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해'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15.12.03 눈길 4
  2. 2015.11.30 멍... 8
  3. 2015.10.16 이상한 일 계속... 8
  4. 2015.09.14 한복 욕심 2탄 14
  5. 2015.09.07 욕심은 끝이 없다 10
  6. 2015.08.11 추하다 2
  7. 2015.06.13 6월 12일 7
  8. 2015.06.11 SARS/사스/사르스/MERS/메스/메르스 5
  9. 2015.06.03 이게 뭔가 4
  10. 2014.12.22 새 부엌 12

눈길

투덜일기 2015. 12. 3. 22:06

오늘은 이상하게 눈길을 걷고 싶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나게 눈을 밟으면서.

그러나 느즈막히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푹한 날씨에 벌써 눈은 거의 다 녹아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뭇가지에나 조금 매달려있을뿐.. 

그렇다면 방법은? 동네 산에라도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마침 도서관에 책 갖다줄 것도 있겠다 겸사겸사 집을 나섰다. 기온은 영상이라지만, 산속은 그래도 추울지 모르니깐 따뜻한 물도 좀 챙기고 귤도 하나 주머니에 넣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꽤나 싸늘. 후드티 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눈내린 날의 늦은 오후. 늘 사람들로 버글거리던 개천변 산책길에도 인적이 드물더니만 산길을 오르는 오솔길엔 사람구경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아이 좋아라. 온 산이 다 내것이여~

공포영화나 롤러코스터는 무서워하지만, 혼자 집에 있는다든지 깜깜한 곳에 혼자 있는 것,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가는 따위는 무섭지 않다. 오히려 사람이 나타나야 괜히 무섭지... 산속에서 저 멀리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불현듯나타나는 할매, 할배들이 아예 없어서 더 좋았다. 고즈넉하고 호젓한 분위기.

하지만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길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죄다 질퍽질퍽 녹아버렸;;; 그래도 실망은 일렀다. 정상 봉우리를 남겨두고 마지막 산모퉁이를 돌자 그때부턴 정말로 눈길 시작. 사람들이 죄다 밟고 다니긴 했어도 뽀드득뽀드득 제대로 소리도 나주시고, 오가는 바람에 눈보라가 가끔씩 마구 휘날려주시고, 아주 깊은 산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정상 봉수대에서 한바퀴 서울시내를 내려다본 뒤 미지근하게 식은 물 원샷하고는 서둘러 내려오는 길.... 아 쒸.. 길을 잘못들었다. 새하얗게 눈이 덮인, 아무도 걷지 않은 산길을 내가 제일 먼저 오르고 싶다는 이상한 로망이 있지만, 게으름 때문에 도무지 실천을 못하는 것말고도 혹시 산속에서 괜히 길을 잃으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동네 산이기는 해도, 아니 동네 산이기 때문에 길이 하도 여러갈래라서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다른 동네로 내려가기십상인 게 이 동네 @산이다. 

거기다 자락길까지 만들어놔서 사방팔방으로 다 통하게 해놨으니... 곳곳에서 만나지는 정자도 비슷비슷, 운동기구도 비슷비슷, 약수터도 비슷비슷... 오늘은 그냥 눈 녹은 길만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어디선가 방향을 잘못 들었나보았다. 

올라갈 때 본 정자가 틀림없는 줄 알고 내려가보니 완전히 낯선 길 옆이었다. 젠장. 머릿속으로 방향을 더듬어 내려간 곳은 당연히 연희동 쪽인 줄 알고 방향을 틀어 걸어갔는데.. 아 놔... 또 멘붕. 내가 내려간 곳은 연희동쪽이 아니고 정 반대인 무악재쪽이었다. ㅋㅋ 완전히 산을 넘어가버렸네그려. 그나마 중턱에 뚫린 자락길을 다시 돌아서 무사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집에 왔지만, 길 잃은 줄도 모르고 산속에서 좋아라 사진 찍고 흥얼대다가 맑아졌던 파란 하늘이 다시 구름으로 덮이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순간 살짝 겁이 났다.

여기서 괜히 빙판길에(점점 기온이 떨어졌는지 중턱 아래쪽도 눈길이 얼어붙기 시작) 넘어져 팔이라도 부러지면 혼자서 낑낑대며 병원까지 가야하는 건가 어쩐가...  ㅋ 왜 괜히 재수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자책하며 킥킥거렸다. 당연히 조심조심 걸어 한번도 안넘어졌음.   

올초부터 눈길에 꼭대기까지 안가본 것도 아니고... 늘 다니던 산길에서 길을 잃다니 (역시 눈이 덮이면 다 낯설어보인다) 좀 바보같았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하고 보람찼던 눈길 탐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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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투덜일기 2015. 11. 30. 21:15

요즘 누가 잘 지내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곧장 안나온다. 어.. 으음.. 글쎄... 

그저 멍... 

머리가 작동을 잘 못하는 듯 누가 뭘 물어도 대답을 잘 못하겠고, 뭔가 설명을 할 때도 단어가 잘 생각이 안나고, 그래도 뭔가 애써보려는 의욕이 앞서다보면 괜히 버럭 화를 내고 앉았다. 


