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해'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18.02.21 꽃 아니고 나무 2
  2. 2018.01.14 건초염 4
  3. 2017.05.06 멍하다 2
  4. 2016.12.05 나도 근황 8
  5. 2016.10.31 욕이 모자란다 3
  6. 2016.10.19 오늘 점심 4
  7. 2016.10.13 여권 6
  8. 2016.09.29 홍옥 9
  9. 2016.09.25 미친 짓 plus 6
  10. 2016.09.21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2

꽃 아니고 나무

투덜일기 2018. 2. 21. 22:11


"저는 꽃 아니고 나무거든요!" 그 옛날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쌈닭모드로 돌변해 내가 종종 외쳐대던 말이다.

첫 직장이었던 미국 회사에서 인종차별에 열받아 이직한 한국 회사는 당시 중소기업 분위기가 다 그런 것이었는지 여직원들에게만 임직원 취향에 맞는 투피스 유니폼을 입혀놓고서(여직원회에서 고른 서너벌의 후보작을 실제로 여직원들이 입고 패션쇼 하듯이 임원실을 돌며 최종 낙점을 받았다. 와 지금 생각해도 열받는다;;), <여직원은 사무실의 꽃>이라는 전제 아래 온갖 허드렛일과 잡무를 시키며 꽃처럼, 아니 하녀처럼 묵묵히 지들 시중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92년 즈음의 일이다. 

난감했다. 미국회사에선 그래도 남녀차별은 없었고, 지점장도 커피는 제손으로 타 먹었는데 맙소사. 똥밟았나. 회사를 잘못 선택했나. 고민이 많았다. 그뿐인가, 부서별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기생집에 가서 애첩 끼고 앉듯이 나이 어린 여직원들을 주로 부서장들 옆에 사이사이 끼워 앉히고는 술을 따르게 했다. 술 약한 여직원에게도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들어놓고선 다음 날 킬킬대며 그들의 실수를 농담 삼아 씹어댔다. 

그 옛날엔 회식 때도 2차로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 가는 걸 당연시했고, 여직원들은 부르스를 추자는 놈팽이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으면 억지로 끌려나가 '안겨야'했다. 참 폭력적인 조직 문화와 성희롱, 성추행이 '친선도모'라는 핑계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회사일로도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데다가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회식 자리 불편함까지... 총체적인 불만에 휩싸인 나는 상사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가끔 막 들이받았다. 술 핑계로 니들이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디 니들도 한번 당해봐라 그러면서 야, 김대리! 이부장! 너 진짜 재수없거든! 여직원들 술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억지로 먹여! 나도 욕할 줄 알아, 씨*! 뭐 이런 식이었다. 쌈닭 레벨 최고치에 달했던 당시 '왕언니'로서, 손버릇 나쁘기로 유명한 놈에게는 한두번 경고하다가 얼굴에 술을 뿌린 적도 있었다. 물론 내가 정신줄을 놓을 만큼 취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몇번 그렇게 의도적인 진상을 부리자, 일단 여직원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나름 꽤 중요한 해외 업무를 홀로 도맡아 하고 있는데, 회사 25년 역사상 '유일한 경력직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계속 물을 먹으며 때려치울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라, 부당한 처사라고 느껴지면 상사에게 종종 대들면서 두렵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짤라보시지. 누가 손해인가. 어린 여직원들을 당연히 수족처럼 부리던 놈들에게 나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골칫덩어리였고, 눈엣가시였으나 막상 내가 세게 나가면 비겁한 놈들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여직원은 사무실을 장식하는 꽃도 아니고, 당신들의 하녀는 더더욱 아니라고! 니들 여동생이나 와이프나 애인이 회사 출근해서 이런 대접 받으면 좋겠냐! 

각종 기계 매뉴얼과 계약서, 합작투자계획서 따위를 번역하는 것이 토나오게 싫기도 했지만, 회사생활을 관둬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건 결국 보수적인 조직사회와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계속 왕언니로 여직원 대표로 목청 높여 싸워대는 것도 너무나 피곤했다. 내가 꽃 아니고 나무라고 버럭버럭 외치는 사이, 그래도 자기는 '꽃'이 좋다며 바쁜 업무보다 화장에 더 공을 들이는 어린 여직원들도 있었다. 자긴 사내 연애 성공해서 결혼하는 게 목표라면서. 7년만에 난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사표를 냈고, 진짜로 재미난 번역을 해보겠다고 프리랜서 생활을 선택했다. 사방에서 나 같은 인재를 알아봐줄 것이라고 믿었던, 하늘 높이 치솟았던 자만심은 그러나 금방 꺾였다. 호기롭게 이력서를 들이밀었던 몇몇 출판사에선 내게 습작이 더 필요하다고 권했다. ㅎㅎ 암튼 6개월쯤 뒤 드디어 첫 책의 번역을 맡았고,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단 번역서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게 95년 12월이었다. 

초창기 몇년간 드문드문 일이 들어왔지만, 작업 속도도 느렸고 당연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진 못해 과외로 용돈벌이를 해야했다. 번역가로 자리를 잡으려면 출판계에서도 인맥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아 그렇겠구나. 1년에 한두 권 나왔다 사라지는 번역서로 나를 알아봐주긴 역부족이겠구나. '호의적인' 의도로 출판인들을 소개해주겠다는 이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당시엔 주요 일간지에 '북리뷰'가 실리면 단박에 만부는 휙~ 팔려나가 매출이 오르던 시기였기에, 출판인들이 모이는 자리엔 종종 일간지 도서담당 기자들도 초대되었다. 출판사 사장님들은 그런 기자들에게 준비해 온 돈봉투를 슬며시 쥐여주었다. 신간 나오면 기사 좀 잘 써달라고 미리 관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뇌물이었다. 뇌물 공여자리에 불려나온 나는 뭔가. 혹시 기쁨조? 

