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 나파밸리

여행담 2017. 12. 27. 19:50

묵은 여행기를 다 마무리하기 전엔 블로그에 뭔가를 적기도 좀 떨떠름한데 와.. 정말 이제 5개월도 더 지난 이야기를 하려니 참 민망하다.

게다가 아무런 업데이트도 없는 블로그에 방문자 수는 왜 저런 걸까? ㅠ.ㅠ 실 방문자 수가 아니라 뭔가 티스토리 시스템과 관련된 '야로가 있는' 허수가 틀림없다. 뜬금없이 무서운 댓글이나 달리고 에효..

암튼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건 끝을 내보련다. 이요님의 몽골 여행기를 재미나게 읽으며 다시 여행가고 싶단 욕망이 꿈틀거렸고...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지난 여행 추억이라도 더듬어보자 싶어졌다. 가을 탓인지 요즘 특히나 사는 낙이 뭘까, 종종 우울감헤 휩싸인다. 이렇게 하루하루 이래저래 사는 소소한 낙이 다 사라지면, 누구에게나 어차피 맨 끄트머리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을 하루하루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들까 요즘엔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더 맥이 빠진다. 그러니 더더욱 행복했던 그날의 기억을 복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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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8월이다. 그러고도 마무리를 못하고 또 넉달이 흘렀다. ㅠ.ㅠ 
올해 안에 여행기를 몰아서 다 쓰는 것을 며칠 남은 2017년의 목표로 삼겠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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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첩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ㅠ.ㅠ) 아침 7시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으나 침대에서 꼼지락거리다 7시 반에 이부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미국 서부(특히 캘리포니아)의 수돗물은 대체로 석회가 많이 섞여 씻고 나면 피부도 머리칼도 뻣뻣해지기 일쑤다. 해서 여행기간 내내 거의 밤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잘 말린 뒤 최대한 얌전히 자고 일어나 다음날엔 세수와 양치만 하는 꼼수를 썼더랬다. 아침에 또 샤워를 하기엔 호텔 방을 하나만 쓰는 경우 네 여자의 욕실 사용시간이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샤워는 후딱 한다고 쳐도 일단 머리 말리기가 귀찮아서! 

마침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서 이게 가능했지 요즘처럼 다시 숏커트라면 무조건 제비집이 생겨나 어쩔 수 없이 아침에 또 머리만이라도 감아야했을 거다. 그나마 옛날엔 미쿡 호텔에 샤워꼭지가 죄다 벽에 높이 고정되어 있어서 머리만 감는 게 불가능했지만 ^^; 간만에 가보니 요샌 호스 달린 샤워기로 바뀌어 있더군. 해서 가끔 머리를 너무 비비고 자 난감한 모양새가 됐을 땐 아침에 머리만 감는 일도 있었다.

하여간.. 대충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 조식 뷔페를 먹었다. 딱히 인상적이지 않은 메뉴였는지 수첩에 기록도 없고 사진도 없다. ㅎㅎㅎ 다들 습관처럼 바나나는 하나씩 챙겨 가지고 나온 것 같은데..  

전날도 흐리더니 메드퍼드를 떠날 때도 다시 비가 내렸다. E언니는 나파밸리는 연중내내 화창하고 맑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우릴 안심시켰다. 또 다시 수백킬로미터를 달려야하는 대장정의 길... 전날에 이어 차안에서 간단히 바나나 등등으로 점심을 때웠고, 휴게소 대신 중간 즈음 화장실 이용을 위해 스타벅스엘 들렀다. 

그런데... 이날부터 나의 두뇌는 자꾸만 오작동을 시작한다. 아 글쎄 스타벅스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랑 마들렌을 먹은 뒤 차에 타고 보니 겉에 입었던 셔츠를 그냥 소파 뒤에 걸어놓고 나온 게 아닌가. 출발하기 전에 어랏, 내 옷 어딨지? 생각했으니 망정이지.. ㅠ.ㅠ

K언니가 걱정했다. 아니 우리 중에 제일 총명한 니가 이러면 우린 어쩌니... ㅋㅋ 아니나다를까 이후 나의 삽질은 계속된다. ㅠ.ㅠ

E언니의 말마따나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늦은 오후 드디어 나파밸리에 도착. 

Marriott Napa Valley 호텔 1129호에 체크인했다. 땅 넓고 싼 지역엔 호텔들이 죄다 나즈막히 옆으로만 길고 넓게(여긴 달랑 2층 건물이었던가..) 지어져 있었지만1층방에 묵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와인으로 유명한 나파밸리답게 호텔 입구에도 막 포도나부가 정원수로 자라고 있었다. 앙증맞은 포도도 송알송알 맺혀 있고... ㅎㅎ

아 근데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

걸어가며 대충 휘갈겨(?) 찍으니 이럴밖에. 뭔가 좀 잘 찍어보려면 여러 장 난사해서 하나쯤 건지고, 그 구도를 머리에 익히고 그래야하는데 난 워낙 게을러서... 사진 찍을 때마다 작품 사진 남기는 고수 경지에 오르는 건 아예 글렀다. ㅎㅎ


호텔에서 무슨 워크샵 같은 걸 하는지, 무슨 행사를 진행 중인지 로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더러는 와인잔을 손에 들고 담소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호라 여기가 정말로 와인의 고장이구나 했던 것 같다. 