무작정 우울해지는 11월 탓이라고, 특히나 왜 또 그렇게 비는 내리는지, 혹은 대책없이 너무 열심히 놀고 난 뒤의 후유증이라고, 그도 아니면 진짜로 호르몬에 이상이 찾아온 '갱년기'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어쩌면 그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여행 다녀온 후기를 뭔가 알차게 기록해 놓고 싶다는 생각은 의외로 스트레스여서, 개학 앞두고 방학숙제 잔뜩 밀린 아이 같은 심정으로 괜히 월말을 앞두고 전전긍긍했었다. 사진만 미리 대충 골라 비밀글로 올려두고는 차차 수정해서 마무리해야지.. 그랬는데 그마저도 귀찮을 줄이야! 결국 배째라.. 숙제 안해가면 그만이다.. 그런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ㅎ


해마다 겨울이 시작되면 아 다 귀찮다, 춥다, 동면하고 싶다, 짜증부리는 일을 반복하고는 있지만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별것 아닌데서 의미를 찾고 집착하고 미리 고민하는 나의 습관은 한해를 또 허송했나 반성모드 돌입과 함께 또 한 해는 어떻게 보내게 될까 공포에 사로잡히면서 그 증상이 극심해지는 것 같다. 


올해는 20주년이네 어쩌구 시건방떨다가 더 민망해진 게 아닐지. ㅠ.ㅠ 뜨르르하게 장소빌리고 지인들 초대해서 파티하겠다는 계획은 전격 폐기했다. 귀차니즘이 가장 크고, 시간도 너무 없고, 비용도 만만찮고... 막상 누굴 오라고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임시 준비위원 자처한 후배가 초대할 사람 목록부터 뽑으라는데-- 출판계 부터--으악.. 졸지에 무서워졌다) 그냥 조용히 자축하기로 마음을 바꿨음. ㅋㅋ  니가 그렇지 뭐. 회사에서 20년 근속상 준대도 자괴감에 빠져 시큰둥할 인간이 스스로 판을 벌이겠단 생각이 애당초 웃겼다. 


하여간 그래서 더욱 자중하며 새해까지 남은 한달을 잘 보내기로. (꼴랑 블로그에 몇줄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휴.. 큰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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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연일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다.

아무래도 무딘 내가 최근에야 발견했을 뿐, 아마 새의 우리집 유리창 공격은 꽤 여러날 지속되고 있었다는 심증이 굳어지고 있다. 짝짓기철이라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예쁜 짝을 찾는 건가???

새가 날아드는 시간대도 거의 매일 일정한 것 같다.

아침 7-8시 전후

점심 12시 무렵

그리고 저녁 5시쯤...

어제는 어찌나 요란하게 삐리리리 울어대다 유리창을 두들겨대는지 아침에 선잠이 깰 정도였고, 오늘 궁궐 봉사 가느라 일찍 일어나서 왔다리갔다리 하다보니 또 똑같은 자리로 날아들고 있었다. 날갯짓을 하는 장면 포착엔 실패했지만 그래도 스카프 뒤집어쓰고 변장하고 기다렸다가 도도하게 돌아서는 놈의 모습을 포착하는데는 성공!  

대체 무슨 새일까나...  

​아오.. 유리창 더러운 거 너무 티난다. ㅋㅋ

나름 버드세이버라고 오려붙였던 맹금류 형체는 내가 봐도 너무 어설펐다. 아무 소용이 없어서 하루만에 떼어버렸는데 그래도.. 사진은 남았음 ^^ 더 크게 아주 무시무시하게 만들어 붙였어야 효과가 있었을까... 내딴엔 알량한 가위질로만 '솔개'를 형상화한 것인데... 궁금증은 풀 길이 없고 답답하여라.. 끙... 

내일도 또 날아오는지 아주 새 관찰 일기를 쓸 판이다. 느낌으론 짝짓기 철이 끝날 때까지 새의 공격은 계속 될 것만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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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욕심 2탄

놀잇감 2015. 9. 14. 23:03

​전통한복 예쁜 거야 누구보다 잘 알지만... 가슴에서 끈으로 꽉 동여매고 펄럭이는 치맛자락 조심히 잡으면서 속치마에 속바지까지 챙겨입으려면 너무도 불편하단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궁궐에서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은 철철이 예쁜 전통한복을 바꿔입어가며 아리따운 한복 자태를 뽐내시기 때문에 그간 구경하는 재미도 아주 쏠쏠했다.  나야 뭐 계속 꾀가 나서 안내도 설렁설렁, 복장도 대충 생활한복으로 근근이 버텨오고 있는데, 내가 궁궐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걸 안 이후 주변에서 장롱 안 박스에 잠자고 있던 한복들을 내게 보내왔다. 언니도 제대로 한복 입고 해! 라면서... 체격이 비슷한 큰올케가 제일 먼저, 그러고 나선 후배 둘이나 더... ㅋㅋㅋ

하지만 전통한복을 입더라도 손에 그림 파일 들고 펼쳐 보여가며 설명을 하려면 양손이 자유로워야하기 때문에 치마가 일반 자락치마면 입기가 곤란하다. 통치마로 리폼을 해야하고, 길이도 좀 짧아야 질질 끌리지 않으면서 계단 오르내리기도 편하고... 