나처럼 '인맥을 넓히고자' 불려나온 신참 번역가들과 함께 그런 자리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난 왜 여기 나와 앉아 있는가 의아했다. 글도 얼굴이 예뻐야 잘쓰는 거라면서, 책 날개에 실리는 여성작가 프로필 사진에 신경을 쓰라는 둥, 번역가도 약력 뿐만 아니라 사진도 같이 넣으라는 둥, 내 프로필 사진을 예쁘게 찍어줄 사진 기자를 소개해줄 터이니 언제 한번 신문사로 오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다. 왁짜지껄 웃으며 옆에 있던 누군가 슬그머니 내 어깨에 팔도 둘렀다.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였다면 난 또 상을 들러 엎으며 쌍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며 잠자코 버텼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마지막 회식 자리. 2차로 노래를 부르러 함께 가자던 그들의 손아귀를 세차게 뿌리치며, 그 자리에 나를 부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 저 다시는 부르지 마세요. 어지간히 취한 그 사장님은 저 사람들 알아두면 다 좋은데, 앞으로 도움이 될 텐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난 인상을 팍 쓰며 돌아섰다. 차라리 내가 과외를 한 탕 더 하고 말지. 더러운 놈들. 96-7년 즈음에 겪은 일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로 시작되어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학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며, 과연 이 사회의 썪은 부분들 이번엔 뿌리까지 다 도려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슬그머니 잊혀 괴로운 핍박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염려스럽고 궁금하다.  

아직도
기막히게도... 감히 겁도 없이...
술은 장모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라고 말하거나
음양의 조화를 위해 우리더러 지들 사이사이에 끼어 앉으라든지
당연히 노래방 도우미 취급하려든다거나 (그래서 음주 후엔 아예 노래방에 안 간지 오래)
유머랍시고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이른바 ’어르신들’ ‘선배님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 있다. 
직장 상사들이라면야 사표와 술을 얼굴에 뿌리며 대들고 따지겠지만 (다신 안볼 거니까) 공론화하여 사회적 매장을 시도할지도 모르지만, 대단히 관계가 애매한 친목성 조직의 구성원이라 아직은 정색하고 따지며 반발하고 경고하는 수준에서 대체 앞으로 어디까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지켜 보는 중이다.  

사회생활 회식 자리에서..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에서
성추행 성희롱 한번 안 당하고 이 나라에서 살아온 성인 여성은 단 한명도 없을 거라는데 내 아픈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다. 본인도 모르게 체화된 더러운 습관이 죄악인 줄도 모르는 괴물들과,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동조하고 그저 쉬쉬해서 덮으려고만 한다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파렴치한 이 땅의 시스템은 뿌리가 너무도 깊고 튼튼해서 여간해선 뒤엎기 어려울 것을 안다. 조직의 위상과 명예에 흠이 간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했던가. 

작년이었나...
어느 선배님의 습관적인 성희롱 유머 발언에 발끈해 뛰쳐나가 씩씩대는 나에게 또 다른 선배님이 위로랍시고 말했다. 에이 소녀도 아니고.. 새삼 뭘 그런 거 같고 그렇게 반응하냐고.

소녀가 아니니까요! 어렸을 땐 불편해도 대응법을 몰라 그저 얼굴 붉히며 참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무서울 게 없는 쌈닭 아줌마거든요! 

법조계, 문학계, 연극계, 학계, 예술계... 연이어 터져나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아도 (공무원 사회에서 아직 조용한 건 결국 조직을 떠나겠다는 극한 결정을 해야 성폭력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폐쇄된 분야라는 뜻이라고 본다) 결국 속속들이 썩어문드러졌다는 의미다. 문단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땐 워낙 거대한 이슈였던 촛불에 묻혔던 것 같은데, 이번 움직임이 부디 세계적인 행사인 올림픽 때문에 묻혀버리진 않기를 빈다. 

연극계 괴물이 버젓이 뻔뻔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미 법적으로는 단죄의 방법이 없다는 교활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175년이던가, 죽어서도 다 못 치를 징역형이 내려진 미 체조계 성범죄자 의사의 경우와 어쩌면 이토록 법이 다른가. 시위할 때마다 맨날 성조기까지 펄럭이며 미국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왜 법규 제정은 미국 따라가자는 말을 안하는 건지 원. 이참에 성폭력 관련 법규들이 제대로 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도록 국회차원에서 현실적인 법안들이 마련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수사방법과 제도에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와 사회적 고립이 무서워서라도 다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더러운 욕망과 손길을 휘두르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리우드 미투운동 때처럼 우리나라도 돈 많은 사람들이 턱턱 거액을 기부해 피해자와 실천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가난한 프리랜서인 게 웬수다. 젠장. 일단 국내 최대최강 로펌 중에서 보란듯이 이번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대리인으로 나서 변호하며 성범죄 괴물들을 감방에 보내거나 거액의 피해보상금을 빼앗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중등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유도 모른 채 인터넷에 만연한 여혐 분위기와 비뚤어진 성의식에 물든 아이들을 구제하려면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중학교 교실에서 내가 장애, 인종, 성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던 날, 대뜸 누가 물었다. 선생님도 메갈이에요? +_+ 메갈이 뭔지 나도 모르겠고, 그런 사이트는 사라진지 오래건만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차별에 대한 사고부터 바뀌는 게 시급하다. 아직도 성별 자체가 힘인 경우가 너무도 많으니, 실제로 권력을 쥔 괴물들의 성범죄 수준이 더욱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작년에 실제로 후배들 채용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에서 마지막 면접에 오른 10명 중 여:남 비율이 8:2였을 때, 남자애들 둘이 면접도 보기 전에 서로 얼굴 보며 씩 웃었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네들은 둘 다 뽑혔다 싶었다나. (실제로 최종 합격한 그 둘 중 하나가 나의 후배였으니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역차별이니 뭐니 하고들 앉아 있으니 원. 어느 조직이든 최고권력자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들은 그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를 줄 알며 성폭력도 그 권력의 범위 안에 있다고 당당하게 믿는다. 드물게 여성들 중에도 최고 권력자에 올랐던 박씨와 최씨가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하긴 그들이 꼭두각시였으니 정치인들이 다 알고도 마음대로 하려고 대통령에 앉혀놨을 거다. 이용해먹기 얼마나 좋았을까. 

