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해'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13.03.15 목구멍이 포도청 6
  2. 2012.04.26 못 미더운 사회 2
  3. 2012.03.10 관광옵션 5
  4. 2012.02.29 이번엔 깍두기 3
  5. 2011.07.06 좋은 사람 나쁜 사람 10
  6. 2011.06.29 펑크 5
  7. 2011.05.31 5월이 간다 3
  8. 2011.05.13 4
  9. 2011.03.24 잡념 15
  10. 2011.03.16 잡다 10

거창하게 안식년 선언도 했겠다, 악착같이 알뜰하게 버티면 1년쯤은 탱자탱자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적어도 반년(그러니깐 최소한 4월까지!)은 놀아야 재충전을 위한 안식'년'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수년째 알량한 수입으로 버텨온 재정상태에 비해, 긴축을 해 살아도 고정된 씀씀이는 별로 줄지 않았고 통장 잔고는 다달이 푹푹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호기롭게 놀아보겠다던 결심도 당연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번역가도 실업수당 같은 걸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ㅠ.ㅠ 작년과 재작년에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삶을 살았으니, 10여년 전에 다시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일을 중단했을 때와 비슷한 통장 잔고로는 애당초 시작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땐 등록금을 내야 했으니, 지금 다달이 들어가는 보험료와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따위의 총액과 대강 엇비슷할 거라 여겼는데... 누가 셈에 젬병 아니랄까봐 통장 바닥나는 속도는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위기감에 휩싸여 보험을 해약할까 어쩔까 어떡해야 더 버틸 수 있을까, 노는 기간을 6개월로 줄여야 하나 한창 약해진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자니, 일감 문의 전화를 전처럼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번역 문의가 오면, 신뢰 못할 악덕 번역자로 출판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한 건 아니로구나 내심 기뻐하며 우아하게 내년을 기약하자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꾸만 구차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어흑... 

 

올 10월 중순이면 만 일년을 꼬박 노는 셈이므로, 올 들어서는 여름 이후 정도로 가능한 일정을 통보하면서도 몇번 더 도끼질을 당하면 넘어가고 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연로하신 노모한테 얹혀사는 것도 모자라 용돈까지 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이 웬수! 그래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를 감안하면 여름까지 통 일감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 확률도 높으니 그저 운명에 맡기련다 하고 앉았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으음... 설날 지나고 결국 계약에 응하고야 말았다. 장당 500원도 아니고 300원 인상에 마지못한 듯 넘어가면서 가슴 한켠이 슬픔으로 먹먹해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구나. 물려받은 재산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나 같은 인생이 신나게 아무 걱정 없이 놀고먹을 가능성은 결국 로또 당첨밖에 없다는 결론. 그러나 내 사주는 평생 소박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벌어먹어야 한다던데 행여나!

 

어쨌거나 이젠 정말 진득하게 앉아서 일 좀 해야하건만... 펄럭거리는 궁둥이가 좀체 묵직해지질 않는다. 이 짧은 포스팅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내고 왔다갔다 여러번 오가는 산만함을 어뜨케 잡아야할 것인가. 그 또한 문제. 이래저래 서글프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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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엘 나가보니 인근 파출소에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코팅까지 된 채 매달려 있었다.  

택배기사를 가장하여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접근해,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그런다며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한 뒤 그대로 달아나는 사건이 빈번하므로 택배기사 복장을 한 사람이 그런 부탁을 하더라도 절대 빌려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더라도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낯선 사람, 특히 청소년은 경계하라고도 적혀 있었다.

 

고가의 스마트폰을 중국에 다량 팔아넘긴 사람들이 잡혔느니, 택시에 두고 내린 휴대폰은 이제 절대로 찾을 수가 없다느니 하는 소리는 들어본 것 같은데 요샌 휴대폰 날치기도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어휴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요즘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서 휴대폰을 놓고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워낙에도 숫기 없어서 남들에게 휴대폰 빌려달라고 하는 대신 나야 길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공중전화를 찾아헤맬 확률이 100퍼센트지만 (그나마도 귀찮아서 그냥 전화를 안하고 만다;;) 얼마 전까지 나는 아주 가끔씩 휴대폰을 남에게 빌려준 적이 있었다. 주로 청소년과 아이들, 착해 보이는 젊은 여자들이었고, 남자가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역시나 정신 없는 친구가 남의 휴대폰을 빌려 약속장소를 다시 묻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휴대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도 듣자하니 수법이 정말 다양하다. 후배 하나는 엄마에게 길에서 넘어져 크게 다쳤다며 병원 검사비 30만원을 급히 계좌로 송금하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문제는 송금 계좌가 낯선 사람의 것이라는 점. 길에서 자기를 부축해 데려온 고마운 사람의 계좌라나. 후배는 놀란 마음에 얼른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 받질 않았다. 곧이어 언니가 놀란 목소리로 엄마 문자 받았느냐고 전화를 했더란다. 엄마에게 똑같은 문자를 받았던 것. 놀란 마음을 달래고 보니 아무래도 수상쩍다 여긴 두 사람은 의논 끝에 의문의 계좌 대신 엄마 은행계좌로 각자 30만원씩 송금을 하고는 문자로 그 내용을 알렸단다. 이후 상황을 몰라 전전긍긍 엄마 휴대폰으로 마냥 전화만 걸던 자매는 오후 늦게야 집 전화로 엄마랑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엄마는 다친 데 없이 멀쩡하셨고 휴대폰을 어디에서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고 있었단다. 그 사연을 듣고 내가 말했다. 울 엄마는 문자 못 보내는 할머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_-;

 