그렇다면 한복치마를 수선해야한다는 얘긴데! 머릿속으로는 내가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과, 에구 어딜... 어디 수선집에 맡겨야지.. 하는 생각이 오락가락하면서 1년 넘게 한복 세 벌이 먼지를 뽀얗게 쓰고 옷방에서 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큰올케 한복은 무려 19년전! 결혼할 때 울 엄니가 청홍새색시 한복과 더불어 행사용으로 한벌 더 해주신 거라서(큰조카 돌잔치와 이후 집안 어르신들 잔치때 입었음) 연분홍치마는 예쁜데, 남색 저고리는 완전 구닥다리 느낌! 소매 통이 너무 넓고 품도 컸다. 더욱이 본견 깨끼저고리라 나 홀로 수선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반면에 후배Y가 보내준 한복은 꽃분홍 치마에 아이보리색 저고리. 그나마 한 10년 전 동생 결혼색때 입은 거라 스타일은 그럭저럭 요즘것과 거의 비슷하다. 옷고름이 넓고 길지만 소매통이 완전 붕어배래는 아니라는 얘기. 하지만 우어.... 꽃분홍색이 너무 눈부시다... 후배P가 보내준 한복은 그야말로 빨간치마에 초록저고리.. 새색시 폐백용 한복이었다. 흐음... 세 벌이라지만 당장 활용가능한 건 큰올케의 연분홍 치마와 후배Y의 아이보리 저고리 정도.


다른 분들도 더러 그리 비싸지 않은 중고 한복을 구입해서 통치마로 수선을 해입을 요량으로 동대문 수선집에 맡겼다기에 결과물을 기다렸다. 어디 한번 보고 나도 맡기든지 말든지... 일단 과연 내가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것인가 그 용기를 낼 수 있을까부터 고민해야겠지만 암튼... <친구따라 강남가기 권법>을 시도해보려했으나 ㅋㅋㅋ 1년이 넘도록 결과물이 나오질 않았다.

동대문 수선집에서 새 한복 바느질 하느라 바빠, 도대체 수선은 해줄 생각도 안하고 1년 내내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그냥 주더라나. 그럼 그렇지... 역시 그럼 내가 직접 수선하거나, 아예 말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근데 통치마로 리폼을 하려면 지퍼도 달아야 하고, 주름도 요즘 스타일~에 맞게 좀 넓은 주름으로 다시 잡으려면 치마말기를 달아야한다는 '디자인'은 나왔는데 도무지 동대문 원단시장에 갈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 핑계로 또 몇달... 물론 인터넷으로 원단과 부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는 벌써부터 알아봤지만, 어쩐지 개미지옥 같고... 금방이라도 자원봉사를 관둘지 모른다는 예감도 나를 흔들었다. 그런 마당에 니가 지금 한복 꿰매고 앉았을 시간이 어디 있냐!?

하지만.. 한복 조끼 포스팅에도 썼듯이 그놈의 '욕심'은 계속 나를 부추겼고, 요번에 조끼 원단 사면서 얼른 치마말기용 자수원단과 흰천, 지퍼 따위를 후다닥 같이 사들였다. 재료만 있으면야 뭐 언제든...

그러고는 마감과 동시에 당의 조끼 끝내고, 곧이어 생산성 폭발! 또 한 건 잉여짓이 완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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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면 궁궐에서 정식으로 봉사를 시작한지 만 2년이 된다.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올해 들어선 정말 회의가 많았고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간 빼앗기고 몸 축내면서 나는 봉사랍시고 과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면 도무지 명쾌한 답이 안나오니 원... (장점과 단점 목록을 만든지 오래 됐다. -_-;) 

암튼 계속 툴툴거리면서도 왜 '옷 욕심'은 끝이 없는지... ㅋㅋ 화려한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순 없지만 이왕이면 그럴싸한, 나름 예쁜 생할한복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속으론 버럭~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데 쓸데없는(?) 돈을 써야하지? 한달에 두번 자원봉사 하려고 수십만원 들여서 따로 옷을 사야하다니 이 무슨... +_+

째뜬 그래서 계절별로 돌려막기하듯 번갈아 입었던 생활한복과 내가 고쳐입은 한복으로 버티며,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곧 그만둘지 모르니 한복에는 더 이상 투자하지 말자, 생각했으나 또 인간이 간사해서 금방 다른 마음이 들었다. 아니 왜... 추석이랑 설날에 활용해서 입으면 되잖아? ㅎㅎ (잘해봤자 한정식집 사장님 같겠지만 ㅠ.ㅠ) 물론 거기에는 일본처럼 평소에도 종종 길거리에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괜한 소망도 한 자락 거들었다. 결혼식장이나 칠순잔치에만 입는 옷이 아니라, 도나기를 아십니까 접근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입었던 머슴 한복 말고, 좀 예쁘고 화사한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세상이 오면 좀 좋은가 말이다.