무서운 말이기는 하지만 '강간'이라는 말보다 범위가 모호하고 순화된 성폭력이라는 말이 공적으로 사용된 이유가 뭘까 궁금한 적이 많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의 구분도 가만 보면 가해자들이 빠져나가기 더 쉬운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강간문화에 대한 미화가 아니고서야 대체 왜? 성폭력 범죄자 주제에 사회적인 비난 앞에서 사과하는 척 하다가 뒤로는 명예훼손 소송으로 겁박하는 뻔뻔한 유형도 기막힐 노릇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피해자들이 범죄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그게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썩어빠진 세상.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는 건 맞지만 사회에 만연된 성폭력 문제에 관한한 좀 더 급격한 변혁이 필요하다. 파렴치한 괴물들은 다 처단하고, 예비 괴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성문화 밑바탕부터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우선 남녀는 꽃과 나비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은 인간이고 나무라고 가르치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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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염

투덜일기 2018. 1. 14. 14:11

처음 아팠던 게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설날이었던가 어느해 명절에 힘든 노동을 다 견디고 난 다음날, 스트레스 풀러 약속을 잡았는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 갑자기 고통스러웠다. 발을 디딜 때 아픈 게 아니고, 다리를 접을 때 무릎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던 거다. 그날 하루 종일 절뚝이며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명절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그랬나보다 막연히 생각했었다. 푹 자면 낫겠지.

당시에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통증이 반복되기를 여러 달. 문득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겁을 내다 결국 정형외과에 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관절도 연골도 이상은 없다면서, 의사는 다리 근육강화 운동을 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소염진통제를 한 이틀 받아왔던가. 언제 그랬었나 싶게 무릎은 곧 멀쩡해졌다. 스트레스성 상상통이었나 싶을 정도로. ㅎㅎ

그러고는 또 몇년. 그 사이 나는 놀랍게도 '등산인'이 되었다. ^^; 2016, 17년엔 하루 20km가까이 걷는 것도 예사인 서울 둘레길도 걸어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만 했을 때는 무릎 통증이 재발되지 않았었는데, 아스팔트 걷는 길도 많은 둘레길이 문제였던가? ㅠ.ㅠ 암튼 작년부턴 등산을 3시간 이상 하면 꼭 내려올 때 무릎이 아팠다. 왼쪽 다리가 아플 때도 있고 오른쪽 무릎이 아플 때도 있어 통증이 왔다리갔다리 했었는데, 12월부턴 계속 오른쪽 무릎만 아팠다. 그리 많이 걷지도 않는 날이었는데, 산에 올랐다가 간식 먹으며 좀 쉬다보면 일어날 때부터 다리가 뻣뻣하고 무릎을 접을 때마다 아팠다. 젠장..

1월 첫 등산인 북한산 백운대를 갔던 날도 내려오면서 퍽 고생을 했다. 많이 아파서 오른쪽 무릎을 세게 짚을 수가 없으니 왼쪽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결국 다음날엔 양쪽 다리가 모두 아팠다. 왼쪽은 근육통, 오른쪽은 원인 모를 통증. 하루 푹 자고 나면 증상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젠 며칠 지나야 멀쩡해졌다.

올해 결심 중 하나는 등산을 다시 열심히 다니는 거여서, 엊그제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사실은 오른쪽 손목도 아픈지 꽤 된 상황이었다. 영화 번역 작업을 하면 장면 시간 맞춰 일일이 자막을 넣어 자막 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우스를 엄청 많이 써야 하고 그런 날은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갔었다. 멀쩡한 것 같다가도 병뚜껑을 열어야 할 때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든지, 손목을 아래로 꺾으면 아픈 정도. 직업병이려니 하면서도 째뜬 이참에 다 물어보았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은 뒤 건초염 진단을 받았다.

관절과 연골엔 여전히 이상이 없고 힘줄에 염증이 생긴 거란다. 무릎과 손목이 아파서 왔다는 내 말에, 의사는 통증 부위에 무리가 가는 일을 했느냐는 질문보다도 먼저 평소 몇시에 자느냐고 물었다. ㅠ.ㅠ 어... 좀 늦게 자는데요. 주로 밤에 일을 해야 해서...  불면증도 좀 있고... 대번에 그게 원인이란다. ㅎㅎㅎ 잠을 제때 안 자면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그래서 염증이 쉬 발생한다고. 에고. 