얼마 전엔 엄마가 절에 갔다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목격했다고도 했다. 마침 예불이 끝나 점심을 먹으려고 다들 식당방으로 이동하려는데, 띠리리리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고 그 보살님이 통화를 하더니 허둥지둥 울먹이며 우리 아들 교통사고 났다는데 어쩌느냐고 부들부들 떨더라나. "엄마! 접촉사고 나서 지금 경찰서 왔는데 당장 합의금 필요하니깐 @@만원 보내주세요. 계좌번호 문자로 찍어보낼게."라는 식으로 다급하게 말을 했다는데, 목소리가 딱 자기 아들이었다고. 하지만 누군가 보이스피싱 같으니 아들한테 먼저 확인해보라고 했고, 하필 점심시간이라 자리를 비운 아들과 연결이 안 돼 한참 피를 말리던 그 아주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단다. 만약 집에 혼자 있다가 그런 전화를 받았다면 대뜸 은행으로 달려갔겠으나, 주변에서 사람들이 안심 시키고 혹시 정말 사고가 난 거라면 좀 있다 은행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는 스님의 다짐에 힘입어 아주머니는 차분히 계속 아들과 통화를 시도했고, 결국 사기극 전화였음이 판명됐다고. 울 엄마도 우체국 사칭, 경찰청 사칭, 법원 사칭, 카드회사 사칭 보이스 피싱의 존재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교통사고  핑계대는 자식 노릇까지 하는 사기꾼들의 대담성에 퍽 놀란 눈치였다.

 

지난 번 인사동에 나갔을 때는 돌아오는 길에 종로2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두 여자가 내게 접근해 물었다. 종로3가 전철역이 어느쪽이냐고. 나는 이쪽으로 쭉 직진하면 된다고 친절하게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머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잘난척 그리 멀지 않다고 (왜냐하면 나도 나갈 땐 전철타고 종로3가 역에서 내렸기에 잘 아니까;;) 5, 600미터만 가면 된다고 콕 찝어 말해주었다. 두 여자는 고맙다고 말을 하면서도 금방 안 가고 미적미적 뭔가 더 말을 붙이려는 눈치였다. 거기서 전철을 타면... 어쩌구 그들이 또 뭔가를 묻고 있는 가운데 문득 의심이 치솟았다. 이 사람들 '도를 아십니까' 아냐?! 십수년전 종로통에 매일 다닐 때도 그 구역은 '도를 아십니까' 집단의 잦은 출몰지였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인상을 팍 쓰며 뒷말을 듣지도 않고 홱 돌아서서 내 갈길을 갔다. 애당초 그들의 질문엔 분명 친절히 대답해 줬으니 내 소임은 다 한 거라규!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내내 궁금했다. 그들은 실제로 길을 더 물으려는 것이었을까, 정말로 '도를 아십니까'였을까.

 

세상이 하도 험악해지다보니 요즘엔 택배 왔다고 소리쳐 문을 열게 해놓고 강도로 돌변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에, 택배상자 받기를 취미삼아 하는 나로선 '택배입니다'라고 하는 외침에 마냥 반가워만 해선 안되는 게 아닌가 자책이 든다. 다행히 택배업체에서도 그런 점을 잘 아는지 "택배 왔습니다!"라고 외치는 대신 수신인 이름을 먼저 외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또한 주소와 전화번호 때문에 택배상자를 함부로 버리면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보도에 이젠 택배상자 주소 택에도 전화번호는 가상 번호로 적혀  오거나 뒷번호가 ****으로 가려져 있다. 진화화는 범죄에 대응책도 자꾸 변화하고는 있지만 과연 비상한 범죄 두뇌를 우리가 따라갈 순 있는 걸까. 방송도 언론도 못 믿겠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도 못 믿겠고, 법도 못 믿겠고, 국내산이니 한우니 유기농이니 적어놓은 표기도 못 믿겠고, 도대체 믿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옛날부터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쓰시던 농담 중에 <뙤놈 빤스를 빌려 입었나? 왜 그렇게 의심이 많아?>라는 말이 있었다. 주로 조롱하는 말투로 쓰였으므로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반면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신중한 태도가 크게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절대로 믿지 않는 불신의 병에 걸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못 미더운 사회를 살아가려면 무턱대고 믿다 큰 코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포장하고 거짓말을 서로 맞추고,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진실이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좀 많이 보았는가. 요즘 고등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권력과 경제력이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90%라는 보도를 보고, 그들의 현실감각에 씁쓸했다. <법대로 하라>는 말은 변호사를 대고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고등학생 쯤 되면 다들 아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와는 별도로 중고등학생들이 골목 같은데 서넛 이상 모여 있으면 지나며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겁부터 난다. 어느 틈엔가 제일 무서운 범죄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한 그 아이들을 그 지경으로 몰고 간 원인을 생각해보면 또 다 어른들의 잘못, 사회 탓이다. 사회의 투명성이며 공정성 평가에서 늘 OECD 국가중 꼴찌에 가깝네 마네 하는 말이 괜히 나올 리 없다. 앞으로 점점 나아져야 할 텐데 별로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뙤놈 빤스' 운운하며 자조하는 나의 의심도 계속될 것이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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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옵션

하나마나 푸념 2012. 3. 10. 06:29

사대문에서 그리 멀진 않되 꽤 후미진 동네이기 때문인지, 동네 근처에 '이상한 곳'이 꽤 많다. 도로도 넓지 않은데(겨우 왕복 4차선), 오전오후 따질 것도 없이 관광버스가 떼로 몰려와 한 차선을 점령하고 주정차할 만큼 붐벼, 가끔 경찰차가 슉슉 마이크 소음을 내며 도로정리를 할 정도다. '내국인 출입금지'라고 건물 앞에 팻말이 붙어 있고 시뻘건 간판은 오로지 한자로만 써붙인 <고려인삼 면세점> 이야기다. 내가 발견하기론 1, 2킬로 미터 이내에 네 다섯 군데나 몰려 있는데도, 죄다 성업중인 것으로 보인다. 관광버스 앞에 써붙인 글씨로 보면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이고, 가끔 일본 관광객 버스도 보인다. 길을 막고 줄지어 서 있거나 좁은 주차장으로 기다란 버스를 대려고 중앙선까지 넘어갔다 후진하는 관광버스들 때문에 병목현상이 생겨 그 앞을 지나려면 한참 걸리기 때문에 짜증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 끌려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안쓰럽다. 보나마나 저렴한 한국관광 상품으로 놀러와, 실제 관광은 하는둥마는둥 툭하면 이런저런 면세점으로 끌려 다녀야 하는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인상으로 남을까.