지난 여름엔 특히 일도 밀려 바쁜 데다 집안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좀 멀리 겉에서 볼 땐 멀쩡해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드러나는 인간들의 단점도 환멸스럽고 나 역시 까칠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독설을 퍼붓게 되고... ㅋㅋ 

그러다가 또 왜 마음을 다잡았는지는 기억도 잘 나질 않는데, 암튼 몇몇 선생님들한테 미안한 마음(아니 왜?)이 들면서, 3년은 버텨보자, 뭐 이런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좀 더 견뎌보자 결정하자마자 내가 한 짓이라는 게 덜컥 옷부터 새로 사는 거였다. 관두기 아깝게... ㅋ



그러나 새로 산 생활한복의 단점은 아무래도 한복스러워서 궁궐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것. ㅠ.ㅠ (난 사람들이 시선 집중이 무섭다. 일종의 무대공포증?) 싸들고 다니면서 갈아입는 한복 말고, 그냥 평소에도 입어보겠다고 장만했지만 저러고 집을 나서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ㅎ

째뜬 그래서 그걸 핑계로 난 또 집에 있는 평상복을 활용해 입을 수 있는(이미 랩스커트와 마 블라우스는 활용중이므로) 아이디어에 골몰했고, 원피스에다가 한복 조끼를 걸쳐입겠다는 결론에 도달, 미친듯이 검색에 나섰다. 하지만 생활한복 파는데를 아무리 뒤져봐도 내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과 색깔은 없어! 내 원피스가 연한 팥죽색이라서 더더욱 색깔 맞추기도 어려웠고, 기성복을 사면 한참 길이를 자르고 품도 많이 줄여야했는데 그나마도 비슷한 질감까지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또 다시 나의 결론은? 까짓것 내가만들어 입지 뭐.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덜컥 하게 되었는지 원.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 가사시간에 만들어본 한복의 경험과 마고자를 한복 저고리로 고쳐입었던 경험이 쓸데없이 무한한 자신감을 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유튜브를 뒤져보면 한복 바느질 영상이 종종 보이기도! (깃 바느질은 정말로 그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분께 감사~) 

해서 상상으로 어울릴거라 정한 초콜릿 색으로 옷감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마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잉여짓은 바쁠 때 해야 제격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너무 난감한 상황이라... 

드디어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시체놀이하듯 잠을 몰아잔 뒤, 몇주 전에 날아온 옷감을 자르고 오리고... 얼추 상상 속의 그 <당의 조끼>가 완성되었다. ^__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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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하다

투덜일기 2015. 8. 11. 23:24

다른 곳도 아니고 교단에서 지속적으로, 조직적으로 벌어진 성추행 관련 뉴스는 경악을 금하지 못하겠으나 돌아보면 이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어른 남자들의 성희롱과 성추행은 그야말로 고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병폐였다. 그 현실은 지금도 변하질 않았고 학교든 직장이든 그 어느 조직에서든 성희롱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나간 태도로 추한 행동과 언어생활을 일삼는 이들이 많다. 


언젠가 <학교 때 이런 선생 꼭 있었다>는 주제로 옛날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다들 열변을 토했던 건 미친개, 변태 따위의 별명으로 불리던 기막힌 남선생들의 존재가 학교마다 있었기 때문이었다. 체벌이랍시고 여중생, 여고생들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질 않나, 걸핏하면 여학생들 귓불을 만지고, 팔뚝 안쪽 살을 꼬집고, 등뒤에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겨 탁 고무줄을 튕기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와락 껴안고... (다 우리 학교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여러차례 당한 일이다) 


그들이 '선생님'이라는 엄청난 권력의 소유자들이었기에 학생인 우린 그저 투덜투덜 뒤에서 욕이나 해댔을 뿐, 가끔 교련선생이나 여자 사회선생한테 고민상담을 하고 좀 말려달라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사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가재는 게편, 여선생들은 니들이 행동을 잘하라고 오히려 우리 탓을 했던 것 같다. 니들이 자꾸 치마 짧게 입고 입술에 번쩍거리는거 칠하니깐 그렇잖아! 라면서.. +_+ 


그 옛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체로 회식이 죽도록 싫었던 이유는 1차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2차로 꼭 나이트클럽엘 가서는 노땅 상사들과 '부르스'라고 하는 춤을 춰야한다는 사실이었다. 빠른 음악이 끝나고 느린 음악의 반주가 시작되면 여직원들은 눈치빠르게 '튕기듯' 다들 화장실로 도망치기 바빴지만, 그래도 몇번은 어쩔 수 없이 놈들에게 붙들렸었다. 춤추는 게 싫어서 테이블에 붙박이하는 여직원들도 '부르스 타임'엔 손목을 잡혀 질질 끌려나가기도 했고...으으으... 음흉한 인간들. 


90년대 초반임에도 회식 자리에 일부러 여직원들을 사이사이 앉히고 술시중 들게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그러면서. 쌈닭이었던 나도 기껏 반항한다는 게 아버지가 집밖에 나가서 절대 술 따르지 말라셨는데요... 라고 좀 빼보거나, 술 따르면서 확 엎지른다거나 해서 싫은 티를 내는 정도였다. 나중엔 그래 많이 많이 처먹어라, 그러면서 별 말 없이 따라주기도 했다. 치기가 극에 달했던 20대 후반 한동안은 취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말하고 욕해대는 걸 나의 술주정으로 삼은 적도 있었다. 물론 인간적으로 괜찮은 상사나 동료들도 있었고, 여직원들을 보호해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가끔 기분 좋게 마시다가  어느 정도 다들 이성을 잃고 추태를 부리기 시작하면 막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 같이 개가 되주마.. 야! 김부장! 너 재수없어!...