바닥에 양반다리하고 앉지 말것, 관절을 심하게 꺽는 자세는 피할 것, 가능하면 일찍 잘 것, 내리막길은 피할 것.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잘 낫지 않는 병이라며 소염진통제 처방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자는데, 내가 다시 물었다. 실은 내일 등산을 가거든요. 가면 안되나요. ㅠ.ㅠ 의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등산은 관절을 희생해서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어느 기관을 튼튼하게 할지는 본인이 선택해야겠죠. 건초염에 안 좋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셨네요. 잠도 제때 안자고, 등산 다니고... 헐. 

나는 숲에 가야 불면증이 낫는다고 변명했고, 의사는 정 좋으면 어쩔 수 없다면서 등산을 가야겠거든 스틱을 꼭 쓰라고 조언했다. 고주파 치료, 자기장 치료, 찜질 등등의 물리치료를 받고 났더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말짱해졌다. 아싸... 좀 불안했지만 소염진통제도 먹었겠다 다음날인 어제 아침 압박밴드로 오른 무릎을 단단히 감싼 채 괜찮겠거니 싶어 꾸역꾸역 등산을 따라갔다.

올라갈 때는 정말로 아픈 줄도 모르겠고 멀쩡했는데 2시간이 넘어가고 하산길이 이어지자 점점 무릎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절룩거리는 나를 보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어우 씨 짜증나고 창피해서 원. 신년산행이고 이후 행사가 있어서 7km정도로 산행이 짧아 다행이지 더 높고 긴 산행이었으면 큰고생했을 것 같다. 통증은 내 문제이지만, 단체 산행에서 홀로 행동이 느려지는 건 남들에게도 민폐가 되는 짓이라 앞으로도 걱정이다. 과연 완전히 다 나아서 산에 계속 열심히 다닐 수 있을까? 

어제 송송송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기분 정말 좋았는데 ㅠ.ㅠ 벌써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런 내 마음이 무식한 고집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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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다

투덜일기 2017. 5. 6. 15:17

가슴 벅찼던 콜드플레이 공연후기부터 써야 블로그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뭐든 후기를 잘 못쓰겠다. 알량했던 1/4분기 독서후기도 그렇고, 영화 얘기도 그렇고... 두뇌가 수시로 딱 먹추는 느낌이랄까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건 확실한듯.

암튼 그러는 가운데 또 정신없이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갔다가(거슬러 간 게 맞나? 질러간 건가?) 왔더니만 가서도 계속 빌빌, 와서도 빌빌 도무지 '적응'이라는 게 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게 속일 수 없는 내 나이 탓이려니 단념해야 하나? 심지어 어제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두 정거장이나 가다 내려 바꿔타야했고, 결국엔 집에 오는 길에 현금 5천원과 후불교통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어쩌면 이건 정말로 시차 부적응 탓이 아니라 그냥 중년건망증이 심해진 걸지도. 

아무튼 주변에 무엇하나 마음 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괴로운 집안사는 집안사대로, 밀린 일은 일대로, 인간관계는 또 그대로... 근데 왜 또 무리까지 해서 여행은 떠났는지. 참 내. 물론 오래 망설였지만 확 저질러서 좋았고 조마조마하던 몇달을 거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해서 좋았고, 2주간은 그야말로 꿈결처럼 행복했다. 어제 트위터에서 <호텔>이야말로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는 말을 보았다. 아침밥 주지, 청소해주지, 매일 보송한시트 갈아주지, 전화하면 새 타월 갖다주지... 거기다 침구류는 또 최고급아닌가. 친구네 집을 베이스로 주변을 돌아다닌 게 아니라, 아예 계속 차로 도시를 바꿔가며 10박11일을.. 그것도 친구 언니가 회원인 덕분에'메리엇 호텔'로만 돌아다니다 내 여행 인생에서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다.   

패키지 여행 못지 않게, 잘 곳, 볼 곳, 놀 곳, 먹을 곳... 거의 모든 걸 다 결정해놓았거나 알아서 결정해주는 주동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되고 째지게 편하든지! 친구 언니가 세운 계획에 맞춰 친구와 나는 그냥 녜녜, 좋습니다, 좋아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3킬로그램쯤 늘어 얼굴 주름이 다 펴지도록 빵빵한 풍선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마저도 좋다고 생각됐다. 그래 난 원래 호빵같은 얼굴이 캐릭터니깐 뭐...

그럼에도 일은 놓지 못하고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 처음 며칠은 밤중에 홀로 청승을 떨었고, 차로 움직이는 이동시간이 길 때는 데이터 로밍을 해갔어도 틈틈이 잘 터지지도 않는 인터넷을 찾아헤매며 국내 뉴스와 SNS를 기웃거렸다. 내가 겨우 이럴라고 촛불 들고 그 추위에 떤 게 아닌데 싶은 실망감에서 오는 불안과 조바심? 그래도 지난 대선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했지만--물론 그렇다고 ㅂㄱㅎ가 대통령 되는 걸 막진 못했었지--이번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투표할 여건이 된다는 것을 기뻐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점이 많은 대선후보였지만 와.. 아무리 표가 급해도 반대할 게 따로있지.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사람일세. 싫다싫다하니깐 ㅁㅈㅇ, ㅇㅊㅅ 둘 다 이젠 표정도 싫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 싫다! 대선 토론에서든, 공약에서든, sns 홍보전에서도 역시 심블리 상정언니가 쵝오~! 두자리수 꼭 넘겨서 반드시 선거비용 보전시켜드리리. 