현지 언어에 자신이 없고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갈 때는 나도 더러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택하지만,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여행상품만큼 딱 떨어지는 것도 없음을 이젠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더라도, <노옵션, 노팁, 노쇼핑>이라고 처음부터 딱 못박아 놓은 상품을 찾는다. 그런 상품도 가이드에 따라선 슬쩍, 이건 정말 너무 좋은 상품이라 소개 안하면 고객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한 군데쯤은 데려가는 형편이니, 정말 패키지 여행은 편하고 싼맛에 가긴 하면서도 일신의 편안함과 맞바꾸어야 하는 나름의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내가 최초로 패키지 여행상품을 경험했던 것은 아마도 제주도 수학여행이었겠으나, 워낙 돈없는 대학생들의 수학여행이라 물건을 사라고 강요받은 기억은 전혀 없다. 그러나 직장생활 하면서 두번째로 친구들과 간 제주도 패키지는 상황이 달랐다. 관광코스 사이사이에 오전 오후 각 한 군데씩은 특산품 판매장에 끌려다녔던 것 같다. 절대 '옥돔'은 사오지 말고 '귤'이랑 '미역'이나 사오라는 엄마의 당부를 받고 간 상황이었는데, 가이드가 특산품 매장마다 하도 다그쳐대는 바람에 꿀과 로열젤리, 영지버섯 같은 걸 사들고와 엄마에게 혼이 났었다. 제주도는 그때도 아름다웠고 여행은 대부분 즐거웠지만, 이후 다시는 제주도에 패키지 여행으로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옵션도 어찌나 많은지, 입장료 저렴한 데는 지들이 내준다고 생색내면서 배타고 좀 비싼 데는 죄다 따로 돈을 걷두만. 쳇...

그러나 십수년 뒤인 2002년, 나는 그 다짐을 깨고 또 한번 제주도 패키지 여행에 따라나선다. LA로 이민간 친구가 언니랑 다니러 오면서 끊은 항공권이 하필 제주도 패키지 포함이었고(이왕이면 제주도 여행도 하고 좋잖아! 라고 친구가 말했을땐 나도 그저 헤벌레 좋아라 찬성했다), 나는 별도 1인용 여행비를 내고 공항에서 만나 그 팀에 합류했다. 허나 제주 공항에 내려 관광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나는 얼굴이 뜨거웠다. 버스엔 '고국방문단 환영'이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옆구리에 붙어 있고, 비디오 촬영기사가 계속 일행을 따라다니며 동영상을 촬영했다. ㅠ.ㅠ 대부분 십여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민자들이라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으로 남길만한 상황인지 어쩐지 모르겠으나, 나와 친구 일행은 거의 미칠 것 같았다. 우리는 절대로 그 비디오 테이프를 사지 않을 테니 찍지 말라고 가이드와 촬영기사에게 극구 당부해보아도, 같은 여행 팀이니 그냥 자연스럽게 촬영에 협조해달라는 말만 돌아왔다. 우웩~~!!

어쨌거나 때는 가을이 한창이라, 나는 버스에서 제주 오름 근처의 억새밭이 정말 장관이겠다고 미리부터 운을 띄웠다. 가을 제주 바다는 또 얼마나 예쁜 옥색인지 몰라. 바닷물도 아직 따뜻할 걸... 그러나, 아무리 패키지 여행이라지만 고국방문단을 위한 제주 관광 코스는 정말 너무 심했다. 관광지 하나 건성으로 휙 보고 특산품 판매점에 가면 1시간 반씩 머무는 걸 3일 내내 번갈아할 줄이야! 특산품도 내가 예전에 소개받던 것과는 가격대가 아예 달랐다. 대부분 하나에 수십만원을 넘어 백만원에 가까운 말뼈(관절염과 골다공증에 특효라나)! 동충하초(설명만 들으면 거의 만병통치약이두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아가리쿠스 버섯(항암과 당뇨치료제라고 들은듯)! 워낙 고가인지라 그런 상품을 사면 자연산 꿀이랑 로열젤리(십수년 전엔 내가 돈 깨나 주고 사왔었는데!)를 덤으로 막 준다고 했다. 일행중 우리만 삼십대였고, 동영상 촬영거부에다 쇼핑은 전혀 할 마음이 없어 상품설명할 때 일부러 휘휘 농장 구경이나 다니고 있으니 가이드에겐 미운털 깨나 박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싫은 데 어쩌라고!

관광지라도 제대로 데려가면 좋겠는데, 어쩜... 바다라곤 용두암과 외돌괴 두 가지만 딱 보여주더니 잠수함, 유람선 타는 것도 옵션, 몽고인들의 조랑말 쇼도 옵션(제주도 가서 왜 몽고 조랑말 쇼를 보라는 건지!), 조랑말 시승도 옵션, 무슨무슨 박물관도 옵션... 죄다 돈내고 하는 것만 강요했다. 물론 억새밭 구경과 제주 해수욕장 구경 따위는 아예 코스에 없었다. -_-; 오죽하면 사흘간 제주 관광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으로 친구가 꼽은 것이, 호텔 마당 앞 풍차 카페에서 밤에 맥주랑 칵테일 마신 거였다. 우리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려고 간 거라규~! 결국 우린 관심없는 옵션 코스 때 관광버스에 그냥 남아있겠노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으나, '안전 관리상 불가'하다는 말에 한숨을 쉬었다. 다 이민자인데 유일하게 신분이 다른(?) 내가 가이드에게도 골칫거리였을 테지만, 아니 말이 안통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제주도엘 벌써 몇번째인데! 어휴!