술자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웬만하면 다음날 맨정신에 다시 거론하지 않는 너그러운 음주문화(?) 덕분에 상사에게 술주정했다는 이유로 내가 짤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취했다는 이유로 온갖 실수를 다 용서해주고 심지어 범죄까지도 심신미약상태라며 처벌을 경감해주는 사회적 용인이 더 큰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성희롱, 성추행, 음주운전을 비롯해서 술에 취해서 한 실수는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취중실수는 용서해주는 사회적 관용 때문인지, 그걸 빌미로 맨정신엔 멀쩡 얌전했다가도 술만 취하면 이른바 '개'로 변하는 남자들도 많았다. 회사 동료들 중에도 더러 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요주의 인물은 '기자'였던 친구 남편의 친구. 평소엔 말도 없고 조용히 구석에 짱박혀 있는 사람인데 술만 좀 들어갔다 싶으면 성격이 활발해지면서, 여자 옆으로 자리를 옮겨선 자꾸만 몸을 만지는 나쁜 손버릇이 있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처음 어깨나 팔을 스쳤을땐 어라 실수인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대번에 면박을 주지도 못하고 참게 되는 것. 친구는 우리 일행 중 한 사람과 그 남자를 엮어주려고 자꾸만 우리 모임 있을 때 남편과 그 남자를 동석시키곤 했는데, 막상 친구는 그 남자 바로 옆에 앉은 적이 없으니 놈의 손버릇을 알 리가 없었다. 나와 지인들은 한동안 예의를 지키려고 다들 한두번씩 팔이나 어깨를 잡히는 민망한 일을 겪고도 그 자리에서 제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계속 참을 수는 없는 법. 일단 그 남자와 괜히 동석하는 자리가 싫다고 친구에게 주의를 주고는 못된 술버릇을 일제히 성토했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후배는 심지어 화장실 앞에서 허리를 잡히기도 했다고. 이 개자식을 정말!! 


속으로 벼르던 우리는 그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도 손버릇을 지적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마침 신촌으로 마눌 데리러 온 친구 따라 쫄레쫄레 나타난 그 인간에게 집중포화를 날렸다. 본인이 그런 나쁜 술버릇이 있는 걸 아느냐, 당신 한마디로 말해서 변태다, 계속 그러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다... 모든 여자들을 접대부 취급하는 거냐 뭐냐... 그 남자가 뭐라고 변명을 했던 것도 같은데 암튼... 그 인간은 두번다시 우리 모임에 불청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듣자하니 신문사에서도 성추행으로 문제가 되어 징계를 받았다던가, 얼마 안 돼 회사에서 짤렸다고 들었다. 그런 이상한 인간을 우리와 엮어주려 했던 친구와도 어쩐히 사이가 멀어져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되었다. 


조직생활을 관두면서 20년 가까이 직접적인 성희롱 성추행 문제로 눈쌀을 찌푸릴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동안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졌고, 과거엔 대체로 용인된다고 (남자들만) 믿었던 폭력적인 언어와 성차별 논리가 확실한 문제거리라고 자꾸 대두되고 있으니 남자들도 좀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멀었다. 갑과 을, 권력을 쥔 자와 휘둘리는 자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패배주의에 젖은 못난 남자들의 비뚤어진 생각이 건설적으로 변화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연배가 높다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예의상 대우를 잘 해주다보면 꼭 선을 넘는 추한 남자들이 있다. 물론 성희롱, 성추행은 남자들만 하는 게 아님을 몸소 보여주시는 추한 여자들도 있다. 아무데서나 음담패설 꺼내고 맞받아치는 걸 대체 왜 인기비결 입담과 유머라고 생각하는지??!! 남편이랑 베갯머리에서나 할 대화라든지 아줌마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주책스럽게 떠들어대는 여자어른들을 보면 어휴... 그치만 주로 심하게 눈쌀을 찌푸리게 되는 일은 오십대 이상 아저씨들의 추태다. 요샌 말도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지들끼리 한탄하면서도 워낙 성희롱 언어와 행동이 몸에 밴 탓에 과연 어디까지 용납되고 안되는지 계속 실험을 해대는 것도 같고... 남자든 여자든 듣는 사람이 민망하고 기분 나쁘면 무조건 성희롱이라고 아무리 가르치고 짜증을 내도 그들은 안 변한다. 이번 성추행 교사 사건에서 보듯이 끼리끼리 덮어주고 눈감아 주고 무마해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는 거다. 공공연하게 패가망신을 당하게 하면 모를까...


