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21:42

시작한 김에 얼른 또 이어 써보자! ㅋㅋ 오늘이 12월 27일이니 딱 8개월 전의 일이다.

이렇게 혹독한 한국의 강추위 속에서 캘리포니아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게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 여행을 다녀온 게 벌써 너무도 까마득한데 올해였다니 에효..

암튼 이젠 7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스르르 눈이 떠지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수첩에 써있다. ㅎㅎ)

숙박객의 아침식사는 방키를 카드 리더기에 삐리릭~ 읽혀야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컨시어지 라운지에 마련되어 있었다. 비즈니스로 온 손님들이 많은 듯, 정장 차림의 남녀들도 있고 약간 민망한 조깅복 차림으로 들어오는 여자들도 있고... 과일과 머핀, 토스트, 스크램블드 에그와 삶은 달걀 정도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쿠키도 있었는데 대박 맛이 없어서 몇개 집어왔다 그냥 접시에 남겨두고 나오며 코스트코 쿠키 같다고 깔깔댔다. 그나마 초록사과 노란사과 빨간 사과 종류별로 사과가 싱싱해서 내가 특히 신나하며 골고루 잘라 먹고 한개 더 챙겨갖고 나왔다.

아마도 이것은 사이프러스 나무겠지?

오전 일정은 역시나 인근 소도시인 연트빌(Yountville)과 세인트헬레나(St. Helena)를 둘러보는 것. 내 머릿속에 상상한 나파밸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와인 산지처럼 꽤 높은 언덕지형의 가파른 경사면에 키작은 포도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ㅎㅎ 캘리포니아 지형이 어딜 가겠나. 대체로 나지막한 언덕들이 거의 평지처럼 이어지고, 곳곳에 크고 작은 포도원들이 불쑥불쑥 등장했다. 그러고는 핫도그처럼 길쭉하게 생긴 가로수들이 귀엽게 서 있고... 우린 그 사이를 희희낙락 달려가고...


이날 들른 소도시 3군데, 연트빌, 세인트헬레나, 칼리스토가는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나파밸리에 오면 다들 들르는 관광지인 듯, 곳곳에 기념품 가게와 특산품(주로 유제품과 발사믹 식초 따위) 가게가 있고 알록달록한 트롤리 버스가 간간히 돌아다녔다. (하긴 서울 강남역에서도 우스꽝스럽게 트롤리 모양으로 장식한 버스가 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다!)


드넓은 한강에 익숙한 내 눈엔 애개개... 울 동네 개천이랑 비슷하군;;

바로 ​내가 딱 원하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미니 발견! 

​강가에 이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에 산책로가 있고... 날씨는 화창하고 기분이가 삼삼했다. ^^;;

치즈나 버터, 와인, 발사믹식초, 수제비누 따위를 파는 ​특산품 가게에 들어가보면 꼭 생화를 같이 팔고 있었다. 완전 싱싱한 꽃들이 별로 비싸지도 않아! 

내가 양띠라서 그런지 양 인형을 보면 괜히 반갑다. 진열장 유리에 휴대폰을 딱 붙이고 찍어왔네그려.  

​연트빌 곳곳엔 공공미술(?)의 일환인지 여기저기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재미난 인물상도 있고, 이렇게 과일바구니도 있고... 이때쯤엔 언니들이 사진 찍게 얼른 가서 서 봐라 그러면, 예이~ 그럼서 달려가 찍히는 바람에 웬만한 조각상 옆에 다 내 얼굴이 들어 있어서 차마 공개를 못하겠다. ㅎㅎ​

점심은 연트빌과 뉴욕 딱 두곳에만 있다는 유명한 부숑(Bouchon)  베이커리에서 빵과 커피로 때우기로 했다. ​

노란 건물이 바로 그 부숑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빵과 커피를 사, 바로 옆 마당 테이블이나 길거리 벤치에서 먹던데... 바게트가 좀 맛있는 건 인정하겠으나 딴 빵이 그렇게나 맛있는 줄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맛있는 빵집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ㅎㅎㅎ

어쩌면 내가 그다지 빵순이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날의 내 감흥인듯... 빵 사진도 참 이렇게나 성의 없게 찍어놓았군. 