째뜬 덕분에 나는 제주도에 그토록 수많은 특산품 면세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수정은 익산이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 글쎄, 제주도에서도 팔더군! ㅋㅋ 정말로 또 LA 부자 교포아주머니들은 이따시 만한 자수정 금반지와 목걸이를 막 척척 사주시고... 가이드는 싱글벙글...  촬영기사 아저씨는 그들을 열심히 비디오카메라로 찍어대고... 정말 우리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는 제주여행이었다.

동네 근방에 있는 <고려인삼 면세점> 앞에 선 관광버스 행렬과 외국인들을 보며, 자꾸만 그 때의 '고국방문단' 패키지 여행이 떠올라 유심히 사람들 얼굴을 살피는데 내 선입견 탓인지 표정들이 다 좋질 않다. 명동은 물론이고 이대앞과 홍대앞에도 와글와글 지도 들고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들어보면 개인으로 찾는 일부 한류관광객들이 아닌 한, 그들도 하루쯤 시내 자유관광을 하는 것일 뿐 역시나 저렴한 패키지 상품으로 여기저기 특산품 면세점에 끌려다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한국과 서울을 '관광'하고 나면 또 다시 오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들까? 어차피 패키지 상품이라는 것의 특징과 단점을 그들도 알고 오긴 했겠지만, 한류를 업고 여행사마다 싸구려 상품으로 외국인들 데려다가 망신만 시키는 건 아닌지 퍽 궁금하다. 내가 아무리 제주도는 그런 데가 아니라고 나중에 변명해 보아도, 친구와 언니에게 제주도는 음식도 별로 맛없고, 구경할 데도 별로 없으면서 바람만 엄청 불고, 야자수는 말라죽는 곳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수년 뒤 다시 온 친구에게  내가 제대로 제주여행 가자니깐, 차라리 일본엘 가자고 했을라고. +_+ 친구는 올 가을쯤 다시 한국으로 놀러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제주 올레길 한번 걸어볼래? 라는 나의 질문에 역시나 방사능 괜찮은 곳으로 골라서 일본 온천이나 가자니깐! 하고 대답했다. 첫인상은 이렇게 중요한 것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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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식탐이 많아 엥겔계수가 높은 편이지만 요샌 장보러 마트가기가 정말 겁날 정도다. 다른 건 몰라도 과일과 채소는 넉넉히 사와야 마음이 뿌듯한데 설날 이후로 계속 어찌나 비싼지! 원래도 이맘때면 끝물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 과일 중에 제일 만만한 귤은 별 부담없이 먹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나, 요즘 귤값은 거의 금값이다. 100g에 무려 870원. 멋모르고 담다보니 귤 한개당 거의 천원꼴이더라. ㅠ.ㅠ 예전엔 5천원어치만 사도 한보따리라 막 물러져 버리곤 했는데...차라리 한통에 만원 하는 딸기가 더 싼 느낌. 매번 사오는 친환경 양배추도 너무 비싸서 반통씩 사오고, 푸성귀 나물도 무서워서 잘 못담아오겠다. 달달한 맛이 일품인 섬초 시금치나 국산 표고버섯 좀 봉지에 담으면 막 만원이 넘는다. 어휴...

부자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 뚱뚱한 건 영양가 따져 먹을 형편이 아니라 늘 값싼 정크푸드만 먹기 때문이라는데, 이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마트에서 제일 싼건 10개씩 담아 꾸러미로 파는 스팸, 참치 같은 통조림류 아니면 라면류인 듯. 할머니랑 오래 살아서 할머니 입맛이라는 평을 자주 듣는 나는 종종 도라지 나물, 고사리 나물 이런 게 막 먹고 싶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며칠 전 장보러 가서는 100g 당 가격을 보고 기가 막혀 포기했다. 불려놓은 국산 고사리가 100g에 2800원! 켁... 차라리 고기라면 몇만원 주고라도 사오는 게 익숙한데, 아무리 농사가 어렵고 일손이 많이 간다고 해도 나물 반찬이 한번 해먹을 분량에 만원을 넘기는 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도 물가보다 나의 노동력이 더 비싸다고 우기며 김치도 종*집 포기김치를 한 봉지씩 사다먹는 형편이니 이렇게 투덜댈 자격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며칠전부터 뜬금없이 깍두기가 먹고 싶어 또 종*집 깍두기를 한 봉지 사다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헌데 막상 손바닥만한 깍두기봉지 하나의 가격을 보고는 차마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죄다 국산 농산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한 보시기밖엔 안나오겠던데 8천원쯤 하던가... (이러면서 또 나가선 한끼 만원 넘는 음식도 막 사먹는 소비의 모순;;) 머뭇거리다 그냥 뒤돌아서려니 <제주무 990원>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지난번의 절반가격! 좀 시들시들해서 반값에 처분하는 모양이었다. 까짓것 깍두기 내가 한 접시 담아주마 하는 호기로운 생각으로 한통 집어들었어도, 집에 와서는 좀 망설였다. 아 왜 가사일 싫어하면서 일거리를 사서 만드냐고! 그러나 깍두기는 먹고 싶으고... 에이 빌어먹을 이놈의 식탐.