놀랍게도 자원봉사로 만난 사람들 중에도, 등산 모임에서 스친 사람들 중에도 내 선에서 용납 안되는 추태를 부리는 사람들이 포착되었다. 티나게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하고 우회로로도 경고를 몇번 날렸는데 약간 조심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아니고, 과연 내가 이러면서까지 그런 인간들을 계속 보아야하는 건가 한심스럽다. 삽십대 같았으면 확 상을 엎어버렸을텐데... 나도 성질 다 죽었구나 싶은 자괴감도 좀 들고. 그런 인간들은 피하는 게 상책인데... 연줄연줄 뭐가 많아져서 확 짤라버릴 수도 없고 우쒸... 암튼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서로 껄끄러워지더라도 싸워야지. 가만 있으면 그게 옳은 줄 아는 인간들, 그냥 둘 순 없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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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하나마나 푸념 2015. 6. 13. 00:34

​경복궁이 이렇게 한산할 수가. 이것이 바로 메르스 효과.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거리던 경복궁 근정전 앞 마당이 텅 비었다. 정기 휴관일처럼 보일 정도다. ^^;

무료해설을 원하던 단체 예약은 모두 취소됐고, 그야말로 자원봉사자들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여유롭게 경회루 앞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노닥거려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상황. 그래도 궁궐에 사람 없어 좋을 것 같다며 찾아온 소수의 사람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평소 관람객의 최소 7할은 차지했던 아시아권 관람객이 전무하니 경복궁에서 이런 모습도 연출이 되더군. 작년엔 세월호 때문에 여행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던데 올해도 또... 전염병 창궐하는 후진국에 누가 오고 싶겠나. 나라도 여행계획 취소할듯.  

설마 메르스 환자가 궁궐 나들이 오겠어, 그러면서(자가격리 대상자가 울릉도 관광도 간 걸 보면 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도 같지만) 이래저래 한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딱 좋은 날이었는데, 한 가지 짜증나는 옥에 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청와대로 오가는 헬기들의 굉음. 경복궁 후원쪽에선  다다다다 두 대씩 날아와 청와대에 내려앉는 모습을 코앞에서 볼 수 있고 그럴 때면 바로 옆에서 얘기를 해도 하나도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아오 시끄러워랏.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몰랑, 미국 갈거야... 뱅기탈거야... 그러다가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깐 헬기 타고서라도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댕기면서 항공마일리지 늘리는 거라고... 뭔 일만 터지면 해외로 도망쳐야 하는데 이번엔 못 가서 어쩌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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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메르스와 자주 비교되고 있는 사스(SARS)는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약자이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重症急性呼吸器症候群)으로 번역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사스는 "2002년 11월에 중화인민공화국 광둥 성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홍콩싱가포르베트남 등을 거쳐 세계적으로 확산된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SARS-CoV)에 의해 발병한다. 보통 잠복기는 2 ~ 7일이며, 10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되어 있다.


메르스(MERS)는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의 약자로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번역되어 쓰이고 있다. 역시나 검색으로 긁어온 내용을 인용하자면 "메르스는 2012년 9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호흡기 전염병이다. 원인 바이러스는 베타코로나바이러스의 한 종인 메르스-코로나 바이러스(MERS-CoV)으로서, 박쥐에 있던 것이 다른 동물들에게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호흡기 전염병인 사스(SARS)와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어 비교되고 있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감기 환자와 메르스 환자를 증상만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감기 바이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에 속하며, 서로 사촌뻘의 관계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창궐하는 추세로 보면 메르스가 아니라 '코르스'(KORS)라고 해야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오고, 메르스라는 이름이 공포스러우니 우리말인 '신종변형감기' 정도로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어느 여당 국회의원의 더 웃긴 제안도 들려온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명명제안이 아닐수 없다. 언제는 영어병 환자인양 아무데나 영어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걸 좋아하더니 새삼 왜??


째뜬 똑같은 네 단어로 된 영어 병명을 약자로 줄여 부르면서 SARS 때는 '사스'라고 'R'을 빼먹더니만, 요번에 MERS는 왜 'R' 발음을 넣어서 '메르스'라고 읽는지 궁금해죽겠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이야 기본 원칙이 있다고 하면서도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달라져 사람 속터지게 만들지만, 이런 초대박뉴스에 등장하는 영어단어의 명명법은 외래어표기법이나 맞춤법에 별로 관심없는 언론에서 먼서 쓰고 유행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냥 어느 놈이 먼저 부르기 시작하면 죄다 따라 쓰는 거다. 요즘 웬만한 기사 하나 올라오면 모든 언론에서 똑같이 토씨하나 안 틀리고 베껴다 적는 것처럼.


아무려나, 그 제일 처음 명명한 누군가는 왜 사스 때의 발음을 전범으로 삼지 않고 '메르스'라고 적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사스 때처럼 R 없이 '메스'라고 하면 수술용 칼 생각이 나서 그랬을까?  cork의 올바른 표기가 '코르크'이므로 실은 사스 때도 '사르스'라고 했어야 옳은 것 같다. 근데 왜 그땐 아무도 '사르스'라고 부르지 않았지?? 