수시로 졸리고 잠들었다가 엉뚱한 시간에 깨어나기를 닷새째 하고 있는데, 머리가 멍해서 일도 독서도 불가능하고 그저 최대치로 늘어난 위장에 먹을 거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새벽 5시에 잠이 깨 빈둥대다 배고픈 걸 참고 참다 계란찜과 두부부침으로 나름 거하게 아침상을 차려 엄마와 함께 먹었다. 보름간 냉장고에 붙여두고 간 국과 밑반찬 계획표에 따라 성실히 살았노라고 자랑하시는 왕비마마 보필은 오히려 돌아와서 빌빌대느라 더 못했다. 내일 어버이날 디너 먹는 걸로 퉁치기엔 좀 그러니 또 당일엔 장봐다가 무슨 요릴 해드려야 고객님이 흡족해 하실까나. 

어느새 5월이 이렇게 막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아카시야향이 그윽한데 빌어먹을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열고 이래저래 제기랄 대한민국.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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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근황

삶꾸러미 2016. 12. 5. 22:56


본격 겨울을 앞둔 11월은 1년중에 내가 가장 넘기기 힘들어하는 달이어서, 괜한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리는데 올핸 그럴 겨를이 아예 없었다. 뭔가 대단히 분주한 일들이 많았고, 토요일이면 광화문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의 11월 우울증을 날려버린 공은 파렴치한 닭그네에게도 일부 지분이 있다. 수십년만에 국민대통합을 이룬 공이 그치에게 있듯이 말이다. 하여간 시국이 시국인지라 후다닥 일감 처리할 때 아니면 진득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끼적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홧병으로 가슴이 콩닥거리면 머리가 텅 비거나 무거워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블로그형 인간성은 버릴 수가 없어서 짧은 여행기며 그날그날 단상들을 적어놓지 않고 계속 쌓이니 숙제 안한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연말 베스트 집계 하려면 기록해둬야하는데! 뭐 이런 심정? ㅎㅎ 해서 간단하게 사진위주로 뭐 하고 지냈나 근황 정리 시작.

2014년 가을에 법주사(부모님의 신혼여행지였다)에 함께 다녀온 이후로, 엄마는 가을만 되면 모녀 여행을 바라신다. 작년엔 그래서 부산엘 다녀왔는데, 올해는 전주와 담양을 여행지로 정했다. 엄마가 전주 학인당에 묵어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왕비마마의 로망은 실현했으되, 결과적으로 한옥 민박은 노년의 엄마에게 맞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다. ㅠ.ㅠ 댓돌 위로 툇마루로, 높은 문지방 넘어 화장실로 오르락내리락해야하는 구조가 관절 부실한 노인에겐 부적절. 게다가 1년만에 왕비마마의 기력은 너무도 약해져, 좀체 걷질 못하셨다. 진짜 나이든 할머니구나 하는 걸 실감한 여행이어서 덩달아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넌 안 늙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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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모자란다

투덜일기 2016. 10. 31. 13:53

반려견을 키우는 개엄마, 개아빠들이 주변에 많다. 당연히 '개'와 관련된 욕을 들으면 펄펄 뛰며 화를 낸다. 개가 얼마나 충성도 높고 성실하고 영리한데 어떻게 '개 같다'느니 '개만도 못하다'느니 하는 것이 욕이냐, 오히려 칭찬이면 칭찬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조카네 개를 가끔 보아도 맞는 말이다. '개새끼'나 '개자식'은 이제 더는 욕이 아니고 많은 인간들에게 칭찬이다. 충직한 개 정도만 살아도 훌륭한 인간이므로, 앞으로는 점점 더 개와 관련된 새로운 표현이 탄생하지 않을까. 

근데 내가 가끔 입이 거칠어지는 인간이어서 욕을 아예 끊고 살 순 없어, 종종 하는 말이 '미친X, 미친O'이었다. 특히 4년 전부터 그 욕을 가장 많이 들어온 인간이 하나 있었는데... 요즘 하나하나 드러나는 추한 진실을 들여다보면 '미친O'이라는 욕도 오히려 칭찬이다. 어쩔 수 없이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긴 환자에 대한 폄하 발언이므로 미쳤다는 말 역시 옳바른 용어가 아니다. 제정신으로 살기엔 이미 무리인 이 나라에서 미치는 게 뭐 어때서?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인간은 그저 사악하고 또 사악하고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생각이라곤 아예 할 줄 모르는 존재다. '--충'이라는 욕 또한 널리 쓰이고 있지만 그 인간에겐 곤충이라 욕하기도 벌레들이 아깝다. 촌충, 십이지장충 같은 기생충 정도라면 모를까.

그 인간 지지율이 17%니 14%니 하는데, 아직도 그만큼이나 지지하는 무뇌 인간들이 남아있다는 게 더 절망스러운 것 같다. 하긴 여론조사의 정확성도 믿을 수 없으니 훨씬 더 낮은 수치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마감 핑계로 지난 토요일에 촛불집회에 못나가고는 계속 찜찜하다. 과연 모든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까, 손석희와 JTBC를 믿고 기다려봐야지 싶다가도 검찰 하는 꼬라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 나라는 정말 어디까지 얼마나 속속들이 썩은 걸까.

