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다

투덜일기 2017. 5. 6. 15:17

가슴 벅찼던 콜드플레이 공연후기부터 써야 블로그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뭐든 후기를 잘 못쓰겠다. 알량했던 1/4분기 독서후기도 그렇고, 영화 얘기도 그렇고... 두뇌가 수시로 딱 먹추는 느낌이랄까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건 확실한듯.

암튼 그러는 가운데 또 정신없이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갔다가(거슬러 간 게 맞나? 질러간 건가?) 왔더니만 가서도 계속 빌빌, 와서도 빌빌 도무지 '적응'이라는 게 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게 속일 수 없는 내 나이 탓이려니 단념해야 하나? 심지어 어제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두 정거장이나 가다 내려 바꿔타야했고, 결국엔 집에 오는 길에 현금 5천원과 후불교통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어쩌면 이건 정말로 시차 부적응 탓이 아니라 그냥 중년건망증이 심해진 걸지도. 

아무튼 주변에 무엇하나 마음 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괴로운 집안사는 집안사대로, 밀린 일은 일대로, 인간관계는 또 그대로... 근데 왜 또 무리까지 해서 여행은 떠났는지. 참 내. 물론 오래 망설였지만 확 저질러서 좋았고 조마조마하던 몇달을 거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해서 좋았고, 2주간은 그야말로 꿈결처럼 행복했다. 어제 트위터에서 <호텔>이야말로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는 말을 보았다. 아침밥 주지, 청소해주지, 매일 보송한시트 갈아주지, 전화하면 새 타월 갖다주지... 거기다 침구류는 또 최고급아닌가. 친구네 집을 베이스로 주변을 돌아다닌 게 아니라, 아예 계속 차로 도시를 바꿔가며 10박11일을.. 그것도 친구 언니가 회원인 덕분에'메리엇 호텔'로만 돌아다니다 내 여행 인생에서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다.   

패키지 여행 못지 않게, 잘 곳, 볼 곳, 놀 곳, 먹을 곳... 거의 모든 걸 다 결정해놓았거나 알아서 결정해주는 주동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되고 째지게 편하든지! 친구 언니가 세운 계획에 맞춰 친구와 나는 그냥 녜녜, 좋습니다, 좋아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3킬로그램쯤 늘어 얼굴 주름이 다 펴지도록 빵빵한 풍선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마저도 좋다고 생각됐다. 그래 난 원래 호빵같은 얼굴이 캐릭터니깐 뭐...

그럼에도 일은 놓지 못하고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 처음 며칠은 밤중에 홀로 청승을 떨었고, 차로 움직이는 이동시간이 길 때는 데이터 로밍을 해갔어도 틈틈이 잘 터지지도 않는 인터넷을 찾아헤매며 국내 뉴스와 SNS를 기웃거렸다. 내가 겨우 이럴라고 촛불 들고 그 추위에 떤 게 아닌데 싶은 실망감에서 오는 불안과 조바심? 그래도 지난 대선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했지만--물론 그렇다고 ㅂㄱㅎ가 대통령 되는 걸 막진 못했었지--이번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투표할 여건이 된다는 것을 기뻐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점이 많은 대선후보였지만 와.. 아무리 표가 급해도 반대할 게 따로있지.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사람일세. 싫다싫다하니깐 ㅁㅈㅇ, ㅇㅊㅅ 둘 다 이젠 표정도 싫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 싫다! 대선 토론에서든, 공약에서든, sns 홍보전에서도 역시 심블리 상정언니가 쵝오~! 두자리수 꼭 넘겨서 반드시 선거비용 보전시켜드리리. 

수시로 졸리고 잠들었다가 엉뚱한 시간에 깨어나기를 닷새째 하고 있는데, 머리가 멍해서 일도 독서도 불가능하고 그저 최대치로 늘어난 위장에 먹을 거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새벽 5시에 잠이 깨 빈둥대다 배고픈 걸 참고 참다 계란찜과 두부부침으로 나름 거하게 아침상을 차려 엄마와 함께 먹었다. 보름간 냉장고에 붙여두고 간 국과 밑반찬 계획표에 따라 성실히 살았노라고 자랑하시는 왕비마마 보필은 오히려 돌아와서 빌빌대느라 더 못했다. 내일 어버이날 디너 먹는 걸로 퉁치기엔 좀 그러니 또 당일엔 장봐다가 무슨 요릴 해드려야 고객님이 흡족해 하실까나. 

어느새 5월이 이렇게 막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아카시야향이 그윽한데 빌어먹을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열고 이래저래 제기랄 대한민국.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