빵은 별 인상깊지 않았어도 날씨가 참으로 아름다웠고 눈돌리면 보이는 풍경도 다 예뻤다. 간간이 여기가 미국이구나 싶은 컨버터블 자동차를 보면 촌스럽게 당연히 휴대폰을 들이대게 되고.. ㅎㅎ 





​나 어릴 적 '총채'라고 불렀던 먼지 떨이개가 생각나는 야자수와 푸른 하늘과 연초록의 잎사귀들... 아이고 그리워라. 













세인트헬레나는 저녁 먹을 식당을 골라두고 다시 가기로 했기 때문인지 사진이 별로 없다.  '메인 스트리트'라고 해봤자 왕복 4차로인 도로 양쪽을 죽 걸어 올라갔다 걸어 내려오며 가게마다 들어가보고 갤러리도 하나 들어갔었는데 흠...

세인트헬레나에서 얼결에 들어간 갤러리. 철사 조형물이 멋졌다


암튼 오후 접어들어 다음 행선지는 주변에 다닥다닥 붙은 소도시인 칼리스토가(Calistoga). 예약해둔 와이너리 방문을 위함이었다. 성처럼 생긴 와이너리 이름은 카스텔로 디 아모로사(Castello di Amorosa). 벽돌로 지은 성채 건물보다 우리 눈에 먼저 띄인 건 보리수 아래 돌아다니고 있는 귀여운 양들! 와이너리에 웬 양이냐며 신기해했는데;; 다들 좋아하는 걸 보면 마케팅 신의 한수렸다. ㅎㅎ


어딜 가든 이런 회랑(?) 주랑(?)으로 이어진 공간을 좋아한다. 성채 안뜰 한 가운데 놓인 고풍스런 우물도 마음에 들고...  


바보 인증샷이 되고만 기념 사진 ㅠ.ㅠ

간단하게 건물을 둘러본 뒤 와인 시음장인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는데... 이렇게 연회실에 앉아 기념촬영을 한 나는 아 글쎄, 와인 테이스팅 티켓을 잃어버렸다. ㅠ.ㅠ 

분명 브로셔랑 같이 손에 들고 있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손에 든 게 없어! 앗... 전날 셔츠를 잃어버릴 뻔한 순간에 이어진 대박삽질이었다. 

테이블에 올려두고 왔나보다 돌아갔지만, 흔적도 없었다. 이미 누가 집어가버린 것!

와이너리 입장만 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2잔만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있고

5잔, 10잔... 시음할 수 있는 티켓이 가격대별로 다 차이가 있는데 우린 5잔 용 $25짜리 티켓을 끊었었다. 

이 사진을 찍어준 K언니가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보더니, 이땐 분명 브로셔랑 노란색 티켓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누가 집어간 게 틀림없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5잔 더 마셨겠지. 흥!

째뜬 다행인 건 E언니가 4사람 티켓을 끊은 신용카드 영수증을 갖고 있어서 별 탈 없이 시음은 할 수 있었다. 매니저한테 영수증 보여주며 티켓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니 별로 따지지도 않고 노 프러블럼! 이라고 ㅠ.ㅠ 멍청하게 사진 찍다 티켓을 두고 나왔다는 자괴감에 빠져 거의 멘붕.. 낙담했던 게 무색해졌다. ㅎㅎ


암튼 시음장인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내부가 이렇게 생겼다. ​


친구는 옆에서 계속 달달한 와인만 시켜 마시는 동안, 나는 꿋꿋하게 드라이한 걸로 달라고 해서 벌컥벌컥 마셨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비앙코.. 와서 보니 수첩에 포도 품종만 적어놨네 ㅋㅋ 

그 가운데 무언지 모를 와인잔도 하나 찍어왔다. 딱 시음할 만큼 조만큼씩밖에 안 따라준다. ^___^

그래도 낮술이라 다섯잔 마시고 났더니 알딸딸... 

술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E언니와 친구S는 둘 다 샛분홍색이 되어 바로 운전해도 괜찮을까 잠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와인 몇 병 사들고 와이너리를 벗어났다. 