통째로 썩어빠져 무기력한 검찰과 나라꼴과는 달리 저들은 벌써 무섭게 상황을 은폐할 준비를 마친 것 같다. 전직 대통령도 데려다가 모욕적인 검찰조사로 자살로 몰아넣은 인간들이 공항에서 곧장 긴급체포도 모자랄 범죄자는 충분히 쉬며 거짓말 짜맞출 시간까지 배려해 모셔가는 상황은 정말 무섭다. 그들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로 읍소한 뒤 모르쇠로 버티는 작전을 시전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휴, 파렴치한들. 제발이지 다들 빨랑 잊지 말고 이 분노의 불길이 계속 타올라 끝장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전 6월에도 그랬고, 결국 이 나라에서 믿을 건 그래도 국민들이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때보다 윗대가리들이 더 철저하게 썩고 부패시스템이 견고해졌다는 것이겠지. 순siri가 빼돌린 돈만 국고에 환수해도 많은 분야에서 뿌리 깊은 불황이 얼마나 해소될까, 뭐 그런 핑크빛 전망과 이상이나 떠올리고 있는 내가 돌연 한심스럽지만 암튼... 불끈 주먹쥐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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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놀잇감 2016. 10. 19. 15:33

배가 고프면 남들보다 심히 화가 나는 성격이라고 알고 살았는데, 요샌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화가 나면 폭식 경향도 보이는 것 같다. 원래도 배고플 때 공기에 밥을 담으면 고봉밥, 머슴밥을 퍼놓고 낄낄대지만서도... (배고플 때 장보면 쓸데없는 물건을 마구 계획없이 사기 때문에 빈속에 마트 가선 안된다는 보편적 진리가 있는 걸 보면 다들 비슷할수도 있겠다)

암튼 점심 준비 앞두고 속상한 문자와 통화를 한 탓에 칼질부터 손길이 마구 거칠어지면서 욕심도 양도 대폭발했다. 정신없이 잘라 프라이팬에 던져넣은 채소를 불에 올려 볶으면서, 그제야 2인분으론 너무 많군,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서 사진을 찍어댔다. 이럴 땐 정말 블로그는 나의 힘, 나의 위로다. ㅠ.ㅠ

1. 점점 비어가는 냉장고 파먹기의 일환으로...양파, 새송이버섯, 브로컬리, 통마늘, 단호박을 대~충 잘라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에 볶는다.


2. 냉동실에 있던 닭가슴살도 해동해서 잘라넣고...(1인당 하루에 고기 100그램 먹어야한대서) 좀 더 볶다가


3. 시판 토마토 소스 서너 숟갈, 면수 한국자(소스 병 헹구느라고...), 우유를 좀 부어 바글바글 끓인다.


4. 왕비마마가 딱딱한 국수 딱 질색이라 알텐테는 집어치우고...10분간 푹푹 끓인 스파게티 면을 소스에 건져 넣고 좀 더 뒤적이다 접시에 담으면 완성. 오늘은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나만 스누피 접시에 담아 먹었다. 

5. 포스팅용이라지만 예쁘게 소량으로 담는 연출까지는 귀찮고, 그래도 파슬리 가루랑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뿌리는 정성으로 마무리. +_+


아니 이거슨... 이탈리아 머슴밥인가 싶게 양이 엄청났는데(원래도 늘 채소가 많아 1인분에 국수 80그램 딱 저울에 재서 삶는데 오늘은 부재료가 많아 150그램만 삶았는데도;;) 사진으로 보니 위에서 찍어서 수북한 느낌이 다행히도 잘 안보인다. 

놀라울 정도로 국제적인 입맛을 갖추신데다 국수 종류는 죄다 좋아하는 왕비마마 덕분에 사나흘에 한번은 파스타를 해먹는 것 같다. 점심 때도 맨날 밥 먹기 싫어서 하루 한끼는 노상 떡만두국, 우동, 칼국수 따위 '분식'으로 돌려막기를 하기 때문이다. 큰 마음 먹고 밀가루 반죽 해 수제비 씩이나 해먹은 날도 이건 포스팅 감이야.. 생각은 하지만 온통 밀가루 범벅이 된 상태로는 거기까지 정성이 미치지 못한다. 아이폰을 아끼는 건가? ㅋ 

맛은 어땠냐고? ㅠ.ㅠ 그게 문제다. 뭘 만들어도 기본적인 맛이 보장된다는 거. 요리를 못하거나 싫어하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종종 부럽다. 본인이 고생할 이유가 없는 거다!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먹고 행복해하면 끝. 집에서 자주 파스타까지 대령하면서, 웬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선 왕비마마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_+ 바깥 음식은(특히 음식점 파스타는) 짜기만 할 뿐, 가격 대비 양도 너무 적고 내가 만들어 드린 게 더 맛있다는 총평을 매번 내리심. 녜, 녜, 앞으로도 손수 만들어바치겠습니다요... 

식후 세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속이 그득한 걸 보면, 심히 많이 먹은 건 확실하다. 화나서 폭식하고, 그래서 졸음 쏟아져 낮잠 퍼져 자면 아주 완벽하게 식충이다운 삶이겠으나 다행히도 마감에 쫓겨 그 지경까지는 못감. 커피나 찐하게 만들어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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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투덜일기 2016. 10. 13. 01:22

2006년에 만들었던 10년짜리 여권 만기일이 9월 중순이었다. 예전엔 만기일 이전에 갱신하는 비용이, 날짜 지나고 나서 새로 만드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했던 기억이 있어서 괜히 마음이 바빠졌으나 결국 만기일 이전에 여권을 만들진 못했다. 9월 중순이면 딱 추석연휴때가 아닌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심신이 좀 지치고 바빴어야지... 째뜬 요샌 뭐 전자여권이라 갱신이든 신규든 재발급 비용은 다 똑같다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군, 했다. 

어차피 해외여행 계획이 당장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여권을 만들어둘 필요는 사실 없다. 그런데도 컴퓨터 모니터 아래 노란 포스트잇에 적힌 "9월 전에 여권 갱신!!!"이라는 글귀가 계속 시선을 끈다. (느낌표를 세 개나 붙여놓다니 어떤 심정이었던 거지? ㅋㅋ) 그 옆 포스트잇에 적힌 원고 마감 날짜는 일부러 게슴츠레 눈감고 잘 안보면서 참 나도 웃긴다.