해서 무국 끓일 1/3토막은 남겨놓고 겨우 700원어치 정도의 무로 어제 깍두기를 담갔다는 것이 별것도 아닌 이 포스팅의 결론이다. 알량하게 두세 그릇 분량이긴 해도 무조건 맛있어야 하니까, 새우젓도 넣고 찹쌀풀도 끓여넣고 매실청도 넣었다. 일부러 자작하게 국물도 만들어 부었는데 오늘 보니 생각보다 국물이 많이 나와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익었나 안익었나 종일 몇번이나 집어먹어본 느낌으로는 꽤 맛있을 것 같다. ^^v 

내 생애 처음인가 아닌가 잘 생각도 나지 않는 깍두기를 담그며 자랑스레 사진을 찍고 보니, 점점 구차하고 비루한 아줌마스러운 블로그로 변해가는 것을 자인하는 포스팅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런 거로라도 포스팅 갯수 올리는 게 잘하는 짓인지 한심한 노릇인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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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다가 들은 얘기.
출판계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은 의외로 책을 많이 읽는 독자가 아니다.
책을 읽든 안읽든 자꾸 많이 사서 잘 꽂아두는 사람이 최고로 좋은 사람.
자기가 책을 안사더라도 동네 도서관에 자꾸 책 신청하는 사람, 좋은 사람. 
욕을 먹거나 말거나 요즘도 꿋꿋하게 책 선물 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
욕이든 칭찬이든 책 읽고 블로그나 트위터에 리뷰 올리는 사람, 퍽 좋은 사람.
물론 최고로 나쁜 사람은 일년 내내 책 한권 안 사는 사람.
(책을 사기는 하되 전혀 안읽어도 괜찮음. 책보다 흥미로운 것들이 세상에 좀 많은가.) 
그러나 열심히 책을 사서 읽고난뒤 출판사에 전화 걸어 따지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란다. ㅋㅋㅋ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맞춤법에 따라 책에 오탈자가 몇개라고 항의하는 독자들도 나쁜 사람.

오늘의 결론. 나 꽤 좋은 사람이었어!
밀린 책 좀 읽었다고 냉큼 사들인 책이 또 쌓여 뒹굴고 있다. 그래도 출판 유통에 일익을 담당했으니 완전 한심한 건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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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투덜일기 2011. 6. 29. 17:49

지난 월요일 조카네 집에 가다가 오른쪽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문방구에 들러 굳이 스테이플러 침을 사오라는 공주의 명령에 투덜투덜 낯선 동네에 차를 세우려니 삼거리에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피해보겠다고 만만한 인도에 슬쩍 걸쳐놓으려던 것이 연석 모서리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기는 했으나 내려서 살피니 차체가 멀쩡했다. 해서 얼른 문방구에 들어가 침을 사가지고 나와 차에 올랐는데 차가 오른쪽으로 폭삭 가라앉아 있었다. -_-; 차체는 멀쩡했으나 바퀴가 찢어진 것.

난감하긴 했지만, 내 이름으로 자동차보험을 든지 4년째 단 한번도 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해마다 생돈만 날렸는데 드디어 나도 써먹을 때가 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득의양양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보험카드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보험사 자동응답 내용에 아예 <타이어교체> 항목이 있더군. 상담원과는 한 마디도 할 필요 없이 (심지어 내 정체를 밝히는 주민번호나 보험카드 번호 확인도 필요없이 OOO 고객님이 맞으면 1번을 누르라고 하더라!) 계속 해당 번호를 누르고 나니 편의를 위해 고객의 현재 위치 통보에 동의하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오호라, 휴대폰 GPS로 바로 내 위치가 보험사에 날아가는 모양이었다. 좀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당연히 동의하고 전화를 끊었다. 1분만에 출동 기사의 전화가 와 구체적인 위치를 묻더니 10분 만에 서비스차량이 나타났다. 오 놀라운 IT 서비스천국의 혜택이여!

한시간쯤 늦어질 거라 예상했었는데 결국 모든 상황은 30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따위는 있지도 않던 까마득한 옛날, 강변북로에서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갓길에서 혼자 낑낑대며 기구를 꺼내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렌치로 나사를 풀고 양손이 온통 새까매지며 낑낑 타이어를 손수 갈았던 기억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나 타이어도 혼자 갈아본 사람이야!) 문제의 타이어는 단순 구멍 정도가 아니라 찢어진 거라 바꿔야할 거라고 기사님이 말했다. 비가 와서 타이어 고무가 말랑해졌나? 그 정도로 찢어지다니 나 원참 의외였다.

째뜬 임시로 타이어를 갈았으니 카센터에 내려가야 하는데 연일 비는 계속 내리고(어제 날 갰을 때 행동했어야 하거늘) 은둔본능에 휩싸여 좀체 외출하기는 싫고 심지어 냉장고가 텅텅 비었는데도 장보러 가는 게 꺼려져 웅크리고만 있다. 온갖 종류의 서비스가 다양해져 세상이 편해질수록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더욱 더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듯하다. 자동차 수리도 집에 가만히 앉아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사람 만나 설명할 필요 없이 척 차를 가져다가 척 고쳐서 다시 집앞에 세워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쯧쯧쯧...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은 마트 가서 장도 보고 카센터 들러 타이어도 교체해야지 하며 오늘도 할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6월도 내일이면 쫑. 바쁜 마음과 달리 몸은 좀체 빠릿빠릿 움직여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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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간다

투덜일기 2011. 5. 31. 17:26

일년 열두달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5월이 간다. 찌뿌드드 잔뜩 내려앉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함께. 뭔가 아쉽다. 하기야 내눈에 최고로 예쁜 연초록의 시기는 어느 틈에 지나버렸다. 어제 보니 밤마다 유독 그윽하고 달콤한 향기를 뿜던 아카시아꽃이 다 말라 떨어져 부서진 누런 팝콘처럼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마저 이 비에 다 씻겨 사라지겠다. 그러고는 초록이 한층 더 짙어지겠지.

