 파는 서양 음식들과 안 어울리려나?


아침도 굶었던 터라 배고파배고파 노래를 부르면서 점심 메뉴를 골라 시켰다. 대체로 간도 슴슴하고 원재료에 충실한 싱그러운 맛? 버섯이 잔뜩 올라 있던 피자도 길쭉하게 생겨서 괜히 정겹고 담백한 맛이라 짠 음식 질색하는 친구들 모두 흡족해했다. 파스타도 괜찮다는 평을 받았는데 만오천원 쯤 하는 가격이면 당연히 맛있어야 하지 않나? ;-P 스테이크 종류는 디너 메뉴라며 점심땐 아예 팔지도 않던데 4만원 가까이 했던 듯... 

왼쪽은 샐러드까지 4가지를 시켜서 합이 7만 8천원 나왔던 그날의 오찬 사진이다. 4명이 먹기에 적당했는데 그 중 1명은 워낙 소식하는 사람이라 나 같은 대식가만 모이면 모자랄 지도 모르겠다. ^^; 암튼 스테이크 샐러드는 확실히 맛있었음! 

오른쪽 사진은 옆 테이블에서 시켜놓고 먹길래 모양도 하도 예쁘고 맛도 궁금하여 한참 수다로 배를 꺼뜨린 뒤에 다시 주문했던 디저트 메뉴 '화가의 낮잠'이다. ㅎㅎㅎ 동그란 그릇엔 초콜릿 무스가 담겨 있고 몽키 바나나를 절반 갈라 구운 듯 그 위에 설탕 시럽을 뿌려 굳혔다. 모종삽에 든 흙처럼 생긴 건 과자와 초콜릿 부스러기.. 구운 마시멜로 두 덩어리도 뒹굴고 있는데, 암튼 맛보다도 유화 캔버스를 활용한 플레이팅이 참신하고 너무 예쁘다며 반색했더니... 언젠가 무슨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써먹었던 콘셉트라는 것 같다. 째뜬 뭐 눈요기로 훌륭하고 행복했으니 되었다. 커피는 맛있었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호나 브룩클린에 온 것 같아!라며 들떠서 꽤나 즐겁게 수다를 이어갔던 것 같다. 나중에 가죽 거리를 헤매고 헤매다 가오픈했다는 작은 소품숍을 만나서 그나마 한 건 했다고 안심하고는 얼른 또 차 마시러 다른 카페로 들어갔었다.

동네 유명해지고 사람들 몰려들면 결국 또 분위기 이상해지면서 거대자본과 대기업이 밀려들어와 제 모습을 잃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걸 본다. 홍대도 그랬고 합정, 상수, 연남동, 가로수길, 북촌, 서촌, 이태원, 망원동까지... 과연 성수동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블로그에 이렇게 자랑과 허세 쩌는 포스팅 하면 나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에 한몫 가담하는 것임을 알면서 째뜬 또 지난 일기랍시고 세태에 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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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마지막 전시관람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이었다. 평창동 가나 아트센터에서 2월 5일까지 전시하고, 입장료는 3천원. 1, 2층 전시관이 꽉 차있고(전시 품목이 총 650점이라고;;), 건너편 구석의 작은 방까지 볼 거리가 많아서 가격대비 거의 횡재한 느낌이었다. 실은... 오후팀이었던 나와 달리 오전에 먼저 보러간 친구 하나는 심지어 주차장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티켓도 안 사고 그냥 공짜로 구경했다고. +_+ 

언뜻 생각하기론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수집했던 골동품들인가 했더니만, 그건 아니고 한국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공예품을 모아놓은 것 같다. 일상 생활소품 위주라서 재미난 것들도 많고, 예뻐서 갖고 싶은 것들, 신기한 물건들이 참 많았다. 옛날 사람들의 미감이란 참... 대단하다. 살림살이 넉넉한 양반들이나 아름다운 공예품을 누리고 살수 있었겠거니 싶은 마음에 괜히 심술이 난 순간도 있었는데, 사진엔 없지만 어느 일꾼이 벌통 나무 둥치에도 멋드러진 조각을 해놓은 걸 보곤 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본능은 양반이건 평민이건 다를 바 없었겠지. 

엄청 추운 날이었고, 전시 보러 들어가기 전에 친구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식겁했다가 되찾은 뒤 막 온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에 찬 심경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감동하며 신나게 감상했다. 전시장을 나오기 아쉬울 만큼.