울 엄만 '메르스' 발음이 어려워서 한동안 '메르치' 혹은 '메르시'라고 불렀었다. 그때마다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메르치-며르치-멸치', 또는 '메르시-Merci-메르씨보꾸-멸치볶음'의 연상작용 때문이었다. 두 가지 다 결국 멸치와 연결되다니.. ㅎㅎㅎ 공교롭기도 하여라. 거기다 더불어서 불어로 '똥'을 가리켜 욕설로 잘 나오는 '메르드(Merde)!'까지 떠올리면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세트다. 이 나라의 현 메르스 정국과는 물론 '메르드'가 가장 잘 어울림. 프랑스인의 발음은 '메흐드'에 가깝게 들리겠지만 어디까지나 프랑스어 R의 '올바른' 외래어표기법은 ㄹ. 


메스든 메르스든, 정부의 재난대처 무능력과 늑장 대응으로 엄청나게 늘어나버린 감염환자들이 빨리 쾌유되고 전국가적인 공포에서도 곧 벗어나게 되기를 빈다. 이 나라에선 국민의 목숨을 국가가 절대로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을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큰 사건으로 깨우쳐주지 않아도 우린 이제 다 알고 있는데... 참 해도 해도 너무한다. 대형 재난사고를 수시로 겪고도 좀처럼 변하지 않고 매번 허둥대는 꼬라지만 보이니,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을 겪어야한다는 게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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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최근엔 본 게 없고, 작금의 현실에 딱 맞는 영화구나 생각난 건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아웃브레이크>다. 찾아보니 95년작. 무려 20년이나 된 영화라는 얘기다. 나 같은 중년 말고는 다들 존재조차 모르는 영화일 것 같다. 암튼 그 영화를 나는 에볼라 바이러스 얘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찾아보니 모타바 바이러스라는 것도 같다.  에볼라든 모타바든, 제3세계에서 생겨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미국에 전해져 떼죽음을 일으키는 이야기인데 그 전파 경로로 북한의 배가 등장한다. 할리우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20년전 이 영화에서는 바이러스의 숙주였던 아프리카 원숭이를 밀수해 동물원에 팔아먹는 비위생적인 배와 선원의 국적이 북한이었다. 위생이나 방역에 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무지와 더러움과 응징의 대상으로 나오는 영화속 북한 선원들이 그 옛날에도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포스팅 후 북한 배와 선원이 아니고 그냥 한국인이었다는 제보 입수. 내 기억이 틀린 것 같다. 맞다.. 북한 배가 어떻게 미국 항구에 정박을 한다고 나 원참;;;)  


세월이 흘러 20년 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사들은 한국이 주요 시장이라면서 다른 세계 주요도시보다 영화개봉을 먼저 하기도 하고, 그들이 서울을 배경으로 영화촬영을 한다고 그러면 유례없이 정부까지 나서서 교통을 통제해주고 기꺼이 장소를 '무료' 제공하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하는 서울과 한국의 모습은 듣자하니 별로 매력적이지도 우호적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국가 홍보에 신경을 쓴다해도 대다수 외국인들에게 '코리아'는 '사우스'인지 '노스'인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뭉뚱그려지기 십상이다. 기껏해야 전쟁에 준하는 심각한 군사대치 상황 국가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평창올림픽도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그렇게 유치하려고 애썼지만 '평양'이랑 알파벳 철자가 너무 비슷해서 선수들이 죄다 평창 대신 평양으로 날아가 북한에 억류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지리에 젬병인 나도 한반도에서 정확히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평창보다야 '평양'이 외국인들에게도 워낙 더 유명할 것 같다. 최소한 북한의 수도인걸.  


째뜬 무능력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 국가와 국민들의 후진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이번 메르스 상황을 보며, 조만간 또 재미난 한국 배경 할리우드 시나리오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개인 문자와 카톡으로는 어디선가 하루에도 몇번씩 메르스 환자가 접촉했다는 병원 명단과 예방법이 날아오고, 심지어 1번부터 30번까지(?? 기막혀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_-;) 확진 판정 환자들 명단이라면서 그들의 신상명세까지 떠도는데 -- 병원 관계자로부터 받아 전한다는둥, 담당 공무원이 최측근 지인들에게만 공개한 거라는 둥 -- 정부는 제대로 사태파악도 못한 채 우왕좌왕, 그러면서 문제의 병원 명단을 공개할 의미는 없다고 계속 한심스럽게 눙치고... 유언비어라면서 퍼뜨린 사람이나 잡아들이려 하고...  자가격리 대상이라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관리랍시고 한다는 게 하루 두 번 전화로 위치 확인하는 게 전부란다. 그러니 일반인, 의료진 할 것 없이 암 생각없이 골프치러 지방 가고, 환자들 진료하고... 하하하.