와이너리 이름도 좀 그렇긴 했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캘리포니아가 아니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다. ㅎㅎ



아마도 메도우랜드 가는 길..

세인트헬레나에서 미슐랭 별 2개짜리 식당에 6시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우린 다시 시간을 좀 더 때워야했다. 

해서 찾아간 곳은 근처 휴양림 비슷한 메도우랜드(Meadowland). 

숲 잎구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야외수영장이 있고, 군데군데 펜션인지 콘도인지 작은 오두막집들이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고급스런 레스토랑 겸 카페 건물도 있었지만 굳이 들어가서 차를 마실 기분도 아니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냥 쉬엄쉬엄 아스팔트 길 따라 걸으며 저 나무는 이름이 뭘까, 저 꽃은 왜 저렇게 크냐 그런 이야기를 한가롭게 주고받았다.

순전히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기 위한 배꺼뜨리기용 산책과 드라이브. ㅎㅎㅎ  









대망의 미슐랭 2스타 음식점 이름은 소박하게도 '마켓'. 식당 이름이 '시장'이란 얘기다. ㅎㅎㅎ 이름 때문인지 엄청 예술스러운(?)자태로 나오려나 기대했던 음식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고, 맛도 엄청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체로 입이 까탈스럽지 않은데다가 서양 음식이 맛있어봤자지 뭐.. 이런 느낌? ㅋㅋ  느끼한 서양음식을 괴로워하는 친구 S는 미슐랭이라고 해서 비싸기만 하지, 흔하게 먹는 스테이크집이랑 뭐가 다르냐고 투덜투덜...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럴만도 했던 것 같다. 이 정도 샐러드는 나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뎁! ㅋㅋㅋ

스테이크와 파스타도 더 시켰을텐데 K언니에게 넘겨받은 사진도 달랑 이 두장 뿐이다. 연어구이가 맛있어봤자지... 파스타가 맛있어 봤자지... 우린 막 이제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딱히 김치나 한식이 땡기지 않았는데, 촌스런 입맛의 S때문에 모험은 거의 못하고 거의 이탈리안 음식점만 다니다 보니 다 그나물에 그밥처럼 느껴졌던 거다. S는 빨리 LA로 돌아가 짱뽕도 먹고 싶고, 김치도 실컷 먹고 싶다고... 아니 신라면을 끓여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안 그래도 내일이면 곧 돌아갈 거거든! 


마지막으로 이날 돌아다닌소도시 세 군데 중에서 가장 예뻐서 좀 살아보고 싶었던 연트빌 사진 두 장 더 투척.

이것도 연트빌 맞겠지? 세인트헬레나였던 것도 같고 ㅠ.ㅠ


암튼 거리와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멋진 클래식카를 발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자동차 번호판이다. JIM♥CYN아마도 지미와 신디가 아닐까나? 냉소적인 우리는 저 번호판을 보면서 소싯적에 사랑이 넘쳐서 웃돈 주고 저런 번호판을(미국에선 돈을 내고 원하는 번호와 알파벳을 넣어 자동차번호판을 신청할 수 있댄다) 만들었겠지만 아마 지금쯤 이혼했을 거야.. 라고 일갈했다. 위자료로 전재산 아내한테 다 넘겨주고, 남편에겐 달랑 이 차 한대만 남아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되도록 타고 다니는 거지.. (저 정도 클래식 카를 몰려면 부품 값이며 해서 꽤 돈이 많이 든다는 것 같다.). 그러면서 굳이 저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건 전처에 대한 사랑이나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귀찮아서일 거야... (상상력도 참... )  

헐.. 근데 조금 있다가 머리가 새하얀 백발의 늘씬한 멋쟁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분명 지미와 신디가 틀림없어 보이는!) 손을 잡고 걸어와 이 차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우아하게 조수석 차문을 열고 할머니를 먼저 태운 뒤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탔다. 오마나, 옹졸한 우리의 오해였어! 번호판으로도 생색내고 싶을 만큼... 여전히 사랑 넘치는 아름다운 두 사람이었던 거야? ㅎㅎㅎ 우린 괜히 민망해졌다. 





이제 여행기도 겨우 사흘치가 남았다. 올해 안에 끝낼 수 있겠지?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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