사진 촬영도 제지하지 않아서 아메바 기억력을 한탄할 필요 없이 원없이 마구 찍어왔기에.. 이 포스팅은 사적인 나의 감흥 기록보다는 사진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 또 어쩔 수가 없고.. ㅠ.ㅠ 그저 나의 기억 상기용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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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Best

놀잇감 2017. 1. 2. 17:59

1. 2016년에 읽은 책

아 부끄럽게도 달랑 10권이다. 그것도 그림책 포함해서... 나부터 이렇게 책을 안 읽는데 출판업계가 망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매년 점점 더 책을 안 읽지? 올해는 사들인 책의 수도 예년에 비해 적었다. 여혐 범죄사건들을 접하면서 뭔가 나도 세상과 계속 싸우려면(?) 이론적인 재무장이 필요한 것 같아서 페미니즘 책을 읽고 정희진 책까지 세 권을 엮어 감상문을 쓰려고 했었는데 ㅠ.ㅠ 결국 안했다. 수다 떨 때도 종종 말문이 막히듯이 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도 버벅버벅 버퍼링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며 좌절했다. 그래서 또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야겠다 싶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유명인의 촌철살인 조언과 함께 이런저런 글쓰기 에피소드를 담은  <쓰기의 말들>은 막상 읽을 땐 뭐 이런 걸 책으로 다 만들었나 싶었으나, 다 읽고나선 포스트잇 붙여둔 글귀를 다시 들춰보며 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유려한 번역으로 이름 높은 고 장영희 선생의 <슬픈 카페의 노래>도 말맛, 글맛을 따져보느라 원문을 상상하며 다시 읽은 책이다.   

옛그림을 보는 법 - 허균 지음/돌베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지음/노지양 옮김/사이행성

정희진처럼 읽기 - 정희진 지음/교양인

빨래하는 페미니즘 - 스테퍼니 스탈 지음/고빛샘 옮김/민음사

쓰기의 말들 - 은유 지음/유유출판사

슬픈 카페의 노래 - 카슨 매컬러스 지음/장영희 옮김/열림원

앵무새죽이기 - 하퍼 리 지음/김욱동 옮김/열린책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

5분 스케치 - 김충원 지음/진선아트북


​베스트 3권 뽑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서 1권만 뽑는다면 단연 리뷰도 올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2. 2016년에 본 영화

셜록: 유령신부

캐롤

바닷마을 다이어리

굿바이 싱글

제이슨 본

국가대표 2

거울나라의 앨리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잭 리처: 네버 고 백

내부자들

귀향

나의 소녀시대

계춘할망

족구왕

의궤, 8일간의 축제

뷰티 인사이드

베테랑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위쪽 9편. 혼자 보러간 건 내 취향대로 골랐으나, 이제보니 누가 보러 가자고 그래서 얼결에 본 영화도 많다. 암튼 2016년 최고의 영화를 뽑는다면 역시나 영화관에서 2번이나 본 <캐롤> ^^; 근데 베스트 세 편도 어렵지 않게 고를 수 있겠다. 귀여운 자매들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좋았고,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흐뭇하게 봤다. '걸크러시'라는 말이 유행하듯 나 역시 '언니들'이 활약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당연한가? ㅎㅎ




3. 전시/공연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 국립고궁박물관

창경궁을 보듬다 - 국립고궁박물관

윤동주문학관

Color Your Life - 대림미술관

변월룡 회고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간송문화전 6부: 풍속인물화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호안 미로 특별전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로이터 사진전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 - 가나아트센터

임태경: 그대의 계절

One Love Concert: 임태경 외 ㅋㅋ


위 두 전시는 포스팅을 했으니, 세번째 베스트로 뽑은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전시도 포스팅을 할 계획이다. 사진도 엄청 찍어왔으니 자랑 삼아서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입장료 3천원에 완전 눈호강한 느낌이었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상생활 공예품인데 구석구석 예쁘고 사랑스럽더라. 