날씨도 초록도 기분도 가장 싱그러워야할 5월은 올해 축 처져 보냈다. 계획은 원래 어기려고 있는 것이라는 쉰소리로 변명을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하려고 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해야할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이렇게 마냥 힘빼는 삶도 가끔은 필요하다, 스스로 속닥이며 충전을 바랐으나 눈금은 오르지 않았다. 조바심 내지 말아야지, 하며 또 그냥 늘어졌더니 한달이 후딱 가버렸다. 이젠 정리가 필요할 때.

마감이 닥쳐야 손발이 움직이는 버릇은 아무래도 평생 가져가야할 악습인 듯하다. 또 다시 돌아온 세금신고의 계절. 해마다 개악되는 게 틀림없는 오리무중 세무신고 프로그램과 홀로 싸우다 결국 어제 세무서에 찾아가 해결 안되는 문제를 직원에게 물어본 다음에야, 마지막날인 오늘 전자신고를 마쳤다. 그래도 마감 안 어긴게 어디냐고 자평. 늘어져 뒹구는 동안 그나마 잘한 일이 있다면 독서. 한달간 7권 읽어, 드디어 올해 월평균 세권을 넘겼다. 영화는 두 편. 전시관람은 전무. 타일깨기 기록은 194점. 일은 당연히 뒷전. 

마감 독촉전화가 무서우면서 왜 그게 채찍질은 안되는지 의아한 나날이다. 작업 계획표는 두달째 어긋나고 있다. ㅎㅎㅎ6월의 화두는 다시 심기일전. 일부러 콘서트를 두 개나 가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씩씩하게 잘 놀러다닐 때 일도 잘한다. 방구석에 처박혀 노상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다고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나는. 놀 욕심에 힘이 나는지 어디 두고보자. 어쨌든 이렇게 5월이 간다. 그러니까 꿍얼꿀얼 이 변명은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5월을 이렇게 보내서 미안하다는 사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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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1. 5. 13. 21:28

끊임없이 창의력을 발휘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직업을 지닌 동생은 얼마 전부터 전업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 분야에선 감 떨어지면 생명 끝이야, 라는 그의 비장한 말을 들은 건 꽤 됐다. 20년 가까이 머리를 쥐어짜가며 버티고는 있지만 자꾸만 그 '감'이라는 게 떨어져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타고난 재능이 워낙 화수분 같아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감 떨어질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확실히 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노래방엘 가서도 꼭 김동률, 넥스트 같은 노래를 선곡하며 젊은 감각을 유독 자랑하던 부장이 있었다. 다방면의 음악을 들었고 와인을 음미했고 연극을 보러 다녔고 정장에 메신저백을 매고 다녔다. 그런데도 이십대였던 우리는 그 사람을 질색했다. 그가 어디선가 물어오는 썰렁한 유머라는 것도 하나같이 고리타분 전혀 웃기지 않았고, 우리들의 유머는 잘 못알아듣고 초를 쳤다. 그럼에도 부하직원들의 사적인 대화에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하는 행동이 밉상이었다. 우리는 애써 젊은 척하려는 그에게 '나잇값' 못한다고 흉을 봤다. 이제는 '나잇값'이라는 말을 치떨리게 싫어하건만, 그 땐 툭하면 쯧쯧 혀를 차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던 걸 보면 한심하게도 나는 조직내 왕언니라는 호칭 때문에 조로 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나잇값을 못했던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나름의 취향을 고수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감이 떨어진 것 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감이 떨어진다는 건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도 서글픈 일이었다. '왕년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다 지난 과거를 포장해 자꾸만 추억하는 사람을 보는 때만큼이나 서글펐다. 꼴같잖은 상사나 중노년의 어른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던 게 벌써 까마득한 오래 전 일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렇게 감 떨어진다고 비웃던 사람들과 비슷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중년이 되었다고 해서 철이 더 들었다거나 현명해졌다거나 지식이 많아졌다거나 하는 변화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가끔씩 순간순간 스스로 감떨어지는 중늙은이가 됐다는 깨달음이 들어 허걱 하고 놀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늙는 건 마음먹기 달렸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의 나는 간혹 저도모르게 꼰대같은 소리나 툭툭 내뱉고 앉았고 빠릿빠릿한 센스도 한참 뒤떨어졌다. '아'하고 이야기했는데 '어'하고 알아듣는 사람만큼 답답한 게 없다고 노상 떠들어댔으면서 문득 내가 그러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도 원래 자의식에 빠져 움츠러들면 아무것도 아닌 말조차 오해하고 오독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내가 시방 그러는 것 같은 기미가 느껴진다. 서글프다. 가장 슬픈 건 슬쩍 나이탓을 하며 모자란 행동에 면죄부를 씌우려는 무의식적인 나의 태도다. 아니, 감이 떨어졌는지 아닌지 모를만큼 거침없고 무감하게 살 수 없게 된 작금의 상황이 참 슬프다. 

떨어지는 감을 세워올리려면 최첨단 안테나라도 구비해야하는걸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그 옛날 내가 손가락질하며 외면하던 중년의 부장처럼 못나게 몸부림치다 사그라져야 하는 걸까. 비어버린 머리는 어떻게든 두들겨서 뭔가를 집어넣어본다지만, 고성능 최첨단 안테나는 구할 수나 있는 것인지 그걸 몰라 더욱 어깨가 처진다. 감 좀 떨어지면 어때, 하면서 뻔뻔하고 자연스레 수긍하며 살아갈 용기를 찾는 게 더 빠르고 옳은 길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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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하나마나 푸념 2011. 3. 24. 02:35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단다. '여배우'라는 말과 함께 내 의식과 무의식에 동시에 자리잡고 있었을 두 사람이 바로 오드리 햅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는데, 이제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어리고 깜찍한 모습으로 <녹원의 천사>, <작은 아씨들>에 나온 리즈 테일러를 보면서 어린 나는 세상에 저렇게도 예쁜 사람이 다 있군, 하며 놀라워 했다. 인형처럼 생겼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리즈 테일러가 나온 여러 영화를 봤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과 함께 나온 <자이언트>에서의 모습이 내겐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 늘 욕 먹고 씹히던 남성편력도 내겐 멋졌다. 남자만 여러 번 결혼하란 법 있나. 게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마다할 남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고혹적인 입술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나라도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던데. 다만 오드리 햅번처럼 외형적으로도 자연스레 아름답게 늙어가지 못한 게 안타깝긴 해도 온갖 지병과 싸우며 끊임없이 사회에 기여한 노력은 똑같이 우러러보인다. 대중과 미디어가 아무리 제 멋대로 소모해버리려고 파고들어도 당당히 버텨냈으니 이젠 고이 잠들어 편히 쉰다고 생각하면 될텐데, 왠지 기분이 착잡하다. 