이 호텔에선 2박이나 하고 갈 거라서 일부러 구석구석 돌아보았는데;; 날씨가 좋고 따뜻하면 야외 풀장에서 수영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으나 한낮에 반팔을 입을 정도의 기온은 되었으되 찬물에 들어가기엔 느무느무 추웠다. 혹시나 물이 따뜻한가 (온천도 아닌데 왜?) 살짝 만져보니 앗 차거워! 우리의 수영복은 결국 두번다시 쓸모가 없게 되었다. (물론 실내수영장도 있으나, 수영 실력도 없는 사람들이 굳이 뭣하러 염소물에 들어가냐고!)

그래도 아쉬워서... 호텔방 키로 열고 들어가야 하는 수영장 철문을 굳이 들어가 확인해본 야외풀장은 이렇게 생겼다.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하기에도 날이 좀 흐려지기 시작했지만, 정말 개미새끼 한마리 없다!  가끔 추운 날씨에도 수영하고 그러는 용감한 외국인들 있던데 흠;; 


건물 뒤쪽 정원엔 책 읽기 좋을 것 같은 정자(?)도 보이고 화단과 잔디밭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는데; 거기서도 가든파티가 열리고 있어서 소심하게 그쪽으론 사진도 못찍고 게 걸음으로 건물벽에 딱 붙어 지나왔다. ㅎㅎ 














오후에 둘러보기로 한 곳은 인근 소도시인 소노마(Sonoma). 아마도 옛날에 캘리포니아 남부가 멕시코 땅이었을 때인듯, 멕시코 병영과 요새가 있던 작은 도시라서 200년된 집들이 상점과 갤러리로 탈바꿈해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옛 건물을 보존해 복원해놓은 멕시코 막사 내부는 이런 모습. ^^;; 200년 전이라고 해도 몇십년 전 한국 군인들 내무반보다 더 환경이 나은 거 아니냐고 우리끼리 쑥덕거렸다. ㅎㅎ

박물관처럼 꾸며놓은 건물은 4시가 좀 넘었는데도 (문닫는 시간 5시!) 벌써부터 곧 문 닫을 거라며 나가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쳇...우리도 별로 오래 볼 거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교회 건물은 현재도 사용하는 것 같았으나 들어가볼 수 없었고, 종이 매달린 나무 기둥이 어째 교수대 느낌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시절 서부영화를 너무 본 탓이여.. ㅎㅎ

 


건물 사이사이 예쁘게 꾸며놓은 레스토랑 뒤뜰과 가게들을 기웃거리다가 어쩐지 전주 한옥마을 같지 않냐?!고 했던 가게도 만나고...

괜히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눈이 똥그래질만한 가격의 공예품 구경도 했다.

별뚜껑 유리병이랑 촛대 예쁘닷..


점심을 (나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푸지게 잘 챙겨먹자며 거리를 쏘다니다 눈여겨봐둔 The Red Grape라는 식당엘 들어갔다. 요번에도 만만한 이탈리안. ㅎㅎㅎ

나파밸리에 왔으니 일단 와인! 와인 리스트를 참고해 E언니가 고른 건 만만한 스파클링와인이었다. 

오.. 좋아좋아!

술잔 뒤쪽으로 사진 찍히는 줄도 모르고 신나라 웃고 있는 게 좀 찔리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 윗부분 오려서 공개~. ㅎㅎ

홀짝홀짝 샴페인을 마시며 메뉴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담당 웨이터가 슬그머니 테이블에 병뚜껑 공예품(?)을 놓고 갔다. 우린 일제히 우와~ 그레잇! 감탄해주다가 곧이어 한국말로 덧붙였다. 언니, 저 아저씨 팁 많이 줘야겠어요. 이런 재롱도 다 부리고.. ㅋㅋ


음식점 추천 앱에 올라온 후기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피자 도우 위에 채소가 올라간 샐러드를 일단 시키고는 또 다시 피자와 파스타, 키시를 주문했다. 우리가 샐러드 포함 메뉴가 4개밖에 안되니깐 뭘 하나 더 시키려고 메뉴판을 안 내놓자, 웨이터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너네 그 정도면 충분해! ㅋㅋㅋ 오냐, 그렇다면...

거의 싹싹 다 바닥을 내 먹고는 E언니가 디저트를 더 먹을까말까 그러는 걸 우리가 말렸던 것도 같고... 암튼 또 다시 배꺼뜨리려고 이국적인 거리를 좀 걷다가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시선 닿는 곳마다 여기저기 포도원이 보이는 나파밸리... 느낌이 좋았다. 


호텔방에 돌아와 뭘 했는지도 안 적혀있다. ㅠ.ㅠ 2박하는 곳이니 분명 빨래를 했을테고..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탱자탱자 각자 놀았던 거 같다. 여행이 끝나감을 마구 아쉬워하면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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