하여간에 여행계획도 없으면서, 언제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이용권도 아닌, '일개' 유효 여권이 없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찜찜하고 불안한가 말이다. 더 웃기는 건 이미 충동적으로 여권사진도 찍어두었다는 사실. ㅋㅋ

앞으로 또 10년 쓸 여권이니깐 이왕이면 꽃단장 하고 예쁘게 찍어야지.. 했던 평소 마음과 달리, 지난달 말 외출에서 돌아오다 ATM 머신에 볼 일이 있어서 걸어가는데 동네 사진관이 눈에 확 들어오는게 아닌가. 충동적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ㅠ.ㅠ 그날따라 화장품 파우치도 안 가지고 나간 걸 깨달은 건 좀 슬펐다. 아파 보이거나 말거나 그래도 당부했다. 전번에 운전면허증 사진 찍은 거 너무 심하게 손대서 얼굴 너무 뽀얗고 입술도 엄청 크고 뻔떡거려서 마음에 안들었으니 보정 심하게 하지 말라고...

해서 사진사가 앙심을 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생긴대로 찍힌 여권사진은 나의 현재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눈썹과 귀가 나와야하고 뿔테안경도 쓸 수 없고 배경은 하얀색인 악조건에서 뭘 더 바라냐 싶지만, 지난 여권 사진에서 정말로 확~ 10년 세월을 뛰어넘은 아줌마가 지그시 미소를 짓고 있다. ㅠ.ㅠ 아우쒸...

다시 좀 더 진하게 풀메이크업을 하고서, 동네 말고 신촌이나 이대 쪽에 프로필 사진에 준하는 여권사진을 찍어준다는 사진관을 검색해 다시 사진을 찍어 말어, 뭐 그런 허섭쓰레기같은 생각을 잠깐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게으름을 감안할 때 그건 어림없는 짓이겠고, 구청에 여권신청하러 가는 게 과연 언제일지 그게 궁금하다.

아무데도 떠날 계획이 없으면서도 여권이 없는 상태가 불안하고 괜히 속상하고 심지어 여행자의 삶에서 완전히 낙오된 것 같은 심정마저 드는 것과는 별도로, 포스트잇 메모를 보며 여권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하면서 막상 또 신청하러 몸을 움직이는 건 선뜻 하지 못하는 이 게으름이랄지 귀차니즘은 참 고질병이다. 어쩌면 여권만 미리 만들면 뭐하나... 갈 데도 없으면서, 하는 패배의식이 밑자락에 깔려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이 포스팅은 수일내로 여권을 만들고야 말겠노라는 다짐이다. ㅎㅎ 사실은 어디서 분실했는지도 모르게 운전면허증도 사라져 다시 만들어야하는데 이 또한 차일피일...  가끔 운전할 때마다 찜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두 개 다 얼른 만들란 말이닷! 그나마도 운전면허증은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 미리 재발급 신청하면 면허시험장 가서 오래 안 기다리고 바로 찾아올 수 있다는 팁을 얻었다. 좀 전에 퍼뜩 그 생각이 나서 이 새벽에 낑낑거리며 익스플로러 보안프로그램 다 깔았더니 +_+ 신청가능 시간이 아니란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럼 그렇지..

으음. 암튼 바람이라면 일단 새 여권을 만들어서, 어물쩡 새 여권에 어서 출입국 도장 하나쯤 찍어줘야한다는 핑계로 짧든 길든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면 좋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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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

투덜일기 2016. 9. 29. 21:42

식탐녀는 먹을거리로 계절을 실감한다. 옥수수의 계절이 지나고 어느덧 홍옥의 계절이 왔다. 열흘쯤 전 경복궁 주변 서촌 과일가게에서 제일 먼저 홍옥을 본 순간, 아 홍옥이다! 외치며 사들고 오고싶었으나... 음주하러 가는 길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며칠 뒤 동네 지하철역 근방에서도 홍옥을 만났다. 

등산갔다 오는 길이었는데... 무겁거나 말거나 10개를 골라 사들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시절부터 세뇌된, 내 뇌리 속 사과의 개념에 꼭 맞는 빛깔과 모양, 새콤달콤한 맛과 아삭한 질감은 역시나 뭐니뭐니해도 홍옥이다. 아으 맛있어라...

오늘도 냉장고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먹으려고 보니.... 아 이건 또 동화 <백설공주>에서 마녀가 일부러 독을 넣어 공주를 유혹하려고 만든 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는 분명 이 노란 부분을 깨물겠지. ^^; 나머지는 잔뜩 독이 들었으렸다~!

나는 백설공주 코스프레를 하듯 새빨간 부분부터 와그작 깨물어 먹었다. 당연히 맛있어, 맛있어! ㅋㅋ 추석때 제수용품으로 샀던 큼지막한 홍로 사과는 복불복이어서, 아삭한 것도 있고 푸석한 것도 있고 맛도 제각각이었다. 헌데 이 홍옥은 크기도 작은데 안에 꿀(?)까지 들었다. 진짜로 꿀인지 어쩐지, 꿀사과라고 파는 건 안을 잘라보면 과당이 뭉친 듯 투명한 결정 부분이 존재한다. 근데 홍옥이자 꿀사과라니 꺄오...