리즈 테일러의 부고가 아니어도 온종일 잡념이 많아 별로 일을 하지 못했다. 학력위조 파문과 정치권 특혜 의혹으로 언론을 홀딱 뒤집어놓았던 장본인이 이번에는 또 책으로 세상을 들쑤시고 있다. 당시엔 나도 한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력위조 문제가 이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라 생각했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질겅질겅 씹어대듯 한 여자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도무지 실체가 잡히진 않지만 누구나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연예계 성상납 비리와 마찬가지로,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오르내리던 수많은 정치권 인사의 개입은 진실 여부를 떠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남성 중심의, 상품으로서의 여성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그 여자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요번에 대대적인 출판기념회를 열어 선정적인 회고록을 내놓은 걸 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책을 냈을까? 하기야 요즘은 굳이 자비출판을 하지 않더라도 책 내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느 쪽에서 기획을 하든 일말의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나무에게 부끄럽든 말든, 일단 책의 형태로 출간된 책은 세상에 나올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는 출판계의 속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 없고 힘빠지는 소식은 그런 황당한 자서전이 벌써 나온지 하루만에 2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나는 출간기념회도 그렇고 책 속에 언급되었다는 정치인의 이름도 그렇고, 그 여자가 들고 나왔다는 명품 가방이 더 큰 이슈가 되는 찌라시 언론에 그저 코웃음만 치고 있었는데, 이 나라 출판시장이 겨우 그 꼴이라니 맥이 탁 빠졌다. 노이즈 마케팅이든 아니든 자서전을 낸 그 사람으로서나 출판사 입장에선 두손 들고 환영할 일일 것이다. 이 엄청난 불황에 초판을 5만부 씩이나 찍어서 1, 2주 만에 2쇄 인쇄에 돌입하는 책이 어디 흔한가.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백만부 이상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일년에 서너 권씩 냈던 어느 대형 출판사도 작년에는 10만부 이상 팔린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게 요즘 현실이다. 최근 1, 2년 새 초베스트셀러 경향을 보면, 인기 작가 몇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팬덤에 편승해 낸 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연예계와 가요계 뿐만 아니라 출판계 마저도 연예인과 아이돌이 접수하는 거 아니냐고 씁쓸해 하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라던데, 정말 출판시장에서 이제 팔리는 책은 떠들썩한 유명세를 업어야만 나올 수 있다는 뜻일까?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번역을 하든 글줄만으로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게 그리 쉽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출판계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남은 한 가지 잡념은 가끔 주제도 모르고 펄럭대는 내 오지랖에 대한 자책이다. 주변에서 간혹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지인들이 있으면 펄펄 뛰며 말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연하게 아련한 희망을 심어주지도 않는 편이다. 그저 혹독한 현실을 일러주고 스스로 가능성을 점쳐보도록 이끄는 것밖엔 해줄 수가 없는 걸 어쩌랴. 그리고 책이란 게 백이면 백 모든 사람에게 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문장 역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친구의 문장력과 외국어 이해력을 속속들이 알 방법 또한 없다. 그러니 나로선 얇디 얇은 연줄을 대어줄 순 있으되 그 이상의 생존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렸다. 실제로 지난 십수년간 우연한 기회로 몇몇 지인들을 '추천'해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느 출판사든 초짜 번역가를 선뜻 쓰려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책의 검토나 시험번역의 기회를 어렵사리 주선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연줄'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서로 운대가 맞아야지 소심의 극치인 내가 먼저 불쑥 누군가를 소개해주겠다고 나섰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돌이켜보면 양쪽에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시험번역을 통과했던 친구 하나는 결국 자기 이름으로 번역서를 한권 내기는 했지만, 자기는 죽어도 번역으로 못 먹고 살겠다며 떨어져나갔다. 현재는 학원 원장님이신데, 나더러도 만날 그 골빠지는 일 때려치우고 고액과외나 하라고 권유한다. 친구 하나는 안타깝게도 시험번역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년에 걸쳐 서로 재고 테스트하고 망설이는 과정을 거쳐 동료 번역가 대열에 접어든 친구가 둘 있는데, 하나는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아무데도 찾아주는 데가 없다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얼마 전 다행히도 검토 일을 하나 연결해줬건만, 작품 분석력이 떨어져 안되겠다는 출판사 지인의 귀띔을 들었다. ㅠ.ㅠ 다른 친구 하나는 세번째 책이 요번에 나올 예정인데, 마침  잘 아는 후배가 그 책의 외주 편집을 맡았다. 뜻밖에도 문장력도 없고 원고의 첫장부터 오역 투성이라면서 온통 새빨갛게 된 교정지를 후배가 내게 보여주었다. 그 친구에게 일을 맡긴 최종 결정은 출판사가 했음에도, 내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물론 친구에겐 여태껏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 절대로 사람을 추천하지 않기로 홀로 결심만 세웠다. 그러면서 총체적으로 또 다시 시작된 고민. 과연 나는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잡념인데 잘 떨쳐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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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