어제 끝난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제도가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나서서 약자를 감싸줄 수밖에 없다는 봄이 대사가 인상 깊었는데, 이 나라는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도 제도도 아무런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개개인이 각자 제 살길을 찾아보거나 그냥 무기력하게 죽어나가야한다는 얘기다. 물론 개인이 노력해서 정말로 각자 제 살 길을 찾을 수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함정. 암담한 나라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희망이 없는 곳이란 걸 어쩜 이렇게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 어떻게 이렇게도 자주 생겨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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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부엌

투덜일기 2014. 12. 22. 10:45

오래된 싱크대의 수납장 문이 잘 안닫히기 시작한 건 오래 되었고 얼마 전엔 덜컥 수도꼭지, 아니 물 나오는 부분의 길쭉한 철제 호스 같은 게 부러졌다. 이리저리 꺾어서 각도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었는데... 안에 든 플라스틱까지 끊어진 건 아니므로 물이 나오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철제 호스가 꺾여 덜렁거리니 설거지를 하려면 뭔가를 기대어 놓거나 왼손으로 잡고 한손으로만 그릇을 헹구어야하는 사태. 


그 수도꼭지도 몇년 전 언젠가 막내동생이 사다가 직접 달아준 거였는데, 아니 무슨 수도꼭지가 10년도 안 쓰고 고장이 나나 그래... 아무튼 노상 야근에 주말 출근도 불사하는 불쌍한 동생을 또 불러댈 순 없는 일이고 철물점 같은 데 가서 수도꼭지 사고 웃돈을 얹어 출장수리를 해달라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비용도 따지면 총 10만원 가까이 들겠더라.


요즘 유행하는 쿡탑 렌지를 비롯해 싱크대를 싹 바꾸고 싶은 마음은 수년째 품고 있었지만 그러다 집이 전격 팔리면 어쩌나 아까비.. 하는 마음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무 상판이 남아있는 한쪽 싱크대가 물에 쩔어 막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문은 하나같이 제대로 안 닫히는 데도 강제로 욱여 닫아가며 살아왔었다. 아우 새삼 청승맞기도 하여라.


덜렁거리는 수도꼭지와 연일 씨름을 하며 드디어 부엌을 싹 갈아엎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혹시 아나, 머피의 법칙이라고 부엌 싱크대 갈자마자 집 팔려서 속쓰려하는 일이 생길지. 엄동설한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불운/행운이 작용하여 아무도 보러오는 사람 없는 집이 팔린다면 수리비 아까워할 게 아니라 좋아서 팔짝팔짝 뛸 일이다. (집이 하도 낡아 누가 이사오려면 벽부터 완전 개조가 필요한 집이라서 아마 부엌도 다시 뜯어야할 테니 하는 말이다;; ) 하여 결심은 섰으나 우유부단 추진력 제로인 게으름뱅이는 또 동네 주방가구점에 견적을 받으러 가야하는데, 가야하는데... 그러고만 있었다.


헌데 두둥~ 한 열흘 전 한밤중에 괜히 TV 리모컨놀이를 하다가 홈쇼핑에서 부엌 개조 상품 발견! <무이자 12개월 할부>에 특정 카드는 청구 할인, 일시불이면 또 할인... @.,@ 어떤 색깔로 할지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이 그냥 죄다 세트 상품이었다. 이거다 싶어서 얼른 줄자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가 대강 칫수를 재고는 주문 완료!


그러고는 속으로 마구 빌었다. 제발 크리스마스 이브(마침 울 할아버지 19주기 제삿날이다) 이전까지 설치 가능하게 해주세요... 아니면 망함...  설마 일주일이면 되겠지... 아 몰라... 설마.. 간만에 나한테 주는 거한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그랬다.


다행히 바로 다음날 주방가구 직원이 실사를 나와서 다시 직접 치수를 재고 사진을 찍더니 일주일 뒤 설치를 약속했다. 휴우... 게다가 진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면 철거와 시공이 다 된다네. 좋은 세상이닷. 감사하여라. 유럽이나 미국에선 수도꼭지 하나 바꿀라고 주문해도 최소 열흘은 걸린다던데 빨리빨리 대한민국 역시 최고. -_-; 


해서 오늘 드디어 대망의 부엌공사가 진행중이다. 어젯밤 우렁각시처럼 살금살금 온갖 그릇들을 치워 싱크대를 비우고, 식탁도 번쩍 들어 옮기고 타일공사 대신 내가 붙여야지 마음 먹었던 시트지 붙이기도 일부 먼저 해놓느라 이미 삭신이 다 쑤신데, 저쪽에선 드르륵 드르륵 공사를 하건말건 난 내방에서 일이나 하겠노라 맘먹은 건 그저 작심일 뿐 귓바퀴는 깔대기처럼 자꾸만 저쪽 집으로 쏠리고, 2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발소리에 아무데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차 한 잔 드시겠어요, 그러면서 싹싹한 아줌마 코스프레나 하는 수밖에... 철거팀은 한시간 반만에 벌써 후딱 오래된 싱크대를 해체하고 간략한 수도공사까지 마친 뒤 철수했고, 어느 틈에 설치팀이 와 거실쪽을 비닐로 완전 차단막을 쳐놓고 조립 작업중이다. 놀라운 분업의 세계. 과연 이따 저녁땐 어떤 부엌이 나를 맞이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뭐 그래봤자 누렇게 된 벽지를 배경으로 새하얀 씽크대가 심히 튀기밖에 더하겠냐마는... 째뜬 나도 드디어 새 부엌을 갖게 되었다.  이사나 가야 가능할 줄 알았던 일인데. 감개무량하다고 해야하나 그간 불편을 외면했던 내가 미련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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