공연은 임태경 광팬인 미쿡 친구의 소망 대리충족용으로 다닌 것. 체력 딸려서 공연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에 공연장의 빵빵한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으로 거의 기절할 뻔 ㅠ.ㅠ 


4. 등산/여행

사패산, 계방산, 오대산, 운길산, 삼성산, 청계산, 아차산, 축령산, 광교산, 막장봉, 소리산, 선운산, 도봉산, 검단산, 천마산, 금강산(외설악), 북한산, 남산 둘레길, 전주 한옥마을, 담양 소쇄원, 공주, 아산, 여수 금오도, 대부도, 화담숲

 

계방산의 눈꽃여수 금오도의 초록 바다

한달에 2번씩 한번도 안빠지고 개근을 했으니 그만큼 많은 산을 다녔고, 스스로 뿌듯하다. 친구들과는 2월부터 주로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서울 근교산을 돌아다녔는데 주변에 갈데가 그토록 많다는 것에 감사하고, 심지어 서울 한복판 남산 둘레길도 고즈넉하고 예뻤다. 조금 멀리 가면야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산이 도처에... +_+ 내가 이렇게 열심히 등산 다닐 줄 진정 몰랐는데 ㅋㅋ 이 열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것도 궁금하다. 모녀 가을 여행에서 작년과 확 다르게 좀처럼 운신을 못하시던 왕비마마 왈, 너라도 다리 성하고 건강할 때 많이 다니라고.. ㅠ.ㅠ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베스트 산 셋을 꼽는다면

원없이 상고대와 설경을 본 계방산, 홀릴 듯 철쭉이 아름다웠던 축령산, 울산바위를 뒤쪽에서 볼 기회가 있었던 금강산. 

 

5. 기타

그밖에 올해 사들인 음반은 노장 투혼으로 새 앨범을 낸 스팅의 <57th & 9th>와 미리 김칫국 마시며 떼창 연습하겠다고 산 콜드플레이의 <A Head Full of Dreams> 딱 2장이다. 콜드플레이는 음원으로 몇곡만 사서 듣다가 내한 소식에 팬심 발휘해 CD도 샀는데 첫 공연에 예매 실패하고 완전 광분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추가공연 가게 되서 다시 애정하며 듣는 중. 스팅은 지난 앨범이 완전 뮤지컬 ost 여서 실망하고 옛날 노래만 듣다가 2016년에 그나마 신뢰와 애정을 회복했다. ㅎㅎ

드라마는 방에 있던 배불뚝이 TV가 완전 사망하는 바람에 잘 챙겨보지 못하고 있어서 기억나는 게 치즈인더트랩, 굿 와이프, 또 오해영, 닥터스, W, 역도요정 김복주, 도깨비 정도다. 주로 배우 선호도로 찾아보는 고로 공중파 드라마도 더러 보긴 하지만 손발 오글오글거리거나 전개가 마음에 안들어서 중간에 끊었다 다시 보고 그랬었다. 단막극 <페이지 터너>가 의외로 좋아서 탁상달력에 메모해둔 기억이 있는데, 그래도 대체로 열광하며 신나게 즐겼던 드라마를 한 편 꼽으라면 <또 오해영>!(<굿 와이프>로 했다가 방금 마음 바꿈 ㅋㅋ) <굿 와이프>는  전도연의 약간 비뚤어진 입매와 자연스러운 주름 덕분에 연기가 더 좋게 느껴졌던 것 같고, 나나의 연기도 유지태도 다 괜찮았다. 제발 중년 배우들 얼굴에 티나게 이상한 짓좀 하지 말면 좋겠다. 서현진 연기 좋고 사랑스러운 건 알지만 에릭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또 오해영>은 재방송까지 막 다시 찾아보며 헤벌쭉 했던 기억이 이제야 새록새록 떠오른다. 에릭이 음향 엔지니어로 나오는데 그 직업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제대로 보여주었던 점도 신선했고, 조연으로 나왔던 해영의 부모님이나, 예지원, 김지석 커플의 이야기도, 에릭의 이복동생 커플 이야기도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다루지 않아 좋았다!  

그밖에 tv 프로그램에 상을 준다면 단연코 JTBC 손석희의 <뉴스룸>(뉴스룸 맨 마지막 노래 선곡까지 손석희가 직접 한다는 것 같다. 아아 이분은 정말... +_+ 기막힌 뉴스에 광분하고 허탈해 하다 마지막 흘러나오는 노래에 위로받고 그런 순간이 참 많았다), 그리고 에셰프의 활약이 놀라웠던 <삼시세끼 어촌편3>(에릭이 느릿느릿 신중하게 요리 할 거 다하면서 말도 별로 없는 거 진짜 마음에 들었다. 겸손하기까지 한 듯!), 일요일 밤에 생각나면 찾아봤던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방에 TV 없어서 잘 안 봤다더니 테순이같다. ㅠ.ㅠ)

2016년을 되게 빌빌거리며 암울하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반백수치고는 잘 먹고 잘 놀러다니며 꽤 잘 살았던 것도 같다. 2017년에도 야금야금 재미난 일 찾아다니며 행복하게 지내봐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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