하나마나 푸념 2011. 3. 16. 17:32

내가 책을 잘 못(안?) 읽는 이유는 의지력 박약이 첫째고 둘째는 TV다. 바보상자 TV를 한번 켜면 리모컨을 돌려가며 계속해서 넋놓고 앉아 있다. 여러 방송사 모두 뉴스는 낮에 방영했던 내용이 저녁 뉴스에 또 나오고 토씨하나 안 틀린 기자의 보도 클립이 마감뉴스에도 되풀이된다. 그런데도 난 또 그걸 '뉴스'랍시고 보며 질질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울고 싶어서 빌미를 찾고 있나 싶기도 하다. 실종자 가운데 2천명이 무사히 살아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지만 대체로 서글픈 지진 뉴스를 보며 문득 나는 다이고를 생각했다. 영화 <굿'바이>에서도 드러났듯 일본의 모든 장례지도사들이 다이고나 그 사장님처럼 경건하게 고인의 시신을 대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수많은 다이고들이 참으로 바쁘고 힘들게 정성껏 일하고 있겠구나 싶다. 내가 입관 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지켜본 건 외할머니 때 뿐이다. 친할아버지, 할머니 때는 정신줄을 놓은 엄마를 지키느라 들어가볼 기회를 놓쳤다. 전통적으로 원래 염은 자식들이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입관때 가까운 친지들은 꼭 참관을 하는데, 나는 서른 중반에야 처음 그럴 기회가 있었다. 우느라 대체로 정신이 없었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버지 장례 때는 친척분들의 협의를 거쳐 염하는 과정을 중간부터만 참관하기로 했었는데, 그 '중간'이라는 게 어중간해서 결국 우리는 장례지도사가 수의를 다 입혀놓은 다음에야 아버지를 보러 들어갈 수 있었다. 최대한 천으로 가리고 진행하더라도 고인의 사지와 맨 몸이 드러나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기가 불편하다는 친척 어르신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차디찬 아버지의 이마를 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을 때의 황망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참담한 현실과 수많은 죽음 앞에서 더욱 가슴이 아픈 건 내가 겪은 죽음을 자꾸 환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역시나 이기적인 감상이다.

어젯밤엔 MB의 수족 사장 치하에 들어간 MBC에서 강제 인사이동을 당한 원래의 제작진이 만든 <PD수첩> 마지막 방송분이 방영되었다. 소망교회에서 목사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다는 대통령을 다루려 했던 지난주분은 결국 방송이 무산되고 말았지만, 어제 다룬 문제들 역시 PD수첩다웠다. 논문심사비로 교수에게 300만원을 바치고 나서도, 다시 논문 읽는데 걸린 1시간 15분에 대한 비용을 추가로 내라는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는 학생의 증언을 보며 이젠 막 웃음이 나왔다. 어느 미대 교수는 병원에 입원한 동안 조교에게 밤샘 간병을 시켰단다. 레지던트를 발로 차고 밟고 때리는 놀라운 폭행을 일삼은 의대 교수는 행정소송을 거쳐 3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수술실에서 부분 마취한 환자가 그 의대교수의 폭력행위에 공포를 느껴 병실로 돌아온 뒤에도 충격을 가누지 못했다는 증언까지 방송에 나왔지만, 2차 징계위원회에서 그 밥에 그 나물인 교수들은 슬며시 동료를 감싸주었다. 당당히 학교로 복귀한 폭력 교수 본인의 변명으로는 다 제자 잘 되라고 한 행동이란다. 제자들의 청원으로 비리 혐의가 인정돼 1개월 정직 처분을 받은 교수는 뻔뻔하게 여전히 소송중이다. 졸업한 제자들의 개인전에까지 찾아가 협박을 일삼고 자기가 괴롭혔던 제자들을 증인으로 불러대면서. 요번에 국립대학에서 파면된 음대 교수도 변호사 선임해서 소송할 움직임이던데, 승소하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내부고발자들이 아무리 용기를 내어 비리를 폭로하면 무엇하나. 법과 제도와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걸. 정말 이 나라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나라가 한참 멀었다는 걸 간간이 꼬집고 일깨워줄 TV 프로그램도 사라질 형국이다. 다른 공중파방송에도 간간이 볼만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있지만, 워낙 가뭄에 콩나듯 방영하고 있으니 이젠 공중파 3사가 노상 용비어천가만 불러대고 있게 생겼다. 일본 지진 소식이 워낙 강렬했기에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온종일 엄마가 틀어놓는 KBS 뉴스에서 끼니 때마다 MB가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이룬 '쾌거' 소식을 들을 뻔했다.

한 사람의 개인이긴 하지만 엄기영을 봐도 MBC의 운명이 실감된다. 설마 MBC가 MB네 회사라는 뜻이었던가? 트렌치코트 깃을 높이 세우고 에펠탑이나 개선문, 상젤리제를 배경으로 "파리에서, 엄기영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멋진 기자 이미지로 내게 각인되었으며 꽤 괜찮은 앵커를 거쳐 MBC 사장까지 했던 사람은 결국 결국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심지어 자기가 몸담고 있던 방송사를 '까대는' 언사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렇게도 정치와 권력이 좋은지 진짜 궁금하다. MBC엔 아직 제작을 거부하며 싸우고 있는 시사교양국 기자와 PD들이 존재하지만, 하나하나 종영되고만 수많은 시사 프로그램 가운데 이제 <PD수첩>은 프로그램이 사라지지만 않았지 거의 색깔과 생명이 끝장났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점점 볼 거리도 사라져가는데 이제 그만 테순이 노릇은 관두고 독서로 눈을 돌리면 좋으련만, 난 또 공중파를 대신해 케이블 채널을 기웃거린다. 이러니까 권력이 자꾸만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이겠지. 더더욱 바보가 되라고. 알면서도 나는 손에 리모컨을 쥔 채 그 장단에 계속 놀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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