먹기 아까울 만큼 예쁘다는 생각에 깨물기 전에 이 사진을 찍어놓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노라니 또 다른 사과 생각이 났다. 딱 요정도 크기였던가, 아니 훨씬 작았던가... 낯선 나라 과일가게에서 딱 백설공주에 나올 법한 새빨간 사과를 발견하고는 얼른 골라담아 호텔방에서 아침저녁으로 와그작와그작 깨물어 먹었더랬다. 


사진으로도 찍었었지.. 싶어 찾아보니 있긴 한데... ㅋ 화질이 아주 구리다. 

사과보다 엄지손가락 거스러미가 더 눈에 띄는 건 자격지심이겠지비... ㅋ 이제보니 터키에서 먹은 이 사과는 훨씬 더 작았었다. 기억에 남은 맛은 오늘 먹은 홍옥보다 좀 더 새콤했던 것 같고, 씹는 질감은 좀 더 단단했다. 그래도 이것은 홍옥이여~ 그러면서 기뻐했었지.  

시간이 기억을 왜곡하고, 일그러진 기억은 또 자체 보정을 거쳐 마치 생생한 '사실'처럼 내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을 텐데, 난 '남들보다 좋은 기억력'을 주문처럼 외우며 틀림없는 진실로 남들에게 들이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 또한 꼰대짓이고 옛날 사람 인증이다. 


흠...

한동안 멀리했던 블로그질에 다시 열을 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ㅠ.ㅠ 번역서의 역자후기 마무리를 도무지 하지 못해서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제대로 생각이 들어가고 고민이 깃든 글을 쓰지 않다보니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 

책도 안 읽으면서 무슨 글 타령이냐 싶고, 머리가 드디어 깡통이 되었구나 반성하며 그래도 방바닥에 굴러다는 책 가운데 젤 만만한 걸로 집어들었더니 거기서,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어야 글 쓸 자격이 있다는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맞다.  매일 써지는 글의 가벼움과 한계도 물론 존재하지만, 어쨌든 어딘가 몇줄이라도 생각을 적어놓는다는 것의 즐거움이 분명 있었는데, 더는 진득하게 앉아서 배설해내는 짓거리도 하지 않고 살았구나 싶었다. 여기다도 후다다닥 얄팍한 자랑 아니면 푸념만 반복했을 뿐.

하여간에 그래서 또 이렇게 반성모드로 포스팅을 하다보면 글이 글을,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물고 꼬리를 잇는 마법 같은 것이 벌어지려나 기대하면서 이렇게 낑낑대고 있다. 이러면서 난 어떻게 글줄로 밥벌이를 계속 하려는 것이었는지? 참 나.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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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 plus

놀잇감 2016. 9. 25. 09:20

또 손뜨개 가방을 만들었다. ㅠㅠ

은실로 짠 손뜨개가방을 그냥 막내고모 졸업선물로 줄까 생각했었는데... 나 못지않게 물건 오래쓰기 & 못버리기의 장인 수준이신 고모는 그거 선물하면 분명 몇년은 애용할 텐데, 은사의 특성상 내구성이 떨어져 몇번 들면 보푸라기 일고 금세 해지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대충 막 짬짬이 짠 거라 삐뚤빼뚤 완성도 면에서도 떨어지고, 특히나 안감 사기 귀찮아서 다이소에서 2천원짜리 에코백을 사다가 우글쭈글 대충 꿰매 붙였던 게 영 마음에 안들었다. 내가 드는 건 괜찮아도 선물하기엔 영 마뜩찮은 수준. 

그래서.. 새로 실을 장만해 제대로 수제핸드백을 만들어 초대전 및 졸업 기념 선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 면실을 세 가닥으로 떴더니만 생각보다 무게도 많이 나가고 실도 많이 들었고 무엇보다 신축성 없는 실을 꾸역꾸역 짧은뜨기로 촘촘히 뜨려니... 손목 인대 늘어날뻔! 째뜬 가죽 손잡이와 '핸드메이드' 가죽라벨, 엄선해서 고른 밤색 옥스포드 안감까지 마지막날엔 거의 밤을 새다시피 바느질해 작품을 완성했다. 왕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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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바쁜데 계속 마음이 시끄러웠다. 이도저도 아니어서 도무지 한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움. 뭔가 여기다 푸념이라도 적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남부끄러운 제 얼굴에 침뱉기 같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 옛날 가증스럽게 일기장에 원하는 바를 적어 책상에 올려두고 '일부러' 발견되는 작전을 쓴 것처럼 보이면 곤란하다 싶기도 하고. 

암튼 일주일 가까이 곰삭이다보니 드디어 얼추 정리가 된 것 같다. 그간 내가 믿어왔던 건 혼자만의 판타지였다는 걸로 결론을 내리니 갑자기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서로 최선을 다했으나, 태생적인 한계 탓에 진심이 좀처럼 가 닿지 않는 관계도 있음을 인정하면 되는 거였다. 존재 자체가 부담인 관계에선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틀어지고 괜한 오해를 낳는 것을.... 다들 일정 거리를 두고 사는 관계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뭐 잘났다고 그 거리를 좁히려 들었을까나. 바보처럼... 나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미 그렇게 스스럼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더랬다. 결국 다 내 잘못이다. 

또 한번 나에게 대실망. 이번에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쓸데없는 욕망,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큰그릇으로 착각하는 게 나의 패착이었다. ^^; 생각과 실천을 일치시키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고...  그래서 여기서 다 놓아버리기로 했다. 안되는 걸 붙들고 미련떠는 건 그만 하기로.  

어제부터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1절 가사 때문이다. 구구절절 내마음일세.. ㅎㅎㅎ


김광진, 편지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지닌 모든 관계를 담담하게 정리하고 위로하기에 정말 딱인 노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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